양산 여학생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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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례 : 병사(D), 아사(H), 의료사고(M), 실종(V), 자살(S), 교통사고(T), 기타(E), 의문사 및 경위 불명(?)




1. 개요
2. 실종자
3. 사건 전개
4. 추측
4.1. 납치 가능성
4.1.1. 앵벌이 목격?
4.1.2. 관련 사건
4.2. 가출 가능성
4.3. 생존했을 경우
5. 이후
5.1. 제3의 제보자, 그러나 놓친 골든타임
5.1.1. 의문점: 왜 아이들은 다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을까?



1. 개요[편집]


2006년 5월 13일 토요일 오후 2시경 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1]에서 같은 아파트에 살던 웅상여자중학교 2학년[2] 이은영 양과 백동초등학교 5학년 박동은 양이 실종된 사건. 두 사람은 박동은 양의 집에서 놀다가 함께 집을 나선 뒤 집 인근에서 몇 차례 발견된 후 실종되었고, 17년이 지난 현재까지 행방을 알 수 없다.



2. 실종자[편집]


파일:external/ilyo.co.kr/1149348006111490.jpg
왼쪽이 이은영 양[3], 오른쪽이 박동은 양[4]이다.

만약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이은영 양의 현재 나이는 31세이고 박동은 양은 28세이다.

파일:983741928.png
KBS 강력반 X-파일 끝까지 간다에서 어릴 적 사진을 이용해서 성인이 된 현재 모습으로 추정되는 예상 몽타주를 제작해 공개했다.

파일:그것이 알고 싶다.E1183.190921.720p-NEXT.mp4_20190922_093435.png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제작한 현재 모습 몽타주이다.


3. 사건 전개[편집]


이 양과 박 양은 같은 아파트(양산서창대동아파트 104동) 1층과 18층에서 살고 있었으며[5], 2살 차이였지만 평소에 자매처럼 친했다고 한다.

2006년 5월 13일 토요일 이른 아침, 이 양이 박 양의 집에 놀러 와 있는 상태에서 박 양의 어머니가 오전 9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박 양의 어머니가 외출하기 전 이 양과 박 양에게 밖에 나가서 놀 거냐고 물었는데 이때 두 여학생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놀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외출한 후 두 여학생과 박 양의 언니까지 총 세 명이 집에 남았는데, 약 1시간 뒤인 11시쯤에 박 양의 언니가 학원에 간다고 집을 나섰다. 언니의 증언에 의하면 언니 또한 집을 나서기 전 이 양과 박 양에게 밖에 안 나갈 거냐고 물었지만 둘은 '안 나간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집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는데, 어머니와 언니에게 했던 말과 다르게 두 사람은 집에서 함께 놀다가 컴퓨터도 켠 상태로 아무런 준비 없이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후 1시 20분경에 집에서 약 2km 떨어진 동네 상가 앞에서 이 양과 박 양이 목격되었다. 즉 시간을 알 수 없는 언젠가 집에서 상가로 나와 있다가 귀가할 때 목격된 것이다. 이때 두 아이는 집 앞으로 향하는 웅진11번 마을버스에 올랐고 10여 분 뒤인 1시 30분경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입구(소주대동아파트 정류장)[6]에서 하차했다. 당시 마을버스 기사는 두 학생이 탔던 사실을 기억했으나[7] 아쉽게도 당시 양산시 마을버스 내부에는 CCTV가 존재하지 않았다.[8]

오후 2시경, 이 양과 박 양이 집 앞 버스정류장(소주대동아파트 정류장)에서 목격되었다.[9] 경찰은 이 곳을 두 여학생이 목격된 마지막 장소로 보았다.

오후 2시 20분경 이 양과 박 양이 아파트 단지 슈퍼마켓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 한 주민에 의해 목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두 여학생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모습이었으며, 그 날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행방과 연락이 끊겼다.

오후 2시경 이후에도 많은 제보가 있었다. 집을 나선 지 4~6시간이 지난 오후 5시경에 웅상읍 중심가에서 이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이 양이 다니던 유도 체육관의 언니가 목격했다는 증언이 있고, 다음 날 오후 10시에 야시장에서 목격됐다는 증거도 있다. 이들의 제보들은 분명히 경찰이 조사해 보기는 했을 텐데 다소 불분명하고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여겼는지 사건을 분석한 여러 TV 프로그램에서도 언급은 했지만 크게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대체로 오후 2시경 아파트 단지 버스정류장 부분을 교차검증이 되는 마지막 주요 목격 지점으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아파트 상가 주변에는 CCTV가 없어서 이들의 행적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경찰이 초기에 늑장 보고를 했으며 무엇보다 단순 가출로 보고 뒤늦게서야 수사를 시작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이에 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만큼 가출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범죄의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래도 다른 실종 사건에 비하면 발생 직후 몇 달 동안 꾸준히 보도되었으며 경찰도 전국 가용 인력으로 일제 수색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보였다. 그리고 이 양의 아버지는 살생을 그만두어야 딸이 돌아올 것 같다는 믿음에 평소 생업이었던 장어구이 식당도 접을 정도로 생업을 포기해서라도 아이를 찾겠다는 아버지의 의지와 부성애가 돋보였다. 하지만 두 여학생들이 실종된 후 인터넷에 접속한 흔적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정신이 온전하고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인 이들이 집에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범죄의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후 경찰은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꾸준히 수사를 전개하였으며, 실제로도 실종 당시부터 2008년 1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114건의 제보가 들어왔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그래도 그 중에는 유력하다고 여겨지는 제보들도 있었다.

실종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시점인 2006년 5월 15일경상남도 고성군에서 들어온 제보에 의하면 한 경비업체 직원이 두 여학생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을 목격했다고 한다. 해당 직원의 증언에 의하면 고성 공룡 엑스포가 폐장할 시간 즈음, 정문 앞에 앳되어 보이는 여학생 2명이 찾아와서 '우리들이 차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차에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둘 중 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해서 박동은 양의 실종 당시 연령과 일치하고 그 아이는 다른 한 명을 '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이들을 보고 가출했냐고 물어보니 처음에는 '그렇다'고 대답하다가 '경찰서에 가야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말을 바꿔 '가출하지 않았다'고 하길래 고성터미널에 내려 주는 동시에 차비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현금 3만 원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말씨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조금 있었다고 했다.[10] 당시 차량에서 두 여학생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 한 올이 발견되어 DNA 검사를 의뢰했지만 머리카락 자체에서 DNA가 검출되지 않아 검사하지 못했다.

다만 이 양의 아버지는 이 목격담을 절대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둘 다 평소 공룡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에서 약 100km나 떨어진 경남 고성까지 여자 아이들이 오밤중에 찾아갈 이유가 없거니와 자신도 타지로 나가서 일하지만 그곳으로 가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사건이 일어난 지 2주 정도가 지난 5월 26일 오후 6시경, 이 양의 아버지 휴대폰으로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라는 문자가 왔다. 경찰은 즉시 문자를 보낸 사람을 역추적해 이틀 만에 붙잡았는데 이는 실종 아동들의 전단지에 있던 이 양의 아버지 전화번호를 본 부산광역시에 거주하던 38세 회사원 허 모 씨의 장난문자로 밝혀졌다. 허 씨는 단순히 술김에 보냈다고 했지만 사라진 딸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허탈감을 유발했고 나이도 많은 사람이 단순히 술에 취해 이러한 짓을 한 데다가 수사 인력을 낭비한 죄가 무척 크기 때문에 공분을 샀다. 하지만 전과가 없는 초범이었고 악의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여 벌금형을 부과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이 전화번호를 이용해서 장난전화와 허위 제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11]

2017년 9월 2일, 강력반 X-파일 끝까지 간다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이 방송에서는 사건 당시 근무했던 마을버스 기사들을 모셔와 당시 두 학생이 탔던 마을버스에 대해서 기억하는지 물었는데, 한 버스 기사에게서 '당일에 두 아이를 태우고 내려줬는데,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 후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 안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 후 최면수사를 실시한 결과, 정확히는 두 아이까지 포함해서 총 6명이 내렸는데(이 양, 박 양, 한 남자, 아주머니나 어르신들) 두 아이 뒤에 한 남자가 따라들어갔다는 기억이 확보되었다.

박 양의 어머니 정 씨는 아이들의 실종 후 약 9개월 가량 실종 전단지를 돌리며 딸을 찾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무관심이 심해졌고 아이들의 얼굴이 찍힌 전단지가 아무렇게나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쓰레기통에 처박힌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결국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시 측에서는 완전히 끈을 놓지는 않았었는지 2010년 중후반까지도 서창 → 덕계 방면에 세워진 대형 스크린을 통해 한동안 실종 사실을 알리는 광고를 했지만, 현재는 그 광고마저도 내려간 상태이다.


4. 추측[편집]



4.1. 납치 가능성[편집]


우선 낯선 사람이 접근하여 차를 이용한 납치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었다. 당시 두 여학생이 살던 양산서창대동아파트 단지는 드나드는 길이 큰 길 하나와 몇몇 으슥한 샛길로 되어 있었고[12] 바깥 중심가까지 나가려면 녹지나 공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나 마을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어린 학생들이 도보로 바깥 중심가로 드나들기 힘든 특이한 고립된 구조였다. 만약 납치했다면 자동차가 없이 드나들기는 어렵다.

아이들 모두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이라 모르는 사람의 유혹에 넘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강제 납치일 가능성을 추정하기도 했다. 다만 상주 인구도 적지 않고 듣는 귀도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유혹이 아닌 강제 납치 행위가 있었다면 비명 소리를 들은 목격자가 있어야 할 텐데 아무런 목격자가 없다는 것이 의문스럽다. 한편 아이가 1명도 아닌 2명이라 경계심이 약해져 유혹에 넘어가기 더 쉬웠으리라는 추정도 있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미제사건전담팀에서 실종 당일 아이들을 태운 버스 기사를 상대로 최면조사를 했는데, '당시 한 남자가 박 양과 이 양을 따라 아파트 쪽으로 같이 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 남자는 그냥 동선이 겹친 것인지 납치범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 두 여학생이 내린 소주대동아파트 버스정류장은 마을버스의 종점인 데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내린 승객들은 십중팔구 아파트 단지 쪽으로 다 같이 우르르 걸어 들어가게 되는 형태라서 그 남자가 버스에 같이 탔던 단순한 아파트 주민이라면 버스 기사가 보기에는 여학생들과 걸어가는 방향이 같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흐름상 경찰은 버스 기사가 증언한 아이들을 따라 아파트 쪽으로 같이 간 남자를 유력 용의자로 추정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때 경찰이 더 일찍, 실종 직후에 버스 기사를 상대로 최면 조사를 했다면 기억도 더 선명했을 테니 이 남자의 인상착의를 더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아파트 단지 맞은 편에는 대규모의 소주 공단이 있는데[13], 공업 지역이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 그리고 타지에서 일하러 온 노동자가 많았다. 이곳은 어린 여학생들이 굳이 향할 만한 동네는 아니었지만, 어떤 이유로 버스에서 내린 후 이쪽으로 향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경찰은 모든 공장을 일일이 방문해 탐문 수사를 벌였으나 두 여학생의 행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4.1.1. 앵벌이 목격?[편집]


그런데 사건이 벌어진 후 멀지 않은 시기에 부산사상역 인근 번화가에서 앵벌이를 하는 아이들 중에서 실종된 두 여학생과 흡사한 이들을 봤다는 성인 여성의 증언이 나왔다. 당시 해당 여성은 사상역 앞 횡단보도에 서 있었는데, 바로 옆에서 하얀 모금함을 들고 모금을 요구하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제보자는 아이들을 보고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으나, 마침 제보자와 함께 있던 다른 여성이 아이들을 유심히 보더니 실종 포스터에 나온 그 아이들이 아닌가 싶어 의심하기 시작했고 당시 주위에 있던 다른 여성들이 모여서 그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 보려 시도했다. 아이들은 '좋은 일에 쓸 테니 모금을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모금함을 들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고 하며 간혹 '종교 단체에서 나왔다'라는 말도 했다는데 그 종교 단체가 어디인지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보고 의심한 여성은 계속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그 순간 험상궂은 성인 남성 한 명이 나타나 '당신들이 안 도와줄 거면 상관하지 마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주위에 있던 여성들에게 으름장을 놓은 뒤 아이들을 데려갔다고 한다. 당시 목격자들은 '아이들이 100% 자발적으로 남자를 따라가는 것 같지 않았고, 무언가 말하려던 표정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과거 SBS 방송 자료를 대조한 결과 2007년긴급출동 SOS 24에서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앵벌이 집단을 다룬 르포가 있었고, 그 앵벌이 사건의 간부로 추정되는 사람이 검거된 적이 있었기에 취재진은 사상역 근처의 앵벌이 조직에 대해 수소문한 끝에 사상역 골목에 산다는 전직 앵벌이 관리대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관리대원은 당시 여성들이 목격했던 실종된 이 양과 박 양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했으며 '어쩌면 풍속업 쪽으로 팔려 갔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이런 관행이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취재진은 사상구의 유흥업소에 대해 취재했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난 2006년 7월 4일경상남도 양산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도 성남에서 목격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한 식당에서 목격자가 신문을 보던 중 주변 테이블에서 이 양과 박 양을 닮은 여자아이 2명과 성인 여성 1명이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목격자는 인상이 상당히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긴가민가해서 직접 나서지는 않다가 식당 사장에게 '저 사람들이 자주 오는가'라고 물었고, 사장은 '자주 온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식사를 다 마치고 나갔는데 목격자는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밖으로 나와 두 아이와 함께 있던 여성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미 떠나고 사라져 버렸다. 목격자는 다급히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 아이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4.1.2. 관련 사건[편집]


이 양과 박 양이 실종된 2006년과 그 전후로 두 여학생이 거주하던 동부 양산과 인근 울산 지역에는 미성년 여학생들만을 표적으로 한 성범죄를 상습적으로 벌이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울산에서 16건, 양산에서 7건, 경주에서 1건으로 총 24건의 성범죄를 저질렀으며 이 양과 박 양이 거주하던 웅상읍 소주리에서도 두어 차례 한 남성이 여자 초등학생들을 성추행하고 납치하려고 했으나 여학생들이 눈치를 채고 도망쳐서 납치 미수로 끝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또한 해당 남성의 범죄 행각 중에는 2명의 여학생들을 동시에 유괴하여 성범죄를 저지른 기록도 4건이나 되었기에 양산 여학생 실종 사건이 해당 남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게 여겨졌다.

계속된 성범죄들의 범인은 동일인물로 추정되었으며, 양산경찰서의 정종도 경위는 범행의 특징을 볼 때 해당 성범죄들의 범인이 이 양과 박 양의 실종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2008년부터 무려 2년 5개월 동안이나 집요하게 일련된 성범죄 사건들의 범인을 추적한 끝에 2011년 마침내 40대 남성 현동주[14][15]를 검거했다.

현 씨의 알려진 성추행 행각을 살펴보면 2003년 1월부터 2010년 9월까지 범행을 저질렀는데, 2003년 1월에 처음 범행을 저지른 후 4년이 지난 2007년 4월에 두 번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첫 번째 범행과 두 번째 범행이 약 4년 3개월의 잠복기를 거쳐 발생했다. 즉 두 여학생이 실종된 시점인 2006년은 잠복기에 해당하는데, 성범죄 중 우발적으로 살인까지 넘어가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에 현 씨는 충분히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현 씨의 소행으로 알려진 28명의 피해자 이외에도 더 많은 피해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 양과 박 양 사건에 대해서도 현 씨에게 추궁했지만, 현 씨는 완강히 부인했다. 거짓말 탐지기 결과에도 진실 반응을 보였고 사건과 관련된 증거도 없었기 때문에 의심을 지우기 힘들지만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었다.

동일인물에 의한 소행이 아닐 경우 지역, 시기, 표적(미성년 여학생)이 모두 일치하기는 쉽지 않은 점, 초등학생~중학생 연령대의 소녀 실종자가 범죄에 휘말렸다면 성범죄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점, 납치 후 돈을 요구하는 위협전화가 전혀 없었던 점은 목적이 돈이 아니라 성범죄일 가능성이 높은 점, 현 씨의 범행이 매우 상습적인데 하필 이 시기 잠복기가 길고 검거에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밝혀진 범행 이외에 여죄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현 씨가 이 양과 박 양의 실종에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 여학생의 행방이 묘연하고 실종 순간을 목격한 명확한 목격자도 없는 데다가 시일도 워낙 오래 지나 더 이상의 수사는 어려운 상황이다.

2017년 기준으로 현 씨는 이 실종 사건 외에 다른 성추행 범죄로 이미 검거되어 2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앵벌이 목격담과 제3의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이 사건과의 관련성 없이 별개로 벌어진 약취유괴범죄일 가능성도 대두되었다.


4.2. 가출 가능성[편집]


가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쪽으로도 수사가 진행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양산시 웅상읍 일대는 주변 대도시인 부산울산 중심가까지 시내버스 한 번만 타면 3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갈 수 있는 위성도시이며, 두 대도시를 잇는 7번 국도가 웅상을 지나가고 있어서[16] 수많은 부산광역시 시내버스, 울산광역시 시내버스, 양산시 시내버스가 뒤섞여 지나가는 환경이다.[17] 마침 놀러나가기 적당한 토요일 오전이었으니 중학생인 이은영 양 정도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놀러 갔다 올 수 있다. 혹시 타 지역으로 멀리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위에 나온 11번 마을버스 외에 딱히 다른 버스를 탄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조사 결과 가출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여겨졌는데, 목격된 아이들의 행적을 보면 집에서 2km 가량 떨어진 다른 동네의 상가로 우선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린 뒤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가출했다면 집에서 나와 다른 동네에서 두어시간 머물다가 집 쪽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같은 방향으로 나왔다는 것인데, 이렇게 보면 가출 방법 치고는 동선이 너무 복잡하다.

또한 자발적으로 가출을 생각했다면 밖에서 오래 지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당시 두 여학생은 여분의 옷가지도 챙기지 않았고, 휴대폰을 집에 놓고 갔으며 컴퓨터도 곧 돌아올 것처럼 켜 놓고 나갔다. 게다가 가출을 결심했다면 돈을 넉넉히 들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두 여학생은 버스 요금을 제외하면 돈을 들고 외출하지 않았고[18] 지갑도 두고 나갔다. 사건 발생 전 마을버스에서 만났던 친구의 증언에서도 가출 직전으로 보이는 징후는 찾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미성년자의 경우 약간의 차비만 갖고 충동적으로 가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준비 부족으로 가출이 아닐 것이라는 의혹은 어른들의 생각이다.

강력반 X-파일 끝까지 간다 방영분에서 전문가는 가족과 평소 주변 인물의 진술을 토대로 가출 징후를 분석해 봤으나, 일기에 부정적인 글을 쓴다든가 가족과 다툼이 있다든가 하는 가출 징후는 전혀 없어서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고 다른 범죄심리전문가들도 가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는 중학생인 이 양의 주변인들이 이 양이 종종 '집을 나가고 싶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었다고 증언했다.[19]

그리고 가출이라면 우선 나이가 많고 비교적 성격이 적극적이었던 이 양이 주도했다고 가정하면 그냥 혼자 가출하거나 좀 더 믿음직한 사람과 하는 것이 보통이지 나이도 어린 데다 아무리 친하다지만 친동생도 아니고 가출 생활 중 부담만 될 박 양을 굳이 같이 데리고 나갔다는 말인데, 이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두 여학생 중 나이가 어린 박 양은 특히 겁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가출을 주도했을 가능성은 훨씬 낮게 보았다.


4.3. 생존했을 경우[편집]


하지만 백석대학교 범죄학과 이건수 교수는 이는 가출 사건이고 이 양과 박 양이 생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양과 박 양이 가출 후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리다가 자기도 비행 청소년→범죄자 루트를 타게 되었거나, 앵벌이 같은 집단에 계속 끌려다니면서 범죄의 도구에 이용되어서 이리저리 얽혀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자의든 타의든 가족과 연락을 못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혹은 이 과정에서 심각한 범죄 피해를 입거나 피폐해져 버려진 후 정신병원이나 복지시설에 입소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대한민국의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단서가 발견되면 조사를 하여 찾아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과거 정신병원과 복지시설에서 발생했던 인권유린 행위 등으로 몇 차례 전수 조사를 진행했음에도 실종된 두 여학생의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던 것을 감안해 보면 가능성이 낮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여러 이유로 해외로 팔려간 경우이다.[20] 이렇다면 생사 여부도 파악하기 어려우며 대한민국의 공권력으로 이들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해외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본인들의 의지가 중요해지는데 이 양과 박 양이 귀국하고 싶어하거나, 의지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추측도 장담하기 어렵다. 해외로 팔려간 이후 여러 이유로 엮인 것이 많아[21] 그 국가에 오래 살면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잃고 체념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실종된 이 양과 박 양은 현재는 그 나라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아졌고 어린 시절에 팔려 넘어갔기 때문에 한국어를 잊었을 가능성이 높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까지 잃었을 가능성도 있다.

언어와 생각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22] 게다가 실종 당시에 바로 해외로 팔려갔다면 두 여학생은 17년 동안이나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인데, 이 정도면 한국어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 셈이 된다. 심지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활성화된 현재도 청소년기에 해외 이민 후 몇 년 지나면 한국어를 잊는 경우도 있다.[23][24] 현재도 이 정도인데, 두 여학생이 실종된 2006년에는 인터넷이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만약 한국어를 접할 기회 자체가 거의 봉쇄되었다면 한국어를 잊어버리기에는 최적의 조건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어를 잊어가면서 점차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까지 희미해지고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정체성이 남아 있다고 해도 이미 그 나라의 생활에 적응했고 생활 기반이 형성되어 있는 등 얽혀 있는 일이 많기에 아무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게 되면서[25] 한국 귀국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을 여지도 있다. 게다가 만약 여러 이유로 그 나라에서 범죄와 잘못 엮여 있어 한국 귀국 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5. 이후[편집]


2010년대 중반에 양산 모처의 아파트 신축단지에서 인골 2구가 발견되었는데 그 인골들이 실종된 이 양과 박 양의 유골이라는 괴소문이 돌았다. 그 근거가 아파트 신축 공사를 할 당시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인골이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이 알고싶다 팀이 해당 공사장의 유물 발굴을 한 울산 문화재 관리당국에 수소문한 결과 그들이 발굴한 것은 청동기 시대의 가정과 식자재들과 생활 흔적, 그리고 조선시대 무덤이었고 뼈를 발견한 것은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2019년에 이 사건이 양산경찰서에서 경남경찰청 미제사건팀으로 이관되어 다시 처음부터 수사한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보를 원한다면 055-233-3356으로 제보하자.

그리고 두 여학생의 실종에 대해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제보를 받았으며 2019년 10월 12일에 방영했는데 이 방송에서 실종 당일 아이들을 목격했다는 중요한 제보자가 등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 참조. 하지만 방송 이후 후속 보도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별다른 성과는 없었던 모양이다.

다행인 것은 이 사건은 송혜희 실종 사건처럼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아, 새로운 단서가 나온다면 얼마든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강력반 X-파일 끝까지 간다에서 아이들의 현재 모습을 추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21년에 박동은 양의 어머니 정 씨가 다시 한 번 인터뷰에 참여했다. 딸이 실종된 지는 15년이 흘렀지만 언젠가 딸이 집으로 돌아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사를 가지 못하고 있으며, 사건이 일어난 2006년에 자신이 사용하던 휴대폰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5.1. 제3의 제보자, 그러나 놓친 골든타임[편집]


그런데,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 2006년 5월 13일 실종 당시 두 아이들을 봤다는 좀 더 구체적인 목격담을 진술한 제3의 제보자가 등장하였다. 해당 방송분은 2019년 10월 12일 그것이 알고싶다 1186회에서 방송되었다.

제3의 제보자는 한 성인 여성으로, 그도 아이들이 실종된 시간과 거의 같은 시간인 오후 2시대 쯤에 버스를 놓쳐서 아무도 없는 양산서창대동아파트 상가 앞 버스정류장에서 약 30분 뒤에 있을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신의 앞으로 버스를 타려는 듯한 아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서로 큰 소리로 대화를 했는데 '버스를 놓쳐 버렸잖아!' 같은 내용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버스를 놓쳐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짙은 녹색 기아 카니발 승합차가 아이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승합차 운전석에서 한 건장한 성인 남성이 창 밖으로 팔뚝을 내밀며 이 양과 박 양에게 '얘들아 차 놓쳤어? 너희들 내려가려면 태워줄게'라고 말하며 히치하이킹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괜찮다며 계속 거절했지만, 결국 반복된 유도 끝에 아이들은 승합차에 탔고 카니발 운전자는 아이들을 승합차에 태우고 떠나 버렸다고 한다. 또한 제3의 제보자가 목격한 당시 승합차의 상태는 어지간한 창문들이 안이 보이지 않게 진하게 선팅된 데다 아이들이 탈 때 열린 문 뒤쪽으로 검은 옷들이 가득 걸려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세탁소를 하는 사람인가?'라고 의심했지만 하필이면 옷들이 검은색이라 차량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혹시 해당 남성이 아이들을 몰래 납치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한다. 거기다 당시 제3의 제보자는 남성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다. 그나마 팔뚝의 굵기와 목소리에서 30~40대 정도의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는 점만 추론할 뿐이었다.

이 제보가 중요한 점은 정황상 강력반 X-파일 끝까지 간다에서 언급된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린 순간보다 조금 뒤의 시점이라는 것이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것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제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버스에서 하차했을 때 아이를 뒤따라 내렸다는 남성은 단순한 주민이 아니라 이 진옥색 승합차 운전자와 관련 있다는 전제 아래 추측해 본다면 유괴자와 관련된 바람잡이이거나 아이들을 미행하면서 직접 납치하는 사람에게 보고한 공범일 가능성도 있다.[26]

일단 취재진은 '짙은 녹색 카니발'이라는 단서로 주변을 수소문했지만 차 번호조차도 정보가 없어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제3의 제보자는 아이들을 목격한 당시에는 아이들이 승합차를 타는 모습을 보고 유괴당하는 상황인지를 알 수 없었으므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으나, 얼마 후 아이들이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신이 목격한 아이들이 유괴당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였다. 즉 해당 제보자는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 제보하기 훨씬 오래 전, 그러니까 실종 당일로부터 자신이 그나마 본 내용으로 몇 개월 뒤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겨우 그 정도의 증거로는 수사할 수 있는 것이 부족하다'며 더 자세히 말해 달라는 말만 전한 후 그 뒤로는 자신에게 다시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카니발 승합차 운전자와 위에서 언급된 현 씨는 동일인물인가? 현 씨와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 현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미성년자를 유인 납치했지, 승합차를 이용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승합차를 빌려 범행에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으니[27] 전혀 관련 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오히려 현 씨와 관련이 없거나 약취해서 앵벌이 조직으로 팔아넘겼을 가능성을 감안하면 현 씨와는 관련 없는 별개의 범죄자일 가능성도 있다.

제3의 제보자는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 시점인 2019년에 최면수사를 치렀다고 한다. 여전히 남성의 얼굴은 오리무중이고, 승합차에 탔던 두 아이들이 실종된 이 양과 박 양인지 100% 확신하기도 힘들었으나, 문제의 녹색 카니발 승합차의 차 번호 일부는 기억하였다고 한다.




5.1.1. 의문점: 왜 아이들은 다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을까?[편집]


위에서 언급했듯이 제3의 제보자는 그날 오후 2시대에 아이들이 상가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놓친 모습과 아이들이 한 남성이 운전하는 짙은 녹색 카니발 승합차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승합차를 타기 전, 둘은 이미 마을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의 상가에 한 번 갔다가 다시 돌아온 상태였다. 게다가 두 여학생이 살던 양산서창대동아파트 단지는 마을버스의 종점인 데다 아파트 단지로 연결되는 좁은 도로(소주로)가 끝나는 지점이며 아파트 단지 반대편에는 다른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아예 없었다. 즉 아이들을 태운 승합차는 아이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 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만약 제3의 제보자가 본 아이들이 이 양과 박 양이 맞다면, 둘은 몇 시간 전에 마을버스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가 두어시간 만에 아파트 단지로 되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약 30분~1시간 만에 또다시 같은 길을 통해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보자의 진술대로라면 두 여학생이 버스를 타기 위해 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소주대동아파트 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두 여학생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가 아닌 자발적으로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나갈 의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록 버스를 놓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승합차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 후에 완전히 실종되었다. 물론 두 여학생이 오전 일찍 다른 동네로 놀러 나갔다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 금세 다시 놀러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이런 것일 수도 있으나, 불과 30분~1시간 만에 왔던 길을 통해 다시 나갔다는 것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3의 제보자가 당시 아파트 단지 앞 버스정류장에서 목격한 카니발 승합차에 탄 아이들은 실종된 이 양과 박 양이 아닐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오후 2시 이후에 두 여학생을 목격했다는 제보들을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오히려 제3의 제보자가 목격한 아이들이 실종된 이 양과 박 양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오후 5시경에 웅상읍 중심가에서 두 여학생이 걸어가는 모습을 이 양이 다니던 유도 체육관의 언니가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근거로 추측해 보면 두 여학생이 오후 2시경에 아파트 단지에서 승합차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온 뒤 웅상읍 중심가까지 이동했을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1] 현재는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양산시 소주동이다.[2] 빠른년생[3] 1993년 2월 6일[4] 1995년 5월 1일[5] 이 양의 가족은 18층, 박 양의 가족은 1층에서 살고 있었다. 이 양의 할머니 최 씨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 양에게 친동생이 없다 보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생 박 양을 귀여워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6] 이 정류장은 웅진11번, 웅진15번, 웅진25번 마을버스의 종점이다.[7] 이 날은 주말이었지만 마을버스 기사는 평소에도 두 여학생이 통학 목적으로 평일에 정기적으로 같은 마을버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두 여학생의 얼굴을 사건 이전부터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정류장이 종점이었기 때문에 더 기억하기 쉬웠을 것이다.[8] 버스 CCTV는 2011년부터 보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9] 즉 이 양과 박 양은 1시 30분경 마을버스에서 내린 후 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상가 주변에서 계속 돌아다녔던 것이다.[10] 양산과 경남 고성은 둘 다 경상도 사투리가 통용되는 지역이다. 이는 두 여학생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발견된 곳(고성 공룡 엑스포 일대)에서 먼 지역 사람이 아니라는 정도의 근거만 된다.[11] 이 양의 아버지의 인터뷰에 의하면 한 번은 제보를 받고 인천까지 가던 도중 제보가 장난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중간에 돌아왔던 적도 있다고 한다.[12] 그중 양산서창대동아파트 입구로 연결되는 좁은 도로가 소주로이다.[13] 지금도 네이버 지도를 통해 확인해 보면 두 여학생이 살던 양산서창대동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좁은 길(소주로) 주변에 여러 공단들이 밀집해 있다.[14] 1963년[15] 강력반 X-파일 끝까지 간다에서는 김 모 씨(가명)로 소개되었다.[16] 2019년 4월 29일 부로 개곡교차로~용당교차로 구간의 통신사로가 개통됨에 따라 기존의 웅상 구간은 1028번 지방도로 격하되었다.[17] 다만 그 당시에는 양산시 시내버스는 현재에 비해서 배차시간도 굉장히 열악했고 다니는 버스 종류도 적었다. 현재도 양산시 시내버스의 배차간격이나 운영 대수는 부산과 울산의 시내버스와 비교하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18] 이 양의 경우 당시 새 휴대폰을 구입하려고 저축한 돈 20만 원 가량이 들어있는 은행 통장을 집에 두고 나갔으며 실종 이후 통장에서 인출한 기록도 없었고 추가 금융계좌를 개설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었다.[19] 실제로 이 양이 실종되기 얼마 전에 학교에서 진행한 면담에서도 '집에 있기 싫다', '가출하고 싶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20] 아래에서 언급되겠지만 우발적 납치가 아닌 해외로 인력을 넘기는 집단의 계획적인 납치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아니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두 여학생이 살던 양산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도 성남에서 잠시 발견되었다는 목격담이 있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면 최초 납치는 우발적이었으나 범인들(최초 납치 세력)이 자신의 범행에 뒷감당이 되지 않자 다시 다른 곳으로 그들을 넘겼는데 그곳이 하필이면 해외로 인력을 팔아넘기는 조직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실종 시기인 2006년에는 여권이 전자식이 아니라 사진 부착식이었이에 위조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만약 배를 통해 밀항을 했다면 여권조차 필요 없다. 10대 여학생 두 명을 어떻게 한꺼번에 밀항시키는 게 가능하겠냐 하겠지만 수면제를 먹인 후 납치했다면 가능하다. 과거 북한납북을 시킬 때 수면제를 먹였고 김정남암살할 때도 수면 성분의 약을 손수건에 묻혀서 살해했다.[21] 그나마 이 양과 박 양이 해외에서 혼자 산다면 그나마 가능하지만, 만약 해외에서 살면서 결혼했거나, 자식까지 낳았다면 그곳에서 평생 살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식으로든 한 번 자식을 낳아 가정을 이루게 되면 최소 수십년은 나라를 탈출하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이 점을 이용해 여성들을 납치한 후 강제 임신을 시키는 범인들도 있다.[22] 괜히 과거 일제민족 말살 통치기에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도 이유가 있다.[23] 그나마 가족들, 친한 사람들끼리 한국어를 사용한다면 잊어버릴 가능성이 적지만 이민을 간 나라의 언어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거나 가족들, 친한 사람들끼리도 한국어 대신 그 나라의 언어를 계속 사용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한국어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세월이 몇 년만 흘러도 모국어를 거의 잊어버리게 되면서 사실상 다시 언어를 배워야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 해외로 이민을 간 교포들조차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한국어를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교포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면 한국어로 말을 하다가 적절한 한국어가 생각나지 않아 그 나라 언어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아예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한국어가 거의 기억나지 않아 그 나라의 언어만 사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방송사들도 이들을 인터뷰할 때는 별도의 통역가를 동원하기도 한다.[24] 옛날 역사적 인물 중에서도 이런 예시를 들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10대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도미하여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20대 후반에서야 조선으로 귀국(다만 그전에 사업차 북간도에 잠깐 들러 이곳에 살고 있던 아버지 유기연과 어머니, 동생들과 재회한 적은 있었다. 이때 아버지가 "나는 네가 녹두 회사나 하라고 미국에 보낸 게 아니다. 더 큰 일을 하거라."라고 충고를 해준 건 유명한 이야기다.)했는데,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살다보니 한국어 말하기가 서툴러져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해졌었다. 역시 어린 나이에 일본 제국에 인질로 끌려간 영친왕은 일본어를 평상시 언어로 사용했는데도 혼자 있을 때마다 수시로 한국어를 중얼거리거나 글을 쓰는 등 한국어를 잊지 않아 해방이 되고 나서도 멀쩡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25] 일단 해외에 거주하면서 그 나라의 수도에 거주하지 않는 이상 한국의 외교 공관을 찾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26]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린 시간과 제3의 제보자가 아이들을 목격한 시간의 간격을 생각해 보면 더욱 가능성이 높은데, 상술했듯이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1시 30분 쯤이었고 당시 아이들 뒤로 한 남성이 따라 내렸으며, 그로부터 30분~1시간 가량 지난 2시대 쯤에 아이들이 승합차를 타고 남성과 함께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으니 범인 입장에서는 그 30분~1시간 사이에 아이들을 납치하기로 결심하고 승합차를 준비해 아이들에게 다가갔거나 버스에서 함께 내린 남성이 아이들을 미행하면서 승합차 운전자에게 전화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27] 실제로 현 씨는 10년 가까이 신분증을 위조하고 이름을 바꿔가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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