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옹

덤프버전 :

楊顒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로 자는 자소(子昭).

형주 양양군 양양현 사람으로 양의의 친척이며, 촉에 들어와 파군태수가 되었다가 승상 제갈량의 주부가 되었다. 제갈량이 주부의 문서를 건드리는 것을 보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는 법도가 있는 것이니 상하가 서로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집안일에 비유하거나 한나라 때 승상인 병길, 진평에 대한 일을 이야기하면서 이들이 직책을 분담시키는 체제(위분지체, 位分之體)에 통달했다며 제갈량의 업무가 매우 과중하니 혼자 작은 일까지 처리하지 말라고 충고해 제갈량이 그 말에 감사해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법도가 있는 것이니, 상하가 서로 침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명공(이 경우는 제갈량의 일)을 위해서, 집안일에 비유해서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노예에 경작을 행하게 하고, 노비에 취사를 조달하게 하고, 닭에 때를 알리게 하는 역을, 개에게 도둑으로 향해 짖는 역을, 소에 무거운 짐을 옮기는 역을, 말에 먼 곳에 가는 용무를 근무하게 하신다면, 각자의 일에는 공백이 없고, 필요한 것은 모두 이루어져, 유연하게 두 다리 뻗고, 베게를 높이 베고 잘 먹고 마시고 삽니다. 그런데 어느날 돌연, 자기 자신으로 그러한 일을 모두 해치기로 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탁으로 하지 말고, 자신의 체력을 써서, 이 번잡한 의무를 행하려고 한다면, 육체는 피로해 정신도 혼미하고, 결국 무엇 하나 완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집주인의 지혜가 닭이나 개, 노비보다 못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가장으로서의 법도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래서 옛사람들은 앉아서 도(道)를 논하는사람들을 왕공(王公)이라 했고, 작(作)하고 행(行)하는 자들을 사대부(士大夫)라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선제시절의 승상이었던) 병길[1]

은 길에 죽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소가 헐떡거리는 것을 보고 걱정했으니, 사람이 죽은 것은 지방관이 처리해야 할 일이고 소가 헐떡거리는 일은 농사와 기후에 관한 것으로 재상이 살펴보아야만 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문제(文帝) 시절의 승상 진평은 화폐나 곡물의 수량에 대해서는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는 담당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실로 병길과 진평은 통치의 체계에 통달했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명공에는 정치를 실시하기에 즈음해, 몸소 출납부를 조사하시고, 하루 종일땀을 흘려 오셔집니다. 너무 노동이 과중하지 않을까요."


이후 동조속이 되어 관리의 임명을 맡았는데, 양옹이 죽자 제갈량이 3일간 계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영사에서는 뇌굉을 잃고 연속에서는 양옹을 잃어 조정에 크나큰 손실이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혼자 작은 일까지 처리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모습이 제갈량이 북벌을 하면서 오장원에 주둔하고 있을 때 말하는 것으로 나온다.


2. 창작물에서[편집]


이상하게 각종 삼국지 판본에 양과(楊顆)라는 이름으로 오기 되는 경우가 많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양준혁으로 등장한다. 말 그대로 양(...)

남만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제갈양이 손수 교정을 보는 걸 보고 위분지체라는 말과 함께 밑 사람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승상이 모든 포지션을 혼자 소화하려고 한다면 팀이 제대로 돌아가겠냐고 충고했다. 이때 예시를 "돼지는 투수, 소는 포수, 개는 내야, 말은 외야"라며 야구선수를 예시로 든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17:17:52에 나무위키 양옹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丙吉: 邴吉: BC 100년경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