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사 명칭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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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논란의 시작
2.1. 보건복지부의 사전 브리핑
2.2. 법리해석과 여론전
2.3. 박근혜정부의 규제 기요틴
2.4. 의사를 한의사와 양의사로 나누어 불러야 하는가
2.4.1. 한의사들의 주장
2.4.2. 의사들의 주장
3. 양의사 명칭의 비하적 뉘앙스 소지
4. 양의사 명칭의 역사
4.1. 국내기록에 남은 양의사 표기
4.2. 조선왕조실록
4.5. 광복 이후
4.6. 판결문
4.6.1. 판결문에 사용된 양의사 표현
5. 여담


1. 개요[편집]


2015년, 박근혜 정부의 규제기요틴 과제 153건 때문에 한의사 면허가 있는 이들은 엑스레이초음파 의료기기 등 첨단의료기 전반을 사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게 되자, 의사를 양의사한의사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며 시작된 논란.


2. 논란의 시작[편집]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이하 ‘이 사건 기기들’)는 측정결과가 자동으로 추출되는 기기들로서 신체에 아무런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고, 측정결과를 한의사가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재판소

2014년 1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의견으로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등의 첨단의료기를 사용해 안질환을 진료한 행위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한다."하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가 한의사들이 일부 첨단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사실상 허가를 내린 것이다. 비슷한 무렵 박근혜 정부보건복지부에 각종 규제철폐를 검토하라는 '규제기요틴'을 요구, 사실상 정부의 허가 아래 2015년 상반기부터 한의사들이 첨단의료기기 사용이 허가되리란 전망이 나오자 한의사와 양의사 간 분쟁이 시작되었다.


2.1. 보건복지부의 사전 브리핑[편집]


헌법재판소가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한 지 한 달이 지나 2015년 1월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보건복지부가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을 하는 자리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엑스레이 및 초음파 기기는 논의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내용이 제기되어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되었다. 분명 헌재의 판결이 나온 직후엔 일부 허용을 예고했는데 한 달만에 전면금지를 선언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한의사에게 엑스레이초음파 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일부 언론사가 이를 보도하며 보건복지부의 어느 실장 한 명이 "한의사가 서양식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오진을 자주 한다더라.", "가뜩이나 비싼 한의사들의 진료비 청구에 장비사용비가 청구될 수 있다."하는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주장[1]을 담은 내용이 강조되어, 한의사협회와 의사협회 간 충돌이 시작된다.

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의사들 : "보건복지부랑 언론사에 돈 뿌렸지?"

의사들 : "증거 있어? 관청 발표나 따르시지?"

한의사들은 보건복지부의 상층부가 15년 1월 25일 열리는 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떨어질 떡고물을 노리고 의사협의 편을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당연히 의사들은 이를 부정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한의사와 의사 간 전형적인 알력다툼일 텐데,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에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국토교통부 고위직 공무원들이 대한항공의 눈치를 보거나 편의를 노골적으로 봐주었음이 알려졌기 때문에, 의사협회가 보건복지부를 매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사실이라며 인터넷을 타고 번졌다.

인터넷을 타고 일이 커지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번 발표가 확정이 아닌, 사전 브리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보건복지부는 규제철폐를 우선하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기요틴을 따른다.'는, 사전 브리핑과 반대되는 입장을 밝여 사태가 더욱 꼬여버린다. 허가한단 거냐, 안 한단 거냐?"

그런데 이때 헌법재판소가 재판 과정에서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을 일체 요구하지 않았고, 한의협의 의견을 해당 한의사가 선임한 로펌을 통해 전달받았다는 사실이 폭로되며 일이 또 꼬였다.

의사협은 "헌법재판소의 결정내용과 달리, 일부 첨단의료기기는 자동으로 조정되지 않고, 오차가 많은 경우도 있다."며 의료기기의 수치를 무조건 믿을 수 없다는 반박의견을 내놓았다. 즉 기계가 아니라, 기계가 측정한 수치를 해석하는 의사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2.2. 법리해석과 여론전[편집]


의사협회가 헌재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동안에 한의사협회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전 국민의 66%가 한의사의 첨단의료기기 사용에 찬성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2]

여론전의 선공을 뻇기자 의사협회는 한의사들이 첨단기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나 연수를 받는 커리큘럼이 없음을 강조하며 보건복지부가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또한 환자들에게 "만약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 진단 및 처방을 내릴 경우, 그 결과를 안전하다고 생각해 신뢰할 수 있느냐?"하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95%로부터 "신뢰할 수 없다."는 답을 얻었다.

이에 한의사들은 "양의사들도 엑스레이 찍는 전문인력을 별도로 고용한다."하며 의사협회의 공격을 반박하고,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 자격기준의 제10조항을 개정하라고 요구하며 강수를 이어나갔다.[3][4]


2.3. 박근혜정부의 규제 기요틴[편집]


한의협이 적극적인 개정을 요구한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규제철폐계획, 이른바 '규제기요틴 153건'이 있다.
연번
과제명
담당부처
검토의견
법령 여부
구분
95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 확대
복지부
대안마련
비법령
경제
153개 안건 중 95번째 안으로 등록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 확대는 의료협이 주장하는 "치료비가 오른다."는 것을 정면으로 무너뜨리는 내용이라, 발표 당시 업계에 충공깽을 안겨 주었다.

경제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해당 규제의 철폐과정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우선시해 "법을 따른다."는 이미지를 부각해서, 취업율을 올리고 추가적인 의료실 공사를 법률로 명기해 단기적으로 건설경기를 활성화하며, 고가의 첨단의료장비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자금회전을 통해 내수회복 등을 복합적으로 노리는 게 아니냐고 해석했다. 법률전문가들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다 해도, 해당 판결과정에서 한쪽 말만 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상 이를 확실히 해명하고, 좀더 넓은 시점에서 검토해야 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는 규제기요틴이 명시했듯 비법령 시안이고, 대안마련 차원에서 추가로 검토 중이라며 소극적으로 반응했다. 또한 현 시점에서 확정될 방안, 조건을 전부 만족하는 경우에 한해 허용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발표하며 사태를 진화했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한정사용허가 3대조건은 다음과 같다.
  • 보건위상상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을 것
  • 기기사용에 전문적 식견이 필요치 않을 것
  • 한의사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의료기기 교육을 수료했을 것
기기별 유권해석이 달라질 뿐 첨단의료기기 사용을 사실상 허가하는 내용이다. 의료협에겐 자기네 영업범위가 침해됐다고 인식하는 부분이다.


2.4. 의사를 한의사와 양의사로 나누어 불러야 하는가[편집]


규제기요틴 153을 통해 한의사도 첨단의료기기를 사용할 길이 열리자, 한의사협회는 '의사'라는 단어는 양의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의사를 한의사와 양의사로 나누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4.1. 한의사들의 주장[편집]


'의사'라는 단어는 큰 분류를 보자면 이미 외과의사, 내과의사란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은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즉, 상위개념으로 여러 하위개념을 포함하는데, 유독 한의사만 따로 표기하며 겉돌고 있으니 한의사도 의사로 하던가 의사를 양의사로 부르던가 하여 하위개념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또한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의사란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병을 고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정의대로라면 한의사와 치과의사도 의사의 범주에 들어감이 마땅하다. 네이버 국어사전 '의사'

요약하면 한의사라고 따로 부름 자체가 '의사'라는 상위개념 단어를 곡해하는 일이고, 양의사들이 의사라는 개념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삼아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2.4.2. 의사들의 주장[편집]


이에 대해 의사협회는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을 보편적으로 의사라 부르니 굳이 양의사로 바꿔야 할 필요가 없고, 옛 문헌에도 '양의사'보다는 의자(醫者)ㆍ의부(醫夫)ㆍ의생(醫生)ㆍ의사(醫士) 등 번역어를 사용했으며, '양의사'는 서양인 의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반론했다. 또한 의료법 제 2조는 '의사'를 의료와 보건지도에 종사하는 의료인으로 명시한다는 것이다.

의학은 물리/화학/생물학 등 기초과학들과 완전히 호환되는 응용과학의 한 분야이다.[5] 역사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에도 나름대로 발전시킨 과학 분야들이 있었지만,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물리학을 서양물리학(또는 양물리학)이라 부르지 않고, 화학을 서양화학(또는 양화학)이라 부르지 않는다. 한의사들 주장대로 의사를 양의사라고 불러야 한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과학자들은 양과학자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같은 한자문화권 나라들의 용례를 살펴봐도 한국의 의사에 해당되는 직업을, 일본에서는 医者(의자), 중국에서는 医生(의생)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양의사'에 해당하는) 洋医者나 洋医生 같은 단어는 사용빈도가 매우 낮거나 어색하게 여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한의학을 질병예방 및 치료의 주요방법으로 삼다가, 19-20세기에 서양문물을 접촉한 후 의학을 받아들인 역사를 공유하고 일본과 중국이 의사를 이렇게 쓰고 부름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의학의 역사도 우리나라보다 더 길고, 학문적 성과도 우리나라 한의학계보다 월등한 일본과 중국에서도 의사를 양의사라 부르자는 주장이 없다고한다

또한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은 서양에만 국한된 어떠한 학문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패러다임인 현대과학을 기반으로 한다. 정식 현대의학 교육을 수료한 사람만 (또한 그 사람들만) M. D. (의학사)라는 명칭을 이용할 수 있고, 한의사는 논문 등에 이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3. 양의사 명칭의 비하적 뉘앙스 소지[편집]


현대 한국어에서 접두사 양()은 '서구식의' 또는 '외국에서 들어온'의 뜻을 더한다.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예: 양파-파, 양송이-송이, 양동이-동이, 양복-한복, 양식-한식 등) 에는 대체로 중립적으로 사용된다. 간혹 인격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에 접두사로 사용하는 경우 비하적 뉘앙스를 지니기도 한다. 양놈-, 양공주-공주, 양갈보-갈보 등이 있다. 이외에 서양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요리사를 양식 요리사라고 하는 경우는 중립적인 사용으로 볼수있다. '양복을 짓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양복사라는 단어도 중립적인 사용으로 보여진다. 결과적으로 접두사 양이 붙어서 무조건적 비하적 표현이라 하기는 어렵다.

4. 양의사 명칭의 역사[편집]


밑에서 보듯이 문학작품이나 언론들이 한의사와 양의사를 구별할 때주로 사용되었다. 구한말에는 양의사나 한의사 모두 의사라는 명칭으로 불렸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서양의학이 대중화되어 '의사가 곧 서양의'로 의미가 바뀌었다. 현재에 와서는 대중적인 사용에서 양의사를 '의사'라고 칭하는 경우가 흔하다.


4.1. 국내기록에 남은 양의사 표기[편집]


양의사라는 단어는 1907년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에 등장한 이후, 1931년 발표된 염상섭의 삼대를 비롯한 각종 문학작품ㆍ언론 등에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서의(西醫)라는 표현이 나오는 등, 과거에 사용된 사례는 많은 편이다.


4.2. 조선왕조실록[편집]


牛痘之法, 創自西醫, 百試百驗, 萬無一失。

우두법서양 의학으로부터 비롯되어, 백 번 시험하면 백 번 효과가 있으니 만 번에 한 가지 어긋남이 없다.

조선왕조실록, 1883년(고종 20년) 9월 23일 원문



4.3. 대한제국 시기[편집]


최초로 의사를 규정한 ‘의사규칙(醫士規則)’은 1900년 1월2일 대한제국 내부(지금의 안전행정부)령 제27호로 제정되었다.

의사규칙에서 한의(漢醫), 양의(洋醫)는 구분이 없이 모두 의사(醫士)로 통칭되었다. 이토는 왜 그들에게 의사 면허를 주었는가?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9) 근대식 의사의 역사 여인석 외 ∶ 한국 의사면허제도의 정착과정 국립병원에서 양·한방 공동 진료를 했다고?

星煥憤歎時事, 稱病不爲仕進, 是日七時, 受解散軍隊之令於李秉武及梁性煥, 向本隊 (在昭義門內前宣惠倉 원주) 而來, 至該隊前小井傍, 歎曰吾在領軍之任, 以何顏何說對士卒而道解散之言乎, 我寧死當然, 㧞佩刀刺腹而絶, 適該營兵丁見之, 卽携入其營, 其弟聞之, 與西洋醫士急往救之, 已無及矣, 舁其屍而歸家, 諸將卒始知其死之所由, 擧皆悲憤, 又聞日本兵士來到之說, 一小隊尉官及兵卒攔出營外, 與日本兵接戰, 第二聯隊第一大隊 第一大隊營, (在南門內前宣惠倉 원주) 兵士相應至半時餘, 互相殺傷, 衆寡不敵, 我兵四散, 十時至南門外, 更欲襲擊日本兵舍, 警備南門之日本兵, 皆登門樓上放銃, 又發機關砲, 砲聲震盪於城內外, 我兵皆逃避, 十一時日本

大韓季年史卷之八 高宗皇帝/純宗皇帝, 光武十一年(1907년) 丁未(至八月)大韓季年史 下(한국사료총서 제5집)

당시 서양의학을 태서(泰西)의술이라고 한 기록이 있다. 근대 의료의 풍경·64 의학교의 설립

내과는 태서(泰西)와 동양 의술을 참호(叅互)하야 교수한다더라.

황성신문, 1899년 3월 8일자 기사



4.4. 일제강점기[편집]


조선총독부는 1913년 11월15일 ‘의사규칙(醫師規則)’, ‘의생규칙(醫生規則)’을 제정하고 1914년 1월1일부터 시행했다.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9) 근대식 의사의 역사

한의사와 양의사를 구분하고 한의사는 의사가 아닌 의생으로 격하했다. 일제는 의생 제도를 일본 본토는 제외하고 1901년부터 일제의 또다른 식민지 대만에서 처음 실시했다. 더욱이 일제는 법적 근거도 마련되기 전에 조선인 한의사들의 면허를 박탈하고 대신 ‘의업자(醫業者)’로 등록했다. 그 결과 조선인 면허 의사 수는 1911년 479명, 1912년 72명으로 급감했다.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9) 근대식 의사의 역사 일본 덕분에 조선인의 의료 수혜가 늘었다고?
면허가 분리되자 '양의사(洋醫師)'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의사는 한방의사와 양의사를 각々두어 환자의 소원대로 치료를 하는 것이 한 특색이 되리라한다

동아일보, 1921년 7월 11일자 기사


泰西醫學(태서의학)에도雖名稱(수명칭)은相異(상이)하나其實則同一(기실즉동일)인數多(수다)한區別(구...

동아일보, 1924년 4월 7일자 기사


한방의는 덕기를 따라 병원에 가서 양의들에게 자기의 진단을 개진하고 방문을 내보였다.

염상섭, 삼대, 1931년


양의(洋醫)원조(元祖) 박일근씨

매일신보, 1936년 1월 12일자 기사최초의 개업 의사 박일근은 누구인가?


洋醫師(양의사)에게보이면 돈이만히든다하야 漢醫師(한의사)에게 診察(진찰)을받으려한다.

동아일보, 1936년 3월 10일자 기사


洋醫(양의)가 본 한의학 " 양의학은 자연과학을 토대로 하여 발달한..."

강필모, 동아일보, 1937년 10월 9일자 기사


명치16년에 의사법을 제정하여 의사는 洋醫學(양의학)시험에 급제하여야 된다는 법률을 공포하야 한방의학의 세력을 억제하고 양의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던 것이다. 청년학도대학교수등은 초근목피학을 버리고 양의학을 연구하게되었으며 각지에 전문교육기관을 설치하여 연구발표하는데 반하여 한방의는 교육기관은 물론이오 연구발표할 기회까지도 없었다. 또 수입여하로 보더라도 한방의는 도저의 양의(洋醫)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동아일보, 1938년 6월 17일자 기사



4.5. 광복 이후[편집]


국민의료법의 제정 이후에도 양의, 양의사라는 표현은 언론, 문학작품, 논문, 판결문 등 여러 곳에서 사용된다.

한방 보호 대책 시급 洋醫(양의)만이 병고치는가? " 국회문교사분위에서는 보건부 제출의 의사법을 일축하고 동분위안을 채택하기로 되었다는데 ~~ 양의만을 위한 일방적인 법안을 기초한 까닭이라고 한다

동아일보, 1950년 3월 5일자 기사


양의사들이 반대하는「유사의료법안」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한 이들 맹학교 학생들은...

경향신문, 1966년 7월 8일자 기사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중의 한사람으로 독립운동과 개화운동에 앞장섰던 고徐載弼(서재필)박사기념비가 지난11월22일 미국「델라웨어」주「로스트리」공...

동아일보, 1975년 12월 18일자 기사


엄마는 아버지를 죽게 한 병이 대처의 양의사에게만 보일 수 있었으면 생손앓이처럼 쉽게 째고 도려내고 꿰맬 수 있는 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박완서, ≪엄마의 말뚝≫


한의학과 양·한의학 일원화에 대한 양의사의 인식도

가정의학, 이언숙 외 3명, 대한가정의학회 학회지, 1998년



4.6. 판결문[편집]


양의사인 원고가 식약청에서 허가받은 의약품도 아닌 봉독을 허가받은 일반의약품과 혼합하여 주사하는 행위는 과학적인 검증 내지는 식약청의 허가를 받지 아니한 비(비)의약품을 사용한 진료행위로서 이는 의료법 제53조 제1항 제1호, 동법시행령 제21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하는 진료행위'를 한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2002.12.04. 선고 2002구합10926 판결:항소취하(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양의사뿐만 아니라 한의사에게도 이 사건 측정기를 판매하여 온 점

광주지방법원 2009.07.01. 선고 2009노657 판결(의료법위반)

2015년 8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법원의 종합법률정보에서 검색하면, 위 예시 2건을 포함하여 양의사라는 단어가 쓰인 것은 5건이다.
보편적으로 한의사와 함께 지칭될때는 양의사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4.6.1. 판결문에 사용된 양의사 표현[편집]


판결문에 양의사라는 내용이 쓰이는 경우는 한의사와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의료 및 자격에 관계된 법령에선 보통 의사와 한의사로 구별하는데, 판결문에선 의사와 한의사를 구분하는 경우 양의사와 한의사로 표기했다.


5. 여담[편집]


'양약국'이라는 낱말이 1980년대 초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온 적이 있다. 약국에 대해 설명하면서 보통 우리가 아는 약국은 양약국이고 한약을 파는 한약방이 따로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는 같은 내용의 교과서에서 '양약국'만 '약국'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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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의학계의 주장은 오진이 늘어난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의료비 증가는 관청에서 조율할 부분이긴 한데, 양의학계는 의사에 비하여 한의사는 서양 의학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으므로 오진할 확률도 더 높다고 주장한다.[2] 하지만 설문조사 문항 자체가 편향의 여지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한의사들도 엑스레이, 초음파 등 현대의료기기 활용에 관한 교육을 받았으므로 사용할 수 있다."라고 묻거나 "발목을 다친 환자가 한의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양방 병의원에 방문해 엑스레이를 찍은 후 다시 한방 병의원에 와야 하므로 환자들에게 불편함이 있다."라고 묻는 식이었다.#[3] 대규모 개정이 아니다. 동법 제43조 2항에 의거, 관련 기기를 사용할 전문인력을 채용한다는 조항만 붙이면 이 점은 비교적 쉽게 해결된다.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쓸 수 있는 것도 43조 2항 덕이다.[4] 하지만 의사가 할 일은 엑스레이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임상 상태와 종합해서 '판독'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한의학계에서 관련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5] 이에 반해, 현재 대학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학문들 가운데 한의학과 호환이 되는 학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철학 중에서도 동양철학의 한두 갈래 정도를 들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