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지/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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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두산 베어스 소속 포수 양의지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아마추어 경력[편집]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부 부장 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이 야구팬이어서 야구 관람도 자주 가고 동네에서 야구도 자주 했었다고 한다.영상

광주 진흥고에서 정확한 송구 능력과 장타력이 돋보이는 타격으로 나름대로 촉망받는 포수였다. 하지만 동작이 굼떠 프로에서 크게 성공하기는 힘들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진흥고 3학년 당시 고향팀인 KIA에서 '대학에 진학하면 졸업 후 데려가겠다'라는 조건부 제안을 했으나,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 진출을 생각했던 양의지는 2006년 드래프트에 본인을 지명한 두산에 입단. 당시 '내가 왜 그래야 하지?'라 생각했다고 한다. 양의지의 회고에 의하면 고향팀에 입단하고자 KIA와 먼저 접촉했으나, 당시에는 KIA 구단이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탓에 계약 문제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선수와 팀의 궁합을 생각하면 자신은 두산이 잘 맞고, KIA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1] 기사

2006년 신인지명 당시 두산 구단에서도 주전 포수 홍성흔의 부상이 잦아지면서 포수 뎁스를 채워놓자는 의미에서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했다. 따라서 팬들 역시 큰 기대는 갖지 않았고 당시 1차 지명자인 남윤희의 계약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3. 두산 베어스 1기[편집]



파일:두산양의지No25.png

두산 베어스 No.25
양의지
梁義智 / Yang Eui-Ji


파일:48051445_2086019441451682_1692262559672958976_n.jpg

2015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배영섭을 루킹삼진으로 잡아내며 14년만의 우승을 확정짓고 동료들과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장면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의지/선수 경력/두산 베어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우승 공약을 묻는 질문에... 그냥 우승 시켜드리겠습니다

[2017 KS 티저] 내일, 드디어 내일 #한국시리즈[2]


... 그리고 2019년 4월 개막전, 옆에 계신 장내 아나운서님의 목소리로 꼭 듣고 싶습니다. 두산베어스 포수 양.의.지!

2018 시즌 종료 후 FA를 앞두고 있는 당시 양의지에게 한 팬이 보내는 메시지 中

[두산베어스 전광판 영상] '씰룩' 양의지를 웃게 한 팬분들의 간절한 외침! (08.08)


2019년 두산을 떠나기 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강민호와 더불어 2010년대 후반 KBO 최고의 포수로 활약함과 동시에, 두산 베어스의 부동의 주전 포수이자 김현수와 더불어 두산 베어스의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3]로 자리매김한 영광의 두산 베어스 시절. 양의지의 FA가 다가왔을 때 당시 두산 팬들이 보여준 양의지에 대한 사랑은 양의지가 두산 팬들에게 있어 어떠한 존재였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4]

또한 이만수-김동수-박경완-강민호-양의지로 이어지는 KBO 리그 최상위 포수 계보의 5번째 주자로 활약했으며, 이 시절 양의지는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기록만 해도 4회나 수상 할 정도로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골든글러브 외에도 2010년 신인왕과 2016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두산의 독보적인 선수로 떠올랐으며, 2015년 한국시리즈,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을 차지하는 것과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3.1. 1차 FA[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의지/선수 경력/FA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NC 다이노스[편집]


2018년 12월 11일 NC 다이노스4년 총액 125억 원에 계약을 맺으며 린의지가 현실이 됐다. 계약금 60억, 연봉 총액 65억의 무옵션 계약으로 2017년 이대호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KBO 리그로 복귀할 때 받은 4년 150억에 이은 2위이자 유턴파를 제외한다면 역대 1위이며, 같은 ML출신 김현수가 LG로 이적할 때 받은 4년 115억보다 높은 금액이다. 또한 2018년 강민호가 삼성으로 이적할 때 받은 4년 80억을 아득히 뛰어넘는 역대 포수 최고액으로, 포수 포지션 프리미엄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원래 12월 중에 창원시에서 공식 입단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새해와 함께 새 식구를 맞이한다는 의미로 2019년 1월 8일에 공식 입단식을 가지기 전 창원시청에서 허성무 창원시장과 인사를 나누고 2019년 새로 개장할 창원 NC 파크를 둘러보면서 입단식을 가지기로 했다. 대신 계약 당일 NC 다이노스 공식 채널을 통해 팬들에게 먼저 인사를 전했다. 마침 두산에서 쓰던 25번이 조평호의 방출로 비어 있어 NC에서도 25번 등번호를 달고 뛰게 되었다.

이로써 NC 다이노스김태군의 경찰청 입대 후 약점으로 꼽혔던 포수 자리를 한 방에 해결했다. 엠스플뉴스에서는 NC가 크리스티안 베탄코트를 영입할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NC의 양의지 영입에는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을 했으나, NC는 포수 보강의 의지를 드러냈다. 영입 직후 김종문 단장이 "베탄코트 영입은 양의지와 관계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고, 바로 다음 날 크리스티안 베탄코트를 100만 달러에 영입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이는 사실이 되었다. 이로써 양의지는 2019 시즌은 베탄코트와 돌아가면서 포수와 지명타자로 쓰일 가능성이 커졌다. 경찰 야구단의 선수 선발 중단 결정으로 2019년 8월 전역 전까지 실전 공백이 발생하게 된 前 주전 포수 김태군의 입지만 묘하게 되었다.[5] 이동욱 신임 감독은 양의지와 김태군의 공존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한편 양의지의 NC 다이노스행이 공식 발표되자 두산 베어스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김태룡 단장은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사실상 금액 차이를 돌려 말한 것.[6][7] 이러한 상황에서 김 단장의 사퇴 요구부터 팀 해체 드립까지 두산 베어스 팬들의 김 단장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산은 최근 5년 내 이종욱, 손시헌, 민병헌, 김현수 등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줄줄이 보냈으며 "이번에는 진짜 잡는다"고 언플을 제대로 때렸기 때문이다.[8] 서울 소속 팀과 지방 소속 팀의 입지조건, 원 소속팀과 낯선 타팀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금액 차이가 꽤 컸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한편 2018년 12월 18일에는 양의지의 FA 보상선수로 투수 이형범이 지명되었다.


4.1. 2019 시즌[편집]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자 (2019)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의지/선수 경력/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9 시즌 공인구 반발력 감소로 많은 중장거리 타자들의 성적이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9] 팀의 4번 타자로서 나성범이 빠진 NC 다이노스 타선을 이끌었다. 옆구리 혈종으로 한 달간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2019 시즌 sWAR 6.69를 기록하며 양현종, 김하성에 이은 리그 3위를 기록했으며, 타율, 출루율, 장타율 3관왕을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특히 이번 시즌 양의지의 타격 1위는 1984년 이만수 이후 35년 만에 나온 포수 타격 1위.[10]

시즌 기록은 390타수 138안타 20홈런 68타점 61득점 48볼넷 43삼진 타출장 .354/.438/.574 OPS 1.012 wRC+ 179.8. 리그에서 유일하게 3-4-5의 슬래시 라인을 그린 타자이자 유일하게 OPS 1을 넘긴 타자로 남았다. 시즌 종료 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는 347표 가운데 316표를 쓸어담으며 개인 5번째 골든 글러브를 손에 넣었다.


4.2. 2020 시즌[편집]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자 (2020)

파일:photo_161123231719.jpg

한국시리즈 5차전 승부에 쐐기를 박는 투런포를 친 뒤 포효하는 양의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의지/선수 경력/202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올시즌 성적은 130경기 528타석 151안타 33홈런 124타점 67 4사구, 타율 0.328 출루율 0.400 장타율 0.603 OPS 1.003 wOBA 0.432 wRC+ 153.3 sWAR 6.27 WPA 3.68. 3시즌 연속 OPS 1, 순장타율 2할, wOBA 4할, wRC+ 150을 넘기며 커리어하이를 달성하고, 리그 최고의 포수를 넘어 리그 최고의 우타자로 군림했다. 그야말로 125억이 양의지 값을 못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성적이다. 여기에 팀 창단 후 처음으로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끈 데다가 한국시리즈 MVP까지 양의지의 몫이 되며 그야말로 NC 다이노스 팀 창단 이래 에릭 테임즈와 더불어 최고의 영입이라는 칭호가 당연한 수준이다.

여기에 타석 대비 홈런비율이 무려 6.25%를 찍었는데 국내 타자 1위, 외국인 포함해도 로베르토 라모스, 멜 로하스 주니어 다음이다. 그러면서도 BB/K가 0.98로 리그 최고급의 선구안을 보여주고 있다. 이 추세로 커리어를 몇년만 더 쌓아간다면 이만수, 박경완 다음가는 역대 최고 포수 자리는 물론이고 그 둘을 뛰어넘을 가능성까지 존재한다.[11]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MVP 포디움에 들었지만 올해는 멜 로하스 주니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2년 연속 MVP 2위를 차지한건 덤. 그리고 개인통산 6번째, 3년 연속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고, 역대 골든글러브 사상 최다 득표율 99.4%를 기록했다.[12]


4.3. 2021 시즌[편집]


이번 시즌에도 KBO 최대의 베이징 키즈 세대 라이벌인 이정후-강백호, 본인과 같은 베테랑 선수들 중에서는 최정과 함께 리그 최고의 타자 수준의 성적을 기록중이다. 무엇보다 클러치 능력이 엄청난데, 전반기에만 WPA 5를 찍었다.

타격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잔부상으로 포수 수비에 어려움이 있어 지명타자 출장 비중이 높아졌고, 어쩌다 포수 수비에 투입되더라도 다소 떨어진 폼을 보였던 건 아쉬운 점.[13] 물론 지명타자로서도 역대급 타격 성적이라 큰 하자는 아니고, 시즌 후 생애 처음으로 지명타자 부문 KBO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4.4. 2022 시즌[편집]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자 (2022)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의지/선수 경력/202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초반 코로나 확진과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인해 예년에 비해 부진하며 우려를 낳았으나, 시즌 중반부터 서서히 폼을 끌어올렸고, 후반기 시작 후 약진을 거듭하며 장성우에게 빼앗겼던 포수 OPS, WAR 1위를 재탈환했다. 그리고 이 시즌이 NC 다이노스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4.5. 2차 FA[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의지/선수 경력/FA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두산 베어스 2기[편집]



두산 베어스와 FA 계약 직후의 사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의지/선수 경력/두산 베어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2023031020090957407_l.jpg

2023 WBC 한일전에서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려내는 장면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의지/선수 경력/국가대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수상[편집]


  • 한국시리즈 우승 3회 (2015, 2016, 2020)
  •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7회 (2014, 2015, 2016, 2018, 2019, 2020[14], 2022)
  •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2021)
  • 한국시리즈 MVP 2회 (2016, 2020)
  • 신인왕 (2010)
  • 타율 1위 (2019)
  • 장타율 1위 2회 (2019, 2021)
  • 출루율 1위 (2019)
  • 타점 1위 (2021)


8. 연도별 성적[편집]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6
두산
1군 기록 없음
2007
3
1
.000
0
0
0
0
0
0
0
0
0
.000
.000
2008
군복무 (경찰 야구단)
2009
2010
127
374
.267
100
14
1
20
68
48
4
40
8
.348
.471
2011
119
376
.301
113
14
3
4
46
43
3
44
3
.375
.386
2012
122
359
.279
100
22
1
5
27
39
1
37
10
.361
.387
2013
114
311
.248
77
19
0
7
57
37
6
36
8
.338
.376
2014
97
296
.294
87
23
1
10
46
40
4
24
9
.360
.480
2015
132
442
.326
144
27
0
20
93
70
5
39
24
(1위)
.405
.523
2016
108
332
.319
106
17
0
22
66
66
2
40
12
.404
.569
2017
111
347
.277
96
15
0
14
67
47
1
43
12
.373
.441
2018
133
439
.358
(2위)
157
29
1
23
77
84
6
45
13
.427
(2위)
.58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9
NC
118
390
.354
(1위)
138
26
0
20
68
61
4
48
15
.438
(1위)
.574
(1위)
2020
130
461
.328
151
26
1
33
(4위)
124
(2위)
86
5
46
14
.400
.603
(2위)
2021
141
480
.324
156
29
2
30
(5위)
111
(1위)
81
2
69
11
.414
(4위)
.581
(1위)
2022
130
427
.283
121
24
0
20
94
61
3
60
13
.380
.48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출루율
장타율
2023
두산
129
439
.305
134
23
0
17
68
56
8
57
11
.396
.474
KBO 통산
(15시즌)
1714
5474
.307
1680
308
10
245
1012
819
54
628
163
.390
.501

[1] 양의지는 프로 입단 이후 포수로서 스승을 잘 만났기로도 손에 꼽힌다. 타격에서는 경찰청 시절 유승안 감독이 작정하고 만졌고, 수비에서는 두산 배터리 코치로 강인권(현 NC 감독)과 김태형(전 두산 감독)을 만나 호되게 굴렀다. 여기에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 제대로 꽃을 피운 것이다. KIA에 갔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은 실제로도 과장이 아닌 셈이다.[2] 그러나 두산은 1차전에서 승리 후 KIA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3] 두 선수 모두 잔류했다면 각각 50번, 25번의 영구결번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양의지는 두산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영구결번은 사실상 확정에 가깝다.[4] 위의 2번째 유튜브 영상링크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5] 김태군은 전역 후 정세영 기자와 가졌던 전화 인터뷰에서 양의지의 이적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을 추스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고.[6] 옵션 포함 120억을 배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NC에서 무옵션 125억을 제시하니...[7] 두산은 양의지의 이적에 따른 공백을 포수진의 세대교체를 통해 극복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8] 특히나 상기한 4명은 그나마 공백을 최대한 메워줄 대체자들이 많으니 걱정이 없었다 쳐도, 양의지포수임에도 엄청난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감독이라고 불리었을 정도로 팀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한 포수였기 때문이다.[9] 2018 시즌과 비교해 장타율(.585→.574)이나 홈런(503타석 23개→459타석 20개) 등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다. 물론 잠실에서 벗어난 영향도 있겠지만 2018 시즌까지 30~40홈런을 뻥뻥 쳐내던 타자들이 2019 시즌 들어 30개는 고사하고 20개를 넘기는 것조차 버거워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수준.[10] 이만수칼럼을 통해 후배 포수의 타격왕 등극을 축하해 주었다.[11] 현재 양의지의 누적 WAR은 48승으로, 이만수, 박경완과 약 20승 차이가 난다. 2018년부터 강민호가 에이징 커브로 인해 성적 부침이 생긴것과 반대로 양의지는 2018년부터 전성기 이상의 성적을 뽐내고 있다. 올 시즌 만큼의 타격을 3~4년만 더 보여주면 그들에 비견될 누적 성적이 나올 것이며, 몸관리를 제대로 해서 30대 후반까지 최소한의 비율 및 누적 기록만 만들어준다면 포수로서 1600경기 이상을 출장하고 누적 기록을 저 둘 이상으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12] 2표 차이로 골든글러브 사상 첫 만장일치에는 실패했다.[13] 하술하겠지만 대표팀에서의 부진도 리그에서는 수비를 별로 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풀타임 주전 포수로 굴려진 데 따른 부담이 작용했을 거란 분석이 많다.[14] 342표 중 340표를 얻으며 골든글러브 역대 최고 득표율(99.41%)을 기록했다. 종전 기록은 2002년 지명타자 부문 마해영(99.26%) 이었으며# 역대 최다 득표자는 2007년 이종욱(397표 중 350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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