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충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수나라의 추존 황제.
홍농(弘農) 화음(華陰) 사람으로 남북조시대 서위와 북주의 대신이었다. 12대장군 중 한 사람으로서 대사공과 수국공(隨國公) 작위를 받았으며, 장남인 양견이 수나라를 건국하자 태조(太祖) 무원황제(武元皇帝)로 추존되었다.
2. 조상[편집]
후한의 태위 양진(楊震)의 후예라고 한다. 북위의 북변 6진 중 하나인 무천진(武川鎮) 출신으로 영원대장군 양정(楊禎)의 아들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양렬(楊烈)은 북위때 태원군태수를 지냈으며 양렬의 증조할아버지 양현(楊鉉)은 북연의 북평군태수를 지냈고, 할아버지 양원수(楊元壽)가 북위 초기 무천진으로 이주했다.
3. 생애[편집]
양충은 북위 말기 권신 이주영(爾朱榮)의 친족인 이주도율(爾朱度律)의 휘하에서 군을 이끌었다. 같은 동기로는 북위가 서위와 동위로 분열할 때 함께 서위에 가담해 실력자가 된 위국공(衛國公) 독고신(獨孤信)이 있었다.[1] 양충은 우문태(宇文泰)를 따라 서위를 건국하는 데 공헌하여 서위의 대승상이 된 우문태에게 중용되었다. 이후 공을 세워 거기대장군이 되었다. 북주 건국 이후 양충은 원수로 임명되어 양찬, 이목, 왕걸, 전홍, 모용연 등의 10여 명의 대장을 이끌고 북제를 공격하여 20여 개 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돌궐(쾩튀르크)의 대군 100,000명이 진양(晉陽)에 쳐들어오자 맞아 싸워 격퇴했다. 공적을 인정받아 12대장군 수국공(随國公)에 봉해졌다.
568년 양충은 병으로 쓰러져 수도 장안으로 돌아왔으나, 낫지 못하고 병사했다. 향년 62세였으며 뒤를 이어 아들 양견이 대장군과 수국공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4. 둘러보기[편집]
[1] 독고신의 딸 독고씨(獨孤氏)가 양충의 아들 수문제 양견의 아내였던 문헌황후(文獻皇后)였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19:11:30에 나무위키 양충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