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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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로고
구단 로고
뉴욕 양키스
New York Yankees
창단
1903년(121주년)
연고지
뉴욕주 뉴욕
연고지 변천
뉴욕 (1903~)
구단명 변천
뉴욕 하이랜더스 (New York Highlanders, 1903~1912)
뉴욕 양키스 (New York Yankees, 1913~)
소속 변천
아메리칸 리그 (1903~)
- 동부 지구 (1969~)
홈 구장
힐탑 파크 (Hilltop Park, 1903~1912)[1]
폴로 그라운즈 IV (Polo Grounds IV, 1913~1922)[2]
구 양키 스타디움 (Yankee Stadium, 1923~1973 / 1976~2008)[3]
셰이 스타디움 (Shea Stadium, 1974~1975)[4][5]
양키 스타디움 (Yankee Stadium, 2009~)[6][7]
구단주
양키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Yankee Global Enterprises)[8]
사장
랜디 르빈 (Randy Levine)
단장
브라이언 캐시먼 (Brian Cashman)
감독
애런 분 (Aaron Boone)
역대 한국인 메이저 선수
박찬호 (2010)
최지만 (2017)
박효준 (2021)
역대 한국인 마이너 선수
박찬호 (2010)
박효준 (2015~2021)
최지만 (2017)
역대 한국계 메이저 선수
롭 레프스나이더[9] (2015~2017)
역대 한국계 마이너 선수
대니 오[10] (2012~2015)
롭 레프스나이더 (2012~2017)
로컬 경기 중계
YES Network (Yankees Entertainment & Sports Network)
약칭
N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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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기록
월드 시리즈
(27회 / 최다 우승)
1923, 1927, 1928, 1932, 1936, 1937, 1938, 1939, 1941, 1943, 1947, 1949, 1950, 1951, 1952, 1953, 1956, 1958, 1961, 1962, 1977, 1978, 1996, 1998, 1999, 2000, 2009
아메리칸 리그
(40회 / 최다 우승)
1921, 1922, 1923, 1926, 1927, 1928, 1932, 1936, 1937, 1938, 1939, 1941, 1942, 1943, 1947, 1949, 1950, 1951, 1952, 1953, 1955, 1956, 1957, 1958, 1960, 1961, 1962, 1963, 1964, 1976, 1977, 1978, 1981, 1996, 1998, 1999, 2000, 2001, 2003, 2009
지구
(20회 / 최다 우승[11])
1976, 1977, 1978, 1980, 1981[12], 1996,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9, 2011, 2012, 2019, 2022
와일드카드
(9회)
1995, 1997, 2007, 2010, 2015, 2017, 2018, 2020, 2021
포스트시즌 진출

[ 펼치기 / 접기 ]

팀 컬러 / 유니폼

[ 펼치기 / 접기 ]
팀 컬러
미드나잇 네이비블루 회색 흰색
유니폼
파일:뉴에라 뉴욕 양키스 어센틱 캡.png
파일:나이키 뉴욕 양키스 어센틱 저지 홈.png
파일:나이키 뉴욕 양키스 어센틱 저지 어웨이.png
Cap
Home
Away

월드 시리즈 우승 연혁

[ 펼치기 / 접기 ]
1923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22
뉴욕 자이언츠

뉴욕 양키스

1924
워싱턴 세네터스
1927년 / 1928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2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뉴욕 양키스

1929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32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3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뉴욕 양키스

1933
뉴욕 자이언츠
1936년 / 1937년 / 1938년 / 1939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35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뉴욕 양키스

1940
신시내티 레즈
1941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40
신시내티 레즈

뉴욕 양키스

194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43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4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뉴욕 양키스

194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47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4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뉴욕 양키스

1948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49년 / 1950년 / 1951년 / 1952년 / 1953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48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뉴욕 양키스

1954
뉴욕 자이언츠
1956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55
브루클린 다저스

뉴욕 양키스

1957
밀워키 브레이브스
1958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57
밀워키 브레이브스

뉴욕 양키스

1959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61년 / 1962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60
피츠버그 파이리츠

뉴욕 양키스

196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77년 / 1978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76
신시내티 레즈

뉴욕 양키스

1979
피츠버그 파이리츠
1996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9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뉴욕 양키스

1997
플로리다 말린스
1998년 / 1999년 / 2000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1997
플로리다 말린스

뉴욕 양키스

2001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2008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201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714 - (1927년, 155경기 110승 44패 1무)
최다 승
114승 - (1998년, 162경기 114승 48패)
최다 패
103패 - (1908년, 155경기 51승 103패 1무)
최다 관중
4,298,655명 - 2008년
최고 계약
$360,000,000 - 2023년 애런 저지

1. 개요
2. 위상
4. 이모저모
4.1. 라이벌들
4.1.1.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라이벌리
4.2. 스타
4.2.1. 타자
4.2.2. 투수
4.2.3. 기타
4.3. 유니폼
4.4. 용모 복장 규정
4.5. 자체 중계 채널
4.6. 홈 구장
4.7. 사인 훔치기 스캔들
4.8. 영구결번
4.9. 강팀의 대명사
5. 기록
6. 계약 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6.1. 트리플 A
6.2. 더블 A
6.3. 싱글 A
6.3.1. 하이 싱글 A
6.3.2. 로우 싱글 A
6.4. 루키
7. 40인 로스터 목록
8. 관련 링크


1. 개요[편집]


"You know why the Yankees always win, Frank?"

"'Cause they have Mickey Mantle?"

"No, it's 'cause the other teams can't stop staring at those damn pinstripes."

"프랭크, 왜 양키스가 항상 우승하는지 아니?"

"미키 맨틀이 있어서요?"

"아니, 저 망할 놈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이 상대팀의 기를 꺾어버리기 때문이야."[13]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中


MLB아메리칸 리그/동부 지구 소속 구단. 연고지는 뉴욕. 홈구장은 양키 스타디움. 팀명인 양키스는 뉴욕에 네덜란드계 이민자가 많은 데서 유래되었다.[14]

2. 위상[편집]


월드 시리즈 우승 27회, 아메리칸 리그 우승 40회,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우승 20회, MVP 22회 등, MLB와 야구계를 넘어서 이견이 없는 전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이다. 우승 횟수 27회는 2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11회)[15]와 격차가 상당한 최다 기록이고[16] 미국 4대 스포츠를 통틀어도 최다 기록이다.[17]

우승 기록에 걸맞게 승패 마진도 뛰어난데 아메리칸 리그 소속 팀 중에서 2022년 기준으로 유일하게 10,000승을 달성한 팀이기도 하다.[18] 통산 승률 역시 0.570으로 메이저리그 30팀 중 1위이다.[19] 창단 이후 통산 121시즌 동안 5할 승률에 실패한 시즌은 단 21시즌뿐인데, 특히 1926년부터 1964년까지 무려 39년 연속 5할을 찍은 적이 있으며, 최근 5할 승률에 실패한 시즌은 1992년으로, 그 이후 2022년까지 30년째 5할 승률을 달성하고 있다.[20] 그 말은 즉슨 브라이언 캐시먼 체제에서 5할 실패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 100승 시즌도 무려 21시즌으로 2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9시즌)보다 2배 이상 많다. 그에 반해 반대로 100패 시즌은 단 2번 있었는데, 각각 1908년, 1912년으로 양키스라는 이름을 쓰기 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21] 또한 포스트시즌 통산 승률도 .582로 역대 2위에[22] 월드 시리즈 진출 시 승률도 0.675로 높으며, 유일하게 4년 연속, 5년 연속 우승 달성에 성공한 구단이다.

메이저 리그에서 제일 인기 있는 구단이자, 악의 제국(The Evil Empire)[23]이라는 별명을 가진 최고 재력의 팀이다.[24][25]야구를 넘어 농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미식축구댈러스 카우보이스 등과 함께 세계에서 인지도와 상품 가치가 가장 높은 스포츠 구단 중 하나로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 중 항상 TOP 5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또한 '미국의 팀'(AMERICAN'S TEAM)이라는 지위를 놓고 NFL댈러스 카우보이스와 경합을 벌이고 있다. 때문에 두 팀은 안티가 가장 많은 팀들 중 하나기도 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타자 친화적인 구장을 홈 구장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타자 쪽에서 많은 레전드들을 배출한 구단이며,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와 감독이 무려 52명이나 이 팀을 거쳐가기도 했다.[26] YES Network와 같은 새로운 사업 모델로 메이저리그의 시장을 개척하는 데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심지어 2012년부터 양키스란 이름으로 향수까지 시판되고 있다.[27]

3.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뉴욕 양키스/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이모저모[편집]



4.1. 라이벌들[편집]


화려한 역사만큼 라이벌들도 많다. 가장 잘 알려진 라이벌들이라면 우선 과거 뉴욕 자이언츠브루클린 다저스. 과거 자이언츠와 다저스가 뉴욕 지역에 있을 당시, 초창기 양키스가 갓 탄생했을 때는 홈 구장도 없어 뉴욕 자이언츠의 홈 구장에 더부살이했지만 양키스가 압도적인 성적과 인기로 인해 자이언츠와 다저스의 인지도를 밑으로 밀어내자 두 팀이 연고지를 캘리포니아 쪽으로 옮겼을 정도로 두 팀과 복잡하게 얽혔다. 자이언츠와 다저스가 내셔널 리그,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이기 때문에 인터리그가 아니면 자주 만날 일은 없지만 큰 무대나 시범 경기에서 만났다 싶으면 1950년대를 기억하는 나이 지긋하신 올드 팬들이 주축이 되어 양 팀과 양 팬덤은 모두 전투력이 상승한다.

물론 대등한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자이언츠와 다저스가 양키스에게 정말 지독하게 당했다. 자이언츠와 다저스 두 팀이 양키스에게 헌납한 우승은 무려 13회. 2020년 기준으로 13회 우승 기록은 양키스 외엔 없다. 자이언츠는 명장 존 맥그로가 이끌던 시절 양키스를 2년 연속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 이후 5번 만나 5번 모두 패배했다. 다저스는 한술 더 떠 월드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11번이나 만나 8패를 했다. 정규 시즌 인터리그 전적도 좋지 않은 건 덤. 월드 시리즈에 한 번 가는 데 십수 년, 혹은 수십 년 공백기가 흔한 메이저리그에서, 똑같은 상대에게 자그마치 8번 우승을 내줬다는 게 얼마나 정신이 아득해지는 경험인지 보통 팬들로서는 상상이 안 될 정도이다. 그 참혹한 역사는 1941, 1947, 1949, 1952, 1953년, 총 5차례 월드 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 모두 패배하며(...) 절정을 이루었다.

1955년에는 다시 만난 지겨운 양키스를 마침내 꺾었는데, 이게 다저스의 첫 우승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때 양키스 홈 관중이 다저스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양키스의 포수 요기 베라는 아예 다저스 클럽하우스까지 찾아가 축하해주며 30분 동안 수다를 떨었을 정도.[28][29]

드디어 지긋지긋한 양키스와의 악연을 끊나 싶더니 바로 다음해인 1956년에 또다시(...) 양키스를 만나 준우승을 추가한다. 이때는 다저스가 양키스의 돈 라슨에게 포스트시즌 사상 최초, 월드 시리즈 유일의 퍼펙트 게임을 헌납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대표적인 투수 왕국이 다저스이고 대표적인 타자 왕국이 양키스라 할 수 있는데, 역사적인 월드시리즈 첫 퍼펙트 게임을 오히려 양키스가 다저스를 상대로 기록한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같은 뉴욕 연고지인 뉴욕 메츠와도 라이벌이라면 라이벌이지만 구단 역사와 성적, 인지도 면에서 양키스가 워낙 압도적이라 메츠 혼자 일방적으로 라이벌로 여기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 인터리그 경기인 서브웨이 시리즈 등을 통해서 꾸준히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가는 중이며, 2021년 새 구단주 스티브 코헨이 팀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하며 2022년부터는 양키스와 투자 전쟁을 벌이는 등 다시금 라이벌리가 불타올랐다.

또한 시카고 컵스 역시 양키스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2018년 기준 양키스의 컵스 상대 통산 전적이 20승 4패이다. 이 중에는 월드 시리즈 8전 전승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유명한 베이브 루스의 'Called Shot'이 바로 1932년 월드 시리즈 컵스 전에서 나온 사건이다.

반대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010년대 중반 이후로 포스트 시즌에서 늘 양키스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사실 양키스는 근 몇 년 내내 챔피언십 시리즈까지는 무난히 도전할 만한 전력을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고 실제로도 몇 번이나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그 전력이 휴스턴을 꺾기에는 아쉬웠기에 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4.1.1.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라이벌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키스 - 레드삭스 라이벌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스타[편집]


파일:attachment/뉴욕 양키스/양키스의레전드들.jpg
앞줄 왼쪽부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뒷줄은 좌측 부터 데릭 지터, 미키 맨틀이다.

4.2.1. 타자[편집]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인 만큼 모든 구단 통틀어서 가장 스타가 많은 팀이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을 대상으로 올타임 베스트 9을 짜면 당연히 압도적으로 제일 강력한 팀이며 아예 미군 vs 세계연합군처럼 양키 올스타와 나머지 팀의 올스타를 짜서 가상 시합을 벌여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다.[30] 특히 조 디마지오 - 미키 맨틀 - 베이브 루스라는 전설적인 거성들이 버티고 있는 외야진은 조만간은 멤버가 바뀔 가능성이 없다.[31]

팀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프랜차이즈급 야수로는 우선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 시절엔 베이브 루스[32],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요기 베라, 로저 매리스 등 많다. 1970년대 이후 야수로는 레지 잭슨, 돈 매팅리,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버니 윌리엄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애런 저지 등이 있다.

이들의 계보는 레프티 그로브-워렌 스판-스티브 칼튼-랜디 존슨-클레이튼 커쇼의 좌완 계보처럼 한 스타의 전성기가 끝났거나 은퇴하면 곧바로 또 다른 신예 스타가 등장해 계보를 이어나갔다. 실제로 베이브 루스가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은 1934년에 루 게릭이 타격 3관왕을 기록했고, 게릭이 은퇴한 1939년에 조 디마지오가 첫 번째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디마지오가 은퇴한 해에 미키 맨틀이 데뷔했다. 그리고 맨틀의 은퇴한 해 바로 다음해에 서먼 먼슨이 데뷔했고, 먼슨이 사고로 사망하기 2년 전에 레지 잭슨이 양키스로 건너왔다. 그리고 잭슨이 양키스를 떠난 바로 다음 해에 돈 매팅리가 데뷔했고, 매팅리가 은퇴한 해에 데릭 지터가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후 데릭 지터가 은퇴한 2년 뒤애런 저지가 데뷔하고 데릭 지터 이후 양키스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었다. 단 저지가 역대급 신인 시즌과 FA로이드 시즌을 만들고 양키스와 장기 계약을 맺고 잔류하며 사실상 양키스 원 클럽 맨의 길을 걷긴 했으나 원체 부상이 많은 타입이기에 양키스의 스타 계보를 이어나갈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양키스는 최고 재력의 팀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양키스의 전설들은 양키스에 처음부터 입단해서 뛰던 팜 출신의 선수들이었다.[33] 예시를 들자면, 1990년대 말에 다시금 부흥기를 이끈 양키스 코어 4와 현재 양키스를 대표하는 스타인 애런 저지는 팜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따라서 돈도 많지만 팜 시스템 역시 잘 구축되어 있는 팀으로 평가받는다.[34] 양키스의 경우, 예외의 경우[35]를 제외하면 성적이 늘상 좋은 팀이기에 드래프트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팜에서 좋은 선수들이 꾸준하게 나온다는 것은 팜 시스템이 좋은 것이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또한, FA 시장에서 큰 손이지만, 특급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구매하는 동시에 유망주를 어느 정도 보호하는 편이다.[36] 가급적 트레이드는 자제하고 돈은 더 많이 들더라도 유망주 손실이 적은 FA 영입에 올인하는 입장이다.[37] 비싼 FA와 트레이드로 윈나우를 노리는 팀들의 참혹한 대가는[38] 한미일 야구 통틀어 늘상 있는 사례인데, 양키스는 팀의 미래까지 흔드는 도박을 자제하는 셈이다. 그 결과로 1992년부터 승률이 단 한번도 5할로 내려간 적이 없는 엄청난 기록을 아직도 써내려가고 있다.

4.2.2. 투수[편집]


투수는 타자에 비하면 확실한 약세인데, 팀의 프랜차이즈로 부를 수 있는 투수로는 잭 체스브로, 웨이트 호이트, 허브 페녹, 레프티 고메즈, 레드 러핑, 화이티 포드, 론 기드리, 앤디 페티트, 마리아노 리베라 등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포드와 리베라 정도를 제외하면 타자 레전드들에 비해 인지도와 성적이 떨어진다.[39] 이후 명전을 노릴 수 있는 네임드로 게릿 콜이 9년 324M의 초대형 계약을 맺고 입단하며 양키스의 에이스 계보를 이어가고 있으나 타자들 중 스타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양키스의 투수는 생각보다 그렇게 레전드의 수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사실 양키스는 투수 육성 능력은 수준급이다. 전통적으로 구장이 워낙 타자 친화적인지라 명전급 투수가 잘 안 나오는 거지 주전급 투수들은 꾸준히 배출해 왔다. 특히나 불펜 투수의 경우 혹사가 잦은 보직 특성상 대부분이 단명하긴 했지만[40] 유독 양키스는 한 투수가 망할 때마다 다른 경쟁력 있는 투수를 배출하고 있다.[41] 명전급 레전드 투수 한두명을 만들기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준수한 주전급 투수들을 여럿 배출해내는, 물량으로 승부하는 육성 방침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예시는 델린 베탄시스 -> 채드 그린/조나단 로아이시가 -> 클레이 홈즈[42] 이어지는 불펜 마당쇠 계보인데 베탄시스는 과도한 혹사로 단명했고 그린은 굴려지다 부상을 당했으며 로아이시가와 홈즈는 현재진행형으로 굴려지는 중인데 한 명이 부상으로 망할 때마다 차례대로 등장하여 팀 불펜 투수 계보를 이었다. 이는 양키스 구장이 악명 높은 타자구장이라는 것을 생각했을때 필연적인 전략이고, 꾸준한 투수력 관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감안했을 때 양키스의 불펜은 가히 화수분급이다. 그리고 이 불펜 투수 육성의 정점이 바로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다.[43]

4.2.3. 기타[편집]


선수 외 관계자 중에선 장내 아나운서 밥 셰퍼드가 유명하다. 미키 맨틀의 데뷔전이 있었던 1951년 4월 17일부터 2007년 9월 5일까지 57년간 양키 스타디움의 장내 아나운서로 일해 왔었다. 그가 직접 불러온 스타들의 이름이 조 디마지오부터 시작해서 데릭 지터까지 이르는, 양키스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목소리를 많이 좋아했던 데릭 지터는 2008년부터 셰퍼드가 와병으로 경기장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구단이 특별 제작한 그의 녹음된 목소리를 통해 타석에 들어서곤 했다. 장내 아나운서직에서 완전히 은퇴한 2010년에 타계했다.


데릭 지터 헌정 영상 'RE2PECT'에도 밥 셰퍼드 소개가 들어가 있다. 항상 "number 2, Derek Jeter, number 2"로 마지막에 등번호를 반복하는 버릇이 있다. 아마도 등에 이름을 새길 수 없는 양키스 저지 특성상 혹시라도 몇몇 선수들의 이름을 모르는 관객들에게 다시 강조하여 알려주고자 함인 듯하다.


4.3. 유니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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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유니폼(블랙 핀스트라이프)
원정 유니폼

양키스는 전통을 중요시하는 구단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흰색에 네이비 세로 줄무늬(흔히들 핀스트라이프라 부르는)에 NY 로고가 있는 홈 유니폼과 회색에 'NEW YORK'이라고 적힌 원정 유니폼 딱 두 종류만을 고집해 오고 있다.

물론 양키스도 타팀처럼 얼트 저지나 모자가 없는 것은 아닌데, 대표적으로 연습경기에서 입는 검은색 윗도리에 흰색으로 NY 로고가 박힌 유니폼과 네이비색에 'NEW YORK'이라고 박힌 유니폼. 이 외에도 검색해 보면 다양한 종류의 얼트 유니폼이 있다. 팀보다 상위인 리그 차원에서 플레이어즈 데이나 메모리얼 데이, 유방암,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 등등 이벤트를 하는 날에는 모든 팀이 의무적으로 얼트를 만들어 입어야 하고, 양키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리그 차원의 의무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이 두 종류만 착용한다. 모자도 딱 한 종류뿐.

MLB와 뉴욕 양키스를 잘 모르며 팬이 아닌 사람들도 이 N과 Y가 겹쳐진 심볼이 새겨진 모자를 알고, 쓰고 다닌다. 이는 문서에서도 서술했듯이 뉴욕의 힙합 문화의 영향으로, 뉴욕을 본거지로 하는 음악가들이 뉴요커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에미넴이 왜 공식 석상에서 다 쓰러져가는 팀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모자를 쓰겠는가? 뉴요커 음악가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기 시작했고, 모자를 포함해 뉴욕 양키스 저지까지 힙합을 필두로 한 스트릿 문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원팀(one team)을 강조하며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이유[44]로 메이저리그, 아니 미국 프로 스포츠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유니폼 뒤에 선수들의 이름을 새기지 않는다.[45][46] 홈 유니폼에 선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구단은 보스턴 레드삭스도 있지만,[47][48] 보스턴도 원정 유니폼에는 이름이 적혀 있는 데 반해 양키스는 원정 유니폼에도 이름이 없다. 여기에 대해서 라이트팬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양키스는 '진짜 양키스 팬이라면 등번호만 보고도 선수가 누군지 딱딱 알고 있어야 한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앞으로도 바뀔 일은 없어 보인다. 정작 레플리카 유니폼을 구하려고 하면 번호+이름이 박힌 유니폼보다 번호만 박힌 유니폼이 구하기가 훨씬 힘든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다.

다만, aespa가 2023년 시구를 할 때는 유니폼에 카리나, 닝닝, 윈터의 이름을 새겨서 선물했으며, 판매용 유니폼에는 구매자의 기호에 따라 이름을 새길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49]

2020년, 이런 양키스 유니폼에도 간만에 변화가 찾아왔는데 MLB 전체 유니폼 스폰서를 나이키가 맡으며 오른가슴 부분에 나이키 스우시 로고가 들어가게 되었다. 당연히 팬들의 반발이 상당한 편. 처음엔 원정 유니폼 앞의 '뉴욕'과 등쪽 등번호에 있던 흰색 테두리도 없었다. 다시 바뀌긴 했지만.

2023년은 MLB 노사단체협약에 의해 유니폼 광고패치가 허용되었고, 양키스도 유니폼에 광고패치가 붙었다. Starr insurance라는 보험사의 광고이고 파란 배경에 흰 글씨, 검지손가락 하나만 한 패치이며 유니폼 왼쪽 소매 하단에 부착되고 있다. 팬들은 당연히 "양키스도 이제 전통 다 잃었다"며 싫어하는 중이다. 다만 이런 반발을 어느정도 예상한건지 판매용 레플리카 유니폼에는 붙이지 않았다.

4.4. 용모 복장 규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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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메이저리그 구단별 수염의 덥수룩한 정도.

메이저리그에서 외모와 복장 규정이 가장 철저한 구단이다. 잘생겼느냐 못생겼느냐가 아니라, 장발이나 수염 등을 단속한다. 정리된 콧수염 정도라면 허용되지만, 장발에 턱수염 기르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구단이다. 이는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 전 구단주에 의해서 확립되었다. 다시 말해,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보수적, 혹은 꼰대스럽다고도 볼 수 있는 개인 취향 때문에 생겨난 규정이다(...). 그래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선수가 양키스로 이적하면 '저 선수 수염 밀어야겠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실제로 입단식에는 싹 정리된 선수가 등장한다. 또 심하게는 유니폼 상단 단추 푸는 것까지 단속한다.[50] 콧수염도 허용 안 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하위호환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51], 미국 내에서 선수들이 수염 덥수룩하게 기르는 비율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야구선수들이 콧수염 기르는 비율을 고려하면[52] 이쪽이 더 심하다고 봐야 한다.

물론 아주 드물게 반항하는 경우도 있긴 했는데, 이 경우는 상당한 제재가 들어온다. 돈 매팅리는 1991년 장발이 문제가 되어서 1경기를 벤치에서 보내기도 했고, 아프로 스타일로 유명했던 오스카 갬블은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되었을 때, "머리 정리하기 전에는 유니폼 지급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캣피시 헌터와 같이 장발을 기르거나, 구스 고시지처럼 중국인 수염을 기르는 등 실력 있고 고집 센 선수들은 열심히 반항을 하기도 했다. 다만 조니 데이먼은 입단 당시 구단으로부터 '면도할 필요 없다'라는 파격적인 예외 조항을 줬음에도 자발적으로 면도를 했다.

이 중 데이비드 웰스는 스타인브레너가 추구하는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서 보스가 싫어했다더라.(...) 하기야 퍼펙트 게임도 술 마신 다음날 기록한 선수다. 루 피넬라는 양키스로 트레이드 된 뒤 스타인브레너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장발이었습니다, 왜 저는 안되죠?"라고(...) 항의를 했으나, 스타인브레너가 인근 연못을 가르키며 "약 7-8피트 정도 깊이야, 걸어서 건넌다면 원하는만큼 기르도록 허락해주지."라고 응수했다.

반면에 양키스에 있다가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의 경우는 수염을 기르는 예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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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바 체임벌린, 로빈슨 카노, 필 휴즈

오프시즌에는 이런 외모 관련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 비시즌에는 수염을 기르는 선수도 많다.

최근에는 너무 구시대적인 규정이라고 반발하는 목소리도 팬들 사이에 있는데# 정작 선수단 안에선 이걸 가지고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아무래도 전통과 명예를 지향하는 팀이라 용모를 단정하게 하는 것 같다.

4.5. 자체 중계 채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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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21세기 폭스와 뉴욕 양키스가 2002년에 공동으로 출자해서 YES Network(Yankees Entertainment & Sports Network)라는 자체 채널을 만들어서 뉴욕 양키스 로컬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다만 전국 방송 경기는 ESPN이나 FOX에서 중계한다. 그리고 양키스 경기 이외에도 NBA 브루클린 네츠MLS 뉴욕 시티 FC 로컬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YES의 양키스 경기 중계는 대체로 마이클 케이[53]가 맡는데, 홈런이 나오면 항상 "SEE-YA!"를 외친다. 감칠맛 난다 상대 팀이 칠 땐 잘 안 하지만 양키스가 칠 때는 항상 말한다. 역시 양키스가 칠 때 그 샤우팅이 강렬하다.

양키스는 2001년까지는 지역 케이블 스포츠 채널인 MSG Network[54]에서 양키스의 경기를 중계했지만, 중계권료를 둘러싸고 마찰이 빚어지자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직접 채널을 만들었고, 이것이 대박이 터졌다. 현재 이 채널의 수입은 양키스의 주 수입원 중 하나이며, 양키스의 가치를 높이는 최고의 공신이다.

YES Network가 출범한 이후 2008년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Fox Sports Networks 뉴욕을 폐지[55]21세기 폭스가 2012년에 49%로 지분을 늘렸고, 2014년에는 80% 지분을 확보해 대주주가 되었다. 따라서 양키스의 지주 회사인 양키 글로벌 엔터프라이즈가 20% 지분을 가지게 됨으로써 채널에서 얻게 되었던 수익 지분은 줄어들었고 의사 결정 주도권도 없어지게 되었다. #

2018년 21세기 폭스 인수전 결과로 21세기 폭스가 가지고 있었던 FSN도 팔리게 되었는데, 뉴욕 양키스는 YES가 다른 회사에게 팔리기 전에 폭스가 가지고 있는 80%의 주식 가치에 해당하는 35억 달러를 들여서 전부 매입하는 것을 고려했고 2019년 3월에 아마존닷컴과 블랙스톤 그룹이 투자해서 소액주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확보했고, 인수 과정에서 FSN의 새로운 대주주가 된 싱클레어도 투자를 해서 재매입을 확정지었다. #

2019년 기준 YES Network의 지분 구조는 다음과 같다.
  • 양키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 26%
  • 싱클레어 : 20%
  • 아마존닷컴 : 15%
  • 블랙스톤 그룹 : 13%
  • 레드버드 캐피털(RedBird Capital) : 13%
  • 무바달라 투자 회사[56] : 13%


4.6. 홈 구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키 스타디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7. 사인 훔치기 스캔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9 MLB 사인 훔치기 스캔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8. 영구결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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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최고의 명문 구단인 만큼 창단 이래 120여년 동안 팀 내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슈퍼스타들이 배출되었고, 영구결번이 짠 편도 아니라 현재까지 영구결번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팀이다. 전 구단 영구결번인 42번을 제외해도 2022년 기준 무려 23명이다. 2014년을 마지막으로 팀의 주장이자 최고의 인기 스타인 데릭 지터(2번)까지 은퇴하면서 0번을 제외한 한 자릿수 등번호는 양키스에서 쓸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영구 결번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번호는 52번이 있으며,[57]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고 9년 $360M에 잔류한 99번 역시 부상 없이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58] 그 외에도 35번도 성적상으로는 영구 결번감이나 우승 경력이 없다는 치명적인 흠결[59]이 있기에 영구 결번은 실패했다.[60]

이렇게 영구결번이 많은 이유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그 유명한 양키스의 기조 하에, 개인 성적보다도 얼마나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을 했는가가 영구결번의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 레전드 선수들은 실력이 뛰어나니 자연스레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가 많을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영구결번을 주고,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가을에 미치거나 해서 우승을 이끈 선수라면 오래 재적하지 않았거나 통산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선수에게도 종종 영구결번을 주기 때문에[61], 타 팀보다 영구결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수많은 영구결번 중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가 없는 선수는 매팅리 단 한 명 뿐이다.

  • 1. 빌리 마틴(Billy Martin): 2루수로 1950년대 양키스의 월드 시리즈 제패에 한몫한 경력이 있지만, 감독으로써 더 유명하였다. 특히 1970년대 양키스의 수장을 맡아 팀의 암흑기를 끝냈다. 다만 전 구단주인 조지 스타인브레너와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았다. 무려 5번씩이나 해고를 당했을 정도. 어려웠던 시기에 스타인브레너 구단주 밑에서 양키스의 전성기를 만든 인물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선수 4회, 감독 1회).

  • 2. 데릭 지터(Derek Jeter): 1990년대~2000년대 양키스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끈 '양키스 Core 4'의 멤버이자 유격수 자리를 지키면서 양키스의 중흥기를 이끈 뉴욕의 연인. 현재까지 21세기 최고의 양키스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 전설로, 0번을 제외한 양키스의 마지막 한 자릿수 등번호를 가진 선수이다. 별명은 '11월의 사나이(Mr. November)'. 양키스 프랜차이즈 유일의 3000안타 타자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

  • 3. 베이브 루스(Babe Ruth): 말이 필요없는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 통산 714홈런을 쳤고, 양키스를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만들었으며, 야구의 모습을 완벽하게 바꿔 놓은 사나이로 양키스를 넘어서서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월드 시리즈 우승 7회(레드삭스 3회, 양키스 4회)[62], 1936년 명예의 전당 헌액.[63]

  • 4. 루 게릭(Lou Gehrig): 2130경기 연속 출장 기록과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만루 홈런 2위이며, 통산 타율 0.340에 493홈런을 쳐낸 강타자.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루 게릭 병으로 인한 비극적인 은퇴로 인해 유명하다. 그의 등번호 4번은 메이저리그 최초이자, 전 세계 스포츠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구결번된 번호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6회, 1939년 명예의 전당 헌액.[64]

  • 5. 조 디마지오(Joe DiMaggio): 1940년대와 50년대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역대급 슈퍼스타. 56경기라는 역대 최다 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다. 루스-게릭 시대를 잇는 후계자로서 타격의 달인인 보스턴의 테드 윌리엄스와 라이벌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야구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9회, 1955년 명예의 전당 헌액.

  • 6. 조 토레(Joe Torre): 선수 시절에는 양키스에서 뛰지도 않았고, 지도자 시절에도 양키스에 부임하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감독이었지만, 양키스에 와서 우승 4번을 차지하며 명감독 위치에 올랐다. 당시 팀의 전력이 사기급이긴 했지만 감독으로써 팀의 케미를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드 시리즈 우승 4회, 2014년 명예의 전당 헌액.

  • 7. 미키 맨틀(Mickey Mantle): 통산 536홈런을 때려낸 강타자이자 야구 역사상 최고의 스위치 히터이자 5툴 플레이어. 잦은 부상을 달고 뛰면서도 양키스의 중견수로 맹활약했다.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올스타 20번과[65] 리그 MVP 3번을 기록한 슈퍼스타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7회, 1974년 명예의 전당 헌액.

  • 8(공동)
    • 빌 디키(Bill Dickey): 1930년대와 40년대 양키스의 전성기 시절 안방을 책임진 포수. 11차례 올스타에 선정되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공적은 코치 시절 후배인 요기 베라를 키워냈다는 점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8회, 1954년 명예의 전당 헌액.
    • 요기 베라(Yogi Berra): 빌 디키의 뒤를 이어 양키스의 주전 포수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포수로 거듭난 전설. 빼어난 타격 실력 덕분에 세 차례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양키스 감독을 잠시 맡기도 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10회[66], 1972년 명예의 전당 헌액.

  • 9. 로저 매리스(Roger Maris): 1961년에 61홈런을 달성, 베이브 루스의 기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깬 선수. 양키스 슬러거 라인을 미키 맨틀과 함께 이어갔다. 다만 양키스 팜 출신이 아닌 탓으로 차별을 많이 받았다. 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월드 시리즈에 출전해 1홈런에 그치자 뉴욕 언론들이 꾀병이라고 디스 걸었을 정도. 하지만 오늘날 약물 파동 이후에는 진정한 홈런왕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월드 시리즈 우승 3회.

  • 10. 필 리주토(Phil Rizzuto): 1940~50년대를 풍미한 수비형 유격수. 1950년에는 리그 MVP로도 선정된 적이 있다. 은퇴 이후에는 40년 동안 해설가로 활동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7회, 1994년 명예의 전당 헌액.

  • 15. 서먼 먼슨(Thurman Munson): 양키스의 포수 계보를 이어가는, 뛰어난 공격력을 갖추었던 당대 최고 수준의 포수. 클럽하우스의 리더로서 팀에 파이팅을 불어주는 선수였다. 그러나 자신의 주가를 한창 올리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인해 안타깝게 요절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2회.

  • 16. 화이티 포드(Whitey Ford): 월드 시리즈 통산 10승으로 역대 최다 승 기록을 가진 투수. 정규 시즌에는 통산 236승을 기록했고 일명 회장님으로 불렸다. 메이저리그의 송진우 최강의 빅게임 피처로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약간 적어 보이는 승수에도 불구하고 양키스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고 있다. 월드 시리즈 우승 6회, 1974년 명예의 전당 헌액.

  • 20. 호르헤 포사다(Jorge Posada):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끈 '양키스 Core 4'의 멤버이자 요기 베라와 서먼 먼슨의 뒤를 잇는 양키스의 안방마님. 포수임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공격력으로 양키스 타선의 주축이었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이 워낙 단명한 만큼 '양키스 Core 4' 멤버 중에서는 가장 일찍 선수 생활을 마쳤다. 월드 시리즈 우승 4회.

  • 21. 폴 오닐(Paul O'Neill): 양키스 클럽하우스에 폭발적인 승부욕을 심어 넣은 주역이며, 레즈 시절엔 미완의 유망주였던 탓에 누적 성적은 많이 떨어지지만 양키스에서는 그야말로 절정의 활약을 펼쳤고, 무엇보다도 1990년대 이후 양키스의 전성기 및 우승에 가장 많이 공헌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점이 참작되어서 영구 결번되었다. 은퇴 이후에도 YES Network 해설가로 활동하며 양키스에 몸담고 있는 중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레즈 1회, 양키스 4회).

  • 23. 돈 매팅리(Don Mattingly): 국내 팬들에게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마이애미 말린스의 감독으로 더 유명하나, 선수 시절엔 양키스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인 1980년대와 90년대 초, 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던 강타자였다. 별명은 'The Hit Man'.[67] 1루수로서 골드 글러브를 9번 차지했고, 실버 슬러거 3회와 리그 MVP 1회를 수상했으며, 1시즌 만루 홈런 6개로 메이저리그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클러치 능력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커리어가 일찍 꺾이며 명예의 전당 입성에는 끝내 실패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0회.[68]

  • 32. 엘스턴 하워드(Elston Howard): 양키스 최초의 '유색 인종' 선수였다. 포수와 좌익수를 맡으며 요기 베라의 후계자가 되기도 했다. 1963년에는 리그 MVP로도 선정되었으나 통산 성적은 다소 평범한 편이다. 아메리칸 리그 역대 최초의 흑인 코치이기도 하다. 월드 시리즈 우승 6회. (선수 4회, 코치 2회)

  • 37. 케이시 스텡겔(Casey Stengel): 양키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을 고르라면 꼭 나오는 전설적인 명감독. 별명은 '노교수님(The Old Professor)'. 팀에게 우승을 7번이나 안겨주었던 인물이다. 양키스뿐만 아니라 같은 연고의 뉴욕 메츠에서도 영구결번된 상태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9회 (선수 2회/자이언츠, 감독 7회/양키스), 1966년 명예의 전당 헌액.

  • 42(공동)
    • 마리아노 리베라(Mariano Rivera):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끈 '양키스 Core 4'의 멤버이자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요약되는 위대한 투수. 메이저리그 최다 세이브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별명으로는 'Mariano'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딴 'Mo', 그의 등장 테마곡인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에서 따온 'Sandman'이 있다. 재키 로빈슨의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최후의 42번 선수가 되었다. 은퇴 이후에는 선교 활동을 다니고 있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 2019년 명예의 전당 헌액. 역대 최초의 만장일치 헌액자이기도 하다.
    •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전 구단 영구결번.

  • 44. 레지 잭슨(Reggie Jackson): 별명은 '10월의 사나이(Mr. October)'로, 많은 삼진과 불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월드 시리즈 통산 타율 0.357, 장타율 0.755, 홈런 10개를 기록했고 특히 1977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한 경기 3연타석 홈런을 비롯한 4홈런 8타점이라는 전설과도 같은 활약을 선보였다. 정규 시즌에도 통산 563홈런을 기록한 강타자. 월드 시리즈 우승 5회 (애슬래틱스 3회, 양키스 2회), 1993년 명예의 전당 헌액.

  • 46. 앤디 페티트(Andy Pettitte):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끈 '양키스 Core 4'의 멤버이자 정규 시즌에서 통산 256승[69], 포스트시즌에서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인 19승을 올린 투수이다. 다만 성장 호르몬 복용 이력이 있는 약쟁이이며, 공식적으로 약을 복용한 것으로 확인된 약쟁이들 중에서 최초로 영구결번을 받은 선수로 당시 꽤나 논란이 되었고, 레드삭스의 오티즈[70] 같은 약쟁이 영구결번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

  • 49. 론 기드리(Ron Guidry): '루이지애나의 번개(Louisiana Lightning)'라는 별명으로 불린 1970년대와 80년대 양키스의 에이스 투수. 팀의 짧은 전성기와 최악의 암흑기를 흔들림 없이 지키면서 단기간에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선수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2회.


4.9. 강팀의 대명사[편집]


미국에서는 강팀을 소개할 때 'XX계의 뉴욕 양키스'라는 말을 쓰기도 하며, 국내에서도 '한국의 뉴욕 양키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사실 해외축구에 익숙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양키스의 성적이 명문 구단치고는 생각보다 초라해보일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야구와 MLB에서 강팀의 리그 독식이 극도로 어려워서 벌어지는 일이다:

ㄱ. 강팀도 승률 7할을 넘기기 힘든 야구의 특성. 경기 수가 많고[71], 경기 중 변수도 많다. 예를 들면 3점 앞서는 상황에서 실책 한 번에 동점이 되거나,[72] 잘 맞은 타구가 내야수 정면으로 가 득점은 커녕 병살이 돼 공격이 끝나거나, 반대로 힘 없는 타구가 이상한 곳에 떨어져 안타, 심하면 장타가 돼서 대량득점을 할 수도 있다.[73]

ㄴ. 강팀의 독주를 최대한 방지하는 미국식 프랜차이즈제 리그 제도. 약팀을 강등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약팀에게 드래프트 어드벤티지를 줘서 좋은 신인을 먼저 뽑을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여러 해에 걸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팀은 자연스럽게 팜이 고갈되고 약팀으로 전락한다. 전성기를 오래 유지하고 암흑기를 빨리 탈출하는 팀은 있을지언정, 이러한 강약 주기를 벗어나는 팀은 없다.

ㄷ. 포스트시즌 체제. 유럽축구와 달리 MLB는 페넌트레이스 이후 토너먼트식 포스트시즌을 치룬다. 즉 월드시리즈 우승은 라리가, 세리에A, 분데스리가, 프리미어리그 우승보다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강팀과 약팀의 승률 격차가 적고, 전성기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도 어려우며, 우승을 단기전 토너먼트로 결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악조건을 뚫고 월드시리즈를 27회 우승한 양키스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명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양키스가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마지막으로 15년째 우승은 커녕 월드 시리즈 진출조차 못 하고 있어서 이러한 인식이 서서히 희석되고 있다. 23시즌에는 저지의 부상과 콜을 제외한 고연봉자들의 전원 부진으로 충격의 9연패+지구 꼴등으로 정말 엄청난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

5. 기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뉴욕 양키스/기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계약 중인 마이너리그 구단[편집]



6.1. 트리플 A[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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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132448><width=20%><colcolor=#ffffff> 투수 ||<colbgcolor=#ffffff,#191919><colcolor=#c60c30> 9 고메즈 · 36 보일 · # 라이온스 · # 무히카 · # 워렌 · # 놀우드 · # 그린 · # 버디 ||
|| 포수 || 20 브류 · 44 맥도웰 ||
|| 내야수 || 45 ||
|| 외야수 || 3 피타 · # 에르모시요 ||
||<-2> 파일:미국 국기.svg 셸리 던컨 파일:미국 국기.svg 그레이엄 존슨 파일:미국 국기.svg 트레버 아미콘 파일:미국 국기.svg 호세 하비에르 ||
||<-2><bgcolor=#eeeeee,#132448> 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svg뉴욕 양키스 40인 로스터 보기 ||



파일:스크랜턴/윌크스베리 레일라이더스 엠블럼.svg
스크랜튼/윌크스-배리 레일라이더스
Scranton/Wilkes-Barre RailRiders
창단
1989년
계약년도
2007년
소속리그/지구
인터내셔널 리그 동부지구
연고지
펜실베이니아 주 무직
홈 구장
PNC 필드
감독
셸리 던컨
타격코치
트레버 아미콘
투수코치
그레이엄 존슨
수비코치
호세 하비에르

6.2. 더블 A[편집]


파일:서머셋 패트리어츠 엠블럼.svg
서머셋 패트리어츠
Somerset Patriots
창단
1998년
계약년도
2021년
소속리그/지구
노스 이스트 리그 동부지구
연고지
뉴저지 주 브리지워터
홈 구장
TD 뱅크 볼파크
감독
라울 도밍게즈
타격코치
제이크 허스트
투수코치
그레이슨 크로포드
수비코치
애런 보시

독립리그 소속이었으나 2021년부터 계약하게 되며 미국 MiLB 산하로 들어오게 되었다.

6.3. 싱글 A[편집]



6.3.1. 하이 싱글 A[편집]


파일:허드슨 밸리 레네게이즈 엠블럼.svg
허드슨 밸리 레네게이즈
Hudson Valley Renegades
창단
1994년
계약년도
2021년
소속리그/지구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 북부지구
연고지
뉴욕 주 피시킬
홈 구장
헤리테이지 피넌셜 파크
감독
세르지오 산토스
타격코치
케빈 마티어
투수코치
프레스턴 클레이본
수비코치
롭 벤자민, 데릭 우들리

6.3.2. 로우 싱글 A[편집]


파일:탬파 타폰스 엠블럼.svg
탬파 타폰스
Tampa Tarpons
창단
1994년
계약년도
1994년
소속리그/지구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 서부지구
연고지
플로리다 주 탬파
홈 구장
조지 M. 스타인브레너 필드
감독
레이첼 발코베츠
타격코치
릭 구아노
투수코치
헤라르도 카사디에고
수비코치
리노 디아즈, 미첼 에르난데스


6.4. 루키[편집]


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svg
FCL 양키스
Florida Complex League Yankees
창단
1964년
계약년도
1964년
소속리그/지구
플로리다 컴플렉스 리그 북부지구
연고지
플로리다 주 탬파
홈 구장
조지 M. 스타인브레너 필드
감독
제임스 쿠퍼
타격코치
라이언 칩카, 톰 드안젤리스
투수코치
브렛 드개그니, 스펜서 메딕
수비코치
산티아고 네시, 안토니오 파체코

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svg
DSL 양키스
Dominican Summer League Yankees
창단
?년
계약년도
?년
소속리그/지구
도미니카 섬머 리그 북동지구
연고지
?
홈 구장
뉴욕 양키스 컴플렉스
감독
파커 긴(봄버스)
빅터 레이(양키스)
타격코치
에드윈 비어드(봄버스)
셀윈 랭개인(양키스)
투수코치
알렉산더 로사리오(봄버스)
에드워 라미레즈(양키스)
수비코치
테우리스 올리바레스(봄버스)
카를로스 비달(양키스)

7. 40인 로스터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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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링크[편집]



[1] 1911년 한정 뉴욕 자이언츠와 공용[2] 뉴욕 자이언츠와 공용[3] 1956년부터 1973년까지 NFL 뉴욕 자이언츠와 공용[4] 뉴욕 메츠, 1975년 한정 NFL 뉴욕 자이언츠, 뉴욕 제츠와 공용[5] 구 양키 스타디움 보수 공사로 인해 뉴욕 메츠의 동의하에 2년간 사용했다.[6] 2008년까지 사용한 이전 양키 스타디움과의 구분을 위해 '구', '(II)' 등을 달아 구분하는 경우가 많으나 정식 명칭은 똑같이 'Yankee Stadium'이다.[7] 2015년부터 MLS 뉴욕 시티 FC와 공용[8] 뉴욕 양키스의 모기업으로 할 스타인브레너(Hal Steinbrenner)가 현재 구단주이다.[9] (Rob Refsnyder). 한국계 미국인. 한국식 이름은 김정태.[10] (Danny Oh). 한국계 미국인.[11] 전구단 최다 우승 기록은 14년 연속 지구 우승으로 왕조를 세웠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세운 23회이다.[12] AL 동부지구 전기리그 우승[13] 혹은 "아니, 상대팀들이 계속 저 망할 핀스트라이프를 의식하기 때문이야." 직역하면 "아니, 상대팀들이 저 망할 핀스트라이프를 계속 쳐다보는 걸 멈출 수 없기 때문이야."인데, 이걸로도 무슨 의미인지는 대강 가늠할 수 있으나, 워낙 번역체여서 게시된 의역이 적절하다.[14] 네덜란드인들에게 제일 흔한 이름이 얀 카스(Jan Kass)였고, 이것이 양키스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양키라는 말은 원래 뉴욕과 뉴잉글랜드 주민들을 얕잡아보는 말이었다.[15] 월드 시리즈 우승 공동 3위는 아메리칸 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9회. 게다가 내셔널 리그의 3대 명문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1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8회, 전체 5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7회, 전체 6위)의 우승 횟수를 전부 합쳐도 양키스보다 적을 정도로(26회) 압도적이다. 특히 자이언츠와 다저스는 양키스에게 월드 시리즈에서 호구 잡힌 팀으로 유명하다.[16] 여담으로 일본의 일본프로야구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일본시리즈 22회 우승, 대한민국의 KBO 리그해태 타이거즈 시절을 포함한 기아 타이거즈가 11회로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7] 2위는 NHL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24회). 이 팀이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1993년 당시에는 양키스보다 우승이 많았으나, 이후 양키스가 역전했다.[18] 10,000승 달성 당시 2위인 보스턴 레드삭스가 9,224승이었으니 다른 아메리칸 리그 팀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양키스 다음으로 10,000승을 달성할 유력한 후보 역시 보스턴 레드삭스로 빠르면 2024년쯤에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셔널리그가 아메리칸 리그보다 훨씬 먼저 출범했기 때문에 누적 승수로는 아직 7팀이 양키스보다 앞서 있지만 후술할 승률에서는 양키스가 압도적으로 앞선다.[19] 이는 2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0.536보다 무려 3푼 4리나 높은 압도적인 승률이다. 0.034가 뭐 그리 크냐 싶을 수 있고 162경기의 현재 시스템상으로는 0.034 차이면 1시즌당 2.5게임 정도 더 이긴 수준이다. 게임 차이론 4~5게임 차이. 하지만 이게 100년 넘게 쌓인 기록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키스가 648경기(4시즌) 전패, 자이언츠가 648경기 전승을 해야 서로간의 승률이 비슷해질 수준이고 그래도 양키스가 조금 앞선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30개팀 중 통산 승률 0.520이라도 넘기는 팀이 딱 4팀, 빠른 시일내로 넘길 가능성이 있는 팀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5팀밖에 안 된다. 또 다른 예로는 2022년까지 통산 승률 꼴찌인 마이애미 말린스의 승률이 .460이고 통산 승률 16위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승률이 .488이니 양키스와 자이언츠의 승률차보다 이쪽의 차이가 적다.[20] 2022년까지 통산 성적이 10602승 8000패로, 승패 마진이 무려 +2602에 이른다. 이는 양키스가 앞으로 16년간 시즌 전패를 해도 5할 승률을 유지한다는 것을 말한다![21] 당시 뉴욕 하이랜더스라는 구단명을 쓰고있었다.[22] 2021년까지 1위 기록은 마이애미 말린스의 .632이다. 하지만 말린스는 38경기를 치르면서 거둔 승률임에 비해 양키스는 414경기를 치르며 쌓은 기록이므로 오히려 말린스의 승률 1위보다 훨씬 어려운 기록이다. 게다가 포스트시즌 최다 출전 기록 2위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280경기를 치렀고 승률은 .518이다. 다시 말해 메이저리그에서 양키스를 제외하면 포스트시즌을 300경기 넘게 치른 팀도 없다는 뜻.[23] 이 악의 제국이라는 별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앙숙인 보스턴 레드삭스가 '양키스는 돈지랄로 좋은 선수들을 쓸어 모아 우승을 독식한다'며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을 했는데 양키스는 오히려 "악의 제국이라고? 그거 좋은 별명이구먼." 하면서 이 별명을 양키스를 상징하는 별명으로 공식화함으로써 생기게 된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2000년대 초반 쿠바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군림하던 호세 콘트레라스 영입에 실패한 이후 레드삭스의 전 사장인 래리 루치노가 인터뷰에서 했던 표현. 그런데 양키스한테 돈지랄한다고 비난하는 레드삭스도 돈지랄로는 양키스 다음가는 수준이다. 때문에 김형준도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24] 물론 연고지로 끼고 있는 도시가 무려 뉴욕이므로 돈이 많을 수밖에 없다.[25] 2003년 메이저리그에 사치세가 도입된 이후 2018년 까지 단 한 시즌도 빠지지 않고 사치세를 납부하고 있다. 1년 사치세만 해도 스몰마켓 팀의 페이롤에 비할 만하고 11년간 납부한 사치세의 총액은 양키스의 1년 페이롤에 맞먹을 정도. 여러모로 비범하다. 하지만 최근들어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아들인 할이 구단주가 되어서는 달라진 운영기조를 보임에 따라 예전같은 엄청난 투자는 보기 힘든 편. 물론 그렇다 해도 지를 땐 확실하게 지른다. 아니 이런 건 말고[26] 순서대로 헌액된 순.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윌리 킬러, 클라크 그리피스, 잭 체스브로, 프랭크 찬스, 허브 페녹, 폴 워너, 빌 디키, 대지 밴스, 조 디마지오, 홈런 베이커, 조 맥카시, 빌 멕케니, 밀러 허긴스, 벌레이 그라임스, 케이시 스텡겔, 레드 러핑, 브랜치 리키, 웨이트 호이트, 스탠 코벨레스키, 얼 콤스, 레프티 고메즈, 요기 베라, 미키 맨틀, 화이티 포드, 버키 해리스, 밥 레몬, 조 슈얼, 자니 마이즈, 에노스 슬로터, 캣피시 헌터, 게일로드 페리, 토니 라제리, 레지 잭슨, 필 리주토, 레오 듀로서, 필 니크로, 데이브 윈필드, 웨이드 보그스, 구스 고시지, 리키 헨더슨, 조 고든, 조 토레, 바비 콕스, 랜디 존슨, 이반 로드리게스, 팀 레인스, 리 스미스, 마리아노 리베라, 마이크 무시나, 데릭 지터.[27] 남성용, 여성용[28] http://stuffnobodycaresabout.com/2012/10/04/the-day-brooklyn-will-never-forget-october-4-1955-the-brooklyn-dodgers-become-world-champions/[29] 8년 뒤 1963년 월드 시리즈에서 만났을 때 처음보는 다저스 선발 투수를 무시했다가 그의 활약을 보고서 감탄했다는 뒷이야기도 존재하는데, 그 다저스 투수가 바로 샌디 코팩스다.[30] 종목은 다르지만 비슷한 팀으로 NBA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있다.[31] 일단 루스는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기에 말이 필요없고, 맨틀은 현역 최고의 선수인 마이크 트라웃과 커리어 추이가 비슷하므로 현역 선수들 중에선 정상적으로 남은 선수 생활을 보낸다는 가정 하의 트라웃 말고는 커리어를 제대로 비빌 수 있는 선수가 마땅히 없다. 이 세 명 중 짧은 선수 생활로 인해 그나마 가장 낮은 WAR을 기록하고 있는 디마지오의 fWAR도 무려 83.1이다. 현재는 양키스의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인 애런 저지가 디마지오를 맹추격중이지만 2022년 시즌 종료 시점으로 비교해봐도 아직 WAR 차이가 최소 40은 나서 이를 따라잡는 것이 매우 힘들고, 양키스 기준 비교적 암흑기 시절의 선수인 저지와는 다르게 디마지오는 양키스의 전설적인 전성기를 이끈 슈퍼스타이기에 저지가 만일 디마지오와 비슷한 WAR을 기록해도 그를 밀어낼 확률은 낮다.[32] 엄밀히 말하면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팔려온 것이긴 하지만 야구사를 바꾼 그의 활약은 양키스 시절부터였다.[33] 물론 베이브 루스같은 이적생으로써 전설이 된 선수들도 있다.[34] 그래서인지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유망주들을 키워보려고 노력했다. 로빈슨 카노, 브렛 가드너, 멜키 카브레라, 조바 체임벌린, 필 휴즈, 이안 케네디, 이반 노바, 데이비드 로버트슨, 헤수스 몬테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이들 중 트레이드로 이탈한 선수들도 있고 제대로 커주지 못한 선수들도 있다.[35] 특히 데릭 지터가 드래프트될 즈음인 1990년대 초반.[36] 투수의 예시지만, 트레이드 시장에 수많은 특급 선발들이 나왔음에도 오퍼를 하지 않고 FA로 CC 사바시아를 기다렸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37] 물론 예외적으로 과감하게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커티스 그랜더슨의 영입이 대표적인 사례다. 참고로 이때 내준 이안 케네디는 2011년 한정으로 에이스 역할을 하기도 했다.[38] 비싼 고참급 영입들은 먹튀화되고 팜은 고갈되어 하위권을 전전.[39] 다만 타자 레전드들에 비해 떨어질뿐이지, 절대로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레전드 투수들이 없던 구단이였다는건 아니다.[40] 애시당초 이 중 절대다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급 재능과 내구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불펜 투수가 된 것이다. 굳이 혹사가 아니어도 몇 시즌 안에 밑천이 드러나며 밀려나는 경우는 여백이 부족할 정도로 많다.[41] 92년 이후로 5할 승률 아래의 시즌이 없는 가히 엽기적인 기록 하나로 설명이 된다. 타격은 필연적으로 사이클을 크게 타는데 이걸 매꿔주는 것이 투수력이기 때문이다.[42] 양키스 팜 출신은 아니지만 명백히 양키스 투수코칭의 산물이다. 전 소속팀 피츠버그에서는 싱커를 바깥 위주로 던지라고 면박을 주다가 시원치 않아서 싼 대가로 양키스로 트레이드 시켰는데, 양키스에서는 피하지 말고 구위를 믿고 정직하게 승부하라는 것이 제대로 먹혔기 때문이다.[43] 2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데뷔해 40대 중반의 고령까지 활약하며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44] 팬들이 선수를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니폼에 등번호를 처음 단 팀이 양키스라서 사실 말이 안 된다. 야구 유니폼에는 원래 이름이 없었고(사실 아이스하키, 축구, 농구 등도 원래 이름을 안 새겼다) 전통을 중시하다 보니 계속 이름을 넣지 않고 있는 것뿐이다. 다만 이쪽 이유가 멋있으니까 팀에서도 이 이유를 공식적으로 내세우고 있다.[45] 다만 처음부터 원팀을 강조한 건 아니고, 최초 구상은 '사람들이 누가 누군지 잘 모를테니 프로그램 북을 더 팔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출처는 『야구란 무엇인가』.[46] 여담으로 KBO 리그 LG 트윈스도 이와 같은 이유로 원정 유니폼에서 선수 이름을 제거했다. 그랬더니 반응은 니들이 양키스인줄 아냐며 특히나 새로운 팬 입장에서는 더 어려운게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다수. 결국 2021년부터는 다시 원정 유니폼에 이름을 넣고 있다.[47] 보스턴과 같은 사례였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우 등번호와 함께 이름이 있다가, 2000년 새 구장 오라클 파크의 개장에 맞춰 유니폼 디자인을 소폭 바꾸고 홈 유니폼에서 이름을 뺐다. 잠시이기는 했지만, 2004~2006년 기간에는 컵스와 다저스도 유니폼에 선수 이름을 뺀 적이 있었다. 심지어 양키스의 연고지 라이벌 메츠도 1999년에 한해 유니폼에 이름을 뺐었다. 지금도 미네소타 트윈스시애틀 매리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의 일부 구단들은 얼트 유니폼을 입을 시 이름을 빼기도 한다. 다만 이쪽은 이벤트성으로 한두어번 입고 말 얼트 유니폼에까지 이름을 새기기엔 제작비용도, 시간도 아깝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48] 다만 2021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홈 유니폼에 다시 이름을 새겨넣기로 했다. 라이트팬들이나 저연령 팬들이 홈팀 선수가 누군지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저연령 팬들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구단 수뇌부가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49] 물론 이름을 새기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50] 데이비드 웰스가 대표적으로 이 규정을 안지키던 선수.[51] 최근에는 콧수염을 기르는 선수도 거의 없다.[52] 과장 안 하고 NPB 선수들이 양키스로 이적한다면 외모 규정은 거의 통과라고 봐도 된다.[53] 2002년 이전에도 양키스 라디오에서 중계를 맡았었다. 유튜브에 'david justice homerun 2000'을 검색하면 그를 확인 할 수 있다.[54] 현재는 NBA 뉴욕 닉스, NHL 뉴욕 레인저스, 뉴욕 아일런더스, MLS 뉴욕 레드불스 경기 중계를 하고 있다. 지역 라이벌 뉴욕 메츠의 경기는 SNY(Sportsnet New York)에서 중계 중이고, 지구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우에는 구단주인 펜웨이 스포츠 그룹에서 소유 중인 NESN(New England Sports Network)에서 중계 중.[55] MSG가 채널을 인수해 MSG Plus가 되었다.[56] UAE국부펀드[57] 실제로 52번은 사바시아가 은퇴한 19년부터 현재까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않고 있는 번호이다 즉 준영구결번인 셈[58] 물론 이쪽도 월드 시리즈 우승이 없다는 흠결이 있지만 주장직은 돈 매팅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웬만해선 영구 결번을 주는 편이다.[59] 근데 무시나가 은퇴한 지 정확히 다음 해에 우승했다. 애초에 무시나는 'Mr. Almost'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패귀 기질이 강하다.[60] 2022년 현재 35번은 마무리 투수 클레이 홈즈가 사용 중이다.[61] 대표적으로 서먼 먼슨, 엘스턴 하워드, 폴 오닐 등. 다만 먼슨은 당시 기준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었으나 사고로 요절하여 커리어가 단절된 케이스라 예외다.[62] 첫 우승인 1923년은 기념용 회중시계를 줬다. 1927년부터 반지를 줬다.[63] 당연하게도 최초의 5인이다.[64] MLB 역사상 전무후무할 명예의 전당 무투표 입성의 주인공이다. 규정 상 은퇴 후 5년을 기다렸다가 명예의 전당 입성 투표의 후보가 되어야 하지만 그 규정에서도 예외가 된 채 바로 입성했으며, 유예기간 면제 입성자 부분에서는 후일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나오며 루 게릭이 유일하다는 타이틀은 잃었다.[65] 1959년부터 1962년까지는 올스타전을 한 시즌에 두 번 했고, 맨틀은 그 모든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따라서 16년 동안 20번 올스타전에 출장했다.[66] 역대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이다.[67] 최고의 야구 선수란 의미에서 'Donnie Baseball'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68] 역대 양키스 영구 결번자 중 유일하게 우승을 못한 인물이며, 역대 양키스 주장 가운데 우승 반지가 없는 유일한 주장이다.[69] 단, 그 중 37승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기록했다.[70] 이쪽은 더 나아가서 약쟁이 명전 입성의 길을 열었다.[71] 투수를 빼면 체력 소모가 적은 편이라 거의 매일 경기한다. MLB는 팀당 162경기인데, EPL•라리가•세리에•리그앙의 38경기, 분데스리가의 34경기보다 4배 이상 많다.[72] 야구의 3점 차는 뒤집힐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도 빠르게 역전하기 힘든 점에서 축구의 2골 차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73] 축구에서 페널티 킥이 골키퍼에게 막히거나 골대 위로 날아가는 상황이나 반대로 약한 슛이 골이 되는 상황과 비슷한데, 이보다 훨씬 잦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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