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마르티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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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마르티네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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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2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1995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1996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1997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2000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1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3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92
1995
1996
1997
2000
2001
2003





파일:MLB 로고.svg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Martinez_HOF.jpg
에드가 마르티네즈
헌액 연도
201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5.41% (10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3루수 부문
웨이드 보그스
(보스턴 레드삭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웨이드 보그스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지명타자 부문
후안 프랑코
(시카고 화이트삭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폴 몰리터
(미네소타 트윈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지명타자 부문
폴 몰리터
(미네소타 트윈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호세 칸세코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지명타자 부문
프랭크 토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지명타자 부문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데이비드 오티즈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훌리오 프랑코
(텍사스 레인저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존 올러루드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폴 오닐
(뉴욕 양키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시애틀 매리너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매니 라미레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브렛 분
(시애틀 매리너스)


파일:MLB 로고.svg 2004년 메이저 리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제이미 모이어
(시애틀 매리너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존 스몰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11번
밥 키어니
(1984~1987)

에드가 마르티네즈
(1987~2004)


결번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11번
결번

에드가 마르티네즈
(2015~2018)


영구결번



시애틀 매리너스 No. 11
에드가 마르티네즈
Edgar Martínez

출생
1963년 1월 2일 (61세)
뉴욕 주 뉴욕[1][2]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신체
180cm / 95kg
포지션
3루수, 지명타자[3]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SEA)
소속 팀
시애틀 매리너스 (1987~2004)
지도자
시애틀 매리너스 타격 코치 (2015~2018)

1. 개요
2. 커리어
2.1. 뒤늦은 메이저리그 생활
2.2. 지명타자로 전향
2.3. 동료들은 떠났지만
2.4. 은퇴
3. 수상 내역
4. 평가
6. 연도별 기록



1. 개요[편집]


미국의 전 야구 선수.

시애틀 매리너스의 전성기를 이끈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역대 최정상급 지명타자 중 한 명으로, 랜디 존슨, 제이미 모이어, 켄 그리피 주니어, 알렉스 로드리게스, 스즈키 이치로 등 화려한 선수들이 포진했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4] 팀의 전성기를 이끌어 나갔던 선수이다. 또한 스테로이드 시대에 묻힌 타격의 달인 중 한 명.[5]

통산 성적은 18시즌 동안 타율 .312, 출루율 .418, 장타율 .515, OPS .933, 순장타율 .204, 2247안타, 309홈런, BB/K 1.07개, wRC+ 147, OPS+ 147, 1261타점을 기록했다.[6]

명전 입성을 기념하는 작은 칼럼




2. 커리어[편집]



2.1. 뒤늦은 메이저리그 생활[편집]


지명타자로 활약한 에드가 마르티네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게 된 계기는 그의 수비력 때문이었다. 당시 에드가는 낮에는 가구점 점원, 밤엔 공장 경비로 일하면서 세미프로 팀 선수를 병행했는데, 야간에 열린 시애틀의 푸에르토 리코 트라이아웃에 고된 일을 마치고 가까스로 참가했기 때문에 스윙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곤한 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에드가는 그 트라이아웃에서 좋은 수비력을 보이며 매리너스와 아마추어 FA 계약을 맺고 프로 무대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단 4천불이라는 헐값의 계약금만을 받고 입단했을 정도로 기대치가 낮은 선수였다.

하지만 에드가는 마이너리그에서 순차적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해서도 곧잘 좋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매리너스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7]으로 인해 마이너리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27살이 되던 해인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활약한 마르티네즈는 3할은 기본으로 치는 타격에 두자릿수 홈런을 곁들이며 팀내 주력 타자로 활약했고 1992년에는 첫 올스타전 출장, 그리고 타율 0.343을 기록하며 매리너스에 처음으로 타율부문 타이틀을 선물해준다.

2.2. 지명타자로 전향[편집]


그러나 1993년부터 마르티네즈는 계속된 부상으로 제대로 시즌을 소화해내지 못했고 그로 인해 수비력 역시 크게 떨어져버린다. 이런 상황속에서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선택한 것은 지명타자로 전향하는 것.

이 선택은 마르티네즈와 매리너스에게 모두 대성공이었고 풀타임 지명타자로 출장한 첫 해인 1995년에는 타율 0.356을 기록하며 자신의 2번째 타율 1위, 득점 1위[8] 그리고 지명타자로서는 처음으로 타율 1위에 오르게 된다.[9]장타력도 크게 늘면서 이 해부터 2001년까지 20 ~ 30개에 달하는 홈런과 세자릿수 타점을 기록한다.[10] 그 해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원게임 타이브레이커까지 가는 혼전 끝에 AL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19년만에 첫 가을야구 무대에 진출한 매리너스의 1995 ALDS 상대는 명가 재건의 일념으로 불타오르던 명문팀 뉴욕 양키스. 에드거는 ALDS 5차전에서 매리너스 팬들에게 "The Double"로 영원히 기억될 연장 11회 끝내기 적시 2루타를 치며 양키스를 무너트리고 팀의 극적인 재기를 완성하는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ALDS의 혈전으로 인해 시의 야구 열기가 살아나며 시즌 내내 흉흉하게 돌던 연고지 이전 루머마저 싹 씻고 팀이 시애틀에 제대로 발 붙일 수 있도록 했으니, 에드가의 이 2루타는 매리너스 팬들에겐 말 그대로 구국의 일타인 셈이다.

팀의 주전 1루수이던 티노 마르티네스가 1995시즌이 끝나자마자 양키스로 트레이드되기는[11] 했지만, 1990년대 말 매리너스의 타선은 알렉스 로드리게스(96년 풀타임 데뷔) - 켄 그리피 주니어 - 에드가 마르티네즈 - 제이 뷰너가 2-3-4-5번을 치는 꿈의 타선이었다. 1997년 매리너스가 기록한 267개의 팀홈런은 당시 역대 최고 기록이었고, 스테로이드 시대를 지나 '플라이볼 혁명'과 공인구 반발력/공기저항 등의 요인으로 홈런이 급증한 2010년대 말에야 깨지게 된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7년간 지명타자로서 5번의 올스타전에 출장하고 3번의 실버 슬러거를 차지하는 등 이 시기가 에드가 마르티네즈의 최고 절정기였다.


2.3. 동료들은 떠났지만[편집]


그러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켄 그리피 주니어, 랜디 존슨은 매리너스를 떠나야 했다.

먼저 랜디 존슨이 1998년 7월 31일에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되어 떠났고 이어 켄 그리피 주니어가 2000년 2월 10일에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니폼을 입으며 떠났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에드가 마르티네즈는 꾸준히 팀의 타선을 지켰고 2000년에는 37개의 홈런을 때리며 개인 최다 홈런을 기록했고 145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다 타점을 기록한다.

매리너스의 새로운 홈 구장이었던 세이프코 필드는 투수친화적인 구장이었고 우타자에게는 불리한 구장이었음에도 위와 같은 기록을 세웠던 것.

2002년에는 처음으로 3할 기록에 실패하고 홈런 수도 20개 밑으로 내려오는등 부진에 빠졌지만 2003년에 다시 타율 0.294, 24홈런, 98타점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2.4. 은퇴[편집]


2003년 시즌이 끝난 후, 에드가 마르티네즈는 은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매리너스는 그에게 1년 더 활약해달라고 요청했고 마르티네즈는 요청에 응한다. 하지만 40이 넘은 마르티네즈는 부진했고 결국 2004년 8월 9일에 에드가 마르티네즈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은퇴를 밝힌다.

2015년 6월 20일 친정팀 시애틀의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팬들은 몇 명 빼고 도저히 답이 없는 시애틀 타선에 홧병 걸려서 쓰러지는 거 아니냐는 걱정 중.

그리고 이후 2017년 1월 24일, 에드가 마르티네즈의 11번은 공식적으로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영구 결번식은 8월 12일 세이프코 필드에서 치러지게 된다.


3. 수상 내역[편집]


수상
파일:MLB 로고.svg 올스타 7회 (1992, 1995~1997, 2000, 2001, 2003)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아메리칸 리그 3루수 실버 슬러거 (1992)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아메리칸 리그 지명타자 실버 슬러거 4회 (1995, 1997, 2001, 2003)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2회 (1992, 1995)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아메리칸 리그 타점 1위 (2000)
파일:MLB 로고.svg 지명타자 상 5회 (1995, 1997, 1998, 2000, 2001)
파일:MLB 로고.svg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2004)

4. 평가[편집]


마르티네즈가 활약하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이 배리 본즈,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프랭크 토마스, 켄 그리피 주니어, 짐 토미, 알렉스 로드리게스[12] 같은 괴물 슬러거들이 날뛰던 시절이라 그의 통산 성적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 홈런 기록만 제외한다면 마르테네즈는 저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타격의 달인이다. 최고급의 컨택과 선구안으로 타율과 출루율이 아주 높으며 통산 볼넷이 통산 삼진보다 많을 정도로 선구안도 준수하다. 2루타를 많이 생산해 내는 편이며 홈런도 20개 후반 정도 쳐주지만 30홈런을 넘은 것은 단 한 번일 정도로 홈런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는 아니다. 즉 타격에 있어서는 화려한 선수는 아니지만 세이버메트릭스로 보면 가치는 엄청나게 높은 선수. 1999년도 이후부터 투수 친화구장에 그나마 좌타자에게 유리한 세이프코 필드에서 뛰었으면서도 한번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고 통산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서 .300+/.400+/.500+를 찍은 14명의 선수 중의 한명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뛰어난 성적을 꾸준히 남긴 선수다.

최고의 컨택능력과 선구안을 가졌던 그가 사시 환자로 고질적인 시력 문제를 가졌던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특히 1999년 이후에는 눈 문제가 악화되며 은퇴 기로에 몰렸을 정도. 때문에 동체시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했다고 한다. 아마 시절의 낮은 기대치에 선천적인 약점까지 지녔음에도 정상급 타자로 성장한 그의 노력을 알 수 있는 부분. 여기에 2004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사회봉사에도 열심이었고, 더 높은 연봉과 투수구장에서 까먹는 성적을 만회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18년간 시애틀을 떠나지 않으며 매리너스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수행한, 훌륭한 인품을 갖춘 선수이기도 했다. 당연히 시애틀에서는 이미 최고의 선수로 대우받는다.

1973년부터 지명타자제 실시 이후 한 시즌에 가장 뛰어난 지명타자에게 주는 상인 최우수 지명타자 상(Outstanding Designated Hitter Award)을 2004년부터 그의 이름을 따서 에드가 마르티네즈 상(Edgar Martínez Award)으로 바꾸게 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선수라 하겠다.


5. 명예의 전당 입성[편집]


연도
득표율(%)
2010
36.2
2011
32.9
2012
36.5
2013
35.9
2014
25.2
2015
27.0
2016
43.4
2017
58.6
2018
70.4
2019
85.4

약물의 시대에서 약물없이 활약한 선수이고 세이버메트릭스로 평가했을 때 흠잡을 곳이 거의 없다. 커리어 대부분을 지명타자로 보냈기 때문에 수비WAR에서 어마어마한 손해를 봤음에도 통산 fWAR이 65.5에 이른다. 다만 누적스탯이 부족한데다가[13] 커리어의 대부분을 지명타자로 뛴 것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명예의 전당에 지명타자가 입성할 수 있는가의 논쟁에 핵심이 되는 인물이다.[14] 그러나 약물의 시대에서 활약한 깨끗한 선수 중 한 명이고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서 3/4/5를 기록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은 에드가 마르티네즈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플러스 요인이다.

2014년도 투표에선 25.2%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아무래도 몇년간은 2,30%대에서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2015년도 역시 27%의 득표율을 보여줬다. 득표율 상승치가 상당히 지지부진한 상태. 본인도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 중 내셔널리그 담당은 내 모습도 보지 못했을 것이며 언젠가 세이버매트릭스가 나를 도와줄 시기가 오길 바란다." 고 아쉬워했다. 또한 전 팀 동료이자 첫 턴 입성에 성공한 랜디 존슨은 자신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가장 먼저 마르티네즈를 찍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2016년에는 투표인단 숫자가 줄어든 혜택을 크게 보며 43.4%로 크게 상승했다. 이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상황.

2017년도 투표에서는 득표율이 58.6%로 대폭 상승했다. 이제 두 번의 기회가 남았는데, 이 해에 입성한 팀 레인스처럼 마지막 해에 극적으로 입성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9수째인 2018년 투표에서도 70.4% 득표에 그치며, 또 다시 물을 먹고 말았다. 하지만 전년도에 비해 득표율이 크게 올라, 마지막 해 입성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친정팀 매리너스는 이런 점을 어느 정도 염두에 뒀는지 2017년 그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15]

마지막 기자단 투표 입성 기회인 2019년 명전 투표 사전집계(전체 28%)에서 91.4%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사전집계지만 이 정도 득표율이면 사실상 입성 확정이다.

그리고 현지시간 2019년 1월 22일, 85.4%의 득표율로 마지막 10수째에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같이 헌액된 멤버인 마리아노 리베라는 마르티네즈에게 한턱 내라고 농담을 던졌는데, 둘의 상대전적이 19타수 11안타(홈런 2개, 2루타 3개), 타/출/장 .579/.652/.1.053, 볼넷 3개, HBP 1개로 마르티네즈가 천적이었기 때문이다.


6. 연도별 기록[편집]


파일:MLB 로고.svg 에드가 마르티네즈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7
SEA
13
46
16
5
2
0
6
5
0
2
5
.372
.413
.581
.994
0.3
0.3
1988
14
38
9
4
0
0
0
5
0
4
7
.281
.351
.406
.758
0.0
-0.1
1989
65
196
41
5
0
2
20
20
2
17
26
.240
.314
.304
.619
0.5
0.5
1990
144
572
147
27
2
11
71
49
1
74
62
.302
.397
.433
.830
5.5
5.6
1991
150
642
167
35
1
14
98
52
0
84
72
.307
.405
.452
.857
5.7
6.1
1992
135
592
181
46
3
18
100
73
14
54
61
.343
.404
.544
.948
6.0
6.5
1993
42
165
32
7
0
4
20
13
0
28
19
.237
.366
.378
.744
0.2
0.2
1994
89
387
93
23
1
13
47
51
6
53
42
.285
.387
.482
.869
3.0
3.1
1995
145
639
182
52
0
29
121
113
4
116
87
.356
.479
.628
1.107
7.0
7.0
1996
139
634
163
52
2
26
121
103
3
123
84
.327
.464
.595
1.059
5.9
6.5
1997
155
678
179
35
1
28
104
108
2
119
86
.330
.456
.554
1.009
6.1
6.2
1998
154
672
179
46
1
29
86
102
1
106
96
.322
.429
.565
.993
5.5
5.6
1999
142
608
169
35
1
24
86
86
7
97
99
.337
.447
.554
1.001
5.3
4.9
2000
153
665
180
31
0
37
100
145
3
96
95
.324
.423
.579
1.002
5.3
5.7
2001
132
581
144
40
1
23
80
116
4
93
90
.306
.423
.543
.966
4.7
4.8
2002
97
407
91
23
0
15
42
59
1
67
69
.277
.403
.485
.888
2.1
2.6
2003
145
603
146
25
0
24
72
98
0
92
95
.294
.406
.489
.895
2.7
3.3
2004
141
549
128
23
0
12
45
63
1
58
107
.263
.342
.385
.727
-0.5
-0.3
MLB 통산
(18시즌)
2055
8674
2247
514
15
309
1219
1261
49
1283
1282
.312
.418
.515
.933
65.5
68.4

파란색은 통산 팀 내 1위.
[1] 뉴욕 태생이지만 시애틀과 계약하기 전까지 푸에르토리코에서 지냈었다. 11살때 부모가 재결합하면서 누나와 남동생이 뉴욕으로 돌아갔지만 본인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지내기 위해 푸에르토리코에 잔류했다고 한다.[2]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것도 푸에르토리코에 거주하면서 시애틀이 개최한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었기 때문. 참고로 푸에르토리코 태생 선수들이 드래프트 대상에 포함된건 1989년도 부터다.[3] 1루수 28경기/3루수 562경기/지명타자 1403경기[4] 참고로 이들 중 원 클럽 맨은 마르티네즈가 유일하다. 그의 계보를 펠릭스 에르난데스, 카일 시거가 잇는다.[5] 만약 스테로이드 시대가 아니었다면 그의 출루 능력과 타격 능력이 더 고평가 받아 명예의 전당에 7턴 이내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6] 데뷔가 늦었고 선수 생활 18시즌의 1/3인 6시즌을 100경기 미만 밖에 출전하지 못해서 누적스탯은 다소 아쉽지만 진짜 압권은 비율스탯이다. wRC+ 147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유명 선수들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호너스 와그너와 같고 청정타자로서 600홈런을 기록한 짐 토미와 90년대 최고급 오른손 타자였다는 알버트 벨, 3000안타-600홈런을 기록한 알버트 푸홀스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런 무지막지한 비율스탯 덕에 거듭된 부상과 늦은 데뷔, dWAR에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지명타자의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통산WAR이 68.4(bWAR)/65.5(fWAR) 로 매우 준수한 편이다. 약쟁이 타자들이 활개를 치던 1990년대에 주로 활동했으니 리그 평균과의 비교로 산출되는 OPS+나 wRC+에서도 손해를 봤다.[7] 당시 에드가보다 1살 많았던 주전 3루수 짐 프레슬리는 1985년에 풀타임 3루수로 등장해 3년 연속 20홈런을 넘겼지만 이른바 공갈포로 갈수록 스탯이 떨어졌으며 결국 FA 1년을 앞두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트레이드로 시애틀을 떠났다. 당시 주전 DH인 켄 펠프스는 장타력은 떨어졌지만 출루능력이 좋았던 베테랑이라 에드가가 주전 자리를 따내지 못했다. 여담으로 이 켄 펠프스는 뉴욕 양키스와의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는데 이 딜에서 매리너스는 강견 강타의 우익수 제이 뷰너를 데려온다.[8] 알버트 벨과 공동 1위[9] 이 당시 MVP가 3위였는데, 2위였던 알버트 벨이 홈런 1위, 타점 1위, 득점 1위해서 이해는 하는데 1위가 모 본으로 타점 1위. 문제는 이거 빼곤 내놓을 스펙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세이버 매트릭스까지 첨가하자면 WAR에서 에드가가 7.0, 벨이 6.9 거기까진 괜찮은데 모 본은 WAR가 4.3으로 한참 밀려버린다.[10] 유일하게 1999년에 86타점으로 세자릿수 타점에 실패[11] 그로 인해 양키 암흑기를 대표하던 프랜차이즈 스타 돈 매팅리가 주전 자리를 잃게 되어 빠르게 은퇴하게 된다.[12] 약쟁이들이 끼어있기는 하지만 7명 모두 500홈런은 가뿐히 넘겼고 700홈런을 넘긴 타자가 1명, 600홈런을 넘긴 타자가 4명이다(...). 그들 중 두 명과 같이 뛰었으니 그 당시 시애틀 타선의 위력은...[13] 명예의 전당에 안정적으로 입성할 수 있는 조건으로 뽑히는 3000안타-500홈런에 못미치는 2247안타, 309홈런 기록. 에드가 마르티네즈는 만 27세 시즌이 되어서야 제대로 풀타임을 뛰기 시작했고, 30-31세 시즌을 부상으로 날려 버렸기에 누적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다만 오히려 그렇게 늦게 커리어를 시작했는데도 그만한 누적을 기록한 것이 놀랍다는 재평가를 받으며 득표율이 오른 경향도 있다.[14] 에드가의 뒤를 이을 특급 지명타자로는 데이비드 오티즈가 꼽히긴 하지만, 이쪽은 금지약물 복용 전과가 있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 떡밥에서는 애초에 논외 대상이어야 하지만 첫 턴에 입성해서 논란이 되었다.[15] 하지만 마르티네스는 시애틀의 원 클럽 맨인데, 시애틀은 원 클럽 맨이 투표에 이름만 올려도 영구 결번 시켜주는 걸 원칙으로 함을 감안할 때 이땐 이미 영구 결번이 되고 한참 지난 시기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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