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트 베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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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제2대, 4대 대통령
에드바르트 베네시
Edvard Beneš


파일:Edvard_Beneš.jpg

출생
1884년 5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display: none; display: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행정구
]]
코줄라니
(現 체코 플젠주 코줄라니)
사망
1948년 9월 3일 (향년 64세)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세지모보우스티
서명
파일:에드바르트베네시서명.png
정당
체코 국민사회당

1. 개요



1. 개요[편집]


체코슬로바키아의 제2대, 4대 대통령. 1884년 5월 28일 체코(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헤미아 왕국 코즐라니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체코에서 오헝제국에 대항한 레지스탕스 조직인 '마피아(Maffia)'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1915년 파리에 망명해 있는 동안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인정받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후 파리 강화 회의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로 참석했으며, 생제르맹 조약으로 오헝 제국이 해체되고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해 체코슬로바키아가 세워진 후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가 평의회 비서와 외무장관을 맡았다. 베네시는 국제 연맹의 회원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1935년 12월 18일 체코슬로바키아의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민족자결주의를 구실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침공하자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의 중재로 뮌헨 협정이 열렸다. 베네시는 나치의 주데텐란트 합병을 반대했지만 그의 의사는 뮌헨 협정에 반영되지 못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평화를 대가로 나치 독일의 주데덴란트 합병을 묵인하기로 결정했다. 뮌헨 협정이 체결된 후 베네시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고[1] 런던으로 망명하였다. 1939년 체코가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이 되고 슬로바키아가 괴뢰국으로 전락한 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를 수립했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그는 점령지의 독일 장교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암살을 계획하는 등 독일에 저항하는 한편, 소련과 친선을 맺었다.[2]

1945년 봄에 귀국한 베네시는 제3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베네시 법령(대통령령에 의한 긴급명령의 포고)을 잇따라 포고해 체코슬로바키아 국내의 독일인들과 헝가리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한편으로[3] 공산주의자인 클레멘트 고트발트를 총리로 임명하여 연합정부인 국가전선을 수립했다.처음에는 그런대로 굴러가는듯했지만 1947년 체코슬로바키아가 미국마셜 플랜 지원을 받으려다 소련의 압박으로 거부하여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지지율이 하락일로를 다니자 마셜 플랜을 수락하려 한 베네시의 체코슬로바키아 독자화의 행보와 차기 총선에서 공산당이 패배할 것을 우려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소련의 사주를 받아 1948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결국 많은 비공산주의 정치인들이 사임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인민민주주의 헌법에 바탕한 제4공화국을 수립했다. 인민민주주의 헌법의 비준을 거부한 베네시는 1948년 6월 27일에 공산당의 압력으로 사임했고, 고트발트가 차기 대통령이 되었다. 건강이 나빠진 그는 1948년 9월 3일에 자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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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직은 에밀 하하가 물려받았다.[2] 이해관계에 따라 맺은 것으로, 베네시가 공산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3] 이 포고령으로 인해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에 소유하고 있던 리히텐슈타인 본토의 10배가 넘는 1,600평방킬로의 영지가 몰수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