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안토니 리처드 루이

덤프버전 : r20240101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안토니 리처드 루이
Prince Edward, Duke of Edinburgh

파일:HRH-Prince-Edward-The-Earl-of-Wessex-KG-GCVO.jpg
이름
에드워드 안토니 리처드 루이
(Edward Antony Richard Louis)
출생
1964년 3월 10일 (60세)
잉글랜드 런던 버킹엄 궁전
신체
183cm
학력
고든스턴 스쿨 (졸업)
케임브리지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 (역사학 / 학사)
배우자
소피 리스존스 (1999년 결혼)
자녀
장녀 루이즈, 장남 제임스
아버지
에든버러 공작 필립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형제
찰스 3세, 누나 , 형 앤드루
계승 서열
14위
종교
성공회 (잉글랜드 국교회)
서명

[ 군사 경력 ]
복무
영국 해병대
1986년 ~ 1987년
최종 계급
장교후보생


1. 개요
2. 작위
3. 생애
4. 가족관계
4.1. 조상
4.2. 자녀
5. 여담



1. 개요[편집]


영국왕자. 엘리자베스 2세에든버러 공작 필립의 3남 1녀 중 3남이자 막내이다. 큰형 찰스 3세와 무려 16살 차이, 누나 앤 공주14살 차이가 나며, 바로 위의 작은 형 앤드루 왕자와도 4살 차이로 어느정도 터울이 있다. 이 때문에 첫째 조카 피터 필립스와는 13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현재 유지니 공주의 차남 어니스트 브룩스뱅크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4위다.

2. 작위[편집]



  • 에드워드 왕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Edward (1964년 3월 10일 ~ 1999년 6월 19일)
  • 웨식스 백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Earl of Wessex (1999년 6월 19일 ~ 현재)[1]
  • 에든버러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Edinburgh (2023년 3월 10일 ~ 현재)

1999년 결혼하면서 웨식스 백작에 서임되었다. 아버지의 에든버러 공작 작위를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왕자들이 공작(Duke)에 서임되는데 반해 백작에 서임되었다.

2014년 스코틀랜드 장로회 총회 고등판무관(The Lord High Commissioner to the General Assembly of the Church of Scotland)직을 수행했다. 스코틀랜드에서의 작위는 별도로 없었다가 2019년 55세 생일에 포퍼 백작 작위를 받았다.

2023년 3월 10일, 59세 생일을 맞아 에든버러 공작위를 받았다. 에든버러 공작위는 필립 공이 사망하고 우선 장남 찰스 3세가 이어받았고, 후에 찰스 3세가 즉위하고 공작위를 받게되었다. 그러나 보통 공작위가 장남에게 세습되는 것과 달리 장남인 제임스 마운트배튼윈저는 후에 에든버러 공작위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는 찰스 3세의 왕실 축소와 관련이 있다.

3. 생애[편집]



파일:Queen Elizabeth with children.jpg

출생 직후 여왕의 침실에서[2]
1964년 3월 10일, 버킹엄 궁전에서 아버지 필립 공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어났다. 엘리자베스 2세가 여성 잡지에서 아버지가 출산에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을 열심히 읽었고 이에 매혹되어 필립에게 산실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이에 따라 에드워드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태어난 최초의 왕족이 되았다. #

1964년 5월 2일, 윈저 성의 개인 예배당에서 성공회 유아 세례를 받았다. 대부모는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켄트 공작 에드워드의 부인 캐서린 월슬리, 고모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공주, 에른스트 루트비히의 차남 헤센의 공자 루트비히, 이모부 앤터니 암스트롱존스이다.

1964년 6월, 엘리자베스 2세의 생일 기념 행사인 군기분열식에 처음으로 참석했으며, 이 때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당시 여왕은 출산한 지 3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말을 타고 군기분열식에 참여했었다.



켄싱턴 깁스 스쿨 첫날
헤더다운 스쿨 첫 등교
어릴 때는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가정 교사와 함께 버킹엄 궁전에서 조기 교육을 받았다. 이후 1969년 10월 켄싱턴의 깁스 스쿨에 입학했으며, 1972년 9월부터 작은 형 앤드루 왕자가 재학하고 있던 헤더다운 스쿨에 다녔다.

아버지와 두 형이 그랬듯 스코틀랜드의 고든스턴 스쿨에 다녔다. 학교에서 학생 대표를 하기도 했다. 영국의 대입 입학 시험인 A레벨에서는 영어 C등급, 역사와 정치에서 각각 D등급을 취득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입학에 성공해 특혜 입학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 뉴질랜드의 한 학교에서 튜터 일을 하면서 갭 이어[3]를 가졌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지저스 컬리지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특히 재학 중 연극에 무척 관심이 많아 여러 작품에 참여했었다.

1986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군 복무를 하는 왕실 전통에 따라 영국 해병대에 입대했다. 미래의 복무를 조건으로 영국 해병대로부터 대학시절 학자금을 지원받기도 했었다. 앞서 큰 형 찰스 3세도 대학 졸업 후 영국 해군에 입대해 복무를 마쳤으며, 작은 형 앤드루 왕자포클랜드 전쟁까지 참전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입대한 에드워드는 12개월 훈련 기간 중 3분의 1만 하고는 그만두고 나와 논란이 있었다.[4]

그만 둔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매체에서는 힘든 해병대 훈련을 못 견뎌 그만두었다는 말들이 있었다. 다만, 당시 여론 조사의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영국 언론 및 사람들이 '에드워드 왕자의 미래는 에드워드만의 일'이라면서 그의 이 같은 결정에 공감해주었다. 또한 아버지 필립이 소리치고 화를 많이 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사실은 왕실 안에서 그의 결정에 제일 공감을 많이 해줬다고 한다. 반대로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냉소적이었다고. 누나 앤 공주도 반대했겠지만, 언론의 관심을 피해 런던에서 2시간 떨어진 자신의 집에 머무르라고 제안하는 등 그녀의 방식대로 동생을 살폈다고 한다.

대신에 대학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여왕의 환갑을 기념해 에드워드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팀 라이스에게 뮤지컬을 의뢰했었는데,[5]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극단에 들어가 제작 어시스턴트 일을 하게 되었다.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등 큰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1993년 TV 프로그램 제작사 'Ardent Productions'를 세웠는데, 결과물들이 좋지 않아 혹평을 들었다. 사실 자신의 회사를 세우기 전에 제작한 프로그램들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1999년 결혼한 후에도 회사를 계속 운영했는데, 2001년 자신의 회사 카메라맨이 당시 대학에 들어간 윌리엄 왕자를 몰래 따라다니다가 걸리면서[6] 맏형 찰스 3세에게 엄청 혼나고 결국 사업을 정리했다.


파일:PA-43612609_321558912_578736002-01.jpg

파일:67260760_2532026443485837_6660136928991510528_n.jpg
1999년 결혼식
2019년 가족사진
1999년 6월 19일, 윈저 성 성 조지 성당에서 소피 리스존스와 결혼했다. 1993년 한 자선 행사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 소피 리스존스는 평범한 집에서 자란 평민 출신으로 당시 홍보대행사를 운영하는 커리어우먼이었다. 큰 형, 누나, 작은 형 모두 이혼했기 때문에 이들의 결혼과 결혼 생활에 많은 관심이 쏠렸었다.

2001년 4월, 부인 소피가 자신이 운영하는 홍보대행사에 고객으로 위장해 온 기자의 함정 취재에 걸려드는 일이 있었다. "소피가 (고객인 줄 알았던 그 기자에게) 시가인 왕실 식구들, 영국 정치인들의 뒷담화를 했다"면서 그 내용이 기사에 난 것. 왕실에서는 "그 기사 내용은 왜곡되었으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일이 있고 몇 달 후 앞서 서술한 에드워드 회사의 윌리엄 취재 사건까지 겹치면서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사적인 회사를 내려놓았고, 2002년부터 공식적으로 왕실 직책을 맡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003년 11월 8일, 첫째이자 장녀인 루이즈를 얻었고, 2007년 12월 17일, 둘째이자 장남인 제임스를 얻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39세, 43세로 다른 형제들보다 늦은 나이에 아빠가 된 편이다. 그래서 현재 두 형, 누나의 자녀들은 전부 결혼까지 한 성인들인데 비해 에드워드의 자녀들은 아직 어린 편이다.[7]

2014년,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열린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금장총회에 참석했고,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도 찾았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하고 있는 영국 군수지원함(MARS프로젝트) 4척이 제대로 건조되고 있는지 점검했다고 한다.

2017년, 아버지 필립 공이 공식적으로 은퇴하면서 에드워드가 아버지의 주요 업무들을 이어서 맡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자녀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혼을 하지 않고 무난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찰스 3세가 즉위한 후에도 여전히 왕실 공무를 맡고 있으며, 현재 조카인 해리 왕자와 작은 형 앤드루 왕자[8] 공무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윌리엄 왕세자의 자녀들이 아직 미성년자인 탓에 서열상으로 낮은 에드워드 왕자까지 공무에 참여하고 있다. 2022년 2월부터는 이전에 아버지 필립 공이 맡았던 로열 윈저 홀스 쇼의 총재직을 맡고 있다. 이후 에든버러 공작으로 서임되면서 생전 아버지 필립 공이 주관했던 자선 사업들까지 에드워드 왕자가 이어받았다.

2023년 7월 9일, 영국군 근위대의 예비군 부대인 제1런던 연대의 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에드워드 왕자가 군사 관련 공무를 맡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9]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Prince Edward,
Duke of Edinburgh)

에든버러 공작 필립
(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
(Prince Andrew
of Greece and Denmark)

요르요스 1세
(George I)
러시아의 여대공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Grand Duchess Olga Constantinovna of Russia)[10]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
(Princess Alice of Battenberg)
바텐베르크의 공자 루트비히
(Prince Louis of Battenberg)
헤센 대공국의 공녀 빅토리아
(Princess Victoria of Hesse and by Rhine)[11]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조지 6세
(George VI)
조지 5세
(George V)
테크의 메리 공녀
(Princess Mary of Teck)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Elizabeth Bowes-Lyon)
14대 스트래스모와 킹혼 백작
클로드 보우스라이언
(Claude Bowes-Lyon,
14th Earl of Strathmore and Kinghorne)

세실리아 캐번디시벤팅크
(Cecilia Cavendish-Bentinck)


4.2. 자녀[편집]


자녀
이름
출생
1녀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
(Lady Louise Mountbatten-Windsor)
2003년 11월 8일
1남
웨식스 백작 제임스 마운트배튼윈저
(James Mountbatten-Windsor, Earl of Wessex)
2007년 12월 17일


5. 여담[편집]



  • 1987년에 'Royal Knockout'이라는 자선 게임쇼를 직접 기획해 방영한 적이 있다. 1982년까지 영국에서 방영되었던 게임쇼 'It's a Knockout'을 본따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왕족들과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연해 게임을 벌인 후 성금을 모으는 형식이었다. 앤 공주앤드루 왕자, 사라 퍼거슨이 주장으로 출연했으며,[12] 심사위원은 무려 에버콘 공작과 웨스트민스터 공작, 글로스터 공작이었다. 총 1,800만명이 시청했고, 150만 파운드의 성금을 모으는 기록을 세웠으나, 왕족들이 우스꽝스러운 코스프레를 하고 게임을 하는 모습에 당시 반응이 좋지 못했다.[13] 때문에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고 말았으며, 에드워드 왕자의 흑역사 중 하나로 남았다. 엘리자베스 2세필립 공, 찰스 3세는 해당 게임쇼를 반대했으며, 찰스 3세와 다이애나 스펜서는 출연하지 않았다.

  • 결혼 당시 엘리자베스 2세는 에드워드를 케임브리지 공작[14]으로 서임할 계획이었으나,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고 영화에 나오는 웨식스 백작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했던 에드워드가 자신을 웨식스 백작으로 서임시켜달라고 여왕에게 요청했다는 일화가 있다. #

  • 에드워드가 결혼 당시 받았던 웨식스 백작이란 작위는 외세로부터 유래한 작위였다. 크누트 대왕에드먼드 2세를 무찌르고 잉글랜드의 왕관을 차지한 뒤 자신을 도왔던 간신 고드윈[15]에게 준 작위로 크누트가 잉글랜드를 비울 때는 그 자리를 대리할 정도의 권신이었다. 웨식스 왕조의 마지막 왕 참회왕 에드워드는 평생을 고드윈과의 권력 다툼으로 보냈을 정도이다.

  • 늦둥이 막내아들로서 가족들의 귀여움을 받고 후계자라는 책임감도 없이 자라서 그런지 젊은 시절부터 매우 오만한 성격이였다고 한다.[16] 다만, 버킹엄 궁전 고용인들에게는 유쾌하고 친절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 20대 당시에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극단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루디 헨샬과 몇 년간 교제했다.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왕가 가족들에게 헨샬을 소개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정도로 꽤 진지한 관계였으나, 헨샬이 에드워드 왕자와 결혼하면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해 결국 헤어졌다고 한다. 이후 에드워드 왕자는 현재 부인인 소피 리스존스를 만나 6년간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이 결혼식에 루디 헨샬이 약혼자와 함께 참석했었다.

  • 1994년 '에스토니아 독립근왕당(Independent Royalist Party of Estonia)'[17]으로부터 에스토니아 국왕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

  • 2018년 영국 왕실 최초로 '동성 부부'가 된 이바르 마운트배튼의 결혼식[18]에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19] 이바르 마운트배튼은 에드워드 왕자의 딸 루이즈의 대부일 정도로 에드워드 가족과 가까운 사이이며, 이바르의 아버지인 데이비드 마운트배튼[20]은 에드워드 왕자의 대부였다.[21]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9 02:47:02에 나무위키 에드워드 안토니 리처드 루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현재 아들 제임스가 예우 경칭으로 사용 중.[2] 처음으로 여왕의 침실이 공개된 사진이다. 버킹엄 궁전 내의 벨기에 스위트룸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각국 정상들이 영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숙소로 제공하고 있는 방이다. 박근혜가 대통령 시절 영국에 방문했을 때도 해당 방에 머물렀다.[3] 대학 입학을 미루고 1년동안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면서 적성과 진로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갖는 걸 말한다.[4] 이 일로 인해 에드워드는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군사 관련 직책이나 공무를 맡은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영국 근위대 연대장 직책을 맡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형 찰스 3세의 즉위 이후로는 제1런던 연대의 연대장으로 임명되는 등 군사 관련 공무를 맡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왕자가 해병대 복무를 중단한 후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데다가, 앤드루 왕자해리 왕자가 왕실 공무에서 제외되면서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고위 왕족의 수가 줄은 것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5] 'Cricket'이라는 30분 분량의 짧은 뮤지컬이 제작되었다. 윈저 성에서 첫 공연이 열렸다.[6] 윌리엄이 대학에 진학한 후, 찰스 3세는 윌리엄의 대학 생활에 대한 취재나 사진 촬영을 금지시켰다. 그런데 삼촌의 회사가 이를 어긴 것.[7] 마지막으로 남은 조카딸 베아트리스 공주가 2020년 7월 중순에 결혼식을 올렸기에, 루이즈와 제임스를 제외한 여왕의 손주들이 전원 기혼자가 되었다.[8] 해리 왕자는 왕실에서의 독립 문제, 앤드루 왕자는 성추문 문제.[9] 에드워드 왕자는 같은해 6윌 열린 찰스 3세 생일 기념 군기분열식 행사에서도 근위대 정복을 입고 사열을한 바 있다.[10] 니콜라이 1세의 손녀이다.[11]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다.[12] 원래는 게임에 직접 참여시키려 했지만, 여왕이 왕족들은 주장으로만 출연하는 조건으로 게임쇼 방영을 허가해주었다고 한다.[13] 당시 언론에서 "왕족이 한 가장 바보같은 짓"이라는 평가를 했을 정도였다.[14] 후에 윌리엄 왕세자가 케임브리지 공작으로 서임되었다.[15] 헤이스팅스 전투 때 죽은 해럴드 2세의 아버지이다.[16] 어느 정도였느냐면 그나마 중요한 자리에선 예의를 갖췄던 두 형들과는 다르게 공석에서도 말투나 행동에서부터 표가 났을 정도이다.[17] 당시에는 무려 원내 정당이었다.[18] 초혼은 아니고 1994년 결혼하여 2011년에 이혼한 전처 사이에 세 딸이 있다.[19] 영국 왕실의 일부 일원들은 성소수자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윌리엄 왕자는 본인의 아이들이 만약 동성애자라면 전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리 왕자 부부 또한 LGBT에 대한 지지를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20] 3대 밀포드헤이븐 후작, 1919~1970 : 슬하 2남을 두었는데 차남이 이 문단에서 언급하는 이바르 경이고, 장남이 4대 밀포드헤이븐 후작이자 현 당주인 조지(1961년생, 슬하 1남 1녀)이다.[21] 데이비드 마운트배튼은 필립 마운트배튼과 사촌 지간이다. 또한 엘리자베스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 에드워드 7세의 증손녀이고, 필립과 데이비드 마운트배튼은 빅토리아 여왕의 차녀 앨리스 공주의 증손자이기에 이바르는 여왕의 9촌 친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