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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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머피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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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문 남우조연상
제12회
(2006년)


제13회
(2007년)


제14회
(2008년)

폴 지아마티
(신데렐라 맨)

에디 머피
(드림걸즈)


하비에르 바르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역대 새턴상 시상식
파일:saturn-award.png
영화 남우주연상
제22회
(1995년)


제23회
(1996년)


제24회
(1997년)

조지 클루니
(황혼에서 새벽까지)

에디 머피
(너티 프로페서)


피어스 브로스넌
(007 네버 다이)




에디 머피
Eddie Mur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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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에드워드 리건 머피
Edward Regan Murphy
출생
1961년 4월 3일 (62세)
미국 뉴욕브루클린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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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5cm
가족
아버지 찰스 에드워드 머피(1940 ~ 1969)
어머니 릴리안 머피
형 찰리 머피(1959 ~ 2017)
배우자 니콜 미첼 머피(1993 결혼 – 2006 이혼)
[ 자녀 10명 ]
아들 에릭 머피(1989년생)[1]
딸 브리아 머피(1989년생)[A]
아들 크리스찬 머피(1990년생)[2]
아들 마일스 머피(1992년생)[A]
딸 쉐인 오드라 머피(1994년생)[A]
딸 졸라 아이비 머피(1999년생)[A]
딸 벨라 머피(2002년생)[A]
딸 엔젤 아이리스 머피 브라운(2007년생)[3]
딸 이지 우나 머피(2016년생)[B]
아들 맥스 찰스 머피(2018년생)[B]

학력
나쏘커뮤니티대학
직업
코미디언, 배우, 가수, 성우, 영화 감독, 프로듀서
활동
1976년 ~ 현재
링크
파일:IMDb 로고.svg

1. 개요
2. 경력
3. 여담
4. 출연 작품
4.1. 영화
4.2. 애니메이션
4.3. 뮤직비디오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의 코미디언, 배우, 가수, 성우, 영화 감독, 프로듀서. 흑인 배우 역사상 처음으로 1,000만 달러 이상의 개런티를 받았다. 더불어 영화 역사에 있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소득을 올린 배우이기도 하다.


2. 경력[편집]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고정 멤버로, 이 쇼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의 유명 방송사 코미디 센트럴(Comedy Central)이 선정한 100 Greatest Stand-ups of All Time[1] 중 10위에 올랐었다.

1982년에 48시간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는데, 대박 흥행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그 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신인 배우상 후보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히트 배우로 부상했다. 이후로도 구혼작전, 대역전, 비버리 힐스 캅, 너티 프로페서로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둬들였다. 동시에 골든 글로브 코미디 뮤지컬 최고 배우상 후보에 올랐다. 그가 주연으로 나온 1980년대 영화 중 평가는 극악이던 <골든 차일드> 조차도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에디 머피는 상당수의 출연작에서 일인다역을 소화하곤 했다. 특히 영화 너티 프로페서에서는 메인 캐릭터에 더하여 아버지, 형, 어머니, 할머니 역으로 일인다역을 맡았다. 이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기타 다른 영화에서 일인다역을 한 피터 셀러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서 한 것이었다.

영화 데뷔 이전 코미디언 출신이었고 [2] 베벌리 힐스 캅이나 닥터 두리틀 등 여러 코미디물 영화에서의 영향으로 코미디 전문 배우 인식이 있지만 의외로 진지한 연기도 잘하는 편이다. 2016년작 미스터 처치에서 요리사 처치를 진지하게 연기해내 관객들에게 이거 에디 머피의 연기가 맞냐며 호평을 받았다. 또 2019년작인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로 인해 다시 한번 연기파 배우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 2000년대에 와선 흥행 배우로서 조금 들쑥날쑥했다.[3] 플루토 내쉬 같은 영화는 엄청나게 망한 바 있고[4], 노르빗이나 드림 걸즈, 대디 데이 케어 같은 영화는 그래도 꽤 성공하였지만... 2008년작인 미트 데이브나 2009년작인 이매진 댓이 제작비 절반도 못 버는 참패를 연이어 겪었다. 그나마 동키 목소리를 연기한 슈렉 시리즈가 계속 흥행에 성공하였다.

2007년에 영화 드림 걸즈의 소울 가수 제임스 선더 얼리의 연기로 골든 글로브 최고 조연배우상을 받았으며, 같은 역할로 아카데미 최고 조연배우상의 후보에 올랐다.

2010년 30회 골든 라즈베리 영화에서 10년동안의 최악 남우주연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5]

2019년엔 그동안의 부진을 씻어내고 다시 명예 회복을 하기 위해서인지, 31년만에 미국 SNL에 출연했다. 33년만에 나온 <구혼작전> 의 속편인 <구혼작전 2(Coming 2 America)>으로 오랜만에 메이저 영화에 돌아왔다. 해당 작품은 극장에 개봉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로 2021년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넷플릭스와 파라마운트의 협업으로 자신의 대표작인 베벌리 힐스 캅 시리즈에 4편으로 돌아온다.#

개요 문단에 적힌 것처럼 가수 활동도 했다. 유명 흑인 뮤지션 Rick James에 의해 프로듀싱된 그의 1986년 싱글 "Party All the Time"은 빌보드 핫 100 2위, 1986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도 7위에 올랐다. 에디가 얼마나 유명하고 다재다능했던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에디는 1980년대 중반 당시 코미디언, 배우, 가수 경력 모두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3. 여담[편집]


  • 아이가 열 명이라고 한다. 이혼 및 여러 가지 가정사로는 시끄러운 편이다.


  • 한국에서는 이인성이 전담 성우[6]를 맡고 있는데, 언제나 뛰어난 초월더빙을 선보인다. 동키 목소리를 들어본 드림웍스 간부들이 머피가 한국어로 말하는 목소리라며 놀라워했다는 후문이 있다.

  • 한국에선 흥행배우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배우이다. 비버리 힐스 캅이 1985년 한국 개봉하여 서울관객 25만 7천명으로 당시 기준 흥행성공한 게 유일하며 2,3편은 서울 10만도 못 넘겼으며 이후로도 아이스파이나 메트로가 서울 10만을 넘긴 게 전부일 정도이다.


  • 2살 위인 형 찰리 머피가 2017년 4월 12일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 2021년 흑인 인권 단체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 1984년에 스탠드업 공연에서 게이들이 뽀뽀로 여자인 친구들을 에이즈에 전염시키고 있고 결과적으로 그 여자친구들의 남자친구들을 죽이고 있다고 농담한 적이 있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항의한 것은 물론이고, 일부 음반 가게에선 보이콧 표시로 머피와 관련된 음반들을 매대에서 다 빼내기도 했다.



4. 출연 작품[편집]



4.1. 영화[편집]


  • 48시간, 48시간 2 - 레지 역
  • 대역전 - 빌리 역
  • 비버리 힐스 캅 시리즈 - 엑셀 폴리 역
  • 골든 차일드 - 챈들러 역
  • 구혼 작전 1~2 - 아킴 왕자 역
  • 할렘 나이트 - 퀵런치 역
  • 헌티드 맨션 - 짐 에버스 역
  • 미트 데이브 - 데이브 밍 챙 역
  • 데디 데이 케어 - 찰리 역
  • 부메랑 - 마르코 역[7]
  • 너티 프로페서, 너티 프로페서 2 - 셔먼 클럼프 교수 역
  • 드림걸즈 - 제임스 얼리
  • 타워 하이스트 - 슬라이드
  •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 - 루디 레이 무어 역
  • 닥터 두리틀 1, 2 - 존 두리틀 역[8]


4.2. 애니메이션[편집]




4.3. 뮤직비디오[편집]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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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 최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100인[2] 1987년까지는 코미디언이었다. 영화계 데뷔 이후에도 1987년 코미디계 은퇴 전까지는 절대로 본업인 스탠드업 코미디를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영화도 하면서 스탠드업도 했다. 1983년과 1987년에 한 그의 코미디 스페셜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극장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영화가 아니고 말 그대로 에디의 코미디 장면을 찍은 것. 아주 큰 공연장에서 했다.[3] 사실 과거의 명성 때문에 개런티는 여전히 높은데 반해 흥행은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출연료가 과하게 측정된 배우" 리스트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2년에 포브스가 몸값이 가장 지나치게 높은 배우로 선정했을 정도이다. 2013년 기사(#)에 따르면 당시 그가 2012년에 찍은 세 영화에서 받은 1달러 당 박스오피스 수익이 2.3달러에 불과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수익을 낸 것 같아 보이지만 극장과 수익을 나누기 때문에 총 제작비(홍보비를 포함한)의 두배는 벌어야 본전이다. 게다가 저건 영화 제작비가 아니라 머피의 순수 출연료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작비 대비 수익은 훨씬 내려갈터...결국 2012년 한정으론 평균적으로 본전치기도 못 치는 배우였다는 소리.[4] 에디 머피 영화 인생에서 가장 망했고 그 해 최악의 참패이던 영화다. 제작비 1억 달러 이상을 들여 만들어서 미국 흥행은 고작 440만 달러... 전세계적으로 채 1000만 달러도 못 벌었다. 《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 사랑》으로 제작비 10배 가까운 세계적 대박을 거뒀던 감독 론 언더우드는 이걸로 그야말로 감독 경력이 박살났고, 그뒤론 주로 드라마 및 TV 영화 감독을 하고 있다.[5] 참고로 그 해 최악의 감독, 영화, 남우주연상은 트랜스포머 2가 휩쓸었다.[6] 닥터 두리틀에선 코미디언 김국진이 에디 머피 더빙을 맡아 개봉했으나 욕만 먹었다. TV에 방영할 땐 당연히 이인성이 연기했다. 그 밖에도 주말의 명화에서 1달러의 도박(원제는 트레이딩 플레이스/비디오 제목은 대역전(1983))에서 에디 머피를 연기했으나, 그 다음 주에 방영한 48시간에선 이인성이 닉 놀테를 연기하고 탁재인이 에디 머피를 연기하면서 뭔가 뒤바뀐 느낌을 주었다. 나중에 SBS로 방영한 48시간 2에선 다시 이인성이 머피를 연기했다.[7] 당시 영화계에서 떠오르는 신인이던 할리 베리와 같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또한 이 영화는 영화의 주제가 Give U My Heart를 베이비페이스토니 브랙스턴이 같이 불렀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8] 1편과 2편에서 주연을 맡았고 3편부터는 출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