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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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h Wolfgang Korngold( 1897. 5. 29. ~ 1957. 11. 29.)

1. 개요
2. 생애
2.1. 오스트리아의 신동
2.2. 실내악 작곡
2.3. 12음 기법에 대한 거부
2.4. 영화음악의 길
2.5. 이제 신동이기에 늦은 나이
3. 작품의 특징
4. 주요 작품
4.1. 관현악곡
4.2. 협주곡
4.3. 실내악
4.4. 피아노곡
4.5. 합창곡
4.6. 가곡
4.7. 오페라
4.8. 영화음악



1. 개요[편집]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로, 초기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된다.[1]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2. 생애[편집]



2.1. 오스트리아의 신동[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륀[2]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인으로 유명한 음악비평가였고 이 때문에 코른골트는 작곡만 하면 '아버지가 쓴 것 아니냐?'라는 말을 자주 들어야 했다. 아버지는 코른골트와 형에게 각각 '볼프강'과 '로베르트'라는 이름을 내렸다.[3]

코른골트의 음악적 조숙성은 가히 펠릭스 멘델스존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코른골트는 무려 7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는데, 이미 후기 낭만주의의 작곡 기교를 자랑하였다. 코른골트가 칸타타 '황금'을 작곡하던 9살이 되었을 때 말러는 천재라고 칭찬했으며, 말러는 코른골트에게 자신의 친구였던 쳄린스키[4] 밑에서 작곡을 배울 것을 권유했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 발레 작품 '눈사람'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을 보고 "첫 번째 느낌은 놀라움과 이런 조숙한 천재가 정상적인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걱정이었다. 스타일의 확고함, 형식의 완전한 파악, 피아노 소나타의 독특한 표현, 하모니... 정말 놀랍다."라고 격찬했다.

작곡은 계속되었는데 13살 때는 피아노 3중주 Op.1을, 15살에는 '신포니에타'를 작곡하였다.[5] 신포니에타를 들은 시벨리우스는 "코른골트는 젊은 독수리다. 그야말로 우리들의 미래다."라고 극찬했으며, 어떤 비평가는 "코른골트는 새로운 음악 질서를 확립할 것이다. 우리의 화성학과 대위법의 책을 불태워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2.2. 실내악 작곡[편집]


코른골트는 이후에도 계속 작곡을 했는데, 1911년에는 연극 서곡 Op.4, 1913년에는 바이올린 소나타 G장조 Op.6을 작곡을 하는 등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후 1920년이 되기 전까지 세 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1915년에는 오페라 비올란타를, 1916년에는 폴리크라테스의 반지[6]를, 1920년에는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7] 작곡하였다.

실내악에서도 성과가 계속 나왔는데, 1917년에는 현악 6중주 D장조를, 1920년에는 현악 4중주 1번을 작곡하는 등 실내악 분야에서도 자기만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현악 6중주는 바그너의 반음계주의적인 화성을 보여주는 등 실내악에서 바그너의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코른골트는 문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1919년에는 부수음악 '헛소동'을 작곡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3. 12음 기법에 대한 거부[편집]


1921년에는 쇤베르크가 '12음 기법'을 고안한다. 즉 이것을 사용하면 기존의 조성 체계를 혁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쇤베르크가 영향력을 행사하던 국제음악협회는 신동으로 알려진 코른골트에게 신음악에 동참해 줄 것을 권유했으나, 코른골트는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쇤베르크는 전통 안에서 자신의 독창성을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파괴해버린 것이다."[8] 코른골트는 후기 낭만주의의 연장선에서 자신만의 발전을 꾀할 것을 천명했다. 이는 12음 기법 작곡가들이나 신고전주의 작곡가들 모두에게 시대에 뒤진 것으로 받아들여졌고,[9] 코른골트는 젊은 나이에도 점차 구시대적 작곡가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 낙인은 미국에서 할리우드 영화음악을 작곡할 때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2.4. 영화음악의 길[편집]


26세가 되던 1923년에는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C샤프 장조를 작곡하였고, 1924년에는 루이제 코른골트(1900~1962)와 결혼하였다. 결혼을 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자립이 필요해졌고, 이것은 영화음악을 위한 작곡에 매진하는 원인이 되었다. 영화음악 작곡을 시작하기 전까지도 작곡은 여전히 계속되었는데, 1929년에는 관현악을 위한 아기 세레나데, 1930년에는 오른팔을 잃은 파울 비트겐슈타인[10]을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 4중주를 작곡해 주었다. 1933년에는 현악 4중주 2번도 작곡하였다.

1년 뒤인 1934년에는 자기와 함께 일하던 한 연출자로부터 제의를 받았는데, 이것은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 영화음악 작곡에 매진하였는데, 이것으로 아카데미 상을 두 번이나 탈 정도로 헌신적으로 작곡하였다. 1935년에 영화음악 '한 여름 밤의 꿈', 1936년에 안소니 어드버스[11], 1937년에는 '왕자와 거지'를 작곡하였다. 1938년에는 고국으로 돌아와 오페라를 잠깐 지휘를 했는데, 워너브라더스에서 로빈 후드에 관한 영화음악을 작곡할 것을 제의하자, 곧바로 미국으로 갔다. 이 결정은 자기의 생사가 오가는 결정이었다. 코른골트가 미국으로 도착한 순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기 때문이다.[12]

영화음악 로빈 후드 모험을 작곡한 것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였다. 1943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고, 1945년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작곡하였다. 이 때 코른골트는 한 작곡가로부터 "에리히, 우리가 워너에서 함께 지낸지 10년 되었는데 내 작품은 갈수록 좋아지고 당신의 작품은 점점 나빠지네요."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듣고 "왜 그런지 말해줄까? 나는 당신 것에서 훔치고 당신은 내 것에서 훔치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하였을 정도로 코른골트는 유머와 위트가 넘쳤다.


2.5. 이제 신동이기에 늦은 나이[편집]


아버지가 1945년에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영화음악에 매진한 코른골트를 보면서 '진정한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 했다. 코른골트는 영화음악만 작곡하는 자신을 보고 작곡가로서의 위기감을 느꼈다. 이때 영화사에서 "에리히, 당신이 처음 우리에게 왔을 때에는 흥미진진하고 쾌활하고 폭발적이었는데 당신의 음악은 지금은 그때와 같지는 않네요."라고 말했는데 코른골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대사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해하기 되었거든."이라고 말하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작곡할 것을 결심한 코른골트는 1945년에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다음 해인 1946년에 첼로협주곡 C장조를 작곡하였다. 1949년에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자기 작품을 지휘하였지만, 12음 기법이 점령한 빈에서는 별 반응도 없었고 냉담한 반응만 받았다.[13] 게다가 영화음악에 매진했다는 이유로 '영화음악 작곡가'라고 일단락되어버린 코른골트는 더 이상 진지한 작곡가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코른골트의 순음악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었다. 마지막까지 '클래식' 작곡가로 남길 원했던 코른골트는 1952년에는 교향곡 Op.40, 1953년에는 관현악을 위한 주제와 변주곡 Op.42를 작곡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유수의 관현악단들에 의해 연주되기는 하였으나, 신진 작곡가들이 주도하는 현대음악계에는 거의 어떤 이슈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코른골트의 생명은 꺼져가고 있었다.

1956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코른골트는 장시간 투병 끝에 그 이듬해에 사망하였다.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코른골트의 부인 루이제 코른골트는 "나와 에리히의 우정은 시작된 순간부터 이 영원한 친구를 잃은 마지막 순간까지, 내 인생은 한 편의 길고 행복한 러브스토리였다."라고 회상하였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조기를 거는 것을 본 루이제는, 그간 진지하게 조명받지 못한 남편의 생을 떠올려서였는지 "조금 늦었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5년 뒤에 루이제 코른골트도 사망하였다.


3. 작품의 특징[편집]


후기 낭만주의의 작곡가 중 거의 막바지 세대로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작곡을 하였다. 당시에는 클래식 작곡가가 영화음악을 작곡한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후에 영화음악이 아닌 곡들을 만들어내도 영화음악과 너무 유사하다고 비판받았는데[14], 현대로 들어와서는 영화음악의 기반을 마련한 작곡가이자 그 이외에도 훌륭한 멜로디와 수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선보인 마지막 낭만주의 작곡가중 한명으로서 서서히 재평가받고 있다.


4. 주요 작품[편집]



4.1. 관현악곡[편집]


  • 교향곡 F 장조 Op.40
  • 관현악을 위한 주제와 변주곡 Op.42
  • 신포니에타 B장조 Op.5
  • 연극 서곡 Op.4
  • 부수음악 헛소동 모음곡
  • 관현악을 위한 아기 세레나데
  • 교향시 '마음을 드높이' (Sursum Corda)
  • 심포닉 세레나데 Op.39


4.2. 협주곡[편집]




4.3. 실내악[편집]


  • 피아노 3중주 D장조 Op.1
  • 바이올린 소나타 G장조 Op.6
  • 현악 6중주 D장조
  • 현악 4중주 1번 A장조
  • 피아노 5중주 E장조
  • 왼손을 위한 피아노 4중주 Op.23
  • 현악 4중주 2번 E 장조
  • 현악 4중주 3번 D장조


4.4. 피아노곡[편집]


  • 피아노를 위한 발레-팬터마임 '눈사람'[15]
  • 피아노 소나타 1번 D단조
  • 피아노를 위한 6개의 소품 '돈키호테'
  • 피아노 소나타 2번 E장조 Op.2
  • 피아노 소나타 3번 C장조 Op.25


4.5. 합창곡[편집]


  • 메조소프라노, 여성합창, 관현악을 위한 “내일”
  • 테너와 여성합창과 오르간을 위한 “기도”
  • 템페스트
  • 파소버 시편


4.6. 가곡[편집]


  • 3개의 노래 Op.18
  • 3개의 노래 Op.22
  • 광대의 노래 Op.29
  • 4개의 셰익스피어의 노래 Op.31
  • 5개의 노래 Op.38
  • 빈에 대한 소네트 Op.41
  • “밤에”
  • 6개의 간단한 노래 Op.7


4.7. 오페라[편집]


  • 비올란타
  • 폴리크라테스의 반지
  • 죽음의 도시 Op.12
  • 헬레아네의 기적
  • 카트린
  • 조용한 세레나데


4.8. 영화음악[편집]


  • 한 여름 밤의 꿈, 안토니 어드버스, 왕자와 거지, 시호크, 로빈 후드의 모험 등의 여러 1930-40년대의 영화의 배경음악을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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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 영화음악, 즉 1930~40년대의 영화음악을 주도하였다.[2] 현재 체코의 브르노[3] 다들 알다시피 볼프강은 모차르트의 이름, 로베르트는 슈만의 이름이다. 다만 형은 음악의 길로 가지 않았다.[4] 아르놀트 쇤베르크를 지도한 것으로 유명하다.[5] 신포니에타는 보통 규모가 작은데 비해 이 작품은 대규모이다. 비슷한 성격을 가진 작품으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있다.[6] 불륜을 주 소재로 다루고 있다.[7] 아리아 '마리에타의 노래'가 유명하며, 이 오페라를 본 푸치니는 "독일 음악의 위대한 희망이다."라고 극찬하였다.[8] 오늘날 평론가들은 쇤베르크의 후기 낭만주의적 작품들인 '정화된 밤'이나 '구레의 노래' 등을 이미 쇤베르크가 젊은 시절에 전통적 어법을 마스터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코른골트의 항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9] 접근법은 정반대이나 둘 다 낭만주의에 대한 혁파의 방법론이다.[10] 라벨, 프로코피예프, 브리튼 등 많은 작곡가들이 이 피아니스트에게 왼손을 위한 작품을 헌정하였다.[11] 코른골트는 영화음악을 가사가 없는 오페라로 간주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 아카데미 상 수상의 주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12] 쿠르트 바일은 브르드웨이 진출로 망명하였고, 슐호프는 가스실에서 사망하였다.[13] 이 때는 진정으로 12음 기법이 젊은 작곡가들 사이에서 신고전주의를 몰아내고 '완승'을 거둔 상태였고, 따라서 후기 낭만주의적 작품은 물론 조성이 나타나는 작품이라면 발을 붙일 수조차 없었다.[14] 그 영화음악이라고 부르는 음악들이 대부분 코른골트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불성설이다[15] 작곡가에 의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편곡된 세레나데가 유명하다. 피아노곡보다는 스승 쳄린스키에 의해 관현악곡으로 편곡된 버전이 인지도가 더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