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베낭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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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프랑스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1960년부터 1961년까지 RC 스트라스부르 감독을 맡았다.
2. 생애[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베낭트는 스트라이커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그 팀은 고향팀이던 FC 메스였다. 1929년까지 메스에서 활약한 베낭트는 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로 이적하였고 은퇴할 때까지 그 곳에 머물렀다. 1936년에는 RC 프랑스가 더블을 기록하면서 그의 커리어에서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1939년부터는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였고 1940년에 은퇴하였다.
2.2. 국가대표[편집]
에밀 배낭트는 초대 월드컵부터 1938년 월드컵까지 30년대에 열린 3번의 월드컵에 모두 참가한 선수이다.
하지만 초대 대회에서는 마지막 칠레전에서만 출전하였고 1934년에는 대표팀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이탈리아 구경만 하고 돌아갔다. 1938년 대회에서 드디어 골 맛을 보았는데 벨기에를 상대로 시작한 지 35초 만에 득점을 기록하였다. 이는 종전 기록인 루마니아의 아델베르트 데슈의 50초 기록을 앞당긴 것이었다.
2.3. 감독 생활[편집]
1940년에 은퇴한 에밀 베낭트는 바로 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하지만 트로피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고 1945년부터 RC 스트라스부르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재임 기간 중 스트라스부르를 3위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재계약이 불발되었다. 이후 후임 감독의 성적이 시원치 않자 스트라스부르는 다시 베낭트에게 SOS를 쳤다. 하지만 베낭트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더욱 추락하여 18개 팀 중 17위로 리그를 마무리하였다.[3] 이 일로 해임을 당한 베낭트는 니스와 친정팀 메스, FC 낭트 등에서 활동을 하였다. 마지막 감독 생활은 스트라스부르를 디비지옹 1에 진출시키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주로 스트라이커 또는 인사이드-레프트로 활약하였다. 게임 디자이너라는 별명이 붙을 수 있는 게임 리딩 능력과 함께 그를 상징하는 것은 킥 능력이었다. 특히 프리킥 능력이 일품이었다 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에드몽 델푸르, 에티엔 마틀레르와 함께 30년대 월드컵에 모두 출전한 3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4. 수상[편집]
4.1. 클럽[편집]
- 디비지옹 1 우승 1회: 1935-36(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
- 쿠프 드 프랑스 우승 3회: 1936, 1939, 1940(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
- 쿠프 드 프랑스 준우승 1회: 1930(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
- FFFA 파리 리그 우승 2회: 1931, 1932(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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