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야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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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야닝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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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남우주연상
-

제1회
(1929년)


제2회
(1930년)

-

에밀 야닝스
(육체의 길)
(마지막 명령)


워너 백스터
(추억의 아리조나)


역대 베니스 국제 영화제
파일:베니스 국제 영화제 로고.svg
볼피 컵 - 남우주연상
제4회
(1936년)


제5회
(1937년)


제6회
(1937년)

폴 무니
(루이 파스퇴르 이야기)

에밀 야닝스
(지배자)


레슬리 하워드
(피그말리온)






1929년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당시.
이름
에밀 야닝스 (Emil Jannings)
본명
테오도르 프레드리히 에밀 야넹츠
(Theodor Friedrich Emil Janenz)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출생
1884년 7월 23일
[[스위스|
스위스
display: none; display: 스위스"
행정구
]]
로르샤흐
사망
1950년 1월 2일 (향년 65세)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display: none; display: 오스트리아"
행정구
]]
잘츠부르크
직업
배우, 제작자
활동
1914 ~ 1945년
신장
177cm

1. 개요
2. 기타



1. 개요[편집]


독일배우이며 최초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인물. 미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독일인으로 스위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엔 아버지를 따라 선원이 되었다.

그 후 배우로 전향하여 영화에도 출연하며 미국에서 <육체의 길>로 최초의 남우주연상을 타냈다. 이후 유성영화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며 독일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나치시대에 나치선전물에 출연하고 제작한 이력 때문에 종전 후 독일에서 추방을 당하게 된다. 1947년에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획득하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간암으로 사망한다.


2. 기타[편집]


여러모로 악마의 재능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렸던 인물이다. 전성기엔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스타였으나, 최후의 걸작 푸른 천사 이후 나치 프로파간다 영화 출연으로 몰락, 지금도 푸른 천사 이후의 영화들은 나치 영화 연구자들을 제외하면 언급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영원히 언급되지 않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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