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릴 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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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릴 라빈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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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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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신인 아티스트상
23회
(2001년)


24회
(2002년)


25회
(2003년)

Fallin'
앨리샤 키스

Complicated
에이브릴 라빈

In Da Club
50 Cent



에이브릴 라빈
Avril Lavigne


본명
Avril Ramona Lavigne[1]
애브릴 러모나 러빈[2]
국적
[[캐나다|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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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3]
출생
1984년 9월 27일 (39세)
캐나다 온타리오 주 벨빌
신체
157cm, 50kg
직업
싱어송라이터, 배우
서명
파일:라빈서명.png
가족
아버지 장 클로드 라빈
어머니 주디스 로잔느 로쇼
오빠 매튜 라빈
여동생 미셸 라빈
배우자
데릭 위블리(2006-2010; 이혼)[4]
채드 크로거(2013-2015; 이혼)
데뷔
2002년 {{{-4
싱글
[[Complicated|
Complicated
]]
활동
2002년 ~ 현재
장르
팝 펑크, 팝 록, 얼터너티브 록, 포스트 그런지
악기
보컬, 기타, 피아노
레이블
Arista (1999-2006)
RCA (2007-2012)
Epic (2013-2017)
BMG[5] (2017-2021)
DTA[6] (2021-)
링크
파일:790D24C4-D023-40F3-8E28-29F263F786C1.png 파일:VEVO 로고.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Threads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팬페이지
파일: 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뎀핫걸라빈 팬카페)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디시인사이드 에이브릴 라빈 갤러리)

1. 개요
2. 특징
4. 위상 및 영향력
4.1. 라빈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5. 디스코그래피
6. 투어
7. 필모그래피
8. 기록
9. 사업
11. 외모
14. 여담



1. 개요[편집]




캐나다싱어송라이터.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같이 섹시한 이미지의 아이돌들 사이에서 차별화된, 모험심 강하며 보이시한 반항아 이미지를 내세웠다.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사춘기 감성의 가사와 락스타 스타일로 10대, 20대들을 흥분시켜 2000년대에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

2. 특징[편집]


"Queen of Pop Punk"

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베테랑 팝 아티스트이다. 2000년대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아티스트로,[7] 대표적인 장르는 팝 펑크팝 록, 얼터너티브 록, 포스트 그런지[8]이다. 나이를 먹으며 앨범마다 성격과 스타일, 창법과 목소리가 눈에 띄게 변한다.[9]

태어난 곳은 온타리오 주 벨빌인데 5살 때 이사를 가 조그만 동네인 나파니에서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10]

1999년에 EP앨범을 발매했고, 2002년 17살에 데뷔집 Let Go를 발매했다. 당시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며 빌보드 최상위권에 싱글들을 안착시키는 등 청소년 음악가의 대명사로 평가받았다.[11]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내한을 6번이나 했다.

1집은 민소매에 넥타이를 매고 나와 팝과 록을 적절히 접목한 팝 락으로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치루었고, 2집은 그런지 사운드가 주를 이루며 더 어두워진 포스트 그런지, 얼터너티브 락을 보여주었다. 3집부터는 발랄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다가와, 금발에 핑크색 브릿지로 염색하는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하였다. 그녀의 이미지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많이 바뀌었다. 에이브릴 라빈하면 1집3집 시절을 많이 떠올린다. 그만큼 이 당시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임팩트가 워낙 컸다.

2000년대 후반까지 절정의 인기를 끌었으나, 2010년대 들어 팝 펑크 장르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지금은 많이 내려온 상태였다. 데뷔를 빨리한 탓이 큰데, 고작 17~18세에 데뷔했으니 빠른 데뷔가 꼭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데뷔 이후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대변인에서 틴팝 록커로, 그리고 어쿠스틱풍 음악을 하는 등 스스로 많은 이미지 변화를 하였다. 그러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가벼운 쪽으로 소비하며 서서히 인기가 감소하였다.[12] 빌보드 1위의 영광을 안겨준 3집의 성공이 장기적으로는 독이 든 성배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렇듯 가수로서 활발히 활동할 30대 중반임에도 앞서 언급된 너무 어린 나이부터 이뤄진 급격한 이미지 소모와, 라임병으로 인한 오랜 활동 중단 기간 때문에 이젠 전성기에서 내려온 가수라는 인식이 많았었으나[13], 최근 팝 펑크 장르의 부흥에 따라 신에서 주목 받으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트래비스 바커의 레이블로 이적하여 머신 건 켈리, 블랙베어 등 요즘 아티스트들과도 활발한 콜라보를 하고 있다.

라빈은 에미넴,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과 더불어 200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중 하나이다. 특히 2020년대 신세대를 대표하는 빌리 아일리시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들 중 한명이 에이브릴 라빈인데, 라빈의 경우 빌리 아일리시가 아기 내지 어린아이였을 때 유명했던 인물임을 생각해보면 라빈이 음악계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큰 것을 알 수 있다. 현 문화를 이끌어가는 2000년대생들에게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맞지만 90년대생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며 대중음악계에서는 레전드급 인물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으로는 1집의 세 싱글 Complicated, Sk8er Boi, I'm With You, 2집의 싱글 My Happy Ending, 3집의 리드싱글 Girlfriend, 발라드 싱글 When You're Gone, 4집의 리드싱글 What the Hell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단 다르푸르 모금을 위한 자선 싱글이었던 Imagine 커버[14]가 유명한데, 이 곡은 김연아가 2013-2014 시즌 갈라프로그램 주제곡으로 쓰면서 국내에서 특히 유명해졌다.

전 앨범 중 데뷔 앨범인 1집 Let Go와 2집 Under My Skin이 팬들이나 대중들한테서나 절대적인 호평을 받는다. 그리고 그 두 앨범이 지금까지도 라빈이 대중음악계에서 확고한 팝-락 아티스트로 버틸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1집과 2집 없이 3집을 내었더라면, 온라인 영상 최초로 조회수 1억 이상을 찍고, 라빈에게 첫 빌보드 1위를 안겨준 Girlfriend도 절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 반대로 보면 1집과 2집 이후로는 평가가 애매하다는 것.

그렇지만 2022년, 리드 싱글 Bite Me에 이어 7번째 정규 앨범 Love Sux를 발매하여 이전 앨범보다 성공적인 성과를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현재 트렌드가 다시금 시대를 돌고 돌아 팝 펑크 리바이벌인 만큼 원조 팝 펑크의 여왕 라빈에게 더 많은 이목이 쏠리고 있다.


3. 커리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에이브릴 라빈/커리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위상 및 영향력[편집]



그녀는 지금도, 그때도 정말 아이코닉 했어요 (중략) 제가 항상 말하지만, 라빈이 없었다면, 레이블들이 파라모어에게 기회를 주었을지 의심스러워요, 라빈이 버블검 팝이 아닌 다른 장르를 선호하는 어성 아티스트들의 길을 터주었어요. (중략) 첫번째 앨범, Let Go는 엄청나요. 전 어쿠스틱 기타로 이 앨범의 곡들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언젠가 나도 라빈처럼 될 것이고 또 해낼거라고 생각하곤 했었죠. 정말 라빈의 모든걸 좋아했었어요. 탱크탑, 체인등 라빈의 패션도 정말 좋아했었죠. 완전 패션 아이콘이었어요. - 파라모어헤일리 윌리엄스


에이브릴 라빈은 , , 팝 펑크, 얼터너티브 록, 포스트 그런지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2000년대에 여성 중심의 팝 펑크 음악을 대중화하여 이후 팝 펑크 음악의 핵심적인 아티스트로 여겨지며, 사실상 커트 코베인과 더불어 미국의 락 음악계에서 성공한 마지막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다.

라빈은 파라모어, 켈리 오스본, 크리스탈 마이어스, 투나잇 얼라이브와 같이 여성 중심의 팝 펑크 음악 가수들의 성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팝 펑크와 얼터너티브 팝 록계의 핵심적인 아티스트로 여겨진다. 또한,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앨라니스 모리셋, 리즈 페어, 코트니 러브와 비교되며 2000년대 록 음악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얻었다.

라빈은 또한 그녀의 스케이트 펑크와 로커 스타일의 패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데뷔 당시에는 록 음악을 하면서 탱크탑, 배기팬츠를 입고 스케이트보드 타는 이미지 때문에 'Pop Punk Princess'라는 언론의 수식어도 얻었다. "Sk8er Boi", "He Wasn't", "Girlfriend"는 비평가들에 의해 역대 최고의 팝 펑크 곡으로 자주 선정되고 있다.

특히 데뷔 초 그 당시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까는 안티 브리트니 진영[15]의 스타로 'Skater Punk' 이미지를 굳혀나갔지만[16], 사춘기가 지나며 점점 생각이 바뀌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라빈은 자신을 '안티 브리트니'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오히려 '안티 브리트니와 같은 용어가 바보같다' 라고 인터뷰를 한다.

라빈의 2집 후반부 활동 시기 때 부터는 라빈, 브리트니 둘 다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좋은 관계를 유지중이다. 실제로 파파라치 사진 중 라빈이 브리트니의 앨범을 구매하는 사진이 존재한다. 2007년에는 둘이 같은 파티에 참석하는 파파라치 영상도 있다.

2010년 이후부터는 서서히 에 가까운 음악을 시도하였는데, 너무 급격한 컨셉 변화와 길어진 공백기로 인하여 점점 인기가 감소하게 된다. 또한 평론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편이다. 특히나 1집 Let Go의 경우 2000년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히지만 평론 점수가 낮은 편이다. 평론지들은 인지 록 음악인지 장르가 모호한 팝 록 장르를 저평가하고, 근본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있기에 반골 기질을 가진 아티스트들은 저평가당하는 경향이 크다. 사실, 에이브릴 라빈이 데뷔하고 나서 여러가지로 불미스런 언행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켜서 평론가들에게 눈엣가시로 낙인찍혀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팬들의 경우 2000년대를 상징하는 가수들 중 하나로 반드시 에이브릴 라빈을 꼽는다. 특히 빌리 아일리시올리비아 로드리고 같은 빌보드 1위 곡이 있는 10대 신예 아티스트들도 반드시 언급하는 인물임을 생각해보면[17] 대중음악 산업 내에서는 이미 전설로 취급받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4.1. 라빈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편집]



MTV, ALLMusic, itunes followers, 각 아티스트의 인터뷰 기준


5. 디스코그래피[편집]



5.1. 앨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에이브릴 라빈/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Avril Lavigne 앨범 차트인 기록
연도
제목
파일:빌보드 로고.svg
파일:오피셜 차트 로고.svg
총 판매량
2002
Let Go
#2
#1
1622만 장 이상[19][20]
2004
Under My Skin
#1
#1
1000만 장 이상[21][22][23]
2007
The Best Damn Thing
#1
#1
600만 장 이상[24][25]
2011
Goodbye Lullaby
#4
#9
355만 장 이상[26][27]
2013
Avril Lavigne
#5
#14
80만 장 이상[28][29]
2019
Head Above Water
#13
#10
60만 장 이상 [30]
2022
Love Sux
#9
#3
진행 중

  • 이 문단에 서술되어 있는 1집 ~ 5집의 판매량은 2019년 1월 기준이다.

정규 앨범 4000만장 이상, 싱글 앨범 5000만 장 이상, 총 9000만 장 이상 판매[31]


디지털 세일즈 포함 총 1억 6000만 장 판매



5.2. 싱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에이브릴 라빈/싱글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Avril Lavigne 파일:빌보드 로고.svg HOT 100 기록
순위
연도
곡명
비고
#11주
2007
Girlfriend

#2
2002
Complicated

#4
I'm with You

#9
2004
My Happy Ending

#10
2002
Sk8er Boi

#11
2011
What The Hell

#17
2006
Keep Holding On

#20
2013
Here's to Never Growing Up

#22
2004
Don't Tell Me

#24
2007
When You're Gone

#41
2004
Nobody's Home

#64
2003
Losing Grip

2018
Head Above Water

#65
2011
Wish You Were Here

#68
Smile

#71
2010
Alice

#75
2014
Hello Kitty

#78
2013
Let Me Go
[32]
#91
Rock N Roll

#95
2007
Hot

[33]
2005
Fall to Pieces

[34]
2008
The Best Damn Thing

[35]
2007
Runaway

[36]
Innocence

[37]
2021
Bite Me


6. 투어[편집]


Try To Shut Me Up Tour
관련 음반
Let Go
투어 기간
2002년 12월 5일 ~ 2003년 6월 4일 [38]
공연 횟수
70회
  • 두 번째 내한 공연은 Avril Lavigne - Live in Seoul (2004)[39]
Bonez Tour
관련 음반
Under My Skin
투어 기간
2004년 12월 5일 ~ 2005년 6월 4일 [40]
공연 횟수
145

The Best Damn World Tour
관련 음반
The Best Damn Thing
투어 기간
2008년 3월 5일 ~ 2008년 10월 6일 [41]
공연 횟수
110
  • 이 투어는 라빈을 좋아하지 않는 평론가들도 인정했던 꿀잼 콘서트였다고 한다.

Black Star Tour
관련 음반
Goodbye Lullaby
투어 기간
2011년 4월 30일 ~ 2012년 2월 18일 [42]
공연 횟수
61

The Avril Lavigne Tour
관련 음반
Avril Lavigne
투어 기간
2013년 12월 1일 ~ 2014년 4월 19일 [43]
공연 횟수
78

Head Above Water Tour
관련 음반
Head Above Water
투어 기간
2019년 9월 14일 ~ 2019년 10월 11일[44]
공연 횟수
15

Love Sux Tour
관련 음반
Love Sux
투어 기간
2022년 4월 30일 ~ 2023년 5월 10일
공연 횟수
48

  • 라빈은 공식적으로 각 투어별 관객 동원 수나, 투어 전체 수익을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총 투어 동원 인원수나, 수익에 관한 정보가 있다면 유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45]

  • 예를 들어 투어의 총 공연 횟수가 70회 였다고 가정하면, 70회의 공연중 위키피디아에 기록된 약 10회-20회의 공연의 관객, 수익을 합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 특히나 콘서트 특성상 어떤 공연은 5만명에서 4만명 급의 대형 콘서트이고, 어떤 공연은 몇천명 정도의 상대적으로 작은 공연일 수 있으므로 약 10회에서 20회 정도의 데이터를 가지고 총 콘서트 수익을 추정하는건 금물이다.

7. 필모그래피[편집]


연도
제목
배역
비고
2002
Sabrina the Teenage Witch
본인
카메오 출연
2004
Going the Distance
본인
카메오 출연
2006
Over the Hedge
Heather
더빙
Fast Food Nation
Alice

2007
The Flock
Beatrice Bell

2018
프린스 챠밍
백설공주
더빙
2020
Good Mourning
본인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joinsmsn_com_20120103_014448.jpg


파일:external/stream1.gifsoup.com/the-flock-avril-lavigne-o.gif

Fast Food Nation (2006)
The Flock (2007)

8. 기록[편집]


  • 2002년에 데뷔해 정규앨범 4,000만 장 이상(2019년 기준), 싱글도 4,000만 장을 넘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이는 캐나다 여가수 21세기 1위, 역대 세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혼다(자동차 기업) 백스테이지 인터뷰[46]

  • 데뷔앨범 Let Go는 21세기 캐나다 가수 단일 앨범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이는 미국, 영국을 제외한 아티스트의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다.#

  • 1집 Let Go[47]와 2집 Under My Skin은 각각 2003년과 2004년 국내 해외 앨범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 1집 Let Go는 2002년 여성 가수의 앨범 중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며, 남녀 통틀어선 에미넴의 The eminem show의 뒤를 이어 2번째로 많이 팔렸다.

  • 2003년에도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의 뒤를 이어 전세계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이 팔리며, 2년 연속으로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라는 압도적인 판매량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2년 1위였던 The eminem show의 2003년 판매량 순위가 8위이다. 공교롭게도 The eminem show와 Let go는 2002년 6월 4일 같은날에 발매되었다.)

  • 2집 Under My Skin은 2004년 전세계에서 5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다.


  • 올림픽 개막식, 폐막식 무대에 두번 등장하였다.
첫번째 무대는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다음 개최지인 캐나다 벤쿠버 동계 올림픽을 선보이는 무대에서 조국 캐나다를 대표해 2집 수록곡 Who Knows를 불렀다.
두번째 무대는 조국에서 개최된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 3집 수록곡 Girlfriend 와 2집 수록곡 My Happy Ending을 불렀다.


9. 사업[편집]


  • 향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름은 Black Star.[48] 그 외에도 Forbidden Rose와 Wild Rose라는 향수 브랜드도 가지고 있다.

  • 패션 브랜드도 가지고 있다. 이름은 애비 돈(Abbey Dawn). 자신의 어릴 적 별명에서 이름을 따 왔다고 한다. 참고로 What The Hell에서 이 애비돈과 위에 적어 둔 블랙스타 향수의 간접광고가 나온다. (여담이지만 소니사의 제품도 3개나 나오고 자신의 어머니와 오빠를 뮤비에 출현시켰다.) [49]


10. 가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에이브릴 라빈/가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외모[편집]


파일:avril2002to2021.jpg
파일:complibiteme.jpg
2002년 / 2021년
2002년 / 2021년

파일: Avril-Lavigne-Photoshoot-006-Anthony-Cutajar-2002-anichu90-18461529-1698-2560.webp
2002년
2004년

에이브릴 라빈의 사진들
[ 펼치기 · 접기 ]

2000년대 여성 솔로 가수 아티스트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욘세, 앨리샤 키스 등과 함께 미녀 가수의 상징적 인물로 뽑힌다.[50]

외모적인 특징으로는 금발[51], 파란 눈(벽안)[52], 마른 체형에 굉장히 작고, 입체적이고 예쁜 냉미녀 얼굴이 어우러져[53] 큰 인기를 끌었다.[54] 또한 연예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소두인데, 에이브릴 라빈의 신장이 155cm ~157cm 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장은 작은 편에 속하지만 머리가 작고 팔, 다리가 긴 편이라 비율이 좋다.

파일:2023avril.jpg
2023년 최신 근황
무지막지한 동안이기도 하다. 데뷔 한 지는 20년이 지났는데 동안인 외모 때문에 현지에서는 뱀파이어 라고 불리고 에이브릴 라빈의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알았던 대중들까지도 놀라워 할 정도이다.

12. 연애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에이브릴 라빈/연애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에이브릴 라빈/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여담[편집]


  • 팬들로부터 받은 가장 황당했던 선물은 한국에서 받은 웨딩 드레스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인상깊은 한국팬의 선물은 살아있는 토끼(...)였다고...

  • 사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브릴 라빈이 아니라 애-브럴 러빈에 가깝게 발음이 된다.(실제, 교포들은 아벌라빈이라고 발음한다) 초기에 미국 내에서도 어지간히 에이브릴이라고 불렀는지(4월 April 과 한 알파벳 차이) 에이브릴이 아니라 애브릴이라고 제대로 발음해 달라고 신경질 내는 인터뷰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미 애브릴이 아닌 에이브릴로 굳혀져 버려서 그냥 편의상 에이브릴로 쭉 표기하는 듯.

  • 데뷔 때와 비교하면 목소리와 창법이 상당히 바뀌었다. 1, 2집 때는 중성적인 목소리였는데 3집을 기점으로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되었다. 앨범을 발매할수록 목소리가 높아지고 어려진다. 7집에서는 비음이 특히 들어갔다.

  • 이름과 성 모두 사실 프랑스계 이름이다. 앞서 말했듯이 Avril은 불어의 4월에 해당하며, -gne로 끝나는 불어 단어나 인명이 상당수 있기 때문. 불어에서 R은 ‘흐’, GN은 ‘뉴’ 정도로 발음되기에 이름을 프랑스어로 발음한다면 ‘아브릴 라비뉴’ 정도 되겠다.

  • 4집 시절부터, 특정한 명칭이 없던 자신의 팬들을 "Little Black Stars"라고 부른다.

  • 사진으로 보면 그렇게 작아 보이지 않는데, 실제 콘서트에서 라빈을 본 사람들은 이 정도로 작은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 한다. 키가 155cm로 상당히 작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작고 팔, 다리가 긴 편이라 그런 것 같다.

  • 어린 시절에 ADHD 진단을 받은 적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시절에 제멋대로 굴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이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녀가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근거

  • 한국 공포영화 불신지옥에서 류승룡이 자살한 여학생 집안을 살필 때 화장대 앞의 깨알같은 미녀의 사진은 에이브릴 라빈이다.

  • 윗 송곳니 양쪽이 날카롭게 돌출되어 있다. 종종 뱀파이어라고 불리는 이유. 물론 라빈이 동안인 것도 한 몫 한다.

  • 초창기(2집 활동 초반까지)에는 여지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소녀의 성격이었다. 2집 활동 중반부터는 성격이 급격하게 성숙해졌으며, 이 때문에 멜리사로 바뀐거 아니냐는 루머도 돌았다. 라빈과의 인터뷰에서 예전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 질문하면 이젠 그녀가 오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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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이 고양이상으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느낌이 닮았다는 얘기가 있다. 둘 다 중성적인 톰보이 성향에 어릴 때부터 일해왔다는 것도 같다.


  • 초창기 그녀의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1집 시절에는 여느 열일곱 살 짜리처럼 피부 트러블을 겪었다.



  • 한국에 가장 많이 내한한 외국 스타 중 한 명이다(총 6회). 실제로 첫 앨범 투어차 한국 방문 이후 새로운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투어의 일부로 늘 한국을 방문했다. 특히 에이브릴 라빈은 다른 외국 팝스타들과 다르게 거의 정시에 다름없는 공연으로 좋은 평가를 얻기도 했다. 특히 저 중 한두 번은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지 않아 지방에 사는 팬들은 내한공연 당일 기사를 보고 땅을 치고 후회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 남아공 월드컵의 준주제가 정도이며 코카콜라 선전에도 나온 아이티 지진 캠패인 곡인 Wavin' Flag 노래에도 참여하였다.

  • 고기는 안 좋아 하면서 피자는 좋아한다.증거짤

  • 현재는 전세계 팬 보유량 14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 12세 때 기타를 독학했다. 실력이 매우 좋다. 1집 시절에는 어쿠스틱 라이브 세션에서 주로 연주했고, 2집부터 현재까지는 라이브 공연 때 꼭 몇곡 정도는 항상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부른다. 그외에도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가리지 않고 많은 곡들을 기타로 연주했다. 공연에서는 주로 2집의 He wasn't, My happy ending, Nobody’s home 을 부를 때 기타를 연주한다

  •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할 때 간혹 핸드싱크(메인은 보컬이기도 하고, 핸드싱크를 할 때도 운지와 스트로킹을 제대로 한다) 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직접 연주한다



  • 피아노 연주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피아노를 치며 라이브를 하기도 하며 동시에 노래도 매우 안정적으로 잘 부른다.

  • 드럼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며 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블러의 Song2를 투어 때 연주하기도 하고, 3집 투어 때에는 수록곡 runaway를 드럼을 연주하며 노래 부른적도 있다.

  • 처음에 소속사 측에서는 에이브릴 라빈을 컨트리, 포크(!)쪽으로 키우려고 스카웃 했지만, 라빈은 당시 그린데이의 영향을 받아 이들의 예상을 깨고 펑크락 앨범을 만들고자 했고, 이로 인해 약 6개월에서 1년 동안 라빈의 데뷔 앨범 작업은 지지부진 했다. (라빈은 자신이 쓴 곡들로 앨범을 발매하고자 했기 때문에 아리스타 레코드가 제안한 전문 작곡가들이 쓴 컨트리 노래들을 거부했다.) 라빈은 이후 LA에서 클리프 매그니스와 Losing Grip, Unwanted등의 헤비한 락 사운드를 담은 노래를 작곡했지만, 아리스타 레코드는 당시에 라빈의 헤비한 락 사운드가 가득한 곡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이후 팝락 프로듀싱 팀 매트릭스와 함께 앨범 작업을 하게 된다. 매트릭스 팀도 초기에는 아리스타 레코드가 생각했던 장르인 컨트리 장르의 노래를 라빈에게 들려줬으나 라빈은 펑크락 성향의 노래를 원했기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이를 계기로 매트릭스는 라빈의 음악적 성향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이후 아리스타 레코드의 CEO였던 LA 리드는 라빈의 뜻을 존중하여 데뷔앨범 Let Go가 탄생하게 되었다. 실제로 데뷔 전 데모 앨범에는 Touch the Sky라는 컨트리 곡이 실려있다.

  • 초창기 에이브릴 라빈이 잘 나갈 때 케이티 페리의 캐릭터를 에이브릴처럼 설정하려고 하였다.


  • 5집을 보면 한 쪽 머리를 반삭발을 한 헤어스타일을 했는데, 당시 마릴린 맨슨과 함께 공연을 하고 난 후 백스테이지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도중 맨슨이 직접 에이브릴 라빈의 머리를 밀어주었다고 한다.

  • 이후에 해외 팬들 사이에서 마릴린 맨슨과 에이브릴 라빈의 교제설이 튀어나왔는데, 맨슨이 "어제 에이브릴 라빈과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에이브릴 라빈은 캐나다 사람인데 나는 캐나다 사람과 사귈 생각 없다. 캐나다 사람에 대한 악의는 없다. 그녀와 잤는지 궁금한가? 혹시 또 모르지. 미안해요, 라빈." 이라며 어이없어했다.

  • 여동생 미셸이 ONE OK ROCK의 베이시스트 료타와 결혼했다.

  • 액슬 로즈의 젊은 시절과 닮았다. 비교적 작은 체격인 것도 비슷하고, 화장을 안한 액슬과는 좀 다르지만 특히 액슬이 화장한 것과는 많이 닮았다.데뷔 앨범이 제일 유명한 것과 성격이 빡셌던 것도 비슷하다

  • 2015년 4월 2일, 에이브릴 라빈은 잡지 PEOPLE에 자신이 지난 반년동안 라임병과 사투했음을 밝혔다.

  • 스페셜 올림픽에 Charity Single로 사용될 곡 "Fly"를 완성했다. 2015년 4월 16일에 싱글로 발매되었다. 커버아트는 팬아트 콘테스트를 열어 그 중에서 채택해서 사용했다.

  • 2015년 6월 29일 Good Morning America에 나와 라임병에 대해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라임병"이 이틀동안 1위를 차지했다.

  • 2015년 7월 24일, 아이튠스에만 발매되었던 싱글 "Fly"가 전세계의 음원사이트에 발매되었다. 멜론, 네이버 뮤직, 벅스 뮤직 등 모든 국내 음원 사이트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 2015년 7월 27일 스페셜 올림픽 개막식 때 Fly 라이브 퍼포먼스를 했다.

  • 2015년 8월 6일에 공개된 바에 의하면,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차밍》(Charming)에서 백설공주 성우의 역할을 맡았다.

  • 6번째 앨범은 건강문제로 2016년부터 작업하었다.

  • 2015년 9월 2일 채드 크로거와의 이혼을 발표하였다.


  • 2017년 1월 11일 발매된 ONE OK ROCK의 8집, Ambitions (Japanese version)의 10번 트랙 Listen[55]에 피쳐링으로 참여하였다.

  • Give You What You Like이 한국 유튜브에서 밴되었다.

  • 2017년 3월 1일에 소속 음반사를 에픽 레코드에서 BMG로 이적하였다.(관련 기사) BMG 자체가 이전에 소니 뮤직과 합병 후 소멸했다가 다시 생긴 것을 고려했을때, 어떻게 보면 BMG로의 귀환이 된 셈.

  • 2021년 트래비스 바커가 일렉트라와 손잡고 합작투자로 설립한 DTA 레코드로 이적하였으며, 이적 후 7집 Love Sux를 발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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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가 4월을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인 Avril(아브릴)에서 따왔다고 한다.[2] [ˌævrɪl ləˈviːn\](애브릴 러빈)은 영어식 발음이다. 아버지가 프랑스인이고, 본인 또한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기에 프랑스어 표기법에 따르면 아브릴 라모나 라비뉴가 된다. 한국에서 널리 통용되어 쓰이는 ‘에이브릴’은 잘못된 발음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에이브릴’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는데, 이럴 때마다 라빈 본인이 항상 ‘애브릴’이라고 발음을 고쳐준다. 라빈과 같이 잘못된 인명 표기가 국내에서 널리 통용되어 쓰이는 유명 아티스트로는 존 레논, 존 본햄 등이 있다.[3] 캐나다 출생이며, 아버지가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태어났을 때부터 이중국적이었다. 프랑스 여권은 2011년에 처음으로 발급을 받았다.[4] 캐나다의 팝 펑크 록 밴드인 Sum 41의 보컬이다.[5] 이때를 기점으로 유통사 또한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파일: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로고.svg (2002-2017)파일:워너 뮤직 그룹 로고.svg (2017-현재)[6] 엘렉트라 뮤직 그룹 산하의 레이블[7] 2019년 빌리 아일리시가 어린 나이에 대중음악의 정상에 오르자 많은 80~90년대생 네티즌들이 '우리 세대에는 빌리 아일리시 대신에 에이브릴 라빈이 있었지'라는 댓글을 달았다. 마찬가지로 빌리 아일리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하다.[8] 1집 Let Go와 2집 Under My Skin[9] 당장 Sk8er Boi의 2002년 라이브와 2010년 즈음의 라이브를 보면 창법이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가창력 문단 참고[10] 벨빌도 인구 5만 명 정도의 중소도시지만 나파니는 5천 명 수준의 마을(Town)이다. 1999년에 인근 마을들과 합쳐져서 명칭도 Greater Napanee로 바뀌고 인구도 1만 5천 명으로 불어났으나, 여전히 고등학교가 하나밖에 없는 깡촌이다. 울릉군과 비슷할 정도[11] 참고로 에이브릴 라빈이 처음 인기를 얻던 시기 그녀의 나이는 현 시점 Z세대 대표 아티스트인 빌리 아일리시, 키드 라로이,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나이와 같다(17세). 즉 지금 시점에서 빌리 아일리시나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차지하는 포지션이 에이브릴 라빈이 2002년 당시 대중음악계에서 차지하던 포지션과 같았다는 것. 특히나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팝 펑크를 한다는 점에서 장르마저도 굉장히 유사하다.[12] 보통의 틴에이저 스타들처럼 팝으로 시작해서 장르 음악에 천착해가며 음악성을 어필, 골수팬을 만들어간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가버린 특이한 케이스. 틴팝은 사실상 특정 나이대가 아니면 이루기 힘든 포지션인데 그 포지션 이후 행한 록커나 어쿠스틱은 전부 상대적으로 흔한 포지션이다.[13] 데뷔 이후 활동기간이 20년차니 사실 웬만한 중견 가수 급이다.[14] 존 레넌 원곡[15] 대표적으로 에미넴, 다만 에미넴과 같이 높은 수위로 까진 않았다. [16]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한 인터뷰에서 라빈을 디스하는등 가만히 있지 않았다.[17] 빌리 아일리시는 2001년생으로 에이브릴 라빈이 데뷔했을 때 아기였고, 전성기의 끝물때 아직 초등학생이었다.[18] 출처, 그녀는 지금도, 그때도 정말 아이코닉 했어요 (중략) 제가 항상 말하지만, 라빈이 없었다면, 레이블들이 파라모어에게 기회를 주었을지 의심스러워요, 라빈이 버블검 팝이 아닌 다른 장르를 선호하는 어성 아티스트들의 길을 터주었어요. (중략) 첫번째 앨범, Let Go는 엄청나요. 전 어쿠스틱 기타로 이 앨범의 곡들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언젠가 나도 (라빈처럼) 될 것이고 또 해낼거라고 생각하곤 했었죠. 정말 (라빈의) 모든걸 좋아했었어요. 탱크탑, 체인등 라빈의 패션도 정말 좋아했었죠. (라빈은) 완전 패션 아이콘이었어요.[19] 2004년 기준 공식 판매량 1400만 장, 2008년 기준 공식 판매량 1600만 장 [20] 2022년 기준 미국에서 767만 유닛, 순수 판매량 691만 장이 판매되었다.[21] 2008년 공식 집계 기준 실물 앨범 판매 800만 장, 2019년 1월 기준 실물 앨범 판매양 810만 장[22] 2011년도 기사에 따르면 실물 앨범 기준 1000만장 이상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23] 2022년 기준 미국에서 362만 유닛, 순수 판매량 320만장이 판매되었다.[24] 2019년 1월 기준 실물 앨범 판매량 585만 장[25] 2022년 기준 미국에서 290만 유닛, 순수 판매량 179만 장이 판매되었다.[26] 출처 2019년 1월 기준 실물 앨범 판매량 170만장(TEA 161만 8천 장, SEA 54만장 6천 장)[27] 2022년 기준 미국에서 104만 유닛, 순수 판매량 41만 장이 판매되었다.[28] 2019년 1월 기준 실물 앨범 판매량 80만 장[29] 2022년 기준 미국에서 56만 유닛, 순수 판매량 17만 장이 판매되었다.[30] 2022년 기준 미국에서 23만 유닛, 순수 판매량 7만장이 판매되었다.[31] 출처 및 자세한 내용은 기록 문단 참고 [32] feat. Chad Kroeger[33] 버블링 언더 #6[34] 버블링 언더 #7[35] 버블링 언더 #11[36] 버블링 언더 #16[37] 버블링 언더 #20[38] 첫 번째 내한 공연은 2003년 1월 27일이였다.[39] 많은 사람들이 두번째 내한을 2집 월드 투어로 오해하는데, 두번째 내한은 2집 프로모션 투어였다. [40] 세 번째 내한 공연은 2005년 3월 23일이였다.[41] 네 번째 내한 공연은 2008년 9월 1일이였다.[42] 다섯 번째 내한 공연은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있었다.[43] 여섯 번째 내한 공연은 2014년 2월 19일이였다.[44] 코로나 19로 취소[45] 위키피디아에 나와있는 표의 전체 합산만 봐서 생긴 오류이다. 표를 자세히 보면 관객 수와 표가 공개되지 않은 공연들이 대부분이다. 이로 인해 당시 라빈의 인기와 체급에 비해 터무니 없이 작은 수치들이 사실인양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46] 42초[47] 2003년 국내에 발매된 해외 앨범 중 유일하게 10만장을 돌파했다. 전체 판매량 20만장[48] 4집의 동명의 인트로 트랙이 향수 광고 영상에 들어간 곡이다.[49] 뮤비 초반에 뿌리는 향수가 바로 블랙스타 향수이며, 중간에 나오는 의류매장이 애비돈 의류매장이다. 의류매장에서 라빈과 인사하는 아주머니가 라빈의 어머니고 라빈이 스테이지에 올라가 노래부를 때 뒤에서 모자 쓰고 기타 치는 사람이 오빠다[50] 이 다섯이 2000년대 여가수 중에서 제일 높은 인기를 구가했고, 인지도가 제일 높은 편이다.[51] 본래 머리색은 갈색이나 2집 이후 금발로 염색해 지금까지 유지중이다.[52] 눈 색이 특이한데 푸른색이 약간 섞인 옅은 회색이다.[53] 황금 비율에 이목구비가 매우 수려하다.[54] 이러한 외모는 북미 뿐만 아니라 이는 일본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이다.[55] 일본 한정으로 한국(인터네셔널 판)에서는 에이브릴 라빈 피쳐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