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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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 콜롬비아와 페루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국가이다. 헌데 원래부터 영토가 작은 소국은 아니었고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국가로 독립한 이후에는 남미의 이웃나라들인 페루나 콜롬비아, 또는 남미의 3대 지역 강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5] 만큼은 아니어도 남미에서 국경/영토 면적이 꽤 넓은 나라였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파스토, 카우카, 이피알레스 등 안데스 산맥 이북 지역의 영토와 도시들을 콜롬비아에게 빼앗기고, 동부 아마존 지역의 내륙 영토들을 페루에게 빼앗기면서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잃고 현재와 같이 작은 영토와 국경선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방대했던 영토들을 콜롬비아, 페루 등 주변국가들에게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국토면적은 284,000km2로 한반도보다 20% 정도 더 넓은 편이다.
수도는 키토(Quito). 인구수로는 최대 도시가 아니다. 인구상 에콰도르의 최대 도시는 제1의 항구도시인 과야킬(Guayaquil)이고 키토는 그 다음으로 큰 도시다. 키토의 해발고도는 2,850m. 백두산(2,744m)보다 높은 해발고도다.
2. 국가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이 나라를 적도가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적도의 스페인어인 'Ecuador'(영어로는 Equator)를 그대로 따왔다.
같은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 적도 기니와는 역사적으로 아무 연관이 없다.
2.2. 국기[편집]
노랑, 파랑, 빨강의 3색에 문장을 삽입한 국기이다. 노랑은 태양, 빛, 농업을 상징하고 빨강은 스페인의 지배시절에 독립을 추구한 애국자와 독립투사들의 헌신과 피를 상징하며 파랑은 하늘, 바다, 아마존 강을 상징한다.
가운데 있는 문장은 에콰도르의 국장이며 콘도르새와 침보라소산, 상선, 바다, 태양이 있으며 공화정을 상징하는 도끼가 있다.
이 국기의 디자인은 그란 콜롬비아의 국기에서 따온 것이다. 그란 콜롬비아의 해체로 오늘날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가 건국되었고 이 세 국가는 모두 그란 콜롬비아에서 국기 디자인을 따왔기 때문에 세 국가의 국기는 매우 유사하다.
문장이 있는 국기는 정부용으로 사용하며 민간이나 상선은 문장이 없는 국기를 사용하는데 얼핏 콜롬비아 국기와 비슷해보여서 헷갈리기 쉽다. 참고로 콜롬비아 상선기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별도로 문장을 삽입한 기를 사용한다.
2.3. 국장[편집]
자세한 내용은 에콰도르/국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4. 국가[편집]
한국어 자막 영상
국가는 "만세, 조국이여!"(¡Salve, Oh Patria!)이다. 이 국가는 1865년에 에콰도르 상원의 요청에 따라 시인 레온 마라(León Mera)가 작사하고, 가사가 상원의 승인을 받은 이후 상원의 요청으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안토니오 네우마네(Antonio Neumane)가 1870년에 작곡했다.
원곡은 6절이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2절만이 국가로 불린다.
3. 역사[편집]
고대에는 남미에서 발달된 지역인 페루나 콜롬비아 중남부와 인접해있던 탓에 기원전부터 문명이 발달했으며 서기 8세기부터 16세기 중반까지 상당히 발전된 형태의 국가들이 존재했으며 유물들도 출토된다. 다만 이 당시의 역사기록물은 없기 때문에[7] 이 당시의 역사가 어떠한지는 구전이나 설화, 전설이나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구전자료들을 기록한 문헌들에 의하면 최소 11세기 경부터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대충은 유추해볼수있는 수준이다며 지금의 페루 일대에서 건국된 잉카 제국이 에콰도르 일대를 정복하기 이전에는 8개의 왕국이 존재했으며 그 중에 키토 왕국이 가장 힘이 세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이들 국가는 1460년에 잉카 제국에 정복되어 갔고[8] 이후 에콰도르는 잉카 제국에 빠른 속도로 동화되어 갔다. 스페인이 잉카 제국을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에콰도르는 잉카 제국 최후의 수도가 위치해 있었을 정도로 잉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였으나, 결국 1572년에 잉카 제국이 멸망하면서 에콰도르도 스페인에 의해 정복되었고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100년 넘게 받는다. 물론 잉카 제국의 탄압을 받아 잉카에게 치를 떨던 카나리 족 등 일부 현지의 남미 원주민 부족들은 스페인군을 지지하여 잉카 제국을 멸망시키거나 잉카 멸망 이후에 일어났던 잉카 잔당 세력들의 저항을 진압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여하튼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에콰도르와 페루는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1820년에 남미 전역이 독립열풍에 휩싸이면서 이 나라도 해방이 되면서 그란 콜롬비아의 구성원이 되었지만 정작 해방 이후에 내분이 생겼고 시몬 볼리바르가 사망하면서 구심점이 사라지는 바람에 각자 제갈길 가자는 식으로 베네수엘라, 콜롬비아와 함께 1830년에 분리 독립하였다. 독립 직후에는 플로레스 정권이 통치하고 있었으며 독립 당시에는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내전과 주변국들인 콜롬비아, 페루와의 전쟁으로 인해 상당수 영토를 잃어버리면서 영토가 쪼그라들었다. 플로레스 정부는 키토의 과두지배층을 중심으로한 기득권 집단을 지지계층으로 두고 있었고 반동적인 통치를 펴왔다. 1845년에 전복되었지만 이후로도 혼란은 계속되었다.1972년 군부는 벨라스코 대통령과의 관계를 끊고 기예르모 로드리게스가 대통령이 되었으며 토지개혁을 약속하면서 석유개발도 본격화 되었다 하지만 정작 석유로 인한 수입은 늘어나면서도 토지개혁은 지지부진하였고 1976년에 물러나서 포베이다 해군 사령관을 의장으로 하는 최고위원회가 집권했고 결국 1979년에 민주화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첫번째 민선 대통령인 하이메 롤도스가 1981년에 비행기 사고로 급사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불길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1982년 중남미 외채위기에 에콰도르도 휩쓸렸고 설상가상으로 엘니뇨까지 겹치며 에콰도르는 다시금 어려움에 빠졌고 결국에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되는 처지로 내몰렸으며 1986년부터 진행된 저유가와 1987년의 대지진, 연간 수십%가량의 高 인플레이션과 임금수준의 실질적인 침체 밎 삭감으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1988년에 민주좌파당의 로드리고 보르하[9] 가 당선되었지만 경제정책은 달라지지 않았고 시민들의 실망감은 더욱 깊어져갔다. 1990년대 초중반와서는 지속적인 경제위기에 어느정도 면역성이 생기면서 에콰도르의 경제가 지표상으로는 그런대로 안정세를 찾아가나 싶었지만 빈부격차는 심화되었다.
한편 1996년 대선에서 레바논 출신 아랍계 정치인 압달라 부카람이 당선되었지만 잦은 기행을 벌이는 통에[10] 1997년 2월에 무능과 부패를 이유로 해임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쳐오기까지 하면서 경제와 정치적으로 혼란해져서 압달라 부카람을 포함해서 4명의 대통령이 중도에 사퇴하고 3명의 임시대통령이 그 자리를 대행하는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11] 2002년에 루시오 구티에레스가 당선되었지만 그 역시 공약을 내팽겨치고 부정부패로 원성을 사게 되면서 2005년에 탄핵되었고 이후로 알프레도 팔라시오가 대통령 직을 수행하다 2006년 대통령 선거로 반미와 정국 안정을 내세운 좌파(라파엘 코레아[12] ) 정권이 집권했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외교적으로는 미국과의 FTA 협상 논의를 중단시키고 베네수엘라와 친하게 지내는 등 반미성향이긴 했었지만 젊었을 때 미주개발은행(IDB)의 지원하에서 교육 시스템 개선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었고, 미국에서 정통으로 경제학을 공부하여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낸 경력이 있다. 다만 그가 유학한 일리노이대 경제학과 자체의 성향은 이른바 시카고 학파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하고는 거의 정반대의 스탠스를 지니고 있긴 하다. 그리고 경제학자 장하준과도 인연이 있다. 미국 유학 시절 장하준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었고 특히 그의 저서인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이며 덕택에 의외로 경제정책을 봐도 한국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편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별로 못받는다. [13]
라파엘 코레아는 임기를 수행하면서 딱히 빌릴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결국엔 빌린 부채가 있다는 이유로 디폴트 선언을 하면서 신용도가 상당히 하락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외채를 상당히 탕감받았기도 했고, 그 이외의 부채에 대해서 꼬박꼬박 갚다보니 2014년에 아예 국채를 다시 발행할 정도로 경제 수준이 회복되었다. 또한 빈민구제와 중산층 확대, 교육개혁, 고용의 질 개선과 실업률 하락, 인플레 억제, 원주민의 지위 향상, 사회간접시설 확충, 치안 향상 등에서 성과를 냈기 때문에[14] 많은 지지를 받지만 자신에게 비판적인 민영방송국을 경영진의 비리범죄를 이유로 압수하여 국유화시키고 언론을 상대로 대량의 소송을 벌이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거나 환경보존을 위해 개발을 유보했던 아마존 지역의 개발을 석유개발을 이유로 다시 실행하려하는 등 권위주의적인 면모도 같이 보여주기 때문에 비판받기도 한다.
여하튼 1기 집권시에 많은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그 점으로 인해 야권층과 기득권층에서의 반발이 격렬히 표출되기도 하였다. 2010년 10월 1일, 경찰들이 공무원 복지 혜택 축소법안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켰다. 일부 군인을 포함한 경찰 폭도들은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을 붙잡아 경찰병원에 12시간 이상 억류하고, 각종 관공서를 장악하는 등 거의 쿠데타에 가까운 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억류된 과정이 좀 웃긴데, 대통령이 자신들에게 연설하러 오자 최루탄을 쏘았고, 그게 대통령 옆에서 터져 치료를 위해 병원에 후송했는데, 하필이면 경찰병원으로 옮겨져 거기서 흥분한 경찰들에게 둘러싸였다. 결국 코레아 대통령을 구출하러 출동한 군대와 경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사망자 2명과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끝에 대통령은 구출되었고, 군부대가 투입되어 경찰 병력을 제압하였다.
이후에는 잠잠해졌으며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의 3선 이후 에콰도르 내정은 안정되어 갔다. 특히 빈민층과 서민층, 일부 중산층을 중심으로 지지가 상당하다. 그 이유가 자신의 기반이 안정된 이후 내부 인프라 확장과 빈민구제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인데, 도로를 신설ㆍ확장하고, 전화와 인터넷망 등을 확대하며, 치안도 강화했다. 덧붙여 빈민 구제로 중산층이 상당 부분 늘어났기도 했다.[15] 부유층이 상당히 많아 코레아 대통령의 힘이 약한 과야킬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치안이 그나마 괜찮은 편. 여하튼 그 덕택인지 2016년 엑스파트 인사이더 보고서에서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2위에 선정됐다. 다만 조사자체는 지진이 일어나기 이전에 했기 때문에 지금은 좀 달라질수도 있기는 하다.
2019년 10월 4일에 에콰도르는 유류 보조금 폐지로 인해 시위가 발생되었고 이틀째 혼란이 벌어지면서 230명이 연행되었다.# 그리고 극심한 정정혼란이 발생하고 있지만, 에콰도르 정부는 쿠데타 시도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퇴진 거부하고 있다.# 또한, 원주민들도 시위에 참여하면서 시위대는 커지고 있고 모레노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수도 키토와 주변 지역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군에 의한 통제를 명령했다고 한다.#
결국 레닌 모레노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일단락했다.#
2021년 2월 7일에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1차 투표에선 코레아의 지지를 받은 안드레스 아라우스가 32.7%, 우파 후보인 기예르모 라소가 19.7%, 다른 좌파 후보인 야쿠 페레스 후보와 하비에르 에르바스 후보가 19.4%, 15.4%를 득표했다. 1차 투표에서는 좌파가 우세했으나 다른 좌파 후보들과 코레아의 관계가 매우 나쁜 게 변수였고, 결국 결선투표에서는 라소 후보가 승리하여 여야간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2022년 2월 17일에 에콰도르 국회는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 임신 초기 낙태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찬성 75표 대 반대 41표, 기권 14표로 가결했다.#
2023년 5월 17일, 국회가 부패혐의로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자 라소 대통령은 헌법 148조에 따라 스스로 자리에 물러나면서 국회해산을 단행하였다. 이를 동반사망이라고하는데 연내에 대선과 총선을 다시 치러 각각 뽑힌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나머지 잔여임기(2025년 5월)를 채운다.#
대선 앞두고 야당인 '건설 운동' 소속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후보가 괴한에게 피습 당하고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4. 자연[편집]
안데스 산맥이 이 국가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고 있다. 험준한 안데스산맥이 가로지른다는 것을 듣고 얼핏생각하면 나라가 동서로 나뉘어 인구가 분포되어있을 것 같지만 적도에 위치한 나라다보니 고산지대가 더 살기 적당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안데스산맥 중턱이 높은 인구밀도를 보인다.[16] 수도인 키토(해발고도 2850m)도 이 산맥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고도가 더 올라가면 최고봉에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는 설산도 있고 활화산도 상당히 있다. 최고봉인 침보라소 산(해발고도 6263m)은 지구 중심에서 가장 먼 곳이다. 왜 에베레스트가 아니라 여기냐면 이 나라는 적도근처고, 지구가 완전한 구형이 아니고 적도 부분이 살짝 부풀어있는 타원 형태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쓰는 계기가 된 갈라파고스 제도가 이 나라의 영토다. 단 이 나라 본토 근처는 아니고, 이 나라의 본토에서 서쪽으로 좀 멀리 떨어진 편이다.
안데스 산맥에서 밀림, 바다, 갈라파고스 제도까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재규어, 퓨마, 오셀롯, 맥, 개미핥기, 안경곰, 원숭이[17] , 나무늘보, 콘도르, 벌새, 앵무새, 이구아나, 카이만악어, 거북, 물개, 상어, 돌고래, 군함조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분포, 서식한다. 현재 에콰도르 본토와 갈라파고스 제도 등 에콰도르 곳곳에 이러한 야생동식물들의 서식지를 보존하기 위해 국립공원들이 지정되어 있는데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는 섬 전체 면적의 97%가 국립공원이다.
4.1. 기후[편집]
위치가 적도에 걸쳐 있다 보니, 해안가 도시들에는 열대 기후(Am / Aw) 또는 온난 반건조 기후(BSh)이 나타나고, 안데스 산맥 중턱의 도시들은 열대 고산기후(Cfb)를 나타낸다. 연교차는 매우 작으며, 일 년 내내 같은 기온을 유지한다고 봐야 한다. 안데스 산맥 동부는 서부와는 달리 특이한 기후의 특성상 밀림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경우 여러 가지 기후가 섞여 있어 마치 기름이 섞인 물웅덩이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최대 도시인 푸에르토 아요라의 기후는 온난 반건조 기후(BSh)를 보인다.
4.2. 2016년 에콰도르 지진[편집]
자세한 내용은 2016년 에콰도르 지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정치[편집]
- 에콰도르는 단일국가 공화국이다.
-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대통령제이면서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을 둔다.
- 모든 권력은 행정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는 대통령이 있다.
- 대통령의 임기는 4년 중임제이며, 연임은 불가, 중임은 1번 가능하다.
- 삼권분립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 국회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다당제 국가이다.
- 2017년 총-대선-지방선거와 같이 치러진 국민투표를 통해 조세피난처로 지정된 국가나 지역에 따로 재산을 두면 공무원이나 선출직 공직자로 임명되거나 선출될 수 없도록 지정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6. 군사[편집]
- 에콰도르군 문서 참조
7. 경제[편집]
독립 이후로는 자국 화폐인 에콰도르 수크레를 썼으나 1998년 IMF 금융위기로 인한 혼란으로 인해서 2000년부터는 수크레화를 포기하고 그냥 미국 달러를 가져다 쓰고 있다. 안정적인 화폐를 가져다 씀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함이고 실제로 화폐를 달러화로 바꾸자 이전에 세자릿수대를 넘보던 물가상승률도 한자릿수대로 뚝 떨어졌고 이후로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대를 넘본적이 한번도 없을정도로 물가가 안정되었다.
2000년대 이후로 경제적으로 좀 안정되었고 2010년대 전반에는 나름대로의 경제성장세를 보였었지만 그럼에도 201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콜롬비아와 페루보다도 1인당 GDP가 낮았는데 미국 달러화를 쓰기 때문에 2015년 이후로는 원자재 가격하락으로 인한 남미국가 전반적인 화폐가치 하락의 영향을 받지 않아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보다 1인당 GDP가 높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경제규모 순위도 중위권에서 나름대로 상위권인 수준으로 올라갔다. 어느 정도냐면 콜롬비아와 페루의 화폐 가치가 떨어진 것을 틈타서 페루와 콜롬비아로 가서 물건을 사오는 사람이 부쩍 늘었을 정도다. 물론 에콰도르도 타 중남미처럼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보는건 마찬가지인데다가 수출품의 가격이 높아져서 수출에 불리해지고 무엇보다도 이웃나라 물가가 싸졌다고 국내 물가도 같이 싸진건 아니라서 좋은 현상인건 아니다. 그래서 서민들에게 이득이 된 부분이라고 해봐야 그냥 해외여행비나 해외직구 비용이 싸진 정도가 고작이다. 여하튼 이 문제때문에 라파엘 코레아 본인이 달러화 공용화 유지를 후회한다라는 발언을 하지만 워낙 물가안정 효과가 크기에 달러화 공용화 정책은 지속해서 유지될 전망이다.
경제적으로 바나나와 커피, 쌀, 새우 등 농업과 수산업의 비율이 크게 높고 농수산물을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금액도 상당하기 때문에[18]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만 석유가 많이 나는 산유국이며[19] , 전 OPEC 회원국이기도 하지만 이집트나 몽골처럼 정유 능력이 부족하여 정제된 석유를 역수입해오는 형편이다. 덕분에 현재 대규모 정유 공장 단지를 짓는데 총력을 기울이는데, 여기에 다국적 자본 참여가 끼어들고 있으며 2010년 9월에는 한국도 이 자리에 참여했고 공사 및 시설 투자 확정은 아니다.
산유국인 덕에 베네수엘라 및 이란, 러시아와 같이 정유 기술 협조 및 여러가지로 친근하게 교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도 2014년 하반기부터 석유값 하락의 여파로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와 같이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등 침체를 겪고있는데 재정의 상당부분을 자원수출에 의존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 세수기반이 급속히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가재정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에 고소득자들을 대상으로 양도소득세와 상속세를 신설해 세금을 올려 적당히 땜빵을 했지만 재정이 안정된 상태가 아니다.
그나마 미국 달러를 쓰기 때문에 타 국가들처럼 물가상승 문제에 시달리고 있지않지만 그 대신 긴축에 돌입하면서 고유가 시기에 수립되었던 각종 개발사업[20] 이 줄줄이 지연되거나 취소하고 있기에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의 지지율도 떨어지는 중이다. 사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 자체는 그리 높지는 않기는 하나[21] 무역수지 적자 때문에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16년 상반기에는 석유값이 20 달러대까지 떨어진데다가 달러강세로 가격경쟁력까지 떨어지고 지진까지 겹쳤기에 내수가 위축되는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까지 다다랐다. 이후로 석유값이 상승하면서 충격이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그 대신 재정손실을 보충하겠다고 부유층이 아닌 중산층들 상대로도 세금을 올리다보니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 물론 이때 세금 인상은 단순히 석유값 하락 때문만은 아니고 지진 발생에 따른 재원마련의 목적도 컸기 때문에 2017년 6월부터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베네수엘라급은 아니지만 OPEC에 가입했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로 석유매장량이 상당한데다가 광물과 가스 자원도 상당하며, 수력 발전도 활발한 편이다.. 또한 곡물 및 소나 양 사육 농장도 활발하여 빵이나 소고기 및 양고기 값은 굉장히 싼 나라다. 다만 2015년 이후로 페루와 콜롬비아의 화폐가치가 떨어져서 물가도 상대적으로 싸졌기 때문에[22] 현재는 페루와 콜롬비아보다 물가가 다소 센편이다. 다만 에콰도르가 잘살고 못사는 거랑은 관계가 전혀 없다. 경제적으로 보면 에콰도르는 개발도상국이 맞다. 빵과 소고기 값이 마찬가지로 굉장히 싸고 남미에서도 잘사는 나라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도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고 있다.[23]
2015년 이후로 에콰도르의 1인당 GDP는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보다 높아졌으며 임금수준도 주변 남미 국가에 비하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에콰도르 월 최저임금이 2017년 기준으로 375달러로 베네수엘라의 약 150달러는 물론이고[24] 페루나 콜롬비아, 브라질보다 100달러 이상 높으며, 남미에서 경제상위권으로 손꼽히는 우루과이나 칠레와 비교해봐도 최저임금은 크게 차이가 안난다. 다만 이건 에콰도르 경제가 크게 성장세에 있어서는 아니며(다만 에콰도르 경제가 잘 나갔을때 최저임금이 팍팍 상승했던 건 사실이다.) 아니라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 등 다른 남미 국가들의 임금수준이 화폐가치 하락으로 크게 떨어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에콰도르의 경제가 잘나갔을 시기는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2000년대 중반기에서부터 2010년대 전반기에 이르는 기간이었는데 이때는 페루와 함께 최저임금이 남미 평균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었다.[25]
그러나 2015년 이후로는 석유값 하락으로 인한 세수감소와 달러화 강세에 따른 수출부진, 2016년 지진의 여파로 인한 재정지출의 급속한 증가로 경기침체를 겪고있다. 외채만 해도 250억 달러를 넘어섰다. 2017년 들어서 예상과 다르게 경제성장률이 2% 안팍으로 높아지고 세수도 석유값 상승으로 예상보다 크게 증가하는 등 반등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호황기였던 2010년대 전반기만 못하다. 그리고 1인당 GDP도 페루 솔과 콜롬비아 페소의 가치가 다소간 안정세를 보이면서 다시 추월당할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26] 그리고 2017년 이후로부터 디플레이션 현상을 겪고 있는 나라가 되고 있다.
2019년 10월 1일 에콰도르 정부는 재정난으로 인해 2020년 1월에 OPEC을 탈퇴하며 석유를 증산하겠다고 밝혔다.#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은 석유 산업에 의존하는 에콰도르 경제를 때려 부수겠다며 산업 다각화를 위해 2021년 12월 17일 TPP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고 TPP 협상에 뛰어들었다.
8. 사회[편집]
6월, 7월, 9월에는 휴일이 아예 없고[27] , 2월, 3월, 4월은 공휴일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또한 노동절 등 몇몇 공휴일에는 공휴일 이월제[28] 가 적용되고, 휴일들 사이에 낀 평일도 휴일로 쉬게 해 준다. 예외로 크리스마스는 공휴일 이월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또한 에콰도르 역시 10월 9일이 공휴일이다.
2018년부터 에콰도르에서는 12월 31일이 공휴일이다.
8.1. 치안[편집]
남아메리카 내에서 치안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인데다가[29] 소득수준도 아주 낮지 않기 때문에 은퇴이민자들이 머물러 살기 좋은나라 순위권에 자주 들고 자연환경도 꽤나 좋다고 한다. 하지만 치안이 좋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중남미 기준으로 치안이 좋은 것이지 캐나다[30] 나 대한민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급으로 치안이 매우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도시 빈민가를 자주 찾아다니거나 밤에 혼자서 아무데나 돌아다니는 일은 피하는것이 좋다.
그리고 경제가 안 좋던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기까지는 정말로 치안이 안 좋아져서 시내에서도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백주대낮에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였을 정도로 치안이 안 좋았지만,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져서 치안이 개선되었기는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훨씬 가난하기 때문에 강력범죄는 적다 해도 소매치기 같은 경범죄는 존재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한편 콜롬비아산이나 페루산 마약이 에콰도르를 통과해서 세계로 퍼지고 있다. 마약 카르텔이 상당히 힘을 쓰고 있고, 마약 이권을 두고 다투는 에콰도르 갱단 사이의 갈등도 심각하다.#
에콰도르의 교도소에서 갱단사이의 충돌이 발생해 24명이 사망했다.#
에콰도르의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치안공백이 생겨 갱단이 점점 강성해지고 총격전과 살인이 빈발하고 있다.#
2023년 8월 9일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조기 대선에 출마한 야당 유력 후보가 유세장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깜짝 2위' 에콰도르 대선후보, 선거운동 중 괴한 총격에 사망
2023년 10월 17일 포르토비에호에서 범죄전과가 있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틱톡 생방송 중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8.2. 종교[편집]
종교는 인구 대부분(93.1%)이 기독교이며, 가톨릭이 절대 다수(전체 인구의 80.4%)를 차지한다. 개신교(11.3%) 신도도 다른 중남미 국가들처럼 무시못할 숫자이며,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도 조금 있다. 남미 상당수가 그러듯 독일계 이민자들이 상당한 곳이기도 한데, 후손들까지 약 40만이상이 살고 있다. 여타 남미 국가들처럼 이탈리아인들도 이민을 와서 그런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도 상당하다. 아랍계 이민자들도 나날이 늘어가면서 약 11만여명이 살고 있으며(위의 압달라 부카람이 아랍인 정치인이다.) 이슬람 도시까지 작게 생겼을 정도다. 반대로 유대인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아서인지 2008년 조사론 겨우 6백명도 채 안되는 수준의 유대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9. 문화[편집]
9.1. 언어[편집]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에콰도르의 스페인어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스페인어와 마찬가지로 스페인본토와는 차이가 일부 있다. 그리고 에콰도르는 케추아어 등 일부 원주민들의 언어들도 쓰이고 있다.
9.2. 요리[편집]
위의 소고기 값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현지에서 태권도 도장을 차린 어느 교포의 증언인데, 한국에서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에콰도르 사람이 한국에 모처럼 들러 쇠고기를 대접받았다고 한다. 그러자 에콰도르인은 이건 1주일에 적어도 4, 5번은 실컷 먹는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한국인이 설마하며 믿지 않았으나 에콰도르 사람이 자국 쇠고기 값은 한국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답하자 한국인은 놀랐다고 한다.
다만 현지인들은 주로 옥수수나 콩, 쌀 등 채소와 해물 위주로 먹는 편이다. 위 사진은 에콰도르식 세비체(Ceviche)이다.
또 다른 요리로는 돼지고기를 기름에 삶아서 만드는 프리타다(Fritada)와 계란과 옥수수의 낱알을 기름에 볶아서 만드는 볶음 요리인 모테삐요(mote pillo), 가죽과 털을 벗겨 도축한 돼지를 구워 만드는 통돼지 구이 요리인 호르나도(Hornado)가 있다.
그리고 에콰도르 도로를 조금만 지나다녀도 알 수 있는데, 소나 양, 염소가 뜬금없이 산 중턱에 있을 때가 많고, 대부분의 가축들을 방목해서 사육한다.
이웃한 남미국가인 페루처럼 이 나라에서도 기니피그 고기 구이 요리인 꾸이(Cuy)를 먹는다. 다만 페루와는 달리 라마고기나 알파카고기는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실제로 남미 여행을 갔던 한 한국인 여행자가 쓴 서적에서는 페루 여행 도중에 만난 에콰도르인 관광객이 알파카고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9.3. 스포츠[편집]
남미의 대표 축구 강호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기도 남미에서 축구 실력이 결코 약하지 않는 국가이다. 꾸준히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그 아래 단계 강팀들인 우루과이, 칠레 다음 단계에 콜롬비아, 파라과이, 페루 등과 같은 레벨에 위치해 있으며, 남미에선 중간, 전 세계 기준으로는 중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자세한 것은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유명한 클럽축구팀에는 바르셀로나 SC가 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창립자의 고향인 바르셀로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스페인어권인 중남미 국가의 도시 중에는 스페인에 있는 도시명이 라틴아메리카 지역도 있는 경우가 많다. 발렌시아도 그런 경우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이탈리아전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주심 비론 모레노가 에콰도르 출신이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만큼은 아니지만, 남미 국가답게 6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알베르토 스펜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뛰었던 안토니오 발렌시아를 비롯해 뛰어난 선수들이 꽤 자주 배출된다.
남미 쪽 국가들이 그렇듯이 이 나라도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수도 키토에서는 국제 경기가 있는 날엔 길거리, 학교 어디든지 에콰도르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고(가장 큰 백화점인 키센트로 앞 거리는 그냥 노란색 천국이다.), 식당이나 술집들은 자기들이 가진 모든 TV 스크린을 활용하여 에콰도르와 타국과의 축구 경기 전을 틀어준다.
자전거도 잘 타는 나라이다. 이네오스의 리차드 카라파즈가 이 나라 출신이다. 다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그리 유명하지는 않아, 없으면 없는 대로 갖춰서 타고다니는 콜롬비아와는 반대다.
10. 외교[편집]
자세한 내용은 에콰도르/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관광[편집]
자세한 내용은 중남미/관광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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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2] 출처[3] 그 외 케추아어 등이 원주민들의 공용어로 인정된다.[4]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계열 백인 뿐만 아니라 레바논이나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서 이주해온 아랍계 백인 이민자의 후손들도 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통칭 ABC 국가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다만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국토 면적에 비해 자국 인구가 브라질보다는 너무 적어, 남미에서 강국의 지위를 갖고 있는 나라는 브라질이 유일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6] 참고로 Ecuador의 어원은 감독관을 뜻하는 라틴어 Aequator이다.[7] 메소아메리카 지역과 다르게 남미 서부지역은 문자가 사용되지 않거나 사용되더라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잉카 제국 이전의 역사를 연구하기에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핀다.[8] 잉카 제국의 지배에서 독립하려는 반란들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9] 그 유명한 보르자 가문의 후손이다.[10] 선거운동 기간 중에도 상대후보에게 쌍욕을 날리기로 유명했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 축구장이 없다는 이유로 대통령 관저 입주를 거부했을 정도였다. 그나마 임기초에는 일을 제대로 할것 같았는데 얼마가지 않아 공약따윈 내평겨치면서 재정적자를 줄이겠다고 공공요금을 3배로 올리는 기행 중의 기행을 저질렀고 자신의 친 동생을 장관으로 임명하기까지하는 기행도 선보여서 인기를 까먹고 취임 몇 달만에 탄핵당했다. 퇴임 이후에도 불법 총기 소지, 조직범죄 연루 혐의를 받았다.[11] 라파엘 코레아 직전에 재임한 알프레도 팔라시오는 루시오 구티에레스가 공약불이행과 부패문제로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는 마당에 대규모 시위까지 겹쳐서 결국에 중도 사퇴하자 대통령직 승계를 받고 잔여임기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임시대통령은 아니다. 다만 임기가 2년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임시대통령 비슷한 처지이기는 했다.[12] 알프레도 팔라시오 정권당시에 재무장관을 재직하였지만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과의 마찰로 4개월만에 하차하였다. 그러나 이때 마찰을 빚은걸로 인해서 그동안 IMF와 세계은행에 질려있었던 여론의 지지를 받게되면서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되었고, 마참 상대가 알바로 노보아였는데 재벌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한국으로 친다면 통일국민당 창당해서 대선에 나갔을때의 정주영 생각하면 된다.) 결국엔 집권하게 된 것.[13] 마찬가지로 페루의 오얀타 오말라 전 대통령도 한국에서 근무한적이 있는데 재임기에는 한국 언론으로부터 자원외교 이슈를 제외하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14] 이 점에 있어서는 고용의 질향상이나 교육개혁, 실업률 하락에서 성공을 거두웠지만, 정작 인플레 억제와 치안 향상에 실패한 차베스와는 다르긴 하다.[15] 실제로 2006년에 최저임금이 100달러선이었는데 2016년 기준으로 300달러 선까지 올라갔다. [16] 그래도 안데스 산맥 서부엔 에콰도르 최대 도시인 과야킬이 있어 인구가 어느 정도 있지만, 동부는 아마존 밀림이라 인구밀도가 희박하다.[17] 비단원숭이, 꼬리감는원숭이, 다람쥐원숭이, 올빼미원숭이, 티티원숭이, 사키원숭이, 고함원숭이, 거미원숭이, 양털원숭이[18] 다만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금액이 많은것과는 별개로 그 수입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는건 아니며 수출작물을 생산하고 있는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들은 대다수가 소작농이기 때문에 박봉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이것도 그나마 최저임금을 올리고 농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서 겨우 높아진 수준이다.) 더군다나 과거 경제위기를 겪고 정치혼란도 빚어졌을때는 착취도 심심치않게 벌어졌고 농장에서 나간다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좀체 힘들고 농장에서 빠져나가는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노예처럼 일하는 농민들도 많았다고 전해진다.[19] 산유량은 하루에 85만 배럴정도로 적은 편이지만 세수의 상당량을 석유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수는 없는 수준이다. 고유가 시기에는 총 세수의 1/4 가량을 차지했지만 2015년과 16년에 저유가의 여파로 인해 줄어들었다.[20] 대표적으로 키토 지하철이 있는데 키토의 교통난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던터라 계획이 세워졌고, 2013년에 첫삽을 떳지만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든데다가 재정이 줄어든 중앙정부로부터의 지원도 여의치 않아서 티스푼 공사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21] 2016년 기준으로 GDP 대비 30%대로 한국이나 대만과 비슷한 수준이다.[22]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싸졌다는 얘기이고 위낙 베네수엘라가 물자부족으로 수백%대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해서 묻혀졌을뿐이지 페루와 콜롬비아도 물가는 상당히 올랐기 때문에 현지인들 기준으로 체감물가는 높아졌다. 여행객들 입장에서는 싸졌지만.[23] 그래도 이 두 나라는 1929년 대공황 이전까지 남미에서 경제대국으로도 잘 나갔을 정도로 선진국으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24] 사실 베네수엘라의 환율체계가 복잡하고 공과금은 실질적으로 공식환율의 적용을 받지만 식료품가격이나 공산품은 국영상점에서 파는 물품을 제외하면 암시장 환율 적용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최저임금 수준을 계산하기 난감해서 편의상 시장환율로 친것이다.[25] 2010년대 중반기 이후로는 역전되었지만 201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브라질의 최저임금 수준이 에콰도르보다 높았고 이때까지만 해도 임금수준이 에콰도르는 임금 수준이 볼리비아처럼 크게 낮지는 않았지만 하워귄이었다.[26] 사실 이건 베네수엘라의 지하경제 규모가 큰데다가 공식 시장환율과 암환율 가치가 3-4배 이상으로 차이가 엄청나게 나다보니까 그런것이다 베네수엘라인들의 시궁창적인 경제상황은 따지고 보면 정부가 지정한 시장환율이 호황기때 외환보유고 관리를 못하다보니까 그 만큼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덕택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암시장 환율이 공식 환율 노릇하다 보니까 그 만큼 바가지를 엄청나게 쓰게 된 것이 원인이라는 뜻이다.[27] 8월에는 8월 10일이 독립기념일로 휴일이다. 대체휴일제도는 없어서 2014년과 같은 경우 5월 노동절 이후 10월 과야킬 독립기념일 사이에 휴일이 없는데, 5월 24일 피친차 전투 기념일이 토요일이기 때문.[28] 노동절이 월요일과 금요일이 아니면 5월 1일과 가장 가까운 월요일이나 금요일로 변경.[29] 치안이 안 좋고 살인/강도 범죄 비율이 높은 베네수엘라나 온두라스, 벨리즈, 브라질, 멕시코 등에 비하면 범죄율이 크게 낮고, 이웃나라들인 페루나 콜롬비아 등과 비교해도 범죄율은 낮은 편이다. 다만, 페루는 관광업이 국가의 주 산업이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대도시와 주요 관광지에서는 범죄 단속과 치안 유지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30] 아메리카 전체에서 치안이 가장 좋은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