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 아키라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전 일본프로야구 선수. 전성기였던 90년대 히로시마 시절엔 2차례의 홈런왕과 1번의 타점왕을 수상해 노무라 켄지로, 카네모토 토모아키 등과 카프의 붉은 악마 타선의 한 축이 되던 선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고교 통산 61개의 홈런을 때렸다. 투수와 포수를 겸직했지만 타력이 좋은 포수[2] 로 스카우트들에게 알려졌다. 1988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의 5순위 지명을 받았고 입단 당시의 등번호는 51번이었다.[3]
신인이던 1989년에는 1군에서 뛰지 않았다. 1989년 말에 33번으로 배번호를 변경했다. 1990년에 1군 무대를 밟았으며 우익수 또는 1루수로 38경기에 출장해 5개의 홈런을 날렸다.
1991년 타츠카와 미츠오가 안방을 지키자 후보 내야수로 주로 뛰었고 11홈런을 때렸다. 1993년 주전으로 발돋움한 그는 34홈런을 치며 첫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베스트나인에 선정됐다. 1994년에는 동료 마에다 토모노리와 똑같은 타율 .321을 기록했다. 1995년 2번째 홈런왕, 타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6년에는 32개의 아치를 그렸다.
1999년 시즌을 끝으로 히로시마를 떠나 FA권을 행사해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2000년 시즌에서 32홈런 91타점으로 2000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2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더니 2006년 1월 5일에는 요미우리가 구원 투수 도요다 기요시를 영입할 때 세이부에 보상선수로 지명되는 신세가 됐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FA이적'과 '다른선수의 FA이적과 관련된 보상선수로서의 이적'을 모두 경험한 선수가 됐다.
세이부에서는 팀내 고참으로서 젊은 선수들을 리드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9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요미우리의 코치로 재직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9 05:42:13에 나무위키 에토 아키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