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레 부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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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부가티
Ettore Bugatti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ttore_Bugatti_in_1932.jpg

본명
에토레 아르코 이시도로 부가티
Ettore Arco Isidoro Bugatti
국적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출생
1881년 9월 15일, 이탈리아 왕국 밀라노
사망
1947년 8월 21일 (향년 65세)
프랑스 뇌이쉬르센
직업
자동차 엔지니어, 기업인
조부모
할아버지 조반니 루이지 부가티 (1823 ~ 1880)
할머니 아멜리아 살보니 (? ~ ?)
부모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 (1856 ~ 1940)
어머니 테레사 로리올리 (1862 ~ 1935)
형제
동생 렘브란트 부가티 (1884 ~ 1916)
배우자
바르바라 주세피나 마스케르파(1907년 결혼, 1944년 사망)
제너비브 마르그리트 델큐즈(1946년 재혼)
자녀
장녀 레베 부가티 (1903 ~ ?)
차녀 리디아 부가티 (1907 ~ ?)
장남 장 부가티 (1909 ~ 1939)
롤랑 부가티 (1922 ~ 1977년)
딸 테레즈 부가티 (1942 ~)
아들 미셸 부가티 (1945 ~)

1. 개요
2. 생애
3. 기행
4. 기타



1. 개요[편집]


If it is comparable, it is no longer Bugatti.

비교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부가티가 아니다.

에토레 부가티가 세간에 남긴 한 문구.[1]

에토레 부가티는 프랑스의 최고급 자동차 제조사부가티의 엔지니어, 디자이너이자 설립자[2]이다. 부가티 Type 2부터 수많은 명차들을 제작하여 지금도 자동차인들에게 존경을 마지않는 자동차 제작자이다.


2. 생애[편집]


에토레 부가티는 1881년 9월 1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유명한 예술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조반니 루이지 부가티(Giovanni Luigi Bugatti)는 뛰어난 조각가이자 건축가였고, 그의 아버지인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 1856 ~ 1940)와 어머니인 테레사 로리올리(Teresa Lorioli, 1862 ~ 1935)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실내 장식가이자 최고급 아르누보 가구, 악기, 보석, 자전거 제작자였다. 또한 그의 동생인 렘브란트 부가티(Rembrandt Bugatti, 1884 ~ 1916)도 후에 유명한 조각가가 되었고, 그의 고모부는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화가인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 1858 ~ 1899)는 점묘풍으로 알프스 산맥을 아주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으로 아주 유명한 화가였다.

파일:2676724.jpg
청소년기의 에토레 부가티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는 에토레에게 자신을 따라 자전거 제작 기술을 배울 것을 원했고 17세에 자전거 제조 회사인 Prinetti & Stucchi에 들어갔다. 여기서 에토레 부가티의 첫 자동차인 부가티 Type 1을 만든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굴리넬리(Gulinelli) 백작을 만나는데, 굴리넬리 백작은 에토레의 천재적인 자동차 엔지니어적 재능을 발견하고 에토레에게 재정을 지원해주었다. 에토레는 마음껏 재능을 발산해 1900년에 기념비적인 부가티의 자동차, 부가티 Type 2을 만들어 보였다. 그 해, 에토레는 부가티 Type 2로 밀라노 박람회에서 상을 수여받았다.

파일:Ettore_Bugatti_&_Type_2.jpg
부가티 Type 2와 굴리넬리 백작


3. 기행[편집]


에토레 부가티는 생애를 보면 알겠지만 정식으로 엔지니어링에 대해 배운 적 없이 독학과 어깨 너머로 배운 것만으로 이런 사기차를 뽑아내던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완벽주의적이고 괴팍하기로는 엔초 페라리, 호라치오 파가니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성격이 특이했는데, 그의 몇몇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참고로 카더라 통신이 아니고 전부 실화다.
  • 동물 애호가였던 에토레 부가티는 집에 작은 개인 동물원을 두고 있었는데, 특히 의 혈통에 대해 상당히 민감했던 그는 시중에 분양되는 개에 만족하지 못해 자신이 직접 개 분양업에 착수했었다.
  • 프랑스의 달걀 값이 폭등하자 그는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을 키워 계란을 얻으려고 했는데,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이었던 성격 탓에 직접 닭을 키울 이동형 닭장을 제작하고서야 만족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얻는 달걀이 훨씬 더 비쌌다고 한다.
  • 그는 밥을 먹을 때 반드시 자신이 정한 배열로 식기를 배열하고서야 밥을 먹었다.
  • 부가티의 고객 중 한 명이 추운 날씨에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불평하자 그는 자사의 차를 살 정도의 재력이 되는 양반이면 당연히 차고에 난방장치를 설치할 정도는 돼야하는 것 아니냐며 쏘아붙였다.
  • 알바니아의 국왕 조구 1세가 그의 차 중 최상위급 모델이었던 부가티 타입 41 루아얄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부가티 본인이 조구 1세의 밥 먹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매를 거절했다고 한다. 참고로 타입 41은 군주제 폐지와 대공황의 여파 때문에 판매부진에 시달려 목표 판매량 25대 중 꼴랑 3대만 판매되었다.
  • 부가티 타입 35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불평한 고객이 있었는데, 에토레는 그에게 "내 차는 달리라고 있는거지 서라고 있는게 아니다."라는 짤막한 편지 한 장으로 대꾸한 적도 있었다.
  • 어느 고객은 기차에서 부가티 본사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차를 구매하겠다고 했는데, 에토레는 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내쫓았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타고 온 택시 브랜드가 마음에 안 들어서.(...)
  • 당시 벤틀리 3리터라는 차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트럭(The fastest lorry in the world)"이라고 했는데 이는 르망 24시에 출전하고 있던 벤틀리 3리터가 당시 레이싱 카들보다도 확연히 무게가 더 많이 나가서였다.
  • 에토레 부가티는 오렌지를 특히 좋아했는데, 사시사철 싱싱한 오렌지를 먹기 위해 이번에도(2) 직접 실내 과수원을 지어 오렌지 나무를 심어 가꾸면서 매우 흡족해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지독한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성격으로 인해 퇴짜를 맞거나 좋지 않은 반응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며 불쾌해 했음은 당연지사. 그래서 부가티 차량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재력도 있어야 했지만, 에토레 부가티의 이런 까다로운 진상 행적을 다 받아줄 수 있어야 했다고.


4. 기타[편집]


현재 에토레 부가티의 생가와 그의 개인 실내 과수원 등은 폭스바겐 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부가티 쇼룸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명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쇼룸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생가와 과수원, 쇼룸은 여기를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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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문구는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에 새겨졌고, 부가티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 문구가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2]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 폭스바겐 그룹의 자회사인 Bugatti Automobiles S.A.S.가 아닌 Automobiles Ettore Bugatti를 설립했다. 오직 하이퍼카만 생산하는 현재와는 다르게 레이싱카부터 최고급 세단까지 각종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