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문트 로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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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dmund Rossmann.jpg




에트문트 로스만(Edmund "Paule" Roßmann : 1918. 1. 11~2005. 4. 4)

1. 개요
2. 서부전선
3. 동부전선
4. 전쟁 포로
5. 서훈



1. 개요[편집]


독일 공군 소속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640회 출격하면서 적기 93대를 격파한 에이스 파일럿이다.
에리히 하르트만이 처음으로 편대를 짠 파트너로서 더 잘 알려진 로스만은 1918년 1월 11일, 레우스-게라 공국(Fürstentum Reuß-Gera)의 카슈빗츠(Caaschwitz)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에드문트는 18세가 되던 1938년루프트바페에 사병으로 징집되었다.


2. 서부전선[편집]


전투기 조종을 지망한 그는 1940년 3월 1일에 전투비행 교육을 마치고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자대로 가게 된다. 그는 제52전투항공단 예하의 제7전투비행단을 첫 자대로 배정받고 편대원 자격으로 프랑스 침공 작전과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싸웠다. 나중에 독일러시아를 침공하기 위한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하기 전까지, 에드문트 하사는 서부전선의 공중전에서 6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3. 동부전선[편집]


1941년 초여름부터 동부전선에서 활동을 개시한 그는 해가 저물기 전에 32대까지 격추수를 늘렸고, 250회 출격과 49대 격추를 달성한 후에는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듬해인 1942년 3월부터 6월까지는 잠시 후방에 있는 동부 보충전투비행단(EJGr Ost)으로 물러나 비행 교관으로 활동했다. 여름에 다시 전선으로 돌아온 그는 그해가 저물 때까지 자신의 격추 스코어를 2배로 늘려놓았고, 11월 29일에는 80번째 적기를 격추했다.


4. 전쟁 포로[편집]


해가 바뀐 1943년소위로 진급해 장교가 된 에드문트 로스만은 거듭해서 출격을 계속했다. 7월 9일, 로스만은 러시아 전선 너머 적진에 추락한 동료 조종사를 구출하기 위해 지상에 착륙을 감행했다. 동료 전우 지그프리트 세일러(Siegfried Seyler : 5대 격추) 소위를 찾아낸 그였지만 곧바로 러시아 군인들이 몰려와 사격을 가했고 두 조종사는 부상을 입고 함께 포로로 잡혔다. 수용소로 보내진 그는 전쟁이 끝나고도 4년이 흐른 후인 1949년 10월에야 석방되었다.


5. 서훈[편집]


2급 / 1급 철십자 훈장
공군 명예컵 (1941년 11월 6일)
독일 황금십자장 (1942년 1월 22일)
기사철십자 훈장 (1942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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