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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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국가방위군
የኢፌዲሪ መከላከያ ሠራዊት
Ethiopian National Defense Force
국가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에티오피아
소속
에티오피아 국방부
상비군
162,000명
병역제도
모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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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력
2세대 전차
300대
장갑차(APCs/IFVs)
2,210대
자주포
67문
대전차포
36문
견인포
370문
박격포
200문이상
방공포
300문이상
MLRS
183대
지대공미사일
10문이상
공군력
전투기
30기
훈련기
10기
수송기
9기
헬리콥터
25기

예산
국방비 종합
4억8800만달러

1. 개요
2. 역사
3. 수뇌부
4. 육군
5. 해군
6. 공군
7. 관련 문서
8. 매체에서 등장




1. 개요[편집]


에티오피아의 군대. 통수권자에티오피아 총리이며 현직 통수권자는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이다.

GDP 대비 동아프리카 최강급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지만, 공산주의 정권이 국고를 말아먹는 바람에 장비가 상당히 노후화되어 있다. 특히 경제난으로 인해 병력도 과거에는 35만명을 보유했으나 현재는 절반인 20만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2. 역사[편집]


어처구니없게도 1896년 이탈리아군이 쳐들어 올때, 창칼로 무찔렀다는 엉터리 도시전설이 넷상으로 퍼졌는데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에티오피아군은 그 시절에 이미 현대적 총기로 단단히 무장되었다.[1] 이런 도시전설이 심지어 6.25때조차도 한국땅에 창칼들고 왔다는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물론 검색만 해도 당시 무장한 에티오피아군 사진이 얼마든지 나온다.[2]


1951년, 한국으로 파병되는 에티오피아군을 보도하는 British Pathé.[3]

6.25 전쟁 당시 각국들이 유엔군으로 참전할 때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역시 직속 근위대인 '메할 세파리'를 주축으로 1개 대대(통칭 칵뉴 대대)를 조직해 파병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 도착해 타국군과 비교해 보니 무기와 보급품이 구식이어서 대부분을 미제 장비로 바꾸고 이를 숙달하는 별도의 훈련을 하였는데, 동시에 미군의 신용도 깎여서 후방에서 보급지원을 맡을 뻔 했다.

그러나 이러려고 온 게 아니라며 미군 배속으로라도 최전선에 가길 자청했고, 그렇게 중동부전선(철원[4] ~양구[5])에서 미군 전선의 일부를 맡아 253전 253승의 엄청난 전적을 올렸다. 포로로 잡힌 적[6] 또한 없으며 동료의 시신을 전장에 두고 오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상상도 못할만큼 끔찍하게 추운 곳이라고 한다.

이 때 참전 용사들은 고아원을 설립하였는데 먹을게 부족하여 자신이 먹을 음식량을 줄여서 나눠줬다고 한다.

여기에 소속된 유명한 사람으론 아프리카 최초로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가 된 아베베 비킬라가 있다. 한국전쟁에도 1년간 대대장 경호병으로 참여하였는데 서울수복기념 마라톤에 참가한 사유는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때 한국인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있다." 라는 이유였다. 국제게임임에도 한국의 위상이 북한만도 못해서 아무도 안왔을 때 마라토너 세계 1위가 참여한건 꽤 특이한 일이라 많은 세계구급 선수가 참여해 개발도상국치곤 수준급 경기가 되었다. 허나 40대의 나이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요절하여 한국이 발전된 모습은 못보고 돌아가셨는데 그가 죽은지 얼마안가 공산주의 세력의 반란으로 나라가 박살나고 황실근위대가 학살되었는데 이 반란군은 나라의 영웅이든 뭐든 그딴건 신경안쓰는 타입이라 그걸 보기 전에 죽은건 오히려 새옹지마일 수 도 있다.


3. 수뇌부[편집]


파일:에티오피아 국기.svg
통수권자
국방장관
참모총장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
아브라함 빌레이 국방장관
비르하누 줄라 젤랄차 대장
에티오피아 육군
육군참모총장

에티오피아 공군
공군참모총장

에티오피아 해군
해군참모총장

에티오피아 공화국 수비대
수비대 사령관

아스라트 디네로 중장
일마 메르다사 중장
킨두 게주 해군소장
베르하누 베켈레 소장



4. 육군[편집]







에티오피아 제국이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1971년 쿠데타로 에티오피아 제국이 멸망하고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이 건국되었으나 1988년 멜레스 제나위의 쿠데타로 지금의 에티오피아가 건국된다. 에티오피아 육군은 나름 큰 규모였으며 1990년대 5개의 혁명군(야전군 규모), 11개의 군단, 24개의 보병사단, 4개의 산악사단, 5개의 기계화사단, 2개의 공수사단, 기계화여단, 포병여단, 탱크여단, 로켓대대, 준군사여단 등이었다. 에티오피아가 건국되고 현재의 육군은 중부, 북부, 서부, 동부사령부 겸 군단 4개와, 기계화 사단 1개, 6개의 보병사단으로 편제되어 있다. 이전 인민당시에는 다양한 장비를 소비에트 연방의 지원을 받아 군함, 수송기, 전투기, 헬리콥터, 탱크, 포, 미사일 등을 지원받았으며, 지원받은 값이 35억 달러로 추산되며 이 부채를 갚지 못해 에티오피아는 지금도 큰 부채를 가지고 있다. 2000년 5월 유엔의 무기 금수 조치가 있기 전까지 에티오피아는 러시아로 부터 무기를 수입한 국가이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평화 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코트디부아르, 부룬디, 르완다, 라이베리아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으며, 유엔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최근 수단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중 임무가 2021년에 중단되면서 21,000명이 복귀하였다. 현재 소말리아에 1000명 이상이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 중이다.

육군 병력 약 138,000여명

공수부대 약 3,000명

T-72를 비롯한 타 전차(T-54,T-62 등)총 700여대

T-72UA1 200대 도입.

미사일 총 170기

탄도미사일 40기

갈로시 미사일 130기

5. 해군[편집]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영토였던 시절에 해군을 보유했으나, 독립 이후 경제적 사정과 에리트레아와의 전쟁 여파로 해군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해군을 해산하거나 홍해에 있던 해군 선박들을 에리트레아에게 넘겼다. (1955년 ~ 1996년)

재건기(2019년 ~ )
해군 본부는 타나호에 위치한 바히르다르에 있다.

6. 공군[편집]


병력은 약 3500명

전투기
이름
수량
MiG-21
18대
MiG-21U
3대
MiG-23
8대
MiG-23UM
4대
Su-25
6대
Su-27
7대
Su-27SK
8대
총합
54대

헬기
이름
수량
Mi-14PL
2대
Mi-24
15대
Mi-35
3대
Mi-6
10대
Mi-8
12대
총합
42대


7. 관련 문서[편집]



8. 매체에서 등장[편집]



8.1. 게임[편집]



8.1.1. 도미네이션즈[편집]


  • 칵뉴 보병이 등장하며 다음과 같은 추가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제1근위사단에서 비롯된 칵뉴 정예 보병 대대는 한국전쟁 중 미국 제7보병사단과 나란히 큰 공을 세웠습니다. '칵뉴'라는 이름은 하일레 셀라시에의 아버지인 라스 마코넨의 군마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칵뉴 보병 대대는 한반도로 향하는 미국 함선 제너럴 J.H. 맥레 호에 승선하기에 앞서 에티오피아 산악 지대에서 8개월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수차례 중요한 공훈을 세우면서 한국 전쟁 동안 큰 명성을 쌓았으며, 공격군이자 방위군으로서 전투에 238번 참여하여 전승을 거뒀습니다. 또한 이들은 단 한 번도 적에게 항복하거나 전사한 동료를 전장에 두고 가지 않은 유일한 파견 부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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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인데 에티오피아 제국은 당시로서는 열강으로 분류되었다. 이미 주변의 아프리카 소부족들을 장악하고 식민지로 삼았으며, 국제연맹에서 엄연한 일원이자 아프리카의 최강국 중 하나로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에티오피아를 두고 "그리스-로마인들의 직계 후손과 같은 제국"이라면서 추켜세웠고, 이탈리아가 2차 에티오피아 전쟁에서 독가스로 에티오피아를 무너뜨리자 국제연맹에서는 오히려 이탈리아에게 니들 야만인이냐는 욕설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은 에티오피아에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아 비난 이상의 강경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 사태를 심각하게 보던 영국은 대독 스트레사 체제를 붕괴시키고 이탈리아에 금수조치를 행한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 특히 이 스트레사 체제의 붕괴는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라고도 볼 만하다.[2] 창과 방패로 기관총을 든 이탈리아군을 격파한 오로모족 기병대로 인해 이런 헛소문이 퍼진 듯 하다. 오로모족 기병대도 창과 방패로 기마돌격을 마친 다음엔 내려서 총을 쐇다. 기마돌격으로 총을 쏘기 어려운 곳까지 접근하여 근접전투를 하였기에 총은 부무장에 가깝다.[3] 썸네일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다.[4] 저격능선 전투.[5] 단장의 능선 전투.[6]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리아인 한정으로 포로는 고자로 만드는 풍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