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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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헬레니즘 시대,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 쾌락주의 철학을 펼쳤다.
2. 생애[편집]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당시 아테네의 식민지였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14세에 학교 선생들이 헤시오도스의 책에 나오는 혼돈 개념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하자 선생을 얕잡아 보게 되어 철학을 접했다. 18세에 아테네로 넘어가 2년간 군복무를 했고, 학교 교사로 잠시 활동하다가 데모크리토스의 책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철학을 하기 시작했다.[2]
32세에는 레스보스 섬의 뮈틸레네와 람사코스에서 학파를 세우고 5년을 지냈다. 그 후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서 철학 공동체인 '정원'을 세우고 35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정원'의 구성원에는 여자와 노예는 물론 심지어 창녀도 속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에피쿠로스를 비웃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를 비웃던 사람들도 에피쿠로스와 제자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자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72세까지 살다가 요로 결석과 이질로 14일간 앓다가 죽었다. 그때 그는 따뜻한 물로 데워진 청동 욕조에 들어가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를 가져오게 해 한 번에 들이켰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지시하고서 숨을 거두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동상을 세워 그의 명예를 기렸다. 그의 친구들은 하나의 도시 국가를 넘어설 정도로 그 수가 많았으며, 그의 모든 제자들은 그의 학문적인 매력에 단단히 붙들렸다. 평소에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인간애가 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친구들이 도처에서 그에게로 와서 그의 정원에서 그와 함께 살았던 덕분인지, 다른 학파들은 계보가 거의 끊어졌지만 그의 학파는 계보가 언제나 계속 이어지면서 무수히 많은 제자들을 차례로 배출하였다.
3. 사상[편집]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데모크리토스를 계승하여 이를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인식론에서의 감각과 자연학에서의 원자론적 관점이 유사하며, 윤리학적 면에 있어서도 데모크리토스의 '쾌활함'과 에피쿠로스의 '쾌락'이 정적으로 절제된 쾌락(쾌활함)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3.1. 쾌락주의[편집]
우리는 쾌락을 선천적으로 좋은 것이라 인식하고, 쾌락을 기준으로 모든 선택과 기피를 행한다. 하지만, 모든 쾌락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어떤 쾌락은 종종 지나쳐서 불쾌감을 더 많이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괴로움은 참고 견딜 때 후에 더 큰 쾌락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에피쿠로스는 이러한 쾌락과 괴로움을 상호 비교 측정하여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불이익인지를 판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 무지하거나 우리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거나 오해하는 일부 사람들의 생각처럼 방탕한 자의 쾌락을 말한다거나 관능적인 향락에서 주어지는 쾌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괴로움도 없고 영혼에 동요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391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술을 먹거나 성관계를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 방탕한 생활은 지나치면 불쾌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불이익이다. 그리고 이렇게 방탕한 쾌락을 제거하다 보면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진정한 쾌락은, '몸의 건강과 영혼의 평정'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에피쿠로스는 '몸에 괴로움이 없고 영혼에 동요도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통이 제거될 만큼의 꼭 필요한 쾌락만 충족되면 되는 것이다.[5]
그 필요한 쾌락의 충족은, 몸에 필요한 쾌락과 영혼에 필요한 쾌락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 몸에 대해서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욕망을 충족하여 몸에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될 것을 추구하는데, 이를 아포니아(ἀπονία)라고 부른다. 영혼에 대해서는 망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인간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기 때문에 우주와 죽음, 욕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영혼이 동요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을 추구하는데, 이를 아타락시아(ἀταραξία)라고 한다.[6] 그리고 이를 통해 '고통이 부재'하게 되면 인간은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에피쿠로스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최소한의 필요한 쾌락이 충족되는 것을 말한다. 단, 지속적으로 최소한의 필요한 쾌락이 충족되고 그 삶에 익숙해져서 그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간혹 찾아오는 '사치스런 쾌락'을 즐기는 것을 에피쿠로스는 막지 않는다.[7] 따라서 쾌락에 절제를 요구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3.2. 죽음에 대하여[편집]
에피쿠로스는 육신의 쾌락보다 사유의 쾌락을 더 높게 평가한다. 육신의 쾌락은 결핍에 따른 괴로움이 제거되면 증가하지 않고 단지 다양화될 따름이지만, 사유의 쾌락은 '사유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에 대한 이성적인 헤아림에 의해 그 끝까지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유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따라서 사유를 통해 육신의 목적과 한계를 깊이 헤아려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모두 감각에 달려 있지만,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죽게 되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삶에 무한한 시간을 부여함으로써가 아니라, 불사에 대한 동경을 제거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지 않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과도 관계가 없고 죽은 자들과도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은 자들은 그들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8]
그렇다면 죽음이 우리 삶에 아무것도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에피쿠로스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굳이 괴로움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9]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이제 자신의 한정된 삶을 나름대로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에피쿠로스는, 우리의 한정된 삶의 행복[10] 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정이라고 말한다.[11] 외부 상황들에서 주어지는 불안거리를 잘 다스리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과 친숙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했고,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은 그것이 설사 득이 된다고 하더라도 피했다. 이렇게 우정을 쌓음으로써 불안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이웃들이 서로 가장 즐거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12]
3.3. 에피쿠로스의 신학[편집]
고대 서양 무신론의 대표 주자인 양 알려져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 에피쿠로스는 신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은 불멸하며 살아 있는 지복[13] 의 존재이기에 행복하기 위해서 믿어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신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듯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고 착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그런 신은 아니다. 그 신은 우주의 운행에 관여하지 않는다.[14] 그리고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영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어 죽은 이후에 영혼은 단지 흩어질 뿐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15] 게다가 예언을 믿지 않았고, 설사 예언이 맞아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예언에 따라 일어난 일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16]
즉 에피쿠로스는 무신론자라기보다는 이신론자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에피쿠로스의 이러한 신 개념은, 세상을 주무르는 초월적인 인격신의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에피쿠로스를 '유신론자를 가장한 무신론자'라고 보았고, 그 때문에 중세에 이르러선 그의 책들은 대부분 다 불에 태워졌다.
3.3.1. 에피쿠로스의 역설[편집]
Epicurean paradox, riddle of Epicurus, Epicurus' trilemma
악의 문제 중 대표적인 예로 항상 언급되는 역설이다. 3세기 초 그리스도교 신학자 락탄티우스의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며, 그에 따르면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주장이 실제로 에피쿠로스가 한 말인지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에피쿠로스가 이해했던 신은 기독교 유일신이 아니라 그리스의 신들을 말하는 것이었고, 그리스의 신들은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 3세기경에 에피쿠로스는 무신론자로 알려졌었고 위의 역설 역시 무신론자의 대표적인 논리로 알려져 있었다.신은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한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데이비드 흄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인격적인 신은 없다[17] 고 보는 것이 더 개연성이 있다'는 논지의 주장을 하기 위해 위의 역설을 인용한다.
4. 평가[편집]
… 에피쿠로스는 이미 이런 종류의 선행 형식과 싸운 적이 있었다. 에피쿠로스가 무엇과 싸웠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루크레티우스를 읽어보라. 그는 이교도와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교'에 맞서 싸웠다. 말하자면 죄 개념에 의한, 벌과 불멸 개념에 의한 영혼의 타락에 맞서 싸웠다. ㅡ 그는 지하적 제의들, 잠복하고 있던 그리스도교 전체와 맞서 싸웠다 ㅡ 불멸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에 이미 진정한 구원이었다. ㅡ 그리고 에피쿠로스가 이겼을 수도 있다. 로마 제국의 존경할 만한 사람은 전부 에피쿠로스주의자였기에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5. 한국어 번역[편집]
현재까지 전해지는 에피쿠로스의 글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책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나오는 것이 전부다. 이 책은 학문적이나 철학적으로 엄밀한 책은 아니나,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를 언급한 부분에 한정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살았던 당 시대에도 성행했던 학파였기 때문에 그가 비교적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는 점과, 그 학파들에 관련해서 남아있는 온전한 자료가 이 책이 거의 유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핵심 텍스트로 취급된다. 이 책의 10편에서 에피쿠로스 얘기가 나오며, 그중 에피쿠로스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3편의 편지는 그의 실제 생각과 문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한국에서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서 에피쿠로스에 해당하는 부분만 따로 때내서 1998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쾌락》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근데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다. 따라서 차라리 책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번역본을 보는 것이 낫다. 다행히 그리스어와 라틴어 번역으로 유명한 정암학당에서 2021년에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원전번역을 해놨다.# 이와 똑같은 책이 2008년에 이미 동서문화사의 《그리스철학자열전》으로 먼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번역본은 작가가 말은 안했지만 일본어 중역으로 의심된다. 따라서 그냥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빌려서 마지막 챕터 에피쿠로스 파트만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18]
2022년에는 현대지성 클래식에서 《에피쿠로스 쾌락》이 출간되었다. 원전 번역을 표방하고 있지만 의역이 많고 번역의 질은 나쁜 편이다.
6. 여담[편집]
- 에피쿠로스와 그의 제자들은 평소에 매우 간소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 "아무튼 포도주 약 4분의 1리터[19] 로 그들은 만족했으며, 물이 음료의 전부였다"고 디오클레스는 말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친구들의 것은 공동의 것"이라는 피타고라스의 말대로 재산을 공동의 것으로 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서로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 하는 것이며, 친구라면 굳이 그런 규칙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 카를 마르크스의 박사 학위 논문이 바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 철학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를 기계적 운동만 하는 것으로 본 반면 에피쿠로스는 원자가 우연적인 일탈 운동(편위, declination)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봄으로써 유물론적이면서도 자발적이고 다양한 운동이 가능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스스로 "나는 에피쿠로스주의자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미국 독립 선언문에서 주창한 '행복추구권'의 뿌리가 에피쿠로스의 제자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도 제기된 적이 있다. '쾌락'을 '행복'으로 살짝 바꾸었다는 것이다.#
- 에피쿠로스는 기독교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어 천 년간 잊혀졌었다. 그러다가 15세기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가 남부 독일의 한 수도원의 서가에서 에피쿠로스주의 철학자이자 고대 로마의 시인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함으로써, 유럽에 에피쿠로스가 다시 소개되었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키아벨리, 몽테뉴 등에게 읽히면서 더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 17세기에는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가상디가 에피쿠로스를 다룬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면서, 에피쿠로스는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