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데르 포스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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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

파일:postiga.jpg
이름
엘데르 포스티가
Hélder Postiga

본명
엘데르 마누엘 마르케스 포스티가
Hélder Manuel Marques Postiga
출생
1982년 8월 2일 (41세) /
포르투갈 빌라두콘드
국적
[[포르투갈|

포르투갈
display: none; display: 포르투갈"
행정구
]]

신체
182cm
포지션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선수
유스
바르짐 (1992~1995)
FC 포르투 (1995~2000)
프로
FC 포르투 (2000~2003)
토트넘 홋스퍼 FC (2003~2004)
FC 포르투 (2004~2008)
AS 생테티엔 (2006 / 임대)
파나티나이코스 FC (2008 / 임대)
스포르팅 CP (2008~2011)
레알 사라고사 (2011~2013)
발렌시아 CF(2013-2014)
SS 라치오 (2014 / 임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014~2015)
아틀레티코 콜카타 (2015)
히우 아브 FC (2016)
아틀레티코 콜카타 (2016)
국가대표
71경기 27골[1] (포르투갈 / 2003~2014)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1. 개요[편집]


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2. 클럽 경력[편집]


포르투갈의 빌라두콘드에서 태어난 포스티가는 유년 시절에 바르짐을 거쳐 FC 포르투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그는 유스 시스템을 거쳐 2000년부터는 B팀으로 승격됐다. 리저브팀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맘껏 뽐내며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불려왔고 주제 무리뉴가 포르투의 A팀 감독에 선임되자 그의 부름을 받고 1군에 전격 콜업됐다.

콜업되자마자 레귤러 멤버로 활약한 포스티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리그와 유럽대항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2-03 시즌에는 리그에서 31경기동안 13골, UEFA 컵에서는 13경기 5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스트라이커인 데를레이와 함께 미니 트레블 주역으로 활약했다.

포르투에서의 활약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포스티가는 2003-04 시즌을 앞두고 프리미어리그토트넘 홋스퍼에 입단했다. 당시 토트넘의 감독이었던 글렌 호들은 그의 영입을 두고 젊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를 영입하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기대가 컸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포르투갈 리그와는 차원이 다른 빠른 템포와 거친 몸싸움에 포스티가는 적응을 하지 못했고 리그 19경기에 나서 1골에 그쳤다.[2] 참고로 그의 유일한 리그 득점은 2004년 1월 17일에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 넣은 득점이었다. 심지어 그의 전 소속팀 포르투가 리그에 이어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거머쥐며 더블을 이룩하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그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버렸다. 좀만 참지..

결국 1시즌만에 페드로 멘데스와 스왑딜 형식에 750만 유로를 얹어 포르투로 복귀했다. 친정팀으로 돌아온 포스티가는 익숙한 무대에서 부활을 다짐했으나 결과는 34경기동안 3골에 그치며 공격수로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다.

다음 시즌에는 코 아드레안세가 부임한 후 그의 절망스러운 폼을 보고는 바로 B팀으로 강등시켜버리면서 리저브팀에서 전반기를 보내는 굴욕을 맛봤다. 결국 곧 있을 독일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이적을 모색했고 리게 앙AS 생테티엔으로 반 시즌 임대를 떠났다. 생테티엔에서도 저조한 득점력으로 별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도 월드컵은 갔다.

2006-07 시즌 원소속팀으로 복귀한 포스티가는 다시 A팀으로 승격되어 많은 경기를 소화했고 실제로 리그에서 10골을 넣으며 스텟상으로는 제법 괜찮은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경기력면에서는 팬들의 뒷목을 잡았고 이후 아드리아누 같은 경쟁자들에 밀려 서브로 전락했다.

2007-08 시즌에는 아예 경기에 나서는 횟수가 크게 줄어들며 입지가 많이 좁아진 상태였고 이듬해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파나티나이코스로 잔여시즌동안 임대를 떠났다.

2008년 6월 1일, 포스티가는 최대 라이벌팀인 스포르팅 CP로 이적하게 되면서 나가는 순간까지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그리고 9월 1일에 치러진 리그경기 SC 브라가를 상대로 첫 득점을 신고했다.

스포르팅에서도 포르투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는 활약상으로 비판을 받아야만 했고 심지어 2010년 4월 19일 비토리아 SC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할때까지 1년 가까이 골을 넣지 못하는 처참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결국 2011년 8월 31일,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라 리가의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했다. 팬들도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포스티가는 모두의 예상을 비웃듯이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팀내 최다 득점자(리그 9골)로서 강등 탈출에 큰 기여를 했다. 하염없이 추락을 거듭하던 그가 마침내 부활에 성공한 것. 다음 시즌에는 득점력이 더욱 무르익으며 리그에서만 14골을 기록했으나 정작 팀은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강등당했다.

이후 사라고사에서의 활약상을 지켜본 발렌시아 CF가 그를 로베르토 솔다도의 대체자로 데려왔으나 애매모호한 활약을 선보이며 결국 반 시즌만에 SS 라치오 임대를 떠났다. 라치오에서는 기회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쓸쓸히 복귀해야했다.

임대 복귀 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인도 슈퍼 리그아틀레티코 콜카타 그리고 자국 리그인 히우 아브 등을 거쳐 다시 콜카타로 돌아온 포스티가는 2016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1년부터 2002년까지 U-21 대표팀 소속으로 16경기동안 12골을 넣으며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했다.

2003년 2월 12일에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A대표팀에 데뷔했다. 이후 그는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FIFA 월드컵 무대에 3번씩 참가하며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사실 부진을 거듭했던 클럽에서의 활약상과 달리 대표팀에서는 그래도 이분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제몫을 다 해줬다. 특히 그가 참가했던 유로 무대에서는 매 대회마다 1골씩 넣어주기도 했는데, 유로 2004 8강전 승부차기에서는 서든데스 상황에서 파넨카를 작렬시키는 미친 강심장을 보여주며 축구팬들을 경악시켰다.[3]

2014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순도 높은 골을 여러번 득점하는 등 맹활약하며 호날두에 이은 팀내 최다득점 2위로 조국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데 기여했다. 몰론 월드컵 본선에서는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여하튼 그가 클럽에서 부진해도 대표팀에 중용된 이유는 명확했던 셈. 특히 지역예선 이스라엘전에서는 시종일관 이스라엘에게 끌려가며 호날두도 구하지 못한 포르투갈을 무승부로 막아서 구해냈다.

또한 파울레타누누 고메스의 은퇴 이후 오랜기간 대표팀 스트라이커의 잔혹사의 겪는 동안 우고 알메이다와 더불어 암울했던 공격진의 멤버들 중 한명이지만 알메이다와 비교하기에는 실례가 될 정도로 활약상은 차원이 달랐고 무엇보다 포스티가는 현재까지 대표팀 최다 득점 6위에 랭크되어 있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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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팀 역대 득점 6위.[2] 아스날과의 북런던 더비에서는 1-0으로 앞서던 전반에 추가골 기회를 두 번이나 놓치며 역전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3] 메이저 국제대회의 승부차기에서 파넨카는 종종 볼 수 있지만, 이건 실축하면 그대로 탈락하는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개최국인 포르투갈의 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