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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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윈저 왕조 제4대 여왕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출생
1926년 4월 21일 (96세)[1]
영국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메이페어 브루턴가 17번지
재위기간
영국영연방 왕국 여왕
1952년 2월 6일 ~ 현직[2][3]
서명
파일:엘리자베스 2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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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Elizabeth Alexandra Mary
호칭
영국 연방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
Her Majesty Queen Elizabeth II of the United Kingdom
신체
163cm, Rh- O형
배우자
에든버러 공작 필립 (1947년 결혼 / 2021년 사망)
자녀
장남 찰스, 장녀 , 차남 앤드루, 3남 에드워드
아버지
조지 6세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형제
여동생 마거릿
군사 경력
복무
파일:169px-British_Army_Logo.png 영국 육군
1945년 ~ 1952년
최종 계급
대위
주요 보직
보급수송장교
참전
제2차 세계대전



파일:255543-1548346357.jpg

공식 초상화

1. 개요
2. 작위
2.1. 호칭 논란
3. 생애
3.1. 어린 시절
3.2. 종친에서 후계자로
3.3. 결혼과 가정
3.4. 여왕으로서의 삶
4. 장수
4.1. 영국 역사상 최장수 & 최장 재위 군주
4.2. 재위 60주년, 다이아몬드 주빌리
4.3. 재위 70주년, 플래티넘 주빌리
4.4. 역대 건강 이상설
7. 여담
8. 갤러리



1. 개요[편집]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과 그 밖의 국가와 영토의 여왕, 영연방의 원수,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에서의 호칭[4]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왕국의 現 여왕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생존한 군주국가원수들 중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군주 및 국가원수이자 가장 나이가 많은(1926년생) 군주 및 국가원수이다. 또한 현재 전 세계의 유일한 1920년대생 국가 지도자급 인사이기도 하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국왕이며, 여왕으로서는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하고 있다.[5] 25세이던 1952년 2월 6일부터 70년째 재위 중이다.[6]

일반적으로는 영국 여왕이라고 부르지만 1952년 즉위한 이래 영국 이외에도 호주, 캐나다, 자메이카 등 15개 영연방 왕국들의 군주직을 겸하고 있다. 그리고 재위 중인 15개국이 아닌 다른 17개국의 여왕이다.[7][8]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역사상 왕의 칭호를 가장 많이 가졌던 군주다. 여왕이 과거 재위했던 국가와 현재 재위 중인 국가는 다음과 같다.

파일:British_Empire_in_February_1952.png
1952년 즉위 당시 엘리자베스 2세의 통치 영역
붉은색은 영국, 핑크색은 영연방 왕국, 적갈색은 대영제국 보호령, 빗금은 자치령의 보호령[9]
파일:Commonwealth_realms_map.svg.png
▲파란색은 엘리자베스 2세가 현재 재위 중인 국가, 적갈색은 과거 영연방 왕국이었던 나라들.
엘리자베스 2세는 이 34개국 중 인도(~1950년)와 아일랜드(~1937년)를 제외한 32개국(현 15개국)의 왕위에 올랐다.
국가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비고
영국
1952.2.6.


(재위 중)
캐나다
1952.2.6.


(재위 중)
호주
1952.2.6.


(재위 중)
뉴질랜드
1952.2.6.


(재위 중)
파키스탄
1952.2.6.
1956.3.23.
4년 48일
헌법 개정
남아프리카 연방
1952.2.6.
1961.5.31.
9년 118일
국민 투표
실론
1952.2.6.
1972.5.22.
20년 112일
헌법 개정
가나
1957.3.6.
1960.7.1.
3년 119일
국민 투표
나이지리아
1960.10.1.
1963.10.1.
3년
헌법 개정
시에라리온
1961.4.27.
1971.4.19.
9년 360일
헌법 개정
탕가니카
1961.12.9.
1962.12.9.
1년
헌법 개정
자메이카
1962.8.6.


(재위 중)
트리니다드 토바고
1962.8.31.
1976.10.26.
14년 61일
헌법 개정
우간다
1962.10.9.
1963.10.9.
1년
헌법 개정
케냐
1963.12.12.
1964.12.12.
1년
헌법 개정
말라위
1964.7.6.
1966.7.6.
2년
헌법 개정
몰타
1964.9.21.
1974.12.13.
10년 86일
헌법 개정
감비아
1965.2.18.
1970.4.24.
5년 67일
국민 투표
가이아나
1966.5.26.
1970.2.23.
3년 275일
헌법 개정
바베이도스
1966.11.30.
2021.11.30.
55년
헌법 개정
모리셔스
1968.3.12.
1992.3.12.
24년
헌법 개정
피지
1970.10.10.
1987.9.28.
16년 358일
군사 쿠데타
바하마
1973.7.10.


(재위 중)
그레나다
1974.2.7.


(재위 중)
파푸아뉴기니
1975.9.16.


(재위 중)
솔로몬 제도
1978.7.7.


(재위 중)
투발루
1978.10.1.


(재위 중)
세인트 루시아
1979.2.22.


(재위 중)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1979.10.27.


(재위 중)
벨리즈
1981.9.21.


(재위 중)
앤티가 바부다
1981.11.1.


(재위 중)
세인트 키츠 네비스
1983.9.19.


(재위 중)

위 표에서 헌법 개정은 따로 국민 투표도 없었고 군사 쿠데타도 없이 이뤄진 것만 한정한 것이다.[10]

그리하여 엘리자베스 2세는 2022년 3개 이상의 국가의 수장[11]인 유일한 사람이다. 또한 현직 국가 원수 가운데 유일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 또한 현재 기준으로 가장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거느리는 국가원수이기도 하다. 이 여왕이 거느리는 면적이 18,800,000km2 정도로 러시아보다 더 넓고, 인구는 135,000,000명으로 일본보다 많다.


2. 작위[편집]


파일:영국 국장.svg
파일:영국 국장(스코틀랜드).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Personal_flag_of_Queen_Elizabeth_II.svg.png
영국에서의 문장[12]
스코틀랜드에서의 문장
국가에 상관 없이 쓰는 여왕의 깃발[13]

  • 요크의 엘리자베스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Elizabeth of York (1926년 4월 21일~1936년 12월 11일)
  • 엘리자베스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Elizabeth (1936년 12월 11일~1947년 11월 20일)[14]
  • 에든버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Elizabeth, Duchess of Edinburgh (1947년 11월 20일~1952년 2월 6일)[15]
  • 여왕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1952년 2월 6일~현재)

왕위 계승 직후 여왕인 모든 나라에서 썼던 과거의 칭호는 다음과 같다.[16]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Queen, Defender of the Faith(라틴어: Elizabeth II, Dei Gratia Magnae Britanniae, Hiberniae et terrarum transmarinarum quae in ditione sunt Britannica Regina, Fidei Defensor)

그리고 다른 여러 칭호들을 한데 다 통합해서 부르는 비공식 칭호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건 다음과 같다. 다만 정식 칭호는 아님에 주의.

'하느님의 은총으로 대브리튼, 아일랜드와 해외 영국 자치령의 여왕, 신앙의 수호자, 에든버러 공작부인, 메리오네스 백작부인, 그리니치 남작부인, 랭커스터 공작, 맨 섬의 영주, 노르망디 공작, 가장 영예로운 가터 훈장의 군주, 가장 영예로운 바스 훈장의 군주, 최고(古)이며 가장 고귀한 시슬 훈장의 군주, 가장 저명한 성 패트릭 훈장의 군주, 가장 기품있는 성 미카엘 훈장과 성 조지 훈장의 군주, 가장 훌륭한 대영제국 훈장의 군주, 무공 훈장의 군주, 제국 공로 훈장의 군주, 최고위 인도성 훈장의 군주, 가장 저명한 인도 제국 훈장의 군주, 영국령 인도 훈장의 군주, 인도 공로 훈장의 군주, 버마 훈장의 군주, 빅토리아&알버트 왕실 훈장의 군주, 에드워드 8세 왕가 훈장의 군주, 공로 훈장의 군주, 명예 훈위 훈장의 군주, 왕립 빅토리아 훈장의 군주, 가장 유서깊은 예루살렘의 성 조지 병원 훈장의 군주이신 엘리자베스 2세 폐하(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Queen, Defender of the Faith, Duchess of Edinburgh, Countess of Merioneth, Baroness Greenwich, Duke of Lancaster, Lord of Mann, Duke of Normandy, Sovereign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the Garter, Sovereign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the Bath, Sovereign of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 Sovereign of the Most Illustrious Order of Saint Patrick, Sovereign of the Most Distinguished Order of Saint Michael and Saint George, Sovereign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Sovereign of the Distinguished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Imperial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Most Exalted Order of the Star of India, Sovereign of the Most Eminent Order of the Indian Empire, Sovereign of the Order of British India, Sovereign of the Indian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Burma, Sovereign of the Royal Order of Victoria and Albert, Sovereign of the Royal Family Order of King Edward VII, Sovereign of the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Sovereign of the Royal Victorian Order, Sovereign of the Most Venerable Order of the Hospital of St John of Jerusalem)'

그런데 공식 칭호는 1953년 대관식을 맞으면서 그녀가 여왕으로 있는 나라마다 각각 칭호를 제정하게 되었는데 영국의 경우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17]과 그 밖의 국가와 영토[18]의 여왕, 영연방의 원수[19],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폐하(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의 칭호 및 쓰지 않는 과거의 칭호들은 영어 위키백과에 있는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1953년 이후 엘리자베스 2세가 국가원수로 있는 국가들은 각각 별도의 칭호를 제정해서 사용하고 있으나 영국의 칭호와 형태가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즉위 이후에 영연방 국가들이 새로 사용할 훈장을 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사단장으로서의 칭호가 덧붙여졌다.

'캐나다 기사단장, 오스트레일리아 기사단장, 뉴질랜드 기사단장, 바베이도스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밸러 기사단장, 캐나다 무공 기사단장, 캐나다 경찰 메리트 기사단장, 뉴질랜드 여왕 공로 기사단장, 뉴질랜드 메리트 기사단장, 바베이도스 성 앤드루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로거후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멜라네시아의 별 기사단장(Sovereign of the Order of Canada, Sovereign of the Order of Australia, Sovereign of the Order of New Zealand, Sovereign of the Order of Barbados, Sovereign of the Order of Valour, Sovereign of the Order of Military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Merit of the Police Forces, Sovereign of the Queen's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New Zealand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St. Andrew, Sovereign of the Order of Logohu, Sovereign of the Order of the Star of Melanesia)'

영국 왕립 해군의 사령장관, 노르망디 공작[20], 랭커스터 공작,[21] 맨 섬의 영주[22]이다. 한때 피지추장(Paramount Chief)이었던 적도 있다.

더불어 영연방의 수장(Head of the Commonwealth)라는 명예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부왕인 조지 6세 재위 기간 중에 영연방에 영국 왕이 국가원수가 아닌 나라도 회원이 될 수 있게 바뀌었고, 그래서 '왕'과 별개로 '영연방의 수장'이라는 직함을 추가했는데, 이후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이 직위도 이어 받았다.[23]

영국 언론에서는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Elizabeth Alexandra Mary)라는 그녀의 긴 이름을 직접 칭하는 일이 드물고, Her majesty나 Queen 등으로만 칭한다. 서양에서는 이게 왕에 대한 경칭이다.

2.1. 호칭 논란[편집]


즉위 초 엘리자베스 2세라는 호칭에 대해 스코틀랜드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인 이유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있었기 때문인데 엘리자베스 1세 시기는 아직 연합왕국이 형성되기 이전이었다. 그래서 잉글랜드 입장에선 당연히 엘리자베스 2세지만 스코틀랜드 입장에선 그냥 엘리자베스였다.

나라에 따라 관행에 차이가 있지만 영국(스코틀랜드 포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경우 1세는 나중에 2세가 등장하면 ~세를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만약 엘리자베스 2세가 스코틀랜드에서의 이름을 따로 쓸 경우 엘리자베스 1세라고 적기보다는 그냥 엘리자베스라고 적게 된다. 마찬가지로 빅토리아 여왕도 그냥 빅토리아라고 하지 빅토리아 1세라고 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빅토리아 2세란 여왕이 없었기 때문. 그러나 동일 군주가 여러 칭호를 사용하면서 넘버링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서 이들을 모두 합칭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1세라는 표기를 쓸 수 있다. 이 경우 엘리자베스 2세 겸 1세(Elizabeth II and I)라고 쓰는 것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별개의 국가인데 국왕만 같았던(동군연합) 시기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을 구분했었다.[24]

영국 정부와 왕실은 스코틀랜드에서는 잉글랜드나 그 이외 지역과 다른 문장(royal coat of arms)과 다른 모토(royal motto)를 사용하고, 왕관을 그릴 때도 잉글랜드의 성 에드워드 왕관 대신 스코틀랜드 왕관을 그리며, 왕세자의 대표 칭호도 프린스 오브 웨일스 대신 로스시 공작(Duke of Rothesay)을 사용한다. 비록 잉글랜드의 상징들이 대표로 쓰이더라도 스코틀랜드 내부에서는 스코틀랜드만의 상징들을 쓰게 하여 스코틀랜드만의 오랜 전통을 유지해 온 것이다. 하지만 왕의 이름에 붙는 넘버링의 경우 스코틀랜드만의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윌리엄 4세 시대부터 잉글랜드의 넘버링으로 강제 통일당하니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로서는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엘리자베스 2세라는 이름에 격분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은 공공연히 엘리자베스 2세를 부정하며 무려 1707년 연합왕국 결성 당시의 연합법까지 들먹이며 법원에 소송까지 냈으나 법원은 국왕 명칭 결정은 국왕 특권으로 소송을 기각하여 법적 논쟁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스코틀랜드에서의 반발은 계속되어, 공보물이나 공공시설물에 표기된 엘리자베스 2세 표기에서 2세 부분을 훼손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25]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당시의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26]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어느 쪽을 채택할 것인지 타협책을 제시했다. 향후의 국왕들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국 각각의 기준으로 ~세 부분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경우 둘 중 숫자가 높은 쪽을 선택하게끔 한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뿐만 아니라 그 동안 그냥 잉글랜드의 넘버링을 따르고 스코틀랜드의 것은 무시했던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의 넘버링까지 합리화되었다.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 역시 잉글랜드 쪽의 숫자가 크기 때문이다.[27] 나머지 역대 영국 국왕들은 잉글랜드를 기준으로 하든 스코틀랜드로 기준으로 하든 넘버링이 우연히 일치하거나[29] 양국 간에 동군연합이 성립(1603년)되기 이전에 양국에서 따로 모시던 군주들이므로 문제되지 않는다.[30]

타협책도 나온 데다가 무한정 이 문제만 붙잡고 있을 순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스코틀랜드인들의 반발은 일단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수시로 엘리자베스 2세를 스코틀랜드에서는 그냥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는 한다. 더불어서 여왕을 부르는 폐하에 해당하는 용어가 현재는 Your Majesty(2인칭)과 Her(남자일 때는 His) Majesty(3인칭)라고 하고 있는데 이건 헨리 8세 때 확립된 잉글랜드의 관습이고[31], 스코틀랜드는 줄곧 Your/His/Her Grace라고 했으므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관습대로 Your/Her Grace라고 불려야 한다는 주장도있다.[32] 물론 왕실은 계속 그 요구에 대해 계속 답을 하지 않고 기존 관례를 쓰고 있다.

2014년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가 가결됐으면 다시 이 이야기가 거론되었을 것이다. 투표에서 찬성(스코틀랜드 독립)이 다수로 결정되면 엘리자베스 2세를 여왕으로 하는 입헌군주국으로서 독립할 예정이었다. 정말 독립하게 됐으면 엘리자베스 2세는 스코틀랜드에서 별도의 호칭을 쓰게 될 테니까 스코틀랜드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이 부결돼서 그 문제는 따로 논의되지 않았다.

향후 케임브리지 공작 윌리엄 왕세손이 즉위할 경우 다시 이 넘버링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있다.[33] 아마 윌리엄 왕자는 윌리엄 5세[34]로 즉위할 텐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윌리엄 4세가 되어야 한다고 항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병합된 지 오래라 왕의 호칭에서 따로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잉글랜드 왕세자의 칭호로 쓰인다. 잉글랜드 왕은 아일랜드 왕의 칭호도 같이 썼으나 아일랜드만의 넘버링은 따로 없었다. 스코틀랜드는 완전한 독립국으로서 잉글랜드와 동군연합이 되었기에 넘버링을 따로 썼으나 아일랜드는 잉글랜드가 국외에 따로 지배하고 있는 영토에 가까웠기 때문에 잉글랜드 넘버링을 그대로 쓴 것이다. 한때 영국과 동군연합이었던 하노버는 그 지역이 과거에 지배 가문이 이리저리 자주 바뀌었던 탓에 넘버링을 따지기가 힘들어 그냥 영국의 넘버링을 똑같이 썼다. 그리고 오늘날 영국에서 독립해서 영국과 동군연합을 이루는 나라들은 영국에서 쓰는 넘버링을 그대로 쓴다. 결국 영국 왕의 넘버링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불일치만이 문제가 되고, 다른 곳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3. 생애[편집]



3.1. 어린 시절[편집]


1926년 4월 21일 현지시각 오전 2시 40분, 외가가 있는 메이페어에서 조지 5세의 둘째 아들 요크 공작 앨버트 왕자요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맏이이자 장녀로 태어났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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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버킹엄 궁전에서 성공회 유아세례를 받았다. 어린시절에는 본명 대신 주로 ‘릴리벳(Lilibet)'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자기 이름인 '엘리자베스'를 발음하기 어려워했기 때문인지 스스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퍼스트 네임인 엘리자베스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으로부터, 미들네임인 알렉산드라메리는 각각 증조할머니 덴마크의 알렉산드라[36]와 할머니 테크의 메리의 이름으로부터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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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의 엘리자베스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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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엔 여동생 마거릿 로즈가 태어났다.

당시 여느 왕족이 그러하였듯 학교를 다니지 않고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공주를 가르쳤던 가정교사는 "매우 예쁘지만, 고집세고 영악하다"고 그녀를 묘사했다. 1920년대에 들어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던 할아버지 조지 5세는 자주 병문안을 왔던 엘리자베스 공주를 매우 예뻐했다고 한다.

파일:166056-1297684625.jpg
1931년 2월 2일.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파일:225931-1319825955.jpg
1934년 11월 7일에 찍은 가족사진.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3.2. 종친에서 후계자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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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국왕 즉위 이후 가족사진

조지 5세가 재위할 때 엘리자베스는 큰아버지 에드워드 왕세자, 아버지 앨버트 왕자의 뒤를 이어 왕위 계승 서열 3위였으나, 왕세자의 나이가 아직 젊고 나중에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1936년 조지 5세가 사망하여 에드워드 왕세자가 즉위하였으나 그해 말 월리스 심프슨에 의해 동생 앨버트 왕자에게 왕위를 넘겨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엘리자베스는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추정상속인이라 왕세녀에 해당하는 Princess of Wales(웨일스 여공) 작위를 받은 적이 없지만[37] 실질적인 차기 왕위 계승자였다. 만약 조지 6세가 아들을 낳았더라면 계승 서열이 밀려 여왕이 되지 못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38] 어머니 엘리자베스 왕비가 두 공주를 모두 제왕절개로 낳아서 더 이상 출산하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39]

3.3. 결혼과 가정[편집]


엘리자베스는 1934년과 1937년에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리포스 왕자를 만났다. 필리포스는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의 친손자로[40] 두 사람은 크리스티안 9세를 기준으로 7촌, 빅토리아 여왕을 기준으로 8촌인 친척이기도 했다.


1939년 13살이던 엘리자베스 공주는 필리포스 왕자에게 사랑에 빠져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그녀가 21살이 되던 해인 1947년 7월 9일 약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녀의 약혼은 몇몇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일단 필리포스 왕자는 사실상 망국의 왕자로[41] 지지해 줄 재정적인 기반도 없었고, 그의 누나들은 나치당원과 결혼하였는데 당시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나치 및 독일에 대한 감정이 최악이었다.[42] 실제로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필리포스와의 결혼을 반대하였고, 특히 필리포스가 독일 혈통[43]인 걸 항상 의심했으며 그를 독일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47년에 거행된 엘리자베스 공주와 필립 공의 결혼식.
결혼 전 필리포스는 그리스 왕국덴마크의 왕자 직위와 계승권을 포기하고 이름도 영어식인 필립으로 바꾸고, 외가의 성인 '마운트배튼'을 사용하여 '필립 마운트배튼'으로 개명하면서 상기된 논란거리를 정리했다. 이후 필립 마운트배튼은 장인어른 조지 6세에게 에든버러 공작, 메리오네스 백작, 그리니치 남작 작위를 받았다. 두 사람은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독 감정이 심했던 상황이었던지라 필립 공의 누나들은 아무도 참석할 수 없었다.[44] 엘리자베스 공주와 필립 공의 결혼식 정보

결혼 후, 1년 만인 1948년에 첫자식이자 후계자인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손을 낳았고, 2년 뒤인 1950년에는 둘째이자 장녀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를 낳았다. 둘째 앤 공주를 낳은지 10년만인 1960년에 차남이자 셋째인 앤드루 왕자를 낳았고, 셋째를 낳은 지 4년 후에 막내 아들 에드워드 왕자를 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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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장남 찰스 왕세자를 바라보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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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찍은 가족사진
그러나 결혼한 지 5년도 안 되어 조지 6세가 사망하면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찰스 왕세자앤 공주에게 많은 애정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1953년엔 아이들을 두고 남편과 함께 영인방으로 6개월에 걸친 순방을 떠났다. 엘리자베스 2세는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눈물을 보였으며, 훗날 순방을 마친 후 궁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상봉하던 순간을 “아이들은 끔찍하게 예의가 발랐다. 나는 그애들이 우리가 누구인지 정말 몰랐다고 생각한다.’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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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찍은 가족사진.
2021년 4월 9일 남편 필립 공이 99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74년간의 결혼 생활이 끝났다. 국왕의 배우자 자리가 비어있는 것은 빅토리아 여왕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45]


3.4. 여왕으로서의 삶[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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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월 대관식 기록영화[46]
입헌군주제가 이미 확립되어 근대 정치가 다 잡힌 상태에서 즉위하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정치 권력은 전무함에 가깝다. 게다가 본인도 이 점을 생각해서 정치에 관해서는 발언 한마디 안하는 성향이 있어 현대 왕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심지어 1965년에 거행된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외에는 50년 가까이 영국 총리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다가 2013년에 거행된 마가렛 대처의 장례식에 간만에 참석하기도 할 정도. 그래서 그런지 영국 국민들의 평가가 매우 좋은 편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공개적인 정치 불화가 없는 선에서는 국정에도 일부 관여하고 있어, 실은 영국을 움직이는 흑막이 아닐까 싶은 모습도 보여주곤 한다. 예를 들면 내각불신임으로 인해 총리가 사퇴했을 때 국왕의 특권으로 총리를 2번 임명한 경력이 있고, 브렉시트 국민 투표에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막판에 탈퇴파들이 뒤집기에 성공하도록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47]

이처럼 정치에 일부 개입하는가 하면, 전쟁 등의 민감한 사안의 경우 여왕의 승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여왕이 이를 거부한 적은 한번도 없긴 했지만, 불만을 표시한 적은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마가렛 대처포클랜드 전쟁 개전선언인 아르헨티나 선전포고 결의안에 대해 엘리자베스 2세는 "불만족스럽다"고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불만 의사를 표현한 적이 있다. "부적절하다"고 했으면 거부권 행사인데, 당시 영국 여론이 전쟁 여론으로 기울어졌던 상황이라 포클랜드 전쟁을 막지는 않는 선에서 불만 의사를 표시했다.

2021년 2월 더 가디언 지가 여왕의 동의권(Queen's Consent)에 관한 보도를 내놓았다. 동의권이란 국왕의 권한이나 사적 권리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법안이 입안될 경우 국왕이 동의해야 비로소 의회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절차를 말한다. 이미 의회를 통과한 법안을 여왕의 이름으로 승인해 법적 효력을 갖도록 하는 국왕 재가(Royal Assent)와는 다르다.[48] 총리실 문서가 기밀해제되면서 여왕 또는 찰스 왕세자가 동의권을 행사하여 1952년부터 1,063건의 법안을 입법 절차 전에 검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디언의 주장은 여왕이 왕실과 관련이 없거나 적은 법안에 대해서도 사전에 검토하는 행위 그 자체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1986년 연어법[49]이나 2019년 주차 관련 법 등. 그리고 이 중 최소 4건의 법안은 왕실 측이 불만을 표시하여 수정되었다.[50] 또,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통과된 신재생에너지 사용 촉진법을 사전에 검토하여 신재생에너지 사용 의무에서 국가원수를 면제하는 조항을 추가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찰스와 윌리엄 왕세손이 탄소배출 절감 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스코틀랜드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여왕이 모순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왕실 측 대변인은 여왕은 한 번도 동의 거부를 통해 법안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동의권 행사 여부는 여왕의 요청이 아닌 의회의 결정으로, 해당 정부 부처가 왕실에 의견을 묻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실질적인 권력 행사는 표면과 달리,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영국은 전세계 역사상 통치 전략이 가장 교묘하게 뛰어난 국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의 조항이 아닌, 영국인들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 영국인들은 귀족과 평민이 법적으로 평등한 신분제를 인정하고, 왕족들과 귀족들에게 사회적으로 부여된 의무를 이행한다면 그들의 권위를 인정했다. "그들은 자격이 있기에 우리와는 다르다."라는 주의인 것이다. 이런 개념 탓과 2차대전을 성공적으로 치루어낸 핏줄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전히 영국 대중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법적으로 보장받는 권한과 별개로 초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51]

또한 영국 총리들의 중요한 정치적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여왕을 알현하여 보고서를 올리는 것인데, 이 역시도 에피소드가 많다. 첫 총리인 윈스턴 처칠은 친한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시가를 피우면서 대담하는가 하면, 마가렛 대처가 왔을 때는 대처가 자신을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15분쯤 기다리게 했다. 포클랜드 전쟁마가렛 대처의 전쟁 준비안을 승인한 뒤에 "내 아들이 이번 전쟁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다. 그녀(대처 총리)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말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자식을 전쟁터로 보내는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 야사 같은 이야기지만 대처의 신자유주의정책 등 정책 전반이 내키지가 않아 아침마다 "오늘은 그녀가 얼마나 내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했는가?"라고 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도 미운정이라고, 2013년 4월 17일 엄수된 대처의 장례식에 처칠 이후 처음으로 왕실자격으로 참석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처음으로 여왕을 알현했을 때 "총리직을 맡게 된 걸 축하하오. 과인은 12명의 영국 총리를 만났소만"이라고 말해 캐머런을 쑥스럽게 만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11월 30일
영국 해군의 신형 전함 HMS 뱅가드의 진수식 당시 모습
엘리자베스 2세(당시 공주)가 축사를 하고 포도주를 던지는 모습이 담겼다
이는 엘리자베스 2세가 홀로 끝마친 첫 번째 왕실 업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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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을 앞둔 시기에 영국군 여군 부대인 ATS[52]에 중위(subaltern)로 입대해 대위(junior commander)[53]로 진급하였다. 임무는 보급차량 운행이었다. 이 때문에 여왕이 2차대전 때 일개 운전병으로 참전한 것으로 와전되기도 한다.[54] 이후 얼마 뒤에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활동한건 약 3주 정도였지만 2017년 현재 생존한 국가원수들 가운데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는 인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2009년에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65주년 기념식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초대하지 않아 여왕이 격노하고 국민적인 분노가 일어나는 등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노르망디에서 죽어나간 건 미군영국군이었다. 당시 국가원수 중 유일한 참전용사이자 영국군의 총사령관인 엘리자베스 2세를 초대하지 않는 행위는 그야말로 큰 결례. 비난 받는 가운데에도 사르코지는 정신 못 차리고 "여왕이 오는 건 환영하지만, 노르망디 기념식은 전통적으로 미국-프랑스 간의 행사다"라는 발언을 해서 더욱 어그로를 끌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재해서 어쩌어찌 넘어가긴 했지만, 여왕은 자신이 가는 대신 장남 찰스 왕세자를 보냈다. 일단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집권기인 2014년의 D-Day 70주년 기념식에서는 참석했다. 2019년 75주년 기념식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영국-프랑스 간 합의를 통해 프랑스영국에서 나눠서 시행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프랑스 쪽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고 영국쪽 행사에만 참석했다. 영국쪽 행사 프랑스 쪽 행사

또 하나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해외에 나간 상태에서 왕이 되어버린 국왕. 1952년 2월 6일 아버지 조지 6세가 암투병 도중 사망했을 때 자신은 당시 영국식민지였던 케냐를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로 자고 일어나니 여왕이 된 케이스. 엘리자베스 2세가 묵었던 트리탑 호텔[55]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다.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2세와 에든버러 공작이 여기서 묵는 동안 왕위를 계승했다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도 걸렸다. 주변에 야생동물이 많아서 전설적 사냥꾼이자 자연보호운동가 짐 코벳 영국군 대령이 밤새 잠도 안자고 경호를 서준 것도 유명한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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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열 중인 엘리자베스, 1952년 6월 영국 런던[56]

이후 1992년에 발생한 윈저성 대화재의 복구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이라 추산되어 국민들의 반발이 있자 스스로 왕실이 가진 면세 특권을 포기했다. 때문에 그 이후로 영국 왕실은 지금까지 계속 납세의 의무를 지고 있다.[57]

그러나 2017년 11월 여왕이 본인 사유 재산을 관리하는 랭커스터 공국을 통해서 일부 자산을 조세피난처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폭로로 밝혀지자, 그녀의 대인배라는 이미지에 타격이 가고 말았다. 랭커스터 공국은 두 피난처 모두 영국의 해외 영토며 투자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맏며느리였던 다이애나 스펜서와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여왕을 비난하는 여론이 종종 나왔고,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직후 차가울 정도로 무관심하게 대응하자 급기야는 왕실 폐지를 주장하는 소리까지 터져나오기에 이르렀다.[58] 지금은 잠잠한 상황이지만 이때의 불씨가 아직도 잠복 중이라서, 영국의 공화주의자들도 여왕이 타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1999년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자 영연방 주요 회원국인 호주에서 여왕을 '호주의 군주'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헌법을 바꿔 공화정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운동 끝에 국민 투표가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는 54.87% vs 45.13%로, 과반수의 호주 국민들이 왕정 존속을 선택해 호주의 군주직을 유지하게 됐다. 당시 공화정 전환 운동의 지도자였던 맬컴 턴불은 이후 공화정 전환 운동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여러 정치활동을 거쳐 2015년 결국 호주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호주 국민들의 여왕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에 총리 당선 이후 계속되는 공화주의자들의 압박에도 공화정 전환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여왕이 만약 가까운 시일 안에 타계할 경우 맬컴 턴불 총리가 호주 왕정 유지에 불안 요소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많았다.[59] 2022년 또 다른 공화주의자 앤서니 앨버니지가 총리가 되면서 또 모르게 되었다.[60] 또한 호주의 공화정 국민 투표의 여파가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다른 영연방 왕국들로 퍼졌다. 해당 국가들의 여론 조사 등을 봤을 때 여왕 사후 왕위 계승의 향방에 따라 영연방 왕국들의 군주제 폐지 여부가 결정될 확률이 높다.[61]

이와는 별도로 2010년대 들어 스코틀랜드분리독립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400년간 이어온 연합왕국왕관이 자기 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10월,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시행하기로 합의하면서 여왕의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2014년 투표를 앞두고 영국 정가에서는 스코틀랜드 국민들에게 "앞으로 잘해줄 테니까 제발 남아줘요"하며 읍소하고 있으며 여러 정치인들은 여왕에게 "폐하 한마디라도 해주세요."라고 호소하였다. 하지만 개인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독립 문제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며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62]

더 선의 주장에 따르면 브렉시트 투표 직전 식사 자리에서 유럽연합 잔류에 대한 회의적인 뉘앙스의 발언이 있었다고 하며, 탈퇴파에서 이를 막판 캠페인에 활용하기도 했다. 여왕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국이 유럽의 일부여야만 하는 이유 3가지를 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왕이 브렉시트를 두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이에 언론 규제 단체인 IPSO는 더 선의 기사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misleading)고 발표했지만, 더 선은 두 명의 소식통을 통해서 여왕이 당시 부총리였던 닉 클레그한테 말했다고 주장했다.### 닉 클레그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마이클 고브가 더 선에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한 소식통 중 한 명이라고 지적했으나, 마이클 고브는 대답하기를 거절했다. 닉 클레그는 여왕이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일개 부총리한테 이런 중대한 사건에 대해 논평을 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더 선의 주장을 보증해주기를 거절했다.

영연방 수장을 찰스 왕세자에게 물려줬으면 하는 발언을 하였다.#

2018년 12월 29일, 엘리자베스 여왕이 비밀리에 새로운 요트를 구매하기 위해서 로비를 진행한 것이 밝혀졌다. 버킹엄 수석 비서는 내각에 보내는 편지에 여왕은 새로운 요트를 구매하고 싶지만, 대중들에게 공개되면 왕실 이미지에 큰 타격이 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고 적었다. 지금까지 다른 왕족들이면 몰라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내각에 압력을 가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이 편지의 폭로로 여왕도 사사로운 이유로 내각에 압력을 가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2019년 1월 25일,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례적으로 중립적이지만 정치와 관련하여 의원들에게 합의점을 찾기를 촉구했다. 브렉시트가 노딜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모두 모여서 합의점을 찾읍시다"라고 의원들에게 부탁했다.# 일각에서는 총리인 테레사 메이가 아니라 의원들에게 직접 말한 것은 여왕이 총리와 내각을 더 이상 신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2019년 2월 2일, 브렉시트가 노딜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자 영국 정부는 여왕과 왕족들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는 계획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 내각 관계자는 "이 계획은 냉전 시기부터 있던 것으로 노딜 브렉시트로 시민들의 소요사태가 일어나면 대비하기 위해서 다시 고려 중이다"라고 대답했다. 영국의 재계와 경제 전문가들은 노딜로 갑자기 관세가 생기면 식약품을 수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었다. 이에 하드 브렉시트 지지자인 제이콥 리스-모그는 내각이 노딜 브렉시트에 불필요하게 긴장한다며 영국 왕실은 2차 세계대전에도 런던에 남아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던 중 독일 슈피겔이 1988년 11월 이임 인사를 하러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난 뤼디거 베히마어 주영 독일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전문의 요약에서 “영국의 미래는 유럽에 달렸다”고 했다는 내용의 외교전문이 공개됐다.#

일본아키히토가 물러나고 나루히토가 즉위하면서 영국 내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의 양위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물론 여왕 본인이나 왕실 및 정치권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아직 없다.

2019년 8월 11일 영국 일간 타임즈에서 여왕이 브렉시트 문제로 혼돈을 겪고 있는 영국의 정치 현실과 관련해 현 집권 세력에 대해 "inability to govern(제대로 통치를 못 한다, 통치 능력이 없다)"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기사1 기사2

2019년 9월에는 스코틀랜드의 왕실 별장인 발모랄 성에서 휴가를 보내던 도중, 성을 방문한 미국인 관광객들에게 장난을 쳤다는 기사가 나왔다. 여왕을 몰라본 관광객들이 이곳에 사시냐고 질문하자 엘리자베스는 인근에 집이 있다고 대답하고, 여왕을 만나본 적이 있냐는 관광객들의 질문에 대해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라고 말하고 옆에 있던 수행원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여왕을 만나 본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끝까지 여왕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거짓말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관광객들을 속인 것이다. (서울신문 기사)

2020년 1월에 해리 왕자의 독립과 관련해서 왕실 고위직 회의를 가졌으며, 독립을 승인하였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영국에서도 확진자 4만여 명, 사망자 4천여 명이 넘어가고 보건장관, 보건차관이 감염되고 보리스 존슨 총리마저 감염되어 자가격리를 하던 중 입원하게 되면서 리더십에 큰 공백이 생기자 여왕이 직접 나섰다. 4월 5일, 각종 매체를 통해 발표한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여왕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일선 의료진들을 칭찬하고 국민들을 격려했다.#

2020년 6월 25일에는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서 다른 참전국 국가원수들과 함께 추념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영상으로 직접 출연한 다른 국가원수들과는 달리 엘리자베스 2세는 출연하지 않고 사이먼 스미스 주한영국대사가 메시지를 대독했다. 메시지 전문

2020년 10월 15일. 7개월 만에 윌리엄 왕세손과 함께 외출하였는데, 노마스크라서 논란이 나왔다.# 하지만 다시 코로나19가 퍼지자 원저 성으로 들어갔다. #

2021년 4월 9일, 70년 넘게 해로한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공과 사별하였다.# 왕실 성명에 따르면 여왕은 부군을 기리기 위해 당분간 윈저 성에 남아있겠다고 밝혔다. 2020년에도 코로나 때문에 윈저 성에서 보낸 시간이 많었으니 이상할 것은 없지만 일각에선 여왕의 처소가 윈저 성으로 고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63] 그리고 2022년 3월 6일, 여왕은 앞으로 버킹엄 궁전을 떠나 남은 여생을 윈저 성에서 보낼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2022년 2월 6일.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기념 케이크를 자르는 등 조촐한 기념행사를 했다. 여왕의 70주년(플래티넘 주빌리) 공식 기념행사는 6월 2∼5일 연휴에 대대적으로 개최된다. 거리 파티, 군 퍼레이드, 팝 콘서트 등 다양한 축하 행사가 예정돼있다.


4. 장수[편집]



4.1. 영국 역사상 최장수 & 최장 재위 군주[편집]


현재 96세이며, 재위기간은 70년째로, 영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군주이자 가장 재위 기간이 긴 군주다. 또한 현재까지만으로도 유럽 역사상 2번째로 오래 재위 중이며, 전 세계에서 여성 군주로는 가장 오래 재위 중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치세기간 동안 거쳐간 각국 지도자는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여왕이 즉위한 1952년 2월 6일 이후 출생자다.

역대 주요 국가 지도자들 변천사(1950년대~2020년대)[64][65]
엘리자베스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대통령(혹은 총리) 선거를 치뤘을 경우 그 당선자가 임기를 시작하고 넣을 것. 왜냐하면 현재 엘리자베스가 96세의 고령으로, 타 국가에서 선거를 치뤄도 그 당선자가 취임하기 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교황 7명 - 비오 12세,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66],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 이탈리아 공화국 총리 30명 - 알치데 데 가스페리[67], 주세페 펠라, 아민토레 판파니, 마리오 스켈바, 안토니오 세니, 아도네 솔리, 페르난도 탐보르니, 조반니 레오네, 알도 모로, 마리아노 루모르, 에밀리오 콜롬보, 줄리오 안드레오티, 프란체스코 코시가, 아르날도 포를라니, 조반니 스파돌리니, 베니토 크락시, 조반니 고리아, 치리아코 데미타, 줄리아노 아마토,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람베르토 디니, 로마노 프로디, 마시모 달레마, 마리오 몬티, 엔리코 레타, 마테오 렌치, 파올로 젠틸로니, 주세페 콘테, 마리오 드라기



  • 대한민국 대통령 13명[68] -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69]








  • 태국 국왕 2명 - 라마 9세[72] 라마 10세

  • 국가원수는 아니지만 주영대사는 무려 24명이 거쳐갔다.

사회적인 일로 비유하면 프랭크 시나트라LP 판에 노래를 녹음하던 시절부터 5G 시대가 도래한 지금까지 장수하고 계신 셈이다. 참고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데뷔 연도가 1954년,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연도가 1952년.

이렇게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오랜기간 왕위에 있을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대략 이렇다.

  • 여왕이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현재 100세 가까이 장수하고 있다.

  • 정치체제가 입헌군주제[73]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될 일이 없다. 만약 전제군주제였으면 이렇게 오래 왕위에 앉아있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마디로 가늘고 길게의 전형적인 예다.[74]

  • 여왕 스스로도 모범을 보이고 왕실에 대한 지지도도 높다.

대한민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26년 태어나,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부터 즉위해서 12명의 대통령이 거쳐간 현재까지도 재위하고 있다. 대관식 때 축하 사절로 갔던 사람이 신익희 당시 국회의장이고, 여왕의 즉위 선물로 전달할 초상화와 한국 풍경화를 그린 이당 김은호[75]라는 사람은 순종어진을 직접 그렸던 어진화사다.#

2015년 9월 9일 오후 5시 30분이 경과함에 따라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63년 216일 16시간 30분을 경신 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행사 없이 에든버러 인근에서 열린 열차 노선 개통식에 참석한 후 왕세손 부부와 저녁 만찬을 가졌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왕이 지난 63년간 끊임없이 변화하는 버팀목이 되어줬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현재 생존한 군주들 중에서는 2016년 10월 13일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이 재위 70년 126일로 사망하고, 2015년 1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향년 90세(1924년생)로 사망함에 따라 2016년 이후 기준으로 생존한 군주 가운데 최고령이자 오래 재위한 군주가 되었다.[76]

2017년 2월 6일 재위 65주년 사파이어 주빌리를 맞았다. 서구권 군주 가운데서는 기존의 최장수한 빌헬름 1세의 만 90세를 넘겨 최장수 군주가 되었으며,[77][78] 프란츠 요제프 1세(만 68년 재위)를 제끼고 2020년 1월 27일부로 근대 이래 가장 오래 재위한 서구의 (대국) 군주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루이 14세뿐. 만약 5년만 더 살아서 재위 72년을 경신한다면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루이 14세의 기록을 갈아치울 수도 있다. 여왕의 모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가 101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여왕이 96세가 되는 2022년 6월에는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가 거행됐다. 금연, 저녁 식사시 탄수화물 자제, 하루 식사를 4끼로 나눠 소식하는 것 등을 장수의 요인으로 꼽았다.

근대 이래 80세를 넘긴 60년 이상 재위한 5명의 (대국) 군주 가운데 1명인데, 나머지 넷은 거론된 빅토리아, 푸미폰, 프란츠 요제프, 그리고 쇼와 덴노[79]가 그들이다. 근대의 범위를 넓히면 청나라 고종 건륭제도 들어가게 된다. 2014년부로 만 88세에 다다르면서 쇼와보다 장수하게 되었고, 재위기간도 넘겼다.

이 때문에 2002년에는 즉위 50주년을 기념하는 희년(골든 주빌리) 행사[80]가 있었고, 2012년에는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희년(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가 거행되었다. 2013년에는 초상화가 들어간 즉위 6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니라 마가렛 대처를 닮았다는 구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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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에게 양위하라고? 그럴 생각 없거든!
한때 즉위 60주년 되는 해인 2012년에 찰스 왕세자에게 양위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여왕 본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전임 국왕이 사망해야 후임자에게 왕위가 승계되는 영국 왕실의 전통도 있거니와, 여왕의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남동생 조지 6세에게 양위한 것이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받는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흔을 넘었는데도 매우 건강한 데다 모후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는 101세까지 장수했기에 찰스 왕세자의 즉위가 한참 멀어보인다. 2016년 90세 생일을 맞았을 때 왕실 전기작가 휴고 비커스는 "같은 90살이었을 때의 엘리자베스 왕대비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왕위 승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워낙 오래 살다 보니 이젠 아들인 찰스와 둘 중에 누가 먼저 죽든 별로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에 하나, 찰스가 엘리자베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 찰스에게 양위하고 싶어도 못한다.

2007년에는 똑같이 장수 중인 남편 필립 공과의 결혼 6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는데, 영국 군주정 역사에서 가장 긴 결혼생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1년 6월 10일에는 필립 공의 90세 생일이 있었다. 결혼 50주년과 60주년 때와는 달리, 2017년에 맞은 결혼 70주년은 가족과 친구만 참석하는 조촐한 축하 행사만 거행되었다.

이렇듯 장수하다 보니 여왕 즉위 후 거쳐간 영국 총리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알렉 더글러스 흄,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제임스 캘러헌,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까지 14명에 달하며,[81] 그 중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먼저 태어난 총리는 8명이다.[82] 특히, 토니 블레어는 1953년이라서 여왕 재위 기간 중 태어나 총리가 된 첫 사례다. 1966년생 캐머런과 1964년생 존슨은 말할 것도 없다. 메이 역시 1956년생으로, 엘리자베스 2세의 재위 기간 중에 태어났다.

또한 재위 중 만난 미국 대통령 역시 무려 13명#[83]

2012년 6월 4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여왕이 퇴위한다거나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를 건너뛰어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왕세손이 즉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여왕이 2013년 11월에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찰스 왕세자 부부를 대신 보내기로 해 왕위 승계를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84] 1971년의 첫 회의를 제외하면 여왕이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한 적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주장을 나오게 하는 데 한 몫 했다.

2013년 7월에는 캐서린 왕세손비출산 예정일을 넘겼는데도 출산 소식이 없자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 내가 휴가 떠날 23일 전에만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7월 22일, 세손비가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조지 왕자를 순산함에 따라 3대 뒤에 왕이 될 증손자까지 보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기록은 빅토리아 여왕 재위 중인 1894년에 에드워드 8세가 태어난 이후 119년만의 일이다. 2015년 5월 2일에는 캐서린 세손비가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를 순산함에 따라 외동딸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 이후 65년 만의 직계 공주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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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 35세.
2017년 3월, 90세.

고구려장수왕도 하도 오래 즉위한지라 (79년) 태자가 그보다 먼저 죽었다. 따라서 장수왕의 후계자인 문자명왕은 그의 손자였다.[85] 2010년대에 들어와 바티칸, 네덜란드, 카타르, 벨기에, 스페인, 일본 등 세계 각지의 군주국에서 국왕이 후계자에게 양위하고 물러났기에 엘리자베스 2세도 동일한 수순을 밟을지가 관심사지만 아직까지는 양위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 92세 생일을 기념하는 콘서트를 열었다. 런던의 런던스 앨버트홀에서 열린 콘서트에는 스팅과 톰 존스, 카일리 미노그,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 섀기 등 음악가들과 연극, 영화 스타들이 참여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콘서트가 끝난 뒤 아들 찰스 왕세자와 함께 무대에 섰다.

2020년에는 아랍 군주들 중 최장 재위 군주였던 오만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와 최고령 군주였던 쿠웨이트사바흐 알아흐마드 알자비르 알사바흐가 차례로 세상을 뜨면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짬을 견줄 만한 군주도 전부 사라졌다.

2021년 4월 9일에 본인보다 유일하게 나이가 많은 왕실의 생존 인물이었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공도 타계하여 엘리자베스 2세 본인이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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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식 때 심은 나무가 먼저 죽어버렸다(...)

2021년 12월 초, 여왕의 최측근인 그래프턴 공작부인[86]이 101세의 나이로 사망한 데 이어서, 12월 29일에는 1987년부터 여왕을 보좌해온 시녀이자 측근들 중 한 사람인 레이디 파넘(Lady Farnham)[87]이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불과 4주 만에 여왕의 가장 가까운 측근 두 사람이 여왕보다 앞서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4.2. 재위 60주년, 다이아몬드 주빌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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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공식 초상사진
2012년 2월 6일부로 재위 60주년(다이아몬드 주빌리)을 맞았는데 이는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가 거행된 1897년 이후 115년 만의 경사.관련기사 여왕은 영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공화주의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가급적 기념행사의 규모를 축소해서 낭비를 줄이려고 하지만, 영국 정부에서는 2012 런던 올림픽 개최와 맞물려 관광객을 대거 유치할 수 있는 호기로 보고 각종 행사를 준비했다.

2월 3일, 100만 그루 나무 심기 캠페인에 참석해 첫 번째 나무를 심는 것으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시작했다. 2월 6일은 60주년 당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부왕 조지 6세의 기일이기 때문에 행사가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이날 노퍽 주의 소도시 킹스린과 샌드링엄 및 인근 학교를 방문한 여왕은 어린이와 시민들을 만나 축하를 받았으며, 즉위 60주년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데 다시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런던 하이드 파크와 에든버러, 고스포트에서는 축포를 쏘았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왕의 통치에 존경을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월 8일,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서 여왕을 찍은 사진 1백 점이 4월 22일까지 전시된다. 2월 15일, 여왕과 필립 공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의 공관인 램버스 궁전에서 다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한 즉위 60주년 기념 리셉션이 열렸다.

3월 10일,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6월 본행사를 앞두고 주빌리투어 일정을 시작했다. 이 여행은 오는 7월까지 와이트 섬, 버밍엄, 머서티드빌, 에든버러 등을 거칠 예정이라 알려졌다. 남편과 손자며느리 캐서린 왕세손비를 대동한 여왕이 제일 먼저 방문한 도시는 레스린으로, 이를 기념해 도시의 광장을 주빌리 스퀘어로 개칭하고 여왕이 참관한 가운데 명판 제막식을 가졌다. 여왕 일행은 드몽포르 대학에서 학생들이 연 패션쇼를 관람한 후 레스터 성당에서 열린 감사성찬례에도 참석했다. 3월 20일, 의회를 방문해 재위기간 동안의 감회를 밝히는 연설을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영국적인 덕목으로 복원력, 창의력, 관용성 등을 예찬한 여왕은 영국군의 희생과 용기, 영연방 내 우호관계 증진 등을 강조했다. 이날 영국 의회는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의원들의 사비를 모아 1,500 조각의 유리로 왕실 문장을 나타낸 스테인드글라스를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공개했다. 한편 왕세자콘월 공작부인이 주빌리투어의 일환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을 순방하기 위해 이날 출국했다. 3월 23일, 영국/역사상 즉위 60주년을 맞은 국왕은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2세뿐이며 영국 국회의사당 서쪽에 빅토리아 타워가 있는 만큼 그동안 영국을 위해 헌신한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빅 벤을 엘리자베스 타워로 개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3월 24일, 주빌리 투어로 맨체스터를 찾은 여왕 부부가 한 서민 커플의 결혼식에 깜짝 참석해 부부와 하객 모두를 놀라게 했다. 평소 왕실의 열렬한 팬이었던 존 캐닝이 버킹엄 궁전에 청첩장을 보냈지만 당연히 거절되었는데, 마침 그의 결혼식 날 주빌리투어 공식 일정으로 맨체스터를 방문한 여왕 부부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는 결혼식장을 찾은 것. ##

4월 16일, 장녀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3일간 방문했다. 4월 19일,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의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로 어린이 20만명이 그린 자화상이 여왕의 초상화와 함께 버킹엄 궁전 정면에 3일간 영사된다. 4월 26일, 3남 에드워드 왕자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여기서 에드워드 왕자는 고조부 에드워드 7세가 152년 전 왕세자 시절에 방미해 2그루의 나무를 기념식수했던 필라델피아 지라드 칼리지(Girard College)를 찾았다.

5월 2일, 차남 앤드루 왕자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인도를 이틀간 방문했다.

5월 10일, 17개국에서 온 550필의 말과 1,200명의 무용수들이 참가한 윈저호스쇼가 왕실의 성원하에 13일까지 개최되었다. 여왕 부부가 참석한 폐막식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수잔 보일호주의 유명 연예인 롤프 해리스[88] 공연이 있었다. 5월 14일, 마담 투소 박물관이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해 새로 제작한 여왕과 필립 공의 밀랍 인형을 공개했다. 5월 17일, 1952년 즉위한 이래 현재까지의 여왕을 주제로 한 60점의 회화 작품이 선보이는 'The Queen: Art & Image'전이 영국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10월 21일까지 열리는데, 김동유 교수가 아시아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대되었으며 다이애나비의 사진 1,106개로 여왕의 얼굴을 완성한 사진을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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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세계 각지의 군주국 왕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이아몬드 주빌리 기념 점심 만찬이 윈저성에서 열렸고, 저녁에는 찰스 왕세자가 주최하는 만찬이 버킹엄 궁전에서 열렸다. 사진에 등장하는 왕족들은 다음과 같다.(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볼드체는 당시 촬영 시점 기준으로 현직 국가원수.

  • 앞줄: 일본 천황 아키히토, 네덜란드 여왕 베아트릭스[89],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90][91], 전 그리스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92], 전 루마니아 국왕 미하이 1세[93],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전 불가리아 국왕 시메온 2세, 브루나이 술탄 하사날 볼키아,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94], 스와질란드 국왕 음스와티 3세, 리히텐슈타인 대공 한스아담 2세
  • 가운데줄: 모나코 대공 알베르 2세, 룩셈부르크 대공 앙리[95], 레소토 국왕 레트시에 3세, 벨기에 국왕 알베르 2세[96],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97], 카타르 에미르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바레인 국왕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말레이시아 아공 압둘 할림
  • 뒷줄: 쿠웨이트 에미르의 사촌 나세르 모하메드 알자베르 알사바, 아부다비 왕세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전 유고슬라비아 왕세자 알렉산다르[98], 통가 국왕 투포우 6세, 당시 태국 왕세자이던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국왕, 모로코 공주 랄라 메리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조카 모하메드 빈 나와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같은 날 버킹엄 궁전 앞에서는 바레인 국왕이 행사에 초청된 것을 규탄하는 인권단체들의 시위가 있었다. 그가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독재로 국민을 억압하기 때문이라고. 5월 19일,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하는 군대의 열병식이 윈저에서 열렸다. 5월 21일, 찰스 왕세자 부부가 주빌리 투어로 4일간 캐나다를 방문한다.

다이아몬드 주빌리의 본격적인 행사는 임시공휴일인 6월 2일부터 6월 5일까지 나흘간 열린다.(관련기사) 이 기간 동안 들어가는 행사 비용은 세금을 포함해 1,200만 파운드(약 216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영연방 15개국에서는 2,012개의 기념등을 밝히는 행사를 개최한다.

임시공휴일의 첫날인 6월 2일, 영국 최고 권위의 경마대회 '엡섬 더비(Epsom Derby)'가 개최되어 여왕과 왕실 가족이 관전했다. 엡섬 더비의 개막을 통해 나흘간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대회에는 경마팬인 여왕의 경주마도 출전했다.

6월 3일, 왕실이 국민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빅 런치가 열려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의 분위기를 돋구었으며 찰스 왕세자 부부도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를 방문해 시민들과 함께 축하했다. 이번 거리 파티를 위해 영국 주요 도시에서 9,500건의 거리 폐쇄 신청이 허가되었다. 또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포함한 331명의 의원들이 영국 국회의사당의 빅 벤을 '엘리자베스 타워'로 개명하는 캠페인에 서명했는데,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해 의사당 건너편 광장의 타워를 '빅토리아 타워'로 개명한 전례를 따랐다고. 템스강에서는 여왕 부부와 왕실 가족이 첼시 부두에서 로열 바지선 스피릿 오브 차트웰 호에 승선한 가운데 대규모 수상 퍼레이드가 열렸다. ## 스피릿 오브 차트웰 호는 해군 함정과 영연방 53개국에서 온 선박 및 9백여 척의 민간 선박 등 도합 1천여 척의 호위선을 거느리고 템스강 서쪽 배터씨 브리지에서 출발해 동쪽 타워 브리지까지 11km 구간을 90분간 항행했으며, 비가 오는 날씨에도 150만 명의 군중이 강변과 다리에 운집해 350년 만에 최대 규모로 수상 퍼레이드가 거행되었는데, 왕실 가족이 외부에 장시간 노출되기 때문에 경호선 190척과 경찰 5,500명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한편 영국의 소도시 글로스터에서 중세부터 이어진 관례에 따라 자기 고장의 전통음식인 칠성장어 파이를 2002년 골든 주빌리(즉위 50주년) 때와 마찬가지로 여왕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글로스터산 칠성장어가 급감하면서 미국와 캐나다의 오대호에서 수입한 칠성장어로 파이를 만들어 논란이 벌어졌다.

6월 4일, 여왕의 부군인 필립 공이 전날 있었던 수상 퍼레이드 참석 후유증으로 급성 방광염 증세를 보여 런던 킹 에드워드 7세 병원에 입원했다. 비가 오는 날씨에 2시간 가까이 선 채로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이며, 당국은 이로 인해 다이아몬드 주빌리 콘서트를 비롯해 5일에 열리는 세인트 폴 대성당 기념 감사성찬례와 거리행진에 필립 공은 불참하지만, 여왕은 공식 일정을 그대로 소화할 예정이라 밝혔다. 버킹엄 궁전 앞에서 로비 윌리엄스, 윌아이엠, 제시 제이, JLS, 게리 발로우, 셰릴 콜, 클리프 리처드, 랑랑, 알피 보, 줄스 홀랜드, 루비 터너, 그레이스 존스, 에드 시런, 애니 레녹스, 르네 플레밍, 톰 존스, 셜리 배시, 카일리 미노그, 엘튼 존, 스티비 원더, 매드니스, 폴 매카트니 등이 공연한 대규모 야외 콘서트가 성황리에 열렸다. 한편 영국 전역과 영연방 국가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4,180개의 횃불을 밝히는 행사가 열렸다. 횃불 점화는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40주년과 60주년 때의 행사를 재연한 것으로 오후 10시에 첫 점화가 시작되어 버킹엄 궁전 앞에서 열린 다이아몬드 주빌리 콘서트에 참석한 여왕이 마지막 횃불을 점화히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6월 5일,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2천의 인사가 함께 한 기념 감사성찬례를 마친 여왕과 왕실 가족은 근위대와 기마대, 군악대의 호위를 받으며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버킹엄 궁전까지 마차로 행진했으며, 트라팔가 광장부터 궁전 앞의 더 몰(The Mall)까지 모인 군중은 약 150만으로 추산되었다. 이밖에도 길드홀에서의 리셉션과 웨스트민스터 홀에서의 점심 만찬이 있었다. 나흘간 이어진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는 여왕이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축제 기간 동안 아낌없는 환호와 축하를 보내준 군중들에 대한 답례를 하고 영국 공군기가 궁전 상공에서 공중 분열식을 펼치는 것으로 대단원을 막을 내렸다.관련기사 이 날 여왕은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 방영된 대국민 연설에서 '나를 겸허하게 만든 경험'이었다며 국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여왕이 대국민 연설을 한 것은 1997년 다이애나비의 교통사고 사망 이후 15년 만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미영 양국은 오랜 기간 특별한 관계 속에서 역경도 있었지만 항상 동맹을 유지했으며, 여왕은 이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축하했다.관련기사

6월 26일,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이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북아일랜드이틀 동안 방문했다.

9월 11일, 윌리엄 왕세손캐서린 왕세손비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솔로몬 제도, 오스트레일리아 등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국가를 10일간 방문했다.

11월 4일, 찰스 왕세자카밀라 파커 보울스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파푸아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의 영연방 국가를 13일간 방문했다.


4.3. 재위 70주년, 플래티넘 주빌리[편집]


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아 공개된 사진
영국 국왕으로서 사상 최초, 유럽의 군주로서도 역사상 세 번째[99]2022년 2월 6일 달성.[100] 또한 당해 년도 생일까지 생존하여 만 96세가 되었다. 플래티넘 주빌리 기념 행사는 2022년 6월 2~5일에 개최할 것이라고 영국 정부가 밝혔다. 해당 기간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다.# 전 날 5일 샌드링엄 별장에서 지역 봉사단체 대표들, 연금 생활자, 여성단체 회원 등을 만났다.#

2021년 4월 9일,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이 세상을 떠나면서 부군 없는 행사를 치른다. 일각에서는 2022년에 찰스 왕세자에게 양위는 아니더라도 공식적으로 섭정을 맡기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여왕은 96세가 된 현재까지도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장수 중이며 만일 생전에 물러날 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주요 영연방 국가들의 연방 탈퇴 및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끝까지 왕위는 지킬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백부인 에드워드 8세의 사례를 어린 시절 직접 겪었던 여왕은 양위 혹은 생전 퇴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일찍이부터 드러내고 있어 건강 상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양위나 생전 퇴위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6월 2일(한국시간)에 여왕 생일 퍼레이드가 버킹엄 궁전에서 열렸다. 말 한 마리가 기수의 말을 듣지 않고 나대다가 퇴장하는 사고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플래티넘 주빌리 기념 영상으로 패딩턴 베어와 함께 등장했다. 엘리자베스 2세 본인, 패딩턴 베어, 퀸(밴드), 홍차등 영국 소프트파워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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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4일, 버킹엄 궁전에서 플래티넘 주빌리 콘서트가 열렸다.

2024년 5월 27일까지 생존한다면 프랑스 루이 14세를 제치고 전 세계[101]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국왕이 된다.


4.4. 역대 건강 이상설[편집]


여왕의 나이가 워낙 고령이기 때문에 여러 건강 이상설들이 종종 나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여왕의 대외 활동이 이전에 비해서 눈에 띄게 줄어들고, 2021년 4월,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 공이 사망하면서 여왕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 2021년 10월 12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성공회 성당)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100주년 기념 감사성찬례에 검은색 지팡이를 짚고 참석했다.# 2004년 무릎 수술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지팡이를 사용한 것이다. 왕실 측에서는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고, 단순히 편의를 위한 조치였다"라고 밝혔다.[102]
    • 하지만, 20일 예정되어 있던 북아일랜드 방문을 취소한데 이어서, 병원에 입원한 것이 알려지면서 건강이상설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버킹엄 궁 측에서는 "'공무를 취소하고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들의 반강제적 권고를 수용한 것이며, 병원 입원은 간단한 검사를 받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히며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코로나19와 관련된 사안은 아니라고 한다.#
    • 이후 26일, 윈저성에서 김건 주영한국대사를 접견하는 등 공식 일정을 재개했다.#
    • CNN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3주간 1,000km의 엄청난 일정을 소화했다.심각한 건강 이상일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 26일, 버킹엄궁은 여왕이 입원 이후 첫 외부 일정으로 예정되어 있던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는 의사들의 휴식 권고에 따른 것이며, 영상 메시지 형태로 대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여왕이 빡빡한 개인 일정과 늦은 시간에 텔레비전을 자주 시청하여 신경이 쇠약해졌다"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여왕은 4월 필립 마운트배튼 공과 사별한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족이나 친구들을 불러 계속 점심, 저녁을 같이 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자녀들을 키워준 동갑내기 유모 마벨 앤더슨과 함께 자주, 밤늦게까지 TV를 시청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 미국 NBC의 보도에 따르면, 의사들은 여왕이 건강에 집중할 시간을 갖도록 스케줄을 조정할 것과 저녁 일과시간을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더불어 여왕이 밤마다 마시는 칵테일도 포기하라고 조언했으며, 신체에 무리가 가는 장시간 산책도 멈추라고 했다고 한다.

  • 영국 ITV는 "왕실이 여왕의 의무보다 건강을 더 우선시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즉,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 관리를 위해 외부 일정을 더 줄여나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다음 계승 순위인 맏아들 찰스 왕세자의 공무가 이전보다 더 늘어나거나 아예 섭정을 맡길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 하지만, 이와 같은 영국 왕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건강 이상설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중이다. 필립공과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여왕은 평소 머물던 윈저성이 코로나19로 폐쇄됨에 따라 건강 상태를 알 수 없었다는 내용도 보도되었으며, 지난해 1월 여왕이 매해 방문하던 샌드링엄 여성 연구소를 '사소한 감기'를 이유로 가지 못한 것도 건강이상 징후였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더불어 왕실에서 독립해 미국에서 거주중인 손자 해리 왕자가 여왕을 걱정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면서[103], 여왕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혹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중이다.#
    • 그러나 이후 런던 근교 윈저성에서 여왕이 직접 재규어 차량을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건강 이상설은 현재로써는 사실무근이거나 적어도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

  • 한 왕실 전문가는 여왕이 올해 직접 '최악의 해'라고 칭했던 1992년 이후[104] 재위 중 가장 최악의 한 해[105]를 보냈으며, 이것이 여왕에게 건강상의 문제를 끼쳤을지는 불분명하지만, 큰 정신적인 상처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 이후 11월 14일, COP26 불참 이후 첫 공식 외부 일정이었던 현충일 감사성찬례마저 허리 부상을 이유로 불참했다.#
    • 그러나 여왕은 사흘 뒤인 11월 17일 런던 근교 윈저성에서 퇴임을 앞두고 있는 닉 카터 국방참모총장을 만났는데 지팡이도 짚지 않은 채 허리를 곧게 세우며 건강한 모습으로 카터 총장을 맞이함으로써 건강 이상설을 불식시켰다. #
    • 또한 12월 23일(현지 시간) 녹화한 크리스마스 담화에서 필립 공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며 평년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앉아 약 8분 간의 연설을 이어가며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증명했다.

  • 2022년 2월, 맏아들 찰스 왕세자코로나19에 재감염되었다. 찰스 왕세자가 여왕을 만난지 48시간이 지나지 않아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여왕의 감염 여부를 놓고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여왕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며칠 후 맏며느리 카밀라 파커 보울스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곧바로 격리에 들어갔다. 카밀라는 찰스 왕세자와 밀접 접촉자였지만, 이미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모두 마친데다가 음성 판정을 받은 상태라서 자가 격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성 판정을 받기 전까지 대외 활동을 정상적으로 수행했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카밀라가 여왕을 만났는지에 대한 여부가 알려지지 않았으며, 버킹엄 궁전에서 여왕이 '의료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밝히면서 여왕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는지, 검사를 받았다면 결과가 어땠는지에 대한 자세한 논평을 거부했다.데일리 메일 보도 이후 여왕은 화상 접견 등 일부 비대면 업무를 재개했으나, 버킹엄 궁전에서는 여전히 여왕의 코로나19 감염 여부와 자가격리 조치 여부에 대해서 논평을 거부했다고 한다.[107]
    • 2021년 10월, 북아일랜드 순방이 취소된 이후 여왕은 대면 업무와 순방[106] 등을 자제하고, 비대면 업무만을 수행중이었으며, 버킹엄궁에서는 여왕의 대외 업무 복귀를 계획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여왕의 대외업무 복귀는 당분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 2022년 2월 20일, 버킹엄 궁에서 "여왕이 코로나에 확진되었으며, 가벼운 감기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
    • 여기에 대해 왕실 전기 작가인 로버트 잡슨은 '가벼운 감기'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 여왕의 상태가 위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여왕 스스로도 가벼운 왕실 업무를 이어나간다는 것을 보면, 건강에 크게 이상이 있거나 무리가 갈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만약 여왕의 상태가 위중했다면 '여왕이 COVID-19에 감염되었다'라고만 버킹엄 궁이 밝혔을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 여왕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화상 접견 일정이 취소되었다.#
    • 전문가들은 여왕이 코로나19 진단을 받은 후 "평소보다 나약해 보이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BBC 기자 다니엘라 랄프는 "궁의 분위기는 조심스럽지만 경계심이 없다"며 "여왕은 95세의 나이로, 작은 감염에도 매우 취약한 고령이며,[108] 또한 지금 여왕은 1년 전보다 훨씬 더 날씬하고 허약해졌다.[109] 여왕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
    • 2022년 2월 28일, 여왕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으며 가족과 함께 프로그모어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보도되었다.
  • 코로나19에 걸렸다가 얼마 안 가 완치되는 등 나이에 비해서 여전히 건강한 편이지만, 최근 들어서 예전에 비해 건강이 많이 악화된 상태라고 한다.# 왕실 측 관계자는 "여왕은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하고, 능력 있고, 관심이 있지만, 육체적으로는 예전만큼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 3월 22일, 여왕이 오랜 시간 동안 서 있거나 걷기 극도로 어렵다며, 곧 휠체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 다만 필립 공의 서거 이후 약 1년만에 진행되는 첫 추도식(3월 29일)에는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 5월 10일에 예정된 영국 의회 개회식에 여왕이 건강문제로 참석이 어려울 것에 대비해 찰스 왕세자가 대신 참석하는 안이 내부적으로 검토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여왕이 재위 기간 중 의회 연설에 불참한 적은 1959년과 1963년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를 임신 중이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여왕의 참석 의사가 강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여왕이 정상적으로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
  • 여왕의 건강 악화로 인한 이동 불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 62,000파운드를 들여 윈저성 경내에 첨단 이동 장치를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 2022년 4월 14일, 매년 부활절을 기념해 열리는 마운디 서비스 행사에 여왕이 불참했고, 이제는 대타 전문인 찰스 왕세자카밀라 파커 보울스 내외가 대신 참석했다. 여왕이 이 행사에 불참한 것은 1970년 이후 처음이며, 즉위 이후 단 4번밖에 없었다. 왕실전문가 로버트 잡슨은 "여왕이 Zoom 국왕"이 될수없다며, 찰스 왕세자에게 정식으로 섭정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110]#
  • 2022년 5월 4일, 버킹엄 궁에서 "올해 여왕은 버킹엄궁 가든파티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여왕이 가든파티에 불참하는 것 역시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 2022년 5월 9일, 버킹엄 궁은 "여왕이 5월 10일에 열리는 의회 개회식에서 연설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발표했다. 여왕은 참석하기를 희망했으나 주치의들의 권고로 결국 참석하지 않기로 하면서, 개회식에는 찰스 왕세자윌리엄 왕세손이 참석하기로 했다.# 의회 연설은 찰스 왕세자가 대독했는데, 이는 왕세자가 된 지 70년만에 처음으로 여왕의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 2022년 5월 15일, '플래티넘 주빌리'를 축하하는 로열 윈저 호스 쇼를 관람하며 1시간 넘게 야외에 머문 데 이어서, # 5월 17일에는 런던 패딩턴역에서 개최된 엘리자베스 노선[111] 개통식에 건강한 모습으로 막내아들과 함께 깜짝 등장했다.# 23일에는 골프용 카트를 타고 첼시 플라워쇼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적인 야외행사를 재개하며 건강에 대한 우려는 다소 누그러졌지만, 지팡이나 골프 카트를 사용하는 등 여전히 거동은 불편한 것으로 보인다.
  • 2022년 6월 2일 플래티넘 주빌리 기념 퍼레이드에도 정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3일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열리는 감사 예배에는 불참한다고 한다.#


5. 가족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엘리자베스 2세/가족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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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왕자 (셋째)
공주 (둘째)
에드워드 왕자 (넷째)
찰스 왕세자 (첫째)
엘리자베스 2세 (본인)
필립 공 (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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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부부
왼쪽부터 여왕, 필립 공, 엘리자베스 왕대비, 조지 6세, 마거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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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찰스(1948~ )
장녀 (1950~ )
차남 앤드루(1960~ )
3남 에드워드(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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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손주 2명 및 증손주 5명과 함께 촬영한 90세 생일 기념사진
손자 제임스, 손녀 루이즈, 외증손녀 미아 (가방 들고 있는 아이), 여왕이 안고 있는 증손녀 샬럿, 외증손녀 사반나, 증손자 조지, 외증손녀 아일라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조지 6세
(George VI)
조지 5세
(George V)
에드워드 7세
(Edward VII)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Princess Alexandra of Denmark)[112]
테크의 공녀 메리
(Princess Mary of Teck)
테크 공작 프란츠
(Francis, Duke of Teck)
케임브리지의 공녀
메리 애들레이드
(Princess Mary Adelaide of Cambridge)[113]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Elizabeth Bowes-Lyon)
14대 스트래스모킹혼 백작
클로드 보우스라이언
(Claude Bowes-Lyon, 14th Earl of Strathmore and Kinghorne)
13대 스트래스모킹혼 백작
클로드 보우스라이언
(Claude Bowes-Lyon, 13th Earl of Strathmore and Kinghorne)
프란시스 도라 스미스
(Francis Dora Smith)
세실리아 니나 캐번디시벤팅크
(Cecilia Nina Cavendish-Bentinck)
찰스 캐번디시벤팅크
(Charles Cavendish-Bentinck)
캐롤라이나 버나비
(Carolina Burnaby)

자녀
이름
출생
배우자/자녀
1남
웨일스 공 찰스
(Charles, Prince of Wales)
1948년 11월 14일
레이디 다이애나 스펜서
슬하 2남[114]
카밀라 파커 보울스
1녀
프린세스 로열 앤
(Anne, Princess Royal)
1950년 8월 15일
마크 필립스
슬하 1남 1녀[115]
티머시 로렌스
2남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Prince Andrew, Duke of York)
1960년 2월 19일
사라 퍼거슨
슬하 2녀[116]
3남
웨식스 백작 에드워드 왕자
(Prince Edward, Earl of Wessex)
1964년 3월 10일
소피 리스존스
슬하 1남 1녀[117]

엘리자베스 여왕의 윗세대로는 조부모인 조지 5세테크의 메리, 백부인 에드워드 8세, 부모인 조지 6세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있다. 할아버지 조지 5세가 재위할 적에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아버지 조지 6세가 재위할 적에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유일한 형제로는 여동생 마거릿 로즈 공주가 있었으나, 마거릿 공주는 2002년에 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오점이 있다면 그 놈의 자식들인데,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영국 왕실 스캔들이 여왕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나올 정도로 자식농사는 다 말아먹은 것 같다.[118] 그래도 에드워드나 윌리엄처럼 아들이나 손자가 간간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는 기사가 나오는 걸 보면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닐지도. 에드워드는 4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이혼하지 않고 23년째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손자녀, 증손자녀는 엘리자베스 2세/가족관계 문서 참조 바람. 더불어 북아일랜드에서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는 1972년 1월 31일 일요일 비무장 민간인 학살사건 당시 가해자인 영국 군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한 사건도 오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숙부[119]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원수였던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 (1900~1979)이 IRA의 보복 폭탄 테러로 끔살[120]당하는 일도 겪어야 했다.

남편 필립 공영국 해군 대위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121], 장남 찰스 왕세자도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1971~1976년까지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심지어 문제아 취급받는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도 해군 헬기 조종사로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다. 다만, 셋째 아들 웨식스 백작 에드워드는 대학 졸업 후 영국 해병대에 입대했으나 12개월 훈련 기간 중 3분의 1만 하고는 그만두고 나와 논란이 있었다.[122] 찰스 왕세자의 장남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왕세손은 군 통수권자가 되기 위해 육·해·공군을 순회한 후 공군 구조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123] 남동생 해리 왕자도 근위대 블루스 앤드 로열스 기병연대 소속으로 아프간에 파병되어 일선에서 전투소대장 임무를 완수하고 헬기 조종사 양성 코스를 수료했다. 국방부에서는 "해리 왕자 때문에 다른 전우들이 위험해진다"면서[124] 반강제로 귀국시켰지만, 그후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AH-64 조종사로 군복무 중이다. 2012년 9월 14일(현지시간)에는 탈레반이 해리 왕자를 죽이기 위해 그가 있는 기지에 공격을 가했으나 무사했다.

이렇듯 왕실 구성원 중 남성 전원이 군복무를 완료했거나 수행 중이다. 다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일반병으로 복무하지는 않고 전원 장교로 복무했다.[125]

엘리자베스 2세까지는 영국 왕족의 성씨가 윈저(Windsor)이고[126] 윈저 가(House of Windsor)의 일원이다. 하지만 그녀와 남편 필립 공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둘의 성을 합쳐 마운트배튼윈저(Mountbatten-Windsor)를 성(surname)으로 쓰게 되는데,[127] 왕가의 이름(family name)은 성과 구분해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윈저 가(House of Windsor)에 속하는 것으로 하도록 규정되었다.

이는 엘리자베스 2세가 태어나기 전인 1917년에 이미 영국 왕실의 명칭을 영구히 '윈저 왕조'로 고정하기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가 즉위할 당시, 왕조의 명칭을 남편인 필립의 성인 '마운트배튼 왕조'로 바꿔야 하는지, 아니면 기존의 '윈저 왕조'란 명칭을 계속 쓸 것인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엘리자베스의 숙부인 루이 마운트배튼도 이를 잘 몰라서 언론의 질문에 대해 '혹시 마운트배튼 왕조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이는 당시 생존해 있던 엘리자베스의 할머니인 메리 대왕대비가 "이미 이전에 영구히 윈저 왕조라고 명칭을 고정한다고 결정되었으며, 이 때문에 이후 여왕이 즉위해도 왕조의 이름이 여왕의 남편의 이름으로 바뀌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답을 내려주며 해결되었다.

이에 대한 오래된 루머로 루이 마운트배튼이 "이제부터 마운트배튼 왕조로 해야 한다."라고 설레발을 치자 메리 대왕대비가 격노해서 "영국의 왕조 이름은 이미 영원히 윈저 왕조로 정했다."라고 하며 루이 마운트배튼을 호되게 혼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야설이다. 앞서 나오듯이 마운트배튼 백작은 잘 몰라서 단순히 추측만 했을 뿐이며, 메리 대왕대비가 격노한 일은 없었다.

보통 surname = family name = 성씨이지만, surname과 family name을 구분한 특이 케이스에 속한다. 영국 왕실의 공식 설명. 대부분의 왕실 일원이 성을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마운트배튼윈저(Mountbatten-Windsor) 성을 사용한 최초의 자손은 루이즈 앨리스 엘리자베스 메리이다. 아버지 에드워드 왕자의 자식들은 왕자/공주보다는 백작의 자녀 칭호로 불릴 것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전하 (Her Royal Highness)' 경칭을 사용하지 않고, 성을 표기한다.


6. 창작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엘리자베스 2세/기타 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여담[편집]


  • 즉위명은 영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국왕인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명을 그대로 세습받아서 엘리자베스 2세가 되었다. 그러나 당대의 장신이였던 엘리자베스 1세와는 달리, 엘리자베스 2세의 키는 평범한 수준이다.

  • 지금이야 나이가 나이다 보니 인자한 모습의 구부정한 할머니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에는 기품있는 외모를 자랑했다.[128] 세월이 흐른 장년기에도 귀부인의 전형같은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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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즉위 기념 촬영.

  • 왕실 친척들에게 정이 많다는 평이 따른다. 윈저 왕조의 방계인 글로스터 공작가[129]와 켄트 공작가[130]의 사촌들이 바라는 건 웬만해선 뭐든지 들어주려고 했으며, 논란을 일으키는 친척들도 묵묵히 지원하며 감싸주는 편이다. 오죽하면 본인의 자식들인 찰스 왕세자앤 공주는 뒷전이라 비난도 많이 받았을 정도.[131]

  • 일국의 여왕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꽤나 자주 영국의 부자 스타들의 재력 측정기이자 영원한 기준이 되곤 한다. 예를 들어 폴 매카트니는 전재산이 여왕보다 많다던지[132] J. K. 롤링의 재력이 세계 555위로 여왕보다 높다는 식으로 자주 이름이 거론된다. 엘리자베스 2세의 보유 재산은 2015년 기준, 약 4억 2,500만 달러(약 5,06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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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의 얼굴마담으로 해외를 종종 국빈 방문하는데, 대한민국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1999년 4월 19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했다.[133] 당시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서양에서는 발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데, 좌식생활을 하는 한옥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기 때문. 여왕은 한국 문화를 존중해 맨발로 들어갔고 신발을 벗자마자 외신 기자들이 미친 듯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에 한국 기자들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어리둥절해 했다. 마침 방문 날짜에 73회 생일인 4월 21일이 끼어 있어서 간 김에 한식 전통 생일상도 받았다.[134] 엘리자베스 2세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3박4일 일정으로 사용할 의전 차량으로 대우 체어맨(쌍용 체어맨)[135]을 선택했다고 한다. 남편인 필립 공현대 다이너스티 리무진을 탔다.[136]

  • 하지만 환영만 받는 건 아니라서,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연방 국가를 방문하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인도를 방문했을 때는 일부 인도인들이 야유하며 식민지 시절 자행된 학살과 약탈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영어로 '영국의 위대한 암캐 여왕'이라 적힌 걸개를 들고 가는 곳마다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카퍼레이드를 하며 손을 흔들고 있는 여왕을 향해 달걀을 던지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이들을 물론 처벌하지 않았고, 영국 언론은 "인도가 변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1970~80년대만 해도 여왕이 인도를 방문하면 인도는 식민지 시절 그대로 꼼짝도 못 했고, 인도도 국력이 강해지면서 식민지배의 앙금을 어느정도 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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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몬트리올 올림픽 개회식(1976.7.17)
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2012.7.27)[137]

대역을 이용해 다니엘 크레이그와 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138]

  • 주최국 국가원수가 개회선언을 하는 관례에 따라, 1976 몬트리올 올림픽.[139] 2012 런던 올림픽의 개회선언을 했다. 또 1956 멜버른 올림픽은 여왕을 대신해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이 개회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영국이 아닌 영연방 국가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즉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여왕이 아니라 총독이 개회선언을 했다. 이들 영연방 국가들이 같은 군주를 모시지만, 엄연한 독립국으로서의 면모가 강화되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2013년 4월 8일, 前 영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의 사망에 큰 슬픔을 드러내며 유족에게 조의를 표했고, 대처의 장례식을 국장보다 한 단계 낮은 군장 규모로 치를 것을 명했다.[140]


  • 1982년에는 마이클 페이건이라는 청년이 경비가 가장 엄중해야 할 버킹엄 궁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손쉽게 다녀가는 사건이 벌어져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첫 번째 침입에서 페이건은 그냥 대충 궁전 내를 구경하며 어슬렁대다가 백포도주 반 병을 마시고 도망나왔고, 두 번째 침입에서는 궁전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인 여왕의 침실에 들어가 엘리자베스 2세를 식겁하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잠에서 깨자마자 자신의 침대 발치에 무심히 앉아 있는 페이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하마터면 가장 존엄한 신분인 상징적 국가원수가 괴한[141]에게 참변을 당할 뻔한 대사건이었지만, 다행히 페이건이 별다른 폭력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여서 엘리자베스 2세는 별달리 험한 일을 당하지 않았다. 잠에서 깬 엘리자베스 2세는 비상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10여분 동안 페이건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를 진정시켰다. 당연히 영국의 신분 구조상 가장 밑바닥에 속했던 극좌파 평민인 페이건과, 반대로 그런 신분제의 정점에 속했던 엘리자베스 2세 사이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142]

  • 만약 영국이 독재국가였으면 페이건은 입에 담기에도 끔찍한 꼴을 당했을 테지만, 이 사건은 워낙 전대미문의 사건이어서 관련 법규가 없다보니 형사상 범죄로 취급되지조차 않았다.[143] 페이건은 황당하게도 첫 번째 침입 당시 훔쳐 마신 백포도주 반 병을 변상하는 민사상의 책임을 지고 정신병원에 갇혔다가 금방 풀려났다. 오히려 왕궁 경비 담당자들이 더 끔찍한 꼴을 당했다. 극좌파 경력을 가졌는데다가 정신도 살짝 맛이 간 위험한 외부인이 가장 엄중한 경비를 해야 할 국가원수의 궁전을 민간인 집의 담장을 넘듯이 두 번이나 드나든데다가, 여왕의 침실에 침입을 허용했고 경비는 비상벨을 누른 후 10분이 지나도록 현장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이건이 작정만 했으면 충분히 엘리자베스 2세가 참변, 즉 암살당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144][145]

  • 2015년 6월 3일, BBC 기자의 실수로 여왕이 사망했다는 글이 트위터 계정에 올라왔다가 삭제되는 해프닝이 있었다.[146][147] 여왕이 고령이다보니 "영국 사회가 여왕의 승하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6년 12월, 독감에 걸린 여왕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감사성찬례와 신년 감사성찬례에 불참해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었으나 2017년 1월 8일 2주만에 왕실 가족과 함께 감사성찬례에 참례해 우려를 불식시켰다.

  • 2020년 11월 16일, 이번에는 프랑스의 공영 라디오 방송이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이번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뿐만이 아니라 해외 각국의 유명 인사들도 사망 명단에 대거 포함되어 있었으며, 사망 원인은 무려 코로나19로 내보내졌다고. 해당 방송사는 허겁지겁 기사를 내리고 사과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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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차로는 특수제작된 벤틀리를 탄다.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이라고 불린다.[148][149]

  • 2015년 7월 18일, 1933년 어린 엘리자베스 2세가 나치식 경례를 하는 영상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다. 물론 나치식 경례가 금기 중의 금기이지만, 그때는 나치즘악의 축 낙인이 찍히고 하켄크로이츠가 악의 상징이 되기 전이다.[150]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2세는 겨우 7살이었고, 엘리자베스 2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의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의 친나치 행보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영상에서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례를 시키는 사람이 에드워드 8세이기 때문이다.

  • 2016년 6월 11일, 여왕의 생일 공식 기념 행사에서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 나온 왕실 가족이 시민들의 축하를 받을 때, 손자 왕세손이 증손자 조지와 놀아주면서 앉아 있자, 손자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일어나라"고 핀잔을 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화제가 되었다.(#)

  • 2016년 3월 9일더 선이 '여왕이 브렉시트를 지지한다'고 1면에 기사를 냈는데, 버킹엄 궁전 측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63년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며 해당 기사를 독립언론윤리위에 제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여왕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국이 유럽의 일부여야만 하는 이유 3가지를 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왕이 브렉시트를 두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이에 언론 규제 단체인 IPSO는 "<더 선>의 기사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misleading)"고 발표했지만, <더 선>은 "2명의 소식통을 통해서 여왕이 당시 부총리였던 닉 클레그한테 말했다"고 주장했다.### 닉 클레그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마이클 고브가 <더 선>에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한 소식통 중 한 명이라고 지적했으나, 마이클 고브는 대답하기를 거절했다. 닉 클레그는 여왕이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일개 부총리한테 이런 중대한 사건에 대해 논평을 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더 선의 주장을 보증해주기를 거절했다.
    • 영국의 대표 보수 언론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은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데일리 메일의 왕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여왕 사후 왕위 계승 1위 후보인 찰스 필립 아서 조지는 오래 왕위에 있지 못할 것이고, 이후 2위 후보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가 왕좌에 앉을 것이 분명하며, 윌리엄은 EU 체제 내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연방 왕국을 유지하는데 그의 할머니 만큼 열성적이지 못하다."라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데일리 메일은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복귀 없이는 자신의 사후 영연방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15년 6월 24일 독일을 정식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의 연설에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참석한 회담에서 여왕은 "유럽의 분열은 우리 모두에게 위험하다."라고 경고했으며, "우리 영국은 유럽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핵심층"이라며 영국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매우 가까운 외교 관계를 유지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 2017년 6월 21일 국왕의 칙유 발표를 위해서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의 모자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유는 모자가 유럽 연합기와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간접적으로 유럽 연합을 지지한다는 뜻을 비추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몇 년 간 본 행사에 흰색 드레스를 고수해 왔기에 이러한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 2019년 5월 19일, 기밀이 해제된 독일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여왕은 유럽연합의 전신 EEC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영국의 미래는 유럽에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1999년 호주 공화정 전환 국민 투표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등으로 지위에 위기를 맞기도 했으며, 브렉시트 이후 스코틀랜드의 불안정이 다시 지위에 충격을 주고 있다.

  • 영국 파운드와 영국 속령에서 사용하는 지폐의 모델이다. 또한 호주 달러와 캐나다 달러, 뉴질랜드 달러 지폐와 동전의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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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가보면 종류별로 다 있다. 심지어는 어린 시절 사진이 지폐 모델이 된 것도 있다.

  • 견과류를 매우 좋아한다. 2013년 12월 13일경 영국 언론지 now의 불법 도청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린 적이 있었다. 이 때 법정에 증거자료로 제출된 이메일 내용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왕실직원들이 여왕을 위해 준비한 땅콩, 아몬드, 캐슈넛 등의 견과류를 항상 궁전 복도에 놓아두는데, 순찰 중인 경찰들이 너무 많이 집어먹어서 여왕이 화가 났다고. 여왕은 그릇에 줄을 그어서 표시한 후 "내 땅콩에 그 끈적거리는 손 치우라"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또 초콜릿도 좋아해서, 주변 사람이 말리지 않으면 한 접시 정도는 다 먹을 수 있다고 한다.

  • 2019년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한때 거주하던 빌라가 고급 부동산 중개업체에 매물로 등장했다. 몰타에 있는 이 빌라 매매가는 600만유로(약 80억 4,000만원)로 책정됐다. 해당 빌라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결혼 초기 필립공이 몰타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하던 1949년부터 1951년까지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지만, 딱 한번 영국 수상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1978년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수상인 제임스 캘러헌과 외무장관이었던 데이비드 오언은 차우셰스쿠를 좋은 공산주의자라 얘기하며 엘리자베스 2세에게 버킹엄 궁전으로 초대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여왕도 이를 승인하였다. 문제는 차우셰스쿠가 영국 방문 직전 방문한 프랑스에서 터졌는데, 차우셰스쿠와 그 일행이 도청장치가 있는지 확인한답시고 영빈관의 전깃줄과 전화선을 까 뒤집는 것도 모자라 각종 공예품을 절도했던 것. 당연히 어처구니가 없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이 미리 엘리자베스 2세에게 이를 귀뜸해 주었고, 여왕은 궁전의 관리인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어 루마니아 사절단의 도벽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우셰스쿠는 이것 이외에도 "도청장치를 두려워한다"는 명목으로 아침 일찍 궁전 잔디밭에서 회의를 한다던가, 여왕과 악수한 직후 바로 면전에서 손을 소독하는 등의 결례를 저질렀다. 일단 앞에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차우셰스쿠가 귀국하자마자 폭발한 여왕은 제임스 켈러헌 총리와 오언 외무장관을 호출한 뒤 "어떻게 초대해도 저런 인간을 초대할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라며 매우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이는 현재까지 엘리자베스 2세가 보인 전례없는 총리와 장관에 대한 분노 표출이자 문책이었는데, 즉위 직후부터 가급적이면 총리와 내각의 정책에 대해 언급을 사양하며 정치적 행보를 최소화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이처럼 총리에게 화낸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고 하며 참고로 캘러헌 총리와 여왕의 나이차는 15살 차이이다. 그 정도 나이차라면 아무리 주군인 여왕이라도 총리에게 화를 내기는 힘들었을텐데 그만큼 분노했던 여왕이었던 것.

  • 영국 여권 문서에도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엘리자베스 2세에게는 여권이 없다. 이는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모든 여권은 국왕의 이름으로 발행되는데, 군주인 국왕이 여권을 소지하는 것은 엄연히 신하인 외교부 장관에게 여행 가도 되냐고 허락받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라고. 이건 일본도 똑같아서 덴노도 여권이 필요없다. 영국처럼 군주가 신하인 외무대신에게 허락을 받는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뜻. 일본 여권 문서 참조. 물론 영국이나 일본이나 국왕 이외의 왕족은 여권이 필요하다.[151]

  • 모계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쟁이지만, 요약하자면 스페인의 알폰소 6세의 첩 혹은 부인인 세비야의 자이다 공주[152]가 거슬러 올라가면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후손이라는 것. 그리고 스페인 왕족들과 영국 왕족들의 결혼으로 그 피가 이어진다는 것이다.관련 기사,가계도

  • 애완견은 원래는 코기를 키우다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개 입양을 안하고 있다. 도기(dorgi)종 애완견인 '벌컨(Vulcan)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서 '캔디'라는 이름을 가진 도기종 애완견 한 마리만 남게 됐었는데, 2021년 3월 필립 공이 세상이 떠나기 전 '퍼거스(Fergus)'[153] 라는 도기와 '믹(Muick)' 라는 코기를 분양받았다고 한다.

  • 과거 자신의 사유 재산을 대중에 공개하지 않으려고 관련 법안의 초안을 수정하기 위해 대정부 로비를 벌여 이에 성공했다.# 찰스 왕세자와 같이 1천건이 넘는 법안을 의회보다 먼저 받아보고 '검열'한 것으로 밝혀졌다.#

  • 남편 필립 공의 장례식 때 직계 자손들이 남편의 관을 따라 행진하는 동안 차를 타고와서[154]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기다렸는데 마스크를 쓰고 홀로 앉아있는 모습이 배우자를 먼저 보낸 이의 슬픔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이 많았다.

  • 모국어인 영어 말고도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프랑스 상원 연설을 보면 영어 억양 때문에 원어민스럽지는 않지만 상당한 실력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





8. 갤러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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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대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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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당시 초상화
90세 생일 기념으로 애니 레보비츠가 촬영한 사진.

20~21세기의 제1세계 주요 인물들은 거의 다 영접 및 대면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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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 국기.svg 1950년, 윈스턴 처칠 당시 보수당 대표와 함께.[155] 가운데는 클레멘트 애틀리 당시 총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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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국기.svg 1959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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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도 국기.svg 1961년,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초대 총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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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1975년, 영국령 홍콩 로열 투어 중 홍콩 좌판 상인들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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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국기.svg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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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년,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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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 국기.svg 2019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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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 기념 행사는 매년 6월 둘째 주 토요일에 거행한다.[2] 70년간 재위 중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대한민국의 모든 대통령(이승만~윤석열)이 재직할 때 재위하고 있었다.[3]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고,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이며, 여왕으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재위하고 있다. 참고로 유럽 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는 프랑스루이 14세(72년 3개월).[4] 영국 외에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으로 군림하는 15개국에서는 각각 별도의 호칭이 정해져 있다.[5] 종전에는 63년 216일 동안 재위한 빅토리아 여왕이 이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2015년 9월 9일부로 이 타이틀이 엘리자베스 2세에게 넘어갔다. 참고로 고구려 장수왕의 재위기간은 79년 2개월이다. 또 고구려 태조왕은 무려 94년이다. 단 태조왕은 동시기 중국 기록에선 또 다르게 쓰여 있어서 기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조선에서는 52년간 재위한 영조가 있다.[6] 40대에 즉위한 아버지, 큰아버지, 할아버지에 비하면 정말 젊은 나이에 즉위했다. 증조할아버지는 환갑이 되었을때 즉위했다. 6.25 휴전협정이 1953년도에 발효됐으니 그 이전부터 여왕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편 소련의 존속 기간(1922.12.30.~1991.12.26.)보다 더 오래 재위 중이다.[7] 이 17개국은 영국에서 독립할 땐 영국과 군주를 공유하는 왕국이었다가 이후 국민투표·헌법 개정이나 쿠데타 등에 의해 공화국으로 바뀐 경우이다.[8] 동파키스탄이었던 방글라데시까지 합산하면 18개국이다.[9] 남아프리카연방-남서아프리카, 호주-파푸아뉴기니[10]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은 헌법 개정 시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거치게 돼 있으나, 헌법 개정 절차는 나라마다 다 다르며 단순히 의회의 의결로 변경할 수 있는 나라도 많다. 영국처럼 아예 헌법을 일반 법률이나 관습법과 분리하지 않는 불문헌법인 나라도 있다.[11] 2개 국가의 수장인 사람으로는 프랑스 대통령이자 안도라의 공동 대공에마뉘엘 마크롱이 있다.[12] 영국 여왕으로서 쓰는 문장이다. 단, 전통에 따라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와 디자인이 다른 문장을 사용한다. 또 영국 이외에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 있는 나라(영연방 왕국)에서 쓰는 문장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연방 왕국의 서로 다른 국장들이 곧 엘리자베스 2세의 국장이므로 이들을 참고하면 된다.[13] 여왕으로 있는 모든 나라에서 사용 가능한 '여왕'으로서 쓰는 깃발이다. 영연방의 '원수'(Head of the Commonwealth)이긴 하지만 영연방 원수 자격으로 쓰는 깃발은 따로 정하고 있지 않다. 엘리자베스 2세가 사용하는 다른 깃발들은 영문 위키백과해당 항목 참고.[14] 아버지의 즉위로 인해 자동적으로 작위가 바뀌었다.[15] 결혼으로 인해 작위가 바뀌었다.[16] 현재는 나라마다 다른 칭호를 따로 제정해서 씀.[17] 1927년 이래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이 칭호에서 빠진 지 26여 년 만에 정식 국호가 칭호에 돌아왔다. 1927년까지는 "of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and of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King/Queen"(그레이트 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그리고 바다들 너머의 브리튼 자치령들의 국왕/여왕)이 왕의 칭호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 섬의 대부분이 아일랜드 자유국(1930년대에 스스로 이름을 그냥 아일랜드로 고침)으로 분리되었고, 북아일랜드만 영국 본국에 남음으로써 칭호 쓰기가 골치 아파졌다. 그래서 그냥 1927년 영국의 국호를 현재처럼 고치면서 칭호 일부분을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King/Queen"(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그리고 바다들 너머의 브리튼 자치령의 국왕/여왕)이라고 고치게 돼서 United Kingdom이 왕의 칭호에서 빠졌다. 어차피 Ireland에는 영국 본국의 일부인 북아일랜드와 별도의 자치령이 된 아일랜드 자유국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다. 조지 6세 재위 기간 중인 1949년 아일랜드(아일랜드 섬 전체 말고 구 아일랜드 자유국의 후신)가 공화국이 돼서 영국 왕과 완전히 무관해졌지만 왕의 칭호에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때에 맞춰 나라마다 칭호를 따로 정하기로 하면서 영국에서는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라는 국호가 들어가 되었다. United Kingdom이 왕의 칭호에 다시 포함되었지만 예전과 달리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가 뒤에 따라옴에 주의할 것.[18] 자치령(Dominion)이란 표현이 이때부터 칭호에서 빠졌으나, 아직 남아있던 자치령들에 대해서 왕의 지위가 상실된 것은 아니다. 1956년 공화국 성립 전의 파키스탄 자치령 등이 있다.[19] 영연방 원수라는 지위 자체는 선왕 조지 6세 때 신설됐지만 국왕의 공식 칭호에 추가된 것은 이때부터다.[20] 비공식적인 칭호다. 채널 제도에서 관례적으로만 부르고 법적으로는 규정돼 있지 않다. 영국 왕실은 1259년 헨리 3세가 파리 조약에서 노르망디 공작 작위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여왕이어도 남성형인 Duke로 쓴다. 만약 여성형인 Duchess를 쓸 경우 여성 공작이 아니라 남성 공작의 부인으로 오해받기 쉬운 데다가, 원래 노르망디 공작은 살리카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꼼수로 여자가 계승해도 남자인 척을 하는 게 관례화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1967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갔을 때, 프랑스인들이 "여공 만세. (Vive la Duchesse.)"를 외치자 엘리자베스 2세가 "나는 노르망디 공작(Duke)입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21] 비공식적인 칭호이다. 장미전쟁을 랭커스터 왕가의 방계인 튜더 왕가가 전쟁을 매듭지었기 때문에 이후로 랭커스터 공작은 왕의 비공식 칭호가 되었다. 그리고 여왕일 때도 노르망디 공작의 경우와 동일하게 남성형인 Duke를 쓴다.[22] 맨 섬처럼 왕실령인 채널 제도에서 쓰는 노르망디 공작이라는 칭호는 비공식적인 칭호지만, 이 맨 섬 영주(Lord of Mann)은 공식 칭호이다. 참고로 Lord의 여성형은 Lady이지만, Lady라고 하면 영주보다는 영주의 부인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어서 그냥 남성형 Lord of Mann을 쓴다. 그런데 예전 빅토리아 여왕 때는 그냥 Lady of Mann을 썼다. 반드시 성별 무관하게 Lord로 고정시키라는 규정은 없고, 그냥 그때그때 다른 모양이다.[23] 왕위와 달리 영연방 수장직은 세습직이라고 규정된 바가 없다. 영연방의 수장이라는 직위가 생겼을 당시에는 영국이 그래도 강대국이고 영연방이 영국 왕과 영국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조직이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회원국들 사이에 평등한 조직으로 변모했다. 단적인 예로 영연방은 원래 정식 명칭이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였지만 지금은 Commonwealth of Nations로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영국 왕실이 영연방 내 다른 회원국들에 대해 뭔가 우월적 지위를 주장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차기 영국 국왕이 자동으로 영연방의 수장이 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영국 왕실은 영연방 원수직도 세습직으로 명문화하길 바라고 있지만 그게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애를 태우고 있었고, 이후 줄리 길라드 전 호주 총리 등 영연방 주요국 수장들에게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된 후 이 칭호를 승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로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단 2018년에 찰스 왕세자가 즉위할 때 영연방 수장 지위를 물려받는 것으로 영연방 내에서 합의를 이뤘다.[24] 찰스 1세처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이 우연히 일치한 국왕들은 여기에 따로 안 쓰고 다른 경우만 적으면 다음과 같다. =는 동일인인데 나라에 따라 넘버링만 다르게 표현된다는 뜻이다. 잉글랜드 제임스 1세=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 잉글랜드 제임스 2세=스코틀랜드 제임스 7세, 잉글랜드 윌리엄 3세=스코틀랜드 윌리엄 2세 참고로 명예 혁명으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왕이 된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 공화국의 지배자였고, 동시에 오라녜 공작이라는 명목상의 칭호를 썼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도 윌리엄이며 네덜란드어로 빌럼 3세였다. 이는 당시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넘버링이 우연히 일치했기 때문이지 일부러 한쪽이 다른 한쪽에 맞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한 나라가 되고서부터는 계속 잉글랜드의 넘버링만 사용되었다.[25] 엘리자베스 2세를 상징하는 로열 사이퍼(royal cipher: 왕의 이름을 딴 모노그램)는 왕관 그림 밑에 EIIR라는 문자가 붙는 형태다(왕관은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는 성 에드워드 왕관,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 왕관 그림을 사용함). EIIR은 라틴어 Elizabeth II Regina를 줄인 것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영어로는 Queen Elizabeth II)이라는 뜻이다. 이 모노그램은 각종 공문서나 공공 시설에 사용되는데, 스코틀랜드 버전(스코틀랜드 왕관 밑에 EIIR이 적혀 있는 버전)의 로열 사이퍼가 부착돼 있는 걸 보고 격분한 일부 스코틀랜드인들이 강제로 II(=2세) 부분을 떼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에서는 우체통 등 공공 시설물이나 각종 공문서에 스코틀랜드 왕관만 사용하고 EIIR은 아예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26]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었으나 그 다음에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여 총리직에 복귀했다. 그 후 조지 6세가 사망하면서 처칠은 조지 6세의 마지막 총리, 엘리자베스 2세의 첫 총리로 기록되었다.[27] 윌리엄 4세는 스코틀랜드 넘버링으로 따지면 윌리엄 3세가 돼야 한다. 그리고 에드워드 7세와 에드워드 8세는 스코틀랜드 넘버링으로 따지면 각각 에드워드 1세, 에드워드 2세로 불리는 게 맞다. 하지만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는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을 따른 별도의 호칭을 쓰지 않았다.[28] 블러디 메리, 메리 스튜어트[29] 찰스와 앤이라는 이름의 왕은 동군연합 성립(1603) 후에 처음 왕의 이름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양국의 넘버링이 일치한다. 조지와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왕은 양국의 합병(1707) 후에 처음 등장했다. 양국이 합병된 후에는 잉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 같은 칭호를 따로 안 썼기 때문에 넘버링 문제가 아예 생겨날 수가 없다. 그리고 메리의 경우 동군연합 성립 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국에 각각 1명씩 있었기 때문에[28] 동군연합 이후에 등장한 메리 여왕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양국에서 모두 메리 2세라 역시 넘버링이 동일하다.[30] 예를 들어 동군연합 이전의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윌리엄 1세와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1세는 다른 사람, 다른 시기, 다른 나라의 통치자였으므로 넘버링 불일치를 따질 필요 자체가 없다.[31] 헨리 8세 때 마련한 규칙은 호칭을 Majesty=왕과 왕후, Highness=왕자와 공주 등 왕족, Grace=왕족이 아닌 고위 귀족용으로 고정시킨 것이다. 이 규칙을 마련하기 전에는 Majesty, Highness, Grace가 구분 없이 혼용됐다고 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독립국이던 시절 국왕에게 Grace라고 불렀다.[32] 이쪽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스코틀랜드에서 그냥 엘리자베스라고 부르는 것보다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다른 왕족, 고위 귀족에게 적용되는 체계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에서는 따로 왕족, 귀족들 호칭도 다른 방식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영국 해군 함선들의 접두어인 HMS(His/Her Majesty's Ship)까지 바꾸거나 이중으로 적용해야 한다.[33] 찰스 왕세자의 경우는 찰스를 호칭으로 쓰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모두 동일하게 찰스 3세가 되어 별 문제가 없다. 만약 찰스의 부정적 이미지로 찰스를 쓰지 않고 조지를 쓰더라도 이 역시 동일하여 조지 7세로 문제가 없다.[34] 즉위 후에도 윌리엄을 호칭으로 쓸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왕족이 왕으로 즉위할 때 기존에 대표로 쓰던 이름 대신 자신의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도 흔하다.[35] 제왕절개로 태어났다고 한다.[36] 엘리자베스가 태어나기 6개월 전에 사망했다.[37] Princess of Wales 작위의 논의가 나온 적은 있었으나, 이 작위는 역사상 왕세자비에게(Princess of Wales= 웨일스 공비)만 주어진 작위였기 때문에 조지 6세가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38] 이러한 현실을 일찍 자각한 어린 엘리자베스 공주는 남동생이 생기길 기도했다고 한다.[39] 현재는 왕위 계승의 법칙이 바뀌어, 남동생이 태어나더라도 먼저 태어난 공주의 계승 서열이 밀리는 일은 없어졌다. 바뀐 법칙을 처음으로 적용받게 되는 공주는, 엘리자베스 2세의 증손녀인 샬럿 공주이다.[40] 아버지인 안드레아스는 요르요스 1세의 4남으로 그냥 왕자였다.[41] 당시 그리스 왕국은 필리포스 왕자의 사촌 형인 파블로스 1세가 재위 중이었다. 다만 저 시점에서는 독일군이 쳐들어와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된 상태였고, 종전 이후에는 그리스 내전이 터지면서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42] 당장 더 크라운 시즌 1 1화만 봐도 윈스턴 처칠"신랑쪽 가족들이 왜 다 안 왔는지 알아? 전부 나치하고 결혼했거든. 골수 나치하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필립의 누나들은 대부분 독일의 왕공족들과 결혼했는데, 당시 독일 왕족들은 대부분 자의건 타의건 나치당에 가입했고 독일군 장교로도 복무했다. 이는 필리포스의 매형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43] 웃기는 건 앵글로 색슨족만 봐도 알겠지만 영국인들의 기원도 결국 게르만족의 한 분파라는 것이다. 이건 오래전 일이라 그렇다 쳐도 영국 왕실도 원래 독일계인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였지만, 1차대전 때 반독일감정을 의식한 조지 5세에 의해 윈저 왕조로 개명했다.[44] 필립 공의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는 1944년 사망했기에 아예 고인이었다. 때문에 직계 가족 중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어머니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 외할머니 밀퍼드 헤이븐 후작부인 빅토리아가 전부였다.[45] 엄밀히 따지면 에드워드 8세도 마찬가지지만 대관식도 치르기 전에 왕위를 포기하고 퇴위했기 때문에 예외로 친다. 더구나 에드워드 8세는 즉위했을 때 미혼이기도 했다.[46] 영상 속 대관식에서 여왕이 쓰고 있는 왕관은 영국의 공식 왕관인 성 에드워드 왕관이다. 무게가 2.2kg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게 무겁다고.[47]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국 브렉시트 직전에 한 발언이 막판에 탈퇴파들에게 "여왕 폐하께서도 탈퇴를 지지하신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 자세한 것은 아래에 계속 나온다.[48] 영국 국왕은 재가 거부를 통해 이미 의회에서 통과된 법을 거부할 수 있지만 1708년 이후 그런 사례는 없다.[49] 연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수상하면 불법이라는 그 법 맞다. 연어항목 참조.[50] 1973년 정부를 압박해 재산 투명성 법안에서 국가원수를 예외로 하는 조항을 포함시켜 재산 공개를 회피하였다는 보도 국립공원, 도로안전, 토지 임대 관련 법안 수정을 요구했다는 보도[51] 자기가 원하기만 한다면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군대를 전부 움직일 수 있는 막강한 권한도 있다.[52] Auxiliary Territorial Service, 2차대전 당시 영국 육군 여군부대.[53] 당시 영국군 계급과 약간 차이가 있다.[54] 이 여왕 때문에 왕족 여성들도 여군으로 가야하는 규칙이 생겼다고 한다. 샬럿 공주도 영국군 여군으로 입대하기를 권유 받았을 정도라고 한다.[55] Treetop Hotel, 실제로 나무 위에 객실을 만든 호텔이다[56] 굉장히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쪽 등자에 모두 발을 얹고 안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남성들과는 달리, 귀족 여성들은 저렇게 앉아야 고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저렇게 앉는 것이 일반적이었다.[57] 왕권신수설이 횡행하던 시대나 입헌군주제를 시행하던 무렵과 이것을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변화인 셈이다. 즉, '같은 국민이지만 직업이 왕인 것'이라고 직접 인정한 것이다. 영국의 신분제는 참 복잡한데 일단평민과 왕족,귀족의 제도상 특권은 없다. 있는거라면 귀족의 경우 전통적으로 군인이었으므로 사관학교입학시 특례로 입학가능하다는 정도게다가 귀족원과 서민원이 따로 있고 그권한을 마치 미국의 상원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서민원의 의견을 거부할 수 없다. 간단하게 전통이라 없애지 않고 남겨두는거라 귄한이 없다. 게다가 최근 수십년동안 비왕족귀족작위는 수여된적도 없다. 오히러 대가 끊기는 귀족가들이 나온다. 뭐 무슨 소설이랑 역사책에나오는 근대 왕국, 제국같은 느낌으로 아는데 전혀아니다. 그냥 소선거 구제기반의 의원내각제국가다. 국왕한테 허락을 맡네 마네하는데 국왕이 의회에서 통과된 안건을 거부한적이 없다. 거부하면 괜시리 긁어 부스럼이고 그냥 국왕의 권한은 그냥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사석이나 사적으로 말하면 그게 국왕이라서 큰 영향력을 가지는게 전부다. 그마저도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다.전통이 오래되긴 했어도 봉건적이라고 매도하기는 어렵다. 기억하자, 이 나라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왕의 목을 겨누었던 나라다. 게다가 프랑스 대혁명보다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이다. 물론 "귀족 같은 것 없이 국가수반도 일반 대중에서 선출되는 민주공화국에 비교하면 구시대적"이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58] 그런데 다이애나 스펜서에 대한 냉담한 반응은 여왕 본인의 의사보다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요구를 따른 거라는 말이 있다. 왜 그런지는 이 문서를 참고.[59] 하지만 2018년에 턴불은 퇴임했고, 후임 총리 스콧 모리슨은 본인이 근왕파임을 밝혀 일단은 식은 떡밥로그인 필요인 줄…알았으나, 다시 불이 붙었다.[60] 앨버니지 내각에는 공화제 담당 차관이 아예 따로 있다. 3년 간 여론전을 펼친 뒤, 2025년에도 노동당이 재집권한다면 그 때 공화제 국민투표를 다시 밀어붙이려는 것으로 보인다.[61] 영연방 각국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는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가 왕이 될 경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영연방 왕국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62] 이 투표는 2014년 9월 19일 부결되어 대브리튼 연합 왕국에서 탈퇴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자세한 내용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참고.[63] 이 주장을 한 Paul Burrell은 다이애나 스펜서집사를 맡았던 사람이다.[64] 참고로 박정희, 푸틴, 중국의 지도자들 등 위 사진에는 독재자들이 존재함에도, 이들보다 훨씬 왕위에 오래 있다. 심지어 종신직인 교황들보다도 훨씬 오래 즉위하고 있다.[65] 흑백 사진으로 된 사람들은 이미 사망한 사람들인데, 어째서인지 저 짤방이 만들어진 2020년을 기준으로 이미 사망한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흑백 처리가 안 되어있다. 또한 2021년 전두환, 노태우가 사망했다.[66] 교황 즉위 1달 만에 선종했다. 자세히 보면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 사이에 얇은 선이 보인다.[67] 참고로 가스레피는 이탈리아 왕국의 마지막 총리이자 이탈리아 공화국의 초대 총리다.[68] 현재까지 모든 대통령과 역사를 함께했다.[69] 위 그림에는 허정, 고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포함되어 있다.[70] 이쪽도 한국 대통령과 동일하게 모든 독일 총리와 함께했다.[71] 이쪽은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시데하라 기주로 두 명을 빼면 사실상 전후 일본의 모든 총리를 거쳐갔다고 보면 된다. 더 나아가 본격적인 현대 일본의 재건 시작은 요시다 시게루이다.[72] 붕어 전까지 엘리자베스에 비등할 정도로 길게 재위했으나 그가 붕어한 후 엘리자베스가 쭉쭉 치고 올라갔다.[73]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처음 만든 국가다.[74] 그렇지만 과연 가늘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이견이 제기될 수 있다. 소프트파워에 한정하면 엘리자베스 2세만큼의 인기와 카리스마를 가진 국가원수급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 국내에서는 상기 문단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법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75] 친일 작품을 그린 친일반민족행위자다.[76] 2020년 기준 엘리자베스 여왕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군주는 사우디아라비아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1935년생, 88세), 재위 기간이 긴 군주는 브루나이하사날 볼키아 술탄(1967년~, 56년째)이다.[77] 북구까지 포함하면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가 92세로 최장수했었고, 지금은 엘리자베스 2세가 넘었다.[78] 퇴임한 군주 가운데서 최장수한 이는 앙리 대공의 아버지이자 룩셈부르크 전 대공인 이다. 필립 공과 동갑으로 98세까지 살고 2019년에 죽었다.[79] 쇼와 덴노는 엘리자베스가 태어난 1926년에 즉위했다. 부황 다이쇼 덴노가 50도 못 넘기고 일찍 붕어하여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덴노가 되었다.[80] 당해 년도에 여왕의 어머니여동생이 1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81] 해럴드 윌슨 총리가 67, 69대 총리로 두 번 역임했으므로 대수로 치면 15대가 된다.[82]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알렉 더글러스 흄,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제임스 캘러헌, 마거릿 대처[83] 이 중 린든 B. 존슨이 빠졌는데, 이는 존슨이 5년의 임기 동안 여왕을 만날 적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왕 역시 임신 등의 이유로 해외 순방을 이 시기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히 윈스턴 처칠 장례 때 존슨이 욕을 쳐먹은 게 아니다. 자세한 건 처칠 항목 참조.[84] 정작 영국 대중들은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 대신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왕세손이 왕위를 승계하길 바라는 이들도 있다.[85] 더군다나 찰스 왕세자는 최근에 여왕도 걸리지 않은 코로나19에 걸려서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근데 윌리엄 왕세손도 걸렸다.[86] 1954년에 여왕이 공작부인의 차녀의 대모가 되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여왕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87] 12대 파넘 남작인 배리 맥스웰의 부인으로, 2012년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 때는 당시 방광염으로 인해 행사에 참석할 수 없었던 필립 공을 대신해 여왕의 옆자리를 채우기도 했다.[88] 소름끼치게도 공연 몇 달 후 지미 새빌이 발단이 된 연예계의 아동성범죄자 색출 프로젝트 유트리 작전에서 자기 딸 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유죄가 입증되어 징역을 살게 된다. 현재는 Sad satan미야자키 츠토무지미 새빌 같은 인간들과 함께 나올 정도로 아동성애자의 아이콘이 된 상태이다.[89] 뷔르템베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을 기준으로 12촌[90] 빅토리아 여왕, 크리스티안 9세를 기준으로 8촌[91] 182cm. 여성임에도 이 세계 각국의 왕족들 중에서조차 수위권으로 키가 크다.[92] 빅토리아 여왕, 크리스티안 9세를 기준으로 8촌[93] 빅토리아 여왕, 크리스티안 9세를 기준으로 8촌[94] 빅토리아 여왕을 기준으로 8촌[95] 크리스티안 9세를 기준으로 9촌[96] 크리스티안 9세를 기준으로 8촌[97] 에드워드 7세를 기준으로 6촌[98] 빅토리아 여왕, 크리스티안 9세를 기준으로 9촌[99] 프랑스 루이 14세의 72년 재위가 첫 번째, 리히텐슈타인 요한 2세의 70년 재위가 두 번째이다.[100] 한국 시각으로 2022년 2월 6일 16시 30분, 영국 시각으로는 같은 날 7시 30분. 이는 아버지 조지 6세가 1952년 2월 6일 영국 시간 7시 30분에 영국 노퍽 샌드링엄 별장의 침실에서 수면 중에 사망한 채로 발견된 시점으로부터 셈한 것이다. 영국 국왕 자리는 선대 국왕이 승하한 그 순간부터 1순위 계승자가 이어받은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 대관식이나 영국 총리의 즉위선언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101] 공식적으로 정확하게 즉위한 날짜가 기록되어있는 국왕 한정[102] 괜한 논란인 것이, 당시 95세였던 엘리자베스 2세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무리 건강해도 컨디션에 따라서 관절이 쑤실 때인데, 지팡이를 짚는다고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특히나 무릎 수술 이후로 18년 만에 처음으로 지팡이를 짚는다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건강 관리가 잘 되었는지, 신체에 큰 이상이 없는지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103]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필립 마운트배튼 공)께서 작고하기 전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며 "사랑하는 할머니(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결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크리스마스에는 영국으로 돌아가 여왕을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한다.[104] 1992년은 찰스 왕세자의 불륜 폭로가 담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회고록 출간과 함께 이어진 찰스 왕세자 부부의 별거, 앤 공주마크 필립스의 이혼, 사라 퍼거슨앤드루 왕자의 불륜설과 별거, 그리고 윈저성 화재사건 등 각종 스캔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여왕에게는 재위중 가장 최악의 한 해였다.[105] 2021년은 왕실을 탈퇴한 해리 왕자메건 마클의 인터뷰가 방송되면서 1996년 BBC 파노라마 프로그램의 다이애나비 폭로 인터뷰 사건 이후 영국 왕실이 또 다시 큰 스캔들에 휩싸인데다가, 앤드루 왕자가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하는 일이 있었다. 거기에다가 4월에는 여왕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공이 사망했다.[106] 대면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대규모 행사나 업무는 수행하지 않았으며, 비교적 적은 사람을 만나는 소규모의 행사와 업무만을 수행중이었다.[107] 다만 "현재 코로나19 감염 증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는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코로나19 감염과 자가격리 여부에 대한 확답을 피한것이다.[108] 실제로 여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도, 작은딸 마거릿 공주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 신경이 쇠약해진 후, 일상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한 가벼운 정도의 감기 증상을 보이다 사망한 바 있다. 즉, 여왕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아무리 경미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고위험군인 점을 고려해 절대로 안심할 단계는 아닌 것이다.[109] 실제로 불과 1~2년 전 모습과 비교했을 때, 남편 필립 공의 사망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야윈 모습을 볼 수 있다.[110] 영국 왕위계승법에 따르면, 국왕이 해외순방이나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공무 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왕실법에 따라 정한 공식 섭정에게 국왕의 역할을 대신 맡길 수 있다. 21세 이상 왕위계승권을 갖고 있거나 국왕이나 왕세자의 배우자 중 4명을 선정할 수 있다.[111] 엘리자베스 2세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노선이다.[112] 크리스티안 9세의 장녀이다.[113] 조지 3세의 손녀이다.[114] 케임브리지 공작 윌리엄 왕자,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115] 피터 필립스, 자라 틴달[116] 베아트리스 공주, 유제니 공주[117]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 세번 자작 제임스 마운트배튼윈저[118] 에드워드 7세는 성공(조지 5세), 조지 5세는 반쪽짜리 성공(아예 퇴위까지 감행한 데이비드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앨버트), 조지 6세는 성공(엘리자베스와 머거릿).[119] 정확히 말하면 7촌 당숙이다.[120] 타던 보트에서 시한폭탄이 터져 가족, 선원 등과 함께 죽었다. 게다가 바다에서 터져 물고기들이 시신의 살점을 뜯어먹은 바람에 시체는 극히 일부만 찾을 수 있었다. 이 사건 발생 며칠 뒤 IRA북아일랜드 주둔 영국군 기지에 공격을 가하여 영국군 18명이 사망하면서 대대적인 내전 분위기가 된다.[121] 그리스와 덴마크의 글뤽스부르크 왕실 출신으로, 여왕과의 결혼을 위해 계승권을 포기했다.[1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부분의 영국 언론 및 사람들이 에드워드 왕자의 미래는 에드워드만의 일이라면서 그의 이 같은 결정에 공감해주었다.[123] 그래서 결혼식 때 어떤 군복을 예복으로 입느냐가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124] 테러리스트의 목표가 되므로[125] 영국의 경우는 아직도 왕족은 장교로만 복무가 가능하다. 물론, 훈련은 그대로 다 받는다. 영국은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존재하는 국가이므로, 왕족이나 귀족이 장교부터 부임하는 것은 '귀족 이상이 신병으로 오면 분위기가 이상하겠다' 같은 공화정스러운 감상 때문이 아니라 엄연한 신분질서 때문이다.[126] 왕족은 성씨를 따로 표기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꼭 써야 할 경우엔 Windsor를 쓴다.[127] 단, "전하 (His/Her Royal Highness)" 경칭을 쓰는 영국 왕실 일원은 성을 쓰지 않기 때문에, 성을 써야할 일이 있으면 영지 이름을 사용한다. 일례로 여왕의 손자인 윌리엄 왕세손해리 왕자는 군 복무 시 성을 웨일스(Wales)라고 바꿔서 웨일스 대위(Captain Wales)라고 불린다. 아버지 찰스 왕세자가 프린스 오브 웨일스(Charles, Prince of Wales)라 아들들이 이름 뒤에 of Wales를 붙였고, 군 복무 시에는 아예 영지 이름인 Wales를 성으로 대신 사용했던 것이다.[128] 참고로 남편인 필립 공과 여동생인 마거릿 공주도 젊었을 때 미남미녀로 유명했다.[129] 조지 5세의 3남 헨리 왕자의 가문.[130] 조지 5세의 4남 조지 왕자의 가문.[131] 두 사람 다 엘리자베스 2세가 어린 나이에 낳았고, 갑작스럽게 즉위한 어머니로 인해 부모의 보살핌을 많이 못 받고 자랐다.[132] 2012년 기준, 전 세계 음악계 부자 3위.[133] 아들인 찰스 왕세자도 7년 전인 1992년에 노태우 대통령의 공식 초청으로 방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방한은 찰스 왕세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해외 순방은 아니었다. 자세한 것은 이 문서 참조.[134] 이때 한국 사과를 맛보고는 감탄하여 이후 영국에서 매년 한국산 사과와 배를 공수해간다는 이야기가 있다.[135] 당시는 쌍용이 대우의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3분할 그릴을 단 대우 체어맨이다. 당시 대우의 워딩 연구소가 영국에 있었던 것도 영향이 없진 않았었다고 한다. 물론 이 때는 에쿠스가 데뷔하기 4일 전이어서 그 정도 길이를 가진 차가 체어맨 밖에 없긴 했다. 그렇다고 그 나흘을 당긴다고 곧바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136]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가장 큰 차는 다이너스티였다. 에쿠스는 여왕이 방문한 뒤 4일 뒤에 시판된다.[137] 여왕 왼쪽에 있는 사람은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이다. 다만 2013년 9월에 취임했기에 당시에는 위원장이 아니었다.[138] 뛰어내리는 스턴트는 대역이 했다.[139] 이때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개회선언을 했다(몬트리올은 퀘벡 주 최대 도시로 프랑스어권이라 이들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140] 모친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 첫째 며느리 다이애나 비와 동일한 수준. 대처 본인이 장례를 조촐하게 치러달라고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141] 심지어 마이클 페이건은 트로츠키주의자 단체인 노동자 혁명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던 극좌파였고, 후일 마약 관련 범죄로 징역을 살 만큼 정신상태와 가정 환경이 불안정했다.[142] 하지만 침입자인 페이건 본인은 사건 경위를 좀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2012년의 인터뷰에서 페이건은 자신이 침실에 들어갔을 때 여왕은 깨어 있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고 당황한 여왕이 그냥 맨발에 잠옷바람으로 뛰쳐나가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무장조차 하지 않은 집사가 와서 "와 씨X, 이 양반아. 한잔 하면서 진정 좀 해야겠는데(Cor, fucking hell mate, you look like you need a drink)."라고 하면서 그에게 위스키를 한 잔 내밀고 경비를 기다렸다고 한다. 물론 다소 정신이 나간데다가 사건 이후 마약 전과까지 추가된 범인이 낄낄거리며 상스러운 말을 섞어 한 회상이라서 걸러 들어도 상관 없다.[143] 버킹엄 궁전 침입이 완전히 범죄화된 것은 2007년부터였다.[144] 그래서인지 페이건은 후일에도 최대한 이 사건과 관련된 인터뷰를 피하려고 애썼다. 그나마 인터뷰를 해도 어머니와 함께 어쨌든 자신은 엘리자베스 2세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었으며, 그분에게 무한한 존경심도 갖고 있다고 최대 한도로 강조했다.[145] 더 크라운에서는 페이건이 대처 내각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희생자로 묘사되며 정신이 불안정한데다, 불행한 가정사, 삭감된 복지 예산으로 인한 처참한 생활고에 시달린 그가 호소할 곳이 없는 나머지 저지른 일로 나온다. 무성의한 공무원들은 행정 전반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고 고통을 호소하는 그를 무시하면서 "내 일이 아니니 위에 가서 말씀하쇼"라고 말하며 자기 상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페이건을 만난 고위 공무원이 조롱조로 정책이 꼬우면 투표하든가 정 안되겠으면 여왕에게라도 따져보라고 하자 머리가 맛이 간 페이건은 정말로 버킹엄 궁에 찾아간다. 그는 엘리자베스 2세의 침실에 잠입해 대처에게서 우리를 좀 구해달라고 호소하다가,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도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서민들이 겪는 여러 고통을 정직하게 직소한다. 심지어 눈썰미 좋은 페이건은 예산 삭감으로 궁궐 내부의 인테리어까지도 엉망이 된 꼬락서니를 지적하며, 대처를 방치하면 여왕도 곧 정리해고될 거라고 경고한 뒤 정신병자와는 거리가 먼 신사적인 태도로 여왕에게 인사하며 잡혀간다. 처음엔 그저 갑작스러운 침입자에 기겁하기만 했던 엘리자베스 2세도 페이건의 조리있는 호소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이후 페이건을 단순 정신병자로 힐난하는 대처와 서민들의 고통에 대해 진지한 논쟁을 벌인다. 페이건과의 대화내용은 대처 내각의 실태와 악영향을 훌륭하게 정리한 극적 창작이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벨을 몇번이나 눌렀는데 아무도 오지 않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당시의 경비 상태는 제대로 고증했다.[146] 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사망 기사를 쓰나 싶겠지만, 언론계에선 신속한 뉴스를 위해 일어날 확률이 높은 기사를 속보를 위해 미리 써놓는 경우가 많다. (속칭 "가라" 기사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엄청난 거물급의 재판결과는 보통 양쪽 다 써놓으며, 유명인이 투병 중에도 미리 준비해놓는 것. 해당 인물의 정확한 사인이나 판결, 날짜 등은 비워놓고 뒤에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미리 써놓는 것이다. 영화 "슈퍼맨 리턴즈"에서 슈퍼맨이 중상을 입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나자 데일리 플래닛의 페리 화이트 편집장은 "슈퍼맨 죽다"와 "슈퍼맨 살아나다"란 헤드라인이 각각 1면에 실린 신문 판본 두개를 뽑아놓고 대기를 하는데, 현실적인 장면이다. 물론 실제론 신문 전체를 다 뽑진 않고 1면만 프린트해서 보겠지만. 그러다보니 이런 기사를 실수로 송고해 엄청난 오보를 내는 경우가 드물게 생긴다.[147] 실제로 블룸버그는 2008년 8월에 스티브 잡스의 부고 기사를 실수로 올려버린 해프닝이 있었으며, 잡스는 다음달 열린 애플 키노트에서 "제 죽음은 매우 과장되었습니다.(The reports of my death are greatly exaggerated)"라는 슬라이드와 함께 발표를 시작했다.(이는 마찬가지로 사망 오보를 받아본 다음날 기고된 마크 트웨인의 칼럼에서 나온 유명한 말) 다만 여왕과 차이점이라면 이때의 그는 비밀리에 재발한 암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블룸버그는 2022년에도 비슷한 사고를 쳤는데, 우크라이나 위기가 워낙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보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보도를 미리 준비해놨다가 실수로 홈페이지 메인에 송고해버리는 바람에 몇 분간 전세계가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다. 러시아는 이 보도를 가지고 역시 서방 언론이 위기를 키우고 있다며 신나게 언플 수단으로 써먹었다.[148] 이 차량은 엘리자베스 2세를 위해 특별제작한 차량이다. 타고 내릴 때 무릎과 허리를 굽히지 않게끔 맞춤제작되었다. 그러므로 일반 벤틀리보다 차체가 훨씬 높은 편인데, 거의 성인 키 정도 된다.[149] 이 컬러로 칠해져서 한정판으로 판매된 벤틀리 플라잉스퍼도 있다.[150] 1939년 초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첼시 서포터들이 유태인들이 주축인 토트넘 핫스퍼를 야유할 때 로마식 경례를 하거나 스바스티카 깃발을 흔들 정도였다. 하켄크로이츠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미국이나 유럽 각지에서도 이 문장은 그저 행운의 상징으로써 1930년대까지 학교 심벌은 물론이거니와 미 육군 제45 보병사단의 부대마크, 심지어 소련스바스티카 낫과 망치 훈장같이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조합의 훈장을 1922년까지 썼다. 핀란드 공군은 나치와 관계없는 전통 문장이라며 아예 아직도 스바스티카를 쓰고 있다[151] 반면 대통령 중심제 국가들에서는 대통령도 여권이 필요하다. 공화정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국민의 선출을 받기 때문으로, 가령 한국 같으면 국민이라는 고용주가 재계약 불가의 5년 단기 계약직으로 계약시킨 것이며 신분제 국가가 아니므로 외교부 장관도 신하가 아니라 그냥 직장 부하직원이기 때문에 대통령도 외교부 장관의 직인이 찍힌 여권이 필요하다.[152] 술탄인 이븐 아바드의 딸로 알 모라비드한테 세비야가 함락되자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한테 도망가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이사벨로 개명한 뒤 알폰소 6세와 결혼했다.[153] 제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여왕의 외삼촌 퍼거스 보우스라이언의 이름으로부터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장병으로 같은 해인 생후 5개월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154] 이때 여왕과 같이 차에 타고있던 여성이 영국에서 화제가 됐는데 해당 인물은 여왕의 개인 비서인 수잔 허시(Susan hussey) 여사다.[155] 당시 처칠은 1945년 총선의 패배로 잠시 총리직에서 물러났을 때였다. 이후 1951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다시 총리에 취임, 1952년 여왕의 즉위식에 현직 총리 자격으로 참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