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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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역사
3. 효율성
3.1. 긍정론
3.2. 부정론
4. 과정과 성과
5. 사회적 의미
6. 문제점
6.1. 여성에게 방심하는 심리를 악용
6.2. 성폭력 문제
7. 각국의 여군 제도
9. 창작물에서
9.1. 관련 작품
9.2. 관련 캐릭터
10. 영상 자료
11.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여군(, Female Soldier)은 성별여성군인을 의미한다.


2. 역사[편집]


고대의 군대는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졌다. 보통 선천적인 신체적 능력의 격차가 주 이유로 거론되며, 부족이나 국가사회에서 여성의 인구 수가 남성의 인구수보다 더 중요시 여겨졌기 때문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가령 남자들이 절반정도 죽는다 해도 여자들만 무사하다면 인구가 보충되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남자가 부족하면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당연시되었던 일부다처제처첩제, 일부 문화권에서는 형사취수제나 수계혼 풍습으로 보충할 수 있으므로 결국 태어나는 아기의 기대값은 남자가 많건 적건 같다. 그러나 반대로 여자들이 절반 정도 죽는다면 그 왕국이나 국가의 생산력이 절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문명권에서는, 여자까지도 일선에 뛰어들어야 할 만큼 극한의 환경이 아닌 이상 여성을 가능한 한 보호하려고 노력했으며, 전쟁에서 승리했을 경우에도 여자들만큼은 죽이기보다는 포로로 잡아가는 편을 선호했다.

그러나 근대화가 되기 전까지 인류 역사에 있어서 무장세력이 기득권과 권력을 독점해온 것과도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가부장제가 주류를 차지하는 사회내에서 일명 권력 세습과 출세의 사다리가 되는 무장집단에 여성을 끼워줄리가 만무한 것. 신화나 전설을 살펴보아도, 여전사들이 등장하는 아마존은 대놓고 모계사회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도 하며, 성별보다는 신급을 더 중요시 여기던 고대 종교에서 발키리아테나, 칼리처럼 전쟁의 여신들이 등장하는 편이다. 물론 아무리 막는다고는 해도 개개인의 특출난 재능까지 모두 억압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시대나 사회에 따라서 전쟁 및 전염병 등으로 남성이 부족해지거나 여성이 전사로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스키타이 지방의 유물로 보아 실제로 여성이 전사로서 활약한 국가도 존재했던 것 같으며,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전설적인 아마존 여자 민족도 좀 과장되기는 했지만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라는게 정설. 또 인도의 군주들도 여성들로 개인 호위대를 편성했다고 한다. 더불어 중세 서유럽에도 여기사가 있었다. '영광스러운 성 메리 기사단(Order of the Glorious St. Mary)'처럼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기사단은 물론, '자귀 기사단(Orden de la Hacha)(Order of the Hatchet)'[1]처럼 여성이 다수인 기사단도 있었고 그 외의 일반적인 기사단에도 여성에게 할당된 봉직이 있었다.

한국 고대사에도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이자 군인 전사 연수영(淵秀英)이 알려져 있고,[2] 가야 지역에서는 20~30대 여성의 골격과 함께 무기가 함께 출토된 무덤(김해 대성동 고분군, 김해 예안리 57호분)이 있어서 여군 부대의 존재와 관련된 연구가 강하게 진행 중이다. 또한 조선시대 제주도에는 예청(女丁)[3]이라는 여군인이 있었다. 다른 문화권에 비해서는 중국과 더불어 여군이 적은 편이다. 행주대첩의 치마 이야기조차 사실이 아닐 정도다. 남녀유별을 강조하는 유교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며 송시열과 같이 북방의 강인한 지역 출신 여성의 군대를 만들자는 주장도 잘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여장부가 거의 나오지 못했을 뿐더러 심지어 6.25 전쟁에 참여한 여군 용사조차 한국에서는 기가 세다는 식으로 푸대접을 받았다.

의외로 초한지에도 여군 부대가 나온다. 항우유방을 형양성에다 가둬놓고 포위해 놓았는데 이 때 기신이 고대 중국사에서는 희귀하게도 여군 부대를 편성했다. 기신은 본인이 유방의 갑옷을 착용한 상태로 이 여군 부대 2,000명을 이끌고 나가서 항우에게 자신이 유방이라고 속이고 항복한 틈을 타 진짜 유방을 도망치게 했다. 결국 군인을 이끈 지휘관인 기신은 항우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다.

전쟁이 많았던 전근대 일본에서도 겐페이 전쟁토모에 고젠이나 센고쿠 시대이이 나오토라, 카이히메, 이케다 센[4] 등 여성 무장들이 활약했다. 공성전 등에서 여성들이 나기나타 같은 무기를 들고 활약하기도 했다. 근대에도 보신 전쟁에서 아이즈 번의 야마모토 야에[5]가 소총을 들고 활약하거나, 아이즈 번 여성들이 신정부군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으나 패퇴한 기록도 남아있다.

베트남에서는 쯩 자매라는 한나라에 대항한 그 위상을 잔 다르크에 비유할 수 있는 여걸이 국가적 영웅으로 지금까지 존경받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의 선전화 중에서는 총을 들거나 매던 어머니의 모습까지 그려진 것도 있다. ##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지키던 부대 가운데에도 여군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무함마드를 구한 이가 바로 그의 고모[6]인 사피야 빈트 압둘 무탈립이였는데, 그녀는 말을 타고 반(反) 무함마드군을 손수 로 쏴 죽였으며 아예 여군으로 구성된 부대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부대의 대장인 누사이바 빈트 카압은 전설적인 여장부이며, 이 부대의 용사인 아스마 빈트 야지드는 9명이나 되는 반무함마드군들과 정면으로 싸워 쓰러트려, 무함마드도 칭송한 바 있다. 덕분에 한참 후, 아랍 에미리트군이 여군을 받아들일 때 이슬람 보수파가 이를 극렬하게 반대하자, 찬성론자가 "여군 창설에 큰 기여를 한 셰이카[7] 파티마도 있고, 꾸란이나 역사에서도 무함마드를 도운 여군이 나오는데 뭐가 안된다는 거냐?!"고 반론해서 보수파들은 닥버로우 탔다.

현재 서부 아프리카 베냉 공화국에 있었던 다호메이 왕국에서는 이른바 다호메이 아마존이라 불리는 여군 부대가 있었다. 다호메이 아마존은 외부인인 서양인들이 부른 이름이고 진짜 이름은 미노(혹은 '아호시')였는데, 총 인원이 6천 명에 달했고 덴마크와 미국에서 수입한 최신 라이플로 무장했으며 가시덤불을 향해 돌진할 만큼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8]링크

다만 발키리나 아마존은 전설 속의 이야기이며, 어느 정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당 부분 과장과 허구가 덧붙여져 만들어진 존재들이고, 실제로 고증이 가능한 여전사들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출난 여전사에 대한 기록은 역으로 생각하면, 전투의 주체는 대부분 남성이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여전사가 그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것은, 그 밖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여성들이 드물었다는 것을 뜻하니까. 그리고 전쟁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의 성비를 단순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

역사에 기록되어있는 여군의 예는 실제로는 군인이 아니지만, 상황이 급박한 나머지 여성들까지 동원돼서 보조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정말로 직접적인 전투를 행한 경우는 모두 특이하고 예외적인 것이다.[9]

특히나 해군은 여군이 더더욱 존재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뱃사람들은 배에 여성을 태우는 것을 불길하게 여기는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미신이 아니더라도 당시 배를 타고 항해하는 행위 자체가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으며 남녀를 장기간 배 안에서 혼숙 동거시켜야 했기 때문에 여성에게 뱃사람의 일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예외는 있어서 해적 앤 보니메리 리드는 손도끼를 능히 휘둘러 굵은 밧줄을 단번에 잘라버릴 수 있었고 중국의 해적두목 칭시(鄭氏)(Ching Shih)는 싸움이 일어나도 남자에게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로 억세고 힘이 셌다고 한다.

파일:EcaterinaTeodoroiu.jpg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루마니아 왕국군 보병장교로 참전했던 에카테리나 테오도로이우. 1916년에 입대하여 여러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루마니아 제1급 군사공로훈장을 수훈했다. 1917년에 머러셰슈티 전투에서 소대원들을 이끌던 중 독일 제국군 115사단의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사망 시 계급은 소위. 현 루마니아 20레우 화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역사상 여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역시 역사상 최악의 싸움인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로, 많은 여자들이 각국에서 본토를 위해 자대에 입대했지만 소련의 여군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여군이 후방에서만 일했다. [10] 미국적십자 소속 간호사들이나 WAVES[11]를 창설하여 위문공연을 펼치고 환자들을 돌보는 등, 철저히 후방지원 임무에만 투입했다. 그 때문에 일선의 미군 병사들은 '귀여운 여군'이라는 노래까지 만들어져서 여군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중국소련과 거의 동일하게 마오쩌둥의 지휘를 받는 팔로군에서도 여군이 활약을 크게 했다. 속담에 "여자가 하늘 반을 받친다."라고 말하는 것이 빈말이 아닌거다. #

그러나 상황이 암울하던 영국에서는 레이더 기지 오퍼레이터와 대공포, 방공기구를 다루는 방공포병으로도 활약했다.[12] 前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13]공주 시절, 부왕 조지 6세가 재위하던 2차 세계대전 당시 WATS라는 지원 부서에서 트럭 운전이라는 보직을 받고 활동했다(중위로 입대해 대위로 전역). 물론 다른 군인들과 똑같이 대우받았다. 덕분에 먼 훗날 니콜라 사르코지프랑스 대통령은, 재임 시절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행사에 엘리자베스 2세를 초청하지 않은 것 때문에 사방에서 갈굼당했다.(…)

그리고 일본은 패망이 가까워졌을 때 '1억 총옥쇄'라는 광기의 본토결전 작전을 계획하고 전 국민에게 죽창들게 했다. 어린 여학생들이 죽창을 들고 있는 사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물론 미군원자 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고 소련이 침공하자 미군이 본토에 상륙하기 전에 항복해 버려서 1억 총옥쇄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지만. 이미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 여학생은 히메유리 학도대라는 이름으로[14] 위안부 겸 전선에 내몰렸다. 정작 일본군에는 여군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간호사 등의 몇몇 직종이 군속으로 채용되었을 뿐이었다.

소련은 여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투병으로 활약한 유일한 국가다. 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공산당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전부 징집대상에 포함했다. 여성 저격수들이 독소전쟁에서 크게 활약했고, 전투기 조종사[15] 전차병, 탱크 부대 소대장도 있었다. 제46근위야간폭격비행연대는 병기계원부터 조종사 및 정비병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여성들이 운영했다. 연대원 중 23명이 소비에트 연방 영웅이 되었다. 다른 여군들은 육군에서 복무했다. 1943년 기준 소련군의 여군 병력은 약 90만 명까지 늘었고, 이는 전체 소련군 장병의 1/10에 달하는 수치였다. 다른 남군 장교들은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힘든 일을 감당할 것을 기대했으며, 여군들도 자기들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남군들에게 입증하기 위해서 더 위험한 일을 맡겠다고 자원하는 일이 잦았다.

90년대 들어서는 미군을 중심으로 여군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걸프전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이버전, 정보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여군의 비중을 늘리는데 일조했다.

21세기에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라는 정신 나간 놈들이 등장하고 시리아 정부, FSA, 쿠르드족이 여군들을 전투병으로 최전방에 배치해 활용하면서 이들의 활약상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3. 효율성[편집]



3.1. 긍정론[편집]


냉병기 주류였던 고대~중세에는, 여성 전사가 없었던건 아니었지만 그 효율이 빈약했다는 말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고대~근세의 아시아권은 징병제가 많았다. 징집제 국가에서는 위에서 말한 생산력의 문제로 인해 거의 100% 국가에서 막았다. 그리고 현재에야 여자들 중에도 군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지만, 죽음이 일상 가까이 존재하던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군인, 정확히 말해서 병사는 기피대상이었다. 그 유명한 스위스 용병만 해도 땅이 험해서 살아갈 방법이 없다보니 용병이 생업이었을 뿐, 다른 나라의 백성들은 용병이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도 병역을 피하기 위해 양반이 되거나 스스로 거세를 선택할 정도였다.

고대 우크라이나를 주 무대로 삼았던 사르마티아가 여군 사병을 운용했고, 당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남긴 기록[16]을 보면 사르마티아 여성들은 남성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옷차림을 했고, 결혼한 후에도 남편과 같이 사냥이나 전쟁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발굴된 유물들도 사르마티아 여성들이 사회생활과 군사 작전에서 적극적, 능동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고, 전사자들을 매장한 무덤 유적지에서는 여성들의 무덤이 꽤 큰 규모로 확인되기도 했다.

그리고 현대인의 관점으로 봤을 때 골 때리는 관습이 하나 있었는데, '여자는 전장에서 남자를 죽이기 전까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사르마티아는 여군을 단순한 경호원 정도로 운용했던 게 아닌, 완전한 전투원 취급을 해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사르마티아의 거주 지역의 주변 정세가 너무나 척박하고 가혹했으며, 전투 방식 또한 근접 박투가 아닌 기마 궁시가 대부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여성이 전사로서의 역할을 요구받은 사례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재 중동에서 운용되고 있는 쿠르드 여군의 경우,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내전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발흥으로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지자 쿠르드군과 FSA, 시리아 정부군까지 차례대로 여군을 전투병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쿠르드 여군들이 전투현장에서 남군들과 똑같이 전선에서 활약하고 전과를 올리는 활약상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여군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재고하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이는 여성들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는 쿠르드족의 절박한 사정과 상대인 이슬람 국가의 교리 상 여성에게 죽으면 사후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정을 받고 있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들의 여군처럼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서 전투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미군도 전 병과에 여군 문호를 개방하면서 "올 테면 와라. 대신 시험 볼 때 봐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 군에서 차지하는 여군 비중은 줄겠지만, 애초부터 군인이란 복무 중 다치거나 하여 보훈 차원에서 계속 복무를 허가하는 경우가 아니면 운동선수급의 체력 등을 요구하는 엄연한 특수 직종이므로 당연히 신체적으로 한계가 있는 이들이 적게 들어올 수밖에 없는 건 원래 당연한 것이다. 여성의 신체적 특징 운운하고 이를 반영해 신체 등위 등을 낮춰서 뽑아달라는 것은, 군인 선발 시 장애인 특별전형도 도입하란 소리나 다를 바 없다. 차라리 사회에서의 여성특별전형이 낳는 폐해는 그저 사회의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국가예산이 낭비되는 정도에 그치지만 군대는 잘못 만들어두면 전쟁에 패배해서 나라가 점령당하는 집단이다. 해당 국가와 민족의 생존에 직결되는 집단인만큼 군사적 효율보다 정치적 입김이 우선될 여지가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차라리 그런 약한 남녀들은 군수공장에서 근무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이 그렇게 했다.

일각에선 비전투병과는 체력적인 요소를 적게 요구하고 여군을 이쪽에서 많이 뽑으니 문제없다고 주장하나, 이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법무나 의무, 군종 등 특수병과가 아닌 이상 기술행정 병과라도 일상적으로 하는 전문 업무분야가 그쪽이라는 뜻이지, 전투에서 아예 배제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주둔지에 대한 공격이 있거나, 전투병 충원이 어려울 경우 등엔 얼마든지 특히 보병 전투를 보조하거나 직접 치러야 하는 건 기행병과도 마찬가지다. 괜히 기행병과 뽑는다고 체력 기준 낮춰 뽑지 않는 게 아니다. 게다가, 기행병과가 여군만 뽑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남성들도 다수, 그것도 절대숫자로는 훨씬 많이 뽑으며, 이들은 엄연히 선발 및 양성 과정에서 체력 점수가 병과 선발에 반영되는 경쟁을 겪고 뽑힌 이들이다. 시작부터 남녀불문 기행병과 선발 시에 체력을 적게 요구하는 게 아닌 한, 여성에 한해 체력 기준을 낮추는 건 상기 언급한 대로 여군에 대한 입지만 좁히게 될 뿐이다. 후술하듯, 현역 국군 여군들 역시 많은 수가 여군을 많이 뽑는답시고 신체 및 체력 조건을 낮추는 것을 여군의 입지만 약화시킨다며 반대하고 있다.

물론 현대전에서 '전투원' 으로써 활약하는 여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 최초의 여성 전차장, 알렉산드리아 사무센코의 경우, 독소전쟁 중에 전차장으로 임명 되었으며 이후 전차대대의 대대장으로 진급했다.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는 스페인 내전겨울전쟁에서 신체능력을 100%전투에 활용해야 하는 보병 소대의 일원 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여러대의 독일군 전차를 격파 했으며, 마지막까지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의 심장 베를린을 70km 앞두고 전사 했다. 즉 단순한 후방지원이나 비전투 임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는것. 소련은 타국 여군들에 비해 유독 이러한 여성 전투원들을 꽤나 많이 배출 했다. 물론 저정도의 여성 전투원이 일반적으로 많았던건 아니지만, 여성 전투원이 적지 않았다는것 자체는 사실이다.


3.2. 부정론[편집]


중세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여권이 강했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걸출한 활약을 보인 여성 장수들도 배출했고, 높은 지위의 여성을 경호하는 여군부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여성은 후방에서 물자지원이나 남성들의 보조나 호위대, 군을 부리는 위치인 장수가 있었지 일선에서 직접 치고받는 병력으로서는 주력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물론 화기가 발명되고 나서부터는 전투력 차이는 줄어들고 있는 편이며, 특히 러시아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저격수 부대 같은 경우 남성 뺨치는 전과를 올린 경우가 있기도 하다. 다만 선천적인 체력의 차는 어쩔 수가 없어, 많은 국가에서 여군들은 여전히 보병보다는 보급 등의 후방 임무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나면 여성들도 징집돼서 공장에서 보급품을 만들어내거나 기초 훈련을 받고 후방에 배치되어 방범을 한다. 그래서 징집 대상이 아닌 여성도 (비록 조건부이긴 하지만)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화승총이 발명된 중세 말~근대 초에는 여전히 중세식 냉병기가 주류였고 여기에 화기가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정도라서 '앞에서 창 들고 힘쓰는 남정네들' + '주변에서 총 들고 도와주는 남정네들' 구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17] 이후 차차 부대에서의 총기 지분을 높여가며 테르시오 방진 등 여러 차례 전술의 개량을 거쳐 최종적으로 라인배틀 전술이 확립됐기 때문에, 사실상 현대 이전까지는 군대에 여성이 낄 자리 자체가 별로 없었다. 죄다 진형전투라서 현대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집단성과 통일성이 우선돼야 하는데, 혼성부대가 되면 신체적으로 부족한 여성은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자면 단성부대, 즉 여성으로만 구성된 군대를 창설해야 했는데, 이러자니 당시에 자주 벌어지던 백병전을 하기엔 전투력도 남군보다 딸리는데다 인구 증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들을 대거 징집해야 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여성이 낄 자리라고 한다면 요리나 빨래, 약간의 소모품 수송 같은 비전투적 임무들일 뿐이었다.

견인포나 공병부대처럼 더 무거운 물건을 다뤄야 하는 부대도 많다. 북한에서 김정일이 여군을 포병으로 배치해봤으나, 힘이 부족하여 장전이 어렵고 명중률까지 떨어져 분노했다는 일화가 있다.

심지어 저 말도 차별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자남자보다 태생적으로 체력과 완력이 약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여성의 육체는 안정적이긴 해도 근력은 결코 강하지 않다. 물론 여성도 군인이 될 수 있고 남성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체력적으로 약하다.[18][19]

현대전은 냉병기가 아니라 화기로 싸우므로 남녀의 차이가 적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일 뿐, 총도 들고 행군해보면 무겁다. 힘이 좋으면 탄창이라도 몇 개 더 들고 다니고, 분대 기관총 탄약이라도 추가로 들어줄 수 있고 수류탄이라도 더 멀리 던질 수 있으며 이게 다 전투력과 연관된다. 전면전에서 가장 이상적인 군인이라 할 수 있는 해병대원들이 근육 빵빵하고 덩치 큰 사람들이 절대 다수라는 걸 생각해보자. 애초에 이건 군대에 갔다오지도 않은 미필이나 할 소리다. 군인이 하는 일은 단순히 가만히 앉아서 총만 쏘는 게 아니다. 각종 훈련들을 생각해보면 힘이나 체력이 안 필요한 게 없다.

예를 들어 미국 해병대에서 2015년에 300명의 남군과 100명의 여군을 대상으로 9개월간 수행한 실험에 따르면 뉴스기사-영문압박주의, 여군이 포함된 팀은 체력적 열세 때문에 69%의 가상임무에서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군은 중화기를 동반한 행군 속도, 험지 돌파 능력, 사격 정확성, 임무 수행중 부상률, 부상병의 후송 등에서 현저한 열세를 보였다. 다른건 몰라도 부상병 수송은 정말 큰 문제인데 아무리 여자를 동급의 군인으로 쳐주려고 한들 남성 군인 자신이 다쳤을때 다친 자신의 몸+장비+무기를 합치면 100kg이 넘는데 그런 무게를 잠깐이나마 들어서 적어도 엄폐물 뒤로라도 숨겨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자기 등 뒤를 맡기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군이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전투병과는 항공기나 차량 등을 조종하는 등 몸으로 구르지 않는 병종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여기도 만만한 게 아니다. 대형 차량은 돌리는 데도 완력이 요구되고, 정비 등에 있어서도 힘이 들어가는 구석이 많다. 하다못해 전차에 포탄 실어야 하는 것도 육체적 힘이 요구되는 노가다다. 그나마 정비요원이 따로 있는 항공기의 경우는 낫지만, 대신 항공기 사고가 날 경우 치사율은 거의 100%에 수렴한다. 특히 전투조종사의 경우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신체적 능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엄청난 중노동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탈것을 정교하게 조종하기 위해서는 의외로 상당한 근력을 요하며, 특히 중력가속도로 인해 신체에 가해지는 압력도 전신으로 버티면서 모든 걸 해내야 한다. 여군 조종사가 최근에 많아지긴 했지만, 이곳도 극단적인 남초라는 점은 당분간 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군 함정 역시 열악한 거주성은 둘째 치더라도, 바다에 떠 있는 것 자체가 10만 톤급 항공모함이나 아예 그냥 놀기 위해 탄 여객선이라도 육지에 비하면 엄청난 체력적, 정신적 인내심을 요구한다. 게다가 배 위에서 힘을 써야 하는 일도 생각보다 많다.[20]

또 다른 이유로, 전투 중 여군 전우가 죽거나 다치는 등 험한 일을 당하면 그 여군이 소속된 남군 분대원들은 남성 전우가 죽었을 때보다 심리적인 충격을 훨씬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효율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반응이 아니며, 이 조사 결과는 다른 곳도 아닌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는 이스라엘에서 나온 결과였다.#[21] 그래서 이스라엘군은 창설 직후 여군을 최전방과 전투병과에서 일제히 철수 시키는 법령을 발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할 정도로 지상군이 부족하게 되어 끙끙 앓아오던 이스라엘군은 어쩔 수 없이 1985년부터 여군을 다시 전투병과에 배정하기 시작했고, 2000년 이스라엘 여성 평등권법의 병역 부분이 개정되면서 남녀 혼성 전투부대로 유명한 카라칼 대대를[22] 창설함과 동시에 다시 여군을 최전방으로 배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전투병으로 분류되었음에도 과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스라엘군은 비교적 최전방일 뿐, 여전히 여군들을 완전한 최전선 및 격전지에 배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 혼성부대들은 요르단 계곡의 국경 순찰에 주로 배치된다.# 천하의 이스라엘군[23] 마저도 이러할 진데, 타국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현존하는 모든 국가들은 비전투 병과면 모를까 전투병으로서 최전선에 여군을 배치하진 않으며, 역사적으로도 전투병으로서 최전선에 배치된 여군 사례는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마지막이었다. 이 때문인지 여군이 전투 병과라고 해도 직접 얼굴을 마주칠 일이 드문 병과나 장교의 경우 지휘관보다는 참모부에 주로 배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계급의 장교는 직책이 참모일 경우 소대장대대참모가 되듯이 지휘관일 때보다 단위가 높은 부대 소속이 된다.

전장 환경의 변화와 장비의 경량화, 과학적인 훈련 체계[24]의 도입 등에도 불구하고, 전쟁시 가장 많은 숫자가 필요한 일반 보병의 영역에서는 여군의 전투력이 비교적 뒤떨어지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여성 전투병과 복무를 시행중인 영국에서 2014년 시행했던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비전투 부상율이 높고 전투 효율은 떨어졌다고 한다.

장비의 경량화를 대안으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결국 경량화된 만큼의 장비를 추가하게 되므로 최종적으로 보병이 부담하는 무게는 실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한 장비의 무게가 기존의 1/2까지 줄어들면 "그럼 이제 장비를 2배로 들수 있겠군?" 하고 2배로 들려준다. 신체적 이유 등의 문제로 더 얹어주고 싶은데 못한 것이지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준 것이 아니다. 사실 가벼워진 만큼 더 강한 총, 더 많은 탄약을 들 수 있다면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볼 건 별로 없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장비가 점점 늘어나다보니, 군장의 무게는 오히려 점점 무거워지는 추세. 달리 강화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세계 각지에서 개발에 미친듯이 몰두하는 게 아니다.

간단한 예로 들자면 고대 로마 군단병의 군장은 대략적으로 갑옷과 무기, 간단한 식량 등을 합했을 경우 30kg 전후 정도였다. 이후 15세기 조선군 갑사의 채용 요건이 대략 20kg 정도의 갑옷과 이외의 칼, 활, 화살 등을 메고 100보 뛰기였다.[25] 칼과 활, 화살의 무게를 합치면 대략 30kg 전후반 정도이다. 또한 현대 한국군의 군장 역시도 방탄복을 포함한 완전군장의 경우 대략 30kg 전후 정도이다. 즉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일반 보병이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지고 다니는 장비의 무게는 30kg 전후이다.[26]

결론적으로 신체능력을 요구하지 않는 분야에서의 효율성은 동일하며, 보병, 포병, 기갑 같은 힘쓰는 전투병과로 한정하면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 여군이다. 군인이라면 전투병과이건 기행병과이건 군인으로서 당연히 적과 싸우면 이겨야 하며, 체력이 열세하다면 적을 마주할 확률이 높던 낮던 어쨌건 죽을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전 중에도, 많은 경우 투입 가능한 전투 병력이 적다면 기행병과 장병들도 당연히 전장에서 소총수로 작전에 투입되며, 따라서 전병과 전투 요원화 교육 등이 진행되기도 한다. 군인은 버스운전사도, 비행기 운전사도 아닌 '군인'이다. 단지 각자 좀 더 잘하는 분야(즉 병과)가 있는 군인일 뿐.

여기까지 읽으면 알겠지만, 결론적으로 여군의 효율은 남군의 효율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현대전의 양상은 총력전인데, 총력전에 있어서 전장에서 뛰는 군대만 전쟁을 수행하는 게 아니다. 군대의 전투력은 보급에서 나오며, 그 보급을 공급하는 게 전시체제 하의 시민들이다. 굳이 비효율적인 전투수행원으로서 참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성 또한 국방에 있어 후방 생산인력으로서 남성 못지않게 기여할 수밖에 없을 테니[27], SF 영화에 나오는 강화복 같은 게 도입돼서 여군의 효율이 남군과 동등해지지 않는 한 체력적인 측면에서 남자에게 밀리지 않는 소수를 제외한다면 여군(전투 수행원)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

파일:gundaeHP.jpg
대한민국 여군 체력 기준. 대한민국 초등학생 체력 검정표.
지원자격
연령
 임관일자 기준 만 18세 이상 27세 이하자
 ※ 예비역은 응시연령 상한 연장
  1) 2년 이상 : 3세
  2) 1년 이상 2년 미만 : 2세
  3) 1년 미만 : 1세
신체
 남 : 161cm이상, 46kg이상
 여 : 152~183cm, 44~87kg[28],
대한민국 국군 신체 기준.

사실 이건 여경같은 국가직 공무원 체력 검정표가 죄다 이런 식이라 여군 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찌되었던 이 기준대로면 최소한 우리나라 국군 기준으로는 초등학생보다 체력이 약해도 군인을 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저기 나온 불합격 기준에 해당하는 남성은 '병'으로는 잘만 받는다. 병사야 간부보다 책임져야 할 범위도 적고 의무복무라는 면에서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최소한 병보다 나아야 할 간부 기준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두 번 다시 없을 극단적인 사례인데 1997년, 육군사관학교에서 여자생도를 선발하기로 하면서 입학전형으로 체력검정을 실시했는데 당시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던(일반대학이었다면 98학번) 이들의 후일담으로는 매우 꼴사나운 광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원래 처음 시도되는 과정이야 프로토타입 같은 시행착오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지만, 이때는 해도 너무 심했다는 것.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 지원자를 보낼 때 그동안 남학생들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단순히 학업성과만 보지 않고 체육교사, 교련 교사들이 실제 군대생활을 견뎌낼 만한 체력과 정신력이 갖춰졌는지를 살펴보고 보냈지만 이런 노하우가 없었던 일반 여자고등학교에서는 그랬던 경우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었다. 즉, 공부만 잘하는 저체력 여학생들을 뭣도 모르는 여선생들이 '육사 여생도 첫 기수 배출'이라는 타이틀에 매달려 체력과 정신력에 대한 검증없이 마구잡이로 지원보내는 바람에 체력검정이 실시되던 날 수많은 여학생들이 뛰다가 중간에 퍼져서 컷트라인에 도달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리는 추태가 벌어진 것.[29]


4. 과정과 성과[편집]


공산주의는 모든 인민의 평등을 주장했기 때문에 공산권 국가들은 양성평등을 매우 강조했으며, 또한 공산권 국가의 중심인 소련중국은 일단 생길 때부터 온갖 내전과 세계대전을 2차례 겪으면서 온 나라가 만신창이가 된 암울한 현실상, 여성 징집이 불가피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의 여군은 크게 활약하였고 특히 여성 항공기 조종사들[30]저격수들의 업적이 상당했기 때문에.[31] 덕분에 현재에도 서방 국가보다 여군이 크게 발달해 있으며, 여군이 방공군과 저격수와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고 있다.[32] 때문에 자본주의권 국가보다 여군이 발달했으며 그 영향으로 공산권 국가들에서도 여군을 적극적으로 편제하기 시작한다. 다만 2차 세계대전에만 징집대상으로 여군을 발탁했고 이후는 여군 대다수가 신속하게 퇴역, 지원자만 받게 됐다.

군이나 경찰, 정보기관 등에서 운용하는 특수부대에서 여군은 (특히 상대적으로 마초적인 남성 우월주의 분위기가 만연한 지역에서) 제압 대상인 테러리스트나 용의자 등의 경계심을 떨어뜨려 기습 제압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 군인이나 게릴라 전투원이 되는 경우 성별을 초월해 동등한 역량을 가진 구성원으로 인정받겠다는 욕구가 강한 데다, 남성의 경우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자라 하더라도, 한편으로 기혼 남성의 경우 자신의 사망 이후에 가족들이 겪을 고초 등을 생각하면 약해지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 적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요즘에도 육체적 고통에도 잘 버티다가 가족 이야기(살아서 자식들 얼굴은 봐야 할 거 아냐 등등) 나오면 무너지는 남자 군인들이 적지 않은데, 남자가 완전히 가정을 책임지던 1960년대라면 그러한 경향이 더 심했을 것이고, 반대로 그 당시 여성의 경우 자신이 죽더라도 남은 가족들이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져 고통 받지 않으리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독일의 대테러부대 GSG-9도 여러 번의 실제 대테러작전을 겪으면서 나온 경험으로 남녀 혼성 테러리스트 제압 시 여자를 먼저 쏘라는 내부지침을 갖고 있다. 이것은 가부장적 남성 우월적인 분위기를 가진 중동 지역 출신들이 대부분인 테러리스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함인 이유가 가장 크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자신의 경호부대를 만들 생각을 했는데, 그때 리비아에 있던 구 동독 정보원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충성심이 강해서 쉽게 배신하지 않습니다."라는 제안을 했고, 카다피는 이 충고를 받아들여서 여성들로만 구성된 아마조네스부대를 창설했다. 그리고 이들은 30년 동안 카다피의 충실한 친위대 역할을 했다. 사실 여성 친위대는 고대 인도 왕실 등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 되었다.[33]

다만 왕비나 왕녀 등 여성의 경호 업무를 남성에게 맡기기가 난감해서 여성을 썼을 뿐이다. 당장에 그 카다피도 자신의 경호 여군들에게 형형색색에다 다양한 디자인의 제복을 입히고 자신의 경호를 맡게 했으니 이쪽부터가 순수하게 '충성스러운 경호 병력'으로서만 여군을 활용한 게 아닌 듯하다. 본인부터가 세계에서 워스트 드레서라고 극찬을 받는(...) 패션리더였으니 어쩌면 순수한 미적 감각으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그가 도피 중이던 시절에 그에게서 성적 학대를 받았다는 여군 친위대의 주장이 속속 등장하면서 확인사살. 그리고, 리비아 민주화 운동이 터졌을 때 카다피의 경호 여군들은 시민군에게 잔혹한 성고문강간을 당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5. 사회적 의미[편집]


유사이래 군사조직, 인간사회가 행사할 수 있는 무력은 남성에게 편중되어 운용되었다. 총력전 개념이 도입된 양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여성의 전쟁에 대한 기여도가 극히 제한적이었으나 양차 대전에서 대량의 전투원이 전장으로 파병되고 그 빈자리를 여성의 노동력이 메꾸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 기반이 열리기도 하였다.[34]

근대국가는 대부분 전쟁과 이를 수행한 군사조직의 지원을 바탕으로 수립되었으며 당장 대한민국만 해도 외부 군사세력이 독립을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고 5.16 군사정변은 한국 사회의 현재 양상을 결정한 것이나 다름 없는 이벤트였다. 현재도 안정된 선진국 반열에 들지 못한 많은 중진국들은 군부가 나서서 특정 세력이나 사회체제를 지지하거나 때로는 뒤엎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군사조직에 여성의 존재감이 적은 것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체계가 지속 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만약 하나회의 구성원 중 30%만 여성이었어도 제5~6공화국에 걸쳐 요직을 독식했던 주요 인사들 중 상당수가 여성이었을 것이다.[35]

화기의 보급과 기계화의 영향으로 여성이 군에서 종사하는 범위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국지전을 수행중인 미군은 전투원까지 여군의 참여를 시험해보고 있지만 미국처럼 성평등 의식이 발전된 나라에서조차 체력 등의 문제로 인해 여군의 비율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6. 문제점[편집]



6.1. 여성에게 방심하는 심리를 악용[편집]


베트남전에서는 월맹 측에서 미군 장병들이 여성이나 어린이에 대한 배려심이 깊다는 걸 악용해서, 이들을 훈련시키고는 게릴라전과 기습에 주로 활용했다[36]. 이들은 특히 어린이들을 소년병(!)으로 활용했다. 결국 미군이나 참전 연합국들은 여성이나 어린이들이라고 봐주지 않고 쓸어버렸고, 당연히 월맹 측은 정치공세용으로 쏠쏠하게 잘 써먹었다.

거기다 이러한 일이 자주 벌어지면서 모든 베트남인들을 몽땅 적으로 여기는 풍조마저 생겨났다. 여기에 미군의 막장화,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까지 겹쳐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다발하게 된다. 결국 정치적 논리에 민간인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꼴이다.


6.2. 성폭력 문제[편집]


성폭력 문제는 각 국가의 군대마다 여군이 많아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미군의 경우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크게 터지고 있다. 미군의 경우는 미국 제대군인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 여군 중 30%가 강간(성폭행)을, 71%를 성적 공격(성추행), 90%가 성적 괴롭힘(성희롱)을 당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

당연히 한국군도 예외는 아니라서 여군에 대한 성적 괴롭힘이나. 이러한 경우 오죽하면 육군 헬기 조종사로 복무했던 피우진 예비역 중령의 회고록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도 이 내용이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군 당국의 구시대적 사고도 문제인데, 2011년 9월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군 당국에서 펴낸 초임 여군 생활 안내서에 여군이 성희롱을 당했을 때, "혹시 제가 오해를 한 것 때문에 기분 나빠하실까 걱정이 되지만… 물론 대대장님께서는 저를 아끼시는 마음에 나쁜 의도가 전혀 없으셨겠지만,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라는 식으로 대처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한국군 고위층의 성범죄에 관한 인식이 썩은 것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지만, 계급차로 인해 인간의 모든 계급이 갈라지는 한국 군대 자체의 문제로도 보는 편이 옳다. 군생활이 일천한 장교가 계급이 높은 장교한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며 거역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데, 상대적으로 소수집단인 여군의 경우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10년 이상 오래된 픽션 영화로 1999년작인 존 트라볼타, 제임스 크롬웰 주연의 장군의 딸이 있다. 이쪽은 육사에서 야간 훈련 중에 윤간 당한 딸의 사건을 묻어버린 아버지가 진급을 보장받아 7년 후 중장으로 퇴역한 후 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딸이 성의 노예가 되어버려 다시 강간당하고 살해된 이야기로, 제대로 된 수사를 원한다는 아버지의 요청에 장군들이 미군의 명예니 육사 남녀공학 체제 유지니 개드립을 치며 아버지를 압박하고 아버지도 그들과 완벽히 동화되어 버린다.

여담으로, 전시의 경우 여군이 포로로 잡혔을 때의 대우 문제도 존재한다. 여군이 포로로 잡힌다면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37] 한마디로 적대국 여군을 성노예로 만드는 것인데, 성욕 해소, 적대국 국민에 대한 굴욕감과 공포감 심기, 혼혈 아기를 잉태시켜 여군들에게 자인종의 피가 섞인 아이를 낳게 함으로써 순수한 핏줄을 더럽히는 인종청소 차원 등 사로잡은 쪽 남성 군인에 의한 강간, 임신 등 과거에는 매우 비일비재했고 현재도 전쟁터에서 여전히 다수 일어나고 있는 판이다. 물론 남성 포로들 역시 온갖 가혹행위, 학대, 고문의 주 대상이므로 끔찍한건 매한가지이며 이쪽은 죽을 확률이 더 높다. 게다가, 남성 군인 역시 사로잡은 쪽 여군이나 '남성' 군인에 의한 동성 강간 등의 성범죄도 일어나기에 어떻게 보면 여군보다 더 끔찍하다. 강간 문제는 비단 여군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어느쪽이 더 선호될지는 잔인하게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 다시금 성상납 요구에 목숨을 끊은 여군 이야기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국군 내 여군 성문제가 화두에 오르고 있다. 문제는 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쉬쉬하려는 경향이 심하다는 것. 문제가 정말 많다.

MBN
동아일보
서울신문
SBS
여군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자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영내의 성희롱/성폭행 문제가 점점 수면위로 불거지고 있다. 2013년 10월 한 여군 육군대위가 자살했는데, 유서에서 자신의 상관인 육군소령의 성희롱 및 성상납 강요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는 당사자가 자살함으로서 불거진 이야기지만, 이런 경우가 흔하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 2021년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구제를 요청했지만 모두 묵살되어 결국 피해자가 자살한 끝에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여군에 대한 차별 문제는 독일군이라고 예외는 아닌 듯하다.

미군 사상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인 테일후크 스캔들은 여군에 대한 집단 성폭행 스캔들이다. 테일후크 심포지엄이라는 해군 파일럿 장교 집단이 1991년 1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그날 밤, 해군 파일럿들이 83명의 여성과 7명의 남성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하였다. 이 사건의 여파로 해군장관이 교체 되었고 많은 장교들이 잘렸지만 법적인 처벌은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다른 사건 중에 1990년대 한국 뉴스에서도 보도된 사례로, 당시 미군 여군 중위가 간통을 저질러서 군법재판을 받았을 때 당시 미군 합참차장 조셉 랄스턴 공군 대장도 자그마치 CIA 여자 직원과 간통 혐의가 있음에도 넘어갔던 게 미국 여성단체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차기 합참의장 1순위로 거론되던 랄스턴 장군은 NATO 사령관으로 옮겼고[38] 몇 년 후 명예 퇴역했다.

이를 다룬 2012년 작품인 다큐멘터리 영화로 '또 다른 전쟁'[39]이 있다. 미군 내에서 여군들이 동료 혹은 선임에게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였다. 이 영화는 미 육/해/공/해병대/해안경비대에서 병/부사관/장교로 복무한 강간 피해자들이 실명과 얼굴을 감추지 않고[40] 직접 출연하는데, 성추행/성폭행을 저지른 가해자들이 진급도 하고 상도 받고 전역 후 높으신 분이 되어서도 강간하고 다니면서 멀쩡히 산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나온다. 보다 보면 입에서 욕이 나올 지경. 가해자가 중대장의 술친구라는 이유로 사건이 무마되거나, 여군이니 군대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이 나온다. 강간범이 기혼자고 피해 여군은 미혼인데 간통죄로 처벌받는 쪽은 피해 여군이고, 강간범이 헌병이라서 차마 보고를 못하기도 하고, 부대에서 강간당했다는 여군의 신고가 여러 번 들어오자 대대장은 성폭력을 신고한 피해 여군들보고 지금 장난하냐며 갈군다. 상부의 지시 때문에 강간 피해자를 범죄자 취조하듯이 싸늘하게 심문해야 했다고 증언하는 성폭력 수사관 여군 병장마저 강간을 당한다. 군대에서 강간당하면서 턱을 다치는 바람에 음식을 씹지도 못하는 처지라서 치과 수술을 해야 하지만, 제대군인에 대한 대우가 끝내준다는 미국이 해안경비대 복무기간 2년을 2달 남겨두고 제대했다는 핑계로 보험을 해주지 않는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에 배치된 오지 부대는 말할 것도 없고, 워싱턴 D.C. 경비업무를 맡는 해병 정예부대의 기혼인 여군 장교도 상관과 동료 장교로부터 지속적인 강간을 당했다고 증언한다. 그 여군 장교의 남편이 자신과 같은 장교(해병대)였고, 자기 아내의 피해에 대해 증언하면서 흐느꼈다. 남편이 같은 장교임에도 전혀 아내를 강간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었다. 피해는 여군뿐만이 아니라서, 남군이 정체불명의 군인들에게 강간당하기도 했고, 피해 여군들 중에는 함께 복무한 군인과 결혼한 이들이 있는지라 당시 교제하던 남자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들은 애인이 겪는 지옥 같은 고통을 지켜봐야 했으며, 더러는 전통적인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오빠들을 따라서 입대한 경우도 있는데, 현역 원사인 아버지가 현역 소위인 자신의 딸이 군대에서 상관과 동료 장교로부터 강간당하고 전화해왔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흐느끼는 장면은 굉장히 충격적.

미국 국방부 높으신 분들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통계 자료만 만지작거리는 국방부 공무원은 이런 문제를 단편적인 숫자 놀음으로만 여기고 있으며 국방부에서 내놓은 방안이란 게 고작 여군들은 여럿이서 뭉쳐 다니라고 권고한다거나 건성건성 홍보 영상 만들어서 배포하는 게 끝. 여군 투스타조차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높으신 분다운 탁상공론 수준으로만 하는 것이 현주소인데, 그 여군 장성이 햇병아리 소위 시절이었을 1980년대에는 군대의 성폭력 문제가 21세기보다 나았을 리 만무함을 생각하면 뭔가 섬뜩한 면도 있다. "딸이 군대 간다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는 피해 여군들과 남편들이 인상적이다.

비록 이 영화가 여군에게만 초점을 맞추느라 이성 못지않게 동성 간의 성폭력 문제도 심각하다는 점이 구색 맞추기로만 나왔다는 점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군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이들은 없어서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영화를 레온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이 보고서[41] 문제의 기소권을 상급자들에게서 거두기로 했다고 전해지며 이후에 열린 상하원 합동청문회에서 국방장관부터 합참의장(대장) 등등 여러 장성들이 줄줄이 불려나와 의원들의 질타를 들은 것도 아주 볼만한 풍경이었다. 군의 심각한 성폭력문제를 고발, 대처수준을 대외적으로 알리며, 서구권 군대의 성폭력문제를 크게 줄이는데 큰 공헌을 한 영화다. 실제로 서구권 군대의 심각한 성폭력문제에 관련된 기사는 12년을 기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7. 각국의 여군 제도[편집]



7.1. 파일:대한민국 국군기.svg 대한민국 국군[편집]



1997년 10월 11일 KBS1 <특종 비디오저널> 방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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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여군 수는 2022년 3월 11일 발행된 한국국방연구원의 국방논단 1889호(22-10)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약 1만 4000명이다. 오로지 간부로만 따졌 때 약 7.4%가 여군이다. 자위대와 비슷한 수준이다.[42] 물론, 이렇게 여군의 비율이 매우 적은 이유는 여성의 신체스펙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군복무를 할 정도의 여성이라면 여성 전체에서 적어도 상위 20% 이내에 들 정도로 신체 스펙이 좋은 축에 든다.[43] 남녀의 신체스펙이 비슷하다면 여군의 비율이 이렇게 적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병역법 제3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3조 (병역의무) ①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하여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

대한민국 병역법상 여성은 징집 대상이 아니므로 전원 지원하여 입대한 직업군인이다. 이에 맞춰 은 모집하지 않으며, 장교부사관만 지원가능하다.

다만 1970년대 초반까지는 여군 병이 있었다. 만 17~24세의 중졸 학력 이상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여성을 지원받아 선발하였다. 예비역 김화숙 대령(1949년생)이 여군 병 출신[44]이었다. 1974년 1월부터 이른바 여군 계급체계 개편으로 장교와 부사관만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여군 병 입대자가 남군과 급여 및 영내 생활 등이 동일해, 굳이 징병 대상이 아니므로 이런 겨우 살 곳과 밥만 그나마도 모자라게 주는 곳에 갈 이유가 없었으므로,[45] 진짜 굶어죽기 직전 아니면 당시로선 가치관이 좀 특이한 이들이 아닌 한 가는 경우가 적었으며, 간다 해도 대부분 직업군인하사관을 노렸다. 어차피 하사관도 대우가 좋지 않아서, 민간 지원자가 워낙 적어 병들 중 지원하기만 하면 그자리에서 하사 진급시켜 주는 일이 허다하던 시절이었다.

UDT/SEAL 등 해공군의 특수전 병과에서는 뽑지 않고, 같은 병과 중에도 잠수함 승조원 같은 여성은 배속하지 않는 직책도 있다.[46] 최근까지도 포병, 기갑, 항공구조사 등에 지원할 수 없었지만, 2014년부터 여군도 포병, 기갑, 방공 병과에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2015년에는 최초의 여성 군승, 군목도 임관했다.[47] 2019년 대한민국 공군에서 부사관후보생 236기를 모집할 때 여군 공정통제사와 항공구조사를 뽑는다고 했지만 236기 때에는 선발되지 않았고, 2020년 들어 237기 때 여군 공정통제사가 배출되었다.

입대하기 위한 신체 조건은 키는 152cm ~ 183cm에 체중은 44~87㎏ 이내여야 한다. 신체조건 제한이 있는 이유는 남군과 마찬가지. 그 외의 필요조건은 남자와 같다. 지원 경쟁률은 남자보다 훨씬 높다. 2010년도 중반 들어서 남자 군인도 장교는 20대 1, 부사관도 5대 1 가량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여군은 보통 그 2~3배 가량의 지원률을 보인다.

창군 초기에는 대한민국 해군대한민국 공군 등에도 소수의 여군이 있었으며, 주로 헌병이나 행정 등에서 근무했다. 이 중 공군의 경우 개전 직후 여군들을 일괄 전역 처리를 해 집에 보내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대한민국 육군은 이후에도 여군을 계속 운용했는데,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9월 6일에는 육군에 복무 중인 여성 군인들을 통합 운용하기 위한 '여군' 병과가 창설[48]되어 독자적인 병과로 자리 잡았고, 1951년 대한민국 육군본부 고급부관실 내에 여군과가 설치되었다가 1954년 인사국 여군부로 승격된 뒤 1959년 인사참모부 내 여군처로 개편되는 과정을 거쳐 1970년 12월 1일 육군본부 직할의 독립부대인 여군단이 창설되었다.

여군 병과를 독립적으로 운용한 것은, 당시 미 육군이 하던 방식을 따라한 것으로, 미 육군은 냉전 때에 이를 폐지하고 남성처럼 동일하게 개인 특기에 맞춰 병과를 부여했으나, 한국 육군은 꽤 오랜 시간을 여군 병과를 운용했다. 즉, 실무 나가서 부관 병과 일을 하든, 경리병참 일을 하든, 정훈 일들 하든 병과휘장은 여군의 것을 달고 서류상 병과 분류도 여군이었던 것이다. 유일하게 간호장교만 간호 병과를 따로 받았고, 해공군에선 한동안 간호장교 외 여군이 없었다.

여군의 교육기관은 여자의용군교육대에서 1950년 여자의용군훈련소로 바뀌었다가, 1955년에는 여군훈련소가 창설되어 여군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소정의 군사훈련 외에도 타자, 전통예절, 꽃꽂이 등의 교육까지 실시했었다. 여군병과 시절 여군의 보직은 거의 사령부급 이상 행정요원이나 지휘관 비서, 심리전(대북방송) 요원 정도였고 극소수의 인원이 특전사헬기 조종사 등으로 훈련을 받고 배치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1990년 들어 여군단 및 여군병과가 해체되고 육군의 일반 병과와 통합됨에 따라 여군 훈련소도 육군여군학교로 바뀌어 여군 장교와 부사관의 양성교육을 담당하다가 2002년 10월 31일자로 해체되고 장교는 육군3사관학교, 부사관은 육군부사관학교로 양성과정마저 통합되었다.

사관학교는 1997년 공군사관학교, 1998년 육군사관학교, 1999년 해군사관학교가 여자 생도 모집을 시작했으며 해군공군해병대도 사관후보생과 부사관후보생을 여성에게 개방했다. 학군단2011년(50기)부터 뽑기 시작하였다.

2002년 1월 간호병과 양승숙 육군 대령이 준장 진급하여 최초의 여군 장성이 탄생하였고 2010년 12월 송명순 육군 보병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하여 최초의 전투병과 여군 장성이 탄생하였다. 2011년 법무병과 이은수 육군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하여 법무병과에서도 여군 장성이 탄생하였다.

여군학교 해체 후부터는 보직의 한계도 많이 허물어져서 2002년 여군 소위 20명이 처음으로 신교대 소대장에 보직되었다. 공군에서는 2002년 첫 여군 조종사 배출에 이어 2007년 첫 여군 전투기 조종사를 배출하였고 2019년에는 첫 여성 비행대대장이 탄생했다. # 해군에서는 2003년 여군 장교가 처음으로 전투함에 승선하였으며 2012년에는 첫 지휘관(고속정장)이 배출되었다.

허나 육군 전방부대 배치에 있어서는 아직 전방 연대장을 배출하진 못한 상태. 전방 대대장도 육사 최초 여성 생도 기수인 58기의 권성이 중령이 제28보병사단 대대장으로 배치된 게 처음이며, 차후 육사 출신 여군이 대령 및 장성으로 진급하며 처음 배출될 확률이 크다. 그간의 여군 전투병과 장성들은 연대장 보직을 육군훈련소 신병교육연대장이나 동원사단 연대장 등으로 수행했다. 송명순 준장은 육훈소 제25신병교육연대장, 김귀옥 준장은 육훈소 제23신병교육연대장, 정정숙 준장은 육훈소 제27신병교육연대장 출신이며 노경희 준장이 동원사단인 제72보병사단에서 연대장을 지낸 게 일선 보병부대 연대장으로 최초로 배치된 것이다.

육군, 해병대 등 지상전 위주의 조직에선 일선에서 전투원으로 복무하기보다 후방에서 행정 업무를 주로 처리하지만, 해군이나 공군의 경우에는 함정 승조원이나 전술기 조종사 등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지상 전투원으로 안 써먹는 건 아니며 특전사나 수방사 제35특수임무대대, 항공 조종사 정도가 있다.

특전사에는 특전사령부 직할 여군 고공지대[49]라는 여군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부대가 실존하는데 하는 일은 고공강하밖에 없으며 여자라는 특수성 때문에 천리행군을 하지 않는다. 언론에도 몇 차례 공개된 수방사 35특수임무대대는 여군이 전투원으로 뛰는 부대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여군으로 구성된 1개 팀만 존재할 뿐이며 가장 높은 계급이 중위다. 물론 이들은 실제로 전투원으로 투입되는 것보다는 대테러 등 상황 시 여성 요원이 필요한 경우에 투입되는 정도다.

여성 특전부사관 지원률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으며 다들 체력과 정신력도 매우 우수하다. 뽑은 인원은 많아야 5명 수준인데 저런 우수한 인력들이 많이 지원해대니 육군에서는 여군 지원자에게 혜택을 많이 주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여군을 지휘관 비서를 위시한 행정 보직이나 대북방송 정도에 주로 활용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여군에 대한 군대 고위층의 인식은 보수적이다 못해 상당히 성차별적이었으며, 여군의 결혼은 장교의 경우 1961년부터, 부사관은 1984년이 되어서야 의무복무기간(3년)을 마친 중사 이상이어야만 허용되었다. 이마저도 임신출산은 장교와 부사관을 막론하고 군 생활 중에는 여전히 금지되었고 기혼자라도 임신하면 전역해야 했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 여군은 결혼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1984년 당시 여군단장이던 김현순 대령[50]의 건의를 육군참모총장이 일부 수용하여 중사 이상 여군 부사관의 결혼이 허용되었지만 임신출산은 계속 허용되지 않았는데 여군의 임신 및 출산을 마지막까지 불허했던 이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하나회의 후원자이자 신군부 핵심 인사였던 황영시였다.

그러다가 1987년에 들어 여군의 임신과 출산이 허용되고 임부용 복장(전투복, 근무복)이 제정되었으며[51] 1963년 이후 계속 불허되어 오던 기혼자의 여군 지원은 결혼 및 출산 허용보다 훨씬 늦은 2007년에 들어서야 풀렸으니 이쯤 되면 과거 군 수뇌부의 여군에 대한 성차별적 의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여군 성상납 같은 얘기가 수시로 도는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52] 현재도 불미스러운 일들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편이며 여군의 복무 여건이 이 정도로나마 확립된 것은 수많은 여군 선배들과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화장실을 포함한 생활 시설 문제 등까지 완전히 해결하려면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1958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실시되면서 육군에서도 1962년부터 미스 여군 선발대회라는 것을 진짜로 실시했던 충공깽스러운 사실이 있다. 육군 본부 여군 대대와 여군 훈련소 등에서 출전한 인원들을 대상으로 정복은 물론 미스코리아와 유사하게 야회복과 수영복 심사까지 거쳐 미스여군 진/선/미를 선발, 그 해에 열리던 미스 서울 특별 예선에 참가시켰으니 이쯤 되면 군인으로서의 능력과는 하등 관계없는 그냥 군내 미인대회. 1968년부터 미스코리아에는 출전시키지 않고 용모와 품행이 단정한 여군을 선발하는 대회로 전환했으나 1972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결국 폐지 크리를 맞았고 대한민국 여군 역사상 가장 성차별적 요소가 강했던 부분임은 분명한 사실이다.[53]

또 하나의 수치는 여자 삼청교육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저지른 여러 악행들 중 하나인 삼청교육은, 실제로는 남자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계엄사령부는 1980년 7월 31일자로 여자 삼청교육대의 설치를 육군에 명하였는데 당시 화천에 위치해있던 11공수특전여단 구 파월장병교육대를 장소로 삼고 여군단 장교 중에서 지휘관 및 교관요원을, 여군단 중/상사와 여군 특전부사관 중에서 조교 및 분대장을 선발하여 장교 7명, 부사관 34명의 교관단을 구성했다.[54] 피교육생으로 끌려간 대상들은 주로 성매매 여성이나 포주, 계주 등이었다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각 경찰관서별로 할당량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가정주부들이 상당수 끌려갔다고 한다.

여자 삼청교육은 1차(1980년 8월 12일~31일)와 2차(1980년 8월 22일~9월 4일)로 나누어 실시되었으며 피교육자에게는 여군 전투복 재고품 2착씩과 필수 소모품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교육 내용은 정신교육, 안보영화상영, 제식훈련, 유격체조, 각개전투, 접지훈련, 분임토의, 군가, 구타, 가혹행위 등이었으며 구타가혹행위 등 인권침해가 횡행했던 것은 일반 삼청교육대와 같았는데 여성인 피교육생에게 원산폭격을 시키고 교관[55]들이나 조교[56]들이 몽둥이로 구타했다고.

기록상의 피해자는 총 319명이라지만, 513명이 끌려와 교육을 받았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실제로 들어간 피해자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사망자도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공식적인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다.

또한 여군의장대는 일단 행사복부터가 흰색 미니스커트에 흰색 롱부츠, 빨간 베레모로 군복이라기보다는 치어리더 제복 같은 행사복을 입히는데다가, 행사에 들고 나오는 소총이 진짜 총이 아니라 대충 소총 모양을 흉내 낸 목총이다! 의장대의 특성상 소총을 던지고 받는 동작을 해야 하는데 여군의 팔 힘이 약해서 가벼운 목총을 쓴다고는 한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아니,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실총기가 무겁다고 모의총기를 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비판을 엄청나게 퍼부었다. 도대체 군인의 기본 개인 총기인 소총이 무겁다면 뭐하러 직업군인을 하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하도 비판을 받아서인지 2011년부터는 M16 소총을 들고 나오는 줄 알았으나 이것도 진짜 M16이 아니라 에어소프트건(BB탄총)이었다. 그래서 "이럴 거면 여군 모집 그냥 때려치워!"는 네티즌들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을 하다가 결국 2014년경부터 남성 의장 장병들과 동일한 실총 M16 소총을 쓰도록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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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등 여러 선진적인 국가에서도 여군 의장대원은 있으나, 딱히 특별한 의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정복이나 행사복 등을 똑같이 입으며, 남성들과 함께 편제되어 같은 줄에 서서 함께 의장 행사에 동원된다. 소총 등 사용하는 장비도 차이가 거의 없고 훈련 강도도 남자 의장대원과 동일한 동작 등을 수행해야 하니 여군이라고 약하게 하거나 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연히 의장대에 지원[57]하는 숫자도 합격하는 숫자도 여군은 많지 않지만 여자라고 봐주는 거 따위 없으니 얄짤없다.

당연히, 남성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선발되어 합격했고 또 같은 강도의 일을 하므로, 남성들이 자신들을 차별하게 만들 거리 따위 없이 당당하게 다닐 수 있다. 의장부대 지휘관/자도 얼마든지 맡을 수 있다. 다만, 이쪽도 고난도 개인 동작이나 팀 동작은 남군만 한다. 예를 들면, 지휘관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서 총을 던지고 받는다든지 하는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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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해군 의장대(Ceremonial Guard)원들. 여군 수병들이 남군 수병들과 뒤섞여 함께 움직인다. 여담이지만 미군은 Honor Guard Drill Team이 총을 돌리는 행사를 뛰고 Ceremonial Guard는 장례식 등의 의식에 조총 발사등을 한다. 해안경비대 Honor Guard에 여군이 있으나 고난도 동작은 남군이 한다.

한편 한국에선 잊을 만하면 인터넷 상에서 떡밥으로 "가산점 폐지 인정한다. 여자도 군대(정확하게는 병)에 가라."가 화제로 떠올라서 2009년 말에는 아예 헌법소원까지 걸렸다가 각하되기도 했으나, 군대 내에서는 여성의 역할과 비용 등 실용적인 문제로 그 효용성이 의문시된다면서 정치권에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정치권에서 버티고 있는 실정이 혐오스러운 것과 별개로, 과거 한국전쟁 당시 남북한 모두 여성 전투병을 징집해서 운용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은 학생들까지 총을 들고 나가야 할 판이었고 서로 가용병력 문제가 절실했기에 벌어진 특수한 환경이었던 과거가 있긴 하다. 그나마도 남한의 경우 (공식 발표 자료상) 해군에서만 23명의 소녀병을 뽑은 게 전부다.[58] 그 중 가장 유명한 분이 해병대 4기인 문인순씨.

한국의 경우 여군 장교 중에서 실세는 간호장교로, 한국 최초의 여군 장성으로 2003년에 진급한 양승숙 준장은 간호장교 출신이며[59] 간호장교는 출신 대학별로 드러날 정도의 파벌을 이루기도 한다.

2010년 12월 16일 처음으로 여군 전투병과(보병)의 장성이 생겼다. 대상자는 준장 송명순. 다만 사실상 진급 상한선일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한편 하사 이상 간부의 예비군 복무 기간은 계급 정년에 따라 최소 하사는 40세까지[60]이나, 전역 이후 6년간 동원훈련만 받으면 끝이다.[61] 예비군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은 민방위에 편성되어 있지 않아 민방위 훈련은 없다. 민방위 편성 기간은 평시의 경우 40세, 전시의 경우 45세이므로, 전역 이후 오직 6년간 동원훈련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또한 현역에 20년 이상 근무한 경우 본인 지원에 의하여 예비역으로의 전역 없이 바로 퇴역하여 민방위로 편입할 수 있다. 반대로 연령정년에 도달한 경우나 여군은 본인 지원에 의하여만 예비역으로 편입된다. 여군은 기본적으로는 바로 퇴역됨은 물론 민방위로도 편성되지 않는다.[62]

본인의 지원에 의함은 오직 장교준사관(준위), 부사관에 한한다. 으로는 병역법에 의하여만 징집되는 것이다.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대군인"이란 "병역법" 또는 "군인사법"에 따라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퇴역·면역·상근예비역 소집해제한 사람을 말한다.[63]

장교·준사관(준위) 또는 부사관으로 전역한 사람에 한하여, "장기복무"는 10년 이상 현역으로 복무한 경우를 말하며, "중기복무"란 5년 이상 10년 미만 복무한 경우를 말한다. 그 이하로는 의무복무기간을 포함한 단기복무로 본다.

남군과는 달리 주변에 이성이 잔뜩 있는 곳에서 일하다보니 같은 군인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여담으로 해군 후반기교육장에서 남군 장교와 여군 장교가 서로 벙커 안에서 성관계를 벌이다가 순찰하던 헌병에게 걸려 중징계를 받았고 결국 군부대 안에서는 성관계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정식 공문이 발송된 적이 있다.

만삭의 여군 장교가 과로에 시달리다가 순직했으나 육군본부는 일반 사망으로 처리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라 위해 만삭의 몸으로 일하다 과로로 순직한 군인을 일반 사망으로 처리하는 것도 지독한 노릇인데,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육군 중장으로 전역한 새누리당 한기호 국회의원이 이 여군 장교에 대해 "본인의 귀책사유가 크다, 수당 받으려고 본인이 자발적으로 그런 것이다."라는 식의 망발을 해서 논란이 되었다. 결국 육군본부에서는 재심을 거쳐 9월에 순직 처리를 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여군의 형평성에 대하여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여군의 존재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하여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이화여대 학군단 유치 사건에 대해서 여론들이 너무나도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문제가 심화될것으로 전망된다. 자세한건 이화여대 ROTC 유치 항목 참조.

특히나 체력검정에 관한 문제는 남성에 대한 성차별로,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평가기준을 '여자니까' 얼렁뚱땅 낮춰서 통과시켜주는 행태에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

육군 기준으로 남군에게 국방색 셔츠 및 갈색 민소매러닝을 지급하는데, 대대에 여군이 있는 경우 병사들은 민소매러닝(겨드랑이가 보이는)만을 입고 있을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이런 부대에선 전투복이나 활동복을 입지 않을 경우 무조건 국방색 셔츠만을 입어야 한다. 다만 이는 케바케로 여군이 있어도 민소매러닝까지는 허용되는 부대도 있다. 허나 그렇더라도 여군이 있을 시 상의탈의는 대부분 금지된다.

여담으로 1990년까지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여군에게 다른 병과를 배정하지 않고 여군이란 병과로 운용했다. 창군 초기, 미 육군에서 여군들을 통합 병과로 운용하던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1990년에 여군병과가 해체되면서 기존의 여군 병과 장병들은 자신의 업무에 맞는 다른 병과로 옮겼다. 다만 간호후보국군간호사관학교 같은 간호장교들은 여군과는 별개의 병과였다. 그 당시 간호장교들은 여성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지만 병과는 여군이 아니었다. 즉, 여성이 국군에 입대하면 여군, 간호 두 병과만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7.1.1. 대한민국 국군 여군 장성급 장교[편집]


2001년에 간호장교양승숙 준장이 처음 나왔고 2010년에는 보병 병과[64] 출신의 송명순 준장, 2011년에 군법무관 이은수 준장이 나왔다. 2017년엔 처음으로 임기제 진급자가 아닌 인원이 나왔다.[65]
  • 간호장교[71]
    • 양승숙 준장(간호후보29기): 여성 최초 장성 진급.[66]
    • 이재순 준장(간사16기)
    • 윤종필 준장(간사17기)
    • 박순화 준장(간사19기)
    • 신혜경 준장(간사20기)
    • 박명화 준장(간사21기)
    • 최경혜 준장(간사22기)
    • 윤원숙 준장(간사23기)[67]
    • 권명옥 준장(간사27기)[68]
    • 정의숙 준장(간사28기)[69]
    • 강점숙 준장(간사29기)
    • 정경화(군인) 준장(간사 32기): 現 국군간호사관학교장. [70]
  • 전투병과
    • 송명순 준장(영남대, 여군사관29기): 여군 최초 전투병과 장군. (보병)
    • 김귀옥 준장(서울시립대, 여군사관31기): 대한민국 최초 장군 부부.[72]
    • 허수연 준장(여군사관33기)
    • 강선영 소장(숙명여대, 여군사관35기): 여군 최초 소장 진급.[73] 여군 최초 항공병과 장군.
    • 정정숙 소장(경북대, 여군사관36기): 現 육군부사관학교장. 여군 최초 보병병과 소장.
    • 노경희 준장(여군사관36기): 現 제2군단 부군단장. 여군 최초 보병연대장 및 사단참모장 역임.
    • 김소영 준장(여군사관37기): 現 종합군수학교 병참교육단장 겸 병참병과장. 여군 최초 병참병과 장군.
    • 강영미 준장(한밭대, 여군사관39기): 現 제5공병여단장. 여군 최초 공병병과 장군.
  • 법무장교
    • 이은수 준장(경북대, 법무56기, 군법9기)
  • 정훈장교
    • 박미애 준장(상명대, 여군정훈3기): 육군본부 정훈공보실장. 최초의 여성 정훈감이다.
  • 정보장교
  • 행정장교
    • 차종희 준장(여군사관 39기): 現 육군본부 예산차장 겸 재정병과장. 여군 최초 재정병과 장군.

실질적으로는 준장에서 진급 상한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 이상 진급할 가능성이 있는 사관학교 출신 전투병과의 여군들이 2020년대 중반 현재 영관급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이들이 진급할 시기가 되어야 2성 이상의 장군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74] 하지만 이들도 이미 진급에 필수적인 주요보직에서 밀려나서 진급하기 힘들 수도 있다. 공군사관학교의 예를 들면 별 달기 위해 필수나 다름없는 전투기 조종사 중 여군이 배출된 것이 2007년이고[75], 해군에서도 2010년대에야 여성 고속정장이 배출되었고 그나마도 최전방 2함대가 아니가 제일 널널한 3함대 참수리에 진급점수 균등부여 한답시고 1년도 안채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육군에서도 포병 등의 기존 남성만 받던 병과에서는 2010년대에나 막 여성이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고위장성으로 진급하려면 특전사 복무, GOP 근무 등 초급장교 때부터 경력을 만들어야 한다.[76]

또한 매해 많은 자살/성폭력 사고가 터지는 한국군의 사정을 생각하면, 한국군에서 나이 50 먹어서까지 일하려 들 여성이 있어야 얼마나 있겠냐는 꽤 암울한 반론이 나온다. 때문에 사관학교 출신 1세대 여군들부터 3, 4성 진급자를 배출한 미군의 사례가 한국에서도 실현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미군은 테일후크 스캔들 등 수많은 진통을 겪으며 군 문화 개혁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왔다는 점에서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여군에 국한되지 않은 성별 외 요소에서의 차별도 적은 편이라, 출신이나 기수제 등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생겨나는 한국군 같은 차별이 그리 크지 않다. 무엇보다 미군은 워낙 큰 군대라서 병과들마다의 진급 상한선도 높은 편[77]이고 여성들의 목소리도 웬만큼 들릴 수 있는 것인데, 규모가 더 작은 한국군은 여군을 배려해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게 아니기에 여군이 소장 이상으로 진급할 기회는 앞으로도 어지간해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2019년 11월에 국군 최초로 여군 소장 진급자가 나왔다. # 다만, 강선영 소장도 육군 항공 병과 특성상 소장으로 군생활을 마치게 되었다.[78]


7.2. 미군[편집]



미국 독립전쟁 때부터 존재했다. 2차 대전까지는 전 세계적 풍토(?!)와 여자를 2등 시민쯤으로 간주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육군의 WAAC(Women's Auxiliary Army Corps)와 해군 WAVES(for Women Accepted for Volunteer Emergency Service) 및 간호병과(Nurse Corps)에 속해 간호, 방공포병 등 철저하게 후방 지원 임무에만 종사했고, 1970년대까지 육군은 WAC(Women's Army Corps; WAAC의 후신) 부대에 소속되어 남성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지만, 현재는 그런 문제가 많이 해소됨과 동시에 본격적인 모병제를 실시하는 덕분(?)에 군대가 일종의 '직장'인 나라인 만큼, 여군이 전체 대비 15% 수준으로 적지 않다. 과거에는 여성의 전투 병과 참여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전투 병과 참여도 활발하고 야전에서 활동하는 비율도 가장 높다. 90년대까지는 여군은 전투기 파일럿, 전투함의 함장이 될 수 없었고 이후 잠수함 승조원을 제외하면 해공군은 전투병과 제한이 사라졌지만 육군과 해병대는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성의 전투병과 참여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여성의 전투 참여 금지 조항이 완전히 풀려 육군과 해병대가 여성의 전투 병과 참여를 허용했고 해군도 여성의 잠수함 승조원 복무를 허용했다. 현재에는 보병, 특수부대, 전투함의 유도사에서부터 폭발물 해체 요원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79] 특히 전선이 따로 없는 이라크나 아프간 전선은 헌병이나 의무병과나 수송병과 등의 비전투 요원이 전투에 휘말리게 되는 상황이 많이 연출되고 있다. 물론 미국도 이런 수준으로 여군의 입지가 강해지기까지 테일후크 스캔들이라든지 미국공군사관학교 성폭력 폭로 같은 여러 버라이어티한 사건들이 터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활약한 미군의 여군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이 그 주인공.

1970년 6월 11일 간호병과 애나 메이 헤이스 육군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하여 미군 최초의 여성 장성이 되었다.

미군 역사상 최초/두번째 여성 4성장군인 앤 던우디 육군대장과 재닛 울펜바거 공군대장의 인터뷰.[80] 각각 육/공군 군수사령관을 지냈으며 던우디 장군은 2012년 퇴역했고 울펜바거 장군은 2015년 퇴역하였다.

"합동참모본부에 여군 장성이 들어갈 날이 올까요?" 하는 질문에 한 목소리로 YES를 외치는 모습이 인상적. 그리고 이 말은 2023년에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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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대 미합중국 남부사령관
제14대 미합중국 수송사령관
미합중국 공군 군수사령관
유럽-아프리카해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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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국에서는 고위급 간부들 중에서도 입지를 넓혀나가고 있다. 최후의 금녀의 영역이던 잠수함마저, 2011년 1월부터 잠수함에 여성 장교를 배치하게 되어 이제 사실상 미군에서 금녀의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는 버지니아급 공격원잠 등에서 여성 태우는 함정을 운용할 것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남녀 혼성으로 잠수함을 운용하기엔 곤란하지만 여성도 써먹자는 취지에서 아예 여성 배치한다는 배짱 큰 계획이었다. 하지만 잠수함에 여성 장교를 배치하기 시작한 게 2010년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함장은 고사하고 부장을 할만한 짬밥의 여군도 근시일 내로는 전무한지라, 지금의 햇병아리 여성 잠수함 장교들이 만렙을 찍기 전까진 힘들다. 빨라야 2020년대 후반에나 가능할 듯.

그러나 보병 등, 최일선 전투병과나 특수전 부대[81] 등의 여성 배치는 현재까지도 금지되어 있었고 2013년 1월 23일부터 미 국방부가 여성도 전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했지만 미국의 남녀 특수부대의 체력 기준은 동등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2020년 그린베레에서 여성 지원자가 단 한 명 나왔을 정도이며 따라서 앞으 미 여군 특전사는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82] 이런 조치는 위에 언급할, 남자 저격수라고 학대가 덜 할 줄 아냐는 반박에 매번 부딛히곤 있다.

미국의 여군에게 가장 커다란 불명예는 바로 간통죄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기소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명예 전역을 강요당한다고 한다. 대단히 불평등한 조항이 아닐 수 없다. 이거 때문에 "어차피 불명예 전역을 당할 거면 군법재판받기 전에 자살해서 딸애한테 연금이라도 줘야지" 하는 심정으로 자살한(!) 여군 장교까지 있었다! 사실 그녀의 딸이 희귀병을 앓아 평생 치료가 필요한데, 군에서 불명예 전역 시 의료보험이 없어지고, 큰 돈 드는 병을 가진 딸을 받아줄 보험회사도 없다. 불명예 전역 처리 전에 죽을 경우 딸은 직계가족으로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라고는 하지만, 이런 불명예 전역 강요가 여군에게만 이뤄진다는 점이 굉장히 불평등한 것임은 사실.

다른 사건 중에 90년대 한국 뉴스에서도 보도된 사례로, 당시 여군 중위가 간통을 저질러서 군법재판을 받았을 때 당시 미군 합참차장 조지프 랠스턴 공군대장도 자그마치 CIA 여직원과 간통혐의가 있음에도 넘어갔던 게 미국 여성단체에게 분노어린 시위와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차기 합참의장 1순위로 거론되던 랠스턴 장군은 NATO 사령관으로 옮겼고[83] 몇 년 후 명예 퇴역했다.

또한 이쪽은 여성들이 병으로 입대할 수 있는 만큼 훈련소에서 벌어지는 성폭력도 심각한 문제. 여군 장교라고 성폭력을 안 당하는 것도 아니다. <장군의 딸> 같은 영화나 드라마 <NCIS>에서 훈련소의 성폭력이 원인이 된 살인 에피소드가 나온 적이 있을 정도며, <라이 투 미>에서도 여군 관련 성폭행 에피소드가 나온 적이 있다. 위의 성폭력 문제 문단에서 소개한 2012년 작품인 영화 <또 다른 전쟁>도 있다.

군 당국도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전담 부서를 개설하는 등 백방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별 효과를 거두고 있지는 못하는 듯하다. 2010년보다 2011년의 성폭력 적발 건수가 늘었다. 자살 문제와 함께 현대 미군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 미국 제대군인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 여군 중 30%가 강간(성폭행)을, 71%를 성적 공격(성추행), 90%가 성적 괴롭힘(성희롱)을 당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성폭력 문제가 간통 혐의가 있는 여군에게 불명예 전역을 강요하는 점과 겹쳐서 기혼자 대대장이 갓 육사 졸업한 미혼의 여군 소위를 강간하면 결혼하지도 않은 여군은 간통으로 처벌받아 불명예 전역하지만 간통 문제를 넘어 강간을 저지른 대대장은 아무런 일 없는 듯이 진급을 거듭하여 별을 단다거나 하는 사례가 나온다. 미군의 일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남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군의 전투참여에 대한 금지조항이 완전히 풀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군의 효율성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면 좀 과하게 평하는 사람들 중에선 미군의 여군전투참여 허가를 워낙 오랜 기간 전쟁을 감행했고 이로 인한 염증 때문에 모병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남녀평등이란 이름 아래 하는 수 없이 여군을 전투에 투입시켰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일단 미국 본토에서는 여군의 본격적인 전투 참가를 기념해 여군 동상을 제작하기도 하는 등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하는듯 하다.

2014년 들어서는 육군의 앤 던우디 대장과 공군의 재닛 울펜바거 대장에 이어 해군에서 미셸 하워드 중장이 2014년 7월 1일 대장으로 진급했다. 해군참모차장으로 진급 예정이며 2013년 12월에 상원의 인준을 통과했다. 하워드 제독은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출신 여성 제독이기도 했으며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대장이 되었다. 던우디, 울펜바거 장군이 상대적으로 한직인 군수사령관에 머무른 것과 달리 해군참모차장직은 유럽, 북부, 태평양 등의 통합군사령관으로의 영전이 충분히 가능한 보직이다.[84] 여기에 하워드 제독의 4성 진급으로부터 1달도 되지 않아 공군에서 태평양공군사령관에의 여성 대장 보임이 발표되었다. 非파일럿이긴 하지만 특수전자전기 승무원으로 활동한 로리 로빈슨 중장이 그 주인공. 던우디, 울펜바거, 하워드 세 대장의 보직이 상대적으로 요직이라기엔 힘든 보직인데 태평양 지역의 공군을 전부 지휘하는 중책을 맡는 태평양공군은 그 무게감부터가 확 다르다.

2015년 6월 8일에는 재닛 울펜바거 대장의 후임으로 엘런 폴리카우스키 중장이 대장으로 승진하면서 공군 군수사령관에 임명되었다. 폴리카우스키 대장의 공군 군수사령관 취임은 미군 역사상 최초로 여군 4성장군 간의 이/취임 사례로 기록되었다.

2016년 4월 21일에는 로리 로빈슨 대장이 미 상원이 인준함에 따라 여성 최초로 통합군사령관인 북부사령관 겸 NORAD 사령관[85]으로 임명되었다.

해안경비대는 중장까지 오른 비비앙 크리어가 있고 미 해병대도 중장까지 오른 캐롤 머터가 있다. 머터는 미군 최초의 여군 중장이기도 했다. 해병/해경의 경우 4성 티오가 꼴랑 2개 뿐이라[86] 여성을 특별히 배려해줄 여유까지는 없기에 앞으로도 해군과 공군, 드물게 육군 위주로 여군 4성이 배출될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군함들 중에도 여성의 이름을 따서 지은 배들이 있다.[87] 그러나 그 중 임의로 여자 이름 붙인 배들도 많은지라 실제 인물의 이름을 딴 사례는 적은 편이다. 또한 여성 정치인이나 여성 과학자가 아닌[88] 군인에게서 이름을 따온 경우는 드문데, 2차대전과 냉전기에 컴퓨터 과학자로서 정보부대에서 활동하며 컴퓨터공학사에 한 획을 그은 그레이스 호퍼 해군준장이 그 주인공. 그녀의 이름은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DDG-70에 남아 있다. 현역 군함들 중 여성의 이름을 따온 것은 주로 군수지원함이나 수송함 등이 많은데, 주력 전투함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온 사례는 알레이버크급의 호퍼와 DDG-80 루스벨트[89] 뿐이다.

2015년 8월 21일에 2명의 최초 여성 레인저 과정 수료자가 탄생하였다.

2015년 12월 카터 장관이 여군들을 위한 모든 전투 병과에 개방 하였다.

2016년 4월 여군인 크리스틴 그리스트 대위가 보병 전출이 승인되었다.링크6,

2016년 10월에는 여군 10명이 보병 과정에서 졸업하였다.

2016년 12월 1일 에는 13명 여군들이 기갑 장교로 졸업하여 첫 탄생하였다.링크7,

2017년 1월 5일에는 미 해병대 여군 사병 3명이 보병으로 첫 배속되었다 .링크7,

러시아 시베리아 교도소 출신 마리아 다움 일병이 전투 보병이 되었다.링크8,

미군 특수부대에서 GI 제인이 현실로 탄생하였다.링크9

2021년 3월 6일, 로리 로빈슨에 이어서 두 명의 여군 장성이 통합군사령관에 지명되었다. 육군항공 출신으로 북부육군사령관을 맡고 있는 로라 리처드슨 육군 중장이 남부사령관[90]에 지명되었고, 수송기 출신으로 공군기동사령관을 맡고 있는 재클린 밴 오보스트 공군 대장이 수송사령관[91]에 지명되었다. 그리고 4월 19일, 해안경비대에서도 태평양지구대사령관을 맡고 있던 린다 파간 중장의 해안경비대부사령관 지명이 발표되면서 여성 대장을 배출하지 못한 군종은 해병대와 갓 창설된 우주군만 남았다. 2021년 10월, 4성 직위인 보건차관보에 트렌스젠더인 레이첼 르빈이 임명되었다.

2022년 4월 5일, 린다 파간 해안경비대부사령관의 해안경비대사령관 내정이 발표되었다. 여성 최초로 한 군종의 최선임자가 된 것이며, 비록 해안경비대가 전시에만 국방부에 배속되기는 하지만 여성 최초로 합동참모본부에 입성한 것이다. 그리고 해군에서도 미셸 하워드 대장 이후로 두 번째로 대장이 배출되어 4월 25일, 리사 프란체티 합동참모본부 전략계획정책본부장의 해군참모차장 내정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2023년 7월 21일, 리사 프란체티 대장의 해군참모총장 내정이 발표되었다!

원래 미군은 APFT라는 체력검정 프로그램을 썼는데, 근 40년간 채용되었으나 체력검정 그 자체로 부상을 입거나 전역하는 사람들이 나오자 최신 연구결과를 반영해 ACFT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때 APFT와 달리 ACFT는 남녀 상관없이 체력검정 기준을 동일종목 동일기준으로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레그 턱'이라는 종목의 불합격률이 남성 10%, 여성 65%가 나오고, 누출된 11개 대대의 경우 남성 30%, 여성 84%라는 불합격률을 보였고, 이 사안은 미국 의회에까지 가게 된다. 결국 의회는 "21세기의 미육군은 군의관, 사이버전 전문가와 같이 다양한 기술과 능력을 갖춘 자원을 끌고 와야하는데 전투병과에게 요구되는 체력기준을 만인에게 똑같이 요구할 수 있냐''라고 말했고, 미군은 새로운 체력 검정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며 당분간은 레그 턱과 플랭크 중 하나를 선택해서 할 수 있게 했다. 물론, 크리스틴 그리스트[92]와 같은 몇몇 여성 군인들은 전투병과 한정으로는 동일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93]


7.3. 영국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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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본토 항공전의 숨은 주역들. 2차 대전 당시 레이더 기지의 오퍼레이터와 방공포병 임무를 맡아서 맹활약했다. 후방 지원 임무에도 종사했다.

선진국이 대체로 그렇지만 여군이 해군함정에도 근무하던데 1991년 걸프전 때 한 구축함에 근무하던 여군들 중 33%가 임신해서 행정 인원 몇명 빼고는 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군에는 임신한 여성은 행정쪽이 아닌 이상은 실전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고 한다.

또한 영국의 경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왕녀(공주) 시절에 여군으로 입대해 보급장교[94]로 임관해서 참전 한 경력이 있으며, 앤 공주도 현역 군인이며 현 영국 육군 기병 연대 대령이다. 영국은 왕실의 구성원이면 반드시 남성.여성 모두 가리지 않고 모두 영국 국왕의 명령에 따라 장교로 입대한다.


7.4. 러시아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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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청소년 사관학교생(사진은 중학생 나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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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 대전, 대조국전쟁 때마다 급하게 투입했지만 이때 큰 활약을 펼친 게 인상적이었던 것인지, 여군 양성에 아주 적극적이다. 소련도 일반 소총수로는 여군을 배치하지 않았지만 소련의 여군은 통신병이나 간호병과 같은 전통적인 여군의 영역은 물론, 전차병, 저격수나 전투기 조종사[95]로서도 큰 활약을 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영웅이 된 한 여성 저격수는 "저격수는 인내심과 꼼꼼함이 요구되기 때문에 여성에 맞는 병과다."라고 주장했다. 소련의 여군은 독소전쟁에서 크게 활약했고 많은 여군이 소비에트연방영웅이 되었다.[96] 이런 여군들도 2차 대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퇴역 조치가 내려졌다. 소련이 해체된 오늘날에도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가 된 참전용사들은 국적 불문하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를 비롯한 주변 CIS 국가에서 모두 존경받고 있다.

다만 당대 소련 여군들은 영광을 남자들에게 빼앗긴 채 침묵했다는 이야기도 한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온 후에도 자신의 PTSD, 군대에서 몸을 함부로 굴린 문란한 여자라는 지역사회의 편견으로 고통받은 여군들이 많았으며,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의 여류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대조국전쟁에서 활약한 여군 용사 200여명 이상을 인터뷰한 논픽션으로, 당시 여군들이 겪은 고통과 투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쨌거나 이때의 여군들의 활약은 후세의 여군들에게도 계승되는 일정한 영향력과 전통으로 남아, 소련이 무너진 뒤에도 사관학교에서 따로 여성을 받고 모스크바에는 중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하는 여군 학교까지 있다. 생도(?)들의 평균 연령은 14세 정도.(위 사진 참고) 다만, 여성은 징병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2차 세계대전에 여군으로 가장 많은 성과를 올린 러시아는 5만 명의 여군이 존재함에도 2차 대전 이후로 직접전투에는 참여시키지 않고 있다. 여성을 전투와 비전투로 구분하는 규범이 존재하지 않지만 이 불문율은 모든 부대에서 암묵적으로 지킨다고 한다. 그리고 분쟁지역에서 파병은 이루어지지만 전투참여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구를 늘릴 필요가 있는 러시아로서는 아이를 낳아야 할 중요한 여성들을 전투에 내보내기 힘들 것이다. 2019년 이후로는, 러시아 병역법이 바뀌어, 여군도 보병, 저격, 전차병, 포병 등 전투병과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직은 특공/특임대와 특수부대는 지원하지 못한다.

하지만 러시아 여군 장병들 자체는 남군에 뒤지지 않는 애국심과 전우애가 투철하고 강인한 병력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러시아 공수군 사령관의 찬사.


7.5. 이스라엘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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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인구가 적다 보니까[97] 상비군이 20만도 안된다. 그래서 여자도 징병을 해서 부족한 병력을 보완해야하는 형편이다. 보통 후방 지원인력으로 보내며, 전투부대에서 복무하는 여성의 수는 매우 한정적이다. 중동전 때도 평이 매우 안 좋았고, 전후에도 사람이 없다보니 실험을 몇 번 해봤는데 매우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사방을 둘러싼 적국들에게 심한 숫적 열세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에서도 여군은 현재 전투에 거의 투입하지 않는다.

영역되어 나온 자료들을 어쩌다 보면, 좋게 보고 써주려고 상급부대에서 노력했지만 사실상 돌려까버리는 보고서를 볼 수 있다. 공문서와 군문화에 대한 개념을 키워드로 가지고 해석하면 원문이 아니라 영역인데도 더 적나라한 결과를 알 수 있다.

전에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병영을 쓴다고 잘못 알려져 있었지만 당연히 남녀를 구분해서 병영을 쓴다고 밝혀졌다.

한국에서의 인식과 달리 이스라엘도 여자들이 군대 안 가려고 결혼 등의 여러가지 방법을 쓰는 식[98]으로 해서, 실제 여성 징집률은 50% 정도이다. 최근에는 더 낮아졌다. 남자도 징집률이 70%대를 명목상 유지하는 수준에서 더 낮아지고 있다.[99] 여군의 병력 비율도 의외로 높지 않은데, 2014년 이스라엘 군 발표에 따르면 현역 군인 176,500명 가운데 여군이 33%인 58,000여명이다. 그리고 병역을 마친 여성의 흡연문제는 상당히 심각한데, 이스라엘은 여성의 흡연율이 매년 남성을 앞지르거나, 혹은 같은 비율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들이 가기 전부터 흡연자였던 게 아니라 대부분 군대에서 흡연을 시작한다는 게 문제.[100] 후일 출산하는 태아의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 자체에서 금연 캠페인을 벌이고는 있지만 별로 효과는 없다.[101] 부대에 따라서 금연에 성공한 여군은 남성보다 포상휴가를 더 주기도 했는데, 이게 남성병사와의 형평성 문제가 돼버려서 금연포상휴가의 일수 차이는 없어져 버렸다.

성범죄의 문제가 심각한데, 90년대에 보고된 군 조사보고서가 이스라엘 전체를 발칵 뒤집놓았다. 그것은 바로 여군의 40%가 직접적인 성범죄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는 것. 성범죄에는 강간, 윤간(집단강간)과 같은 성폭행, 강제 임신과 성희롱과 성추행, 성적인 모욕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는 것이다. 상관들의 성상납 요구나 성매매도 흔하게 일어난다고 보고되어 여군 징병의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이 문제는 90년대만의 아닌 현재에도 일어나는 현재진행형이다.[102] 2014년에도 여군 8명 중 하나(즉 하루에 여군 1명)가 성폭행과 성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와 이스라엘에서 문젯거리로 떠올랐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성범죄를 단속하고 장병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지만 이게 고쳐지기는 커녕 더욱 심하게 일어나서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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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모티베이션 포스터.

이스라엘 여군의 시궁창스러운 군생활을 말해주는 이스라엘 영화인 제로 모티베이션 이 있다. 이 영화 보면 실제 이스라엘 여군들의 생활이 이스라엘군에서 홍보하는 것과 달리 어느 군대 할 것 없이 시궁창스럽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103] 제작자인 이스라엘인 여성 감독 탈야 라비 감독도 본인이 군생활을 했고[104] 이스라엘 전국의 여군들과 인터뷰하며 그들의 군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제작한 영화다.[105] 이 영화의 등장한 여군들도 실제 여군들처럼 비전투병과로 실전에 투입되지 않는다. 제로 모티베이션은 2014년 이스라엘 내에서 관객 60만명을 끌어모아 상영된 모든 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했다.[106] 라비 감독은 인터뷰에서 군대가 이스라엘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밝혀 이스라엘은 실질적으로 군국주의 사회라고 비판하였다. 참고로 영화의 주인공 조하 역할을 맡은 배우 데이너 이브기는 세파르딤이라서 다른 아슈케나짐 배우들과 외모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107]

이원복조선일보에 그렸던 만화에선 90년대 이스라엘군 성폭행 실태를 꼬집은 적이 있는데, 여군 성폭행이 여기도 장난이 아니라고 나온 바 있다. 그런데 그 만화의 결론은 그래도 그런게 문제시되는 시점에서 이미 (당시)한국군보단 낫다(...) 였다.


7.6. 노르웨이군[편집]


2015년 중으로 유럽 최초로 여성도 징병, 노르웨이는 병역 거부자는 군복무가 면제되고 공익근무로 전환되기 때문에 실제로 여성 군복무자는 별로 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남군과 같은 내무반에 배치된다. 1997년 이후 출생 여자에 대한 징병제 실시로 인해, 남녀 공용 내무반 실험을 실시해 본 것으로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이 있다


7.7. 자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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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1일 기준으로 자위대의 여성 자위관은 아래와 같다.
구분
장교
준사관
부사관

합계
인원
1,926
31
6,702
3,691
12,350
비율
4.5%
0.7%
4.8%
9.6%
5.5%

1952년 자위대는 간호직으로 여성 장교를 선발했다. 1967년부터 간호를 제외한 직종에도 여성을 받았고 1992년에 방위대학교에선 여성 사관생도를 받았다. 2014년부턴 방위의과대학교엔 간호학과가 신설될 예정이다.[108] 과거엔 전투직종을 받지 않았지만 현재는 육상자위대는 전 직종에 개방, 해상자위대도 함종 상관없이 모두 개방[109], 항공자위대도 모두 개방했다.
진급 상한선준장급인 장보(將補)다. 자위대의 장관급 자위관엔 대장급에 해당하는 막료장(幕僚長)과 소장, 중장급에 해당하는 장(將)과 준장급에 해당하는 장보(將補)가 있는데 이 장보를 1종[110]과 2종[111]으로 나누어서 소장급에 해당하는 업무를 맡기기도 한다. 여성 장성들이 맡은 보직을 볼 때 한국군과 마찬가지로 준장급인 장보가 사실상 상한선이라 봐도 무방하다. 2014년까지 자위대에서 여성 장관급 자위관은 3명이 나왔는데, 첫 장관급 자위관인 사에키 히카루(佐伯光) 해장보(海將補)는 군의관이었다.[112] 공장보(空將補)인 카지타 미치코(梶田ミチ子)는 간호장교는 아니었는데 전역하면서 특별진급했다. 즉 본래는 대령급인 일등공좌(一等空佐)로 전역했을 케이스. 카시하라 케이코(柏原敬子) 공장보는 자위대의 3번째 여성 장관급 자위관이다. 육상자위대에서는 아직 여성 장관급 자위관을 배출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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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이돌인 후쿠시마 와카나(福島和可菜, 1982-)는 육상자위대에서 4년간 병으로 복무한 뒤 병장에 해당하는 육사장(陸士長)으로 전역했고 전역한 뒤에 아이돌로 데뷔했다. 친동생인 후쿠시마 마이(福島舞, 1985-)도 육상자위대에서 2년간 병으로 복무한 뒤 상병에 해당하는 일등육사(一等陸士)로 전역했다. 동생은 전역 후 연예계 활동을 하다가 현재는 쉬는 상태. 위의 사진은 전역 후에 찍은 것이다.

여군은 아니지만 한국으로 치면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격인 국방대신에 여성이 2명 배출되었다. 실제로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 하면 일본은 방위대신이 참석한다. 한 명은 2020년 기준 현재 도쿄도지사인 고이케 유리코 이고, 다른 한 명은 이나다 도모미이다.


7.8. 중국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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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키[113]웃을 때 앞니 6개 노출, 됨됨이, 언어 표현력, 특기와 예술적 기질. 그리고 중국공산당원일 시 가산점 추가.

행사 도우미 선발 기준이 아니고, 중국에서 낭랑장미라고 불리는 중국 여군 선발 기준이다. 군대 심사 기준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국내외 사방에서 "이게 군인이냐 미스 차이나냐?"라면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그래도 현재는 전투 병과가 있긴 하며, 여성 전투기 조종사도 보인다.

이스라엘처럼 인구가 적은 것도 아니고, 중국군이 꽤 인기 있는 직장이여서 여군을 굳이 전투병으로 쓸 이유가 전혀 없다 보니, 대내외 행사 정도에나 내보일 상징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당장 저기 여군 심사기준만 봐도 거의 대부분의 중국 여성 평균 외모보다 더 우월하며, 키도 중국 여성은 물론이고, 중국 남성의 평균키(169cm)보다 크다. 키만 놓고 보면 중국 여성판 프랑스 제국 근위대다. 물론 실제로 인간흉기였던 프랑스 제국 근위대와 달리 여군이라는 한계 때문에 말 그대로 그냥 군대 홍보용 장식품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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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출신 여군 의장대원인 먼자후이(門家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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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셴위(李賢玉, 1965 ~ ) 소장. 조선족으로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출신이다. 1982년 헤이룽장성 대입시험 이과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베이징대학 무선전자물리학과를 졸업, 중국 인민해방군 제2포병부대 통신병과에 입대 후 기술장교로서 제2포병의 핵무기 지휘 통제 시스템 "중국검망"을 배치하는 등의 업적을 쌓아 제2포병 장비연구원 엔지니어 총책임자 역임. 중국 정부 선정 우수과학기술인 등에 뽑혔으며, 2015년 8월 제2포병 장성급 인사를 통해 대교에서 소장으로 진급하여 조선족 최초의 여군 장성이 되었다. 계급장의 별이 육각별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병력에 대한 지휘권은 없는 기술장교지만.

여담으로 1955년에 여성 장군으로 그것도 소장을 배출해냈다. 국민당과의 게릴라전을 이끌던 전투보직의 장군이었다.

1938년 헤이룽장성 무단장시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강에 투신하여 자결한 동북항일연군 여성대원 8명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강변에는 8인의 동상과 기념비가 거대한 규모로 설치되어 있고 '팔녀투강(八女投江)'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중에서 2명은 조선인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7.9. 북한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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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모두 군인인 나라답게 여군 역시 그 숫자가 많다. 여군의 수는 24만명으로 세계 1위이다. 2위는 미국 21만명, 3위는 중국 20만명. 한국인은 물론이고 일본인, 중국인보다도 평균키가 작은 만큼 여군의 키도 다른나라 여군들보다 작다.

역시 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군에도 여성이 상당수 복무하고 있으나, 형식적으로는 2003년까지 군대는 모두 지원제였다. 하지만 군대를 가지 않으면 노동당 입당을 못하니[114] 사실상 반(半) 징병제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징병제로 바꿔버렸는데, 그러면서 딱 한 가지 좋아진 점이라면 이제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군인이 될 수 있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이 때문에 남한에 비해서 여군이 많다. 통일부에서 발간하는 북한의 이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의 각 제대별 여군 비율은 15-30%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은 교량 등 주요시설물의 초병, 교환수, 무전수, 기동통신(우편)중대, 의무병, 보위부(군사경찰) 등을 비롯하여 방공포 운용에도 배치된다. 특히 14.5mm 고사기관총 부대는 전원 여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Il-28같은 폭격기의 경우 승무원이 모두 여군으로 교체되었고 각종 스파이, 또는 특수 목적을 위해 양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대부터 여군 장성이 나오기 시작하기도 했다. 다만 눈에 띠는 보직을 가진 사람은 없는 편. 지금까지 5명이 나왔다고 한다. 여기도 여성 파일럿이나 여성 특수부대원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 더욱 심각한 지경의 병역부조리에 시달리고 있으며 여군에 관련된 성희롱 성폭행 성상납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군에 비해 눈에 띄는 다른 점이라면 이런 성범죄가 동성간에도 이루어진다는 것(!) 여기는 군복무를 엄청나게 오래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남자 얼굴도 못보는 경우도 많다보니 같은 여성인 후임이나 하급자에게 성욕을 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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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에 조금향, 림설이 최초로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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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향, 림설은 2016년 9월 원산 에어쇼에서도 MiG-21을 조종하고 관람객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등, 북한 공군의 아이돌 격 대우를 받는것으로 보인다. 림설은 2019년 11월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7.10. 베냉군[편집]


전신이었던 다호메이 왕국의 여전사 정예부대가 존재했던 역사를 따라서, 현재도 남녀공동징병제이다.


7.11. 인도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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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군 최초의 여군 소장(계급) 거트루드 앨리스 람

1976년부터 여군 소장을 배출해냈다.


7.12. 기타[편집]


여군이 없을 것 같은 이슬람권 나라에도 꽤 많다. 되려 여성 민간인 수색을 위하여 여군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개방적인 터키는 기독교권, 서구권 대다수 나라들은 여군을 보기 어려웠던 이미 1930년대에 여군을 받아들였으며 세계 최초 여군 조종사 및 여군 전투기 조종사가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의 양녀 사비하 괵첸(Sabiha Gökçen) 대령이다. 애초에 쿠란에 여군 이야기가 나왔고, 여군에 대한 마호메트의 칭찬도 있었던 만큼 쉽게 받아들여졌다.

파키스탄은 여성 소장(샤히다 말리크), 시리아레바논이나 이집트, 아랍 에미리트는 여성 영관장교까지 나왔고 그 밖에도 요르단이나 오만에서도 여군 위관장교가 있다.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에도 여군이 있다. 다만 여긴 여군들이 죄다 부르카 및 아바야 차림으로 복무해서 불편할 듯싶으나, 사복 차림(?)으로 있는 여군을 모르기에 되려 반정부세력이 골머릴 앓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선 테러 일으키려던 탈레반 세력이 갑자기 총으로 반격하여 대응한 여군에게 사살당한 일도 있다. 물론 위험성은 크지만 그만큼 여자로서 돈벌이도 상당한데 아프가니스탄 여군은 초봉이 165달러에 위험수당 및 성과수당도 별도로 지급한다. 참고로 일반 사병 월급이 75달러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탈레반조차도 여성 탈레반을 비밀리에 만들려고 했다가 여성에 대한 모든 사회적 활동을 금하던 자신들의 논리에 모순되기에 흐지부지된다고 알려졌지만 결국 이것들도 여성 탈레반을 조직하여 자폭공격을 벌이고 있다.

201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여군을 모집 시작하였다.#

현재 러시아와 전쟁중인 우크라이나도 여군이 6만명 참전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리대 등 여성용품이 부족하고 화장실 문제로 온갖 질병에 걸렸다고 전쟁 장기화로 인한 문제를 토로했다. “생리대 부족, 온갖 질병 걸렸다”…우크라 여군 고백, 무슨일이

8. 대한민국 여군의 보급품[편집]


보급품/여군 문서 참고.


9. 창작물에서[편집]


상업성에 치중하는 미디어에서는 주로 몸매가 드러나는 전투복과 복부가 드러나는 민소매나 가슴만 가린 탱크탑, 핫팬츠, 미니스커트 등으로 섹스어필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주된 목적은 색기담당. 또는 제복, 군복, 베레모 차림에 주인공을 차가운 태도, 딱딱한 말투, 고지식한 성격으로 대하지만 알고 보니 덜렁이더라 혹은 츤데레더라 등의 클리셰 소재를 사용하거나, 쿨뷰티를 밀고 가다가 쿨데레로 변하는 캐릭터들도 있다. ## 특히 정복전투복마냥 입어대는 일이 흔한 서브컬쳐 쪽이 그렇다.

전쟁을 주된 소재로 다루는 작품에서야 당연히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이 여군이지만, 일상물에 속하는 장르에서는 주변인물들과의 괴리가 심해져서인지 아예 나오지를 않거나, 조연 중에서 이러한 특징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물론 대전액션게임에서는 싸우는 여성이라는 특징으로 한 둘씩 등장한다.

드라마, 게임, 영화 등에 나오는 여군 캐릭터들은 90%의 확률로 강인한 비정규군 여전사가 아니면 주인공을 보좌하는 정보장교이며, 후자일 경우 또 다시 90%의 확률로 중위이다. 마치 흑인 남성 캐릭터들이 개그 캐릭터가 아니면 과묵한 탱커 역할을 맡는 것과 같이 일종의 공식이 된 듯. 다만, 밀리터리 마니아를 노린 작품에서는 일선에서 직접 싸우는 사병으로서의 여군도 나오곤 한다. 미소녀와 무기가 같이 나와줘야 하기 때문에.[115]


제임스 카메론의 1984년 영화 터미네이터(영화)에서는 기계와 싸우는 여군전사의 모습을 사뭇 진지하게 그려내었다.

기동전사 건담을 비롯한 메카닉물에서는 여성 파일럿이 다수 등장하는데, 어째서인지 여군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형편이다. 아무로 레이웃소 에빈소년병으로 인식되지 않았던거랑 같은 맥락이라 보면 될듯.

여기사(공주기사), 싸우는 미소녀, 총을 든 소녀, 투희, 여전투원, 여간부와 겹친다.

군대가 워낙 폐쇄적인 현시창 조직이기 때문에 성범죄 문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9.1. 관련 작품[편집]




9.2. 관련 캐릭터[편집]


전직도 포함.


10. 영상 자료[편집]


  • TV내무반 신고합니다 14화 "국군간호사관학교" 1999년 1월 25일 KBS

  • TV내무반 신고합니다 17화 "육군 특수전 사령부" 1999년 2월 15일 KBS

  • "해병 최초 10인의 여전사" 2003년 9월 29일 KBS

  • 30분 다큐 - "우리는 해병대 여전사들" 2009년 9월 28일 KBS



11.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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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르토사(Tortosa) 기사단으로 알려진 기사단의 다른 이름이다.[2] 그러나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3] 원문은 '여정'이며 '예청'이라는 말은 제주방언에 의한 형태이다.[4]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부대를 이끌었다는 기록도 있다.[5] 일본 기독교 역사의 중요 인물인 니지마 조의 아내이기도 하며, 야에를 주인공으로 하는 NHK 대하드라마 야에의 벚꽃이라는 작품도 존재한다.[6] 무함마드의 아버지 압둘라 이븐 압둘 무탈립의 이복 여동생이다.[7] 고위 성직자 셰이크의 아내라는 뜻[8] 출처: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들/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289~293쪽[9] 이것의 극단적인 예가 3국 동맹 전쟁파라과이.[10] 특히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 시가전에서 여군 저격수의 활약상이 꽤 있고, 다른 전투에서도 여군 장교들의 활약도 꽤 볼 수 있다.[11] 후방 여성 지원부대[12] 처음에는 "집에 가서 애나 볼 것이지…" 하던 책임 장교도 나중에는 "전투의지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특정 무기를 다루는 데는 남자보다 더 낫다고 봅니다. 아주 섬세하게 다루거든요."라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13] 이 여왕 때문에, 영국은 왕실과 왕실에 속한 여성 귀족들도 예외없이 영국군 장교로 의무 징병 대상이 되어 최소 5년 이상을 복무해야 한다.[14] 일본 남학생은 '철혈돌격대'[15] 에이스도 2명 배출하였다. 이름은 "릴리야" 리디아 리트뱌크, "카탸" 예카테리나 부다노바이다. 2명 다 1943년에 전사하였다.[16] 헤로도토스, 히포크라테스[17] 당시의 총은 명중율과 연사력이 좋은 편이 아니였기에, 머스킷 사수도 총 몇발 쏜 다음에는 얄짤없이 근접전을 벌여야 했다.[18] 남녀 힘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나면 역도의 경우, 남자 경량급 세계신기록이 체중이 거의 2배 이상 나가는 여성 중량급 세계신기록보다 더 높다. 즉, 웬만해서 여자는 남자를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 #[19] 물론 바로 윗 문단에도 있듯이 예외는 당연히 존재한다. 장미란 김연경과 운동 안 하는 약골 남성을 비교하면 그렇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20] 해군이 아닌 해운업계도 전형적인 남초 직장으로 꼽히는데, 당장 상선에 승선하여 근무하는 해기사들 중에서도 여성을 보기 대단히 어렵다.[21] Women in the Military: Hearings Before the Military Personnel Subcommittee of the Committee on Armed Services, House of Representatives, Ninety-sixth Congress, First and Second Sessions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 소위원회 - 하원 - 제96회 1차, 2차 회의) 1979.11.13~16, 1980.2.11 246p[22] 카라칼 대대(33대대) 외에도 요르단 계곡의 아리예(사자) 대대(41대대), 바르델라스(치타) 대대(227대대), 계곡의 아리예 대대(47대대)라는 혼성 부대들이 더 있다.[23] 현존하는 군대들 중 실전 경험과 전쟁 경험 횟수가 가장 많은 군대 중 하나이며, 이와 맞먹는 군대는 미군을 제외하고는 없다. 수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얻은 철저한 원리원칙, 실용주의적인 군대인 게 이스라엘군이다. 두발 규정도 상당히 자유롭고 전쟁에 아무짝에 쓸모없고 방해만 되는 똥군기도 거의 없으며 상관을 부를 때도 이름으로 호칭할 정도다. 군내 규율만 철저하게 지킨다면 상하관계의 쓸데 없는 군기잡이가 거의 없고 많은 휴가와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군대이기도 하다.[24] 가장 가까운 예시로 동일한 훈련방식으로 극한까지 훈련하고 있는 남녀 스포츠 선수들의 세계 기록을 비교해 본다면, 원초적인 차이의 극복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축구배구 등 대다수의 여자 대표팀 선수들의 경우에도 남자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훈련한다. 사이에 네트를 둬 직접적인 몸싸움을 요구하지 않는 배구는 구기종목 중 남녀의 차이가 그나마 가장 적은 스포츠인데도.[25] 당시에는 현대에 비해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전반적인 신체조건이 열악했음을 감안해야 한다.[26] 현대전의 각국 특수부대들의 경우 임무에 따라 30kg은 우습게 넘는 군장을 다양하게 메고 다니기는 하는데, 그 경우 하루 행군거리가 짧아지는 등 그에 따른 부담도 크다.[27] 역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젊은 남성들이 군대에 들어가자 600만명의 여성들이 대신 군수품을 생산했다. 또 러시아 여성들은 난방도 안되는 숙소에서 잠을 자며 공장을 24시간 돌린 결과 이전의 10배에 달하는 군수품을 만들어내다 사망하기도 했다. (출처: NGC Apocalypse The Second World War) 전쟁에서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본다면 전장에 나가지는 않았어도 이들의 공훈은 대단한 것이다.[28] 여자의 경우 키 184cm 또는 체중 88kg 이상이면 군 입대가 불가능하다.[29] 여기서 1년전 이미 여생도를 선발한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왜 상대적으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 조용했느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공군사관학교는 애초에 항공기 조종에 지장이 있을 저시력자들을 애초에 지원자격에서 제외해 버렸으니, 그 과정에서 이미 상당수의 안경을 착용한 저체력 여학생들이 지원할 생각을 접어버렸을 것이다.[30] 이들 소련군 여군들은 야간 폭격 작전으로 독일군 남군들을 밤마다 벌벌 떨게 해 잠도 못 자게 만들었다 하여 '밤의 마녀들'이라 불렀다.[31] 소련 여성 저격수 학교의 졸업생은 총 1,061명으로, 이들이 사살한 독일군이 약 12,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의 자신들의 10배 이상을 잡았단 소리다.[32]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은 여성 에이스 2명을 배출하였는데,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여성 에이스는 이 2명이 전부다.[33] 후한 말기의 중국에서도 촉한을 세운 유비에게로 시집간 손권여동생이 시녀들에게 칼을 차고 다니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34] 미국의 여성 참정권도 1차 세계대전 당시 군대에 간 남성들 대신 여성이 노동과 사무직 일에 진출하면서 확대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1차대전 종료 시기에 대부분의 주에서 참정권이 인정되었다.[35] 물론 이들의 권력은 부대 통솔권에서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휘하에 비슷한 비율의 여성 부사관이 있어야 할 것이다.[36] 한국군의 전투 기록에도 여성들이 선무 공작원으로 활동했다는 사례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37]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쿠르드족 여군 같은 경우에는 다에시한테 포로로 잡혔다가 강간을 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 부분은 각군 사관학교의 여학생 입학과 여군 부사관의 임관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던 1998년 전후로, 특히 해공군에서 심각하게 우려했던 문제였다. 여군 파일럿이 적진에 추락하거나 해군 함정 침몰로 적군 해역으로 표류할 경우 생길 문제가 육군보다 심각하게 고민되었을 부분이었다. 여성 인식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시절부터 우려했을 정도이니 뭐...[38] 의전상으로는 좌천이지만 실질적인 권한을 생각하면 이건 영전이다. 미군에서 합참의장과 합참차장, 각군의 참모총장은 의전상으로는 미군에서 가장 윗라인에 있으나 실권은 거의 없는, 말그대로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각군 장관의 참모역할을 한다. 반면 NATO 사령관을 겸직하는 미군 유럽사령관의 경우 통합전투사령관 중 한명으로 미군의 유럽방면 작전권을 행사하는 실권이 큰 보직이다. 당장 유럽사령관과 동급인 미군 인도-태평양사령관이 대한민국과 일본 등 태평양 연안 국가에 미치는 군사적 영향력을 생각해보자.[39] The Invisible War[40] 한 현역 해병은 신원을 비공개로 처리하긴 했다.[41] 파네타 장관의 인사청문회 장면도 극중에 나온다.[42] 한 자료에 의하면,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자위대의 여군은 5.5% 수준이며 그중에서도 장교는 40%이고 부사관은 50%이고 병은 10%이라고 한다.[43] 어느 나라 군대이든 간에 모집 과정은 선발 과정에서 체력 측정무조건 들어가기 때문이다.[44] 1966년에 병으로 입대하여, 1996년 12월 대령으로 전역.[45] 당시 교육받지 않은 여성들의 흔한 선택지인 식모도 의식주 정도는 챙겨주고 급여도 넉넉하진 않았지만 병보다는 높았다.[46] 잠수함은 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여군들을 위한 구역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여군이 없다.[47] 가톨릭에서는 "세례 받은 남자만이 (거룩한) 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가톨릭교회법 제1024조)." 따라서 교회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가톨릭 군종 신부는 영영 없을 전망이다. 원불교 교무는 못 나올 이유는 없지만 숫자가 너무 적어서...[48] 이 때문에 매년 9월 6일은 '여군의 날'이다.[49] 지대장이 대위인데 장교는 지대장 혼자 뿐이다. 그 밑의 팀장은 상사급.[50] '자신 위주의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 지도자의 입장에서 남을 위해 일하고 싶어' 장교로 임관했다는 취임사를 남긴 바 있다.[51] 현재는 모든 여군의 결혼임신, 출산이 허용되고, 기혼자 및 이혼자도 입대가 가능하다. 다만 임신 중인 경우 장교나 부사관 양성교육만큼은 입교할 수 없다. (입교 전 초음파 검사로 임신 여부를 확인한다.) 그리고 양성교육 중 임신하면 퇴교 조치된다. 양성교육은 몸으로 뛰는 훈련이 많으므로 어쩔 수 없는 방침이다.[52] 전 여군 헬기 조종사(육군)였던 피우진 중령의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읽어보면, 여군 장교를 성노리개로 생각하는 견공자제분스러운 고위급 남군 장교(지휘관)의 일부 사례들이 나온다. 심지어 자기 부하인 여군 장교를 그런 남군 장교(지휘관)에게 상납하던 악질 여군 장교도 있었다고 한다.[53] 당시 시대가 미스코리아에 얼마나 미쳐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1958년 한국일보에서 세계 미인대회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미스코리아 대회를 시작했는데, 몸매를 보기 위해서 수영복을 입히고 심사했다. 그런데 이게 인기를 끌어, 뭐만 하면 무조건 수영복 심사를 했다. 어느 정도냐면, 주부교통왕 선발대회에도 수영복 심사를 할 정도. 여군 수영복 심사도 이의 연장선으로 봐야 할 것이다.[54] 최초의 여성 연대장으로 알려져 있는 엄옥순 전 대령도 특전사 여군 중대장이던 이때 교관단에 포함되어 구대장을 했다.[55] 주로 여군 특전장교.[56] 주로 여군 특전부사관.[57] 미군 의장병은 별도의 특기가 아니라, 전 병과 실무 장병들 중 지원을 받아 선발, 합격 후 교육을 거쳐 의장대에 배치됐다 다시 자기 원 병과 관련 부대로 보내고 또 시간이 흐른 뒤 의장대에 배치되는 등 순환 근무하는 직책이다.[58] 괄호로 단서조건을 단 이유는 여러 시민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약 100여명의 소녀병이 있었던 것으로 거의 비슷한 결론이 도출되었기 때문이다.[59] 국군간호사관학교장. 준장 계급(별 하나)이며 간호병과의 수장이다. 기실 현재의 한국군에서 이 자리를 빼고 여군이 별을 달 확률은 0%에 가깝다. 허나, 2010년 12월 보병 병과인 송명순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최초로 전투병과 출신 여군 장성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송명순 준장조차 여단장으로 취임하지 못한 채 참모 보직에 있다가 몇 년 만에 예비역으로 물러났다. 2014년 여군 안보를 논하는 자리에서 예비역 준장으로 참가했다.[60] 병 출신들 중 병장에서 공로를 세워 1계급 특진했거나, 일반하사 등으로 하사가 된 경우는 병 전역자와 동일하게 전역 후 8년차까지만 편성되고 이후 민방위로 돌려진다.[61] 현행 2박 3일, 2016년부터 3박 4일, 2020년부터 4박 5일.[62] www.law.go.kr 군인사법 제41조.[63]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2012.1.17. 시행일 2012.4.18[64] 1990년까지는 간호장교를 빼면 모두 여군 병과라 임관할 때는 여군으로 임관했다.[65] 간호장교나 법무장교의 경우 준장급 지휘관 자리가 병과장 자리로 그 자리를 마치면 전역한다. 보병장교들 역시.[66] 간호사관학교장 2회 역임자로 1회 역임 때는 대령이었다.[67] 23기는 간사의 첫 4년제 기수이다.[68] 2017년 12월 진급, 최초로 여군 3명이 동시에 진급한 인사였다.[69] 2019년 11월 진급.[70] 남편인 임강규 준장도 장군이다.[71] 지속적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 학교장을 배출한 탓에 가장 많다. 양승숙 준장 이전까지는 영관급 장교 보직.[72] 참고로 남편인 이형석 장군은 육군사관학교 41기 출신이며, 소장으로 전역했다.[73] 2019년 11월 8일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사령관으로 진급하였다.[74] 육군의 경우 육사 58기부터 처음으로 여생도를 받아들였고, 현재 중령급에 배치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강유미 대령은 군법무관이라 진급이 빨랐다.[75] 그래도 현재 전투비행대대장을 비롯해 비행대대장을 역임한 여군 중령이 이미 존재하며, # 이들이 이제 갓 대령을 달기 시작했다. [76] 하지만 그간의 여군 장성에 대한 진급 배려를 보면, 기존 여군사관 출신들에 비해 육사 출신 여군의 경우 초임부터 전방에 배치되던 경우가 많아 차후 장성에 진급할 때에도 보다 나은 진급 당위성을 갖췄을 확률이 크다. 권성이 중령(육사 58기)의 경우 9사단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하여 소령 시절에는 전방사단 작전장교를 했고, 중령 시절 제28보병사단 대대장을 했는데, 이는 처음으로 여군이 전방 대대장을 맡은 사례이다.[77] 미군 역시 최초의 여성 대장 앤 던우디는 군수 병과 출신이다. 또한 공군에서 배출된 재닛 울펜바거(군수)와 로리 로빈슨(非조종 승무원) 대장 역시 조종사가 아니었지만 별을 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군에서도 4성 이하 계급이 최선임인 병과에서 여성 병과장이 배출된 적이 있음을 생각하면 이것에서 근본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78] 육군 항공사령관은 보병 특기 중장이나 항공 특기 소장이 임명되는 보직이며, 항공 병과 출신 사령관은 거의 본직을 최종보직으로 예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항공 특기로 항공작전사령관을 역임하고 이후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을 지낸 허건영 소장은 정말 특이한 경우이다.[79]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 C. 마셜 육군참모총장의 주도하에 혼성부대편제에 대한 실험이 벌어졌는데, 결과가 상당히 괜찮았던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다.[80] 참고로 2023년 3월 기준 미군 여군 중 4성장군이었던 사람은 총 10명이다. 구체적으로 육군의 앤 던우디로라 리처드슨, 해군의 리사 프란체티미셸 하워드, 공군의 로리 로빈슨, 매리언 밀러, 엘런 폴리카우스키, 재닛 울펜바거, 재클린 밴 오보스트, 해안경비대의 린다 파간이 있다.[81] 육군 나이트스토커의 헬기조종사, 그것도 준사관은 안 되고 장교만 지원 가능했다.[82] 옛 공산주의권 국가와는 달리 미 육군의 저격수 학교는 남성만 입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남녀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여성의 인권을 배려하려면 어쩔 수 없는 조치다. 애초에 군대 저격수들은 "잡혔다고요? 편하게 죽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세요."라고 말하고 있으니 여성이 잡히는 날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소련이 여군 저격수를 쓴 것도 말 그대로 '방아쇠 당길 손가락이 있으니까' 징집한 것이지 딱히 남녀평등을 배려해서 그런 게 아니다(...).[83] 의전상으로는 좌천이지만 실질적인 권한을 생각하면 이건 영전이다.[84] 그런데 이것도 딱히 낙관적이진 않은 것이, 하워드 중장의 경우 강습상륙함 쪽에서 주로 활동하느라 항모전단 경력이 별로 없다보니 참모차장 이후의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하기사 여군의 주요 전투함/전투기 배치도 테일후크 스캔들 이후에나 허락된 걸 감안하면 이런 현실은 어쩔 수 없다만. 결국 상기한 것처럼 최초 여성 통합군사령관은 상대적으로 여풍이 센 공군에서 먼저 배출하였다.[85] 미 본토와 캐나다, 멕시코를 담당하는 통합전투사령관으로 제5군, 함대전력사령부, 제1공군을 통제한다.[86] 각기 사령관/부사령관. 단 해병의 경우 합동참모의장, 합동참모차장, 통합군사령관 보직 등으로 티오가 2개 이상 늘어나기도 한다. 2016년 현재 미 해병대장은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과 로버트 넬러 해병대사령관, 존 팩스턴 해병대부사령관 3명.[87] 이는 배를 She라고 부르던 전통과도 어느정도 맞물려있다.[88] 해군의 차세대 해양조사관측함 시리즈인 닐 암스트롱급에서 RV 샐리 라이드가 건조될 예정이며, 좀 생뚱맞게는 Littoral Combat Ship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의 피해자였던 개브리엘 기퍼즈가 있다.[89]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아닌 엘리너 루스벨트와 FDR 부부를 기념하기 위한 명명[90] 남아메리카를 담당하는 통합전투사령관으로 제6군, 제4함대, 제12공군을 통제한다.[91] 육, 해, 공군의 모든 수송 전력을 총괄하는 통합전투사령관으로 공군기동사령부, 해상수송사령부, 지상배치배분사령부를 통제한다.[92] Kristen Griest, 미 육군 사상 레인저 스쿨을 이수한 최초의 여군.[93] 그러나 페미니스트들과 다른 여군들로부터 '내재화된 여성혐오자' 즉, 여성이 본인을 포함한 여성에게 '여성혐오적' 태도와 가치관을 보이는 여성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94] 다만 실제 하는 일은 운전병과 같은 일이였다. 그러나 명색이 왕실의 구성원인 공주의 신분이라 사병 계급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중위 계급을 부여받아 보급장교로 임관하였다.[95] 특히 밤마다 독일군을 폭격해대며 밤의 마녀들(Nachthexen, Ночные ведьмы, Night Witches)이란 별명을 얻은 제46근위야간폭격비행연대가 유명하다.[96] 특히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맹활약한 저격수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는 아예 성별을 떠나 소련군 저격수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네임드로 거론되고 있다.[97] 2019년 기준 900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중동의 국가들이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니지만 이스라엘은 그중에서도 인구가 너무 적다.[98] 아무 남자랑 성관계해서 임신해서 애 낳은 경우가 많다.[99]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한 때 사귀었던 슈퍼모델 바 라파엘리(현재 38세)도 이렇게 위장결혼으로 병역을 기피했다고 이스라엘 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참조. 하지만 라파엘리는 "군복무 안한거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며 청년을 억지로 끌고가는 이스라엘 정부와 국방부를 대놓고 비난했다. 그중에서 "나라를 위해 죽을 필요가 없고, 이스라엘에 사느니 뉴욕에 가서 사는 게 낫다"고 주장해 이스라엘 수꼴들의 미움을 받았다. 현재 라파엘리는 미국으로 이민가서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100] 막 제대한 여군이 군복 입은 채 지나가는 노인한테 담뱃불을 빌려도 전혀 흠이 되지 않는다.[101] 사실 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흡연문제가 심각했다. 좀 나라꼴이 잡히고 난 뒤 1958년에 흡연인구 통계치를 내보니 전체 인구 50%가 흡연자라는 통계치가 나왔을 정도.[102] 그러다보니 이스라엘 여성들이 군대가기 싫은것 1위가 바로 성범죄의 위험이다.[103] 항상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이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 사사건건 갈구고 부려먹어 짜증나게 하는 직속상관, 보상도 제대로 없는 무의미한 업무, 은근히 숨겨져있는 권위주의와 차별 등등[104] 행정병으로 2년 만기 제대했다.[105] 18세에서 20대에 군생활하는 이스라엘 병사들과 달리, 주인공 배우들이 이 영화를 찍었을 때 나이가 다 30대였다. 실제 인물과 배우의 나이를 정확히 맞춰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106] 저 숫자가 뭐가 많냐고 할 수 있지만, 인구 적고 물가 비싸서 영화 관람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이 정도면 굉장히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거다. 참고로 이때 이스라엘 전 인구가 700만 넘긴 걸 생각하면 대단한 거다. 한국으로 쳐도 5,000만 인구에서 500만 정도 보면 왠만해선 흥행성공으로 보는 걸 봐도.[107] 데이너 이브기는 아버지 모세 이브기가 모로코 출신의 세파르딤인데 아버지 모세 또한 이스라엘의 유명한 배우다.[108] 그 전엔 단기과정이었다.[109] 마지막 금녀의 공간이었던 잠수함에 대해서 2020년부터 여성 자위관의 근무를 허락했고, 2021년에 1기 잠수함 교육 훈련생 5명의 배출을 시작으로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110] 타군에서 소장이 맡을 법한 보직을 맡는다.[111] 타군에서 준장이 맡을 법한 보직을 맡는다. 단 대령급인 일좌(一佐)가 준장급 자리를 맡기도 한다.[112] 남편은 제27대 자위함대사령관인 사에키 세이지(佐伯聖二) 해장(海將). 해장은 해군 중장+소장에 해당.[113] 구체적으로는 170cm ~ 173cm. 딱 이 기준에 들어야만 선발된다. 여성 의장대무려 178cm. 참고로 남성 의장대는 선발 기준이 180cm 이상이다.[114] 특히 북한에서는 노동당 입당을 못하면 일상생활에 큰 제약이 간다.[115] 보병부터 전차병, 전투조종사, 특수부대원까지.[116] 군가를 모티프로 삼은 한국 영화[117] 이탈리아 해군 잠수 기습부대 콤스빈의 전(前)교관이며 현재는 본고래 패밀리 소속.[118] 군법 회의소에서 기록을 정리하는 사무직이기 때문에 군무원에 가깝다.[119] 계급은 불명이며 직책은 간호장교. 현실과 비슷하다고 볼때 장교이므로 최소 소위다. 일단 가루루 중위에게 존대를 하고 있으니 최소 소위이거나 중위 초봉, 가루루는 중위 말호봉쯤 될것으로 보인다.[120] 설정상 다국적 대테러부대인만큼 군 소속 부대 복무 경력이 있는 캐릭터만 기재[121] 공군 장교[122] 군의관.[123] 남장을 하고 입대한 것이지만 실제 성별은 여성이므로 여군 캐릭터에 해당한다.[124] 전자는 장교고, 후자는 병 신분이다. 그 이외에도 졸병 신분의 여군들이 꽤 나오는데, 놀랍게도 남성 병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혼숙을 하며 샤워시설도 같이 이용한다. 거기에 작중에 등장하는 선전 영상에서는 군 수뇌부 중에 여성 장군이 있는 것이 확인된다.[125] 안나 페라라같은 예비역 위치, 요시카의 어머니와 할머니같은 민간인 위치도 가끔 등장한다.[126] +여간부속성포함[127] 여군 중대장이다.[128] 신 연예인 지옥 6편~9편과 신 연예인 지옥 Season 2 1편~3편에 여군 장교로 등장한다. 김창후에게 버림받고 육군사관학교를 나와서 소위로 임관했다는 설정...이지만 현실적으로 봐도 고증이 매우 심하고(현실이라면 김창후는 짱고가 육군사관학교에서 4년 동안 교육을 받을 때 이미 전역한다. 즉 김창후는 늦어도 2년 안에 전역한다.) 게다가 불법인 허위취득을 통해 장교로 임관했다. 다른 편에는 칼을 들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민폐 속성을 지닌 여자 깡패였다. 짱고가 소대장 자리에 오르기 이전의 소대장은 '~응'하는 입버릇과 친절한 성격의 남군 장교(이름은 모른다)였다. 그가 제대를 하고 나서 새로 들어온 짱고는 성질이 더럽고 입이 거친 악덕 소대장으로 변한다.(다만 부사관들에게는 안 그런다. 짱고가 지 아버지뻘인 신구 원사나 김경호 상사에게 반말을 하고 얼차려를 주고 구타 가혹행위를 하는 장면은 묘사되지 않았으니까.) 6편 끝 장면부터 소대장이 바뀌자 666부대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진다. 다만 Season 2에서 구정치에게 무릎꿇고 빌고 또 김창후에 의해 크게 실망해서 눈물을 흘리며 생활관 밖으로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등 예전보다 성격이 온순해졌다. 새로 들어온 소대장이 정지혁 병장의 여동생이라면 충격을 먹는다.[129] MEKA 소속의 로봇 파일럿이다.[130] 야전 의무장교.[131] 이집트군입대이후 오버워치가입[132] 이쪽은 색기담당 따위는 집어치운 진정한 군인의 면모를 보이며 큰 체구에 중화기를 사용하는 캐릭터다.[133] 민간군사기업이자 보안업체인 헬릭스 시큐리티 소속 팀장[134] 병과순으로 나열. 비키니로 나온 전례가 있는 캐릭터들은 볼드체로 처리[135] 파란색 땡땡이 무늬 비키니를 입고있다. 그런데 여타 비키니 캐릭터들은 개인전용 검은색 비키니도 존재하는데, 하나는 그런거 없이 데르바란색 비키니를 입는다.[136] 베로니카와 함께 처음으로 비키니 코스튬을 판매했던 기념비적인(...) 캐릭터, 흑인캐릭터에 강한인상의 베로니카와는 달리 흰 피부에 여리여리하고 가녀린 이미지 덕분에 가장 인기가 많은 비키니 캐릭터. 기본 비키니 코스튬은 상하의에 비치웨어를 입고있다. 물론 비키니 파츠를 입혀주면...[137] 전쟁영화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워록의 야심찬 색기담당(...) 캐릭터, 사방이 총알밭인데 시원하게 배꼽을(그것도 가슴아래부터 골반 위까지) 전부 드러내고 있다. 배꼽피어싱은 덤. 한국 FPS 여캐릭터중 노출도는 최상위권인데다가 기본캐릭터인덕분에 타 게임의 여성캐릭터에 비해 죽는 숫자는 엄청나다(...). 더구나 타 FPS에 비해 전장이 압도적으로 넓다보니 느낌또한... 구, 신 의무병 둘 다 배꼽을 드러내고 있는데, 구 의무병은 배꼽을 드러내고 있어도 파우치로 그나마 배꼽을 제외한 속살부분이 일부 가려져 있었는데다 상의 모델링이 두꺼워 그나마 보호된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차피 배꼽주변면적이이 상당히큰데다 가슴골이 보인다 , 신 의무병은 배꼽부분을 가슴 바로 아래부터 골반 바로 위까지 완벽하게 드러내고있는데다 파우치같은 장비도 일체없어서 사격시 쏘는 사람이 아프다고 느낄지경(...). 심지어 그나마 가려진 가슴부분의 옷도 중앙부분이 묶여져있어 초기에 "묶인 매듭 쏘면 풀리는거 어떰 ㅇㅇ?" 라는 의견도 있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맵에서도 배꼽을 드러낸 의무병을 보면 기분이 아스트랄하다(...).[138] 설정상 하나의 동생. 원래는 언니인 하나와 같이 입을거 다입은 여군이었으나, 언니만 비키니를 입고 전장에서 싸우는게 안쓰러웠던 동생 두리도 2017년 여름에 비키니캐릭터로 나옴으로써 사이좋게 자매가 같이 비키니를 입게 되었다. 전쟁터에서 자매가 함께 비키니를 입고 장렬하게 싸우다 죽는 괴상한 캐릭터들이 되었다(...). 얘네 부모님은 어떤 기분일까 [139] 원래는 비키니 복장밖에 없는 비키니 전용 캐릭터였으나, 가을패치로 비키니버전 세마가 사라지고 노말 세마가 들어왔는데, 문제는 노말세마도 비키니를 입고 있다(...). 비키니 세마보다는 군장이 조금 더 많긴하나, 노출도는 차이가 거의없다. 다른 비키니 캐릭터들은 그래도 노말캐릭터라도 가리고 있는데, 세마는 노말캐릭터마저 헐벗고 있는 시원한 캐릭터다.[140] SAS 출신 저격수로 게임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군이다. 그 외에도 여성 용병들이 여럿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손재주가 좋아서 단발 사격시 명중률은 같은 비용의 남자 용병보다 높은 편이지만 힘이 약해서 자동 사격과 중화기 운용을 잘 못한다. 주로 저격수, 지정사수나 의무병으로 굴리게 된다.[141] 여장군[142] 1편까지는 타냐 혼자였지만 2편에는 에바 리 중위와 소피아 중위가 추가되고, 3편부터는 모든 진영에 여군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모든 캐릭터들이 대놓고 성적 매력을 강조하고 있다. 딱 하나 빼고.[143] 소련 챕터를 플레이 하다 보면 가끔씩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성 병사가 몇몇 등장한다. 물론 주, 조연급 캐릭터는 아니기에 싸우다보면 죽을때도 있다.[144] 충격과 공포 미션에서 등장하는 코브라 헬기 조종사.[145] A-10 파일럿[146] 계급은 경정이어서 경찰이지만 행동이 여군에 가깝다. 그래도 과거엔 아프간에서 하얀악마라 불리웠던 용병이었다.[147] 여장군[148] 언니쪽은 M82를 들고다니며 쏘고, 동생쪽은 M9한정으로 흉폭한 죄수들을 끔살.[149] 컨셉만 근데 지략이 나쁘진 않다.군악대[150] 2010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