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결번/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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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대한민국
2.2.1. 임시 결번
2.2.2. 해제 결번
2.3. 농구
2.3.1.1. 임시 결번
2.3.1.2. 해제 결번
2.3.2.1. 임시 결번
2.4.1. 남자부
2.4.1.1. 해제 결번
2.4.2. 여자부
2.4.2.1. 해제된 결번
2.4.2.2. 문제점
2.6.1. 준영구 결번
3. 국외 및 국제
3.1.1.1. 동부 지구
3.1.1.2. 중부 지구[1]
3.1.1.3. 서부 지구
3.1.2.1. 동부 지구
3.1.2.2. 중부 지구
3.1.2.3. 서부 지구[2]
3.4.1. 내셔널 풋볼 컨퍼런스
3.4.1.1. 동부 지구
3.4.1.2. 북부 지구
3.4.1.3. 남부 지구
3.4.1.4. 서부 지구
3.4.2. 아메리칸 풋볼 컨퍼런스
3.4.2.1. 동부 지구
3.4.2.2. 북부 지구
3.4.2.3. 남부 지구
3.4.2.4. 서부 지구
3.5.1. 동부 컨퍼런스
3.5.1.1. 메트로폴리탄 디비전
3.5.1.2. 애틀랜틱 디비전
3.5.2. 서부 컨퍼런스
3.5.2.1. 센트럴 디비전
3.5.2.2. 퍼시픽 디비전
3.8. 축구
3.8.1. 이탈리아
3.8.1.1. 임시 결번
3.8.2. 잉글랜드
3.8.2.1. 임시 결번
3.8.3. 프랑스
3.8.4. 스페인
3.8.5. 독일
3.8.6. 일본
3.8.7. 기타
3.8.8. 팬에게 헌정한 경우
3.9. 사이클
3.11. e스포츠
3.12. 기타
4. 말말말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프로 스포츠에서의 영구 결번은 팀에 크게 기여하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선수나 감독 및 관계자를 기리거나, 애도와 추모의 의미로 등번호, 혹은 상징적인 의미의 숫자를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고 팀 내에서 영구히 사용하지 않는 것, 또는 그 번호를 말한다.

프로 스포츠 최초의 영구 결번은 1935년 미식축구뉴욕 자이언츠의 레이 플래허티의 1번이다. 그 후 4년 뒤 MLB 구단 뉴욕 양키스의 야구 스타 루 게릭의 4번이 영구 결번이 되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유명 선수가 은퇴한 이후 저지 판매 수익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상업적인 의미로 시작한 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3]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의 의미가[4] 덧붙여지면서 현재는 거의 모든 스포츠에 걸쳐 행해지며, 초기 취지를 넘어선 명예로운 대우가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프로야구의 경우 등번호 자체에도 의미를 크게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은 영구 결번보다는 번호 세습이 많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에이스 투수의 18번 세습이라던가[5] 주니치의 20번 세습이 대표적.[6]

이는 일본프로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프로야구 KBO 리그에서도 간간히 눈에 띄는 현상이다. 예를 들자면 팬들 사이에서 '좌완 에이스의 등번호'로 인식되는 롯데 자이언츠의 28번이나, 어느 구단을 막론하고 '유격수의 등번호'로 인식되는 7번 등. 전자는 90년대 좌완 에이스 주형광에서 2000년대 좌완 에이스 장원준으로 이어진 사례이고, 후자는 김재박 이후 이종범, 박진만, 김하성[7] 등 수많은 유격수들이 그의 플레이에 대한 동경으로 7번을 선택해왔다. 다만 일본처럼 엄격하게 따지진 않는 편이라 롯데의 28번은 장원준이 군 복무로 자리를 비운 2012년~2013년에는 1차 지명을 받은 신인 우완 투수 김원중이 빌려 쓰거나, 장원준이 두산으로 이적한 후에는 1년간 좌완 신예 김유영이 달았다가, 2016시즌 우완 고원준, 트레이드 대상이자 역시 우완인 노경은을 거쳐 노경은과 등번호를 맞바꾼 정대현에게 넘어가는 등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8] 7번의 경우도 이종범의 은퇴와 영구 결번을 기점으로 유격수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많이 약해진 편이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번호 세습이 다른 것은 일본은 번호 자체로 의미하는 포지션이나 에이스 넘버(축구의 10번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고[9] 한국에서는 전설적인 선배가 사용한 번호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국의 경우 그 전설적인 선배의 번호가 영구결번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번호 세습 문화가 발전하기 어렵다. 물론 다른 팀이면 가능하지만 같은 팀의 레전드의 번호보다는 상징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번호를 물려받은 선수가 부진한 성적을 거두거나 경기 외적으로 사고를 치는 등[10] 선배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해당 번호의 위상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팬들의 미움을 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번호 세습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팬들도 많다.

KBO 리그의 첫 영구 결번은 1986년도에 주전 경쟁에서 밀려 인생을 비관해 한강에 투신자살한 OB 베어스의 유망주 김영신 선수로서, 당시 OB 베어스는 선수 관리에 책임을 통감하고 김영신의 비극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영결식과 함께 그의 등번호 54번을 영구 결번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원래 영구 결번의 취지에 맞게 팀에 큰 공헌을 한 선수들의 번호가 영구 결번이 되었다. OB 베어스의 윤동균의 10번이 두 번째 영구 결번이었으나 OB 베어스 항명파동의 영향으로 인해 해제되었고, 세 번째 영구 결번은 해태 타이거즈선동열의 18번이다.

축구는 야구에 비해 영구 결번 문화가 옅다. 등번호가 포지션과 팀 내 입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 따라서 동 포지션 내의 유명 선수들은 같은 등번호인 경우가 많고, 같은 클럽의 레전드이지만 활약한 시기가 다른 여러 선수가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11] 더해서 팀 내 입지가 낮았던 유망주 시절에는 높은 등번호를 달다가 주전급으로 성장하면 낮은 등번호를 다는 것은 당연한 수준이다. 이렇게 같은 등번호의 선수가 넘쳐나고 등번호의 변경도 비교적 잦은 축구의 특성상 영구 결번이 많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적이 활발해서 프랜차이즈 스타가 적다는 점 또한 적은 영구 결번의 원인 중 하나. 물론 하술할 목록처럼 영구 결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정 번호가 갖는 의미가 약한 이탈리아의 경우 영구 결번이 비교적 많은 편.

축구는 영구 결번이 적은 대신 번호가 세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번~11번은 사실상 주전급이어야 달 수 있는 번호고 그 중 7번과 10번은 에이스에게만 주어지는 번호이기 때문에 굳이 세습을 신경쓰지 않아도 높은 수준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번호를 이어받게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7번 계보레알 마드리드 CF의 7번, 유벤투스 FC의 10번 계보처럼 팀의 주전급 선수를 넘어 월드클래스급인 선수들로 번호가 계속 이어지면 기존에 해당 번호를 달던 선수가 팀을 떠날 경우 그 번호를 누가 이어받을 것인지 언론에서 비중 있게 보도하는 등 특별히 더 관심을 받는다.

전세계 공통으로, 축구 클럽은 12번을 영구 결번으로 정해 놓는 경우가 꽤 있다. 이는 과거에 12번을 달고 뛴 선수가 큰 공헌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물론 그럴 경우도 있을 수 있긴 하지만) '우리 팀의 12번째 선수는 바로 팬 여러분들입니다.'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서포터즈들을 12번째 선수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12] 단, 아래 하단의 목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보통 레전드가 없는 신생팀에서 언론 보도용, 혹은 상징적인 의미로 결번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 특히나 국내 프로축구단들의 경우 그렇다. 국내 프로 축구단 중에서 최초의 12번 영구 결번은 1998년 부천 SK이다. 수원 FC의 영구 결번은 특이하게도 2가지인데 1번은 수원 시민,[13] 12번은 수원 FC 서포터 리얼크루를 위한 결번이라고 하며, 그 밖에도 인천 유나이티드FC 안양도 12번을 팬들에게 헌정하는 번호로 지정했다.

한국프로농구의 경우, 첫 영구 결번은 기아자동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센터 김유택의 14번이다. 2000년 은퇴와 동시에 영구 결번되었다. 안타깝게도 구단 운영 주체가 모비스로 변경되고 울산으로 연고이전 이후 기아 시절 색채를 적극적으로 지워버림에 따라서 크게 기념되지는 못 하고 있다. 여자프로농구의 경우, 첫 영구 결번은 현대산업개발의 전주원의 5번이다. 2004년 임신으로 첫 은퇴를 했을 때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이에 준하는 개념으로 임시 결번이 있는데 팀을 떠난 선수 공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다른 선수에게 주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원 소속팀으로 돌아오면 돌려주거나, 기한이 끝나면 새 주인을 찾아간다. 혹은 정재홍이나 김남춘 같은 현역 선수 신분일 때 사망하는 경우 추모의 의미로 사망 당시 소속 구단이 임시 결번을 헌정하기도 한다.

다만 모든 종목에서 영구 결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배구는 매 랠리 때마다 선수의 포지션 위치가 서버가 위치한 후위 오른쪽 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위 오른쪽 까지 지정되어 있으며, 서브권을 가져올 때마다 이 위치가 한 칸씩 회전한다. 서브를 넣는 순간에는 코트 안에 있는 6명의 선수가 자신의 포지션에 맞게 서 있어야 되며 이 순서가 바뀌게 서 있는 경우 포지션 폴트가 된다. 그 외에도 후위에 위치한 세 명은 어택 라인 안쪽 공간을 밟고 떠서 공격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이 때문에 심판과 기록석에서는 매 랠리 때마다 선수의 등번호를 가지고 위치를 계속 확인하고 있는데, 만약 번호가 제각각이면 이 작업에 애로사항이 꽃피기에 번호를 1번부터 20번까지로 제한하므로 영구 결번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2016년 3월 3일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에서 시몬의 등번호 13번을, 또 2017년 10월 18일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배구단에서 김사니의 등번호 9번을 영구 결번을 했지만 이는 구단의 임의 조치일 뿐이다.[14] 다만 최근에는 20번을 넘어 쓰는 경우가 허다해서 사실상 영구 결번으로도 본다. 최근 영구 결번은 이효희의 5번. 그리고 22-23 시즌부터 번호 사용이 1번부터 99번까지 확대되면서 사실상 영구 결번 예우가 커질 것으로 보여진다.

매우 당연하지만, 번호 선택이 매우 자유로운 야구나 아이스하키를 제외하면 영구 결번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15] 특히 수신호와 선수 콜때문에 번호 자체에 제한을 두는 스포츠는 영구 결번을 하려면 선수 자리를 비워야 되는 방법밖에 없는데 국가대항전이 주인 국제룰 경기에서 그런걸 할 수 있을리가...[16]

아이스하키의 경우 안양 한라심의식이 영구 결번된 것이 최초다. 2006년 은퇴와 동시에 영구 결번되었다.

영구 결번된 번호는 당연히 다른 선수는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은퇴한 선수가 지도자 교육을 받고 코치, 감독으로 자신의 팀에 복귀하게 될 경우 영구 결번 번호를 다시 사용하는 경우는 있다. 그 번호가 해당선수에게 '귀속'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예를 들어 장종훈, 송진우 같은 경우는 자신의 팀에서 코치생활을 할때 영구 결번된 번호를 재사용하였다. 다만, 이종범같은 경우는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서로 다른팀에서 하며 그러지 못했고, 선동열 기아 감독에 부임할때 영구 결번인 18번이 아닌 90번을 사용했다.

현실성으로 유명한 축구 게임 풋볼 매니저에서도 영구 결번이 구현되어 있다. 실제로 그 구단에서 영구 결번인 번호들로는 선수들의 등번호를 배정할 수 없고 플레이 도중 선수가 은퇴할 때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영구 결번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근데 이 조건이 굉장히 빡빡하다. 일단 구단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어야 하며 구단 소속으로 수백 경기를 뛰었어야 하고 그 중 긴 기간을 같은 번호를 단 채로 지냈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영구 결번으로 취급되려면 이 정도 활약은 해줬어야 하는 것이 맞다.

영구 결번은 팬들이 해당 선수를 기릴 수 있고, 선수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영구 결번이 너무 많아지면 현역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는 등번호가 없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17] 물론 KBO 리그 기준으로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약 몇백년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결국 번호 부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뉴욕 양키스의 경우는 120년 가까이의 역사를 보유했고,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선수가 많이 등장한 탓에 2022년 현재 영구 결번으로 인해 한 자리수 등번호가 0번 빼고 남아있지 않을 정도이다.[18] 물론 세자리수 등번호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19], 아무래도 한자리수나 두자리수 등번호에 비해서는 읽기도 어렵고 지저분해 보이게 된다. 게다가 사실 선수에 대한 기억이나 동기부여라는 장점은 구단별 명예의 전당과 같은 제도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다만 KBO 리그와 같이 영구 결번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잡아 있는 리그에서는 단기간에 영구 결번 문화가 대체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래는 프로 스포츠에서 영구 결번 및 임시 결번된 번호와 해당 선수의 목록이다.


2. 대한민국[편집]



2.1. KBO 리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구 결번/KBO 리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K리그[편집]


부산 아이파크 영구 결번
No. 16
김주성[2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영구 결번
No. 38
윤성효[21]

전북 현대 모터스 영구 결번
No. 20
이동국

  • 서포터즈, 시도민 등 팬에게 헌정하는 영구 결번은 따로 묶어 서술한다.
    • 전북 현대 모터스 No. 12
    • FC 서울[22] No. 12
    • 울산 현대 No. 12
    • 성남 FC No. 12
    • 대구 FC No. 12
    • FC 안양 No. 12
    • 인천 유나이티드 No. 12
    • 부천 FC 1995 No. 12
    • 서울 이랜드 FC No. 12
    • 수원 FC[23] No. 12
    • 강원 FC No. 12


2.2.1. 임시 결번[편집]


기간을 둔 결번도 여기에 들어간다.

대전 하나 시티즌 임시 결번
No. 18
김은중[24]
No. 21
최은성[25]

대구 FC 임시 결번
No. 24
박종진[26]

기간이 지나 해제된 임시 결번 사례는 다음과 같다.

  • FC 서울김남춘이 2020시즌 도중 사망해, FC 서울이 원래 계약기간인 2022시즌까지 추모의 의미로 김남춘의 번호인 4번을 임시 결번으로 지정하였다. 이후 2023년에 그의 등번호 4번은 후배 이한범에게 넘어갔다.

  • 제주 유나이티드 FC유연수가 2022 시즌 도중 음주운전자가 몬 차에 치여 재활을 거듭했지만 복귀를 실패한 채 계약이 만료되었다. 그럼에도 구단 차원에서 유연수의 쾌차를 빈다는 의도로 계약이 종료된 2023 시즌에도 1년간 그의 번호 31번을 임시 결번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유연수가 꾸준한 치료 끝에도 하반신 마비 증상을 보였고, 구단을 통해 2023년 11월 8일 정식 은퇴 선언을 하였다. 또한, 구단에서도 2023년 11월 11일에 은퇴식을 열어줬다.#


2.2.2. 해제 결번[편집]


부산 아이파크 영구 결번
No. 24
송종국

지정 당시 구단 이름은 부산 아이콘스였다. 해외 이적 후 국내 복귀 당시 부산이 아닌 수원으로 이적하면서 영구 결번이 취소됐다. 지정 당시도 뛴 기간이 짧은데도 결번 했다는 점에서 2002 월드컵과 관련된 특혜로 말이 있었던 결번이었다.


2.3. 농구[편집]



2.3.1. 한국프로농구[편집]


파일:한국농구연맹 로고.svg
한국프로농구 영구 결번

[ 펼치기 · 접기 ]
현재 참가 구단
파일: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엠블럼.svg
파일:서울 SK 나이츠 엠블럼.svg
파일:창원 LG 세이커스 엠블럼.svg
파일: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엠블럼.svg
파일: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엠블럼.svg
양희종 (11)
문경은 (10)
전희철 (13)
미지정
양동근 (6)
우지원 (10)
김유택 (14)
미지정
파일:부산 KCC 이지스 엠블럼.svg
파일:원주 DB 프로미 엠블럼(녹색).svg
파일:수원 kt 소닉붐 엠블럼.svg
파일: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엠블럼.svg
파일:서울 삼성 썬더스 엠블럼.svg
추승균 (4)
이상민 (11)
허재 (9)
김주성 (32)
미지정
미지정
김현준 (10)
과거 참가 구단
파일: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엠블럼.svg
김병철 (10)




수원 kt 소닉붐[27],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28][29], 창원 LG 세이커스[30]의 경우 아직 구단 영구 결번이 없다.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는 영구 결번이 있긴 있었으나 데이원 시절 전신 구단의 유산을 없앴고, 소노도 복구는 커녕 새 선수에게 주면서 영구 결번이 해제되었다.

서울 삼성 썬더스 영구 결번
No. 10
김현준[31][32]

서울 SK 나이츠 영구 결번[33][34]
No. 10
문경은
No. 13
전희철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영구 결번
No. 6
양동근
No. 10
우지원
No. 14
김유택[35]

원주 DB 프로미 영구 결번
No. 9
허재[36]
No. 32
김주성

부산 KCC 이지스 영구 결번[37]
No. 4
추승균
No. 11
이상민[38]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영구 결번
No. 11
양희종


2.3.1.1. 임시 결번[편집]

서울 SK 나이츠 임시 결번
No. 30
정재홍[39]


2.3.1.2. 해제 결번[편집]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영구 결번
No. 10
김병철[40][41]


2.3.2. 한국여자프로농구[편집]


WKBL은 KBL보다 더 낮은데 영구 결번이 유력했던 선수들이 트레이드 혹은 FA로 자발적 이적을 택하면서 가능성이 KBL보다 더 낮아졌다.[42] 현재 선수들 중 영구 결번 가능성이 높은 선수는 우리은행 박혜진, KB 스타즈 박지수 뿐이었지만 김정은이 2023년 FA로 하나원큐로 복귀하며 김정은의 영구 결번 가능성이 다시 열렸다.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영구 결번
No. 0
전주원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영구 결번
No. 11
박정은
No. 5
이미선

청주 KB 스타즈 영구 결번
No. 10
변연하
No. 23
선가희


2.3.2.1. 임시 결번[편집]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 임시 결번
No. 11
임영희[43]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임시 결번
No. 13
김단비
김단비 이적 후에도 13번을 주지 않고 있다.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임시 결번
No. 34
하은주

은퇴 후 34번을 사용하는 선수가 없어서 사실상 준 영구결번이다.


2.4. V-리그[편집]


개요에서 언급했듯이 배구는 완전한 영구 결번이 불가능했으며, 구단에서 영구 결번을 선언한 뒤 선수단 구성에 손해를 보면서 해당 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임의조치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2022년 KOVO컵부터 등번호 규정이 1번부터 99번까지로 확장됨에 따라 타 스포츠처럼 영구 결번 지정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FIVB 주관 대회에서도 동일하게 번호 제한이 해제되었다.


2.4.1. 남자부[편집]


남자배구에서는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現 안산 OK금융그룹 읏맨)의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이끈 외국인 선수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의 등번호 13번이 남자부 구단 통틀어 유일한 영구 결번이었지만, 지금은 해제되었다. 사실 이전의 남자배구를 대표하는 레전드가 많았는데도 그 선수들이 영구 결번이 된 경우는 없었는데, 이는 프로배구 자체의 역사도 짧고, 위에 나와있듯이 완전한 영구 결번을 불가능하게 만든 등번호 제한이 최근까지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44] 하지만 등번호 규정이 확대된 이후에는 시즌 후 몇몇 레전드의 영구 결번 영전 가능성이 생겼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45세의 나이까지 현역으로 뛰며 2022-23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한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리베로 여오현의 5번이 영구 결번이 유력하다고 평가 받는 중이다. 같은 구단 문성민은 인기와 성적을 모두 가져다 준 원클럽맨이기에 문성민의 15번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프렌차이즈 스타이자, 현재 V리그 최고의 세터인 한선수의 2번도 가능성이 높다. 프로 시대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유일한 원팀맨으로 ‘한국전력의 혼’으로 불리는 서재덕의 1번 또한 영구 결번 가능성이 높은 선수이다.


2.4.1.1. 해제 결번[편집]

안산 OK금융그룹 읏맨 영구 결번
No. 13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現 안산 OK금융그룹 읏맨)의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이끈 외국인 선수인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의 등번호 13번이 남자부 구단 통틀어 유일한 영구 결번이었다. 6년 동안 영구 결번이 유지되다가 시몬이 자신의 등번호 13번을 구단에 넘겨줄 의향을 밝히면서 2022-2023 시즌 개막전에서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영구 결번 해제식을 진행하게 되었고,[45] 그 이후 레오나르도 레이바가 달게 되면서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이 해제되게 되었다.


2.4.2. 여자부[편집]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영구 결번
No. 5
이효희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영구 결번
No. 7
고유민

고유민김사니이효희와는 달리 KBO 리그 두산 베어스김영신처럼 추모의 의미로 지정된 영구 결번이다. 하지만 지정 당시 구단 측의 의도에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고유민 사망 사건 항목 참조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김연경이 해외에서 뛰다 복귀할 때까지 그녀의 등번호 10번을 임시 결번으로 비워놨었다가 20/21시즌에 복귀하면서 다시 달 수 있게 해줬다.[46] 이 번호는 김연경의 은퇴 후 위의 김사니와 이효희처럼 흥국생명의 영구 결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지어 김연경이 흥국생명을 떠나더라도 구단에서 일방적으로 영구결번을 선언할 가능성조차 점쳐지고 있다.

FIVB의 번호제한 해제 이후, 2022년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에서 10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전무후무한 스타였던 김연경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다만 국가대표는 모든 종목에서 대체적으로 영구 결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10번을 사실상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비공식적으로 하는것이 최선이다.


2.4.2.1. 해제된 결번[편집]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영구 결번
No. 9
김사니


2.4.2.2. 문제점[편집]

여자배구의 영구 결번은 타 스포츠와는 달리 논란이 되는 영구 결번만이 존재하며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영구 결번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악평이 많다. 이러다 보니 여자배구 영구 결번은 제대로 된 영구 결번으로 취급해주지 않으며, 심지어 여자배구 팬들조차도 싫어한다.

  • 먼저 고유민의 경우를 살펴보면, 구단이 고유민 선수를 임의탈퇴시키고 아무 데도 못 가게 했으면서 정작 등번호 7번은 타 선수에게 넘겨준 것이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되었음을 유족들이 주장하자 구단 측이 뜬금없이 타 선수에게 부여된 7번을 회수하고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는 것으로 대응하면서 팬과 유족을 기만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 김사니는 선수 본인이 기업은행에서 은퇴하기는 했지만 소속팀을 보면 저니맨에 가까운데다, 기업은행에서 항명 파동의 주범이라는 흑역사를 남긴 이후에는 그 어떤 팬들한테도 인정을 못 받고 있다.

  • 그리고 도로공사에서 꽤 오래 있었고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지만[47] 전체 커리어를 볼 때 팀을 세 번이나 옮긴 이효희도 영구 결번이 적절하냐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추후 이효희가 별다른 사건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코치와 감독으로 팀을 이끌어 우승 등의 공로를 인정받은 농구 SK의 문경은이나 전희철 처럼 여론을 뒤집지 않는 이상[48]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일단 도로공사 코치로 우승에 성공했으니 도로공사 감독으로 우승하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되니 영구 결번은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2.5.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편집]



  • 91. 심의식: 한국의 웨인 그레츠키로 불리면서 한국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로 군림한 선수이다. 은퇴 후에는 감독을 역임한 적도 있었으나 흑역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상무 아이스하키단 최후의 감독자리를 지켰고, 안양 한라 자체중계 해설위원을 지내기도 했었다. 영구 결번 지정은 2006년.

  • 43. 패트릭 마르티넥: 체코 출신 아이스하키 선수로 안양 한라에서 6년간 뛰면서 팀을 두 차례 아시아 리그 정상에 올린 선수.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외국인 영구 결번 선수다. 선수 은퇴 후에는 안양 한라의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맡았으며 감독으로도 아시아리그 기준 3번(공동우승 1회 포함)을 우승한 명장으로 남아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최정점을 찍은 인물이다. 2021년 3월을 끝으로 감독직을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앰버서더 역할을 역임하기도 했다. 영구 결번 지정은 2010년.

  • 87. 조민호: 2022년 10월 23일 지정. 2008년에서 2022년까지 상무 복무를 제외하면 원클럽맨으로 6번의 아시아리그 우승(공동우승 2회 포함)을 이끈 캡틴이었다. 안타깝게도 은퇴하기 전인 2022년 6월 15일 폐암으로 별세하여 사후, 그리고 사명 변경 후(안양 한라→HL 안양) 영구 결번이 지정되었으며, HL 안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이자[49] 최초의 고인인 영구 결번 선수다.

이 외에도 맷 달튼(86), 김기성(1), 김상욱(19), 이돈구(61)등이 유력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현재는 해체한 다른 팀들(대명 킬러웨일즈, 하이원[50], 동원 드림스, 현대오일뱅크, 석탑건설 등)은 영구 결번 없이 팀을 해체했다.


2.6. 한국 모터스포츠[편집]


한국 모터스포츠 영구 결번
No. 33
이기철

  • 엔트리 33번은 2000년 10월 21일 제주 코리아랠리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이기철 드라이버[51]의 당시 출전 번호이었다. 한국 모터스포츠 사상 첫 드라이버 사망 사고로 기록되었으며[52][53], 그래서 공식적으로 한국자동차경주협회[54]의 결정하에 영구 결번되었다.


2.6.1. 준영구 결번[편집]


한국 모터스포츠 준영구 결번
No. 14
서승범

  • 엔트리 14번은 2017년에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55] 서승범 드라이버가 2017년 시즌 슈퍼레이스 슈퍼 6000에서 사용하던 출전 번호였다. 2020년 시즌 슈퍼레이스에 참전하는 엑스타 레이싱팀노동기 선수가 당초 14번으로 참전할 예정이었으나 고인의 유족들과 서승범 레이서 기념 사업회[56] 측의 요청을 엑스타 팀에서 장고 끝에 수락해, 19번으로 교체하면서 고인의 이름이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대한자동차경주협회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유족측의 요청도 있고 해서 그런지 한국에서 열리는 모터스포츠 경기에는 14번을 쓰는 드라이버가 없으니 사실상 영구 결번에 가까운 셈.


3. 국외 및 국제[편집]



3.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편집]


  • MLB 각 구단별로 수많은 영구 결번이 있다. 뉴욕 양키스의 경우에는 영구 결번이 23+1(42번 재키 로빈슨)개로 가장 많고[57][58], 놀란 라이언프랭크 로빈슨의 경우에는 3개팀에서 영구 결번이 있다.[59]

  • 또한 메이저리그에는 전 구단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번호가 있는데, 그 번호의 주인공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인 42재키 로빈슨.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해 그가 데뷔전을 치른 4월 15일은 메이저리그의 모든 선수들이 42번을 달고 경기를 하며, 그의 편견을 없애는데 일조한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의 주장인 피 위 리즈는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팀에서도 영구 결번 처리되었다.[60]

  • 메이저 리그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는 뉴욕 양키스의 4번 루 게릭이다. 이는 공식으로 기록된 스포츠 구단 중 2번째 영구 결번이기도 하다.[61]

  • 전구단 영구 결번 선수인 재키 로빈슨을 제외하고 영구 결번이 없는 마지막 구단은 마이애미 말린스다. 2016년 호세 페르난데스가 비극적인 보트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를 추모하며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려고 했으나 호세 페르난데스의 보트 사고의 원인이 그의 마약 복용으로 밝혀지자 이 영구 결번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나왔으며, 결국 현재까지는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재키 로빈슨 이외에 등번호 42번을 달고 뛴 선수 중 유명한 선수가 둘 있었는데 바로 브루스 수터마리아노 리베라다. 이 둘은 각각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뉴욕 양키스에서 재키 로빈슨의 영구 결번과 함께 묶어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한편 1997년에 42번이 전구단 영구 결번으로 지정될 당시에 다저스를 제외한 팀에서[62] 이미 42번을 달고 있던 선수는 예외적으로 본인이 원할 경우 은퇴할 때까지 같은 번호를 계속 달 수 있도록 조치했는데, 이에 해당되는 대부분의 선수는 몇년 안에 사라졌지만 리베라는 2013년까지 뛰었다. 그가 영구 결번 확정 및 은퇴를 한 뒤에는 현역에서 42번을 달고 뛸 수 있는 선수는 이제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42를 뒤집은 24번은 빅 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등번호 중 하나이다. 물론 이 이유보다는 윌리 메이스 번호라서 그런 것이 더 크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그 외에도 동양야구에 비해 영구 결번이 전체적으로 후한 편이다. 놀란 라이언이나 프랭크 로빈슨처럼 유명한 선수였으면 뛰었던 2~3개 팀에서 다 영구 결번이 되기도 하고, 영구 결번의 기준에 원 클럽 맨이 거의 당연시되다시피 하는 한국야구에 비해 오히려 영구 결번 선수 중 원클럽맨을 찾기가 더 힘든 지경. 해당 팀에서 고작 4~5년 뛰고 영구 결번되는 사례도 흔하며 아예 선수도 아닌 감독이나 구단주를 기념해서 영구 결번하기도 한다.

이렇게 영구 결번이 비교적 후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 역사: 리그 역사가 100년이 넘으며, 그러다보니 메이저 리그 초창기부터 역사가 이어져온 구단들은 당연히 역사에 남을만한 선수들이 많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팀이라도 90년대 신생팀이 아닌 이상 KBO 구단들보다 긴 역사를 지닌 팀이 대부분이며, NPB 구단들보다도 오래된 팀이 널려있다.

  • 로스터 구성: 보통 등번호는 3자릿수는 자간이 좁아 모양이 안 살아 2자릿수 숫자를 선호하는데, 동양야구에서는 2군 선수단과 코칭스태프까지 등번호를 공유하다 보니 선수단 규모가 크다. 이러다 보니 스태프나 불펜 포수, 육성 선수는 세 자릿수 등번호를 달아야 할 정도로 등번호 갯수가 빡빡하며, 자연스레 영구 결번에도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다. 반면 메이저 리그는 40인 로스터로 선수단을 관리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은 등번호가 지정되지 않기 때문에 등번호 갯수에 꽤 여유가 있고, 그러다보니 영구 결번을 후하게 줘도 두 자릿수 등번호가 많이 남는다.[63]

  • 문화 차이: NPB의 경우 영구 결번보다 번호 세습을 선호하는 문화가 있으며, KBO는 리그 차원의 명예의 전당이 없어서 각 구단별 영구 결번이 명예의 전당을 어느정도 대신 하는 기능을 어느 정도 하다보니 기준이 상당히 높다.[64] 반면 MLB는 각 구단별 명예의 전당이 있고,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있어서 어느정도 클래스가 구분된다. 그래서 리그 전체에서 손꼽히는 초특급 선수들은 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고, 거기에 조금 못미치는 선수들은 각 팀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식으로 허들이 있으며 각 팀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준의 선수들부터는 영구 결번이 유력해지는 정도의 구분이 있다. 그래서 지미 윈, 마이클 영처럼 성적은 명예의 전당급이 아니었어도 구단에서 오래 헌신했거나 높은 인기를 누렸다는 점을 들어 영구 결번을 주거나, 텍사스 레인저스놀란 라이언이나 뉴욕 양키스레지 잭슨처럼 그 팀에서 짧게 활약했어도 크나큰 임팩트를 남겨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경우도 많다.[65] 여기에 동양야구, 특히나 KBO와 달리 FA 등 자발적 이유로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에 대한 영구 결번도 비교적 후한 편이며, 이별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음에도 주는 경우를 꽤 자주 볼 수 있다. KBO에서는 구단에서 레전드급 성적을 냈어도 안 좋게 이별한 선수들에게는 영구 결번이 잘 주어지지 않는데 비해, MLB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웨이드 보그스가 말년에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음에도 보삭스에서 영구 결번을 받는 등 이러한 인식이 덜한 편이다.[66] 아무튼 여러모로 동양야구에 비하면 커트라인이 낮은 것.

  • 상업성: KBO 리그는 모기업의 돈으로 사실상 펫스포츠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그러한 한국프로야구 구단과는 달리 미국 구단들은 자생을 하기 때문에, 티켓 한 장, 상품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데 영구 결번은 좋은 사업 아이템이기도 하다. 영구 결번식으로 관객을 더 끌어모을 수 있으며, 팀의 역사에 스토리를 한 줄 더 추가해 팬의 흥밋거리를 늘릴 수 있으며, 저지나 야구카드 등 관련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에 영구 결번을 많이 해 주는 것. 영구 결번으로 선수를 구단역사의 일부로 남기면 선수의 팬은 선수가 은퇴해도 해당 구단에 흥미를 잃지 않고 상품을 구매해 주는 고객으로 남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미국야구에서 영구 결번의 기준은 이 선수의 이름으로 저지를 많이 팔 수 있는 인기와도 연결된다.

한국프로야구는 근본적으로 모기업 돈으로 운영되는 펫스포츠이지 팬의 돈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크게는 영구 결번같은 야구외적 스토리성, 상업성에 무심하며, 작게는 선수들 팬 서비스 태도 문제까지 차이가 나는 것.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메이저리그는 동양 야구에 비해 영구결번이 굉장히 후한 편이다. 물론 영구 결번 제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있는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경우 명예의 전당이라는 공식적인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각 구단별로 부여하는 영구 결번에 대해서는 각 구단의 재량에 자유롭게 따르고 있다. 꼭 야구 역사에 남는 역대급 성적을 기록하지 않았더라도 그 구단에서 헌신하고 구단의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라면 그 팀의 영구 결번을 부여하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KBO 리그의 경우 명예의 전당과 같은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없기 때문에 영구 결번 제도를 명예의 전당과 비슷하게 인식하는 팬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타구단의 영구 결번 부여에 대해 자신의 팀이 아니더라도 많은 야구 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야구팬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성적을 기록한 선수가 영구 결번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게 되면 반대하는 경우가 메이저 리그에 비해 많은 편이다.


3.1.1. 내셔널 리그[편집]



3.1.1.1. 동부 지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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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No.1
No.14
No.15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척 클라인
리치 애시번
짐 버닝
딕 앨런
No.20
No.32
No.34
No.36
No.42
마이크 슈미트
스티브 칼튼
로이 할러데이
로빈 로버츠
재키 로빈슨
🎙️
해리 칼라스
※ 알렉산더가 선수 생활을 한 시기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클라인은 선수 생활 중 등번호를 자주 바꿔 번호는 결번시키지 않고 영구결번과 같이 대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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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1
No.42
라이언 짐머맨
재키 로빈슨
팀의 전신인 레 젝스포 드 몽레알의 영구결번은 여기 참조



레 젝스포 드 몽레알 [ 펼치기 · 접기 ]




3.1.1.2. 중부 지구[67][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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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
No.1
No.2
No.6
로저스 혼스비
아지 스미스
레드 션다인스트
스탠 뮤지얼
No.9
No.10
No.14
No.17
에노스 슬로터
토니 라 루사
켄 보이어
디지 딘
No.20
No.23
No.24
No.42
루 브록
테드 시몬스
화이티 허조그
브루스 수터
No.42
No.45
No.85
🎙️
재키 로빈슨
밥 깁슨
어거스트 부시
잭 벅
※ 혼스비가 전성기를 보낸 시기에는 등번호가 따로 있지 않았다. 부시 스타디움 왼쪽 담장에 다른 영구 결번 야구인들과 함께 그의 이름이 존재한다.





3.1.1.3. 서부 지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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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아메리칸 리그[편집]



3.1.2.1. 동부 지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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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3.1.2.2. 중부 지구[편집]








3.1.2.3. 서부 지구[69][편집]








3.2. 일본프로야구(NPB)[편집]


일본은 상술된 대로 영구 결번보다는 번호 세습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80년이 넘어가는 긴 리그역사에도 불구하고 영구 결번이 거의 없는 편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한데, 등번호라는 것이 생긴 게 1929년이고 일본프로야구가 36년에 창설되었으니 적어도 등번호의 역사는 메이저리그와 거의 같은 수준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그 수가 확실히 적다.

양키스나 레드삭스 같은 역사 깊은 팀은 영구 결번이 십수명, 20명이 넘어가기도 하는데 가장 많은 구단인 요미우리도 6명이니 얼마나 기준이 짠지 알 수 있는 부분.[70] 대신 상술한대로 번호 세습이 일반적이다.

위대한 선배의 기운이나 정신을 물려받는다는 뜻도 있고, 팀에서 에이스나 강타자의 상징인 특정 번호를 받음으로서 그만큼 팀 내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있어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장점이 있다.[71] 비슷하게는 한국에서 자릿수가 낮은 등번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주전급은 가능하면 앞 번호를 달고싶어하고 주전급으로 자리잡을수록 낮은 자리 번호로 갈아타는데 이것과 조금 비슷한 심리. 등번호가 선수 개인의 상징이 아닌 팀의 것이고 팀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팀에게서 등번호를 받는다는 점에서 팀 퍼스트 정신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양키스 등의 팀에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백넘버 위에 이름을 넣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은 등번호로 이를 실천하는 셈. 한번 '준'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가 해제하고 물려주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미국에서 영구 결번 문화를 들여오려 시도한 적도 있어서 몇몇 레전드 선수들을 영구 결번하기도 했으나, 상술한 대로 등번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본이기에 영결 선수들이 번호를 가져가서 못 쓰게 하면 이런 등번호에 의미를 두는 것이 불가능해지기에 흐지부지되었고, 영구 결번된 선수들은 히로시마와 킨테츠 소속을 제외하면 거의가 1975년 이전에 은퇴한, 고리짝 시절 선수들이다. 그나마 최근에 영구 결번된 구로다 히로키는 우연찮게 번호가 15번이라 의미있는 번호인 18번, 1번 등의 번호가 아니라 가능했던 점도 있다.

또한 리그 역사가 긴 만큼 에이스도 강타자도 많았는데, 일일이 영구 결번을 해주면 선수단 등번호가 부족해지게 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어서 영구 결번을 지양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현대 야구에서 선수단 규모가 늘어나며 3자릿수 등번호도 보이기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다. 3자릿수는 자간이 좁아 모양이 안 살기 때문에 선수들이 선호하지 않아서 가능한 한 2자릿수 이내로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메이저리그는 2군 대신 마이너팀을 별개의 팀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등번호가 모자랄 일이 없지만 한국이나 일본 프로야구는 2군도 등번호를 공유하기 때문에 선수단 규모가 커서 미국처럼 영구 결번 많이 주다간 번호가 쉽게 바닥나게 된다. 게다가 선수들은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면 주로 70번 미만 즉 60번대까지의 번호를 사용하며 70번 이상은 코칭스태프가 주로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만 저 문화에 가장 부합하는 스즈키 이치로의 경우 오릭스를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준영구 결번에 이것이 풀릴 가능성도 사실상 없다. 메이저리그 경력을 빼도 일본리그에서의 성적 자체가 너무나도 압도적[72]이라 다른 선수들이 물려받을 엄두조차 못내는 케이스로 번호 세습 정도는 진작에 초월한 선수다.


3.2.1. 센트럴 리그[편집]








3.2.2. 퍼시픽 리그[편집]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준영구 결번[73]
No. 15
후지이 마사오[74]
No. 89
오 사다하루[75]

오릭스 버팔로즈 준영구 결번
No. 51
스즈키 이치로[76]








  • 은퇴 후 쭉 영구 결번이었지만 2004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오릭스 블루웨이브에게 흡수 합병되어 구단이 해체되면서 영구 결번이 취소되었다. 오릭스 측에서 합병 후에도 1번을 영구 결번으로 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본인이 거절했다고.


3.3. 대만 프로야구 리그(CPBL)[편집]




라쿠텐 몽키스에서는 2019년부터 일본에 진출한 왕보룽의 등번호 9번을 임시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2023년에 트레이드로 왕보룽의 보류권이 타이강 호크스로 넘어가면서 임시결번이 해제되었다.


3.4. 내셔널 풋볼 리그(NFL)[편집]



3.4.1. 내셔널 풋볼 컨퍼런스[편집]



3.4.1.1. 동부 지구[편집]







3.4.1.2. 북부 지구[편집]







3.4.1.3. 남부 지구[편집]






3.4.1.4. 서부 지구[편집]







3.4.2. 아메리칸 풋볼 컨퍼런스[편집]



3.4.2.1. 동부 지구[편집]







3.4.2.2. 북부 지구[편집]







3.4.2.3. 남부 지구[편집]







3.4.2.4. 서부 지구[편집]







3.5. 내셔널 하키 리그(NHL)[편집]


  • NHL 역시 역시 수많은 팀이 영구 결번이 있다. 특히, 웨인 그레츠키의 99번은 NHL 모든 팀에서 영구 결번되었다.


3.5.1. 동부 컨퍼런스[편집]



3.5.1.1. 메트로폴리탄 디비전[편집]











3.5.1.2. 애틀랜틱 디비전[편집]











3.5.2. 서부 컨퍼런스[편집]



3.5.2.1. 센트럴 디비전[편집]











3.5.2.2. 퍼시픽 디비전[편집]











3.6. 전미 농구 협회(NBA)[편집]


  • NBA에는 각 팀마다 수많은 영구 결번이 있다. 각 팀별로 장기간 공헌했거나 짧지만 임팩트 있는 활약을 펼친 선수들에게 주는데 특히 원클럽맨이나 한 팀에서 오래 뛰다가 다른 팀으로 이적한 프랜차이즈 선수의 번호를 다른 선수에게 물려주지 않고 임시 결번을 한 뒤에 영구 결번을 시켜 준다. 그 가운데 보스턴 셀틱스는 영구 결번이 너무 많아 30번대 이전에 남는 번호가 별로 없다.[77] 번외로 마이애미 히트는 전혀 상관없는 23번까지 영구 결번 처리했다(...) 이 경우 팀 역사가 짧기도 하지만, 약간 대중 인기 영합의 측면이 강하다. 이후 댈러스 매버릭스코비 브라이언트가 댈러스에서 뛴 적은 없으나 안타까운 사고로 사망하자 추모의 의미로 24번을 영구 결번하기도 했다.

새크라멘토 킹스올랜도 매직은 축구에서 많은 팀들이 12번을 팬의 등번호로 영구 결번을 지정한 것처럼 진정한 식스맨은 팬들이라는 의미로 6번을 팬들의 이름으로 영구 결번했다. 올랜도는 창단과 동시에 6번을 영구 결번했지만 패트릭 유잉의 은퇴시즌을 고려하여 01-02시즌 한정으로 해제된적이 있다.

여담으로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인 23번을 모든구단에 영구 결번 으로 적용하자는 말도 있다.

그러던 중 빌 러셀이 2022년 8월 1일에 타계하면서 그의 등번호 6번이 전 구단 영구 결번이 되었다. 다만 이전에 6번을 사용하던 선수들은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밝혔다.


3.6.1. 동부 컨퍼런스[편집]



3.6.1.1. 애틀랜틱 디비전[편집]






  • 토론토 랩터스는 아직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인물이 없으나, 슈퍼팬 나브 바티아에게 95번을 지정했고, 라우리의 7번을 결번할 예정이다.


3.6.1.2. 센트럴 디비전[편집]








3.6.1.3. 사우스이스트 디비전[편집]








3.6.2. 서부 컨퍼런스[편집]



3.6.2.1. 사우스웨스트 디비전[편집]








3.6.2.2. 노스웨스트 디비전[편집]








3.6.2.2.1. 해제 결번[편집]




3.6.2.3. 퍼시픽 디비전[편집]






  •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는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구 결번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다.[78]


3.7. 중국 농구 협회(CBA)[편집]






3.8. 축구[편집]



3.8.1. 이탈리아[편집]


SSC 나폴리 영구 결번
No. 10
디에고 마라도나[79]

AS 리보르노 칼초 영구 결번
No. 25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80]

AC 밀란 영구 결번
No. 3
파올로 말디니[81]
No. 6
프랑코 바레시

브레시아 칼초 영구 결번
No. 10
로베르토 바조
No. 13
비토리오 메로

아탈란타 BC 영구 결번
No. 14
페데리코 피사니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영구 결번
No. 3
자친토 파케티[82]
No. 4
하비에르 사네티[83]


제노아 CFC 영구 결번

No. 6
잔루카 시뇨리니

칼리아리 칼초 영구 결번
No. 11
루이지 리바[84]
No. 13
다비데 아스토리

AC 키에보베로나 영구 결번
No. 30
자송 마옐레

ACF 피오렌티나 영구 결번
No. 13
다비데 아스토리

파르마 칼초 1913 영구 결번
No.6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No.12
서포터즈

US 사수올로 칼초 영구 결번
No. 4
프란체스코 마냐넬리


3.8.1.1. 임시 결번[편집]

AS 로마 임시 결번[85]
No.10
프란체스코 토티
No.16
다니엘레 데 로시


3.8.2. 잉글랜드[편집]


맨체스터 시티 FC 영구 결번[86]
No. 23
마르크 비비앙 푀[87]

스완지 시티 AFC 영구 결번
No. 40
베시안 이드리자이[88]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영구 결번
No. 6
바비 무어
No. 38
딜런 톰바이즈[89]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영구 결번
No. 31
레이 존스[90]

포츠머스 FC 영구 결번
No. 12
서포터
No. 58
마스코트

버밍엄 시티 FC 영구 결번
No. 22
주드 벨링엄[91]


3.8.2.1. 임시 결번[편집]

첼시 FC 임시 결번
-No. 25-
-잔프랑코 졸라-[92]
-No. 26-
-존 테리-[93]

토트넘 홋스퍼 FC 임시 결번
No. 26
레들리 킹[94]


3.8.3. 프랑스[편집]


RC 랑스 영구 결번
No.17
마르크 비비앙 푀[95]

FC 낭트 영구 결번
No.9
에밀리아노 살라


3.8.4. 스페인[편집]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는 영구 결번이 제도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페인 프로축구 협회의 등번호 규정상 25인 엔트리는 1~25번의 등번호외에 다른 등번호는 달 수 없고, 25인 엔트리 외의 선수는 만 20세 이하 선수를 제외하면 등번호 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며[96] 골키퍼는 무조건 1, 13, 25[97]만 달수 있는 엄격한 규정을 적용한다.

이런식으로 영구 결번이 불가능하고 등번호가 고정되니 스페인 내에서는 영구 결번이 아닌 등번호 물림이 더욱 주목받는다. 애초에 축구의 등번호는 포지션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어서 의미있는 등번호는 주로 1~11번 이내지만 팀의 레전드급 활약을 펼친 선수가 은퇴, 이적 후 그의 등번호를 누가 물려받느냐에 대해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편.

등번호 물림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면 단연 2008-09 시즌 FC 바르셀로나 10번의 주인이 호나우지뉴에서 리오넬 메시로 교체된 것, 그리고 2010-11 시즌 레알 마드리드 CF 7번의 주인이 라울 곤살레스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교체된 것[98]을 꼽을 수 있다. 다만 실패사례도 많은데, 2018-19 시즌에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자 마리아노 디아스가 7번을 이어받았으나 19경기 4골에 그치며 실망만을 안겼고, 2019-20 시즌에는 첼시 FC의 특급 윙어 에덴 아자르가 1억 유로가 넘는 이적료로 와서 7번을 이어받았지만 몸관리 실패와 잦은 부상으로 22경기 1골에 그치며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바르셀로나 2000~201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가 쓰던 6번을 2015-16 시즌에는 원래 22번이었던 다니 아우베스가 이어받았으나 그 뒤로는 데니스 수아레스장클레르 토디보가 물려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6번을 받을만한 젊은 에이스인 프렝키 더용은 본인이 21번을 무척 선호하고[99] 팬들도 21번이 더용의 상징번호가 되길 바라는 의견이 많아 현재 21번을 사용중. 2021년, 리오넬 메시가 이적해버려 10번이 비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바르셀로나의 10번을 누가 이어받을 것인지 역시도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메시와 같은 라마시아산 특급 유망주 안수 파티가 이어받아, 그에 걸맞는 활약을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중.

다만, 번호 하나를 비워두고 25인이 아닌 24인 엔트리를 쓰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영구 결번을 강행하던 케이스가 한 팀 있다. 바로 RCD 에스파뇰. 팀의 유스 출신이자 주장에 팀 레전드이자 지역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센터백 다니엘 하르케가 사용하던 2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려고 시도했다. 다니엘 하르케는 1983년 1월 1일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태어나 고향 팀 유스에서 시작해 레전드가 된 정통 프랜차이즈 선수로, 에스파뇰 구단뿐 아니라 바르셀로나 전 지역에서 존경받았으며 카탈루냐 더비 라이벌이자 원수 팀인 FC 바르셀로나의 선수들까지 그를 존경할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하르케 사후 개최된 2010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역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결승골을 넣은 후 상의 셔츠 안에 있는 '다니 하르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Dani Jarque siempre con nosotros)'라는 메시지를 보이는 세레모니를 했을 만큼 대단한 선수였다.

이렇게 팀을 상징하던 다니엘 하르케가 2009년 프리시즌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구단은 스페인 리그 최초로 그의 등번호 2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려 했다. 하지만 등번호 규정 때문에 스페인 축구 협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팀은 1명을 빼고 24명만으로 스쿼드를 꾸리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그의 21번은 무려 8년동안이나 결번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예외는 인정되지 않았고 2017년 9월부터 구단 유스출신 성골 마르크 로카에게 21살이 된 것을 기념해주는 의미에서 21번을 주면서 현재 라리가에 영구 결번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 로카가 팀을 떠난 이후 또다시 등번호를 부여하지 않다가 팀의 유스 출신인 니코 멜라메드가 21살이 되던 해인 2022년 9월 21번을 부여하였다.


3.8.5. 독일[편집]


VfL 볼프스부르크 소속 벨기에 국적의 유망주 주니어 말란다가 2015년 1월 10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그의 등번호였던 19번이 영구 결번 되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19-20시즌부터 케빈 음바부가 19번을 사용하면서 결번이 해제되었다.


3.8.6. 일본[편집]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영구 결번
No.3
마쓰다 나오키[100]
No.12
서포터즈

자스파구사츠 군마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No.31
오쿠노 료스케[101]

FC 기후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No.13
키리야마 슈야[102]

사간 도스 영구 결번
No.17
사간티노[103]

오미야 아르디자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콘사도레 삿포로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시미즈 S펄스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베갈타 센다이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반포레 고후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비셀 고베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FC 도쿄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쇼난 벨마레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나고야 그램퍼스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V-파렌 나가사키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도쿠시마 보르티스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가시마 앤틀러스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감바 오사카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세레소 오사카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주빌로 이와타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몬테디오 야마가타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미토 홀리호크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오이타 트리니타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마쓰모토 야마가 FC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카마타마레 사누키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파지아노 오카야마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아비스파 후쿠오카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도쿄 베르디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요코하마 FC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로아소 구마모토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가시와 레이솔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산프레체 히로시마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알비렉스 니가타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J리그K리그처럼 12번을 12번째 선수인 서포터즈에게 영구 결번으로 헌정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예외적으로 사간 도스는 12번이 아닌 17번인데, 17번이 영구 결번인 이유는 구단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선발 11명과 교체 5명에 불과한 총 16명의 인원으로 경기하던 시절 16번 다음으로 함께 싸우는 17번째 선수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선수들에게 헌정한 사례들도 있다.


3.8.7. 기타[편집]


  • 네덜란드
AFC 아약스 영구 결번
No. 14
요한 크루이프

SBV 피테서 영구 결번
No.4
테오 보스[104]
No.12
서포터즈

PSV 아인트호벤 영구 결번
No.12
서포터즈

  • 우크라이나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영구 결번
No.33
다리요 스르나

  • 포르투갈
SL 벤피카 영구 결번
No. 29
미클로스 페헤르[105]

보아비스타 FC 영구 결번
No. 29
에두 페레이라[106]

  • 러시아
PFC CSKA 모스크바 영구 결번
No. 16
세르히 페르쿤[107]

  • 그리스
PAOK FC 영구 결번
No. 12
서포터즈
No. 17
파나기오티스 카추리스[108]

  • 벨기에
클뤼프 브뤼허 KV 영구 결번
No. 23
프랑수아 스테르셀[109]

  • 스위스

FC 바젤 영구 결번

No. 2
마시모 세사로니[110]
No. 12
서포터즈

  • 브라질
상파울루 FC 영구 결번
No. 01[111]
호제리우 세니

  • 미국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FC 영구 결번
No. 17
창단년도 기념 결번

뉴욕 코스모스 영구 결번
No. 9
조르조 키날리아[112]
No. 10
펠레[113]

  • 캐나다
앵팍트 드 몽레알 영구 결번
No. 12
서포터즈
No. 20
마우로 비엘레

  • 노르웨이
로센보르그 BK 영구 결번
No.6
로아르 스트란[114]

  •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스르 FC 영구 결번
No.9
마제드 압둘라[115]

  • 중국
베이징 쿵구 영구 결번
No.24
셰이크 티오테[116]

  • 오스트리아
SV 리트 영구 결번
No.27
사넬 쿨지크[117]

  • 스웨덴
IFK 노르셰핑 영구 결번
No.18
스테판 토르다르손

  • 베트남
호앙 아인 잘라이 FC 영구 결번
No.13
키아티슥 세나므앙


3.8.8. 팬에게 헌정한 경우[편집]


말 그대로 구단 서포터즈 및 팬들을 위해 특정 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는 것을 말하며, 이 경우 보통 12번이 영구 결번이 된다.



3.9. 사이클[편집]


  • 2011년 지로 디탈리아에서 사고로 사망한 바우터 베일란트 선수(라디오섁-트렉)의 당시 배번 108번.
지로에서의 배번은 각 팀의 경기 성적에 따라 매 해 바뀌지만 108번은 영구 결번이다.


3.10. 모터스포츠[편집]



3.10.1. 포뮬러 1[편집]


포뮬러 1 영구 결번
No. 17
쥘 비앙키 (마러시아 F1 팀)

2014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사고로 혼수상태를 헤매다 2015년 7월 17일 끝내 숨을 거둔 쥘 비앙키의 당시 엔트리 넘버인 17번이 포뮬러 1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이후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위해 2016년부터 개발되던 헤일로 디바이스는 2018년 시즌부터 안전 규정에 따라 FIA가 주최 및 관여하는 포뮬러 클래스[118]에 적용되어 각 팀들은 의무적으로 이것을 경주차에 장착하게 되었다. FIA가 관여하지 않는 독자 규격 포뮬러 경주인 슈퍼 포뮬러 역시 안전을 위해 2019년 시즌부터 헤일로를 적용했다.


3.10.2. 포뮬러 2[편집]


포뮬러 2 영구 결번
No. 19
앙투안 유베르트 (BWT 아르덴)

2019년 8월 31일 포뮬러 2 2019 시즌 스파-프랑코샹 서킷에서 레이스 중 사고로 사망한 드라이버. 앞서가던 차가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자 이를 피하려다 방호벽에 충돌 후 후속 차량과 측면으로 충돌하여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될 틈도 없이 서킷 메디컬 센터에서 사망했다. 샤를 르클레르, 피에르 가슬리를 포함한 여러 포뮬러 원 드라이버와 기타 다른 모터스포츠 드라이버들이 그를 추모했으며, FIA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포뮬러 2에 '앙투안 유베르트 상'을 새로 수여했다.

포뮬러 2의 차번은 전년도 시즌의 팀 챔피언쉽 성적 순서대로 매겨지기 때문에 매년 바뀌지만, 유베르트의 당시 차번 19번과 이와 같은 팀으로 매칭되는 18번은 영구 결번이 되었다.


3.10.3. 월드 랠리 챔피언십[편집]


월드 랠리 챔피언십 임시 영구 결번
No. 43
켄 블락 (후니건 레이싱)

2023년 1월 2일 스노우모빌 사고로 목숨을 잃은 드라이버. 블락의 상징과도 같은 43번이 동년 1월 6일 WRC 최초의 임시 영구 결번으로 자리잡았다. 일단은 2023 시즌 한정 임시 영구 결번이다.FIA 보도문


3.10.4. 모토 GP[편집]


모토 GP 영구 결번
No. 46
발렌티노 로시

모토 GP 영구 결번
No. 58
마르코 시몬첼리 (산 카를로 혼다 그레시니)

모토 GP 영구 결번
No. 69
니키 헤이든 (텐 케이트 혼다)

모토 GP 영구 결번
No. 74
카토 다이지로 (텔레포니카 모비스타 그레시니)

로시를 제외한 세 명의 라이더들은 모두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 추모의 의미로 그들이 사용하던 번호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3.11. e스포츠[편집]



뉴욕 엑셀시어 영구 결번
No. 9
박종렬(SAEBYEOLBE)

서울 인페르날 영구 결번
No. 17
김경보(Alarm)
No. 18
이재혁(Carpe)
No. 21
가엘 구제시(Poko)

Gen.G Esports에서 김인재 선수의 이적 당시 영구 결번을 약속했다.[119] 이는 e스포츠 최초의 영구 결번 사례이다. 이후 같은 Gen.G 산하 오버워치 팀 서울 다이너스티에서 류제홍계약 종료 소식과 더불어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토비도 계약 종료 소식과 함께 영구 결번이 되었다. 이후 배틀그라운드 이스포츠를 휩쓸었던 Gen.G 펍지팀 소속 두 괴물 피오에스더가 은퇴하게되면서 사용했던 10번과 1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으며 7년간 Gen.G 롤팀을 지켜온 원거리 딜러 룰러의 1번이 룰러의 계약 종료와 동시에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022년 6월 7일 뉴욕 엑셀시어에서 새별비의 등번호를 영구적으로 결번한다고 발표했다.

2023년 2월 28일 서울 인페르날에서 알람, 카르페, 포코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3.12. 기타[편집]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 당시 대학에 다니던 20대 여대생인 캐서린 스위처가 배정받았던 번호인 261번을 그녀가 50년만에 다시 출전한 2017년에 보스턴 마라톤 조직위원회에서 영구 결번 시켰다. 당시 그녀는 K.스위처라는 성별 구분이 힘든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출전, 제재를 시도한 경기 감독관을 뿌리치고[120] 여성 최초로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실격 처리됐다. 이는 큰 화제가 됐고 결국, 1971년부터 뉴욕 마라톤이, 이듬해인 1972년부터 보스턴 마라톤 역시 여성의 출전을 공식 허용했다.


4. 말말말[편집]


みんな胸を張ってプレーしろ。お前たちが付けている背番号は、すべて近鉄バファローズの永久欠番だ

모두들 가슴을 펴고 플레이해라. 너희들이 달고 있는 등 번호는, 모두 긴테쓰 버팔로즈의 영구 결번이다.

나시다 마사타카 당시 긴테쓰 버팔로즈 감독.[121]

자세한 것은 명언/야구 항목 참조.



5. 관련 문서[편집]







[1] 밀워키 브루어스의 경우는 창단 당시엔 아메리칸 리그 소속이었으나, 1998년 리그 확장으로 내셔널 리그로 소속을 옮겼다.[2]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경우는 창단 당시엔 내셔널 리그 소속이었으나, 2013년 아메리칸 리그로 소속을 옮겼다.[3] 특히, 재키 로빈슨의 42번 전 구단 영구 결번의 경우 MLB의 인종차별에 대한 이미지 만들기로 뜬금없이 이루어졌다는 비판이 있었다. 다만, 부정적인 반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4] 그래서 LA 레이커스 같은 팀은 영구 결번에 대한 자체 규정이 꽤 까다롭다. 단, MLB에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닌 선수가 영구 결번인 경우가 꽤 있다. 심지어는 복수 구단에서 영구 결번인 경우도 있다.[5] 요미우리의 18번은 후지타 모토지-호리우치 츠네오-구와타 마스미-기사누키 히로시-스기우치 토시야로 이어진다. 그리고 2019년부터 스가노 도모유키가 스기우치의 은퇴와 우에하라 고지의 19번 재결합으로 18번을 계승하게 된다.[6] 이는 요미우리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있었다. 역대로 20번을 단 주요 선수로 스기시타 시게루, 호시노 센이치, 코마츠 타츠오, 선동열 등이 있다.[7] 단 김하성은 강정호의 등번호인 16번을 사용하고 싶었으나 구단이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7번을 단 경우다. 1+6=7이기도 하고.[8] 특히 롯데가 이쪽으로는 전혀 관리가 안되는게 최동원의 11번이 영구 결번되기 전까지만 해도 최대성이나 이정민이 그 번호를 쓰는 등 에이스 번호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시피했다. 윤학길의 29번도 마찬가지고, 타자쪽에선 은퇴 당시 구단 역대 최고 레전드 타자였던 박정태의 16번 또한 박정태가 은퇴하자마자 그때까지만 해도 타석에서 식물 취급받으며 까이던 박기혁이 16번을 곧바로 물려받는 바람에 더욱 까이기도 했다.[9] 리틀야구보터 시작해 그 절정인 고시엔 출정때 감독이 선수에게 등번호를 부여하고 달아주는 이벤트가 프로까지 연장된 것.[10] 도박, 음주운전, 타 팀 이적 과정에서의 잡음 등.[11] 최근의 경우 중에는 FC 바르셀로나호나우지뉴리오넬 메시가 달았던 10번이 있다.[12] 특이하게 NFL 시애틀 시호크스의 12번도 팬들을 위해 영구 결번으로 비워뒀다. 미식축구에서 12번은 보통 쿼터백(대표적으로 톰 브래디, 앤드류 럭 등)이나 와이드 리시버들이 사용하는 등번호로 인기가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시호크스의 12번 영구 결번 지정은 이례적이다.[13] 정확히는 2018년까지만 영구결번. 2019년부터는 팀의 주전 골키퍼이자 실업 리그 시절부터 선수로 활약했던 원 클럽 플레이어 박배종에게 1번을 헌정했다.[14] 그리고 김사니의 영구 결번은 김사니가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항명 파동의 주동자로 지목받으면서 팬들은 물론 배구인들 사이에서의 평판도 추락함에 따라 어디서도 인정을 못 받고 있다.[15] 특히 야구의 경우 경기 중에 등번호를 보고 선수를 구별할 필요성조차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 등번호는 그 선수를 상징하는 의미를 가질 뿐이라서 영구 결번 문화가 가장 발달해 있다. 이 때문에 선수 본인들도 자신의 등번호에 의미부여를 하는 경향이 강해서 이적시에 후배에게 고가의 선물을 주고 자신의 등번호를 지키기도 한다.[16]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번호인 10번을 결번처리하고 싶다고 피파에 건의했으나 피파에서 거부했던 전력이 있다. 만약 허용했다면 펠레부터 해서 어지간한 축구강국 10번은 죄다 결번처리 되었을지도...[17] 실제로 이런 이유로 스스로 영구 결번을 거절한 선수도 있는데 바로 넥센 히어로즈이숭용이다. 후배들에게 자신의 번호를 주고 싶다는 이유로 구단측의 영구 결번 제안을 사양했다.[18] 물론 선수가 사용할 수 있는 두 자릿수 등번호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닌게, KBO리그와 달리 MLB는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만 빅리그 등번호를 쓰기 때문. 이는 MLB가 KBO나 NPB보다 영구결번이 활성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선수단의 번호 선택지가 많이 줄어드는 점은 사실이다.[19] 이 방법조차도 이론적으로 약 9천~1만년 뒤에는 번호 부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20] K리그 최초의 영구 결번 지정 선수. 또한 영구 결번 헌액자 중 유일하게 원클럽맨(K리그 한정 시) 선수이다.[21] 1998년 윤성효가 은퇴한 후 수원 구단에서는 영구 결번을 비공식적으로(?) 지정하여 이후 38번을 아무도 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팬들도 38번을 결번으로 알고 있었으나 2008시즌 김현준이 달게 되었다(...). 그래서 애초에 영구 결번 같은 게 없었다는 얘기가 대세를 이루던 중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윤성효가 부임하게 되자 수원 구단에서는 행정에 착오가 있었다며 2011년 다시 38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가 2016 시즌에 유한솔이 등번호 38번을 받았다가 착오가 있었다며 37번으로 바꿔 달았다.[22] 공식은 아니고 암묵적인 결번이다.[23] 창단 당시는 1번도 수원시민을 헌정하는 영구 결번이었다가 2019년 취소하고 박배종이 내셔널리그 시절부터 원클럽맨의 공로를 인정받아 1번을 사용 중이다.[24] 은퇴 후 18년간. 2016-2034.[25] 은퇴 후 21년간. 2012-2033.[26] 은퇴 후 12년간. 2014-2026.[27] 후보조차 마땅치 않다. 원클럽맨이 아니거나 타 구단으로 이적한 선수를 포함해도 조성민 정도가 있지만 이상민만큼 파급력이 크지는 않아서 전망은 밝지 않다.[28] 후보로는 정영삼이 있다. 다만 팀의 모기업이 구단 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대구에서 커리어를 보냈지만 결번식은 고양에서 치른 김병철처럼 타 지역에서, 혹은 김유택과 비슷하게 모기업이 바뀌고나서야 영구 결번이 되고 크게 기념되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야구의 박용택과 마찬가지로 원클럽맨이면서도 우승경력도 없는데다 눈에 띄는 국가대표 경력도 많지 않은지라 여론은 부정적이다.[29] 단, 구단을 한국가스공사에서 인수하면서 연고지를 대구광역시로 이전했는데 정영삼의 고향도 대구광역시라서 여론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30] 후보로는 김시래 정도가 있지만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후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어려울 것으로 전망 중이다. 다만 김시래의 이적은 트레이드로 인한 반강제적 이적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2004년에 강동희가 은퇴할 때 등번호 5번을 영구 결번시킬 계획이 있었지만 스리슬쩍 취소되었다. 만약 이루어졌으면 허재와 비슷하게 마지막 소속 팀에서 영구 결번을 받는 사례가 되었을테지만 후에 승부조작 혐의를 일으킨 탓에 어차피 취소됐을거라는 전망이 많다.[31] 주희정이 이 등번호를 잠시 동안 썼다가 김현준 코치의 사망과 함께 이 등번호가 영구 결번이 되면서 30번으로 변경.[32] KBL 최초의 영구 결번이며 유일하게 영구 결번자들 중 고인과 동시에 KBL 출범 전에 은퇴한 선수의 결번이기도 하다.[33] 문경은은 삼성, 전희철은 오리온의 레전드라는 인식이 강해서 영구 결번에 이의를 제기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17-18시즌 각각 감독(문경은)과 수석코치(전희철)로, 전희철은 21-22시즌 감독으로 한번 더 팀을 우승으로 이끈 이후로 여론이 많이 좋아졌다. 현역 시절에는 영구 결번을 줄 이유가 없는데 줬다고 욕을 먹었으나 지도자로서 팬들에게 영구 결번의 자격을 인정받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그리고 전희철은 친정팀(오리온)이 사라져버려서 마찰을 일으킬 팀도 없다.[34] SK 팬들은 SK에서 정규시즌 MVP, 챔피언 결정전 MVP,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서장훈을 영구 결번했으면 하는 의견이 많았으나, 본인이 저니맨이기도 하고, 영구 결번에 부정적이라서 전망이 밝지 않다.[35]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시절 영구 결번. 따라서 김병철이 고양에선 뛰어보지도 않고 영구 결번이 된것 처럼 울산에서 뛴 적은 없던데다 모비스는 기아의 색채를 지우는 노력을 하고 있기에 크게 기념되지 않고 있다.[36] 사실 전성기는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시절이었으나, 팀과 불화를 겪으며 결국 이적하였고, 모비스로 바뀌면서 프런트가 기아 색채 지우기로 보이는 온갖 삽질을 하는 바람에 마지막 소속팀이었던 원주 DB 프로미(당시 원주 TG삼보 엑써스)에서 영구 결번을 해준 케이스다.[37] 23-24시즌 기준 전주시절 결번들만 있다.[38] 이상민의 영구 결번을 둘러싸고 KCC(현대), 삼성 사이에서 갈등이 있다. 삼성이 이상민과 서장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가 KCC의 항의에 하루만에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이상민 본인도 KCC에서의 영구 결번을 원치 않았는데 강행하는 바람에, 현재 둘의 관계는 좋지 못하며 결번식에 본인은 참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23-24시즌 코치로 복귀하였다.[39] 심정지로 요절한 정재홍 선수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의 등번호를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있다. 임시 결번 지정은 2019년 10월 26일 개막전에서 배너를 공개하며 지정되었으며 이 이후로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도 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구 결번에 준하는 취급을 받고 있다.[40] 그런데 정작 김병철은 커리어는 대구광역시에서만 보냈지만 단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고양시에서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을 가졌다. 연고이전으로 인해 빚어진 촌극. 오리온 구단을 인수해 탈바꿈한 고양 데이원 점퍼스가 일방적으로 오리온 시절과의 단절을 선언하면서(KBL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영구 결번이 해제되었지만 제명 당시까지도 10번은 비공식 결번으로 유지됐었다. 데이원 선수단을 인수해 창단한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가 오리온, 데이원 시절의 역사를 이어가지만 안정욱이 10번을 사용하면서 김병철의 영구 결번이 회복되지 않았다.[41] 이와 유사한 사례로 프로야구의 정민태의 케이스가 있다. 연고이전을 감행한 구단 소속이자, 각 구단의 원래 연고지를 상징하는 스타였고, 공식적인 역사는 단절되었지만 선수단을 승계한 후신격 구단에서도 암묵적인 결번을 이어나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으로는 김병철의 고향은 서울인 반면 정민태는 고향까지 인천이었고, 반대로 대구 시절에만 선수 생활을 한 김병철과 달리 정민태는 수원 임시 연고 시절에도 현대를 상징하는 선수였다. 또한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 지정을 받았던 김병철과 달리 정민태는 현대의 해체와 동시에 방출되며 KIA로 이적하며 정식 영구 결번 지정을 받지 못하고 암묵적 준 영구 결번 상태로 만족해야했다. 게다가 이쪽은 타 팀 코치로 옮긴 뒤에는 암묵적인 결번마저 해제되었다.[42] 대표적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김단비(1990)가 있었으나 FA이적을 택하며 가능성이 희박해졌다.[43] 19-20시즌 이후 아무도 11번을 주지 않고 있다. 초.중.고교 시절까지 11번을 썼던 김은선이 3번을 택한 이유 중 하나다.[44] 만약 뒤늦게라도 영구 결번을 달아주게 된다면 신진식, 김세진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45] 이로써 복구된 선수를 제외하면 모든 남자 4대 종목에서 영구 결번이 해제된 선수가 한 명씩 나오게 되었으며, 나머지 셋은 해제 혹은 반환식을 하지 않았다. 사실 결번 해제는 대개 구단 안팎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나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시몬의 사례가 특이한 것이다.[46] 야구 역시 선수의 해외 진출로 결번이 된 번호는 해당 선수가 본 소속팀으로 복귀할 때 까지 임시 결번으로 비워두는게 관습이 되었다. 한화 이글스의 99번(류현진), 키움 히어로즈의 7번(김하성)이 현재 각 구단에서 임시 결번 상태다.[47] 하지만 이효희의 커리어 21시즌 중 도로 공사 시절은 단 6시즌으로 1/3도 안 된다. 무명이 길어서 그렇지 오히려 KGC 시절이 9시즌으로 더 길 정도.[48] 둘 다 감독으로 1차례 우승을 이끌었다.[49] 다만 안양 한라 시절에만 뛰었기 때문에 배너는 다른 선배 영구 결번 선수들과 비슷한 디자인이다.[50] 이 팀은 프랜차이즈 외국인(귀화) 선수인 마이클 스위프트의 14번이 영구 결번으로 유력하긴 했으나 선수생활 말년에 대명으로 이적하기도 했고, 설령 남아있었더라도 구단의 형편없는 운영 때문에 영구 결번이 되지 않았을거라는 의견들도 많았다.[51] 당시 입사 1년 5개월의 현대차 연구원이었다. 구체적인 사인은 SS6 구간인 북제주군 애월읍 남영월드 북측 1km 지점 내리막길 구간에서 시멘트 방호벽을 들이받고 5m 아래 배수로 구간으로 떨어지면서 가슴과 얼굴 부위에 충격을 받아 현장에서 즉사했다.[52] 그 이전에는 부상자만 있었다. 사망은 이 건이 최초이자 2019년 현재까지 유일한 사례.[53] 참고로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상 첫번째 사고는 1991년 경기도 안산시 안산와~스타디움 부지에서 열린 91 코리아챌린지모터레이스에서 벌어진 사고로, 안전요원 및 관중 10명이 부상을 입었다.[54] 현 대한자동차경주협회[55] 지병으로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는데, 2017년 6월 30일에 잠을 자던 도중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 향년 31세.[56] 고인의 가족, 동료, 친구들이 뜻을 모아서 설립한 단체로, 2018년부터 KARA Prize Giving 행사 때 고인의 이름을 딴 특별상이 수여된다.[57] 2016년 12월 8일 등번호 2번의 데릭 지터의 영구 결번이 확정됨에 따라 영구 결번식이 있는 2017년 5월 14일 이후로 양키스에선 0번을 제외하곤 한자릿수 등번호를 가질수 없게 된다![58] 실제 사용 불가능한 숫자는 22개이다. 요기 베라빌 디키 두 명이 8번을 공유하고 있고, 재키 로빈슨의 번호 42번은 마리아노 리베라와 공유하고 있기 때문.[59] 놀란 라이언텍사스 레인저스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34번, LA 에인절스에서는 30번이며 프랭크 로빈슨신시내티 레즈, 볼티모어 오리올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모두 20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60] 피 위 리즈는 통산 타율이 .269에 불과해 한때는 재키 로빈슨 덕에 HoF에 들어갔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사실 선수로서 남긴 업적도 상당하다. 리즈는 투고타저 시대 속에 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자신의 전성기 커리어 3년을 손해보고도 올스타 10회에 다저스 구단 통산 WAR 2위를 기록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오늘날 세이버매트릭스가 발달되면서 피 위 리즈의 괴물같은 선구안과 빠른 주력이 세이버 스탯으로 고스란히 반영되면서 이런 에피소드 없이도 성적만으로도 명전에 들 자격이 충분하다는 재평가를 받았다. 타율 때문에 당대에 저평가받았던 케이스.[61] 최초는 맨 위의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NFL 뉴욕 자이언츠의 레이 플레허티다.[62] 다저스는 그전부터 영구 결번되어 있었다.[63] 일부 메이저 리그 구단에서는 볼보이나 볼걸들에게도 등에 다른 표시가 아닌 정식 등번호를 달게 해주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등번호 숫자에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64] KBO에서 영구 결번을 받은 선수들을 살펴보면 추모의 의미로 결번된 김영신을 제외하고는 전부 KBO 역사에 남을 수준의 선수들 뿐이다.[65] 놀란 라이언은 텍사스에서 뛸 동안 47세의 나이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고, 레지 잭슨은 뉴욕 양키스에서 월드시리즈 MVP를 따냈으며, 명예의 전당 헌액 때 양키스의 모자를 골랐다.[66] 물론 웨이드 보그스 항목에도 나와있듯 그 과정은 험난했다. 하지만 영구 결번에 깐깐한 보스턴이 끝내 보그스에게 영구 결번을 줬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67] 밀워키 브루어스의 경우는 창단 당시엔 아메리칸 리그 소속이었으나, 1998년 리그 확장으로 내셔널 리그로 소속을 옮겼다.[68] 2013시즌에는 등번호 42번인 마리아노 리베라가 은퇴하면서 전 구단 영구 결번은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과 공동 영구 결번이 되어 리베라는 마지막으로 등번호 42번을 단 선수였고, 등번호 2번 데릭 지터가 2014시즌에 은퇴하며 영구 결번이 되면서 뉴욕 양키스는 등번호 1번부터 10번까지 사용이 불가능하다. 즉 양키스에서는 0번을 빼고 앞으로 한 자릿수의 등번호를 단 선수를 볼 수가 없다는 것.[69]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경우는 창단 당시엔 내셔널 리그 소속이었으나, 2013년 아메리칸 리그로 소속을 옮겼다.[70] 그런데 요미우리도 구단 특유의 순혈주의로 인해 NPB의 다른 구단들에 비하면 오히려 기준이 짠 편이다 교진 영구 결번은 딱히 기준이 짜지는 않고, 6명중 2명이 이적생일 정도로 오히려 후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술하듯 문화적으로 영구 결번을 번호 세습에 비해 덜 가치있게 여기기 때문.[71] 축구팀인 FC 바르셀로나에서 10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보면 된다.[72] 전성기를 맞이한 후 가장 낮은 타율이 3할 4푼 2리에 출루율과 장타율은 단 한번도 4할/5할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73] 호크스는 공식적인 영구 결번이 없으며 실질적인 영구 결번이나 다름없는 '준영구 결번 취급'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독특하게도 만화 캐릭터인 '카게우라 야스타케' 에게 90번을 준영구 결번으로 부여하기도 했다. 연재가 종료되고 원작자 미즈시마 신지의 허락하에, 2016년부터 로베르트 수아레스가 번호를 사용하며 준영구 결번은 사실상 해제되었다. [74] 후지이가 죽은 후 현재까지 이 번호를 단 선수가 아무도 없어 사실상 영구 결번이나 마찬가지다.[75] 감독으로써 20년짜리 비밀번호를 찍던 개막장팀 호크스를 리그 우승 3회, 일본시리즈 우승 2회의 강팀으로 만든 공로를 높이 사 은퇴 후 현재까지 준영구 결번 처리되고 있다. 다만 오가 은퇴 후 후임 감독으로 취임한 아키야마 코지에게 이 번호를 물려주려 했으나 아키야마가 거절하면서 무산되었다.[76] 이치로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현재까지 오릭스에서 이 번호를 단 사람은 아무도 없다.[77] 실상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더불어 NBA에서 최대 명문 구단이기에 당연히 영구 결번이 많을 수 밖에 없으나, 단지 오래 활동했을 뿐 큰 활약이 없었던 선수나 시즌 중 갑자기 사망한 선수들까지 애도 차원에서 지정하는 바람에 영구 결번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같은 동네 모 야구팀과는 정반대. 라이벌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만 해도 영구 결번은 11명이 채 되지 않고 명예의 전당 들어가기가 레이커스 영구 결번보다 쉽다는 말도 나온다. 그리고 이 말은 사실이다. 2021년 기준 레이커스 영구 결번자는 전원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며, 오히려 블라디 디박처럼 레이커스에서 적게 뛴 것도 아닌데(8시즌) 명전에 헌액되고도 영구 결번이 안 된 선수도 있다. 레이커스는 오히려 미니애폴리스 시절 결번을 깔끔하게 무시해서 우승경력은 미니애폴리스 시절로 치면서 결번은 무시하냐고 욕을 먹기도 한다.[78] 랩터스도 아직 없지만... 슈퍼팬 나브 바티아가 95번이라는 번호를 받았고 라우리의 7번을 결번할 예정이라...[79] 원래는 아르헨티나 유소년과 성인 대표팀에서도 영구 결번이었으나, 피파가 허용하지 않아 취소되었다. 현재는 리오넬 메시가 이 번호를 달고 있다. 메이저급 대회인 월드컵, 남미 대륙 컵에서는 결번 없이 1번부터 23번까지를 사용하고 24번부터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썼지만 친선 대회에서는 10번을 사용하지 않곤 했다. 대회에는 항상 달고 나가야 한다는 결정이 있은 후에는 많이 희석되어서 친선 경기에도 10번을 사용하는 일이 많지만.[80] 이탈리아 2부 소속이던 경기 당시,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여의고 누나, 장애인 동생과 같이 살아왔는데, 이 기구한 사정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그야말로 인간승리 케이스였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영구 결번.[81] 체사레 말디니와 그의 아들 파올로 말디니가 연달아 3번을 달고 뛰었으며, 다른 선수에게는 이 번호가 허용되지 않으나 말디니 가문에서 밀라니스타를 배출한다면 3번을 사용할 수 있다. 이후 파올로 말디니의 아들 다니엘 말디니가 밀란 1군에 승선하며 드디어 그 주인공이 배출되는 듯 했으나, 본인이 당장에 3번을 달기엔 번호의 가치가 훼손될까 우려되어 거절했다고 한다.[82] 인테르에서 1960~1978년까지 뛰었던 공격형 풀백. 63-64, 64-65 2년 연속 유러피언 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인테르에서만 기술 고문관, 보드진, 홍보 대사, 부회장, 회장까지 지냈다가 2006년 사망했다. 이후 영구 결번.[83] 인테르의 영원한 주장, 은퇴 후 인테르의 부회장으로 임명되었다.[84] 이탈리아 역사상 A매치 최다 득점자이자 최고의 공격수이다. 왼발 슛이 폭발적이어서 천둥소리(Rombo di Tuono)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85] 영구 결번이 유력한 것은 사실이나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난 것은 아니다.* 물론 클럽에서는 거의 비공식적인 영구 결번 취급을 받는다. 이에 대해 토티는 젊고 재능있는 선수들은 10번 셔츠를 입기를 원한다면서 클럽이 동의한다면 자신은 언제나 10번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데로시 역시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이적과 은퇴 이후 16번을 부여한 적이 없다. 토티와 마찬가지의 케이스인듯.[86] 한때 구단의 레전드 뱅상 콩파니가 달았던 4번도 임시 결번에 준하는 취급을 받았다. 빌바오 시절 4번을 썼던 에므리크 라포르트는 14번을 사용중이고 콤파니가 이적한 후에도 14번을 유지하고 있고, 대표팀에서 4번을 쓰는 후벵 디아스도 맨시티 이적 후에는 3번을 사용하고 있다. 4번을 쓴 적이 없긴 하나 네이선 아케도 맨시티 이적 후 4번을 달지 않는 등, 4번은 비워진 상태였다. 그러다가 2022년 여름에 영입된 칼빈 필립스가 4번을 달면서 콤파니 이후의 4번의 새로운 주인이 생겼다.[87] 카메룬 국가대표팀 출신 선수로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했다가 콜롬비아와의 준결승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임대 소속이었고 좋은 활약을 펼쳐 완전 이적이 확실시되던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에서 영구 결번 처리.[88] 심장병으로 사망한 오스트리아의 공격수로, 그가 사망한 뒤 추모의 의미로 영구 결번 처리되었다.[89]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1994년생 공격수로, 2014년 암투병 끝에 사망하였다.[90]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 출신 유망주로 2006년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에서 데뷔했으나 2007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영구 결번 처리.[91] 프로 경력이 딱 한 시즌인 만 17세의 나이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매우 특이한 사례인데, 2020년 여름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면서 26M 파운드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남기며 팀의 재정난을 해소시켜 주었고 이 과정에서 강등 위험을 겪던 팀을 위해 매디컬을 압둔 상황에서 기꺼이 출전한 모습에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92]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지만 졸라가 팀을 떠난 2003년 이래로 구단 차원에서 이 번호를 다른 선수가 사용하도록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영구 결번 취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이세스 카이세도가 졸라에게 양해를 구하고 25번을 달았다.[93] 위의 잔프랑코 졸라처럼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비슷한 경우로 존 테리 은퇴 후 사실상 영구 결번 취급을 하고 있다. 하지만 2022-23 시즌, 첼시로 이적한 쿨리발리가 존 테리의 동의를 구해 26번을 달고 뛰었다. 그 후 한 시즌만에 알 힐랄로 이적하였다. 23/24시즌 현재는 콜윌이 달고 뛰고있다.[94]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레들리 킹 은퇴 이후 26번을 받은 선수는 없다. 사실상 준 영구 결번.[95]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푀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동일 인물이 2개팀에서 영구 결번이 된 몇 안되는 축구계의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96] 이때문에 1군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유망주들이 25번 이후의 등번호를 많이 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인 선수의 사례만해도 29번을 달았던 김영규나 1군 계약 전까지 34번을 썼던 이강인이 대표적.[97] 25번은 1군 엔트리에 골키퍼가 2명일 경우 필드플레이어도 달 수 있다.[98] 호날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부터 등번호 7번을 썼지만 레알로 이적한 2009-10 시즌에는 라울이 레알 마드리드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9번을 썼다.[99] 구단차원에서 전임 21번이던 카를레스 알레냐에게 양보를 권유강요하고, 더용 본인이 알레냐에게 사과와 동시에 양해를 구한 덕에 21번을 유지할 정도.[100] 1995년 요코하마에 입단하여,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요코하마에서 12년간 3번을 달고 뛰다가 마쓰모토 야마가 FC로 이적한 후 2011년 8월 훈련 도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이에 전 소속 팀인 요코하마가 그를 기려서 J리그 최초로 3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했다.[101] 군마에서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밖에 뛰지 않았지만, 팀을 군마현 리그에서 간토 지역 리그 승격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102] 기후의 유스 팀에서 뛰었던 선수로, 장래 프로 데뷔 가능성이 높았던 유망주였으나 2010년 원정 중 들렀던 해수욕장에서 사고로 익사하였다. 이에 팀에서 그에 대한 추모와 사고 재발 방지를 바라며 그의 요절 당시 나이이자 등번호였던 13을 1군 팀과 유소년 팀 전체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103] 사간 도스의 팬들을 일컫는 애칭이다.[104] 1983년부터 1998년까지 원 클럽 플레이어로 오직 피테서에서만 뛰었던 수비수 테오 보스를 기려 그의 번호 4번을 영구 결번 처리하였다.[105] 헝가리 국가대표팀 출신 선수로 2004년 비토리아 SC와의 리그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벤피카에서 영구 결번 처리.[106] 1997년생. 2017년 골종양으로 사망[107]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 출신 선수로 2001년 FC 안지 마하치칼라와의 리그 경기 도중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인해 뇌진탕을 입은 뒤 열흘 후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후 CSKA 모스크바에서 추모의 뜻으로 영구 결번 처리.[108] 그리스 국적의 1976년생 미드필더. 1998년 5X5 연습경기에 참여한 후 귀가하던 도중 차량 사고로 인해 사망하였다.[109] 2008년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추모를 위해 영구 결번 처리되었다.[110] 1977년부터 2002년까지 원 클럽 플레이어[111] 그냥 1번이 아닌 앞에 0이 붙은 01번이 영구 결번이다.[112] 1976-1983, 213경기 193골[113] 1975~1977, 56경기 31골[114] 1989년부터 2010년까지 로센보르그에서만 원 클럽 플레이어로 뛰었던 미드필더 로아르 스트란의 번호 6번을 영구 결번 처리하였다.[115] 1977년부터 1998년까지 원 클럽 플레이어로 뛰었던 공격수 마제드 압둘라를 기려 그의 번호 9번을 영구 결번 처리하였다.[116] 2017년 6월 5일 훈련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셰이크 티오테를 추모하기 위해 영구 결번 처리되었다.[117] 2006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득점왕이었던 사넬 쿨지크의 업적을 기리고자 영구 결번 처리하였다.[118] 포뮬러 1, 포뮬러 2, 포뮬러 3, 포뮬러 E.[119] 과거 유니폼에 번호를 부착한 경우가 몇몇 있다. 플러스-르까프/화승 오즈, 온게임넷 스파키즈, Evil Geniuses 등.[120] 당시 같이 출전했던 남자친구가 감독관을 밀쳐서 도와줬다.[121] 오릭스 블루웨이브와의 흡수 합병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긴테쓰 버팔로즈의 시즌 최후의 시합에 앞서 선수들에게 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