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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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est Britain Monarch
※ 2012년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여론조사업체 ICM에 의뢰해 영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TOP 5
1위
2위
3위
4위
5위
엘리자베스 2세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
헨리 8세
헨리 5세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파일:영국 왕실기.svg

파일:영국 국장.svg
영국 왕실기
영국 왕실 문장[1]


파일:영국 국장.svg
영국 국왕
King of the United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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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찰스 3세 / 영국 및 영연방 왕국의 국왕
즉위
2022년 9월 8일
경칭
His Majesty (폐하)
지위
영국영연방 왕국국가원수
창립
1707년 5월 1일 (317주년)
관저
버킹엄 궁전 (공식 관저)[2]
클래런스 하우스 (임시 관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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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위상
3. 권한
3.1. 국왕 대권
3.2. 영연방의 수장
3.5.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통치자
3.6. 이외 권한
4. 종교
5. 재산
6. 왕위 계승
7. 섭정
9. 역대 영국 국왕 목록
10. 기타
11. 장수한 군주들 순위
12. 관련 틀



1. 개요[편집]


하느님의 은총으로 대브리튼북아일랜드의 연합 왕국과 다른 왕국의 국왕, 영연방의 수장, 신앙의 수호자이신 OOO 폐하 (His/Her Majesty OOO,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is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King/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에서의 칭호[3]

영국 국왕은 영국군주로, 현 영국의 국가원수이다. 현임 국왕은 윈저 왕조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채널 제도맨 섬의 군주(영주)이기도 하다. 채널 제도맨 섬은 영국령이 아니라 영국 왕실령으로써 영국이 군주제를 폐지해도 채널 제도맨 섬의 영주로 존재할 수 있다.

왕위 계승 서열윈저 왕조 문서 참고.


2. 위상[편집]


섬나라라는 특성상 영국은 중세 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유럽사의 변방에 위치했으며, 영국 왕실은 윌리엄 1세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한 이래 프랑스와의 교류를 통해 유럽에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다만 윌리엄이 노르망디 대공이었던데다, 거듭된 결혼 정책을 통해 앙주, 누벨아키텐 등의 영지를 획득하였기 때문에 백년전쟁 이전 봉건 시대의 절정기에는 프랑스의 절반에 가까운 넓은 영토를 갖고 있었다.[4] 이 때가 '사자심왕'으로 불리는 리처드 1세 시기로, 제3차 십자군 원정에서 살라딘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아크레를 점령하기도 했다.

영국 왕실은 헨리 8세 시기 수장령을 통해 전통적인 가톨릭 권력 구조에서 이탈하여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으며, 이후 대를 거듭하며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의 갈등, 의회와 국왕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번번이 충돌하였다. 18세기 스코틀랜드와의 합병그레이트브리튼섬 내의 지정학적 판도를 안정시켰지만, 잉글랜드 내전 당시 공화정이 들어서는 바람에 국왕 찰스 1세는 처형되고 왕실은 일시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올리버 크롬웰의 폭정과 지나친 엄숙주의에 반발하여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뒤, 산업 혁명 이후부터는 영국의 국력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기술과 경제 발전을 선도하는 나라가 되면서 덩달아 영국 국왕의 위상도 급격히 상승하게 되었다. 동인도 회사를 통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막대한 무역수지를 창출하는 데 성공한 것도 이러한 발전에 일조하였다.

영국 국왕은 19세기가 되면 초강대국대영제국의 군주로서 전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독일 황제, 러시아 황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와 함께 유럽의 군주들 중 가장 위상이 높았다.[5]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많은 현대 국가가 탄생하면서 대영제국 역시 대부분의 식민지를 독립시키고 해체되었지만, 현재도 영국 국왕이 재위하고 있는 영국영연방 왕국의 총면적을 합치면 러시아보다도 크다.[6][7] 또한 이들 국가의 총인구는 1억 3,500만명으로, 천황이 국가원수로 있는 일본보다 많다.

현재도 'Royal Family'라고 하면 대부분 영국 왕실을 떠올리고 실제로 구글에 검색해도 영국 왕실이 가장 많이 나온다. 영국의 왕실인 윈저 가문은 왕실의 대명사라고 봐도 될 정도로 전세계 국가의 모든 왕실들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다. 단적인 예로, 홈페이지와 SNS 공식 계정 이름도 'The British Royal Family'나 'The Buckingham Palace' 대신 단순히 왕실을 의미하는 'The Royal Family' 를 사용 중이다. 다른 국가의 왕실이 국가명이나 가문명을 공식 계정 이름에 넣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3. 권한[편집]



3.1. 국왕 대권[편집]



영국은 성문헌법이 없는 나라라 국왕이 소유하는 대권의 범위를 확정하기 어렵다. 특권의 존재와 그 적용 범위는 영국의 관습법에서 고려해야할 문제이다. 그래서 영국의 사법부가 특정 대권의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최종 중재자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몇몇의 대권은 널리 인정되고 시간이 지나서 행정부에서 수용되었지만, 다른 권한은 쓰이지 않게 되었다. 국왕 대권은 무제한적이지 않으며, 제임스 1세의 재위기간 1610년의 선언 사례를 통해 영국 보통법원의 판사들은 왕실 특권의 한계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명예혁명 이후 윌리엄 3세메리 2세는 사법부가 분리되고 뚜렷한 권한이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법이 무엇인지, 또는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것은 법원의 역할임이 명백해졌고, 이는 사법권 개념의 결정적인 귀결이자 기초가 되었다. 이는 왕실이나 그 장관이 소유한 집행권과는 분리되는 특성이다.# 또한 정부에 대한 궁극적인 행정 권한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국왕 대권을 통해 존재하지만, 이러한 권한은 의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따라 그리고 실제로 관습과 전례의 제약 내에서만 사용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왕실 특권의 권력적 개념은 중세 왕이 왕국의 수장 역할을 하는 데서 유래하지만 결코 중세적인 관념은 아니다. 특권을 통해 국왕의 장관(내각)들은 군대를 배치하고 국제 조약을 체결하고 각종 명예를 수여할 수 있다. 현대에 정부 장관은 자신의 권리로 또는 국왕이 헌법상 따라야 하는 조언을 통해 대부분의 특권을 행사한다. 특권의 기본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은데 첫째로 법령과 특권이 충돌하면 법령이 우선하고 특권을 사용하여 법령을 변경할 수 없다. 두번째로 특권의 사용은 공정성과 이성의 관습법적 의무에 따른다. 즉 이론상 권한 자체는 막강하지만 남용할 수 없다.세번째로 특권은 법령에 의해 폐지되거나 폐지될 수 있지만, 결코 확대될 수 없다. 그러나 의회는 그 성질상 특권적 권한과 유사한 권한을 법령으로 만들 수 있다. 즉 국왕 대권은 이론적으로 영국 행정부의 권력의 원천이지만 그 제약 역시 분명하다.

이론상 영국 국왕은 영국의 사법과 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왕대권은 공정성과 이성의 관습법적 의무에 반하지 않는 이상[8] 어떠한 사법적 심사도 받지 않는 특권이다. 국왕의 조칙(추밀원 칙령)은 이론적으로 영연방 전체에서 그 나라 의회법에 따라 변경할 수는 있지만 권한에 있어 의존하지 않은채 독자적으로 법률로서 입법할 수 있다. 단 권리장전에 명시된 제한사항은 제외된다. 또 의회의 입법 중에 국왕이 칙령으로 새로운 을 제정하는것은 1610년 에드워드 코크의 선언 사례 판례의 의해 제한된다. 즉 국법상 중대한 범죄를 방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칙령에 의해 새로운 범죄를 창설할 수 없다.[9]

또한 의회가 입법한 법안을 재가하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불기소권(놀리 프로시콰이)과 사면권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다. 모든 영국법은 국왕의 이름으로 행사되기에 영국 국왕은 재임 기간 동안 영국 법의 심판도 받지 않는다. 그 외 외교권과 훈장/작위 수여권, 영국 국교회 성직자 임명권 등이 있다. 국왕은 모든 영국의 '명예와 존엄의 원천(Fount of honour)'으로 취급되며 훈장과 작위를 수여할 원천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영국의 공직자들과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들은 국왕에게 충성의 맹세를 한다. 이러한 맹세는 1868년 약속서약법에 명시되어 있다.#

국왕의 권한은 이론상 막강하며, 현대 영국 국왕은 대헌장과 권리장전으로 제한된 몇가지를 제외하면 절대군주적 권한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내각에 맡겨놓았을 뿐이다. 국왕은 내부적으로 절대적인 권위, 또는 독자적인 특권으로 간주되며 영국 정부의 많은 행정권력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동의권(King's/Queen's Consent)[10], 면세권, 군대 지휘권/해산권, 장교 임명권/해임권, 선전포고권, 군수품 판매권, 왕족의 자손에 대한 친권[11], 의회 해산 권한[12] 등등도 가지고 있다. 템즈강 백조 소유권 같은 재밌는 것도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우니 기사를 참고해보자.관련 기사

국왕은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사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18세기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 경이 저술한 영국법 주해에서 블랙스톤은 "That the King can do no wrong, is a necessary and fundamental principle of the English constitution." (왕이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은 영국 헌법의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이다.) 라고 말한다. 즉 국왕은 살인을 포함한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완전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다. 국제 법률 실무자, 변호사 협회 및 법률 학회를 위한 최고의 조직인 IBA에 발표된 에섹스 대학의 공법 및 사회법학 모리스 선킨 교수는 글에서 "법치의 수호자로서 왕관의 역할을 보고 있으며, (중략)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왕관은 주권면제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에 법의 지배 위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왕관 자체는 법령이나 관습법에 구속되지 않으며, 군주는 개인적으로 기소될 수 없고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지만, 그의 장관과 공무원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군주가 맹세한 것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군주의 신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11년 조지 5세는 중혼으로 고발당했지만, 대법원장은 국왕에게 증거를 제시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판결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2023년 1월 영국 하원이 발행한 글의 46페이지에 따르면 왕관(군주)(Crown)은 관습법에 의한 법적 조치에 대해 면제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13]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지만 국왕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는 없다. 또한 영국 여권은 국왕의 이름으로 발행되고 국왕 본인은 여권을 소지하지 않는다. 국왕이 여권을 소지한다는 것은 엄연히 신하인 외무대신에게 여행을 가도 되겠냐고 허락을 받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국왕만 해당되지 왕실 인원들은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 198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미국으로 여름 휴가를 떠났을 때 여권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켄터키주 렉싱턴 공항에 착륙했을 때 세관과 이민 수속 담당 직원이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여왕의 입국을 통과시켜주지 않은 것이었다. 국무부에서 나온 의전 담당 직원이 국왕은 여권을 소지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해당 직원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계속 버텼고 결국 워싱턴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나서야 입국이 허가되었다고 한다.

다만 영국 국왕은 명목상으로 가지고 있는 권한을 남용하지 않으며 입헌군주제[14]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국왕의 조칙은 형식적인 것으로 보통 내각이 빠른 법안 처리를 위해 국왕의 이름을 빌려 제정된 초안을 국왕 앞에서 낭독하고 국왕은 '승인되었다'고 말하는 형식적인 재가를 하는 형태가 많다. 따라서 현대에는 이러한 국왕 대권의 권한은 스스로 또는 군주를 대신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 장관(내각)에게 위임되어 행사된다. 또한 이렇게 장관들(행정부)에 위임된 대권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회는 행정부의 행동을 감시하는 통제의 주요 원천 중 하나가 되었다.#

영연방 왕국들은 영국과는 별도의 헌법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각국의 헌법에 따라 국왕대권이 규정된다. 캐나다의 경우 영국처럼 국왕대권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이론적으로 영국 국왕이 영국에서 행사할 수 있는 국왕대권을 캐나다에서도 캐나다 국왕으로서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영연방 왕국에서는 국왕대권의 범위를 구체적이고 좁게 설정해 국왕대권을 크게 제한한다.

또한 영연방 국가 가운데 영국 국왕에 충성할 의무가 없는 나라에는 영국 국왕의 조칙은 당연히 강제적이지 않다. 1947년 자치령으로 독립한 인도는 영국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는 영연방 공화국이 되길 원했고, 따라서 1949년 영연방 국가에서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의 의무는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영연방 회원국에게 영국의 군주를 국가원수로 둬야 한다는 의무는 폐지되었고, 국왕은 영연방 원수(Head of the Commonwealth)라는 직함을 받았다.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영연방 국가들에게 영국 국왕의 대권 행위가 모두 적용되지는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한 뒤 일부 영연방 국가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영국에 대한 적대행위는 아니며, 독립의 고리를 완성해 진정한 주권국가가 된다는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 이는 영연방 국가들이 가진 그 나라 독자적인 헌법에 따른 특수성과 영국 군주제에서 벗어난다는 탈식민지적 주권국가로의 발돋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1848년 제정된 영국의 반역 중죄법[15]은 1879년 마지막으로 시행된 이래 엄격한 시행 요건이 있지만,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법령에 존재한다. 이는 국왕에게 반역을 하거나, 찬탈을 시도하거나 또는 외국인과 협잡해 국왕과 영국을 침공 혹은 그러자고 선동하거나, 혹은 그런 의도로 음모를 꾸미거나 고안, 상상(imagine)하면 중범죄로 기소되어 최대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16] 따라서 혁명 상황이 아닌 바에야 진지하게 군주제를 폐지하려고 하거나 국왕에게 적대하려고 시도하면 이 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17]

유사한 법안으로 1842년 반역죄도 있는데 이 법은 국왕을 향한 직접적인 공격에 대한 반역죄 처벌도 명시하고 있다.# 2021년 윈저성에 잠입해 석궁을 가지고 여왕을 해치려고 한 범인이 이 법으로 2022년 8월 2일 기소가 되어 처벌 받았다. 범인은 1981년 이후 40년만에 유죄판결을 받은 첫번째 사례이다.#


3.2. 영연방의 수장[편집]


영국 국왕은 영연방의 수장(Head of the Commonwealth)이다. 다만 상징일 뿐이고 실질적인 업무는 영연방 사무총장이 처리한다.

본래 영연방 회원국은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 의무가 있었으나 1949년에 폐지된다. 1947년에 자치령이 되어 사실상 독립인도 자치령이 "우리는 국왕[18](조지 6세) 자르고 공화국이 되고 싶다. 하지만 영연방에는 남고 싶으니 규정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인도와 으르렁대다가 별개의 나라로 분리된 파키스탄 자치령은 인도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반대했으나 결국 다른 영연방 회원국들이 이를 수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연방 회원국에 영국 국왕을 해당국의 국가원수로 둬야 한다는 의무가 철폐되었고, 대신 조지 6세에게는 영연방 수장(Head of the Commonwealth)[19]이라는 어정쩡한 칭호가 부여되었다. 조지 6세가 사망한 뒤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2세도 영연방 수장직을 승계하였다.

그런데 왕위와 달리 영연방 수장직은 세습이라고 규정된 바가 없다.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할 당시만 해도 영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에 별 말 없이 승계했지만, 당시 찰스 3세는 즉위 후에 영연방 수장직을 승계하게 될 것인지 여부는 불명확한 상태였다. 그래서 여왕과 영국 정부가 영연방 정상회의(CHOGM)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여 찰스 3세가 사실상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 일단 찰스 3세는 급한 불을 껐지만, 차기 국왕 즉위를 앞두고 또 이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며, 그 때쯤 되면 그냥 영연방 수장직을 폐지하거나 선출직으로 바꾸자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3.3. 영연방 왕국들의 국왕[편집]


영연방 소속의 53개국 중에는 영국과 동군연합 상태인 영연방 왕국 15개국(영국 포함)이 있기 때문에 영국 국왕은 영국 이외에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자메이카 등 14개 나라의 군주 자리를 겸임하게 된다.

그러나 영연방 왕국에 속한 나라들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엄연한 독립국이기 때문에 호주뉴질랜드와 같은 영국 이외의 영연방 왕국이 "영국 국왕을 군주로 모신다"고 하면 틀린 말이 된다. 예를 들어 현재 재위하고 있는 찰스 3세의 영국 내에서의 공식 칭호는 영국 국왕(King of the United Kingdom)이지만 호주 내에서의 공식 칭호는 호주 국왕(King of Australia)으로, 군주의 공식 칭호에 영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20]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찰스 3세의 공식 칭호가 뉴질랜드 국왕(King of New Zealand)이다.[21] 다만 영연방 왕국들 중에서 캐나다그레나다 둘만은 예외적으로 정부의 공식 칭호로는 각각 '영국과 캐나다의 국왕', '영국과 그레나다의 국왕'이라고 칭하고 있다.

영국 이외의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영연방 왕국은 평상시에 국왕이 현지에 주재하지 않으므로 국왕의 대리자인 총독을 현지에 둔다. 옛날엔 이 총독도 영국에서 파견했지만 현재 저 14개국 중에 그러는 나라는 한 개도 없다. 전부 각국의 의회내각에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원로 정치인, 전직 고위 외교관 등)를 국왕에게 총독으로 추천하고, 국왕이 그에 따라 임명하는 식이다. 그리고 국왕은 '영국' 국왕으로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국왕(예를 들어 호주 총독을 임명할 때는 호주 국왕)으로서 임명한다.


3.4. 영국군통수권자[편집]


영국 국왕은 영국군통수권자이기도 하고 또한 캐나다군의 통수권자와 뉴질랜드군의 명예수장(Head of the New Zealand Defence Force)도 겸임한다. 다만 명예수장과는 별개로 뉴질랜드군의 통수권총독이 갖는다. 호주영연방 왕국 소속이지만 호주군의 통수권자는 국왕이 아닌 호주 총독이다.

물론 이도 현대에 와서는 형식적인 권한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국왕은 조지 6세였지만 실질적으로 영국군을 통수한 사람은 총리인 윈스턴 처칠이었다.


3.5.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통치자[편집]


영국 국왕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통치자(Supreme Governor of the Church of England)'직을 겸한다. 이렇게 국왕이 교회의 최고직위를 겸하기 때문에 영국 국왕은 신앙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aith/Fidei Defensor[22])라는 칭호도 가진다.[23]

잉글랜드 국교회(Church of England)는 성공회로 분류되어 세계 성공회의 협력체인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지만, 이 교회의 수장인 영국 국왕이 곧 세계 성공회 전체의 수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성공회의 상징적 수장은 캔터베리 대주교이고, 잉글랜드 국교회, 즉 국교회 아래에 캔터베리관구요크관구 등 2개 관구가 세계성공회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24]


3.6. 이외 권한[편집]


  • 국왕은 매일 정부로부터 로열 레드 박스(Royal Red Box)라고 이름 붙여진 붉은색 상자를 배송받는다.[25] 이 상자 안에는 영국 총리의 국정 상황 브리핑과 함께 국왕이 승인하도록 제출되는 주요 공문서와 법률안, 군사 기밀 정보, 방첩 정보 등이 담겨 있다. 크리스마스부활절을 제외하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국왕에게 배달되며, 심지어 국왕의 휴가지에도 이 상자가 배송된다고 한다.[26] 이외에도 매주 화요일에는 총리를 직접 만나 국정 현안에 대해 토의하며,[27]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외교 문제에 대해 브리핑을 받거나 주요 정보기관장들로부터 직접 기밀 정보에 대해 보고받을 권한이 있다. 물론 국왕이 국정 업무에 대해 보고를 받은 후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절대로 공개되는 일이 없다.[28]

  •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공공기관, 학술단체 등에 칙허장(Royal Charter)을 발행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 칙허장을 수여받은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가 있다. 다만 칙허장의 실질적인 심의 업무는 추밀원에서 대행하고 있으며, 명목상 발급자만 국왕으로 되어있다.

  • 국왕은 모든 미성년자 왕족들에 대한 절대 친권을 갖고 있다. 때문에, 국왕이 왕족 아이를 입양하고자 할 때는 해당 아이의 부모의 의견을 무시하고 무조건 친권과 양육권을 가져올 수 있다. 왕실에서 양육권 소송이 진행될 경우 무조건 국왕이 승소한다. 이는 후계자 문제 때문이라고 하며 이론적으로 국왕이 아무 왕족 아이들이나 데려와서 양육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템스강에 있는 모든 백조는 국왕의 소유물이다.1300년대에 만들어진 백조 소유법에 따라 주인으로부터 도망쳤거나 원래 주인이 없는 백조는 모두 국왕의 소유로 되어있다. 따라서 지금도 상징적으로 템스강에 사는 백조들은 국왕의 소유이며, 만약 백조를 해칠 경우 동물보호법이 아닌 절도죄로 처벌받게 된다. 국왕의 소유물을 훔쳤기 때문이다. 해마다 국왕이 소유한 백조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몸무게를 재는 전통 행사도 열리고 있다.# 왕실 내부에는 국왕의 백조를 관리하는 백조 관리인 직책도 따로 존재한다.

  • 1324년 에드워드 2세가 내린 칙령에 따라 영국 영해에 사는 모든 고래돌고래, 철갑상어는 국왕의 소유물이다. 특히 고래의 뼈는 왕비가 착용하는 코르셋의 재료로 사용되어야 하므로 왕비의 소유물로 간주된다.[29] 백조와 마찬가지로 고래를 함부로 죽이거나 포획한다면 절도죄로 처벌받는다.

  • 국왕과 왕족들은 영국인의 권한인 정보 청구권에서 자유롭다. 영국인은 누구나 정부로부터 어떤 정보나 자료든 열람하거나 청구할수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국왕은 이에 대한 방어권을 갖는다. 따라서 왕실에 대한 정보나 자료는 국왕의 동의 없이 열람할 수 없다. 학자나 작가들이 왕실에 대한 역사 자료를 수집하거나 연구를 진행할 때에도 국왕의 동의를 형식적으로 얻어야 하며, 왕실의 회계 자료도 일반인이 청구해 열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법률안 거부권이나 의회 해산권과는 달리 현재도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권한이다.

  • 국왕이 보는 앞에서는 체포 또는 형집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과 국왕이 머무르고 있는 건물에서도 사법 집행이 이뤄져서는 안된다.

4. 종교[편집]


왕족 중 오직 성공회 신자 만이 영국 국왕으로 즉위할 수 있으며, 가톨릭으로 개종할 시 왕위 계승권이 박탈된다.

16세기 이래로 영국 국왕은 즉위식에서 스코틀랜드 국민교회를 유지하겠다고 서약하며 잉글랜드에서는 성공회 신자로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다. 때문에 새 국왕이 즉위하게 되면, 잉글랜드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성공회 의식으로 대관식을 치른 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서 스코틀랜드 장로회 의식으로 봉헌식을 따로 치른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부터 영국 국왕이 스코틀랜드에서 거주할 때에는 밸모럴 성 인근 크래디 커크에서 예배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5. 재산[편집]


영국 국왕은 '랭커스터 공국'이라는 이름의 재산과, 크라운 에스테이트라 불리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

랭커스터 공국은 랭커스터 공작(Duke of Lancaster)으로서 소유한 재산이며, 역사적인 이유로 영국 국왕이 랭커스터 공작을 겸하게 되면서 국왕에 속하게 된 재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산은 완전한 국왕의 사유재산으로, 원칙적으로는 세금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1993년왕실의 비용 문제가 논란을 빚자 엘리자베스 2세는 자진해서 면세권의 일부를 포기하고 소득세를 내고 있다.

크라운 에스테이트(The Crown Estate)는 국왕이 법인(Corporation Sole)으로서[30] 보유하는 재산이며, 영국 정부의 국유재산도 아니고 국왕의 완전한 사유재산도 아니다. The Crown Estate는 동명의 재단법인 The Crown Estate에서 관리하며, 이 재산으로부터 나는 수익은 영국 국고(영국 재무부)에 귀속되는 대신 왕실이 Civil list라고 불리는, 부동산 수익의 15%를 받는 식으로 운영되는데, 2016년부터 버킹엄 궁전 리모델링으로 인해 10년간 한시적으로 25%를 받는다. 출처1 출처 2 본래 이 재산도 랭커스터 공국처럼 국왕이 보유하는 사유재산이었지만 조지 3세가 정부 운영에 돈을 내는 대신 정부에 수익을 넘겨주기로 합의하여 관리하게 되었다.

국왕이 완전히 개인으로서 소유하는 사유재산이 따로 존재하는데, 밸모럴 성 영지와 샌드링엄 하우스 영지가 대표적이다. 이외에 각종 보석과 예술품, 투자 자산, 승용차[31], 경주마[32]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왕위가 계승되어도 국왕의 특권에 따라 상속세가 면제된다.[33] 사유재산의 규모는 정확히 알려진 적이 없으나, 포브스의 추정치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의 재위 기간동안 5억달러(약 6954억원)의 자산을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상속된 재산을 포함해 18억 1500만파운드(약 2조 9649억원)에 달하는 개인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개인 재산을 제외한 왕실 자산은 크라운 에스테이트 195억달러(약 26조9000억원), 버킹엄 궁전 49억달러(약 6조7000억원), 콘월 공국 자산 13억달러(약 1조8000억원), 랭커스터 공국 자산 7억4800만달러(약 1조원), 켄싱턴 궁전 6억3000만달러(약 8700억원) 등 약 280억달러(약 39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다만 이 자산들은 국왕의 의사에 따라 자의적으로 처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부동산 자산과 미술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다.

6. 왕위 계승[편집]


현재 영국의 왕위 계승의 법칙은 2013년 제정된 2013 왕위 계승 법칙에 따른다. 이 법의 시초는 1701년에 정해진 1701 화해법인데, 3세기 후인 2013년에 영연방 왕국끼리 퍼스 조약(Perth Agreement)을 제정함에 따라 개정된 것이다. 본래는 영연방 왕국 국왕의 계승 법칙도 1701 화해법을 따랐으나, 영국 식민지였던 영연방 왕국이 독립하고 난 후로는 영국에서 제정한 2013 왕위 계승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각국에서 퍼스 조약에 따라 제정한 별도의 법률이 적용된다. 다만 그 내용은 영국의 2013 왕위 계승 법칙과 거의 다르지 않다.

현행법 상 왕위 계승권은 1701년 화해법에 따라 제임스 6세의 손녀이자 조지 1세의 어머니인 하노버의 소피아(팔츠의 조피)의, 성공회 신자인 후손으로 제한된다. 또한 혼외자로 태어나면 서열에서 제외된다.

본래 1701년 화해법에 따라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배우자가 신자라면 계승권을 박탈당했으나, 혼인으로 인한 박탈은 2015년에 폐지하고 이로 인해 계승권을 박탈당했던 사람들도 다시 계승권이 회복되었다.[34] 계승권을 개인이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래 남성 우선이라 남동생이 태어나면 여성은 계승서열이 남동생에게 밀렸으나, 영연방 왕국 전역의 동의로 2015년부터 적용되는 퍼스 협약 및 그에 따른 왕위계승법 개정에 따라 뒤로 밀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성별과 무관하게 태어나는 순서대로 왕위 계승 순위가 지정되는 것. 즉, 여성이라도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사람이 자식을 낳지 않는 한 밀릴 일이 없다. 그 전에 태어난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는 남동생들인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에드워드 왕자와 에드워드 안토니 리처드 루이 왕자,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순위가 밀렸지만, 이게 적용된 최초의 공주인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는 태어난 이후 남동생 루이 아서 찰스 왕자가 태어났음에도 계승순위가 뒤로 밀리지 않는다.

왕위 계승의 법칙을 바꾸려면 퍼스 조약처럼 영연방 왕국 모든 영역의 만장일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승계 규칙은 법에서 규정된 사항이라 법에 의해서만 바꿀 수 있다.

재위 중이었던 국왕이 사망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상속인이 왕좌에 오르며, 왕위에 오르기 위한 대관식같은 절차는 나중에 한다. 대관식은 준비와 선대 국왕에 대한 애도기간을 위해 몇달 정도 시간을 둔 후 한다.

2023년 현재 계승서열 1위의 확정 상속인은 윌리엄 왕세자이다. 1701년부터 확정 상속인(국왕의 장남)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웨일스 공) 작위와 함께 체스터 백작 작위를 받는 관례가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다.

왕위 계승 서열 6위까지는 국왕의 승인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

윈저 왕조의 창립자인 조지 5세의 후손들의 계승순위는 윈저 왕조 문서를 참고.

왕위 계승이 이루어지면 공직자들도 충성 맹세(Oath of Allegiance)를 해야하는데 이에 관련한 조례는 Promissory Oath Act, 1968에 제정되었고, 충성 맹세는 다음과 같다.

I, [name], do swear by Almighty God that I will be faithful and bear true allegiance to His(her) Majesty, The King(Queen), [name], his(her) heirs and successors according to law. So Help me God.

저 ○○은 왕위 계승법에 따라 XX 국왕폐하 및 폐하의 상속자들 및 후계자들에게 진실한 충성을 할 것을 굳게 다짐함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맹세합니다. 그러니 도와주시옵소서.

단, 맹세를 하는 사람이 무종교인일 경우, All Mighty God과 So help me God를 생략한다.

7. 섭정[편집]



파일:영국_역대섭정.png

1937년 섭정법 제정 이후 역대 섭정 목록
국왕이 미성년자이거나 정신적으로 무능력한 경우 1937년에 제정된 섭정법[35]에 따라 섭정 지정을 허용하는데, 두 사항 다 해당되지 않을 경우 21세인 왕족 중, 왕위 계승 서열에서 4명과 그들의 배우자가 지정된다. 국왕의 배우자와 차기 왕위 계승자는 성년이 지나면 별도의 섭정법 제정 절차없이 섭정으로 지정되며, 왕대비도 특수한 경우 섭정에 지정될 수 있다.[36] 이외에는 의회에서 섭정법을 따로 재정해 왕실의 허가를 거쳐 섭정으로 임명해야 한다. 현재는 이 원칙에 따라 카밀라 왕비윌리엄 왕세자, 해리 왕자, 앤드루 왕자, 베아트리스 공주가 섭정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2022년 찰스 3세가 즉위한 후 앤 공주에드워드 왕자를 섭정으로 지정하는 섭정법을 새로 제정했다.[37] 따라서 앞으로 찰스 3세와 윌리엄 왕세자가 모두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앤 공주와 에드워드 왕자가 섭정이 되어 임시로 국왕 업무를 대리하게 된다.

현재 지정된 섭정이 모두 직무 수행 능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다음 계승 순위인 유지니 공주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가 섭정 자격을 갖게 된다. 또한, 왕위계승자 신분인 조지 왕세손은 2034년이 지나면 별도의 섭정법 재정 절차 없이 자동적으로 섭정 자격을 갖게 되며, 이렇게 된다면 베아트리스 공주의 섭정 자격은 자동적으로 박탈된다. 또 국왕의 부모 역시 국왕이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예외없이 섭정으로 임명되는데, 따라서 만약 조지 왕세손이 성인이 되기 전 왕위에 오르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캐서린 왕세자비가 섭정을 맡는다.[38] 한편, 1937년 섭정법 재정 이후 실제로 섭정이 장기간 통치한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39] 지금까지 섭정 제도가 활용된 경우는 국왕의 해외 순방을 제외하면 극히 드물었고, 이마저도 6개월을 넘긴 적은 없다.[40]

차기 왕위계승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섭정 자격을 갖는 왕족과는 함께 차량을 탑승하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한다. 만약 국왕이 사망한다면 왕위계승자가 왕위를 이어야하는데, 왕위계승자와 섭정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왕위 계승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미성년자일 때 삼촌인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와 같은 차량이나 비행기를 탑승하지 못했으며,[41] 조지 왕세손 역시 12세 생일이 지나면 삼촌 해리 왕자와 같은 차량이나 비행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8. 레갈리아[편집]


대관보기(戴冠宝器, Crown Jewels)라고도 한다. 영국 대관식에서 새로 즉위하는 국왕에게 헌상되어 영국의 왕권과 왕위의 정통성을 표시하는 국왕의 보물들.


8.1. 왕관[편집]


파일:성 에드워드 왕관.jpg
파일:Imperial_State_Crown.png
성 에드워드 왕관
영국 제국관

성 에드워드 왕관에는 홍예 아치가 달려 있는데, 중세 유럽에서는 오직 황제만이 홍예 장식이 붙은 왕관을 쓸 수 있었지만 섬나라인 영국은 그에 구애받지 않고 홍예 장식을 붙였다.

8.2. 보검[편집]


파일:attachment/커타나/Curtana.jpg
  • 국가 어검(Sword of State) -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검.
  • 헌납의 보검(Sword of Offering) - 국가 보검(Jewelled Sword of State)이라고도 한다. 위 사진에서 가운데 있는 검.
  • 커타나 - 자비의 검(Sword of Mercy), 또는 참회왕 에드워드의 검(Edward the Confessor's sword)이라고도 한다. 위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검.
  • 영적 정의의 검(Sword of Spiritual Justice)
  • 세속 정의의 검(Sword of Temporal Justice)

8.3. 왕홀[편집]


  • 십자가 왕홀(Sovereign's Sceptre with Cross) - 세계에서 가장 컸던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컬리넌 I[42]이 왕홀의 꼭대기 부분에 부착되어 있다.
  • 비둘기 왕홀(Sovereign's Sceptre with Dove) -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장식된 왕홀.
대관식 때 국왕은 십자가 왕홀은 왼손에, 비둘기 왕홀은 오른손에 든다고 한다.


8.4. 옥좌[편집]


  • 에드워드 왕의 옥좌(King Edward's Chair) - 성 에드워드의 옥좌(St Edward's Chair)라고도 한다. 이 옥좌는 본래 스코틀랜드 국왕들이 즉위식 때 그 위에 앉아 왕관을 수여받는 식으로 사용되어 스코틀랜드의 왕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성물인 운명의 돌에서 유래했다. 1296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고 그 전리품으로서 운명의 돌을 잉글랜드로 가져와서 스코틀랜드를 정복하여 그 왕위를 이어받았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이전의 스코틀랜드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운명의 돌 위에서 대관식을 치르려고 옥좌 바닥 아래에 운명의 돌을 넣어서 앉을 수 있게 할 용도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스코틀랜드 국왕제임스 1세동군연합으로 잉글랜드 왕위까지 획득하면서 두 왕위가 합쳐져서 현재의 영국 국왕의 왕위가 탄생했고 현재의 영국 왕실도 스코틀랜드 왕가인 스튜어트 왕조의 혈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어찌보면 다시 주인에게 돌아간 셈이 되었다. 현재는 운명의 돌 자체는 스코틀랜드에 돌려주었으며 영국 국왕의 대관식 때만 돌을 일시적으로 가져와서 옥좌 바닥 아래 수납공간에 넣어서 대관식을 치른 후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운명의 돌 참조.

9. 역대 영국 국왕 목록[편집]



9.1.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동군연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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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왕조
재위 기간
권리
비고
제임스 1세
스튜어트
1603 ~ 1625
헨리 7세의 외증외현손자.[43]
[44]
찰스 1세
스튜어트
1625 ~ 1649
제임스 1세의 차남.[45]
[46]
공위시대(Interregnum)
1649 ~ 1660
-
[47]
찰스 2세
스튜어트
1660 ~ 1686
찰스 1세의 차남.[48]
[49]
제임스 2세
스튜어트
1685 ~ 1688
찰스 1세의 3남.
[50]
메리 2세
스튜어트
1689 ~ 1694
제임스 2세의 장녀.
[51]
윌리엄 3세
오라녀나사우
1689 ~ 1702
찰스 1세의 외손자.[52]
[53]

스튜어트
1702 ~ 1714
제임스 2세의 차녀.
[54]


9.1.1. 잉글랜드 연방호국경[편집]


잉글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이 세워진 곳은 잉글랜드인데, 언약도 성립에 따라 스코틀랜드아일랜드도 흡수해 모두 호국경을 국가지도자로 옹립하고 국호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이 되었다.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이 아닌 호국경으로서 통치했으나 정보 전달을 위해 본 문서에 같이 기재한다.
이름
재위 기간
비고
올리버 크롬웰
1653 ~ 1658

리처드 크롬웰
1658 ~ 1659



9.2.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영국 국왕[편집]


제임스 1세 이후 동군연합이 성립되어 잉글랜드 국왕이 스코틀랜드 국왕을 겸임했지만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이라는 국가는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고 각각 정부가 따로 있었다. 하지만 1707년부터 법적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쳐져 한 나라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이 되었고, 1801년 아일랜드 왕국까지 합병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 되었다가 1922년 아일랜드 일부가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떨어져나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으로 국호를 바꾸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름
왕조
재위 기간
권리
비고
파일:재위초앤여왕.jp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Anne
(1665 ~ 1714)
스튜어트
1702년 3월 8일 ~ 1714년 8월 1일
(12년 146일)
제임스 2세의 차녀.[55]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ing_George_I_by_Sir_Godfrey_Kneller%2C_B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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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1세
George I
조지 루이스
(1660 ~ 1727)
하노버
1714년 8월 1일 ~ 1727년 6월 11일
(12년 318일)
제임스 1세의 외외증손자.[56]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orge_II_by_Thomas_Hudso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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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2세
George II
조지 어거스터스
(1683 ~ 1760)
1727년 6월 11일 ~ 1760년 10월 25일
(33년 146일)
조지 1세의 장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llan_Ramsay_-_King_George_III_in_coronation_robes_-_Google_Art_Projec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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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3세
George III
조지 윌리엄 프레더릭
(1738 ~ 1820)
1760년 10월 25일 ~ 1820년 1월 29일
(59년 110일)
조지 2세의 손자.[57]
[58][59]
파일:George_IV_1821_colo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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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4세
George IV
조지 오거스터스 프레더릭
(1762 ~ 1830)
1820년 1월 29일 ~ 1830년 6월 26일
(10년 152일)
조지 3세의 장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illiam_IV_crop.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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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4세
William IV
윌리엄 헨리
(1765 ~ 1837)
1830년 6월 26일 ~ 1837년 6월 20일
(6년 359일)
조지 3세의 3남.[60]
[61]
파일:queenvictori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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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Victoria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1819 ~ 1901)
1837년 6월 20일 ~ 1901년 01월 22일
(63년 216일)
조지 3세의 손녀.[6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dward_VII_in_coronation_robe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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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7세
Edward VII
앨버트 에드워드
(1841 ~ 1910)
작센코부르크고타
1901년 1월 22일 ~ 1910년 5월 6일
(9년 104일)
빅토리아의 장남.

파일:external/www.talismancoins.com/King_George_V_Coronation_Finer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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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
George V
조지 프레더릭 어니스트 앨버트
(1865 ~ 1936)
1910년 5월 6일 ~ 1936년 1월 20일
(25년 259일)
에드워드 7세의 차남.[63]
[64][65]
윈저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0-0F2025A400000578-985_634x92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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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8세
Edward VIII
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천 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

(1894 ~ 1972)
1936년 1월 20일 ~ 1936년 12월 11일
(327일)
조지 5세의 장남.
[66]
파일:external/img-fotki.yandex.ru/0_11d7eb_6cfee4f9_ori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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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6세
George VI
앨버트 프레데릭 아서 조지
(1895 ~ 1952)
1936년 12월 11일 ~ 1952년 2월 6일
(15년 61일)
조지 5세의 차남.[67]
[68]
파일:external/40.media.tumblr.com/tumblr_n3vv57mdZ21swhcebo7_128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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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1926 ~ 2022)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70년 214일)
조지 6세의 장녀.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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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
Charles III
찰스 필립 아서 조지
(1948 ~ )
2022년 9월 8일 ~ 현재
엘리자베스 2세의 장남.
[70]


10. 기타[편집]


Willie Willie Harry Stee

Harry Dick John Harry three;

One two three Neds, Richard two

Harrys four five six ... then who?

Edwards four five, Dick the bad,

Harrys (twain),VII VIII Ned six (the lad);Mary, Bessie, James you ken,

Then Charlie, Charlie, James again...Will and Mary, Anna Gloria,

Georges four,I II III IV Will four, Victoria;

Edward seven next, and then

Came George the fifth in nineteen ten;

Ned the eighth soon abdicated Then George six was coronated;

After which Elizabeth

And that's all folks until her death.

윌리 윌리 해리 스티

해리 딕 존 해리 3;

하나 둘 셋 네즈, 리차드 둘

해리 4 5 6 ... 그럼 누구?

에드워즈 넷다섯, 나쁜 딕,

해리(두번), VII VIII 네드 six(소년), 메리, 베시, 제임스 you ken,

그 다음에는 찰리, 찰리, 제임스...윌과 메리, 안나 글로리아,

조지스 넷,I II III IV 윌 4, 빅토리아;

Edward Seven 다음은

1910년에 5번째로 George가.

8세 네드가 곧 퇴위하고 조지 6세가 대관식.

그 후 엘리자베스

그것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모두들 마찬가지.

(해석)

윌리엄 1세 윌리엄 2세 헨리 1세 스티븐 1세

헨리 2세 리처드 1세 존 왕 헨리 3세

에드워드 1세, 에드워드 2세, 에드워드 3세 리처드 2세

헨리 4세 헨리 5세 헨리 6세

에드워드 4세 에드워드 5세 리처드 3세[71]

헨리 7세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제임스 1세

찰스 1세 찰스 2세 제임스 2세 윌리엄 3세&메리 2세, 앤 여왕

조지 1세 조지 2세 조지 3세 조지 4세 윌리엄 4세 빅토리아 여왕

에드워드 7세 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11. 장수한 군주들 순위[편집]


이름
국가
출생
사망
나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1926년 4월 21일
2022년 9월 8일
96세
빅토리아 여왕
영국
1819년 5월 24일
1901년 1월 22일
81세 7개월 29일
조지 3세
영국
1738년 6월 4일
1820년 1월 29일
81세 7개월 25일
에드워드 8세
영국
1894년 6월 23일
1972년 5월 28일
77세
조지 2세
영국
1683년 10월 30일
1760년 10월 25일
76세 11개월
에드거 2세
잉글랜드
1051년
1126년
75세
에즈베르흐트
웨식스
775년
839년
75세
찰스 3세
영국
1948년 11월 14일
-
현 75세
로버트 2세
스코틀랜드
1316년 3월 2일
1390년 4월 19일
74세
윌리엄 4세
영국
1765년 8월 21일
1837년 6월 19일
71세
조지 5세
영국
1865년 6월 3일
1936년 1월 30일
70세
엘리자베스 1세
잉글랜드
1533년 9월 7일
1603년 3월 24일
69세
에드워드 7세
영국
1841년 11월 9일
1910년 5월 6일
68세 5개월
에드워드 1세
잉글랜드
1239년 6월 17일
1307년 7월 7일
68세 20일
로버트 3세
스코틀랜드
1337년
1406년 4월 4일
68세
제임스 2세
동군연합
1633년 10월 24일
1701년 9월 16일
67세 10개월
조지 4세
영국
1762년 8월 12일
1830년 6월 26일
67세 9개월
조지 1세
영국
1660년 5월 28일
1727년 6월 11일
67세 14일
헨리 1세
잉글랜드
1068년
1135년 12월 1일
67세 ?개월
마틸다(잉글랜드)
잉글랜드
1102년 2월 7일
1167년 9월 10일
65세 7개월
헨리 3세
잉글랜드
1207년 10월 1일
1272년 11월 16일
65세 1개월
에드워드 3세
잉글랜드
1313년 11월 13일
1377년 6월 21일
64세
말 콜룸 3세
스코틀랜드
1031년
1093년
62세
참회왕 에드워드
잉글랜드
1003년에서 1005년 사이
1066년 1월 5일
61-63세
제임스 1세
동군연합
1566년 6월 19일
1625년 3월 27일
58세
스티븐 왕
잉글랜드
1092년/1096년
1154년 10월 25일
57-62세
윌리엄 1세
잉글랜드
1028년
1087년 9월 9일
57-58세
이네
웨식스
670년
726년 이후
56세 이상
헨리 2세
잉글랜드
1133년 3월 5일
1189년 7월 6일
56세 4개월
조지 6세
영국
1895년 12월 14일
1952년 2월 6일
56세 1개월
헨리 8세
잉글랜드
1491년 6월 28일
1547년 1월 28일
55세
로버트 1세
스코틀랜드
1274년
1329년
55세
찰스 2세
동군연합
1630년 5월 29일
1685년 2월 6일
54세
헨리 7세
잉글랜드
1457년 1월 28일
1509년 4월 21일
52세
윌리엄 3세
동군연합
1650년 11월 8일
1702년 3월 8일
51세
스벤 트베스케그
잉글랜드
963년 4월 17일
1014년 2월 3일
50세 9개월
대 에드워드
웨식스
874년
924년 7월 17일
50세
알프레드 대왕
웨식스
849년
899년 10월 26일
50세
애설레드 2세
잉글랜드
966년에서 968년 사이
1016년 4월 23일
49-50세
존 왕
잉글랜드
1166년 12월 24일
1216년 10월 19일
49세 9개월
앤 여왕
영국
1665년 2월 6일
1714년 8월 1일
49세 5개월 26일
헨리 6세
잉글랜드
1421년 12월 6일
1471년 5월 24일
49세 5개월 18일
찰스 1세
동군연합
1600년 11월 9일
1649년 1월 30일
48세
키나드 1세
스코틀랜드
810년
858년
48세
데이비드 2세
스코틀랜드
1324년 3월 5일
1371년 2월 22일
46세 11개월
헨리 4세
잉글랜드
1367년 4월
1413년 3월 20일
45세 11개월
애설스탠
잉글랜드
894년
939년 10월 27일
45세
해럴드 2세
잉글랜드
1022년경
1066년 10월 14일
44-45세
크누트 대왕
잉글랜드
990년
1035년 11월 12일
44-45세
메리 여왕(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1542년 12월 8일
1587년 2월 8일
44세
윌리엄 2세
잉글랜드
1056년
1100년 8월 2일
43-44세
에드워드 2세
잉글랜드
1284년 4월 25일
1327년 9월 7일
43세
메리 1세
잉글랜드
1516년 2월 18일
1558년 11월 17일
42세 9개월 하루전
제임스 1세(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1394년 7월 25일
1437년 2월 21일
42세 6개월
리처드 1세
잉글랜드
1157년 9월 8일
1199년 4월 6일
41세
에드워드 4세
잉글랜드
1442년 4월 28일
1483년 4월 9일
40세 11개월
제임스 4세
스코틀랜드
1473년 3월 17일
1513년 9월 9일
40세 5개월
제임스 3세
스코틀랜드
1451년 7월 10일 또는 1452년 5월 10일
1488년 6월 11일
36세
헨리 5세
잉글랜드
1386년 9월 16일
1422년 8월 31일
35세
리처드 2세
잉글랜드
1367년 1월 6일
1400년 2월 14일
33세
리처드 3세
잉글랜드
1452년 10월 2일
1458년 8월 22일
32세 10개월
메리 2세
동군연합
1662년 4월 30일
1694년 12월 28일
32세 7개월
이드리드
잉글랜드
923년
955년 11월 23일
32세 ?개월
에드거 1세
잉글랜드
943년 혹은 944년
975년 7월 8일
31-32세
제임스 5세
스코틀랜드
1512년 4월 10일
1542년 12월 14일
30세
캐드왈라
웨식스
659년
689년
30세
제임스 2세(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1430년 10월 16일
1460년 8월 3일
29세 9개월
애설버트
웨식스
836년경
865년 가을
29세
청년왕 헨리
잉글랜드
1155년 2월 28일
1183년 6월 11일
28세
에드먼드 2세
잉글랜드
990년경
1016년 11월 30일
26세
애설볼드
웨식스
834년경
860년 12월 20일
26세
해럴드 1세
잉글랜드
1015년 1월
1040년 3월 17일
25세 2개월
에드먼드 1세
잉글랜드
921년
946년 5월 26일
25세
애설레드 1세
웨식스
847년경
871년 4월 23일
23-24세
하레크누드
잉글랜드
1018년
1042년 6월 8일
23-24세
이드위그
잉글랜드
941년경
959년 10월 1일
18-19세
제인 그레이
잉글랜드
1536년/1537년
1554년 2월 12일
16-17세
순교왕 에드워드
잉글랜드
962년경
978년 3월 18일
15-16세
에드워드 6세
잉글랜드
1537년 10월 12일
1553년 10월 15일
15세
에드워드 5세
잉글랜드
1470년 11월 2일
1483년
13세 추정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
스코틀랜드
1283년
1290년
7세
잘 보면 후대로 갈수록 수명이 길어진다. 리처드 3세 이후로 왕이 전쟁터에서 전사하는 일도 사라지고 의학기술도 발달하며 평균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세시대의 왕은 엄청난 격무에 시달려서 건강상태도 좋지 않았으므로, 환갑을 넘기기가 어려웠으며 환갑만 넘겨도 장수한 셈이었다.

왕은 아니지만 올리버 크롬웰은 향년 59세, 리처드 크롬웰은 향년 85세에 사망했다.

12. 관련 틀[편집]

















[1] 다른 입헌군주국도 으레 그렇듯, 영국도 왕실의 문장이 곧 국장이다.[2] 국왕의 공식 거주지는 버킹엄 궁전이지만, 현재 찰스 3세는 버킹엄 궁에 입주하지 않고 왕세자 시절 관저인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출퇴근 중이다. 버킹엄 궁전의 대규모 보수공사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 향후에는 아예 클래런스 하우스를 국왕의 공식 거주지로 지정하고, 버킹엄 궁전은 왕실 본부 및 박물관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도 말년에는 윈저 성과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거주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식적인 행사를 개최하거나 찰스 3세가 집무를 보고, 외빈들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3] 영국 외에 국왕으로 군림하는 14개 영연방 왕국에서는 각각 별도의 칭호가 정해져 있다.[4] 영국(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은 프랑스 영토(노르망디 공국) 안에서는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지만, 영국 안에서는 대등한 주권자였다.[5] 참고로 프랑스는 1870년까지 제국이었다가 보불 전쟁으로 무너지면서 마지막 황제가 폐위되고 공화국이 되었다.[6] 영연방 왕국 18,700,000㎢, 러시아 17,125,191㎢.[7] 단 1991년 소련 해체 직전 영연방 왕국의 면적은 소련(22,402,200㎢)보다는 작았다. 이때는 아직 모리셔스바베이도스가 영연방 왕국이었지만 조그만 섬나라들이라...[8] 원래 전통적인 해석은 국왕의 대권 행위에 대해 사법심사를 청할 수 없었으나 1984년 공직자 노조와 공무장관의 판례에 따라 하원은 내각이 위임하여 사용하는 대권 행위에 대해 법원이 '법률에 의해 부여된 재량권 행사 방식을 검토할 수 있는 것처럼 특권이 부여한 재량권 행사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따라서 사건이 사법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 재량권이 정당해야 한다. 정당성 문제는 문제가 법원 재판에 적합한지 여부를 묻는 것이며 정당한 권한과 정당하지 않은 권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개념은 '광범위하게 해석'되었다.#[9] 칙령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새로이 범죄로 규정하여 처벌하는 것은 할 수 없단 뜻.[10] 영국에서는 국왕의 권한과 관련된 법안을 제정하거나 개정 및 폐기하는 것에 대해 의회에서 심의를 하려면 국왕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왕에게 형식상 주어진 권한인 법안 재가(거부권)와는 다르다. 더 가디언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이 동의권을 이용해 약 1,000여개의 법에 영향력을 미쳤다고 한다.더 가디언 기사 엘리자베스 2세 즉위 후 2021년 4월까지 영국에서 통과된 법안이 약 4,000개이므로 상당히 많은 법에 영향력을 미친 셈이다.[11] 따라서 왕실 내부에서 양육권 소송이 벌어질 경우 무조건 국왕이 승소하게 된다.[12] 2011년 고정임기법 제정으로 국왕의 의회 해산의 특권이 한차례 폐지된 바 있으나#, 2021년 국회 법안의 해산과 소집법이 제정되어 다시 부활되었다. 이때 한 번 소멸된 국왕 대권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해당 법률을 제정할 때 이 또한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13] 다만 만약 국왕이 폭정을 저지르거나 공정성과 이성의 관습법적 허가 없이 부당한 만행을 저지른다면 청교도 혁명과 명예 혁명의 선례에 따라 심판은 가능할 것이다. 존 로크가 <시민정부론>에서 말했지만, 국왕이 국민의 생명, 재산, 자유를 침해하면 국민은 이에 맞서 시민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명예혁명으로 인한 권리장전에서 이를 구체화하였다. 국왕이 국민의 기본권을 적법한 절차 없이 말살하려 든다면 계약 파기이므로, 혁명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자체를 의회와 언론, 국민이 견제하고 국왕 스스로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14] 사실 영국은 헌법이 없는 불문헌법 나라이기 때문에 입헌이란 말은 엄밀히 말하면 옳지 않다. 기사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정확히는 불문헌법군주제(uncodified constitution monarchy) 혹은 영문 위키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헌법군주제와 절대군주제의 혼합(=영국식 군주제)이라고 설명하는게 좀 더 정확하다. 즉 국왕 대권으로 군주의 특권을 유지하고, 영국식 관습헌법에 의한 웨스트 민스터식 의회 내각제 시스템과 입헌적 틀을 유지하는 것이다.[15] 원래 반역죄에 해당하는 법은 1351년 이전에도 원안이 되는 법이 있었다.# 이후 1661년의 선동법과 1795년의 반역법이 있었으며 이때는 최대 사형이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사형을 내리길 꺼렸으며 이는 점점 해외 식민지 추방형으로 감해졌다. 1868년 사형을 점점 감하던 시기 해외 식민지 추방형은 폐지되고 중범죄로 축소됐으며 종신형으로 최대형이 감해졌다.[16] 물론 이런 반역혐의에 대해선 실제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공화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공화파는 평화적인 군주제 폐지 논의도 처벌하는 이 법에 대해 1998년 인권법에 어긋난다고 2001년 소송을 했으나 법무부 장관에게 이런 소송은 불필요하다며 일언지하에 기각됐다. 이 케이스는 2003년 상원으로 넘어갔으나 상원은 만장일치로 소송이 불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영국의 상임항소법관인 스타인 경은 이 부분이 현대에 들어 맞지는 않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법원은 법령을 일소하도록 의회를 선동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 법으로 마지막 기소가 된 사례는 1972년 IRA대원들이 기소된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좀 더 작은 형으로 감형됐다. 즉 실제로 언제든지 기소가 가능한 살아있는 법이다.##[17] 다만 국왕이나 왕실의 폭정, 만행, 스캔들로 인해 군주제가 민심을 잃어 여론이 크게 변화하여 공화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대다수의 영국민이 공화정 전환을 원한다면, 국민투표를 통해 새로운 성문헌법을 제정하고 개헌을 통해 반역중죄법을 무력화하고 군주제를 폐지하여 공화정 전환이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왕실을 폐지하고 국가 체제를 바꾸는 이런 공화혁명의 상황이 진짜로 실행되려면 민심의 향방과 왕실을 지지하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반응, 상하원을 비롯한 의회가 왕실폐지를 통과시키는 상황, 이에 반드시 필요한 국민투표의 통과, 영연방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과거 혁명 상황에서도 저항이 있었던 왕당파의 반응을 비롯한 여러가지 까다로운 제약이 많을 것이다.#[18] 인도 독립 전에는 영국 국왕이 '인도 황제' 칭호를 썼지만 독립 후에는 인도 황제 칭호를 폐지하고 3년 동안 캐나다 호주 등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국왕의 칭호를 썼다.[19] Head of the British Commonwealth나 Head of the Commonwealth of Nations 식으로 적지는 않는다. 그냥 Head of the Commonwealth가 정식 칭호이다.[20] 호주도 1973년 이전까지는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영국과 호주의 여왕'(엘리자베스 2세 재위 당시)이란 칭호를 썼으나 1973년에 독자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칭호에서 영국이란 단어를 빼버렸다.[21] 호주와 마찬가지로 1974년에 칭호에서 영국이란 단어를 빼버렸다.(Royal Titles Act 1974)[22] 헨리 8세교황 레오 10세에게 받은 칭호로 엄밀히 말하면 종교개혁 이후에 기존 칭호를 변용한 것.[23]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모두 대관식이 폐지되었지만, 영국만 현대까지 대관식을 계속 치르고 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대관식은 성공회 의식으로서 국왕이 국교회의 정당한 통치자로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다.[24] 잉글랜드 국교회에는 2개 관구 아래 42개의 교구가 있다. 자세한 정보는 분류:잉글랜드 국교회 참조.[25] 이 로열 레드 박스가 대한민국의 상황으로 비유한다면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왕에게 올리는 상소(上疏)라고 생각하면 된다.[26] 때문에 국왕은 휴가지에서도 국정 업무를 봐야한다.[27] 이 자리에서 국왕과 총리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는 자세히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다.[28] 애초에 접견에는 총리 및 장관과 국왕만 배석하기 때문에 총리나 장관이 언론에 공개적으로 국왕의 발언에 대해 밝히지 않는 이상 알려질 일이 없다.[29] 물론 현재는 코르셋을 착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30] 영어로는 이런 법적 시각에서의 국왕을 Crown으로 칭한다.[31] 왕실 의전차량의 소유권은 크라운 에스테이트가 갖고 있지만, 국왕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차량은 사유재산으로 간주된다. 현재 찰스 3세는 23대에 달하는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다.[32] 엘리자베스 2세가 경주마 수집이 취미였던 관계로 여왕의 재위 기간동안 왕실 경주마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났으며, 최소 70여마리의 경주마를 소유하고 있고 가치는 최소 2700만파운드(약 444억원)로 추정된다.[33] 다만 왕위계승자에게 상속된 경우에 한해서만 상속세가 면제되며, 나머지 자녀들은 일반인과 동일하게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재산이 왕위계승자에게 상속되고 있다.[34] 이 법칙이 폐지되기 전에 앤 공주의 아들 피터 필립스가 가톨릭 신자 어텀 켈리와 약혼해 혼인하면 계승권을 박탈당할 뻔했으나, 켈리가 결혼 전에 성공회로 개종해, 계승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35] 그 이전에는 별다른 규칙 없이 섭정을 지정할 때마다 섭정법을 새로 재정해왔다. 조지 3세 재위 당시 조지 4세가 장기간 섭정으로 통치할 때도 섭정법을 새로 제정하는 방식으로 섭정을 지정했다. 하지만, 에드워드 8세의 퇴위를 겪으면서 섭정 지정 규칙의 필요성이 커지게 되었고, 조지 6세가 즉위한 직후 섭정 지정 규칙을 담은 1937년 섭정법이 만들어졌다.[36] 엘리자베스 2세는 재위 초기인 1953년에 섭정법을 새로 재정해 여왕이 사망하거나 국왕으로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부군인 필립 공이 왕세자가 성인이 될때까지 섭정으로 임명되어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찰스 3세가 성인이 되면서 해당 조항은 자동적으로 효력이 사라졌다. 또한 이 섭정법을 통해 왕대비로 물러나있던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에게도 섭정 지위를 다시 부여했는데, 엘리자베스 2세 재위 초기에는 여왕 부부가 해외 순방을 나가는 경우가 많아 왕대비가 국왕 업무를 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역시 2002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사망하면서 효력을 잃었고, 향후 카밀라 왕비가 왕대비가 된 후 섭정이 되려면 윌리엄 왕세자가 섭정법을 다시 제정해야 된다.[37] 해리 왕자와 앤드루 왕자는 사실상 섭정으로서 직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며, 본인의 즉위로 섭정 자리에 공석이 생긴 것을 고려한 것이다.[38] 하지만 이 역시 국왕이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에 한해서 적용된다. 국왕이 성인이 되면 섭정 자격이 박탈되며, 이후 섭정이 되려면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사례처럼 섭정법을 다시 재정해야 된다.[39] 현재의 섭정법 재정 이전에는 조지 3세 말년인 1811년에서 1820년까지 총 9년간 조지 4세가 섭정이 되어 장기간 통치한 경우가 있다. 아예 이 시기를 섭정시대라고 부를 정도.[40] 엘리자베스 2세 말년에 퇴위의 대안으로 찰스 3세를 섭정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언론을 통해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국 섭정을 거치지 않고 찰스 3세가 바로 즉위했다.[41] 특히 이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였기 때문에 왕실 측에서 항상 조지 6세가 적군에 의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상황을 대비하고 있어야 했다.[42] 1992년 골든 주빌리 다이아몬드(현재 태국 국왕 소유)가 세공되기 전까지는 컬리넌 I이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였다.[43] 헨리 7세의 외손자의 외손자로, 선왕인 엘리자베스 1세의 고종사촌 오빠 제임스 5세의 외손자.[44]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6세.[45] 형은 요절.[46] 청교도 혁명으로 인해 폐위되어 영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처형됨.[47] 영국에서 찰스 1세 처형 후 찰스 2세가 복위하기 전까지 기간을 일컫는 말.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잉글랜드 연방 단락 참조.[48] 형은 요절. 사실상 장남.[49] 왕정복고.[50] 명예혁명으로 폐위됨.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7세.[51] 윌리엄 3세와 공동으로 재위.[52] 동시에 메리 2세(찰스 1세의 친손녀)의 남편. 명예혁명으로 메리 2세와 함께 추대됨.[53] 1694년까지는 메리 2세와 공동으로 재위. 스코틀랜드에서는 윌리엄 2세.[54] 1707년 연합법 발효 이후로는 그레이트브리튼의 여왕으로서 통치.[55] 메리 2세의 동생.[56] 정확히는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 - 엘리자베스의 딸, 조피(소피아) - 조피의 아들이다. 조지 1세보다 앤 여왕과 더 가까운 왕족들이 50여명 있었지만, 모두 가톨릭이라서 조지 1세가 이어받았다.[57] 조지 2세의 장남 프레데릭이 사망하여, 프레데릭의 아들인 조지가 물려받음.[58] 1801년부로 "그레이트 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59] 역대 영국의 남성 군주 중에서 최장수, 최장 재위 군주.[60] 조지 4세의 동생. 조지 4세의 딸과 둘째 형은 사망.[61] 영국-하노버 동군연합의 마지막 군주이자 최고령에 즉위한 국왕(즉위할 당시 65세).[62] 윌리엄 4세의 조카. 조지 3세의 4남 에드워드의 딸. 윌리엄 4세의 두 딸이 요절.[63]앨버트는 독감으로 사망.[64] 작센코부르크고타에서 개칭, 1922년부로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65] 둘이 외가쪽으로 사촌형제라서 그런지 러시아 제국니콜라이 2세와는 일란성 쌍둥이 수준으로 외모가 동일하다.[66] 결혼을 위해 양위.[67] 에드워드 8세의 동생. 형으로부터 양위 받음.[68] 튜더 왕조 이후 최초로 순수 영국인결혼.[69] 현재 기준 영국 국왕 중 최장 재위 및 최장수 국왕.[70] 가장 늦은 나이에 즉위한 영국 국왕(만 73세).[71] 나쁜 왕으로 깎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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