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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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락공원
釜山永樂公園
Busan Yeongnak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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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1996년 9월 26일
운영시간
09:00 ~ 18:00
유형
화장시설
관리 기업
부산시설공단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금정도서관로 108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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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시설 구성
3.1. 장제동(장례식장)
3.2. 공원묘지(매장묘)
3.3. 화장동(화장장)
3.4. 영락원(봉안당)
3.5. 영락정(유택동산)
4. 가는 방법
4.1. 시내버스
4.2. 도시철도
4.3. 자가용
5. 사건 사고
6. 기타



1. 개요[편집]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정도서관로 108 (두구동)에 위치한 종합장사시설이다.

부산시설공단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장례식장은 물론, 화장장, 봉안당(납골당), 공동묘지가 한 곳에 위치해 있다.

부산광역시에 거주하거나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가끔 영락공원을 처음 들어본 외지인들은 웬 공원인 줄 안다 카더라.[1] 어쨌든 부산에서의 화장률이 90%를 넘는데[2] 대부분의 부산시민들이 살면서 맨 마지막으로 이용하는 시설이다. 장례는 다른 곳에서 하더라도 화장만큼은 이 곳으로 오게 되기 때문이다.

2. 역사[편집]


1929년
1월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인근 부지[3]에 '부영화장장' 신설.
1955년
5월
부산진구 당감동 이전 부지 확보
1957년
12월 10일
당감동 화장장 개장식.
1959년

당감동 부지로 이전하여 '당감동 공설 화장장'으로 영업 시작.
1966년
9월
두구동에 제1묘원 준공.
1967년
10월
묘지 안장 시작.
1977년
1월
봉안당(영락원) 안치 시작.
1978년

당감동 화장장 이전 추진 및 택지 검토. (부산지역 5개소, 경남지역 16개소).
1981년
11월
동래구청으로 묘지 관리권 이양.
1987년
10월
업무 중단.
11월
당감동 화장장 폐쇄. 부산시교육위원회에 부지 매도.
1988년
1월
동래구에서 금정구가 분구되어 금정구청으로 묘지 관리권 이양.
1989년
4월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가 부전동(현 서면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부지)에서 화장장 부지로 이전해옴.
1995년
1월
영락공원관리사업소로 관리권 이양.
3월
금정구 두구동 묘지 이름을 영락공원으로 변경.[4] 화장장 운영 시작.
1999년
1월
부산시설공단에서 수탁 관리.
당감동 화장장이 업무를 중단한 1987년부터 영락공원이 개원하는 1995년까지 약 8년 간 공백이 있는데[5] 이때 부산이 양산처럼 화장장이 없어서 마산, 진해, 밀양화장장을 분산하여 이용하다가 1992년에 마산화장장 시설만 이용하였다.

혐오시설이 우리 동네에 있어도 욕하고 없어도 욕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3. 시설 구성[편집]



3.1. 장제동(장례식장)[편집]



시설
개소
비고
1층
88평 형 빈소
6개소
291.4㎡
염습실
1개소

안치실
1개소
18구 안치가능[6]
영결식장
1개소

관리사무실
1개소

상담실
1개소

2층
100평 형 빈소
5개소
337.5㎡
식당/휴게실
1개소

접객실
11개소


3.2. 공원묘지(매장묘)[편집]


총 29,021구의 시신이 매장 가능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으나 1980년 분양이 완료되어 현재는 매장 불가. 단, 개장 또는 이장[7] 하여 빈 자리가 생길 경우 분양 가능.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인해 최초 매장 후 15년 간, 10년 씩 3회에 한하여 연장이 가능하다.[8]

3.3. 화장동(화장장)[편집]


화장로 총 15기를 구비하고 있다.

1일 55~65구[9] 화장이 가능하며, 1월을 포함하여 윤달 등의 특수한 시기에는 1일 최대 70구까지 화장이 가능하다.

수골실은 총 3개소가 있다.[10]


3.4. 영락원(봉안당)[편집]


총 3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시설
안장 구수
현황
비고
제1 영락원
16,520구
만장
[11]
제2 영락원
63,600구
[12]
제3 영락원
7,623구

만장(滿葬)이라 함은, 포화 상태를 말하며 즉,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추가로 안장할 수 없다. 단, 봉안기간 15년+(연장 5년*최대 3회) 로 30년이 초과되어 유가족이 유골을 반환하여 공실(空室)이 발생할 경우 부산광역시 장사 등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에 의거하여 순번대로 봉안이 가능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망자들은 부산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3.5. 영락정(유택동산)[편집]


산골[13]이라는 장사방법이 있지만 자연환경 훼손을 사유로 권장하지 않는 관계로, 유골만 모을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4. 가는 방법[편집]



4.1. 시내버스[편집]


이들 노선을 타고 범어사역 정류장에 하차하여 금정2-1번 마을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4.2. 도시철도[편집]



금정2-1번 마을버스 이용 (영락공원에서 하차)
택시(기본요금) - 금정도서관로를 이용하는 루트로 간다.
걸어가면 15분 정도 걸린다.

택시(7천원 가량) -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루트로 간다.

4.3. 자가용[편집]


번영로를 타고 구서IC까지 간 다음에 구서IC에서 부산TG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영락IC로 진입하면 영락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고속도로 진입이 불가능하여 금정도서관로를 통해 진입해야하는데, 철문을 개조한 지금은 철문 뒤에 있는 틈을 통해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영락공원 내부로 진입할 수 있다. 과거에는 자전거는 영락공원 입구에서 두 도로로 나눠진 부분에서 잠시 끌바를 한 뒤 다시 자전거 타고 영락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오토바이는 철문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어서 영락공원 밖에 주차시켜놓은 뒤 걸어서 들어가야했다.

5. 사건 사고[편집]


2006년 이곳에서 칠성파와 20세기파 등 조직폭력배 간의 난동이 벌어졌다. 기사

6. 기타[편집]


근처에 금정도서관이 있다.

아들을 추모하러 온 전동휠체어를 탄 90대 노인이 영락공원에 갔다가 그대로 고속도로를 타고 역주행한 사례가 나왔다.

명절 때마다 경부고속도로 부산 톨게이트 옆의 갓길들이 주차장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원묘지에서 금정구민운동장(임시주차장) 가는 길에 올라갈 수 있는 숨겨져 있는 가파른 계단이 있는데, 그곳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부산시장이 쓴 걸로 추정되는데 한자로 적혀 있다. 1960-7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상영 前 부산시장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원래대로라면 시민장을 통해 장례식을 화려하게 해서 공무원 혜택(시장 신분)을 받아 이곳에 매장묘를 통해 매장되어야 하지만, 안상영의 경우 임기 중에 뇌물수수 혐의로 인해 도중에 긴급체포된 뒤 감옥에서 자살했기 때문에 범죄자 신분(정확히는 미결수 신분)이라 매장하기가 어려웠고 안상영 본인이 화장해 달라는 유언과 함게 안상영의 유족들이 조용하게 넘어가고 싶어서 그리고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길 원해 결국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14]

2011년 별세한 장효조도 이곳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사망하고 이곳에서 화장되어 남편인 문용형 옹과 매장된 무덤에 같이 합장되었다. 정확하게는 천주교 부산교구 하늘공원이다.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돌아가신 의인 이수현 씨가 일본 도쿄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비행기를 통해 유골함이 국내로 인계되어 안장되어 있다. 영락공원 내에 표지판에도 나와 있다. 자세한 사항은 이수현(1974)신오쿠보역 승객 추락사고 문서로.

2022년 롯데자이언츠 외국인 매니저인 케리 마허가 이곳에서 화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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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장장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공원이라고 명칭을 바꾼 것이다. 특히나 부산에서는 대형교회인 부산영락교회가 원도심에 있기 때문에 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공원인 줄 아는 사람들도 소수 존재한다. 주로 영락교회가 있는 원도심에서 이런 경향이 강한데, 서면, 서부산이나 동부산, 동래 쪽에 사는 주민들은 그런 착각은 없는 편이다. 잠깐만, 그럼 부산시 전체잖아? 외지인에게는 삼락공원의 인지도가 더 높다보니 간혹 혼동하기도 한다. 0락 1락 2락 3락[2] 물론 나머지 10%들은 매장을 하는데 이들은 죄다 정치인, 기업인, 고위 사무원(상무 이상) 등을 위시한 금수저들이나 고위 공무원(서기관 이상)이다. 당연하겠지만 해당 금수저들과 고위 공무원 집안은 절대로 화장을 하지 아니하고 본인 소유의 선산에 매장을 한다. 물론 부산에서 화장률이 90%를 넘는다는 말은 금수저들임에도 화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대부분 본인 소유의 선산에 있는 가족 납골묘로 직행한다.[3] 부산광역시 서구 까치고개로 159[4] 영락공원 홈페이지에서는 이날 영락공원이 '개원'했다고 적혀 있는데, 여기에 묘지는 1966년 준공 이래 계속 있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명칭을 바꾼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5] 1984년에 철마면으로 화장장 이전부지를 확정한 상태로 당감동 화장장 부지 매각을 진행했으나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철마면 이전이 취소되고 당감동 화장장 폐쇄 및 부지매각은 그대로 진행됐다고 한다.[6] 분향소를 차리지 않거나, 무연고자를 위한 임시 안치냉장고 7기 포함.[7] 기존에 매장되어 있던 시신을 다른 곳에 옮겨 매장하거나, 유골을 화장하여 처리하는 것.[8] 즉, 최장 45년 간 매장이 가능하다. 이후에는 개장하여 화장처리 하여야 한다.[9] 총 15기의 화장로가 있다고 해서 모두 가동하지 않는다. 고장, 점검 등을 대비해서 여분의 화장로는 가동하지 않는다.[10] 즉, 동시간대에 화장이 끝난 3구의 유골을 수습할 수 있다.[11] 1995년 03월 부 안장 가능 ~ 1999년 1월 부 안장 불가. 국가유공자 유골 280기 안장 중.[12] 1999년 03월 부 안장 가능 ~ 2007년 1월 부 안장 불가. 무연고자, 태평양 전쟁 피해자, 외국인 유골 안장.[13] 화장한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지정된 장소나 산, 바다 등에 뿌리는 것. 한국에서는 강에 뿌리는 것을 금하고 있다.[14]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서 최초로 화장을 한 정치인이 노무현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사실 최초는 안상영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