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연쇄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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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이전 배경
2.1. 출소 후 재범
2.2. 김씨와 재결합
3. 첫번째 살인
4. 두번째 살인
5. 세번째 살인
6. 네번째 범행
7. 다섯번째 범행
8. 이후
9. 미디어에서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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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한 가족의 가장이 처조카, 의붓딸, 아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친딸 등을 감금한 엽기적인 살인 사건. 성범죄로 17년도 넘게 복역한 인물이었지만, 아무런 교화가 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변태적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연쇄적으로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성폭행 한 후 가차 없이 살해해버렸다.


2. 사건 이전 배경[편집]


1966년 11월 15일생으로 재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이복,이부 형제들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안도 빈곤하였던 탓에 초등학교만을 졸업한 후 만 15세부터는 서울 구로구의 한 가방공장 등에 취직하였다. 여자를 병적으로 좋아했던 탓에 틈만나면 나이트클럽으로 달려가기 일쑤였고, 동거녀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1]

만 18세가 되던 1984년 12월 경에 동거녀 김씨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김씨가 8개월째 임신 중이던 1987년 1월 27일, 어두운 논두렁을 걷고 있던 같은 동네에 살던 16세의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녀를 과도로 위협해 인적이 드문곳으로 끌고가 강간했다. 그에 대한 처벌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친정으로 거처를 옮기고 두달 뒤 딸을 낳았다. 김씨는 몇달 동안 옥바라지를 했지만 그녀의 친정 어머니와 오빠는 다른 사람과의 재혼을 권유했다. 재혼 상대의 남자(윤씨)는 김씨에게 딸을 호적에 올려주겠다는 호의를 베풀었고, 김씨도 그렇게 새 출발을 했다.


2.1. 출소 후 재범[편집]


출소 후 본격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1991년 6월 1일,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기를 푸대접 했다는 이유로 그의 딸인 15세 여중생을 석궁으로 위협하여 감금해 3번이나 성폭행했다.

그의 아버지에게 200만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그 대가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장기간 복역하게 되었다.


2.2. 김씨와 재결합[편집]


2005년 10월 28일,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전남 영암군 삼호읍의 한 조선업체에 취직했다. 2007년 친딸의 소식을 듣기 위해 장모의 집에 방문했다가 뜻밖의 사실을 접하게 되는데, 김씨와 윤씨의 사이가 멀어져 별거 중이라는 걸 알게된 것이다.

수감 생활동안 김씨 가족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품긴 했지만, 다시 교제를 시작했고, 결국 재결합해 사실상 혼인 관계를 유지했다. 김씨와 사이에서 태어났던 친딸과 김씨가 별거 중인 남편 사이에서 낳은 의붓딸도 재결합에 동의했다.

그렇게 잠시동안 평화로운 삶을 누리기도 했으나, 2009년 2월경, 회사에서 잘리면서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자책하기 시작했다.


3. 첫번째 살인[편집]


2009년 5월 5일 오전 12시 경, 장모의 집에서 둘째 처조카인 김양(여, 16세)을 집에 데려온 방문 틈으로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고 성적 충동을 느껴 김양의 얼굴과 가슴 부위를 수회 때려 반항을 억압한 후 안방으로 끌고가 성폭행하였다.

성폭행을 저지른 사실이 발각될 우려해 김양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노란색 테이프로 입을 막고 손과 발을 묶어 여행용 가방에 넣은 다음, 코란도 승용차의 트렁크에 싣고 다니면서 암매장할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는 장모의 집에서 불과 1km 떨어진 인근 야산으로 향했다. 산에 도착하여 가방을 열었을 땐 이미 김양은 사망한 상태였다. 입과 코를 막아놓고 가방에 웅크린 채 장시간 갇혀 있다보니 질식사한 것이다. 가방은 구덩이에 넣고 파묻어버렸다.

범행 과정에서 은폐를 위해 철처히 행동했는데, 장모의 집에서 김양의 가방과 운동화를 가지고 나와 삼호터미널 부근 도로변의 쓰레기더미에 투기하였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양을 여행용 가방에 넣고 다닐때 휴게소에 들러 음료수를 사마셨고, 해남방조제로 차를 몰고가 낚시까지 했다.

그때까지 김양은 가방에 계속 있었다. 뻔뻔하게도 누구보다 처조카 찾기에 앞장섰다. 5일 후, 인근 파출소에 찾아가 맨 처음에 실종 신고를 한 것도 이모부인 자신이었다. 또, 새 휴대폰을 개통한 뒤 자신이 김양인 것 처럼 속여 "잘 있으니 걱정말라"고 문자를 가족들에게 보내 가출로 위장까지 했다.


4. 두번째 살인[편집]


[ 본 내용은 온전히 주장에 따른 기술임을 참고할 것 ]
2009년 5월 12일 5시경, 집 거실에서 의붓딸(19세)이 누워있는 걸 보고, "왜 청소와 설거지를 해놓지 않았냐"며 꾸중을 늘어놓았다.

이때 의붓딸 윤모양이 “그걸 꼭 내가 해야 되느냐”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목덜이를 잡아 얼굴과 가슴을 주먹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했고, "아빠 이러지 마"라며 소리를 지르는 의붓딸을 침대에 눕혀 입과 손발을 노란색 테이프로 결박한 후 성폭행하였고,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5. 세번째 살인[편집]


같은 날 8시경, 동거녀 김씨(41세)가 일하는 휴게소 식당을 찾아가 강진군 부근 버스 터미널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인적이 뜸한 초등학교 골목길에서 카섹스를 감행한다.

돌변해 “나는 너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한다”면서 김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것만으로도 성에 안찼는지 차 안에 있던 케이블을 김씨의 목에 감아 두번이나 죽였다. 사체는 코란도 승용차의 트렁크에 옮겼다.


6. 네번째 범행[편집]


위와 같은 살인극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아예 동거녀 친정 식구들도 몰살할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처제의 집으로 찾아가 용돈을 주겠다, 이모가 널 보고 싶어한다는 명목으로 첫째 처조카 김양(여, 18세)를 차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5월 13일, 새벽 1시경, 안방에서 잠이 든 김양을 회칼로 위협하여 노란색 테이프로 입을 막고 손발을 묶고, 가위로 피해자의 속옷을 모두 잘라낸 뒤 성폭행하고, 옷장에 집어넣어 11시간 동안 감금하였다.


7. 다섯번째 범행[편집]


같은 날 새벽 3시, PC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친딸(21세)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협하여 노란색 테이프와 스타킹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었다.

오전 9시쯤 되자, "내가 다 죽였다. 너도 죽이고 나도 자살하겠다. 니 동생은 살 가치도 없다"는 등 범행 사실을 한참 떠들던 마음이 바뀌었는지 너는 죽이지 않겠다며 결박을 풀어줬다. 하지만, 이후 그의 태도는 더욱 황당했다.

“마지막 소원이니, 한 번만 샤워를 같이하자” 완벽한 성도착증 환자였다. 친딸에게 속옷을 여러 번 갈아입도록 지시하고, 이를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지만 만족하지 못했는지 결국에는 친딸의 몸에도 손을 대고 만다.


8. 이후[편집]


같은 날 오전 12시, 잠시 담배를 사러 집 밖으로 나간 사이에 친딸이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재판에 회부된 “피해자를 다시 만나더라도 다시 한번 죽였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고 항소심에서도 “할 말이 없으며, 원심에서 선고한 사형을 그대로 선고하여 달라”고 하고 살인의 원인도 피해자들에게만 전가했다.

둘째 처조카 김양(16세)를 살해한 이유에 대한 진술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 사건범행 이전부터 "김양이 자신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으며, 그로 인하여 행복한 가족관계가 파괴되어 대하여 악감정을 갖게 되었고, 이 사건 범행 당시에도 자신을 유혹했음으로 음탕한 피해자를 벌한다는 마음으로 살해까지 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친딸은 성폭행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피해자들은 모두 죽이거나 성폭행하였음에도 친딸만 내버려 둘 경우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 염려되어 어쩔 수 없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다.

결국 2010년 3월 25일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11년이 지난 2021년 지금까지 형집행대기자 신분이다.


9. 미디어에서[편집]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 24화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에피소드에서 재연하였으나, 동거녀 살해에 대한 대목만 다루었다.


10.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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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와 장난삼아 여자 꼬시기 내기를 하면서 약 1년 동안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약 50명의 여성과 원나잇 스탠드를 가질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