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로마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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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부인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로마노바
Царевна Екатерина Ивановна России


이름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1] 로마노바
(Екатерина Ивановна Романова)
출생
1691년 10월 20일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사망
1733년 6월 14일 (향년 41세)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배우자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 카를 레오폴트 (1716년 결혼)
자녀
안나
아버지
이반 5세
어머니
프라스코비야 살티코바
형제
마리야, 표도시아, 안나, 프라스코바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불행한 결혼
2.3. 차르 후보가 되다
2.4. 사망
3. 여담



1. 개요[편집]


표트르 1세의 이복 형이자 공동 황제였던 이반 5세의 딸. 위에 언니 두 명은 유아기에 사망해 사실상 이반 5세의 장녀다.

러시아 제국의 4대 황제인 안나 이바노브나의 언니이자 6대 황제 이반 6세의 외할머니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이자 대부인 표트르 1세의 비호를 받으며 자랐다. 숙부가 준 영지에서 가족들과 살다가 1708년에 새로운 수도로 결정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했다.

예카테리나는 성장하면서 표트르 1세의 서구화 정책의 영향을 받아 여동생들과 함께 서구 유럽의 언어와 문화 등 선진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키가 작고 검은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예카테리나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매력으로 사교계의 명사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반 5세의 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2.2. 불행한 결혼[편집]


1716년 4월 19일에 13살 연상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 카를 레오폴트와 결혼했다. 이때만 해도 러시아 통치 가문의 사람들은 대부분 러시아인과 결혼했는데, 예카테리나는 서구 유럽의 지배계층과 결혼하게 되었다. 물론 이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다. 당시 표트르 1세는 북부 유럽에 함대를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확보하고자 했으며, 카를 레오폴트는 기사들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러시아의 강한 군사력이 필요했다. 예카테리나는 개종하지 않아도 되며 남편으로부터 연금을 받는다는 나름 괜찮은 조건으로 결혼해 메클렌부르크-슈베린으로 떠났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당시의 평에 의하면 카를 레오폴트는 무례하고 변덕스러운 인물이었다. 예카테리나는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받았다. 둘 사이에서 두 명의 딸이 태어났는데, 한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1722년에 예카테리나는 후에 안나 레오폴도브나라고 불리게 되는 딸 엘리자베트 카타리나 크리스티네를 데리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후 예카테리나와 카를 레오폴트는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2.3. 차르 후보가 되다[편집]


1730년, 표트르 2세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서 로마노프 왕조의 남계가 끊어졌다. 이반 5세의 살아남은 딸들 중 가장 연장자였던 예카테리나는 유력한 황제 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먼저 예카테리나에게는 헤어졌지만 여전히 혼인 관계에 있는 독일인 귀족 남편이 있었다. 러시아 추밀원은 예카테리나가 황제가 될 경우 러시아의 국정을 외세가 간섭할 위험이 있다고 여겼다. 또한 예카테리나는 똑똑하고 독립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귀족들은 그녀가 군주가 될 경우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했다. 반면 예카테리나 바로 밑의 동생인 안나는 일찍이 과부가 되었으며 보다 유순한 인물로 여겨졌다.

추밀원은 곧장 안나에게 그녀의 권력을 제한한다는 조건 하에 여제로 옹립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들이밀었다. 예카테리나는 망설이는 안나를 닦달했고, 안나는 청원서에 서명해 여제의 자리에 올랐다.


2.4. 사망[편집]


1733년에 예카테리나는 딸 엘리자베트가 러시아 정교로 개종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숨을 거두었다.

이후 성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여담[편집]


  • 러시아로 돌아온 뒤 한 해군 장교와 동거한다는 추문이 돌았다.
  • 예카테리나는 여제가 되지 못했지만 외손자 이반 안토노비치가 이반 6세로 등극했다. 그러나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이반 6세는 유폐 끝에 암살당하고, 안나 레오폴도브나는 감금당한 상태에서 산욕열로 사망했다. 다른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자식들은 덴마크에서 가택 연금 당한 채로 살다가 누구도 자손을 남기지 못하면서 예카테리나의 혈통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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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는 이오안노브나(Иоанновн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