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스 요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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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c thisday라는 사이트가 선정한 "100대 최고의 키보디스트"이다. 기술, 창의성, 영향력, 실험정신등을 기준으로 선정 되었다고 한다.
1위
2위
3위
4위
5위
키스 에머슨
릭 웨이크먼
존 로드
레이 만자렉
리처드 라이트
6위
7위
8위
9위
10위
토니 뱅크스
빌리 프레스턴
로드 아르젠트
스티브 윈우드
알 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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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매튜 피셔
부커 T. 존스
이안 언더우드
그레그 올먼
토니 하이마스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얀 해머
니키 홉킨스
그렉 롤리
브라이언 이노
조던 루데스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리처드 탠디
데니스 드영
옌스 요한슨
케리 리브그렌
배리 골드버그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티 라비츠
돈 에어리
가스 허드슨
데이비드 샌셔스
이안 맥라건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지 듀크
앨런 자보드
스티브 니에브
맥스 미들턴
빌리 파웰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케빈 무어
데렉 쉐리니언
지미 그린스푼
존 카린
리 마이클스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켄 헨슬리
벤몬트 텐치
스티비 원더
조나단 케인
척 리벨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제프 다운스
레온 러셀
패트릭 모라즈
위르겐 프리츠
하워드 존스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마이크 핀더
맷 벨라미
알렌 라벤스틴
앨런 프라이스
마이클 맥도날드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존 폴 존스
밥 마요
토니 케이
빌 페인
로이 비탄
61위부터는 링크 참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Jens_Johansson_-_Ilosaarirock_2009.jpg
Jens Johansson
출생
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 , 스톡홀름, 1963년 11월 2일
장르
파워 메탈, 네오 클래시컬 메탈, 심포닉 메탈
활동 밴드
Silver Mountain (1983. 2001)
잉베이 말름스틴 (1984~1989)
디오 (1989~1991)
Bakteria (1992~)
스트라토바리우스 (1995~)
Mastermind (1998~)
Cain's Offering (2014~)
레인보우 (2015~)
포지션
키보드, 피아노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장비
5. 여담



1. 개요[편집]


스웨덴 태생의 파워 메탈 키보디스트, 현재 핀란드파워 메탈 밴드 스트라토바리우스에서 속주 키보드를 선보이고 있다.


2. 생애[편집]


그의 부모의 영향으로[1], 어릴 때부터 형과 함께 피아노를 배웠다고 한다. 어린시절의 그는 바로크 음악슈톡하우젠, 리게티와 같은 현대 작곡가의 음악을 즐겼지만, 엄격하고 즉흥적이지 않은 클래식 레슨에 금방 흥미를 잃었다.
이후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돈 에어리, 에디 잡슨, 존 로드 등의 락 키보디스트의 영향을 받고 락밴드에서 취미로 키보드를 연주하기 시작하여 형인 앤더스 요한슨(Anders Johansson)과 함께 재즈 퓨전 밴드인 SLEM#을 결성하였다. 이때의 멤버들로 1982년 스웨덴의 로컬 메탈밴드였던 Silver Mountain의 첫번째 정규앨범에서 키보디스트로 참여, 본격적인 메탈 키보디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앤더스도 메탈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잉베이 말름스틴의 라이징 포스, 자국의 파워 메탈 밴드인 Hammerfall에서 드러머로 재직한바 있다.)

잉베이 말름스틴 초창기 최대 전성기(1983~1989)인 4장의 앨범에 참여한 키보디스트이기도 하다. 잉베이를 대표하는 곡 Far Beyond the Sun과 Rising Force에서 잉베이의 기타 솔로와 화려한 속주 경쟁을 벌이던 키보드가 바로 그의 연주이다.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잉베이 본인이 미국에서 밴드를 시작하면서 스웨덴에 거주하던 요한슨 형제를 미국으로 건너오게 할 정도의 역량이었다. 잉베이는 자신이 함께 한 멤버를 조금이라도 맘에 안들면 후려치기로 유명한데, 제프 스캇 소토, 마크 볼즈와 더불어 유일하게 좋은 멤버였다고 칭찬 받은 것이 요한슨 형제, 그중에서도 자신의 유니즌 플레이를 받쳐주던 옌스 요한슨을 추켜세웠다. 반대로 잉베이와 함께 한 후 제일 혹독하게 공격당한 멤버는 요른 란데... 라이브 멤버였다고는 하나 잉베이가 얼마나 까다로운 인물인지 보여주는 일화.

로니 제임스 디오의 다섯번째 앨범 Lock Up the Wolves(1990) 에도 참여했다. 다만 이 시절의 디오는 커리어상으로 좋은 앨범을 만들때가 아니여서 그런지 별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90년대 중반 전후까지 형 앤더스와 조나스 헬보그, 진저 베이커, 숀 레인, 앨런 홀즈워스, 마이크 스턴 등과 함께 그의 음악적 뿌리였던 재즈 퓨전과 클래식 락, 메탈이 가미된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 활동을 하였다. 1995년 스트라토바리우스에 참가한 이후로 거의 완전히 메탈 위주로 전향하게 된다.


3. 평가[편집]


많은 락 팬과 평론가들이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메탈 키보디스트이며, 락밴드에서 사용해야 할 필수 음원과 키보드 솔로용 리드 음원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또한, 락밴드에서 키보디스트가 어떻게 반주하고 솔로를 넣어야 하는가에 대한 길을 제시한 개척자. '옌스가 없었다면 90년대 메탈 씬의 심포닉 메탈, 프로그레시브 메탈, 네오 클래시컬 메탈의 발전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트라토바리우스 가입 이전부터 이미 락 뿐만 아니라 요나스 헬보그, 진저 베이커 등 재즈 뮤지션과도 작업을 많이 했고, 파워 메탈의 바운더리를 넘어 다른 락밴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키보드 뿐만 아니라 클래식 피아노 연주도 상당히 많이 하였다.

현재 그는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코어로써 스트라토바리우스 특유의 네오 클래시컬한 음악은 옌스의 사운드가 있어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보컬 티모 코티펠토보다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스트라토바리우스 가입과 연결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당시 옌스가 노리던 밴드는 사실 스트라토바리우스가 아니고 드림 씨어터였다. 실제로도 드림시어터 멤버들과 잼을 하기도 했고, 당시 밴드 실권을 쥐고 있던 마이크 포트노이와 꽤 친한 사이였다. 1994년 케빈 무어가 탈퇴 한 후 데모 테입을 보냈지만 드림 씨어터의 답변이 지연되자 스트라토바리우스에 가입해버렸다. 그리고 드림 씨어터에는 데렉 셰리니안이 들어왔다. 이것과 관련해서 데렉을 까는 일부 드림 씨어터계에서는 드림씨어터 최악의 실수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만일 이 사람이 드림 씨어터로 갔다면 지금의 스트라토바리우스는 없었다.[2][3]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메인 기타와의 속주배틀은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전성기에 보여줬던 연주 테크닉으로, 이것만으로도 과거 스트라토바리우스에 가입 하기 이전의 그의 명성은 당시 스트라토바리우스의 모든 멤버들을 합한 것 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지못미). 애초에 메인 기타와 속주 배틀을 세컨 기타가 아닌 키보드가 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로 치면 50년 정도 된 개념이다[4]. 당연히 그정도의 속주 테크닉을 가진 키보디스트들이 매우 적었고 실제로 지금도 그런 편이라서 비견될 법한 연주력의 메탈 키보디스트는 마이클 피넬라(심포니 엑스), 케빈 무어(드림 씨어터), 조던 루데스(드림 씨어터), 그리고 비탈리 쿠프리, 미코 하킨(전 소나타 악티카), 얀네 위어만(칠드런 오브 보덤), 에디 안토니니(스카이락), 앙드레 안데르센(로얄 헌트) 정도가 전부일 것이고… 사실 여기에 이름을 올린다는 게 락 키보디스트의 정상급이자, 파워 메탈을 한다면 어느팀에서나 불려갈 수 밖에 없는 귀족임을 인증하는 거다. 더욱 무서운 것은 열거한 저 키보디스트들도 옌스의 영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인지도가 올라오는 시점에서 옌스가 합류하면서 세계적인 밴드가 되도록 영향을 준 공로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점이다.

허나, 의외로 기타리스트나 다른 멤버들과 궁합을 중시하는 스타일로서, 그 실력이나 자신의 성향보다 다른 작곡된 곡에 자신의 성향을 입혀서 협연하는 밴드중심적인 연주를 지향하는 인물이기도 해서, 의외로 어떤 밴드에 들어가더라도 치이지 않고 자기 포지션을 확실히 잡는 인물이다. 예시로, 그는 미코 하킨이 나간 소나타 악티카의 앨범 세션으로 참여한 적도 있는데, 다소 상반성이 보이는 소나타 악티카의 음악임에도 무리없는 연주를 보여준 바가 있다.

현재는 티모 톨키가 나간 밴드의 정권을 장악, 정화를 이룬 것으로 볼수 있으며 지금 현재 밴드의 색채를 모두 그가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키보드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런 색채 변화에 대해 기존 팬들은 "급격한 프로그레시브 메탈화"로 평가하곤 하는데 의외로 요즘 추세까지 잘 소화하는 관계로 적절한 평가를 받고 있다. [5] [6]


4. 장비[편집]


데뷔 초기에는 KORG MS-20하몬드 오르간을 사용하였고#, 잉베이 말름스틴과 활동하던 80년대 초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Korg Polysix와 Korg 멀티이펙터, Oberheim Matrix-12 조합을 주로 사용해왔다#.

8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까지 30년넘게 사용하는 악기는 야마하의 최초의 디지털 신디사이저DX7 모델(사진에 나온 것)[7]을 메인으로 사용하며, KORG01/W FD를 서브로 사용한다. 현재는 둘 다 단종된 모델이다.[8]

DX7을 오직 마스터키보드로 사용하고 DX7의 음원은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옌스의 사운드는 Roland사의 JV-1080렉을 사용한다. JV-1080은 명기로서 풍부한 스트링 및 그 고유의 패드 및 오케스트라 패치가 내장되어 있어서 바로크 및 멜로딕 속주 스타일의 연주자에게 최고의 장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옌스는 이 JV-1080에서 나오는 기본 파형을 이용하여 패치를 직접 편집(상술된 Korg Polysix에서 사용했던 패치를 재현)하고 외장 이펙터[9]를 걸어 이른바 "옌스의 신스 리드"라고하는 멜로디 밴드 속주자에게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패치를 직접 만든 창조자이기도 하다.

이 패치는 많은 키보드 연주자 및 카피 밴드 들이 구현을 시도하였으나 정확한 건 오직 옌스만이 알고 있다. 옌스는 수많은 DX7을 가지고 있으며[10] 이 야마하 마스터 키보드와 함께 있는 모습이 그의 시그너쳐를 굳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엔 AKAIMIDI 컨트롤러(마스터키보드)를 DX7위에 올려놓고 사용한다. 근데 건반이 작다…


5. 여담[편집]


  • 나이에 비해선 꽤나 귀엽게 생겼다(읭?).
  • 장난기가 장난 아니다. 앨범에 사인한 것을 보자.
  • 자칭 너드이다. 어린시절 아타리 ST로 컴퓨터를 쓰기 시작하여, C언어로 코딩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본인의 홈페이지도 Perl로 직접 작성한 것이다.
  • 피치벤드 주법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 자신이 소유한 DX7의 피치벤드를 더 세밀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개조하였다. 동작 원리와 구조를 회로도와 함께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하였다. #
  • 리치 블랙모어레인보우의 새로운 키보디스트로 참여한다고 한다.[11] 그렇다고 스트라토바리우스를 탈퇴하지는 않는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01:45:17에 나무위키 옌스 요한슨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그의 아버지는 얀 요한슨(Jan Johansson)으로 스웨덴을 비롯해서 유럽 재즈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심지어 1969년에 솔로 앨범인 Musik genom fyra sekler 앨범이 그래미 어워드 수상목록의 후보로 거론되었을 정도로 막강했었다. 하지만 옌스가 5살이 되었을때 그는 투어를 돌고 있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옌스 본인도 이 시절이 힘들었던 시절이라고 몇몇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2] 다만 이는 드림 씨어터 내의 학벌주의 동문회 성격이 문제일 수도 있다. 거의 유일한 결점이라고 할 법 한데 유독 멤버가 교체가 잦은 키보드를 보면 케빈 무어(버클리), 데렉 셰리니안(버클리), 조던 루데스(줄리아드) 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이번에 바뀐 드러머인 마이크 맨지니 역시 버클리 출신. 허나 버클리 음대 자체가 워낙 유명하고 괴물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보니 동문회 보다는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그랜드 슬램이라고 볼 수 있을 듯.[3] 그래도 드림시어터랑은 안면이 있었었는지 마이크 포트노이와 인터뷰를 하는 영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P1g1wEnqkY[4] 옌스 이전에도 얀 해머(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 알 디 메올라, 제프 벡), T 라빗츠(딕시 드렉스), 칙 코리아(리턴 투 포에버)등이 키보드-기타 배틀을 시도한 적이 있다[5] 재미있는 것은 이에 대해 드림씨어터 낙방에 대한 트라우마설이 있다는 점. 사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던 조합중 하나가 드림 씨어터+요한슨 콤보였는데 요즘 앨범에서는 그가 드림씨어터로 들어갔어도 어떤 면에서는 절대로 조던 루데스에 뒤지지 않을 플레이를 보여 줬을 것이라는 점을 반증하기도 한다.[6] 여담이지만, 주구장창 ESP빠로 남다가 요즘 시기 브라운으로 바꿔도 그 사운드인 티모 톨키(그러나 시그니쳐는 못 받은 것이 함정)와 비교해서 현재의 기타리스트는 여러 기타 메이커를 오가면서 유연한 사운드를 보여 주는 특징이 있고, 다소 정통적인 노선보다는 현대적인 노선이다. 반대로 기타 메이커가 같은 카빈이라는 점 때문에 옌스가 세션을 했던 소나타 악티카의 요즘 사운드와 유사한 면을 보여주는 점도 있다.[7] 정확히는 DX 시리즈 중에서 DX7IIFD 모델. 풀이하자면 DX7의 2기형에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가 추가된 모델이라는 의미.[8] DX7은 83~87년, 01/W FD는 91~9X년에 생산된 신디사이저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잘 써먹었다.[9] 디스토션오버드라이브, Morley JD-10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있다.[10] 부서진 DX7,DX7ll 등등[11]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Under A Violet Moon'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었던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