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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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택
吳基澤


파일:가수 오기택.jpg

본관
동복 오씨[1]
출생
1939년 11월 18일[2]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사망
2022년 3월 23일 (향년 82세)
서울특별시
최종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해남북일국민학교 (졸업)
해남중학교 (졸업)
성동공업고등학교 (기계과 / 졸업)
가족
무녀독남[3]
조카 박우철[4]
병역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만기제대
종교
불교
데뷔
1961년 제1회 KBS 직장인 콩쿠르 1위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대표곡



1. 개요[편집]


대한민국가수.


2. 생애[편집]


1939년 11월 18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에서 아버지 오월봉(吳月奉, 1913. 4. 29 ~ 1951. 4. 23)[5]과 어머니 주장악 사이의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다.[6]

어릴 때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해남군과 목포부를 오가며 초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야 했을 정도로 환경변화가 많았다. 해남북일국민학교와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뒤 외삼촌의 도움으로 성동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했다. 그 뒤 작사가 고복수가 설립한 동화예술학원(東和藝術學院)에 입학하여 1962년 2학년을 수료했다.

이후 1961년, KBS에서 실시한 제1회 직장인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해 가수로 데뷔했고, 마도로스 박, 아빠의 청춘, 영등포의 밤 등 많은 히트곡들을 내어 196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가 되었다.

1966년에는 남궁원, 엄앵란 주연의 '영등포의 밤'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오기택도 그 영화에 출연해 더욱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1997년에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져 대중들에게 많은 충격을 준 바가 있다. 그 후 2010년 이후에는 건강이 몹시 악화되어서 서대문구 소재의 요양병원에서 선후배 가수와 해남군향우회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2022년 3월 23일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여담으로 전 재산을 고향의 해남고등학교에 기부하겠노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3. 기타[편집]


  • 2010년, 영등포구에서 그의 대표곡인 '영등포의 밤' 노래비를 세운 바가 있다.
  •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4. 대표곡[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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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좌공파 28세 탁(鐸) 항렬. 족보명 오기탁(吳奇鐸).[2] # 네이버 등 포털의 프로필에는 4월 2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3] 이복형제들은 있었지만,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4] 본명은 오영·록(吳榮祿)으로 오기택의 둘째 형 오병희(吳秉僖, 족보명 오희탁吳僖鐸, 1937. 1. 24 ~ 1998. 5. 17)의 장남이다. 1952년 8월 22일생이다.[5] 족보명 오재봉(吳在奉).[6] 동복오씨족보에는 어머니 주장악이 등재되어 있지 않고, 다만 아버지의 오월봉의 부인으로 김해 김씨 김주련(金胄連)의 딸 김희면(金喜勉, 1911. 8. 15 ~ 1979. 7. 23)이 등재되어 있다.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오기택의 어머니 주장악은 소실이었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