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히데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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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오다 단조노추 당주
오다 히데노부
織田秀信
[1]


파일:Oda_Hidenobu.jpg

출생
1580년
사망
1605년 6월 24일 (향년 25세)
기이국 이토군 고야산
(현 와카야마현 이토군)
재임기간
제6대 오다 단조노추 당주
1582년 6월 21일 ~ 1605년 6월 24일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매체



1. 개요[편집]


오다 노부나가의 장손이자 오다 노부타다의 장남. 아명은 산보시.


2. 생애[편집]


오다 노부타다와 도쿠주인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승승장구하는 천하인 할아버지의 세력을 이어받아 일본의 지배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태어나기 5년전에 이미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가독을 물려주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장남인 그가 가독을 물려받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텐쇼 10년(1582년) 6월 2일(음력)의 새벽,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다. 할아버지의 중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난을 일으켜 할아버지를 제거하고 아버지까지 죽여버린 것.

백수십km밖에 있던 하시바 히데요시가 며칠만에 순식간에 돌아와서 아케치 미츠히데를 제거하고 오다 가문의 중신들을 모아 키요스 회의를 열어 다음 오다 가문의 주인을 결정하려 했을 때, 산보시는 그 후보에 올라가있지도 않았다. 겨우 3살이었기 때문에 가문을 이끌고 난세를 헤쳐나간다는게 어불성설이기 때문. 시바타 카츠이에는 셋째 숙부인 오다 노부타카를 밀었고 하시바 히데요시는 둘째 숙부인 오다 노부카츠를 밀었는데, 하시바가 입장을 바꿔서 산보시를 민다. 3살 짜리에게 가문을 맡긴다는건 아무리봐도 헛소리지만 명분은 섰던게 이미 7년전에 아버지가 가독을 이었기 때문. 실제로는 어린애를 괴뢰로 세우고 자기가 정권을 잡으려는 것이었겠지만, 하시바가 아케치를 제거해서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았다는 것이 큰 명분이 되고 다른 중신인 니와 나가히데이케다 츠네오키가 하시바에 동조하면서 산보시는 비록 명목상이지만 오다 가문의 주인이 된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존재감이 없어진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시바타 카츠이에와 오이치, 오다 노부타카, 타키가와 카즈마스를 제거하고 오다 노부나가의 세력을 그대로 흡수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롯한 대다이묘들을 굴복시키고 시코쿠규슈 그리고 간토까지 점령하여 일본을 통일한다. 조정으로부터 관위를 올려받아 명분상으로도 오다 가문을 뛰어넘고 도요토미라는 성씨까지 하사받는다. 이제 괴뢰조차 아니고 완벽한 가신이 되었지만, 그래도 제거당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천하인으로 발돋움한 장소이자 아버지의 거점으로 물려준 기후성을 물려받으며 소다이묘로 살아간다.[2]

스무살이 되기 직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일본에 전운이 감돌고 그는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 쪽에 붙는다. 세키가하라 전투이 일어나기 직전 전초전으로 동군의 후쿠시마 마사노리, 타나카 요시마사, 이케다 테루마사 등이 그가 있는 기후성을 공격하여 낙성시킨다. 이후 그는 개역당하여 지위를 잃은 뒤 고야산(高野山)에 은거하여 승려가 되었고, 5년뒤인 1605년 6월 24일에 향년 25세로 요절하였다.[3] 이로써 오다 노부타다의 혈통은 단절되었고, 오와리 오다 가문의 대표는 히데노부의 숙부이자 노부타다의 동생인 오다 노부카츠의 후손들이 하고 있다.


3. 평가[편집]


역사적 격변으로 어린 나이에 정권을 빼앗겼다는 점에서 비운의 인물. 오다 히데노부를 삼종의 혈맥으로써 찬탈당했던 단종과 비교하는 경우도 그럴듯 하지만 그보다는 제안대군에 비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단종은 12살에 즉위했고 5년만 지나도 국정을 장악할 것이며 당시에 수양대군이 쿠데타를 일으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지만, 제안대군은 4살에 아버지가 죽었고 할아버지의 선례상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가 말년에 키워준 오촌숙부 구성군 같은 경우도 있으니 더더욱. 결국 한명회를 비롯한 원신들이 뒷배를 봐줄 자을산군이 즉위했고 제안대군은 바보짓하면서 천수를 누리다 갔는데, 히데노부는 다른 성씨의 가신에게 정권을 빼앗겼고 상술한 상황 탓에 끝내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는 점이 제안대군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평생 자식을 얻지 못하여 본인과 아버지의 직계 혈통이 단절된 점은 똑같다.


4. 매체[편집]


역사에서 그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때가 키요스 회의 때 밖에 없기 때문에 "오다 히데노부"라는 이름으로 사극에 나오는 일은 없고 아기인 "산보시"라는 이름으로는 사극에 자주 나온다.

사극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아기때만 출현하며 청년 때인 세키가하라 전투 전의 기후성 낙성 때는 등장조차 안하고 언급만 되고 지나가는 편이다. 키요스 회의 당시 아기 때 모습은 2006년 공명의 갈림길이나 2013년 키요스 회의 등에서 볼 수 있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어린 일러스트에 매우 낮은 능력치로 나온다. 수명도 짧아 오래 보기도 어렵다. 다이묘로서는 세키가하라 전투 시나리오에서 유일하게 플레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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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증조부의 이름이 오다 노부히데라는 것이다. '노부'와 '히데'만 거꾸로 한 것인데, 히데노부의 '히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히데'를 통자로서 받아서 앞에 붙이고 뒤에다 오다 가문의 통자를 '노부'를 붙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오다 세력이 완전히 히데요시에게 넘어갔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인 2대 쇼군 이름도 도쿠가와 히데타다이다.[2] 천하를 탈취당했는데도 히데요시를 따른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가 3살 때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당시 상황에서는 아기가 가문을 이끌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히데노부의 후견인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집권하였기 때문에 함부로 피후견인인 오데 히데노부를 척결하지 않아서 여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대로 오다 노부카츠나 오다 노부카타 숙부 중 하나정권을 잡았다면 같은 오다 일족이자 천하인 오다 노부나가의 적손이자 옛 당주인 형 오다 노부타다의 적자인 오다 히데노부는 오다 가문의 삼대 적통으로 정통성을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로 간주되어 제거당했을지도 모른다. 전국시대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3] 좀 더 살아 있었다면 할아버지의 굳건한 동맹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개역당한 그를 타치바나 무네시게처럼 다이묘로 다시 불러줘 오다의 적통 가문을 이어가게 해줬을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병사해버렸는데, 이에야스가 오고쇼 시절 전국시대 때의 이런저런 썰을 풀 때 오다 노부나가와 관련된 일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동맹으로서는 굳건해도 자신의 장남 마츠다이라 노부야스를 죽게 만들었던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인간적으로는 영 좋지 않은 감정을 지녔거나 딱히 친밀함을 못느껴서 그 손자인 히데노부에 별 관심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