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쿠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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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쿠튀르
Haute Couture


파일:오트쿠튀르01.jpg

언어별 명칭
프랑스어
Haute Couture[1]
한국어
오트쿠튀르
영어
High Dressmaking
1. 개요
2. 역사
3. 특징



1. 개요[편집]


상류층을 위한 맞춤, 혹은 그것을 만드는 의상점.

공식적으로는 파리의상조합(federation francaise de la couture)에서 지정기준에 맞는 규모조건을 갖춘 의상 제작점에서 만들어지는 이다. 이 조합에서 자신들이 만든 옷을 선보이기 위해 개최한 것이 1년에 단 2번, 파리에서만 개최되는 파리 오트쿠튀르 패션 쇼로, 현대에도 세계 패션 문화를 선도하는 패션 쇼로 남아 있다. 이 패션쇼는 참가 및 관람 기준이 매우 까다로우며[2] 모든 패션 디자이너, 하우스의 꿈의 무대로 유명하다.

이에 반대되는 패션 용어로는 프레타포르테가 있다.


2. 역사[편집]


오트쿠튀르라는 단어는 최초의 쿠튀리에[3]로 칭해지는 찰스 프레드릭 워스 (Charles Frederic Worth)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영국인이었지만 일찍이 생업에 뛰어들어 옷을 공부했고, 파리로 간 이후에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1860년 프랑스 황궁 쿠튀리에로 인정받게 된다. 또한 오스트리아 등 근처 나라 귀족과 왕족의 옷도 디자인했는데, 주문받은 대로만 만들던 당시의 시조와는 다르게 워스는 고객에게 원단과 색 정도만 고르게 하고 스스로 디자인을 했으며 옷에 최초로 자신의 브랜드 네임을 박아 넣었다. 그 와중에 늘어만 가는 고객들에게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 각 계절에 한두 달 정도 앞서 최초로 오트쿠튀르 패션쇼를 개최하게 되는데 이것이 파리 패션쇼의 시작이다.


3. 특징[편집]


현대에 와서 오트쿠튀르 컬렉션의 옷은 그 해 패션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일종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오트쿠튀르 컬렉션의 옷들은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들이 들어서며 다른 디자이너들은 이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기성복에 녹여낸다. 사실상 의류보단 예술 작품에 가까운 셈. 그러다 보니 디자인 자체가 실용성보단 예술성에 치중되어 있고 결과적으로 일반인들이 오트 쿠튀르 디자인의 옷을 보면 뭐 저런 걸 입고 다니나 싶을 정도로 괴상해 보인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최고의 원단을 사용한 맞춤옷이기 때문에 가격도 매우 비싸다. 애초에 판매하기 위한 옷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 자체가 책정되지 않은 옷들이 많기도 하다.

과거에는 패션귀족왕족의 전유물이었고, 기성복은 질이 매우 낮고 그에 비해 비싼, 즉 가성비가 나빴기 때문에 멋을 아는 이들은 차라리 돈을 더 주고 값비싼 원단과 오랜 시간을 들이는 맞춤복을 주로 입었다. 때문에 오트 쿠튀르가 곧 패션 트렌드였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으로 트렌드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물건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통계학의 발전으로 인체의 평균 사이즈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오트 쿠튀르의 지나칠 정도로 비싼 가격에 신물이 난 사람들에 의해 기성복의 퀄리티도 상승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레타포르테라고 불리며 현대 패션에서 오트 쿠튀르보다 더 큰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하이패션이라는 개념이 오트쿠튀르를 어느 정도 포괄하게 되었다.

오트꾸튀르 타이틀은 맞춤복을 제작한다고 오트쿠튀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법적인 규정에 가깝다. 예를 들면 개인 맞춤 제작 + 프랑스 파리에 20명 이상의 직원을 둔 전속 워크숍이 있어야 하며, 일 년에 두 번 이상(1월/7월 파리)의 컬렉션을 열어야 하는데 이때, 평상복과 이브닝 가운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오뜨꾸뛰르 협회 소속의 멤버여야만 한다.[4] 아무나 맞춤복을 만든다고 타이틀을 얻을 수는 없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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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어로 '높은, 상류의'라는 뜻을 가진 Haute와 '바느질, 의상점'을 의미하는 Couture의 조합어이다.[2] 아틀리에, 즉 주문한 옷을 만드는 제작소의 위치가 파리여야 하며, 15명 이상의 직원, 전속 모델을 보유하여야 한다. 심지어 관람도 결코 아무나 할 수 없으며 참여하는 디자이너, 디자인의 수가 엄격히 관리된다.[3] Couturier, 옷을 만드는 재봉사를 뜻하는 단어다. 오트 쿠튀르에서 활동하는 명망 높은 재봉사는 수사를 붙여 그랑 쿠튀리에(여성은 그랑드 쿠튀리에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4] 당연히 아무나 협회 회원이 될 수 없고 오뜨꾸뛰르라는 말도 사용할 수 없다. 오트쿠튀르 패션쇼에 초청된 정식 멤버가 아닌 게스트 하우스들도 그래서 꾸뛰르라는 이름만 사용할 수 있고 활동한 지 2년 이상이 지나야 자격이 주어진다. 예외적으로 국제 브랜드들도 인정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연계/해당 회원으로 베르사체, 발렌티노, 아르마니, 엘리사브 같은 브랜드가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나 다름이 없었던 앙드레 김 같은 경우도 여기에 단 한 가지도 해당되지 않았다. 앙드레 김 다음 세대의 한국인 디자이너들 중 우영미송지오 같이 파리 컬렉션에 서는 사람들이 오히려 오트쿠튀르 타이틀에 더 가까운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