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떡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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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조수진. 1979년생. 과학고 -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1]에다 삼성그룹 직원 출신이라는 커리어로 주목을 끈 여성 만화가이며, 임파선암으로 5년간 투병 끝에 2011년 3월 5일 32세의 나이로 임종했다.

자신의 투병기를 묘사한 웹툰을 연재하며 도 마음먹기에 따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려 노력했으나, 그런 그녀도 결국 현실의 냉엄한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죽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끝끝내 외면하며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의연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

암이 가져오는 죽음의 공포, 그것은 비록 결코 벗어날 수는 없지만 차분히 맞이하며 담담하게 준비할 여유 정도는 동반한다. 이것이 그녀가 남겨준 교훈이다. 암을 선고받았다면 막연히 어떻게든 되리란 희망에 젖거나 공포에 사로잡혀 망연자실하기보다는, 그녀처럼 어떤 방식으로 멋지게 죽음을 준비할지를 사색해보자.

솔직하면서도 공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죽음의 공포로 인해서 잠을 못 이루는 날. 갑작스러운 몸 상태의 급격한 악화[2]로 인해 병원을 전전하던 도중 병원을 가기 위해 외출할 때마다 꾀병인 거 같다(K과장) 아픈 것 같지가 않다는 뒷담화(N주임)에 크게 속앓이를 했던 이야기[3][4]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웃음으로 눈물이 나왔지만 그것을 보고 언니가 눈물을 터뜨리면서 울음 바다가 되는 웃픈 이야기... 죽어서 천국에 가도 자신의 가족과 언니가 없는 곳이 자신에게 과연 의미가 있을 것인가의 슬픔. 항암 치료를 받는 것의 고통과 부작용[5]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인해 탈모로 인한 속앓이와 대책. 좋아하며 투병 이후로도 자주 만나던 사람이 알고 보니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이별을 통보하고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 쓰고 펑펑 운 이야기, 암이 전이되어 항암 치료를 또다시 받아야 된다는 말에 좌절한 이야기 등등.

그녀의 작품을 보면 가족간의 좋은 인간 관계가 투병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 본인도 엄마가 아니라 언니가 자신의 엄마 같다고 언급할 정도. 실제로 작가 본인이 어려서부터 밝고 긍정적인 언니에게서 힘을 얻었다고 토로한다.[6] 투병 중에서도 작가 본인이 오히려 담담한 동안에도 언니가 극성이었다고 한다.[7] 때문에 웹툰에서도 언니와의 우애가 스토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8]

2009년에 카툰 단행본 ‘암은 암, 청춘은 청춘’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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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에는 카툰 단행본 ‘오방떡 소녀의 행복한 날들’이 출판되었다.

암환자들에게 많은 힘을 주었던 작품이라, 작가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이 알려졌을 때 많은 암환자 및 암 투병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고인은 충남 금산 납골당에 안치됐다.

유작인 '무균실 일기'가 출간 예정이다.

오방떡 소녀의 블로그

[1] 재학 내내 한 번도 학점이 A 아래인 적이 없었던 무시무시한 먼치킨이었다고 한다. 결국 수석으로 졸업했다.[2] 관절이 너무 아파서 루마티스인 줄 알고 치료를 받을 정도. 기침도 두 달 가까이 떨어지질 않아서 병원을 여러 번 전전하고 천식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쇄골 부분에 멍울이 만져져서 병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진료를 받아 확인했다.[3] 작가 본인도 서러워서 많이 울었다고.... 문제는 작가의 과거 삶의 이력을 보면 꾀병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과학고 - 서울대 - 서울대 과 수석 졸업자를 꾀병이나 부리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상급자들의 쩌는 위엄 결국 꾀병은커녕 임파선 암 3기를 진단받았다. 결국 너가 아프다고 해서 자신들이 일하는 동안 병원에 계속 가는 것이 눈꼴이 시렵다는 것이다.K과장 N주임이 사과는 하긴 했냐?? 다만 회사 직원이 아프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증거도 없이 본인들의 착각으로만 넘겨 짚으며 일방적으로 꾀병으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흔하다. 빡빡하게 돌아가며 서로간의 불신이 만연한 씁쓸한 한국 내 직장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4] 참고로 오방떡 소녀 작가가 진단받은 임파선암 3기는 이미 암세포가 횡경막을 건너 다른 부위로도 전이된 상태였다. 일찍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으면 완치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암은 초기 1~2기 동안 치료 받으면 완치율이 90%까지 치솟는다.[5] 너무 고통스러워서 작가가 결국 도중에 항암 치료를 잠시 중단할 정도. 본인과 가족이 상담 끝에 환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중단했다.[6] 생글생글하게 잘 웃고 다녀서 결혼식에도 언니가 해맑게 웃으며 결혼식을 치루는 것을 보고 언니가 잘 웃는 건 알지만 저렇게 웃고만 있으니 뭔가 어색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작가의 오해(?)였음이 나타나는데 결혼식 신부 화장의 특유의 떡칠로 인해 언니 본인이 웃지 않고 평범하게 있으면 신부 화장 떡칠로 인해 생긴 깊은 팔자 주름이 나타나기 때문. 작가 언니도 결혼식 동안 웃음을 애써 유지하는 데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7] 집과 병원을 오가며 치료 받는 도중 택배에서 언니가 주문한 암 관련 책이 수두룩 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요양원을 같이 다니면서 동생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8] 하지만 이후 언니 본인의 솔직한 심경 토로에 의하면 언니 본인도 친동생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은 동생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기 힘들었으며 시간이 상당히 지난 동안에도 동생이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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