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왈기야 오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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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1px-Oboi.jpg
노년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구왈기야 오보이(Guwalgiya Oboi, 瓜爾佳 鰲拜, 과이가 오배)
(1614 ~ 1669)

1. 개요
2. 상세
3. 대중매체에서
3.1. 녹정기에서



1. 개요[편집]


중국 청나라 초기의 대신. 만주족으로 구왈기야(瓜爾佳) 씨족의 사람이며, 팔기(八旗) 중 양황기(鑲黃旗) 출신이다.


2. 상세[편집]


활약한 것은 어린 나이였던 후금 태조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愛新覺羅 努爾合赤) 치세 말엽부터. 뒤이어 태종 홍타이지를 섬기며 전장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정복전쟁에서 항상 선봉에 나서서 용맹하게 싸우는 그의 모습을 두고 홍타이지가 최고의 용사라고 칭찬했을 정도.

순치제가 일찍 죽고 강희제가 즉위했을 때 허서리 소닌(赫舍里 索尼, 혁사리 색니), 나라 수크사하(納喇 蘇克薩哈, 납란 소극살합), 니오후루 어빌룬(鈕祜祿 遏必隆, 뉴호록 알필륭)과 함께 4명의 보정대신 중 한 사람으로 권력을 휘둘렀으며 백성들의 땅을 빼앗아 사유지를 넓히고 수크사하와 그의 일족들을 죽이는 등의 방자한 행동을 했다.[1] 이 때문에 그의 전횡에 분노한 강희제는 오보이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효장태후의 반대로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친정을 시작한 강희제는 급습으로 오보이를 체포하였다.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곧 구금으로 형을 낮췄다. 몇몇 기록에 따르면 오보이는 사로잡힌 순간 자신을 처형시키려는 강희제보다도 어린 나이 때부터[2] 누르하치, 홍타이지 등, 선대 황제들을 온몸으로 지켜내며 얻은 수많은 상처를 보여줬다. 이 때문에 강희제는 마음이 흔들려서 오보이의 형을 낮추었다고 한다.

오보이는 사후인 1713년이 되어서야 명예를 회복하였다. 환갑 직전의 장~노년이 되어서야 강희제는 젊은 자신에게 반항한 늙은 신하의 죄를 비로소 용서하였고 옹정제는 그에게 최고의 장군급 벼슬과 함께 초무(超武)라는 시호를 내렸다. 하지만 후에 건륭제가 그의 치적을 살펴보고 벼슬을 강등시켰다.

여담으로 오보이의 몰락은 삼번의 난이라는 초대형 사건의 전조가 되었는데 오보이는 삼번의 왕들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오보이 몰락 후 권력을 잡은 강희제는 삼번을 없애고자 마음먹었고 이에 반발해서 터진게 삼번의 난이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2001년 드라마 강희왕조에 등장한다. 백성들의 토지를 수탈해 악명이 높다. 보정대신 소극살합에게 탄핵당했으나 오히려 소극살합을 탄핵했다. 강희제의 명령으로 단신으로 궁에 불려간 오배는 시위들에게 포위되어 체포되었다.

2016년 드라마 황제의 봄에 등장한다. 대청제일무장이란 별칭이 있고 실제로 초인수준의 무예를 지녔다. 1화에서 강희제의 명령으로 시위들이 몰래 쇠사슬로 오배를 결박했으나 오배는 오히려 쇠사슬을 무기로 활용해 16명의 시위를 기절시켰고 강희제를 제거하려는 순간에 쇠사슬에 묶여 날아온 돌기둥에 머리를 맞고 기절해 체포된다.

2017년 드라마 용주전기에 등장한다. 대청제일용사로 불리며 고령임에도 일당백이 가능한 엄청난 무예를 지녔으나 강희제의 독에 당해 체포되고 실각한다.


3.1. 녹정기에서[편집]


역사에서처럼 순치제 다음에 즉위한 강희제를 보좌하는 4인의 보정대신 중 1인이자 청나라 제일의 용사라 불린다.[3].

작중 초반에 사송에게 언급되어지며 모십팔이 그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천하의 개망나니 위소보가 트집을 잡아 베이징으로 오게 만든 원인.

힘 하나는 장사여서 미친 소를 한 주먹에 때려 죽였다는 소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힘은 엄청난 듯하다.

강희제의 서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며, 보정대신 중 하나인 납란 소극살합(나라 수크사하)의 일가를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강희제에 대해 흥분하여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고 강희제에게 달려들어 숨어있던 위소보가 튀어나와 큰소리를 쳐서 그를 뻘쭘하게 만든다.

그 뒤 황제가 미리 계획을 짜두고 열두 명의 소환관과 위소보와 함께 장난을 친다는 빌미로 불러들여 싸우게 되나, 처음엔 장난인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강희제가 그에 등판에 단검을 찌르는 걸 보고 황제가 자기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알아채고 덤빈다. 그리고 몸에 엉겨붙은 소환관 여덟을 순식간에 죽였다. 하지만 강희가 그의 시선을 끄는 동안 위소보가 향로를 들고 그의 뒤통수를 내리쳐서 기절한다.

미리 준비된 포승으로 결박당하고 깨어나 억울하다고 소리치자 강희제의 명령에 의해 입 안에 칼질을 당하고 향로재를 머금는 굴욕을 당한다.

그 뒤 혁사리 색액도(허서리 송고투)와[4] 강친왕에 의해 호송되며 강친왕부의 지하감옥에 감금된다.

그 동안 색액도와 위소보에 의해 가산이 몰수되고 그의 일당들이 전부 숙청되어 몰락한다. 벼슬아치와 가짜내시가 그의 재산 중 약 3분지 2정도를 꿀꺽했지만[5]

해대부가 죽은 뒤 강희제에게 명령을 받아 승진하여 강친왕부로 오게 된 위소보가 그의 식사를 맡는 하인에게 젓가락이 더럽다고 하여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약을 식사에 타서 그에게 주게 한다.

그걸 먹은 즉시 천지회 인물들이 지하감옥으로 쳐들어올 때 이미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고 먼저 오배가 갇힌 방 안으로 쇠창살을 떼내어 들어가려던 천지회 무사를 주먹으로 내리쳐 죽였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방 안에 들어온 위소보가 그의 등짝을 보자 등에 칼질을 하여 목숨을 잃는다.

천지회 청목당의 윤향주를 살해한 적이 있어 천지회의 큰 원수였는데 이로 인해 위소보는 청목당의 향주가 된다.

녹정기 실사영화에선 홍콩의 이대근이라 불리는 서금강이 열연, 원작보다 무공이 업그레이드돼서 뇌옥에 유폐되어 있었음에도 진근남을 위기에 빠뜨릴 정도의 포스를 보여준다. 가산 몰수시 첩들 취향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아서 위소보가 낼름. 투옥된 후 포탈라궁의 라마승들이 구출해줘서 가짜 태후의 음모로 감방에 던져진 위소보를 포로로 잡지만, 자금성에 잠입한 천지회와 결투를 벌이게 된다. 천지회 대부분을 척살하고 진근남도 위기에 몰아넣지만, 오배의 무공은 성기를 배안으로 집어넣어서 몸을 금강불괴로 만드는 것인데, 위소보가 성기를 발기시키는 혈을 찾아서 자극해서 오배가 발기하게 되고, 그 틈을 타서 진근남이 머리에 칼을 찔러넣어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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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그럴 수 있었던 건 소닌은 너무 늙었고 건강이 나빠 일을 할 수 없었으며, 어빌룬은 같은 팔기 출신이라서 오보이에게 포섭되었기 때문. 따라서 다른 팔기 출신이었던 수크사하를 숙청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특히나 수크사하는 정백기 출신으로 원래 예친왕 도르곤의 부하였다.[2] 나이를 보면 알겠지만 오보이는 권력투쟁을 벌이던 시기가 많이 달라서 체감이 안될 뿐이지 도르곤보다 두살 어린 사실상의 동년배이다. 도르곤도 강희제가 친위 쿠데타를 기획하던 14살 땐 엄마가 순장당하는걸 지켜보며 형과 동생의 목숨을 걱정하던 처지였다가 10대 후반부터 홍타이지의 지원으로 본격적으로 공을 세우고 실력을 기른 것이었는데, 오보이는 그보다도 어린 나이부터 전장을 누비며 고생하며 커온 것이었다.[3] 후술할 모십팔이 오보이를 타깃으로 삼은 것도 이때문이다.[4] 4인의 보정대신 중 하나인 허서리 소닌의 셋째 아들이다.[5] 원래 재산이 금 3백만이었는데 이중 2백만을 색액도와 위소보가 꿀꺽한다. 그리고 남은 재산만 강희제에게 바쳤는데 그 남은 재산만을 보고도 강희제는 백성들을 얼마나 쥐어짰으면 이런 돈을 모았겠냐며 분노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도 재현되는데 위소보가 오배의 재산을 다륭과 함께 모조리 차지하면서 그의 첩들도 모조리 거느리는데, 가슴이 큰 첩을 보고는 병에 걸린게 틀림없으니 치료를 해주겠다고 끌고가고 백인첩은 외국 첩자 의혹이 있으니 심문하겠다고 끌고가고 흑인첩은 불끄면 똑같다고 데려가고(...) 요즘 기준으로 상당히 빻은 모습을 보이지만 주성치의 모레이타우 센스가 원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