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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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일생
2.1. 데뷔 및 입지 구축
2.2. 만화 부자의 그림일기
2.3. 만화 토지
2.4. 별세
3. 수상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만화가이다.(1955 ~ 2016)


2. 일생[편집]



2.1. 데뷔 및 입지 구축[편집]


1955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태어나 1986년 다소 늦은 나이인 서른 두 살에 만화잡지 <만화광장>에 단편 <탈바가지>를 실으며 데뷔했다.

이후 여러 작품을 연재했는데 80년대 후반에는 월간 보물섬에 만화 위인전을 연재했었다. 뭐 위인전에 나오던 문제점이 그대로 들어간 만화이지만... 대본소 만화에 부정적으로 대하며 토속적인 그림체 및 작품적으로 연재하느라 상업적인 성공을 그리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작품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는데 선배인 박재동은 1994년 만화! 내 사랑이라는 책자에서 소똥을 그릴 줄 아는 만화가 오세영이라고 호평하며 그의 작품 <월북작가 순례기>에 나온 투계(원작은 안회남)에 나온 심씨의 술 마시는 장면을 소개하며 언급한 바 있다.


2.2. 만화 부자의 그림일기[편집]


1996년에 그동안 내던 단편들을 모은 《부자의 그림일기》는 역시 만화계로부터 작품성으로 크게 인정을 받았는데, 구해서 읽어보면 과연이라는 말이 나온다. 작화는 두 말할 것 없이 훌륭하고, 변화하는 현실이 자아내는 아이러니와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짧은 이야기로 풀어내는 수법이 그야말로 탁월하며, 작위적일 수 있는 수법을 사용하면서도 소름 끼칠 정도의 리얼리즘이 함께 엿보인다. 사실상 국내에서 만화로 이만한 성취를 낸 예술가가 있을까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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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15개의 단편 중 〈쏴!쏴!쏴!쏴!탕〉은 2022년에 김재한 감독에 의해 동명의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었다.


2.3. 만화 토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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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세영 이름이 알려진 건 2007년 만화 토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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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박경리와 2007년 찍은 사진.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어린이날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작자 박경리도 호평했을 정도로 작품적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여러 문제로 인하여 박경리 사후에 7권(1부)까지만 그리고 2부(8~17권)는 박명운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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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별세[편집]


2016년 어린이날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만 60살이었다.

선배인 박재동은 안타까워하며 조문으로

“그리고 싶은 이야기/소중한 그 이야기 두고/왜 이리 가버리냐/…//우리 만화계의 보물/사람들은 몰라도/아는 사람은 아는 우리 문화계의 국보/수많은 /그림쟁이의 스승/철저히 공부했던/세계의 대가급 중의 한사람/재능만큼 수명까지는 우리가/가질 운이 없었느냐//온 하늘에/세영이 가득하구나!”고 애통해했다...


미생으로 알려진 윤태호는 부고 소식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너무 놀랐다. 아직도 진정이 안 된다.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고 애도했다.

말년에 집 근처 혐오시설 문제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듯하다.

2017년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1주기 추모 전시회가 열렸다. 선배인 장태산2017년 5월 4일 몽홀 후기에서 1주기 추모 전시회를 알리며 벌써 1년이라고 마감끝내고 그 친구를 생각하며 혼술을 해야겠다고 착잡한 마음을 글로 썼다.


3. 수상[편집]


  • 2009년 고바우 만화상 수상
  • 2005년 〈부자의 그림일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한국의 책 100'에 선정
  • 1999년 〈오세영 중단편 만화문학관〉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 1993년 《한겨레》 선정 우리 시대의 만화가 10인.


4. 관련 문서[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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