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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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孫
1. 개요[편집]
기원전 3세기~서기 5세기에 걸쳐 존속한 서역의 유목민족.
2. 어원[편집]
후한 중국어로는 ʔɑsuən(아수언)이라고 발음했다. 학계에서는 산스크리트어로 기병을 뜻하는 aśvin와 연관시켜 이 민족이 인도아리아어군 사용자였을 것으로 본다.
3. 상세[편집]
오손은 한서에 나오는 기록에 따르면 외형상 백인종으로 인도유럽어족 중 인도아리아어군으로 여겨진다. 중앙아시아에서 퍼져나가던 인도아리아인의 주류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로 남하하고, 일부는 톈산 산맥을 넘어 오손이 되었다는 것이다. 후대에 튀르크 민족들과 계속 혼혈되었으며, 오늘날 키르기스인들은 이들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긴다.[1]
유전적으로는 인도아리아어를 쓰는 백인종인 오손인과 달리 현재 키르기스인은 바이칼호 인근에서 이동한 튀르크어를 쓰는 황인종이다.
본래 하서회랑이 불리는 간쑤성의 치롄산맥 북쪽 기슭을 거점으로 삼았으나 월지의 서진 과정에서 큰 타격을 입어 한 차례 멸망당하였다. 그 과정이 명확하지 않은데, 《사기》에서는 오손을 공격해 멸망시킨 주체를 흉노라 기록하였으나, 《한서》에서는 월지였다고 기록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흉노의 공격에 하서회랑 지역으로 밀려난 월지에 의해 멸망한 것이다.
오손은 멸망 당시에 그 왕이 살해당하고 종족이 뿔뿔이 흩어졌을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오손 왕의 어린 아들이었던 엽교미는 간신히 살아남아 흉노 선우에게 거두어졌다. 전설에 따르면 흉노가 오손을 멸망시켰을 당시에 갓난아기였던 엽교미만이 살아남았다. 흉노족들은 엽교미를 들판에 버렸는데, 주변의 까마귀들이 엽교미에게 고기를 물어다 주었고 늑대들은 젖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이에 흉노족의 선우가 엽교미를 신령한 존재라고 여기고 그를 거두어 아들처럼 키웠다고 한다.
엽교미는 흉노의 장군이 되어 공을 세우고 신뢰를 얻었다. 마침내 흉노의 힘을 빌려 일리 강 유역으로 이전해있던 월지를 무찔러 복수함과 동시해 오손 왕국을 부활시켰다.[2]
장건이 한나라를 떠난 BC 138년까지만 해도 월지는 흉노와 가까운 일리 강 유역에 위치했으나, 장건이 흉노에 잡혀 있는 사이 오손이 그 자리를 대신해 오손과 동맹하는 것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이다. 오손에게 패배한 월지는 소그디아나로 이동해 대월지가 된다.
기원전 116∼BC 115년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 장건(張騫)이 이 나라에 사행(使行)한 이래, 한나라 조정과 흉노와의 관계에 개입하면서 양자간의 이득을 취하면서 흉노를 약탈하고 강거를 견제하는 등 10만의 기병을 통솔하는 서역 최강국으로 부상하였다.
하지만 왕위분쟁에 한이 개입하면서 대오손, 소오손으로 국가가 분열되었고 이 과정에서 왕족 비원치는 강거의 지원을 받아 한의 영향을 배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오손 관련 기록은 사실상 끊어지고 전한 말기에 한이 서역에서 철수하면서 기록이 단절되었다. 후한때에는 서역에 진출하였으나 오손이 사는 곳까지는 교통이 닿지 않았다.
그 후 5세기경 다시 기록에 등장했으나 그 세력은 이미 심각하게 쇠약해져 서역의 평범한 국가로 추락했고 다시 200년후 당(唐)이 서역에 진출했을 때는 오손민족은 이미 멸망한 상태였고 극소수의 후예만이 오늘날 천산 일대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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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전적으로는 인도아리아어를 쓰는 백인종인 오손인과 달리 현재 키르기스인은 바이칼호 인근에서 이동한 튀르크어를 쓰는 황인종이다.[2] 장건이 한나라를 떠난 BC 138년까지만 해도 월지는 흉노와 가까운 일리 강 유역에 위치했으나, 장건이 흉노에 잡혀 있는 사이 오손이 그 자리를 대신해 오손과 동맹하는 것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이다. 오손에게 패배한 월지는 소그디아나로 이동해 대월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