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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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오스만 제국의 25대 술탄이자 19대 파디샤.
3년의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다수의 건축물을 남겼고 파디샤의 권력을 강화하였으며 내부를 안정시켰다.
2. 생애[편집]
2.1. 즉위 전[편집]
1699년 1월 2일 무스타파 2세의 차남으로 태어났고, 톱카프 궁의 카페스에 감금된 채로 51년의 세월을 보낸 후 1754년 형 마흐무트 1세가 사망한 후 즉위하였다.[1] 1754년 12월에 행해진 오스만 3세의 대관식은 맹렬한 추위로 인해 조촐히 치러졌고 제대로 기록되지도 못하였다.
2.2. 치세[편집]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
오스만 3세는 지나치게 비대해진 대재상의 권력을 제한하려 하였으며, 동부 아나톨리아의 교통을 방해하는 도적단 소탕에 나섰다. 그 결과 1755년 말엽 시바스에서 활개치던 두목 카라오스만오을루 하즈 무스타파 아아가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또한 1755년에는 마흐무트 1세 때에 착공한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가 완공되었다.
대사원 외에도 그 주변에는 3개의 학교, 마드라사, 도서관, 영묘, 분수대, 여관, 상점, 공방 등이 세워져 복합단지를 이루었다. 그외에도 오스만 3세는 위스크다르 지구를 개발하고 이흐사니예 모스크를 건립하였다. 다만 그의 명의로 건설된 분수대는 122년 후 붕괴하였다.
한편 1756년에는 이집트 상선이 어둠 속에서 코스탄티니예의 쿰카프 해변에 좌초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오스만 3세는 친히 사고 현장을 방문, 6백에 달하는 승객 구조를 지휘한 후 미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아흐르카프 등대를 세웠다. 1757년 오스만 3세는 예루살렘의 기독교 교회들에 대한 면세 조치를 명시한 칙령을 내렸다.
이 조치는 오스만 패망 후 영국 위임통치, 요르단, 이스라엘 지배기에도 존중되었는데, 2018년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뒤집고 세금 부과를 시도했다가 강한 반발로 번복한 바 있다.
안정적으로 재위하던 오스만 3세는 1757년 10월 30일 밤 급사하였다. 다음날 장례식이 치러진 후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에 안장되었고, 사촌 무스타파 3세가 제위를 계승하였다.
3. 여담[편집]
- 51년동안 갇힌 탓에 화를 잘내는 신경질적인 성격을 가졌다.
- 여자를 매우 싫어해서 철로 만든 신발을 신거나 못을 박아서 못다가오게 했다.
- 반세기를 갇혀 지낸 탓에 행동 장애가 있었고, 전임 파디샤들과 달리 음악을 혐오하여 악사들을 궁에서 추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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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형 마흐무트와 함께 1730년부터 유력 왕위 계승자로 지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