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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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HK 로고.svg 連続テレビ小説
NHK 연속 TV 소설



1982년 후기
1983년
1984년 전기
요-이 땅!
(よーいドン)
오싱
(おしん)

로망스
(ロマンス)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a18a9296.jpg[1]

おしん

1. 개요
2. 줄거리
3. 반향
4. 미디어 믹스
4.1. 영화
4.1.1. 일본 영화
4.1.2. 한국 영화
4.2. 한국 소설
4.3. 한국 만화



1. 개요[편집]


1983년 4월 4일부터 1984년 3월 31일까지 방영된 NHK 연속 TV 소설. 작가는 하시다 스가코(橋田 壽賀子, 1925.5.10-2021.4.4). 주인공인 오싱 역은 어린 시절은 코바야시 아야코, 청년기는 타나카 유코, 중노년기는 명배우 오토와 노부코가 맡았다.

이후 2013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주인공의 이름이 오싱(여자)인데, 1907년부터 1983년까지 이 오싱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도 판권을 사들여 KBS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한 바 있다. 그리고 소설책과 아동용 만화책으로까지 나왔다.

웨이브,왓챠에서 볼 수 있다.

1983년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화질이 좋으며, 아날로그 베타캠의 위력을 알려 준다.


2. 줄거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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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1983년에 잘 나가다가 부도 위기에 처한 수퍼마켓 체인점의 창업주인 80대 할머니 오싱(타노쿠라 신, 결혼 전 이름은 타니무라 신)이 갑자기 가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싱은 자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야마가타현의 시골마을을 찾아가, 처음으로 식모살이하러 가던 1907년부터 자신의 인생을 회상한다. 전반적인 내용은 메이지 시대에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한 여성이 다이쇼 시대쇼와 시대를 거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했다. 러일전쟁이 끝난 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 등을 모두 커버하는 꽤 긴 사극이다.

1980년대는 일본이 세계 가전제품 시장과 자동차 시장을 잇따라 차지하며, 미국이 일본에게 따라 잡힐것이라는 에측이 진지하게 논의될 정도의 시대였고, 그런 점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0살도 안 되어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여자아이가 일본이 성장하던 메이지 시대를 거쳐 성숙해지고 다이쇼쇼와 시대에 번영을 누리다 패전으로 몰락하고,[2] 다시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거쳐 재기했다가 말년에는 오직 부자가 되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살았던 것에 회의를 느끼는 과정을 그려냈던 '오싱'은 일본인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줬다.

원작자인 하시다 스가코에 의하면 오싱의 설정은 쇼와 시대 살던 어느 할머니가 당시 이렇게 고생했다는 무기명 투고를 받아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공지를 통해 많은 쇼와 시대 할머니들의 투고를 받았는데 당시 어린 나이에 더부살이, 기녀로 팔려감, 고된 시집살이 등 드라마의 뼈대가 다 여기서 나왔다. 이때 투고한 할머니들은 당시 여성으로서의 삶이 너무 힘들었고, 특히 기녀로 팔려갔던 것은 가족중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다만 결국 오싱이 슈퍼마켓 체인점으로 성공했던 설정은, 당시 최대 슈퍼마켓 체인이었던 다이에의 창업자이자 '일본 유통의 아버지'인 나카우치 이사오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3] 참고로 다이에는 유동성 위기 때문에 2007년 일본 최대 유통기업인 이온그룹에 일부 지분을 매각하였고 2013년에는 아예 인수되어 자회사가 되었다.

다음은 한국 소설판을 기준으로 내용을 설명한다. 드라마 시나리오를 한국에서 소설로 풀어서 번역 출판했으니 세세한 내용까지 원작이나 한국 소설판이나 차이가 없다.

1권 더부살이 편
오싱의 현재와 유년기를 중심으로 한다.

1983년 일본 이세현에서 슈퍼마켓 체인점으로 성공한 오싱 할머니는 17번째 슈퍼마켓 개업식이 열리는 날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집을 나가 가족들을 놀라게 만든다. 그때 양손자이며 대학생인 게이[4]가 전에 할머니가 지나가듯 말했던 옛날 이야기를 단서로 야마가타의 한 온천에서 오싱 할머니를 찾아낸다. 하지만 오싱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게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평생에 걸친 이야기를 해준다. 즉 액자식 구조가 이 작품의 컨셉. 5권까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1901년 야마가타현의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오싱.[5]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지만 형제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면서[6] 먹고살기 위해 아린 나이에 어느 제재소 집안에 한 가마니 받고 더부살이로 팔려간다. 평소 엄마(후지)와 오싱을 폭력으로 다스리던 무자비한 아빠(사쿠조)는, 더부살이로 가기 위해 뗏목을 타고 떠나는 오싱을 따라 한없이 뛰어가다가 어느 강변에서 넘어지고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한다.

오싱은 제재소에서 애보기를 하며 아동 학대 수준으로 고생하다가 도둑으로 몰리자 도망을 갔고,[7] 눈밭에 쓰러져 죽을 뻔했으나 쥰사쿠라는 탈영병과 쥰사쿠와 같이 사는 노인에게 구조된다. 노인은 쥰사쿠가 탈영병이란 사실이 알려질까봐 오싱을 보내려하지만, 쥰사쿠는 오싱도 자신처럼 힘든 상황에서 도망친 거라며 지금은 겨울철이라 힘들고 눈이 녹는 이 되면 마을로 데려 주겠다며 친오빠처럼 보살펴준다. 또한 오싱이 학교 갈 나이인데도 더부살이하느라 학교에 못 간 것을 알고 틈틈히 히라가나산수를 가르쳐 주는가 하면, 알게 모르게 반전성향과 비폭력주의를 오싱에게 심어준다.

이때 쥰사쿠 오빠가 오싱에게 알려준 반전시가 있는데,

아우여 그대를 위해 우네.

그대여 죽지말 지어다.

막내로 태어난 그대였기에...

로 시작하는 러일전쟁에 나간 동생을 걱정하는 내용[8]이다. 오싱에게는 이 시가 일종의 좌우명이 되어 평생 반전-비폭력주의자로 살아간다.

쥰사쿠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이것은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인데 2차대전을 살던 오싱이지만 기본적으로 반전-비폭력주의이다 보니 작품 전반에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에 대해 은근한 비난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도 충분히 먹힐만한 작품이 된 것.

봄이 되자 쥰사쿠는 약속한대로 오싱을 마을로 데려다주다가 경찰과 마주쳐 그녀가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9] 그렇게 경찰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니와 할머니는 죽은 줄 알았던 오싱이 살아돌아온 것에 기뻐하지, 아버지는 오싱이 도망쳐서 품삯으로 받은 쌀을 도로 빼앗긴 것에 분노하고 오싱이 탈영병과 함께 지냈다는 것을 집안 망신으로 생각하며 오싱을 구박한다. 그 사이 오싱 집안에는 새로운 동생이 태어났고, 먹고살기 위해 엄마는 온천의 기녀로 가버린다.[10] 소설 초반부에 게이가 오싱 할머니를 찾아낸 온천이 바로 이곳.

오싱은 노동능력이 없어 구박만 받는 할머니(나카)[11], 엄마 그리고 새로운 동생을 위해서라도 다시 더부살이를 떠난다. 이번에는 상업도시 사카타의 가가야라는 큰 쌀 도매상이다.[12] 오싱은 8살의 어린 나이지만 지난번 제재소 시절 온갖 일을 하며 고생한 경험에 근면함까지 발휘하여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고 가가야의 실질적인 주인인 할머니(구니)와 며느리인 안주인(미노)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자기와 동갑며 가가야의 큰 손녀이자 후계자인 가요[13]와는 처음에는 갈등을 겪다가 나중에는 평생에 걸친 우정을 맺게 된다.

2권 첫사랑 편
오싱이 가가야에서 일하던 10대 시절과 첫 사랑, 친구와의 우정을 다룬다.

가가야 쌀집에서 일하던 열네 살의 오싱은 우연히 사회주의자 고우타와 만나게 되고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가가야를 이어받기를 거부하던 손녀딸 가요도 고우타에게 반하여 오싱과 만나기로 한 고우타를 속이고 함께 도쿄로 가버리는 바람에, 가가야 집안에는 대소동이 일어난다.

구니 할머니는 오싱을 하녀라기 보다는 손녀처럼 생각하며 정을 쏟고, 오싱을 돈 많은 집안의 차남에게 시집보내려 주선한다. 오싱도 처음에는 구니의 배려와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여 시집가려했으나, 울에 취해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신랑감에게 환멸을 느끼고 파혼 후 고향으로 돌아가버린다.

고향에선 공장에서 일하던 하루 언니가 폐결핵에 걸린 채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와 오빠에게 짐덩어리 취급을 받는다. 이어서 아버지는 집에서 밥만 축낸다며 오싱을 공장으로 보내버릴 계획하고 있었는데,[14] 사실은 매춘부로 팔려가는 것이였다. 이런 분위기를 알아차린 하루 언니는 오싱에게 도쿄에 있는 미용실을 알려주며 도망가라는 말을 남긴뒤 숨을 거두고, 오싱은 가출해 하루 언니가 알려준 전통 미용실 '다카'에서 일하게 된다.

3권 시집살이 편
오싱이 결혼 후 첫 아이 류를 출산하고 어려운 첫 고난을 맞이하는 이야기이다.

처음에 오싱은 다카 미용실에서 선배 훈련생들에게 심한 텃세를 당하며 고생하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눈썰미로 다카 선생에게 인정받는다. 다카 선생은 다른 훈련생들에게서 오싱을 보호하려고 일찌감치 독립시킬 생각을 하고 오싱에게 주로 카페 종업원들을 내상으로 하는 출장 미용을 자주 나가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카페의 종업원이 된 가요를 다시 만난다. 오싱은 가요에게 사요(가요의 하나뿐인 동생)의 죽음을 알리며 가가야 쌀집으로 돌아가도록 설득한다. 가요는 동생이 죽었다는 말에 할머니와 부모님을 위로만 하고 도쿄로 돌아올 생각으로 집으로 가지만, 몰래 집을 떠나려다가 자기를 발견한 할머니가 기절하는 일이 벌어지자 결국 어른들의 뜻대로 결혼하여 가가야를 잇기로 한다.

한편 오싱은 양복점 사장 다노쿠라 류조를 만나 결혼하고 장남인 류를 출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부부는 아동복 제작으로 대성공을 하여 새로운 공장까지 만들었는데 그때가 바로 1923년, 그 유명한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모든 것이 무너져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다. 아들인 류는 일을 도와주던 할아범이 자신을 희생하여 살아남았고 할아범은 류를 보호한 뒤 숨을 거둔다. 어쩔 수 없이 오싱 부부는 사가현의 시댁으로 가는데, 3남인 류조는 도쿄로 독립해나갈 때 이미 자기 몫의 재산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본가에 아무 지분이 없어서 그저 얹혀사는 꼴이 된다. 그래도 시아버지는 자상한 사람이라 류조와 오싱을 안타까워하지만, 시어머니는 자기네 집안이 나름 뼈대있는 가문인데 가난한 소작농 집안의 딸이 감히 자기네 집안에 들어왔다며 오싱을 학대한다. 모진 시집살이로 임신한 아이를 사산하는 일까지 겪자 결국 오싱은 아들 류를 데리고 가출하여 다카 미용실을 찾아가고, 다카 선싱은 오싱을 배려해주지만 오싱은 시가에서 고생하며 손을 다쳐 더는 미용사일을 할 수가 없다. 이 사이에 어머니에게서 가가야의 큰마님 구니가 임종을 앞두게 되었단 소식을 듣고 가가야로 가서 구니의 임종을 지키게 된다.

4권 유랑 편
오싱이 시댁의 학대 끝에 아들과 함께 달아나는 이야기이다.

그러다 오싱은 아무도 오지 않는 별체에 기거하다가 딸 출산 과정에서 사산하게 되었고,[15] 이에 남편과 시댁에 대한 원망으로 가출하여 사카다로 돌아왔다.

구니의 임종을 지키러 가가야 집안을 찾은 것을 계기로 가가야의 도움을 받아 밥집을 하게 되었는데, 첫사랑 고우타가 나타나 그녀가 술까지 파는 것을 보고 훗날 남편과 다시 합칠 때 문제가 생길 거라며 자신의 친척 집으로 보내준다. 한편 가가야의 후계자인 가요는 할머니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억지로 결혼했으나, 데릴사위로 들어온 남편과 서로 정을 못 붙여 하루가 멀다하고 오싱의 밥집으로 찾아와 일을 도와줬다. 오싱이 밥집을 접고 떠나라는 고우타의 충고를 받아들인데에는 가요의 부모에게 미안하고 눈치가 보이는 이유도 있었다.

이세 현으로 간 오싱은 고우타의 친척인 생선 도매상 히사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생선 장사를 하여 그럭저럭 먹고살게 된다.[16] 그리고 남편 류조가 고향에서 농사가 망한 김에 오싱을 보러 왔다가 합류하여 함께 생선 장사를 하며 간신히 행복을 되찾는다.

5권 통곡 편
오싱의 이야기에서 가장 슬픈 일이 연달아 일어난 이야기로 오싱의 중년기를 다룬다.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 후지가 돌아가시고[17], 자신이 자라고 많은 도움을 받았던 가가야 집안은 데릴사위가 주식에 손을 댔다가 패가망신한다. 평생의 친구 가요는 빚쟁이들을 피해 갓난아들과 늙은 부모를 데리고 도쿄로 도망치지만, 집안이 망한 충격으로 부모는 얼마 안 가 차례로 세상을 뜨고 가요 스스로는 하루아침에 매춘부로 전락한다. 결국 절망에 빠진 가요는 오싱에게 아들 노소미[18]를 맡긴 후 자살한다.[19] 오싱은 차남 히토시와 동갑인 노소미를 아들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남편 류조도 찬성한다.

한편 과거에 오싱 부부와 인연이 있던 사람이 하쓰코라는 가난한 집의 딸을 남의 집에 더부살이로 보내는 일을 맡게되어 하쓰코를 데리고 가다가 오싱네 집에 하룻밤 신세지게 된다. 오싱은 이른 새벽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밥을 하는 하쓰코를 보고, 어린 시절 더부살이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하쓰코를 수양딸로 받아들인다. 이후 하쓰코는 오싱의 배려로 학교도 다니며 오싱의 자식들과 형제자매처럼 자란다. 그런데 오싱의 장남 류가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며 하쓰코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오싱도 두 아이의 뜻대로 해주려하지만, 그동안 하쓰코에게 친절했던 남편 류조가 뜻밖에도 반대하여 이어지지 못한다.[20]

오싱이 중년이 될 무렵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남편 류조는 장교인 둘째 형의 도움을 받아 군납 사업으로 성공을 하여 큰돈을 벌게 되었지만,[21] 2차 세계대전은 일본 패망으로 끝나는 역사의 필연을 맞이하였다. 이에 큰 죄책감을 느낀 류조는 가족들에게 유서로 '청년들에게 일본군에 들어갈 것을 권했던 자신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할복자살하고[22] 도쿄제대를 나와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장남 류는 전사[23]하였다. 그야말로 통곡이었고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오싱과 차남 히토시,[24] 양자 노소미는 농가로 가서 구걸을 하며 살아야 했다.[25]

그러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보따리장수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어느 날 전사한 류의 전우(가와무라)가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에 가게라도 차리라고 목 좋은 곳에 땅을 사주어 여기서 식료품점을 차릴 수 있었다. 이 무렵 노소미는 도예가를 만나 그에게 도예가의 가르침을 받으며 도예가의 길을 걷는다. 오싱은 노소미가 사업가가 되어 무너진 가가야를 일으켜세우기를 바라며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 노소미가 사업가 성향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돌아가신 가요 아가씨처럼 너도 예술적인 면이 있구나..."라고 쓸쓸한 얼굴로 말하며 노소미가 자신의 꿈을 찾아가게 한다.

이후 식료품점은 나날이 번창했는데, 차남 히토시가 부잣집 딸 미치코와 혼담이 오가게 된다. 사실 미치코네 집은 오싱의 식료품점 땅이 워낙 요지라 싹 밀어버리고 대형 슈퍼마켓을 만들 생각이었고, 실제로 투자를 제안했다. 하지만 오싱은 그렇게 되면 히토시가 며느리 미치코에게 잡혀 살게 된다고 생각하고, 땅을 담보 삼아 은행에서 대출하여 직접 슈퍼마켓을 차려 버렸다.

한편 히토시는 원래 자기 집 하녀로 일하던 착실한 유리와 사귀다가 잘 살고 싶다는 욕망에 유리를 배신하고 부잣집 딸인 미치코랑 결혼한 것이다. 오싱은 이에 히토시에게 실망하지만 결과적으로 양자인 노소미와 유리가 결혼하여 다행으로 생각했다. 다만 유리는 시동생이 될 뻔했던 남자와 결혼했다는 죄책감, 더군다나 본인이 먼저 노소미에게 반했던지라 본인을 꽃뱀으로 보는 주변 시선, 히토시 부부와 마주치는 게 껄끄럽기 때문에, 오싱과 하쓰코가 유리를 친절하게 대했음에도 살아 생전 한번도 가족 모임에 방문하지 못했고 교통사고로 일찍 사망하고 말았다. 노소미와 유리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본 이야기에서 오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학생 (드라마에선 대학생) 손자 게이. 여기까지 얘기를 듣고서야 게이는 자신이 가가야 집안의 손자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26]

그리고 오싱의 유일한 친딸[27] 데이는 슈퍼마켓 직원(다쓰노리. 히토시의 해군 후배)과 결혼하고, 오싱은 하쓰코와 같이 살며 일찍 엄마를 잃은 게이를 키운다.

6권 완결 편
할머니가 된 오싱이 양손자 게이에게 이야기를 마치고 첫사랑 고우타와 다시 만나는 모든 이야기의 완결.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다노쿠라 17호점 슈퍼마켓 개업식에서 사라진 오싱.

차남 히토시는 17호점 개업을 위해 대형수퍼 입점을 반대하던 그 지역 작은 가게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대형슈퍼를 세웠는데, 이때 가장 강하게 반대하던 작은 가게 주인이 바로 첫사랑 고우타의 아들(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고우타는 훗날 경철에 잡혀 감옥살이를 하고 전향한 후 나미키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이었다.

오싱은 자기어게나 가요에게나 첫사랑이었고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고우타의 은혜를 생각해서 17호점 개업을 반대했으나, 아들 히토시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야지 그런 옛 인연에 얽매일 필요가 있냐며 어머니를 힐난한다. 결국 17호점의 개업이 코앞에 닥친 일로 열받은 고우타의 아들은 자신의 가게 부지를 다른 초대형 슈퍼마켓에 팔아 버렸고, 이 일로 다노쿠라 체인점 전체가 위험해질 상황이 된다.

이때 훌쩍 떠났던 오싱이 게이와 돌아오자, 히토시는 어머니 오싱에게 고우타를 찾아가 옛 인연에게 호소해서 최악의 사태를 막아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다시 만나게 된 오싱과 고우타. 먼저 고우타는 아들이 워낙 완강하지만 어떻게든 설득해 가게 부지를 파는 것을 막겠다고 했지만, 오싱은 자신이 아들을 잘못 가르쳤다면서 그냥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가게 부지는 예정대로 팔라고 한다.[28]

결국 가게 부지가 팔려 초대형 슈퍼마켓이 생겼고 17호점은 경영난에 빠졌다. 문제는 1~16호점의 수익 전체로 17호점 건물 대출금의 이자로 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7호점에서 자금이 안 돌게 되면 다른 전체 체인점에서 문제가 생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일로 히토시 부부는 이혼을 하네 마네 한다. 하지만 오싱이 남자라면 사업이 망했다고 자존심만 내세우며 아내를 떠나보낼 게 아니라 아내를 잡아야한다고 일갈하고, 이에 히토시는 부도를 낸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깨달음을 얻고 생선 장사를 하던 어머니처럼 맨손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하였고, 아내 미치코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화해한다. 또한 그동안 속 썩이던 아들 다케시는 이제야 정신 차리고 아버지를 돕겠다고 하고, 딸들인 아카네와 미도리는 대학을 관두고 직장을 구해 부모를 보시겠노라 말한다. 또한 히토시의 아내 미치코는 평소 노소미와 하쓰코를 은근히 군식구 취급하며 멀리했으나, 자기들이 어려운 처지가 되었을 때 노소미와 하쓰코가 서로 집문서까지 내놓으며 도우려 애쓰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의 진심을 깨닫게 된다. 즉 모든 걸 잃고나서야 오싱 집안이 화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고우타는 아직도 오싱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초대형 슈퍼마켓이 확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 초대형 슈퍼마켓 임원 중에 과거 사회주의 운동을 같이 했던 친구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친구에게 직접 부탁하여 17호점을 건물값만 치르고 매매하게 도와주었다. 17호점의 매각으로 자금난이 풀린 다노쿠라 슈퍼마켓는 기사회생한다. 이제 다시 열심히 가게 운영을 하면 되고, 어려움 속에 저절로 가족 화합이 이루어졌다.

오싱은 고우타에게 또 한 번 고마움을 느꼈고, 고우타는 아직도 마음 속에 있는 그녀의 손을 잡는다. 이 광경을 지나가던 부인들이 보고 "노부부가 아직도 사이가 좋은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백년해로하소서" 하고 인사를 한다. 이에 오싱과 고우타는 쑥스러움에 서로를 보며 웃음으로서 오싱 할머니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3. 반향[편집]


평균시청률 52.6%에, 1983년 11월 12일에는 일본 TV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인 62.9%를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깨지 못한 일본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 오싱 방송 시간만 되면 주부들이 TV앞에 몰려드는 바람에 수도 사용량이 줄어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옛날 가부장적인 사회적 구조에서 희생하는 순종적인 여성상(야마토 나데시코)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일본 여성에 대한 환상을 많이 만든 드라마로도 유명하다. 당대 신여성의 기준에 속했던 오싱의 친구이자 주인집 딸 카요가 집안 어른들의 뜻을 꺾지 못하고 억지로 혼인해, 결국엔 그 남편이 집안을 몰락시키고 본인은 매춘부로 전락한다는 식으로.

전세계 63개국에 수출되었는데 중화권, 몽골, 베트남, 이란, 이집트 등지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특히 이란에서는 시청률 90%를 기록했고, 이집트에서는 오싱 방송시간에 정전이 발생해 방송을 보지 못했던 시청자들이 전력회사까지 찾아가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란계 프랑스인 만화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에서도 언급된다. 검열 때문에 게이샤미용사번역해, 시어머니가 왜 미용사라는 이유로 며느리를 싫어하는지 의아했다고. 반면 서유럽에선 그닥 인기가 없었다고.

시대가 시대이니마큼 아무래도 고부갈등이 심하게 묘사되는데, 시어머니가 오싱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시집살이를 넘어서서 학대하는 수준으로 나온다.[29] 오싱의 악독한 시어머니가 사가현 출신으로 설정되었다는 이유로 사가현에서 항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또한 오싱의 시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는 "길거리를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노려보았다"고 불평했다.

한편 당시의 일본 덴노 히로히토는 오싱을 감상한 뒤에 "전쟁 당시에 일본인들이 저렇게 고통받았는 줄은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당시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오싱 국회론을 피력했고, 10년전 총리였던 타나카 카쿠에이는 자신의 삶을 오싱과 비교하며 인내하며 살아가는 오싱의 삶을 보고 일본인들이 인내의 해라며 '인내'란 말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정작 극본가인 하시다 스가코는 정계나 재계에서 오싱을 인용하는 데 위화감을 느끼며, "'인내'란 말을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도 오싱의 명성이 알려졌다. 일본 대중문화가 아직 개방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음에도, 드라마의 줄거리를 담은 소설이 제법 잘 팔렸고, 일본TV전파가 잡히는 부산과 울산, 마산 지역에서는 오싱이 꽤 시청되기도 했다.[30][31]가 잡혔기 때문에 그런 경로로 일본 방송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 1985년 아역배우 김민희가 오싱 역을 맡고 한국 버전으로 로컬라이징한 국내영화 오싱이 만들어진적 있다.[32] 그래서 일본판 드라마를 보지 않고 한국판으로 접한 사람도 꽤 있는 편. 국내 대중들도 1995년 무렵, 황혜영이 그녀의 드라마 데뷔작인 MBC 드라마 <호텔>에 조연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오싱처럼 감동적인 연기를 하고 싶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4. 미디어 믹스[편집]



4.1. 영화[편집]



4.1.1. 일본 영화[편집]


2013년에 영화로도 개봉했는데 오싱 역의 오디션 경쟁률이 무려 2500:1이었다.# 결국 오싱 역은 아역 하마다 코코네가, 오싱의 어머니 역은 우에토 아야가 맡았다. 오싱의 아버지는 SMAP이나가키 고로가 맡았다. 여러 한계로 인해 1907년부터 1908년까지의 이야기만 다룬다. 오싱을 모르는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싱의 어머니 역을 맡은 우에토 아야나 오싱 역을 맡은 하마다 코코네는 오싱의 방영 후인 1985년과 2004년생이다. 이나가키는 1973년생이지만. 일본이 군국주의에 빠졌던 부분에 대한 묘사를 다소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오싱에게 글을 알려준 사냥꾼 순사쿠가 러일전쟁에 참전한 뒤 PTSD로 인한 탈영병으로 나오고, 일본군 헌병들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오싱이 전쟁을 비판적으로 말하는 부분도 있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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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판의 오싱 어린 시절. 당시 아역이었던 코바야시 아야코가 오싱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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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의 오싱 어린 시절.


4.1.2. 한국 영화[편집]


한국에서 1985년에 같은 내용으로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적절하게 일제강점기로컬라이징되었으며[34], 사냥꾼 순사쿠는 일본군을 쏜 독립군으로 변경. 가가야의 정미소 이야기도 비교적 한국적으로 바뀌는 등 나름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당시 영화를 접한 사람들에게는 나름 눈물 쏙 빼는 명작 취급을 받는 듯.

주인공 이름은 충격적이게도 오싱(...) '신이'로 부른다. 오싱 역은 김민희, 가가야의 딸 '카요'의 이름은 '혜자'로 바뀌었다.

기생이 된 어머니를 보고 마음 아파하는 오싱의 모습을 보곤, 정미소에서 결국 집에 돌아가도록 허락받게 된다. 눈 앞에서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고, 그 관 앞에서 '나는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돈 벌어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며 다짐한다. 그리고 오싱이 관객들에게 건네는 위로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 1부라고 나왔지만, 뒷 이야기들도 제작하려 했는지는 불명.


4.2. 한국 소설[편집]


오싱은 원작 소설이 없고 처음부터 시나리오 작가 하시다 스가코에 의해 드라마로 제작 되었다.이걸 한국에서 번역자 김균이 드라마 시나리오를 풀어내어 한국에서 소설로 발매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설은 1984년에 '청조사'를 통해 6권짜리 소설로 나오게 되었다. 이후 2000년, 2002년, 2008년, 2013년 등 여러번 재판이 나왔다.

2011년에는 3권짜리로 재판 되었는데 같은 출판사이지만 역자가 최영혁으로 변경되었다. 아무래도 소설을 번역한게 아니라 드라마를 소설로 변경시킨 것이다 보니 역자의 재량에 따라 변경될 여지가 커서 6권짜리 소설과는 내용이 살짝 다르다.

아동 버전으로 '어린이를 위한 오싱'이라는 제목으로 4권 짜리가 2004년, 2012년 서윤석 그림으로 나왔다.


4.3. 한국 만화[편집]


만화책도 있는데 이신의 그림으로 2002년에 12권짜리로 발매 됐다.

(속)오싱이라는 책도 있는데 이건 원작 시나리오 작가인 하시다 스가코의 다른 소설이다. 전 5권, 한밭, 홍영의 역.
'오싱의 딸'은 아무상관 없이 제목만 빌려온게 아닌가 싶은데, 하시다 스가코저, 전 4권, 청조사, 김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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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사람 모두 오싱이다. 1983년 82살 오싱, 1907년 6살 오싱, 1923년 22살 오싱.[2] 정작 작가 본인은 경성에서 태어났으며 진학할 때에야 일본에 갔기 때문에, 오싱과는 전혀 관계없는 환경에서 자랐다.[3] 여담으로 나카우치는 오싱과 달리 조부 때부터 고베에서 큰 약방을 경영하던 집에서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었다(...)[4] 게이의 아버지가 오싱의 양아들이다. 게이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어서 양할머니 오싱의 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오싱과는 친손자보다 더 친한 사이다.[5] 판본에 따라 고향 마을에 관한 부분이 다르게 묘사된다. 워낙 작고 빈민촌 수준으로 못살던 마을이라 손주와의 여행 중에서 다시 찾아내는데 실패했다는 판본도 있고, 오싱이 게이에게 엎혀서 눈밭을 헤치고 갔더니 이미 아무도 살지 않은지 오래된 상태로 발견하게 되는 판본도 있다. 어느쪽이든 간에 워낙 가난하고 깊은 산골이라 이제는 사람들 기억속에 사라진 버려진 곳이라는 점은 같다.[6] 그와중에 밭일을 하는 남자형제들은 밥을 몇그릇은 기본으로 마구 먹어댔다.[7] 하녀장의 돈이 없어졌는데, 오싱의 할머니가 준 돈(할머니가 준 유일한 물건이라 작은 주머니에 넣어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다녔음)을 본인 돈으로 착각하며 도둑으로 몰았다. 후에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녀장은 반성은 커녕 쌀 한가마니를 주고 데려왔는데 양심이 있으면 돌아와야 한다고 중얼거렸고, 주인 부부도 엄동설한에 나간 아이를 찾으려는 시도도 않으며 오히려 계약기간을 못 지키고 도망쳤으니 품삯으로 받은 쌀을 돌려받아야 한다며 사람을 시켜 오싱네에 가져다준 쌀을 도로 뺏어오게 한다.[8] 천황의 명에 의한 성전인 러일전쟁을 거부하여 문단에 파란을 일으킨 일본 여성 시인 요사노 아키코(1878~1942)의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의 도입부이다.[9] 경찰에게 마주치자마자 오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도망쳤으나 결국에는.. 참고로 노인과는 이미 산에서 인사를 하고 내려왔기 때문에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10] 어린 자식들에게는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어 온천의 여관에 청소일을 하러 간다고 했으나, 사실은 아버지의 묵인하에 기녀 노릇을 하러 갔다.[11] 오싱의 아버지와 손자인 오싱의 오빠는 오랜 가난에 찌든 나머지 심성이 피폐해져서, 자신들의 친어머니이자 친할머니인데다 늙어서 일도 못하면서 밥만 축내는 노인네 취급하며 냉대한다.[12] 앞전의 제재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부잣집이다.[13]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태어나기 전엔 사실상 외동딸이였기 때문에 금지옥엽 공주님처럼 자라서, 자기 주장도 강하고 승부욕도 강하다.[14] 이 시대의 공장은 사실상 개미지옥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월급은 적고 노동시간은 길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보릿고개 때마다 계속 하루 언니 공장에서 직접 장리 빚을 얻어 쓰는 바람에 그녀는 일하면 일할수록 빚이 계속 늘어나 나올 수가 없었다.[15] 공교롭게도 임신 시기가 시누이와 겹쳤는데, 한낱 한시에 한집에서 아이가 둘 태어나면 죽는다는 미신을 믿은 시어머니가 외손주를 살리기 위해 아예 작정하고 험한 일을 시키며 오싱을 유산시키려고 했고, 두 사람의 출산때에도 집안 사람들이 본인 딸만 도와주게 만들고 오싱은 본체 만체 하게 만들었다. 정작 오싱이 힘들게 일할동안 방에 앉아 내내 놀고먹은 시누이는 심한 난산이었고, 나중엔 유선까지 막혀 고생한다. 이 때문에 시누이는 너무나도 미안해서 아이를 유산하고 힘들어하는 오싱을 달래주었고 오싱은 시누이의 아이를 돌봐주게 된다. 나중에 시어머니도 상황을 알게 된 아들과 딸에게 한 소리 들은 뒤 오싱에게 미안해하나...[16] 오싱은 단순한 소매상이 아니라 주문을 하면 집까지 배달을 해주고, 심지어 생선을 사는 사람에겐 집에 가서 그걸로 요리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워낙 싸게 파는 바람에 이문이 거의 남지 않았고, 덤핑이라며 다른 생선 상인들에게 비난까지 받는다.[17] 공교롭게도 그 날 후지가 그리워하던 첫 눈이 내렸다. 이날 오싱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준 하늘에게 고마워 한다.[18] 가요와 사이가 나쁜 데릴사위 남편이 밖으로 나돌며 기생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자, 자신이 아들을 못낳으면 그 사생아가 가가야의 후계자가 된다며 노력해서 어렵게 낳은 아이였다.[19] 소설에서는 유곽에서 지내다 몸이 약해져 폐병으로 병사한다.[20] 류조는 자기 집안과 하쓰코 집안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반대했는데, 오싱은 자신이 류조와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집안 차이로 반대했던 점을 떠올리며 남편에게 씁쓸해한다. [21] 이때 꽤 커다란 저택에서 지낸다.[22]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어느 일본 책에서 등장인물 중 하나가 '그 누가 책임지고 할복이라도 했느냐?'라고 따지는 구절이 있는데, 실제로는 패전 직후 수백 명이 할복했다.[23] 필리핀에서 병사[24] 해군 소년비행병 자살특공대 출신인데, 출격하기 전에 일본이 항복하여 살아남았다.[25] 이 당시를 배경으로 한 책을 보면 도시 주민들은 누구나 시골로 가서 구걸을 했다고 나온다. 농가에서는 도시 주민들의 생활용품을 돈 대신 받았다.[26] 게이도 자기 아버지가 원래 다른 집안 아들인데 2살 부모를 잃어 오싱이 거두어 키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싱이나 노소미가 과거의 일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데다가, 어머니 유리가 일찍 사망한 후 양할머니 오싱과 양고모 하쓰코가 정성껏 키워서 평소 자신이 오싱네 집안 핏줄이 아니라는 점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만화에서는 오싱과 함께 가요의 무덤에 참배를 다녀오고 "제 친할머니가 바로 가요 할머니였군요. 그래도 제겐 할머니는 할머니 뿐이에요."라고 얘기한다.[27] 장녀는 오싱이 시집살이 하던 시절에 워낙 고생한 탓에 태어나자마자 사망[28] 오싱은 일본이 패전한 후로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앞만 보고 사업에만 매진했는데, 이무렵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로만 살아가는 히토시를 보며 오직 성공만으로 향해 살았던 자신의 모습이 자식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고 회한에 젖게 된다.[29] 오싱의 시가는 과거에 무사 집안이어서 나름 뼈대 있는 가문이다.(사족이 폐지된 드라마 속 시점에서는 지주 신분이 되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소작농 집안 출신인 오싱을 무시하고 못마땅해하며, 처음부터 결혼을 반대했다.[30] 다만 당시에는 로터리식 수상기와 전자식 수상기가 병행사용되던 시절이기에 로터리식 수상기의 경우 NTSC-M VHF-Low 6ch에서 채널미세조정다이얼만 돌리면 수신할수는 있었다.[31]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자식의 경우 2, 3, 4, 5, 6CH에 NTSC-J 1, 2, 3, 4, 12CH를 추가로 매핑해서 수신이 가능했다.[32] 이 영화판에선 일제강점기 시절 오싱이 한 가마에 일본인 집에 더부살이로 팔려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33] 1980년대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소설에서도 슌사쿠는 탈영병 출신으로 산에 숨어 사는 사냥꾼으로 나오고, 오싱의 눈앞에서 헌병에게 발각되어 사살당하며, 슌사쿠와의 기억 때문에 오싱은 군국주의 시절에도 전쟁에 회의적이고 비판적이었다.[34] 원작과 시간대가 약간 유사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