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누키 타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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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onuki_308.jpg
이름
오오누키 타에코 (大貫 妙子)
출생
1953년 11월 28일 (70세)
출생지
일본 도쿄도 스기나미구
직업
가수
장르
뉴 뮤직
월드 뮤직
시티 팝
악기
보컬
기타
키보드
활동시기
1971년 ~
레이블
소니 뮤직 (2006년 ~)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4:00 A.M.》

《도회 (都會)》

1. 소개
2. 생애
3. 성향
4. 여담
5. 싱글
6. 앨범



1. 소개[편집]


일본싱어송라이터. 애칭은 '타보 (ター坊)'. 1973년부터 "슈가 베이브(シュガー・ベイブ, SUGAR BABE)" 밴드의 멤버로 활동하다가[1], 1976년 각자의 사정으로 해체한 뒤부턴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곡으로는 《4:00 A.M.》, 《도회 (都会)》 등이 있다.


2. 생애[편집]


1953년 11월 28일, 도쿄의 스기나미 구에서 태어난 오오누키는 초등학교 입학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1972년 "삼륜차(三輪車)" 밴드를, 1973년 위에서 서술한 "슈가 베이브"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특히 "슈가 베이브"는 나이아가라 레이블의 수장 오오타키 에이이치의 진두지휘와 프로듀싱을 거쳤는데, 노구치 아키히코 및 뉴뮤직의 선구자 취급을 받는 야마시타 타츠로와 결성한 밴드였다. 그러나 슈가 베이브는 얼마 안 가 음악적 견해와 방향성 대립으로 1976년해체하게 된다. 그래도 옛 밴드 동료 야마시타 타츠로와 사카모토 류이치의 도움으로 솔로로 데뷔할 수 있었다.

허나 솔로 초창기에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았고 TV 출연도 거의 하지 않아서 인지도가 낮았다. 그러다 일본에서 뉴뮤직 붐이 인 1980년대 전자음을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인지도가 올라간다.

1976년 처음 선보인 솔로 데뷔 앨범은 《Grey Skies》. 이때도 재즈보사노바 장르의 음악을 고수하더니, 이후에도 계속 주류 음악과 좀 벗어나는 사운드를 많이 사용해 자신의 개성을 확립해 갔다. 그러다가 1998년, 도쿄 맑음이란 영화의 음악을 맡아 '제21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MOTHER 3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때문에 사운드트랙 앨범인 MOTHER 3+가 발매 첫 주 오리콘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닌텐도가 마음에 들어 했는지, 동물의 숲 극장판 주제가를 담당하기도 했다.


3. 성향[편집]


주로 재즈를 연상시키는 그루브한 사운드를 많이 사용한다. 그루브한 가운데서도 촌티나지 않는 사운드를 사용해 상당히 세련된 편곡을 하기 때문에 지금 들어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많다. 대도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편이다.

보컬에 대해서 말하자면, 상당히 맑고 투명한 보컬 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배경 음악만 들으면 사뭇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는 음악인데도, 그녀의 청량한 목소리 때문에 가볍고 편안한 음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배경 음악도 꼭 가라앉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대표곡으로 꼽히는 《도회 (都會)》나 수록곡인 《약을 한 가득 (くすりをたくさん)》을 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동명의 영화 주제가인 Shall We Dance이다. 한국에서 개봉했던 영화라 영화 소개시에 매번 함께 나오기도 했고, 이후로도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부른 노래다 보니 지상파 방송에서도 맘 놓고 틀었기 때문.


4. 여담[편집]


  • 어릴 때부터 미남형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닌 탓에[2] 뮤지션 데뷔 초창기때 여자다운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머리까지 일부러 길러보았지만, 마찬가지로 남자로 자주 오인받아 성 정체성까지 흔들리며 맘 고생이 매우 심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역변하고 스스로 극복해지며 나아졌다고 한다.
2016년 11월 21일경부터 갑자기 사람들의 '맞춤 동영상'에 오오누키 타에코의 대표곡 《4:00 A.M.》이 뜨는 현상이 나타났다. 2016년 기준으로 벌써 2년 전에 업로드된 영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일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댓글 수가 갑자기 급증했다.
  • 아버지가 자살특공대 대원이었다고 한다. 전후 건설기기 대여업체를 운영했고, 2009년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사실을 고백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2012년 아버지 사후 타에코는 아버지는 특공대가 미화되는 걸 두려워했다라고 코멘트를 남겼다.
  • 사생활 면에서는 아버지 건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진 게 없고 대체로 음악에 집중하는 편이다. SNS도 블로그를 제외하면 스탭 쪽에서 전담한다. 다만 2020년대 들어선 공식 쪽에서도 시티팝 매니아가 늘어난걸 감지하고 있는지 사이트 개편을 통해 영어 번역을 제공하고 유튜브 채널도 열었다.
  • 오오누키 타에코 곡 중 한국 팬들에게 의외로 유명한 곡은 영화 쉘 위 댄스에 삽입된 'Shall We Dance'가 있다.
  • 극진공수도 유단자다. 뉴욕 시절 갔던 극진공수도 도장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친화적인 도장이라서 배웠다. 다만 귀국하고 나서는 다른 계파의 도장으로 옮겼다고 한다.
  • 20대 시절 사카모토 류이치함께 살았던 과거가 있다. 이는 2023년 6월 말에 발행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자서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고백한 내용이다. 이 두사람의 인연은 사실 일본의 오랜 팬들 사이에선 예전부터 카더라로 돌았던 내용이기도 한데[3],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 책에서 '저한테 갑자기 다른 사람이 생겨버려서...' 그 집을 나오게 됐고, 이를 미안하게 생각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어머니가(?) 직접 오누키 다에코를 찾아가 '아들이 폐를 끼쳤다'며 사과하고, 진주목걸이를 선물했다고 밝혔다. 이후 2009년 무렵 이 두 사람은 '노래하다'라는 일본어의 영어식 표기 제목의 앨범을 발표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발표한 연주곡에 오누키 다에코가 가사를 붙이고 노래한 앨범이다.


5. 싱글[편집]


  • 明日から、ドラマ(1977)
  • サマー•コネクション(1977)


6. 앨범[편집]


  • Grey sky (1976)
  • SUNSHOWER (1977)
  • MIGNNONE (1978)
  • romantique (1980)
  • AVENTURE (1981)
  • Cliché (1982)
  • SIGNIFIE (1983)
  • カイエ (1984)
  • copine (1985)
  • Comin' Soon (1986)

[1] 야마시타 타츠로, 무라마츠 쿠니오 등이 활동했던 밴드. 당시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해체했으나, 이후 뉴뮤직의 선구격 밴드로 재평가되면서 오늘날엔 위상이 급상승했다. 덕분에 오오누키 타에코도 오늘날엔 시티팝 가수 중 한명으로 매니아들에겐 제법 인지도가 있다.[2] 당사자의 과거 사진 또는 음반 표지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3] 사카모토 류이치는 오오누키 타에코 초창기 프로듀서였고 이래저래 작업을 같이 해온 게 많다. 후술할 UTAU도 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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