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히라 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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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오히라 신야2.png

1. 소개
2. 경력
3. 특징
4. 인맥
5. 대표작
6. 작화, 연출 샘플


1. 소개[편집]


大平晋也 / Shinya OHIRA
일본애니메이터. 1966년생. 아이치현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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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력[편집]


고등학교의 미술부에 재학하던 시절 학교 선배들이 자주 제작 애니메이션을 자주 만들었고 그걸 도와주기 시작한 게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가지계 된 계기라고 한다.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보고 매료되어 애니메이터를 지망했다. 그 선배들 중 카나다 요시노리의 팬이 있었고 카나다 식 작화를 해 오오히라에게 보여줘서 그 때부터 작화에 빠지게 된다.

이후 카나다 계 애니메이터인 시끌별 녀석들 (1981) 97화의 야마시타 마사히토의 작화를 보고 감명을 받아 야마시타 스타일로 작화를 하기 시작한다. 오오히라가 말하길 저녁 식사시간이었고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 에피소드를 본 순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시끌별 녀석들 극장판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시끌별 녀석들 1 Only You라고 한다. 이유는 야마시타 마사히토의 작화가 많아서. 시끌별 녀석들 2022년 리메이크 판은 안 보냐는 외신의 질문에 "야마시타 마사히토 씨가 작화를 안 하니 볼 이유가 없다." 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야마시타의 계보를 잇는 애니메이터라 칭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18세에 스튜디오 피에로에 입사했고 닌자전사 토비카게에서 원화데뷔를 해 사람들이 야마시타로 착각할 정도로 동일한 작화 실력을 보여줬다. 초기에는 이렇게 주로 야마시타 스타일의 로봇 애니메이터로 활동했다. 야마시타 외에는 이나노 요시노부, 모리모토 코지를 존경했다고 한다.2023년 이노우에 토시유키와 진행한 뉴타입 대담에서는 자신은 잘 그린다고 생각하는 애니메이터의 작화를 따라하는 모방형 애니메이터였는데 계속 따라하니까 어느 순간 돌연변이가 일어나면서 새로운 작화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AKIRA조상님 만만세를 전후해서 과장을 배제한 우츠노미야 사토루 식 리얼계 스타일로 변화했으며 다른 애니메이션에선 시도되지 않은 컬트한 시도를 계속해서 시도한다. 그리고 THE 팔견전 신장 4화에서 보여준 극 리얼계 작화스타일은 예쁘장한 그림체를 좋아하던 당시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외면을 받았으나[1] 우츠노미야 사토루의 영역에서도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여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어떻게 저렇게 그릴 수 있냐는 충격을 주었다. 유아사 마사아키 말로는 평소 면식도 없던 오오히라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내가 새로운 연출과 작화를 생각해냈다. 이걸 살려낼 수 있는 작화감독은 당신 밖에 없다." 라고 해서 도와줬다고 한다. 만들면서 내내 "예술적이지만 이런 걸 돈 받고 팔아도 팔릴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업계에 쇼크를 일으켜서 놀랐다고 한다.

이후 이소 미츠오, 우츠노미야 사토루, 오키우라 히로유키 등과 함께 90년대 리얼계 작화 붐을 주도했다.

팔견전 신장을 마지막으로 가업을 잇기 위해 한 번 애니메이터를 은퇴한다. 하지만 작업해둔 게 있어서 은퇴한 기간 중에도 애니메이션은 계속 발표되었다. 그리고 토쿠라 노리모토의 설득으로 6년 뒤 다시 복귀했으며 정신과 시간의 방에라도 들어갔다 온 것 마냥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엄청난 작화를 선보였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래의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명장면 작화를 책임지고 있다.

현재 나고야 조형대학의 겸임교수직을 애니메이터 활동과 병행하고 있다. 미야모토 타쿠지 같은 경우도 나고야 조형대학에서 그와 만나서 추종자가 된 경우다. [2]

2010년대 후반부터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안 해서 은퇴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데 자신이 참가한 작품이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형 작품이라 공개가 늦어지고 있는 거고 여러 작품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아직 은퇴는 생각 안 하고 있다고 한다. 작화로 된 로봇 애니메이션도 다시 해보고 싶으며 야마시타 마사히토의 스타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어떨까 하는 구상도 하고 있다고 한다.


3. 특징[편집]


신인 시절엔 야마시타 마사히토 스타일의 메카 작화, 액션 작화 전문 애니메이터였으나 THE 팔견전 이후의 오오히라의 작화는 굉장히 독창적이라 아예 오오히라 스타일이라고 고유명사로 불리고 있으며 이를 따라하는 사람들을 오오히라 계 애니메이터라고 하기도 한다.

이 오오히라 스타일 작화는 인간이나 사물까지 물이나 불과 같은 부정형으로 파악해 형태를 흐르는 것처럼 변형해 그려낸다. 선을 불규칙적으로 여러 번 쳐서 선에 흔들림, 떨림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흔들림까지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팔견전 이후의 오오히라 스타일에 대해 애니메이터 아라이 준은 "오오히라 씨는 인간 캐릭터를 사람이 아닌 이펙트로 파악하고 그리기 시작한 최초의 애니메이터."라고 평했으며 나카자와 카즈토는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고 신이 내려와서 그린 작화." 라고 하기도 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오오히라는 캐릭터 디자인대로 따라 그리지 않으면서도 자신 고유의 확고한 스타일을 확립해 멋진 작화를 하는 인물이라며 극찬했다. [3]

얼굴을 잘 그리지 못하며 이것은 그도 인정하고 있어 작화감독에게 수정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대부분의 작화감독이나 감독들은 "감히 수정할 수 없다" 라며 대부분 그의 작화를 그대로 사용한다. 단순히 권위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그의 선을 깔끔하게 잘못 다듬으면 아예 그 느낌이 안 나서 수정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간혹 그림체가 확 바뀌기 때문에 작붕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애초에 그가 그림체가 바뀌거나 해서 다른 느낌을 주는 장면에 주로 기용되기 때문에 그런 측면도 있다. 애초에 그의 스타일이 필요해서 부른 것이니 특별히 수정할 이유는 없는 것. 다만 얼굴 정도는 수정하는 경우가 많다.


4. 인맥[편집]


주로 같이 활동하는 감독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 유아사 마사아키, 모리모토 코지가 있다. 추종 애니메이터로는 타나카 히로노리, 미야모토 타쿠지, 사키야마 호쿠토, 오오시마 토야, Bahi JD가 있다. 그외에도 요코보리 히사오, 나카자와 카즈토, 이토 노부타케, 모리 히사시, 오오타 아키히로 등 평소에는 스타일이 다르지만 필요에 따라 오오히라 신야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애니메이터가 있다.

친구로는 하시모토 신지가 있다. 둘은 같은 작화 스튜디오 'St.BREAK' 를 운영하며 [4] 같은 장면을 둘이 나눠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둘의 작화 스타일은 매우 유사하다. BREAK에는 오오히라와 하시모토 외에도 사키야마 호쿠토, 타카하시 준이치(高橋淳一)가 있다고 한다. #

이노우에 토시유키에 따르면 오오히라는 데뷔 시기가 비슷한 이소 미츠오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며 한 번 너희 작화 비슷한데 이소 작화 따라했냐[5]고 하니 절대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었다고 한다. 오오히라는 기동전사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의 이소 미츠오의 작화를 보고 이소를 처음 알게 되었으며 "이놈 대체 뭐야." 라고 경악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한다. 서로 라이벌이라 생각해서 별로 친하진 않다고 한다.

타나카 히로노리, 와타나베 케이이치로, 니이누마 타쿠야, Chansard Vincent를 칭찬했다.

5. 대표작[편집]




6. 작화, 연출 샘플[편집]


#링크
작화 모음 (80년대 메카 애니메이터 시절 야마시타 마사히토 스타일)



작화 모음 (80년대 후반부터 개발한 새로운 스타일)


핑퐁 THE ANIMATION OP
콘티, 연출, 작화감독, 원화 오오히라 신야
원화 하시모토 신지, 고 하쿠유, 사키야마 호쿠토, 니호 토모유키, 니시이 료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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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군다나 팔견전은 미소년이 나오는 여성 팬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거기서 갑자기 추남처럼 보이는 리얼계 작화를 내놓아서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2] 나고야 조형대학 겸임/명예교수 리스트[3] 최초가 츠키오카 사다오고 그 다음이 카나다 요시노리, 그 다음이 오오히라라고 한다.[4] 회사는 아니며 공동 작업실, 공동 필명 같은 거라고 한다.[5] 훗날 두 사람의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신인 시절엔 둘 다 야마시타 마사히토 스타일 작화를 하던 애니메이터였다.[6] 카메다 요시미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