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시 타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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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특징
4. 인맥
5. 작품
6. 작화 연출 샘플


1. 개요[편집]


尾石達也
일본애니메이션 연출가,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1970년 3월 28일 출생. (53세) 아이치현 출신.


2. 생애[편집]


어린 시절 고향이 시골이라 방송에서는 옛날 애니, 영화 같은 거만 잔뜩 틀어주어서 그런 걸 보고 자랐다고 한다. 처음으로 "이건 뭔가 대단하다." 라고 생각한 건 울트라맨짓소지 아키오 감독편이었다고 한다. 영화 감독 중에서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데이비드 린치를 존경한다고 한다. 특이해서 보기만 해도 재밌는 영상의 작품을 선호했다고 한다.

이렇게 남들은 잘 모르는 특이한 작품을 많이 접했지만 연출을 할 생각은 없었고 애니메이터를 목표로 했다. 카나다 요시노리를 존경했으며 가이낙스에서 활동했다. 의외로 작화 시절엔 메카 작화 전문 애니메이터였다. 카나다 같은 로봇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톰과 제리, 루니 툰 같은 고전 미국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그런 것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2001년의 사이보그 009로 연출가로 데뷔했는데 그것도 일정 문제로 부득이 한 것이었다고 한다. 콘티를 빨리 그리면 작화에 투자할 시간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콘티 그리는데 시간이 더 걸려서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한다. 오이시가 연출한 사이보그 009의 에피소드는 사이보그 009 2번째 작품의 오프닝을 작화한 카나다 요시노리에 대한 오마주가 많다.

이후 다시 시도한 철인 28호(이마가와 야스히로판)의 연출은 일부러 원작자 요코야마 미츠테루를 의식하고 고전 애니메이션, 고전 영화에 가까운 연출을 했으며 캐릭터 디자인을 무시하고 작화를 했는데 방영 당시 반응이 굉장히 안 좋아 해당 에피소드의 하청을 담당한 샤프트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자신은 연출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작화 애니메이터를 했다. 다만 이때 훗날의 작화 페르소나 모리오카 히데유키를 알게 되었고 이 에피소드는 훗날 명작으로 재조명을 받았다.

애니메이터 시절 유유백서를 할 때 신보 아키유키를 만나서 알고 있었다. 샤프트에서는 오이시를 싫어했는데 샤프트에서 다시 불러서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신보가 회사를 장악하고 있더라고 한다. 신보는 오이시가 사이보그 009와 철인 28호에서 한 연출을 보았는지 대뜸 "넌 작화말고 연출을 해라." 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샤프트에서 파니포니 대쉬, 안녕 절망선생 등의 오프닝 연출과 일부 각 화의 콘티나 연출을 주로 다루다 바케모노가타리에서 시리즈 디렉터를 맡게 된다. 평론가 오구로 유이치로가 오이시의 실력을 칭찬하기도 했다.[1]

2009년 바케모노가타리를 마지막으로, 정확히는 MAG・넷 ~만화 · 애니메이션 · 게임의 현장~의 오프닝애니메이션(2010년)을 마지막으로 전혀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팬들 중에선 사망설(...)까지 돌았지만, 2016년 키즈모노가타리에서 6년 만에 복귀하게 된다. 그런데 또 소식이 사라졌다. 2021년 모리오카 히데유키 트위터에 따르면 디자인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2]


3. 특징[편집]


누벨바그, 아방가르드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이다. 간혹 그 예술적인 작품 성향 때문에 프랑스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도 들으나 본인 말에 따르면 오히려 일본과 미국 문화의 영향이 강하다. 일본, 미국에도 당연히 아방가르드를 하는 영화, 드라마 감독이 있으며 오이시는 그런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주로 실사 이미지를 애니메이션에 많이 사용하며 문자만 있는 화면도 사용한다. 샤프트의 여러 애니메이터 중에서도 상당히 특징적인 감각을 발휘한다. 실제로 파니포니 대쉬라던가 네기마, 안녕 절망선생을 보면 특정 화에서 실사 이미지가 상당히 많이 쓰이고 연출과 색감이 독특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거의 오이시 타츠야가 콘티를 맡았다고 보면 된다. 바케모노가타리에서는 아예 시리즈 디렉터를 맡아 전 화 전체적으로 실사와 어두운 단색 위주의 독특한 평면적 연출이 쓰인다. 니세모노가타리 이후부터는 시리즈 디렉터가 이타무라 토모유키로 변경되며 실사 연출과 그 특유의 연출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자작 콘티 용지를 사용하지만 용지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려 제작이 지연되어 작화 붕괴가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콘티 용지는 세로로 쭉 네모칸이 나열된 4컷 만화 같은 규격화된 용지가 있으며 다른 연출가는 이걸 쓰는데 오이시는 이 용지는 그림을 넣는 부분 크기가 너무 작고, 크기가 전부 똑같아서 느낌 전달이 안 된다고 백지에다 컷마다 네모 칸을 다른 사이즈로 새로 그린다. 오이시 타츠야의 콘티 그래서 타츠와 나오유키는 그를 샤프트토가시 요시히로라고 했고, 샤프트의 사장인 쿠보타 미츠토시도 천재긴 천재인데 느린 천재라고 언급했다.

샤프트 특유의 아방가르드, 누벨바그 식 연출은 신보 아키유키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신보도 오이시를 통해 배운 것이고 샤프트 특유의 연출의 상당 수는 오이시 타츠야와 타케우치 노부유키가 도입했다. 오구로 유이치로와 한 인터뷰에서도 솔직히 샤프트에 아방가르드를 퍼뜨린 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반면 아방가르드 이외의 연출의 기본과 센스, 레이아웃 같은 건 신보에게 배운 것이 많다고 한다. 신보의 조언이 없었으면 바케모노가타리 같은 좋은 작품은 절대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모노가타리 시리즈 특유의 '개그틱'한 연출도 마찬가지로 오이시 타츠야의 산물이다. 바케모노가타리는 신보 아키유키가 6개의 화를 감독하고, 오이시 타츠야가 9개의 화를 감독했다고 하는데[3] 오이시 타츠야의 인터뷰에 따르면 소울 테이커적인 드라이하고 진지한 화는 신보가 감독한 화, 신보가 전혀 하지 않을 상스럽거나 감정이 들어간 묘사가 있는 화는 오이시가 감독한 화라고.

평면적인 레이아웃과 함께 움직임을 줄이는 대신 컷을 많이 사용해 속도감 있는 영상을 구성하기도 하고, 입체적이면서도 최대한 많은 매수를 사용해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액션이 강조된 화면을 뽑아내기도 한다. 전자는 바케모노가타리, 후자는 히다마리 스케치×365의 1화와 키즈모노가타리에서 볼 수 있다.

타이포그래피를 잘 활용하며 화면 가득 문자를 수북하게 넣는 연출도 자주 쓴다. 신보 아키유키의 연출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오이시 타츠야가 시작한 연출이다.


4. 인맥[편집]


요시나리 요우와도 친분이 있다. 네기마!? 등의 오프닝에서도 논크레딧으로 요시나리 요우가 참여를 해 줬고, 오이시 타츠야는 그 녀석이 떠들면서 그린 낙서에서도 충격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작화하던 시절엔 요시나리의 십자가 섬광을 배워서 쓰기도 했다. 요우의 형 요시나리 코우와도 친분이 있다.

애니메이터 모리오카 히데유키하고도 상당히 친한 사이이며 오이시 타츠야의 작화 페르소나이다. '모리'라고 부른다.


5. 작품[편집]





6. 작화 연출 샘플[편집]


그가 연출을 담당한 작품에는 그 특유의 영상 감각이 항상 드러나는데, 이는 오프닝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특히, 오프닝에 타이포그래피를 많이 활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화, 연출 모음


바케모노가타리 OP5 (6:00 ~ 7:30 후방 주의)
디렉터 오이시 타츠야
원화 이마무라 료, 타케우치 노부유키, 와타나베 아키오


안녕 절망선생 OP
콘티, 연출 오이시 타츠야 / 작화감독 모리오카 히데유키
꽃보다 남자, 소녀혁명 우테나 오프닝 패러디이다.


파니포니 대쉬 OP - 소녀 Q
디렉터 오이시 타츠야 / 작화감독 오오타 카즈히로
원화 요시나리 요우, 모리오카 히데유키


네기마!? OP
디렉터 오이시 타츠야 / 작화감독 오오타 카즈히로
원화 모리오카 히데유키, 아베 겐이치로, 요시나리 요우논크레딧


마리아 홀릭 OP
콘티, 연출 오이시 타츠야 / 작화감독 모리오카 히데유키
원화 이마무라 료, 아베 겐이치로


키즈모노가타리 열혈편
감독, 콘티 오이시 타츠야 / 총작화감독 모리오카 히데유키, 야마무라 히로키(山村洋貴)


크라이스타 OP
콘티, 연출 오이시 타츠야 / 작화감독 모리오카 히데유키
원화 요시나리 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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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때 둘이 사진을 같이 찍어서 양덕후 커뮤니티에서는 오구로의 사진이 오이시 타츠야의 사진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항목의 사진이 그때 찍은 사진으로 저 사진 옆에는 오구로도 있다.[2] 사실 연출가나 애니메이터가 소식이 사라진 동안 다른 일을 하는 건 흔한 일이다.. 애니메이션 업계는 인력 유출을 두려워해서 게임이나 파칭코, 만화, 디자인 등 다른 업계 일을 받아서 하면 그런 일 하지 말라고 이지메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때는 필명으로 몰래 하는 사람들이 많다.[3] 전 12화인 본편은 반으로 나누어 서로 체크하고, 전 3화의 WEB 송신판은 전부 오이시 타츠야가 체크한 걸로 추정[4] 첫 단독 감독 크레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