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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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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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귀순 과정
2.1. 탈출
2.2. 구조
2.3. CCTV 공개
3. 치료
3.1. 치료비 지불
4. 귀순 이유
5. 북한 관련
6. 논란
6.1. 대응사격 문제
6.1.1. 유사 사례 비교
6.2. 교전수칙 개정 필요성
6.3. 대대장 미담
6.4. AK 소총탄 발견
6.5. 김종대 인격테러 발언
7. 언론 보도 논란들과 비판
7.1. 정치적 편향 보도
7.2. 병사 상태 오보
7.3. 이국종 교수 2차 브리핑 생중계 중단
7.4. 구조 관련 오보
8. 사건 이후의 오청성의 한국생활 근황
8.1. 음주운전 적발
8.2. 유튜브 채널 출연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2017년 11월 13일, 조선인민군 육군 소속 오청성 하전사판문점을 넘어 귀순하다 이를 저지하려는 조선인민군 육군에게 5발의 총상을 당한 채로 대한민국 육군에 구조된 사건이다. 노크 귀순 사건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험난하게 귀순했다. 이국종 교수의 치료가 있었다고 하지만, 살아난 게 기적인 수준의 엄청난 중상이었다. 역대 북한이탈주민 중에서 가장 위험했던 탈북 사례로 손꼽힌다.


2. 귀순 과정[편집]



2.1. 탈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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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청성은 탈출하는 과정에서 군용차[1]를 몰고 빠른 속도로 초소 인근까지 접근했으나 차 바퀴가 초소 인근의 도랑에 빠지면서 운행을 할 수 없게 되자 차량에서 내려 초소로 이동했다. 그를 잡기 위해 달려온 조선인민군 병사 셋은 각자 엎드려 쏴, 앉아 쏴, 서서 쏴 자세로 오청성에게 총격을 가했다.[2]

2019년 5월, 모란봉클럽에 출연해서 이야기하길, 오청성이 귀순했던 경로는 본인이 판문점을 운전병으로서 드나들던 평소부터 생각하던 계획에 의한 경로였으며, 1차 검문소를 뚫고 1차 검문소와 2차 검문소간 연락을 주고받기 전에 도달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달려서 2차 검문소에 다다를 때쯤, 빠른 속도 그대로 바리케이드를 뚫으면 강한 충격으로 인한 사고를 우려하여 속도를 줄여서 통과했으며 바리케이트에 충돌한 것으로 인해 전조등이 켜졌다고 한다. 72시간 다리 또한 다리 중앙이 갈라져 있어 바퀴가 빠질 수도 있어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었다고 한다. 판문점 배수로에 빠졌던 것은 빼곡히 심어진 큰 나무로 인해 가려져 있어서 배수로를 인지하지 못해서이고, 빠진 차에서 바로 내리지 않았던 건 군용지프의 성능을 믿고 후진을 해서 빠져나가려 했기 때문이나 이것이 실패하자 어쩔 수 없이 뒤늦게 내려 죽기살기로 뛰어나갔다고 한다.


2.2. 구조[편집]


그로부터 20분 뒤 대한민국 육군공동경비구역(JSA) 내 군사 분계선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쓰러진 20~30대로 추정되는 북한 육군 하전사 1명을 발견, 육군 부사관 2명과 육군 장교 1명[3]이 낮은 포복으로 접근, 하전사를 구출하여 유엔군 헬기에 싣고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긴급 후송했다. 대한민국에선 흔치 않은 총상을 당한 하전사임에도 국군병원이 아닌 일반 대학병원으로 보냈다는 점[4]에서 국군병원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지만, 이는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여 중증외상의 전문가인 이국종 박사[5]의 치료가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물론,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그냥 총상이라도 국군 병원이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문제점이긴 하다.

국군 헬기가 아닌 유엔군의 헬기를 이용한 이유는, 군사분계선(MDL), DMZ 근방 공역이 미 공군 오산 MCRC에서 방공통제하는 비행제한조치구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역은 대한민국 국군의 의무수송헬기가 접근할 수 없는 비행제한공역으로 미군 헬기 또는 사전에 Notam 허가를 받은 헬기만이 접근비행이 가능하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유엔군사령부와 정전위 중감위 등 남북 군 통신선 서신통보 회의절차를 통해 북측 MDL, DMZ 에서 발생한 산불이 남측 MDL, DMZ근방까지 확산접근하여 산불 진압을 위해 산림청 헬기들이 양측 군의 쌍방간 비행허가를 받아 비행한 바 있다. 해양경찰청 항공대 소속 해상정찰기 첼린저 호도 사전통보를 통해 접근비행관제허가를 받아 국제 인도적 차원에서 러시아 국적 선박선원SOS 신호에 따른 구조구호수색을 위해 비행한 역사가 있다.


2.3. CCTV 공개[편집]


유엔군사령부는 11월 15일 국방부 출입 기자단을 상대로 판문점 CCTV에 찍힌 귀순 장면 영상을 일부 공개하겠다고 통보했으나, 언론 공개 전 영상을 본 국방부와 합참 쪽에서 "영상에 민감한 내용이 미흡해서 오히려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 고 문제를 제기, 새 영상을 준비해 공개하겠다고 했으나 내부 협의 지연을 이유로 정해진 기한 없이 연기했다.


11월 22일, 유엔사에 의해 2017년 11월 16일의 JSA 귀순 상황이 담긴 약 26초 분량의 CCTV가 공개되었다. 북한 군사가 JSA내에서 자동화기인 88식 보총을 가진 채로 뛰어가는 것도 모자라 엎드려 남쪽을 향해 조준 사격까지 하는 것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엄연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영상을 보면 사격하는 추격조들이 우리 군의 대응사격을 염려했는지는 몰라도 각자 엎드려쏴, 앉아쏴, 서서쏴 자세로 사격을 가했다. 워낙 추격조와 귀순 병사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이들이 다 그냥 서서 사격을 가했다면 그 자리에서 사살 당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다만 썰전 247화에 따르면 엎드려쏴를 하려던 게 아니라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급한 김에 엎드려쏴 자세를 취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영상을 자세히보면 북한 추격병 한 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남측구역을 침범했다가 군사분계선을 넘어버린 것을 알았던지 곧바로 북측지역으로 황급히 돌아가는 것을 볼수 있다. 이 또한 무단 월경으로 정전협정 위반소지가 있다. 사건 이후 그 병사들을 북한에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카더라




3. 치료[편집]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총상을 입었던 석해균 선장을 수술한 경력이 있는 이국종 교수의 집도로 약 5시간 동안 수술을 진행했다.

일단 총격으로 내장만 7곳 이상이 파열되었으며, 내장이 터지면서 나온 분변으로 내장과 주변 장기, 복강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100% 패혈증으로 가기 때문에 광범위 항생제를 퍼부으면서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 출혈성 쇼크에 빠진 상태로 수술을 진행하여 상처의 회복도 늦어진다고 한다. 이후 열흘 동안 고비를 계속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추측했었다. 결국 수술을 더 이어가면 환자가 체력적으로 버틸 수 없어 중단했고, 2차, 3차 이상의 추가 수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1, #2

또한 귀순 병사의 배에 기생충이 엄청나 치료에 애를 먹고 있는데, 비료가 없어 인분거름으로 사용하는 북한의 열악한 실태와 위생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귀순 병사의 몸속에는 30마리 이상의 기생충이 있었으며, 회충 중에서 길이가 가장 긴 게 27cm나 되었다. 이때 이국종 박사가 "20년 넘는 제 외과 의사 경력에 이런 것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라고 증언할 정도였다. 회충은 본래 30cm가 넘게 자랄 수 있고 그 이상 자란 사례도 보고되어 있다. 또한, STH(Soil Transmitted Helminth)이라 하여 감염된 인간으로부터 충란(蟲卵)이 배설되고 흙을 통해 채소 등으로 묻었다가 다시 인간이 섭취하면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선 퇴비보다 훨씬 편한 화학비료를 쓰고 있고 기생충약이 보편화되었기에 근래에 와서는 거의 사라졌다. 화학비료를 구하기도 힘들고 알벤다졸 계열의 구충제를 구하기도 힘든 빈국에서나 번성할 수 있는 게 회충인데 이게 북한 군인의 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몸이 다 열려있다는 답변으로 보아 개복 상태로 상태를 지켜보다 재수술을 시행하는 손상 부위 통제 수술법을 택한 듯하다.[6] 환자의 생명에 직결되는 부분만 우선 수술하고, 개복 상태를 유지한 채 며칠 동안 지켜보면서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면 다른 부위를 차근차근 수술해 나가는 방식이다.

11월 15일, 이국종 교수의 집도로 추가로 3시간 반 동안 2차 수술이 진행되었다. 괴사된 조직을 제거하고, 1차 수술에서 제거하지 못한 총알 마지막 한 발을 꺼낸 후 복부를 봉합해냈다. 수술은 성공적이나 기생충과 분변 오염으로 인한 감염 가능성이 남아있어 향후 10일 정도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였다. #

11월 20일, 의식을 회복했고 을 떠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직 말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걸 살려낸 것이다. 북한의 열악한 의료 현실 때문에 항생제 내성이 거의 없어서 약이 잘 듣는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 하지만 아직 상태를 단정짓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11월 21일,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료진은 아직 경과를 지켜보아야 하는 환자의 상태를 생각해 관군합동신문하는 것은 당분간 지양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의료진은 귀순자가 무사히 탈북에 성공하여 한국이 맞다는 것을 확신시켜주기 위해서 병실에 태극기를 걸어 두는 등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귀순자는 '먹을 것을 달라', 'TV를 틀어 달라' 등의 요청을 하였다고 한다.

11월 22일에 진행된 2차 브리핑에 따르면, 일반인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며, 기생충 문제도 약이 잘 들어서 잘 해결됐다고 한다. 귀순자는 의식을 완전히 회복해 자신의 신원을 직접 밝혔으며 의료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한국 걸그룹의 음악이나 미국영화 트랜스포터브루스 올마이티 등을 감상하며 안정을 취했다고 한다. 혈액 검사에서 발견된 B형 간염과 귀순 이후 느끼는 우울감 등이 문제라고 한다.

11월 23일, 회복 상태가 좋아서 중증외상센터 일반 병실로 옮겼다고 한다. 이후 군 병원 시설로 이동할 것이라고 한다.

11월 26일, 미음과 물김치 국물을 마실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두부 같은 간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11월 28일, 혼자서 앉아서 TV를 볼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으며, 유기농 과일을 포함한 일반식도 먹을 수 있을 수준이라 한다. 그리고 VIP 병동에서 요양을 좀 더 하다 훗날 군 병원으로 이송할 계획이라 한다.

12월 4일, 과일이나 두부 등 일반식을 먹을 정도이긴 하나, B형 간염 이외에도 원래 간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안정된 상태라도 언제 악화될지 모르는 상태라 군 병원 이송 시점은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

12월 5일, CNN이 그동안의 경과 및 이국종 박사의 인터뷰 리포트를 내보내면서 귀순 병사의 수술 장면을 단독 보도하였다. KBS 인용기사, 연합뉴스가 정리한 관련 보도

12월 14일 및 12월 15일에 국군병원으로 이송되었다.12월 14일 보도,12월 15일 보도


3.1. 치료비 지불[편집]


석해균 선장 치료 당시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례가 있는 데다가[7] 이번 귀순 사건에서도 이국종 교수가 수술 처치 및 치료를 맡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이 쪽으로 쏠렸다. 석해균 선장의 일이 워낙 국민의 공분을 샀었기에, 11월 24일 통일부는 급히 성명을 내고 원칙적으로 정부 측에서 전액 부담하며, 관계부처 협의를 거칠 것이라고 밝히며 여론 수렴에 나선 상황이다.

12월 1일, 중앙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아주대병원 측은 치료비에 관하여 정부로부터 정식 통고를 받은 사항은 없다고 한다.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병원 측이 결국 떼어먹히고 심하게 데인 적이 있는지라[8] 미리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귀순병사는 현재 VIP실에서 처치를 받고 있으며 소장을 절제한 상황에서 복용할 수밖에 없는 특수식 등의 단가는 매 끼니 3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와 관련하여, 12월 5일 정부 측에서는 국정원 탈북민기금에서 치료비가 지급될 것이며, 이를 위해 관계부처 간 논의가 개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12월 27일, 통일부 브리핑에서 치료비의 본인 부담금 2500여만 원을 정부(통일부 예산)에서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전체 치료비는 약 1억여 원, 이를 의료 급여로 적용하면 6500만 원으로 계산하며 이 중 2500만 원을 제외한 4000만 원은 국민건강보험에 청구하는 형태이다. 또한 이번 사건을 통해 석해균 선장 치료비 건이 재조명되면서, 정부는 이 또한 정부가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4. 귀순 이유[편집]


정석대로 처리한다면 제네바 협약에 의거하여 망명의사 확인과 소속, 관등성명을 확인하고 신병을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해당인의 신변을 보호한다. 그 후 망명 의향이 자유 의사에 의한 것인지에 관한 신문 절차 과정을 영상 녹화하여 북한 측에 통보 및 영상 사본을 인계한다. 대한민국 정부에 의하여 인도 요청을 접수받으면 당사자가 대한민국으로 갈 의향이 확실히 있는지 판단한 후 신원을 인계한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는 당사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버린 탓에 이와 같은 조치가 다소 생략되었다. 일단 군사분계선을 자력으로 넘어서 들어온 만큼 신변관리는 인도적 의무에 따라 대한민국이 맡아야 한다.

아주대학교병원 병실 일부 구역을 특별보안통제구역으로 선포하고 보안서약서 협조 공문을 통해 병원과 병원임직원 의료진 제출 절차를 거쳐 의료진을 제외한 일반인과 취재진의 접근을 모두 차단했다. 대한민국 육군 헌병경찰특공대, 112타격대 등으로부터 아주 삼엄한 경호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출입 인원에 대하여 보안 검문, 검색도 이루어지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 국가정보원, 대한민국 경찰청 보안 수사대 등으로 구성되는 합동 신문조가 귀순 사유와 북측의 출신 성분, 잔류 가족 관계 등을 물을 것이며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입원이 불필요하다 판단되면 통일부에서 운영하는 탈북자 사회 적응 교육 시설인 하나원으로 이송되기 전까지 국가정보원이 운영하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나 대방아트센터에서 추가로 탐문을 진행할 것이다.

몇몇 언론기사들에 의하면 복수의 정부 소식통을 근거로 "귀순자는 자신의 이름은 '오청성'이며, 나이는 25세라고 밝혔다"고 한다. 또한, 소속은 판문점대표부 민경중대[9], 계급은 하급전사[10]이라고 밝혔다. 이후 공식 브리핑을 통해 이국종 교수가 밝힌 바로는 25세에 오 씨이며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면서 '나도 저거(=운전) 많이 했다'고 한다. 실제 운전병으로 복무했는지는 차후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2월 29일, 오 씨의 아버지는 중좌(대한민국 국군의 중령에 해당)라고 한다. 북한 사회에서는 간부에 속하는 지위이며 본인이 운전병인 것도 이 출신 성분의 덕택을 보았다 한다. 그런데 북한 간부층 인물조차도 탈북을 감행할 정도로 사회 체계가 무너져 있으며, 또 중령 아버지를 두어 특혜까지 본 집안 아들조차 저 정도로 영양 상태와 몸 상태가 심각했단 것을 보면 북한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치달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2018년 1월 23일, 후속 보도에 따르면 오청성의 아버지가 중좌가 아니라 북한군 소장이었으며 오청성이 탈북을 결심한 경위는 북에서 사람이 죽은 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처벌을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 오 씨가 기분파여서 진술이 자주 바뀐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다른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범죄 사건 연루 의혹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

2018년 1월 25일, 국가정보원은 오청성이 북한에서 음주운전 사고[11]를 내고 우발적으로 귀순한 것으로 파악되고 퇴원 후 합동 신문을 할 예정이다. #

2018년 11월 17일, 일본산케이신문도쿄에서 오청성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낸 기사에서 "근무지 밖에서 친구와 문제가 생겨 술을 마신 뒤 검문소를 돌파해버렸다"면서 "돌아가면 처형당할 우려가 있어서 국경을 넘었다"고 답했다. 이는 앞서 국가정보원에서 파악한 내용과도 얼추 맞아떨어진다.

전술된 범죄 연루 의혹은 오청성 본인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했으며 국정원에서도 이미 다 해명됐다고 한다.

2019년 4월에 미국 NBC와의 인터뷰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남한으로 갈 생각은 아니었다는 말과 자신에게 총을 쏜 전우였던 군인들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도 아마 총을 쐈을 거라며 입장을 전했다. NBC와의 인터뷰에선 얼굴을 공개했지만 다른 곳으로 얼굴이 퍼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입장에 따라 다른 언론사들은 모자이크 처리를 한 상태. #

2019년 5월 TV조선모란봉 클럽에 출연하여 본인의 귀순동기에 대해 밝혔다. 간부의 아내의 출산 때문에 산원에 가야 한다는 급한 요청으로 차를 태워나가서 개성 시내의 목적지에 내려주고 난 후, 차에 문제를 발견하여 개성 시내 안쪽에 있는 정비소에 갔더니 옛 친구와 우연히 만나 식당에 가서 술을 마시며[12] 식사를 하던 중 친구가 오청성의 근무지인 판문점에 구경가고 싶다 하여, 본인의 차는 정비소에 두고 친구의 차로 함께 가다가 1차 검문소에서 원래 오청성의 차가 아니다보니 검문에 걸렸다. 조수석에 있던 술에 취한 친구가 하차하여 경비병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때는 북한최고지도자의 명령하에 음주와 폭행에 대해 민감한 때라서 붙잡히면 크게 경을 칠 것이라는 판단하에 차를 타고 그대로 1차 검문소를 통과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귀순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혔다. 평소 남한에 대한 선망이 있었기에 귀순한 것에 큰 후회는 없지만,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된 것과 혼자인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5. 북한 관련[편집]


  • 이번 귀순 사건이 다른 여타 북한군 출신 인물들이 귀순 하던 때와 달리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귀순 과정에서 물리적인 폭력, 즉 북한군의한 총격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야음이나 북한군의 감시가 별로 없거나 방심한 틈을 타 은밀하게 이뤄진 일이 많았던 관계로, 귀순자들에 대한 물리적인 위협은 가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귀순 사건은 북한군에 의한 살상 시도가 일어났다는 사실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JSA에서 일어난 점에서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이미 1984년 11월 23일, 소련관광 안내원 바실리 마투조크가 판문점을 달려서 남쪽으로 귀순한 판문점 총격사건이 있었으며, 이때도 북한군이 추격하며 총격을 가해 국군 병력과 상호 총격전을 벌여 사상자까지 났었던 전례가 있다. 북한군 DMZ민경대가 예전 탈북 차단 원칙대로 당을 배신한 탈영병에 대한 처단 목적으로 사살을 명령했지만 사례자가 DMZ를 넘어 월경에 성공하자 추격조가 DMZ 월경에 부담을 느껴 최종 확인 사살을 시도하지 못하고 실패했을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일단 김정은이 탈북 시도 자체를 총격을 가해서라도 막으라는 방침을 내렸을 것이기 때문에 북한 내부에 사실이 드러날 경우 후폭풍이 매우 클 것이며 그렇기에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거짓 정보로 주민을 속일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보인다.

  • 귀순 초기에는 키가 170cm 정도라고 알려졌으나 후에 다시 밝힌 바로는 182cm였다.

  • 이번 귀순은 기생충 문제 외에도 다른 면에서 북한 의료의 현실을 볼 수 있는 사례가 되고 있다. 귀순자가 의식을 회복한 11월 21일, 이국종 교수 팀 측 이야기로는 "치료에 쓰이는 항생제 약발이 너무나 잘 듣는다"라고 한다.

  • 판문점에는 출신 성분이 좋은, 그러니까 북한에서도 조선로동당 고위직 인사의 자녀들 같은 이들이 주로 배치된다는 점과 북한 로동당에 충성서약을 한 이른바 '당성이 뛰어난 일꾼'을 북측 판문점에 배치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수부대로 분류되는 인민무력부 특무대, 육군 폭풍군단에서 차출된 병력들이라는 것 외엔 자세한 사항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만갑에서 북한 DMZ민경대 선발은 북한군 인민무력부 호위총사령부[13]와 북한 인민보안성[14], 북한 로동당 당중앙위 군 총정치부 위원회에서 3차례에 걸쳐 출신성분, 사상검열, 성적, 신원검증 절차 등을 통해 걸러 선발한다는 내용이 나온 적이 있다. 그런데도 탈북을 했다는 점에서 전두환 정부 때 MiG-19를 조종해 탈북한 이웅평 당시 상위와 함께 북한이 막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다. 심지어 당시 북한도 완전히 막장은 아니었고 전투조종사 대우도 JSA에 비할 바도 못 될 최고급에 사상 교육이 철저했음에도 탈북한 사람이 나왔다는 점에서도 북한은 이미 잘못된 것이었는데, 하물며 다 망한 지금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 수술 중 다수의 기생충발견되었는데, 이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북한의 고질적인 식량난을 감안하면 안 그래도 섭취 열량이 부족한데, 그마저도 기생충에 뺏기거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생충이 있으면 당장 설사가 많이 나고 생활이 힘들어서, 대부분 참지 못하고 곧바로 약을 챙겨 먹는다. 그런데 이렇게 뱃속에 회충까지 있을 정도로 버텼다는 것은, 북한은 최일선 A급 전투부대에 한국에서는 약국에서 1,000원에 살 수 있는 기초적인 구충제조차도 지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의료 체계도 무너졌다는 소리다.

  • 북한에서 늘 대외적으로 주장하고 그렇게 자랑하던 '선군정치'마저 무너져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파악할 수 있다. JSA 북측 대표부 정도라면 그쪽 기준으론 대우도 잘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출신 성분도 좋고 체격이 크고[15] 국제군사외교에도 어느 정도 밝은 북측의 고등교육 대학 전공자 중에 선발한 엘리트일 가능성이 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수보급병참을 잘 받지 못해서 자력으로 농사를 통해 먹을 것을 얻어야 할 수준이었던 것이다. UN 경제제재조치로 북한 집단농장의 식량 생산량이 저하되고, 장마당 암시장에 탄수화물 곡류 및 외화벌이수단 유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북한의 상황을 더욱 안 좋게 만들고 있다. 선군 병진 정책이 붕괴될 정도라면 평양 등 일부를 제외한다면 민간의 수준은 이미 최악일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평양도 핵심 권력층 일부만 제외한다면 그다지 양호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평양은 핵심 계층만 모아 놓고 체제 선전용으로 보여주는 시민들의 높은 생활수준 덕분에 꽤 잘 산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상은 평양에서도 일부만이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일반 시민들은 그나마 배급을 우선적으로 받아먹는 정도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 평양시 외곽인 선교구역을 찍은 사진을 보면 남한의 달동네 저리 가라 수준으로 낙후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수도 외곽만 가도 저런 수준인데 지방 촌락을 찍은 소수의 사진들을 보면 6.25 전쟁 당시 사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참담하다. 실제로 후진국에서는 상류층들조차 기생충 등의 질환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본 인프라 자체가 엉망이기 때문에, 단순히 돈이 많다고 뭘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내가 기생충 환자인지 알 정도니, 우리나라의 서민들은 어떻겠냐"고 한탄하고 간 동티모르 딜리 시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 당연히 귀순 사건 이후 공동경비구역(JSA)의 경비병력을 모두 교체하였다. 북한 JSA 경비병력은 장교를 포함해 35~40명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72시간 다리를 일단 폐쇄한 다음, 잠금장치가 있는 '통문'을 설치했고 넘어가려다 차가 빠진 곳에 사람 머리만 겨우 보일 정도로 충분히 들어갈 깊이의 해자를 팠다. 일설에는 나무 2그루도 심어 정전협상을 어기는 짓[16]까지 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시찰 시에는 없었다니 오보인 듯하다.

  • 정서 안정을 위해 이 교수와 농담 같은 잡다한 얘기를 주고 받는 중이라고 한다. 이 교수에게 "군인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법학을 배우고 싶다"고 밝혔으며,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초코파이가 먹고 싶다"고 답했다. 그래서 오리온 측은 초코파이 100박스[17]를 제공하고, 추가로 평생 무료권을 제공했다.

  • 2018년 11월 17일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귀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의 사정에 대해서도 김정은에 대한 대대적인 신격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젊은층 사이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실망감과 정치적 무관심이 만연해 있으며, 배급 체계가 무너져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생활해야 하는 가운데 권력자들은 단속 권한 등을 무기로 삼아 용돈벌이를 하기 때문에 "돈이나 권력이 없으면 북한에서는 죽는다"고 평했다. 그리고 한국군에 대해 "힘든 훈련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강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졌었는데 이후 오청성 씨는 "한국군 비하 발언을 한 적이 없는데 일본 언론이 왜곡했다. 정정 보도를 요청하겠다"라며 산케이 신문 기사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복무 기간의 차이(북한군 10여 년, 한국군 2년 이내)를 비교하며 '북한보다 남한이 복무 기간도 짧으니까 군 생활이 좀 더 편하지 않겠느냐' 정도의 발언이었다고. 이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언급했는데, 통역 오차로 와전된 것이었고 산케이신문 측에서 사과 문자도 보냈다고 한다.


6. 논란[편집]



6.1. 대응사격 문제[편집]




이 문서는 나무위키의 이 토론에서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엔군 사령부측의 긍정적 평가를 NPOV로 기술함으(으)로 합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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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귀순자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는 의견들이 제기되었다. 13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의 대응에 대해 정당간 입장 차이가 있었고, 자유한국당은 11월 15일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남북 대치 상황에서 우리 군의 방어라인이 무너진 역대 최초의 비상상황"이라며 북에 대한 강경 대처를 촉구했다.

하지만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론은 JSA 내에서의 대응사격은 최전방지역에서의 국군 교전수칙이 아닌 유엔사 교전규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에 어긋난다. JSA 경비 임무는 2004년 11월 우리 군으로 넘어왔지만 한국군 JSA 대대는 육군 3군 사령부 직할부대임에도 불구하고 작전지휘권만큼은 유엔군에게 있다. 즉, JSA 대대에 대한 군정권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행사하고 있으나 군령권은 넘어오지 않은 상태로, JSA에서는 국군의 '선 조치 후 보고' 방식이 적용되지 않으며, 유엔사의 승인 없이 무력 사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

유엔군사령부 교전수칙에 따르면, "대응사격은 북한군이 우리 군 GP초소 초병을 향해 사격을 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아군에 대한 조준 사격을 방지하는 등의 자위권 차원에서 하는 것"이며, JSA 교전규칙의 지향점도 위기 완화에 있고,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의 JSA 작전지침 상 행동요령은 "무조건 현장으로부터 철수하거나, 은신하라"는 것이다. 이번 대응을 유엔군 사령부측은 "보고와 대응·구출·후송까지 JSA 교전규칙대로 대응했고, 미군 기준으로는 표창감"이라 평가를 내리고 23일 한미 장병 6인에게 공로 메달을 수여했다.

판문점 전역병에 의하면 판문점 지역에서는 경고사격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경고사격이란, 상호 경고사격을 인지한 상태에서 비조준 화력을 비위협지역으로 투사하며 더 이상의 도발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는 과정이다. GOP와 NLL같이 서로 이격된 거리가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는 판문점 지역에서 이미 여러 건의 협정을 위반한 북한군 앞에서 경고사격을 한다면 교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지휘관도 아군의 위험을 담보로 경고사격 명령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13일 귀순 사건 당시 육군 1사단 전진타격대는 12분 만에 증원 투입됐지만 충돌방지 차원에서 대기만 하고 있었다.

판문점에서 교전이 발생한다면, 교전 상황은 Shoot to kill, 즉 사살무력화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쌍방 사상자는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아야한다.


6.1.1. 유사 사례 비교[편집]


  • 1984년 판문점 총격사건의 경우는 국군 초병이 적탄에 맞았기 때문에 자위권이 성립되는 것이지만 이번 경우는 북한군 간의 사격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 2014년 10월 DMZ내 군사 분계선 접근 시 위협사격을 했던 경우는 JSA 교전규칙이 아닌 국군 교전규칙이 적용되므로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다.
  • 2014년 11월 JSA 인근 군사 분계선(DMZ)을 넘어 카메라로 푯말 촬영 시 위협 사격을 했던 경우는 위협 사격이 JSA 교전 규칙을 준수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상황 뉴스, 어디에도 교전 수칙이 언급되지 않는다.


6.2. 교전수칙 개정 필요성[편집]


대응과 관련해서 국군이 군정권을 행사하면서 군령권은 유엔사가 행사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해당 사건을 보고 받은 뒤 “북한군이 우리 측에 조준해서 사격한 게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측으로 총알이 넘어왔다면 비조준 경고사격이라도 하는 게 국민들이 생각하는 평균적인 교전수칙일 것” 이라며 “교전수칙 개정을 검토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16일 청와대는 교전수칙을 수정할 권한이 없음을 밝히고 대통령의 발언을 "지시나 검토하라는 취지가 아니라 발제"라 설명했다. 기사에서도 나왔다시피 DMZ 같은 곳의 교전수칙은 유엔사령부가 결정하지, 대한민국 국군이 단독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대통령 발언은 유엔사령부를 향한 발제가 된 셈이다.


6.3. 대대장 미담[편집]



결론적으로 보면 대대장이 직접 귀순자를 끌고 온 것이 아닐 뿐 부사관들과 함께 접근해서 구조한 것이 맞다.

구조 당시 JSA 경비대대 대대장권영환 중령과 휘하 부사관들이 직접 포복해서 접근해 귀순자를 구출했다는 미담이 알려졌다. 김종대 의원은 주변 예비역들로부터 '육사 54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연대장 생도 출신으로서 JSA에 이전에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주 노련하다. 상황 판단이 매우 정확하고 이런 상황에 본인이 제일 앞에 나서는 분’이라는 답변을 들었다며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권 중령을 칭찬했다. 권 중령은 "차마 아이들을 보낼 수 없었다."며 자신의 이야기가 언론에 알려지는 걸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런데 YTN이 당시 촬영된 판문점 TOD 영상에 대대장의 모습이 없었다며 권 중령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 하면서 군의 미흡한 대처를 영웅담으로 가리려고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후 공개된 TOD 영상에서는 대대장이 멀쩡히 나왔다. 정확히는 TOD영상 공개초기에 포복으로 귀순병사를 구출하러가는 부사관의 모습은 확실하게 포착이 되었지만 대대장의 열상은 은폐로 인해서 희미하게 포착이 되었던것. 구출을 하러가는 부사관들의 경계를 위해 은엄폐가 제대로 되었다고 봐야할부분이다. 포복으로 접근 후 약 10미터 이내에서 대대장이 엄호하며 부사관 2명이 귀순자를 끌고 온 뒤 대대장과 함께 차량까지 데려가 구출한 것이다. 국방부에서는 대대장 포함 간부 3명이 귀순자를 구조한게 맞다고 재확인했다. 또 미흡한 대처를 가리려고 했다는 음모론 및 부대에서 중요한 위치인 대대장으로서는 필요 이상의 위험이었다는 평가[18]와는 달리, 유엔사는 섣불리 상황을 악화 시키지 않았다며 권 중령의 대응을 높이 평가해 귀순자를 구출해낸 권 중령과 노영수 중사, 송승현 상사 세명에게 표상을 수여하였다. #영상 고로 이 세 사람이 받은 표상의 이름은 육군공로훈장이다.


6.4. AK 소총탄 발견[편집]


수술 중 AK의 소총탄이 발견되었는데 JSA에서의 소총 휴대는 정전협정 위반이기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다만 해당 탄환이 구역 내에서 휴대하던 소총에서 격발된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사거리를 감안할 때 공동경비구역 바깥에서 사격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이미 북한이 소총을 배치한 것에 항의하여 남측 초소에도 소총을 보유 중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K2 소총으로 무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 CCTV 영상을 통해 88식 보총으로 JSA내 지근거리에서의 발포였던 것이 확인되었다. 심지어 한 북한군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을 침범했던 것도 밝혀졌다. 또 CCTV 영상을 보면 출동한 북한군들이 소총뿐만 아니라 73식 대대기관총이나 RPG-7 로켓 탄두배낭# 등의 중화기도 휴대한 것이 보인다.


6.5. 김종대 인격테러 발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종대 인격테러 발언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언론 보도 논란들과 비판[편집]


귀순 과정에서 총격전이 있기도 해서 국민적 관심이 컸는데, 언론의 성급함으로 이상한 오보, 정치적 분란 조성을 위한 사실 왜곡이 유독 많은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낮은 언론 신뢰도가 더 떨어지고 있다. 특히 논란 가운데 대대장 미담 논란은 관련 언론들이 이슈 만들기를 위해 침소봉대 하지만 않았더라면 크게 불거지지 않았을 논란들이다.


7.1. 정치적 편향 보도[편집]


조선일보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내용을 전하면서 11월 15일 원래 주한미군이 담당하던 JSA 경비 임무는 2004년 11월 우리 군으로 넘어왔다며 책임을 유엔사로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표현을 "지적이 나온다"와 같이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로 실었다. 한편 TV조선은 11월 16일 2014년 경고 사격 사례를 언급하면서 야당의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하지만 이미 11월 14일 연합뉴스에서 대응사격에 유엔사 승인이 필요함을 보도했던 바,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이유를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이 무능하다고 하거나 정권에 문제가 있다고 오인할 여지를 남기는 기사들을 내보낸 것에 대해서 의도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상기한 2014년 경고 사격 사례 언급 내용의 세부적인 부분들에서 그 악의를 엿볼 수 있다. (볼드체로 처리)
  • 하지만 정작 합참 관계자는 교전 규칙 내용에 대해 묻자 "공개된 자리에서는 답변을 삼가겠다"고 했다. - 교전 규칙은 2급 비밀로 분류되므로 공개적으로 답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를 뭔가 문제가 있어서 감추고 있다는 논조로 보도했다.
  • 2014년 경고 사격 사례에서 JSA와 전혀 관계 없는 파주시, 철원군의 DMZ 사례를 언급했다.
  • 2014년 JSA 경고 사격[19]교전 규칙을 준수한 것인지 아닌지 여부에 대한 확인이 없다.
  • "야당은 이전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로 기사를 마무리 지었다.


7.2. 병사 상태 오보[편집]


귀순 병사의 상태에 대한 오보가 대표적이었는데, 사건 발생 직후부터 "팔과 어깨 등 급소와는 다소 먼 부위에 총상을 입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보도와 "수술 직후에도 큰 고비는 넘겼다"거나 "마치 이국종 교수가 환자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을 했다"는 식의 보도가 나왔다. 조선일보 한겨레 하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도된 일체의 언론보도는 모두 오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오보가 발생한 이유는 합참본부의 성명에서 "팔꿈치와 어깨 등에 부상을 입어"라고 설명한 것을 듣고 급소에 총알을 맞지 않은 것으로 기자들이 논리적인 오류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20]

애초에 이국종 교수는 그와 같이 말한 적이 없으며,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내용은 변경 없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저는 그런 말씀 드린 적 없는데요? 되게 위험한데?"라고 대답했다. "보도에는 다 생명에 지장은 일단 없다."라고 기자가 재차 말하자 "저는 그런 말씀 드린 적 없는데요."라 재차 답변했다. 이 교수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환자의 상태는 매우 위중하다. 영상


7.3. 이국종 교수 2차 브리핑 생중계 중단[편집]


1차 브리핑 때 환자의 상태를 소상히 설명하다 여러 단체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중요한 내용이 아닌 자극적인 주제에 대해서만 보도를 하던 정황을 보고 2차 브리핑에서는 환자의 상태가 아닌 문제의 핵심에 대한 열변을 토했다. 환자의 상태, 이번 보도에서 드러난 언론의 문제점, 권역외상센터의 적자 현황과 위기 등 수많은 쟁점에 대해 간곡한 호소를 하고 있었다.해당 뉴스 그런데 브리핑을 현장 생중계 중이던 수많은 언론사들이 중간에 브리핑을 중단하고 카메라를 스튜디오로 돌려버렸다. 제일 먼저 YTN이 카메라를 돌리고 그 뒤로 수많은 언론사들이 모조리 카메라를 돌려 결국 끝까지 중계한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카메라를 돌린 언론사들 중 일부는 아예 브리핑 된 내용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보도자료에 대해서만 좌담을 나눴다.

그 뒤의 보도는 아래 전문에서 중요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보도하거나 긍정적인 내용 위주로만 보도가 이루어졌다. 또한 아래 브리핑에서 경계하던 영웅화와 김종대 의원의 이국종 교수 1차 브리핑 비난에만 날을 세우는 내용 위주로 보도됐다. 특히, 자괴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을 김종대 의원의 인격 테러 비난과 연관지어 비난의 화살이 엉뚱하게도 이국종 교수가 염두에 두지 않던 김종대 의원에게만 돌아갔다.# 그렇다고 김종대 의원이 무고하진 않다. 일단 김종대 의원은 분명 이국종 교수를 명시해 지적했을 뿐더러, 더 큰 문제는 자신의 페이스북 발언으로 인해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이국종 교수가 동조한 부분조차 페이스북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대신 공격할 빌미를 준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 중 그나마 긍정적으로 볼 부분마저 지워지고 그 부분에 대한 이국종 교수의 진지한 호소까지 자기가 판 무덤으로 데려간 격이다.

YTN 링크,TV조선 링크. 전자의 링크는 YTN이 중간에 자른 브리핑으로, 언론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는 시점을 완곡하게 편집해 마치 브리핑이 종결된 것처럼 작성했다. 한마디로 욕을 먹을까 봐 미리 브리핑 보도를 중단한 것이다.동아일보의 브리핑 전문 요약. 참고로 브리핑은 11시에 시작되어 2시 10분까지, 총 3시간 10분 동안 이루어졌다.

이후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와 화상 인터뷰가 진행됐는데, 브리핑을 중단당해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거의 울분을 쏟아내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거침없이 풀어냈다. 결국 인터뷰 시간이 평소보다 약 2배나 되는 18분 동안 진행될 정도로 길어져 팩트체크 코너가 방송되지 못했다. 또, 이 인터뷰를 통해 김종대 의원의 발언에 대한 이국종 교수의 입장을 얼핏 볼 수 있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김종대 vs 이국종, 정치권 vs 의료계 구도가 아니라 오히려 의료계 내부에서 김종대 의원 만큼이나 이국종 교수를 공격하는 집단이 있고 이를 염두에 두고 브리핑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언론의 만행을 본 네티즌들은 격분하였고, 11월 17일에 올라온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했다. 그 결과 11월 22일 12시 경에 불과 7만명 정도가 참여했던 해당 청원은 이틀 만에 11월 24일 밤 11시경 20만 명을 돌파하면서 청와대의 답변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다만 이에 대해서 이국종 교수는 비관을 넘어서 염세적인 반응을 보인 수준이었다.

또 BBC코리아에서 이국종 교수와 중립적인 관점에 철저히 입각한 인터뷰를 하였다는 것이 드러나자, 환자의 안전보다 이국종 교수를 비난한 한국 기레기들보다 더 품격이 높다고 칭찬을 받았다. BBC코리아는 6개월 후 바뀌지 않은 현실을 토로한 영상을 다시 제작했다.


7.4. 구조 관련 오보[편집]


SBS에선 '귀순 막으려 북한군에 40여 발 총격…군 대응 논란'이란, 현 상황과 동떨어진 괴상한 제목의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어가 무분별하게 통째로 생략된 것이다. 《(북한군인의) 귀순 막으려 (귀순을 시도한)북한군에 (북한측에서)40여 발 총격... (이에 대응사격하지 않은) 군 대응 논란》의 뜻으로 해석해보면 사실관계는 맞는다. "누가" 총격을 했는지, 우리 군의 "어떤" 대응 모습이 논란이었는지, 주어를 죄다 생략해 버린 게 문제다. 게다가 후술한 내용 때문에 문장의 반 이상을 들어내 의미를 곡해할 수 있는 내용을 제목이라고 뽑은 것은 데스크의 악의적인 의도로 보일 수준이다.

또한 웃긴 점은 이 기사가 올라가기 5시간 전엔 같은 기사를 쓴 동일한 기자'北, 귀순 막으려 무차별 총격…대응 사격은 없었다'란 멀쩡한 기사를 올렸다는 것이다.

위의 대대장 미담 논란에도 나왔지만 YTN은 "CCTV에 권 중령이 찍히지 않았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군이 미흡한 대처를 묻기 위해 '억지 영웅담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막상 유엔사가 공개한 CCTV에는 권 중령이 멀쩡히 나왔다. 즉, YTN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다. 일각에서는 어쨌든 권 중령이 직접 구해 오지 않았으니까 억지 미담은 맞는다고 주장하는데, 애초에 군은 권 중령이 직접 북한 귀순 병사를 업고 왔다는 식의 언론 플레이를 한 적도 없으며, 그저 "권 중령이 부하 2명을 이끌고 포복 전진해 귀순병을 구해왔다."라고 알렸을 뿐이다. 또한 증언이 나왔다 하더라도 이 말이 맞는지 교차 검증을 하는 게 당연한 언론의 태도 일 것이다. YTN의 오보는 "CCTV에 없다더라."라는 모호한 증언만 가지고 북한 귀순 병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 군인의 명예를 깎아내린 것이다. YTN도 명백하게 틀린 사실을 근거로 뉴스를 보도했다는 사실에 찔렸는지 22일, "군 내부에서 TOD 영상에 대대장이 없다는 증언이 잇따랐고 YTN은 이를 바탕으로 JSA 영웅담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영상에 대대장의 모습은 있었다." 고 밝혔으나 "동시에 대대장이 부사관들과 함께 직접 포복으로 접근해 귀순 병사를 구조했다는 군의 발표 역시 일부 과장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사과 한 마디도 없이 군의 발표가 과장됐다는 치졸하고 유치한 모습을 보였다.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군 내부 증언이 있어 보도를 했다는 식으로 사실 검증도 제대로 안 한 자신들의 잘못을 교묘하게 물타기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의 경우에는 유엔사의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기사를 작성해 '북한군이 JSA 분계선 너머로 총격했다.'는 내용을 '북한군이 JSA 분계선을 넘어 총격을 가했다.'고 대형 오보를 터뜨렸다. CCTV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북한군 병사가 JSA 분계선을 넘어오긴 했다. 하지만 분계선을 넘은 직후 본인이 분계선을 넘었다는 자각을 그제서야 한 것인지, 사격 없이 곧바로 돌아갔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게, 만약 북한군이 정말 JSA 분계선을 넘어와 총격을 가했다면 이건 정전 협정 위반을 넘어서서 차원이 다른 중대한 문제가 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지만 해당 내용은 명백한 왜곡이다. 다른 언론들도 해당 사실을 교차 검증을 생각도 하지 않고 베껴 쓰기 바빠 줄줄이 오보를 냈다. 해당 사실은 인지한 연합뉴스는 사과 한 마디 없이 그저 내용 수정한다는 짤막한 알림 글을 작성하고 그런 일 없었던 것처럼 기사 제목을 바꿔 썼다.


8. 사건 이후의 오청성의 한국생활 근황[편집]


오청성은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 2019년부터 매체에 여러차례 공개되었다. TV조선의 탈북민 예능 프로그램인 모란봉클럽 187회에 자기 자신의 탈북기를 소개하며 첫 출연한 이래 고정 출연자가 되어 한회도 빠짐없이 지금까지도 화면에 모습을 비추고 있으며, 동 방송사의 또다른 예능 프로그램인 강적들 285회에도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모란봉클럽에서 얼굴을 최초로 공개하였다. 신장이 182cm라 밝혔는데, 북한은 물론 한국에서도 장신에 속하는 키. 북한에서는 남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컸을 것이다.

탈북민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 '배나 TV'에 출연해 자신의 성장과정부터 군인생활, 탈북과정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는 재일교포 탈북자 출신인 김주성 통일부 통일교육원 전문강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미수복 경기도에 위치한 개성 출신이라 북한말 억양이 거의 없는 편이다.[21] 말투를 들어보면 그냥 평범한 경기도 청년 느낌이다. 본인도 워낙 서울말과 비슷해서 탈북 후 따로 억양 교정을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밝혔다.

총상 자국이 크게 남아 그 흉터를 커버하기 위해 문신도 몇 개 했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문신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고 한다.


8.1. 음주운전 적발[편집]


2019년 12월 15일, 시흥대로에서 시행된 음주단속에 적발되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08%를 초과하였다고 하으며, 적발 당시 고급 외제차를 몰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모란봉클럽에서 나온 얘기지만 오청성의 차가 아닌 남한에서 알게 된 탈북민 지인의 차량을 차 주인에게 말하고 빌려 타는 것이라고 한다. 위에 적혔듯, 2018년 국회 정보위 보고서에 따르면 오청성은 귀순 당시 북한군 동료와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하다 "자차가 아닌 탓에 검문에 걸려 취한 동료와 초병 사이에 폭력 상황이 터지자 두려워 우발적으로 귀순"했다고 밝혀졌는데, 귀순 후에도 남한에서 또다시 음주운전을 하여 비판이 일었다. #

다음 날 상세한 내용이 보도되었는데, 오청성은 술자리가 끝난 후 대리기사를 불러놓고 기사가 차를 찾지 못할까 봐 차를 10여 m가량 운전했다고 한다. 이때 차가 비틀거리는 것을 본 시민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현장에 나와 음주측정을 요구하자 도로를 주행하지 않았다며 음주운전을 부인하는 등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

북한에서는 음주운전 단속이 민간에선 사실상 없고 음주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도 미약하다고 한다.# 이는 오청성이 아직 남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일으킨 잘못인 것으로 보인다. 오청성 말로는 음주 후 도로에서만 주행하지 않으면 되는 줄 알았다고.


8.2. 유튜브 채널 출연[편집]


2021년 8월, 유튜브 채널 ‘안찬일TV’[22]에 직접 출연해 알려준 근황을 보면, # (현재 비공개 처리됨) 직장을 다니면서 부동산 공부를 하고 있으며 관련 학과 진학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현재 사귀는 여자친구도 있다고.

2022년 9월, 친하게 지내는 지인형인 ‘유튜브 북미남_박유성’에도 출연해서 근황을 전했다. # 음주사건에 대해서도 반성했으며 사건 이후로는 술도 예전처럼 자주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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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중국 BAW사의 BJ212 모델이다.[2] 해당 장면은 고스란히 CCTV에 포착되었다.[3] 대대장(중령)[4] 아덴만 작전 때 합참관계자였던 김운용 3군사령관의 지시였다고 한다.[5] 석해균 선장의 수술을 집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6] 비유를 하면, 공격 받은 군함을 침몰되지 않을 정도로만 임시 수리를 하고 항구로 끌고 와 제대로 수리하는 해군의 운용법과 유사하다. 개복부위에 H모양으로 의료용 비닐을 붙여 임시로 봉합해 놓고 재수술을 준비했다고 한다.[7] 결국 아주대병원 측의 당해년도 회계상 대손상각 처리되었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석해균 선장의 치료비 또한 정부에서 정산하기로 하였다.[8] 2011년에 일어난 사건을 몇 년을 질질 끌다가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 납부했다.[9] 판문점 후방 비무장지대 경비 담당[10] 한국군 계급으로 일병에 해당[11] 북한에서는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할 경우 1~3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징역형)에 처해진다.[12] 오청성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군 내의 음주 문화가 상당히 만연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군 복무 중 음주 문제로 사형(!)당한 사례도 있지만 다들 일상적으로 마시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다고.[13] 대한민국 국방부에 해당[14] 대한민국 경찰청에 해당[15] 오청성의 키는 182cm로 밝혀졌는데, 이 정도면 남한에서도 상위권인데 북한에서는 거인 수준이다. 남북 평균키 차이를 생각하면 남한에서의 190cm 이상에 해당한다.[16] 나무처럼 시야를 가리는 물건을 설치하는 일은 정전협정 위반이고, 게다가 40년 전 지들이 병크를 터트려 전쟁 직전까지 갔던 사례가 있으니...[17] 한 박스에 일반적으로 흔히 보는 12개들이 1갑이 8개 들어간 박스라 무려 9600개나 된다고 한다.하루에 4개씩 까먹어도 2400일, 약 7년가량 걸린다.[18] 대위가 가는 게 적절했을 것이다. 대대장은 전체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후방에서 지휘하고 있어야 했다.[19] '2014년 11월 10일, 북한군 한 명이 JSA 내 군사 분계선을 넘어 카메라로 푯말을 촬영했을 때도 20여 발의 경고 사격을 했습니다.'라는 문장 있다. 이 문단에서 링크한 기사에 나오는 내용이다.[20] 다만 이건 합참의 설명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측면도 있다. 상식적으로 총상을 여러군데 입었으면 제일 위중한 곳부터 말하는 게 정상이다. 가슴 배 팔에 총상을 입었는데 팔 등에 총상을 입었다고 말한다면 개념적으론 맞는 설명이지만 실체에선 벗어나버린다.[21] 개성은 분단 이전이나 오늘날이나 경기 방언 사용 지역에 속한다.[22] 안찬일은 1979년 판문점 부근에서 북한군 부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철책을 넘어 귀순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1997년 건국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탈북자 출신 박사 1호 타이틀을 가진 사람으로, 현재 북한 전문가로 활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