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디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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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정치인, 슈츠슈타펠 대장
2. 초기 행적[편집]
독일 제국 에센출신인 디트리히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지원병으로 입대해 서부전선에 종군하며 소위로 제대한 후 제1급 철십자훈장을 받았다. 전후 뮌헨,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의 대학에서 공부하며 1921년에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졸업 후 에센 상공회의소에서 조사원으로 일한 후 다시 뮌헨의 신문사에 들어가 경제기사 편집원이 되었다.
3. 나치당 입당[편집]
1929년 4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한 디트리히는 1931년에 나치당의 신문 국가지도자[1] 로 임명되었다. 1936년부터는 국회의원직도 겸했는데 나치당의 선전보도에 비범한 재능을 발휘하여 1934년에 히틀러가 에른스트 룀을 비롯한 돌격대 간부들을 숙청한 <장검의 밤>사건 당시 <총통은 총통을 살해하려고 한 당원의 도덕성 저하에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루돌프 헤스가 단독비행으로 영국으로 갔을 때 <적국영지에서 사고사>로 보도하기도 했는데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게 밀려 패퇴하기 시작했을때에도 <소련은 붕괴한다>'라는 보도를 계속 냈다. 선전장관으로서 나치당의 선전 국가지도자였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와 함께 일한 경우가 많아 때때로 마찰도 있었다. 그러나 1937년에 괴벨스와 타협하여 디트리히는 선전차관으로 임명되어 1938년엔 정부 보도국장으로 취임했다. 또 친위대에도 들어가 1941년에는 친위대 대장계급을 받았다.
4. 전후 전범 재판과 최후[편집]
1945년 3월에 히틀러로부터 오보책임을 물어 정부 보도국장직에서 해임된 디트리히는 독일이 패전한 후인 1949년에 뉘른베르크 빌헬름 가 재판에 세워졌다.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은 디트리히는 란츠베르크 형무소에 투옥되었지만 1951년에 석방되었다. 후에 저서인 <내가 아는 히틀러>를 저술한 디트리히는 책 속에서 히틀러와 나치즘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디트리히는 1952년 11월에 뒤셀도르프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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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문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