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라 미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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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라 미쓰요
大平 光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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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니시무라 미쓰요(西村 光代)(본명)
→ 오히라 미쓰요(大平 光代)(입양 후 이름)
→ 가와시타 미쓰요(川下 光代)(결혼 후 이름)
출생
1965년 10월 18일 (58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직업
변호사, 작가

1. 개요
2. 생애
2.1. 출생과 어린 시절
2.2. 집단괴롭힘의 시작
2.3. 배신
2.4. 자살 시도
2.5. 부모의 실책
2.6. 탈선의 길로 빠지게 되다
2.7. 갱생과 그 이후
3. 저서



1. 개요[편집]


일본변호사이자 청소년문제협의회 특별위원. 현재는 우메다종합법률사무소(梅田総合法律事務所) 소속 객원변호사다.

방황과 역경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청소년기를 기록한 자서전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1]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이름을 알렸다.


2. 생애[편집]



2.1. 출생과 어린 시절[편집]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38세, 어머니가 37세 때 얻은 늦둥이 무남독녀이다. 어머니는 미쓰요를 낳기 며칠 전까지 직장을 계속 다녔으며, 전치태반이라서 제왕절개출산했다. 아들을 기대했던 아버지는 "입니다"라는 의료진의 말을 듣고는 조금 실망했지만, 갓 태어난 딸의 얼굴을 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딸바보가 되었다. 그리고 에 가서 특별히 제일 좋은 이름을 받아 왔다고 한다.

미쓰요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해서 근처에 사시는 외할머니께서 미쓰요를 돌봐 주셨다. 외할머니는 딸만 4명을 낳았는데, 막내를 낳고 얼마 안 되어 과부가 되는 바람에 혼자서 아이들을 기르며 많은 고생을 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딸들과 외손주들에 대한 정이 각별했고, 장녀가 늦은 나이에 낳은 외손녀인 미쓰요를 몹시 예뻐했다. 외할머니는 어린 미쓰요를 돌보면서 미쓰요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도 주셨다. 외할머니의 이러한 사랑과 가르침은 미쓰요의 마음에 두고두고 남아서 큰 영향을 끼쳤고, 이는 미쓰요의 갱생에도 한몫을 했다.

부모님 또한 바쁜 와중에도 미쓰요를 몹시 사랑했다. 요리가 취미이자 특기였던 아버지는 종종 미쓰요의 도시락을 만들어 주셨고, 미쓰요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 미쓰요의 학교에서 학예회 등의 행사가 있으면 아버지는 직장을 쉬면서까지 참석하여 미쓰요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만나는 이웃들과 친구들에게도 딸의 자랑을 항상 늘어놓아 아버지의 유별난 딸 사랑은 유명했다.

미쓰요는 이렇게 외할머니와 부모님으로부터 온갖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그야말로 귀하고 소중한 아이였다.


2.2. 집단괴롭힘의 시작[편집]


불행의 시작은 미쓰요가 중학교 1학년이던 1978년에 미쓰요의 가족이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어서 집을 넓혀 이사를 가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했지만 학군이 달라져서 전학을 해야 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새로 전학 간 학교의 학생들은 처음에는 미쓰요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만, 곧 이유 없이 미쓰요를 집단따돌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미쓰요를 무시하는 정도였지만, 그 강도는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학생들은 미쓰요의 책상에 외설적인 욕설[2]을 써 놓았다. 등교하여 그것을 본 미쓰요는 경악하여 지우개로 지워 버렸으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교실 책상에 연필이나 펜으로 써놓던 욕설을 나중에는 전교생이 함께 쓰는 음악실, 미술실, 과학실, 가사실 등의 책상에 칼로 새겨 놓았던 것이다. 미쓰요는 낙서를 지우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는데 전교생이 그런 미쓰요를 보며 조롱하곤 했다.

따돌림을 당하면서 미쓰요는 점심도 혼자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점심은 반드시 교실에서만 먹어야 했기에, 다른 곳으로 피해 있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집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싸 주셔도, (어쩌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날에는) 아무리 맛있는 을 사 와도, 미쓰요는 입맛이 없었다. 당시 점심시간마다 학교에 빵을 팔러 오는 트럭이 있었는데 미쓰요는 다른 학생들과 부대끼는 것이 힘겨워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빵을 사러 가곤 했다.

그렇게 미쓰요가 빵을 사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해자들은 미쓰요의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기도 했다. 그 물건들 중에는 부적도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미쓰요를 위해 외할머니께서 특별히 에서 받아오신 물건이었다. 미쓰요는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더욱 마음이 아팠다. 미쓰요가 쓰레기통에서 물건을 찾아 오자 가해자들은 미쓰요의 책상에 쓰레기를 쏟아 놓았다. 온통 쓰레기로 뒤덮인 자리를 보고 미쓰요가 놀라자 가해자들은 미쓰요를 비꼬며 온갖 조롱을 퍼부었다.

아까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지?? 그래서 우리가 좀 모아 주었어. 우리에게 고마워해.


그런데 너,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 정말 잘 어울리더라. 원래 거지였니??


하지만 미쓰요는 아무 항변도 하지 못했다. 곧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었기에 미쓰요는 자리를 깨끗이 치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교실 뒤편의 청소도구함으로 향했다. 그러자 가해자 무리의 한 학생이 그런 미쓰요의 발을 걸었고 미쓰요가 넘어지자 "저런, 내 다리가 좀 길어서 말이야. 그러게 조심해야지."라며 다함께 크게 비웃었다.

매일 이런 괴롭힘을 당하니 몸이 편안할 리가 없었다. 배가 아파진 미쓰요가 화장실 칸에 들어가 있었던 어느 날, 가해자들은 문 위를 통해 미쓰요에게 물을 퍼부었다. 물에 빠진 것처럼 온몸이 흠뻑 젖어버린 미쓰요는 도저히 교실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보건실로 향했다. 깜짝 놀란 보건교사에게 미쓰요는 애써 둘러댔지만, 보건교사는 무언가 짐작한 듯 교실에서 미쓰요의 책가방을 가져다주며 "보건실에서 쉬다 가라"고 권했다. 미쓰요는 오후 내내 보건실에 누워서 앓다가 하교했다.

결국 다음날, 미쓰요는 등교를 포기했다. 의아해하는 부모님에게 미쓰요는 "몸이 아프다"고 대충 둘러댔고, 외할머니는 걱정하며 을 끓여주셨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미쓰요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아프다고 결석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이상하게 여긴 부모님은 미쓰요에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라며 끈질기게 물어보았다. 결국 미쓰요는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을 모두 고백했다.

분노한 아버지는 그날 바로 "선생들은 뭐하고 있는 거냐!!"면서 학교에 전화해서 따졌다. 그리고 고작 2~3일 후, 담임으로부터 "다 해결됐으니 학교에 오라"고 연락이 왔다. 미쓰요는 불안해하면서 등교한 후 교무실에 갔다. 그곳에는 담임과 따돌림 주동자가 있었고, 담임은 둘에게 "서로 화해의 뜻에서 악수하라"고 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고.[3]

따돌림 주동자는 선생이 시키는 대로 손을 내밀기는 하였으나, 미쓰요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화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그냥 선생이 하라는 대로 시늉하는 것이다.'라고 미쓰요는 생각했고 주동자의 손에서 전달된 뜨뜻미지근하고 불쾌한 감촉은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이러한 상황 속에 담임은 분위기를 읽지 못했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귀찮아서 대충 넘어가고 싶었던 것인지, "이걸로 화해한 거야, 잘됐다, 이제 오케이!"라고 말하고는 만족스러운 듯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녹차를 맛있게 들이켰다.

역시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주동자는 오히려 미쓰요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면서 "저 년이 꼰대한테 일러 바쳤다"고 하면서 미쓰요를 고자질쟁이로 만들었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함께 미쓰요를 노려보았다. 이 모든 괴롭힘의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고작 불량학생의 우두머리격 되는 주동자가 미쓰요한테 말을 걸어 왔는데 미쓰요가 듣지 못해 대답을 하지 못했다는 아주 사소한 사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미쓰요의 담임선생과 학교에 알린 후, 눈에 크게 띄는 괴롭힘은 없어졌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자잘한 괴롭힘과 욕설은 계속되었다. 미쓰요는 어른들에게 알린 것을 후회했다.


2.3. 배신[편집]


시간이 흘러 미쓰요는 진급하여 2학년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 사귄 친구들마저 미쓰요를 노골적으로 배신하고 따돌림에 앞장서서 미쓰요는 큰 상처를 받았다.

사실 1학년 때 따돌림을 주도했던 학생들이 여전히 괴롭혔지만 따돌림 주동자와는 다른 반이 되었고 새 학급에서 단짝 친구들을 3명이나 사귀어서 그다지 신경은 안 썼다고 한다. 미쓰요까지 포함해 4명이 단짝으로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미쓰요는 그 친구들과 매일 함께 즐겁게 수다를 떨며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그 무렵 신경통을 앓고 있던 미쓰요는 매일 점심식사 후에 을 먹었는데, 늘 함께 점심을 먹던 3명의 친구들은 "그게 무슨 약이야??"라고 물었다. 미쓰요는 '신경통'이라는 병명이 부끄럽기도 했고, 작년의 트라우마도 있었지만 그들을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병명을 말해주었다. "창피하니까 다른 애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줘"라고 부탁하는 미쓰요에게 그들은 "그럼, 비밀을 지켜줄게", "걱정하지 말고 치료 잘 받고 어서 낫도록 해"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또한 4명이서 함께 쇼핑을 하며 똑같은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고, 학교 밖에서도 종종 만나서 놀곤 했다. 연예인 이야기 등 가벼운 수다부터 심각한 이야기까지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고,사춘기 청소년들이 대개 그러하듯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이야기까지도 기꺼이 나누곤 했다. 작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즐거운 학교생활에 미쓰요는 정말로 행복했다.

하지만… 그 3명의 정체 역시 친구가 아닌 가해자였다. 3명은 미쓰요의 앞에서는 친구인 척하면서 실은 미쓰요의 비밀을 캐내 미쓰요가 모르는 곳에서 그 비밀을 아웃팅하며 비웃고 있었다. 미쓰요의 신경통, 미쓰요가 남몰래 좋아하는 남학생 등등 상당히 예민한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배신하는 과정도 계획적이고 매우 악질적이며 충격적이었다. 중학교 2학년도 거의 끝나가던(3달 후인 4월이면 3학년) 1980년 1월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던 미쓰요에게 동급생들이 다가와, 다짜고짜 "할 말이 있다"고 불러냈다. 미쓰요가 영문도 모른 채 교실로 따라 들어가니, 그곳에는 여러 학생들이 있었고 친구라고 믿고 있었던 가해자들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미쓰요를 장난전화의 범인으로 몰았다.

중학교 2학년 2학기에 접어들면서 반 아이들의 집으로 젊은 여자 목소리의 장난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당신네 집 애가 도둑질을 했다, 성매매도 했다"는 식의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내용의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왔다. 때문에 학부모들은 이 사실을 학교에 알리고 경찰에도 신고했으며, 전화 내용을 녹음할 수 있는 장치까지 설치했다. 하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겨울방학에 미쓰요가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놀던 날이었다. 장난전화 범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범인을 어떻게 잡을까"라는 화제로 옮겨졌다. 그러자 친구 3명이 예를 드는데 무섭고 소름 돋는 것이 "모두에게 미움 받고 있는 애의 뒤를 밟아 본다든지", "대략 범인이 누군지는 짚이는 데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미쓰요가 "범인이 누군지 아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그 세 가해자들은 "개학하면 너도 알게 될 거야."라고 답했다고. 이때 미쓰요는 평소와 달리 무언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가해자들들을 진정한 친구라고 믿고 있었기에 '설마 걔들이 날 범인으로 지목하겠어'라고 생각하고는 계속 함께 놀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미쓰요는 "우리 집에도 그 장난전화가 걸려 왔다"고 밝히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가해자들의 반응은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니?"였다. 애초에 그들에게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그저 여럿이서 미쓰요 한 사람을 몰아세우면서 떼를 지어 비웃고 괴롭히며 그녀의 반응을 보며 즐기는 것이었고, 장난전화 이야기는 거기에 필요한 핑계였을 뿐이었다. 무려 9개월여에 걸친 친구 흉내도 처음부터 미쓰요를 배신할 것을 계획하여 꾸민 장대한 계획의 연극이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이들은 갑자기 장난전화 이야기를 끝내버리고 일방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실대로 말해줄까? 우린 네가 전학 왔을 때부터 재수없다고 느꼈어!"라고 시작해서 미쓰요가 앓고 있던 신경통[4] 얘기를 꺼내며 "할망구 같다", "빨리 죽으라"고 조롱하고 미쓰요가 좋아하는 남학생 이야기를 하며 "그 남자애는 널 싫어한다", "넌 누군가를 좋아할 자격도 없다"고 조롱해 댔다. 미쓰요는 충격을 받아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갔지만 가해자들은 잔인하게도 그런 미쓰요의 등 뒤에 대고 끝까지 폭언과 욕설과 비웃음을 퍼부어 댔다.


2.4. 자살 시도[편집]


지금까지 온갖 괴롭힘들을 견뎌 온 미쓰요였지만 이것은 정말로 큰 충격이었다. 차라리 계속 괴롭힘을 당했더라면 참고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철저히 꾸미고 속여서 친구인 척하다가 배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친구로 믿고 좋아하며 마음을 주었던 만큼 미쓰요의 충격은 아주 컸다.

학교를 뛰쳐나오면서 미쓰요는 그 길로 자살을 결심했다. 집에 돌아가[5] 혈서유서를 쓰고, 돈을 가지고 나와 부엌칼을 하나 구입하고, 발길 닿는 대로 어느 강변으로 가서 배를 찔러 할복자살을 시도했다. 다른 방법도 아닌 할복이라는 엄청난[6] 방법을 시도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하면 가해자들도 자신들이 얼마나 사람을 악랄하게 괴롭혔는지 깨달을 거야.'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주위를 지나가던 타인의 도움을 받아 미쓰요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병원에 실려간 미쓰요는 또다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중상을 입은 배의 상처와 치료과정이 주는 고통은 너무나도 끔찍했고 담임이라는 인간은 병문안하러 와서는 실실 웃어 댔으며 다른 환자들마저 자기 일이 아니라고 면전에서 '너 (배를 찌르는 시늉을 하며) 이거지?'라고 묻는 등[7] 남의 아픔을 흥밋거리로 삼으며 무신경한 언행으로 상처를 주었다. 미쓰요를 위로해 주거나 동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쓰요는 마음의 상처가 아물 새도 없이 또다시 상처를 입고 또 입어야만 했다.

이런 힘든 입원 치료도 겨우겨우 끝나고… 미쓰요는 3학년이 되어 새 학급에 편성되었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학교에서 미쓰요의 입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학생들은 자살 시도까지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그녀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동정해 주기는커녕 이번에는 자살미수 사실을 가지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하나 예를 들자면 3학년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데 미쓰요의 차례 때 어느 남학생이 "쟤 취미는 할복이래!"라고 비꼬았으며 다른 학생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담임 선생은 미쓰요가 2학년 때도 담임이었기 때문에 사정을 다 알고 있었으나[8] 이 선생은 귀찮은 듯이 "이놈들!!" 이라고 한 마디 소리친 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리 한 번 친 다음 수습이 귀찮은지 "자, 다음 사람"이라고 다른 학생한테 자기소개를 시킬 뿐이었다.

또 미쓰요가 받고 있던 정신과 치료를 두고 면전에서 대놓고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비웃거나 무시하는 등 상황이 날이 갈수록 매우 악화일로를 걷기만 했다. 비행 청소년이 된 결정적인 원인도 이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로부터 "제대로 죽지도 못한 년"이라는 막말을 들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녀에게는 온 학교가 쓰레기이자 지옥이였던 것.


2.5. 부모의 실책[편집]


사실 미쓰요가 엇나가게 된 과정을 보면 그녀의 부모에게도 확실히 큰 책임이 있다. 미쓰요의 부모는 딸의 상처받은 마음보다 자신의 체면이 상하는 것이 더 먼저였고, 그것을 딸의 면전에서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자살기도 후 미쓰요는 왕따를 겪었던 그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러나 미쓰요의 부모는 딸의 의견보다 주위의 이목과 체면에만 신경을 쓰며 끝끝내 전학을 보내 주지 않은 채 미쓰요를 본래 다니던 학교로 돌려보내 버렸다. 미쓰요는 "절대로 그 학교에는 돌아가기 싫다"고 호소했으나 부모는 "아직 중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았잖니, 학교는 다녀야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도 또 따돌림을 당할지 모르니, 그 학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제일 좋을 거야"라며 자신들의 의견만 내세웠다. 미쓰요의 상황과 마음은 알려는 생각조차 안 하고 말이다.

그러기는커녕 '학제상 지금은 전학이 어렵다고 하더라'고 변명만 늘어놨다. 학교의 사정이 정 안 되면 다른 학군으로 이사를 가서 학교 측도 어쩔 수 없이 전학을 시켜 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법도 있었을 텐데, 부모는 그런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미쓰요에게만 이해를 강요했다.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미쓰요가 아무리 부모님에게 제발 나 전학 좀 가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또 요구해도 부모님은 딸의 고통보다 남의 이목[9]에만 신경 쓰느라 미쓰요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미쓰요에게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며 다그칠 뿐이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수근거려 이것아! 엄마는 어디 맘놓고 나가지도 못해. 그렇게 엄청난 일을 벌여놓고 학교에도 안 가겠다고 떼를 쓰니… 제발, 학교만은 다녀라. 남들 보기도 창피하니까.''


너의 상처보다 네가 자살 기도를 하는 바람에 내가 이런 꼴을 당한다는 것만 중요하다는 듯한 오로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만 한 부모의 태도는 미쓰요에게 더욱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미쓰요를 정신과에 데려가 치료를 시키는 과정에서도 다들 미쓰요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상처만 주었다. 일방적으로 데려가 검사만 잔뜩 받게 했을 뿐, 미쓰요를 정신과에 데려간 부모도, 정신과의 의료진도, 그 누구도 미쓰요에게 검사에 대해 설명해 주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중학생이라지만 철부지는 아니니 미쓰요 본인도 자신이 정신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받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눈치챘고,'알려주면 거부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나도 어린애가 아니니, 잘 설명해 주면 기꺼이 협조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또 다시 깊은 상처를 받았다.

나중에 미쓰요가 나름대로 노력해서 미용학교에 합격했을 때는 어머니는 잠시 기뻐했지만 이내 곧 미쓰요의 면전에서 "고등학교도 못 가고 미용학교에 가는 것을 친척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라고 말하며 여전히 자신의 하나뿐인 친딸의 안위보다 빈말로도 딸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없는 남들이 자신을 볼 시선만을 신경썼다. 미쓰요가 "그렇게 창피하냐"고 따지자 어머니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듯했지만 사과하지 않았고 그저 어물어물 입을 다물어 버릴 뿐이었다. 결국 미쓰요는 "그렇게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 이목이라는 거, 그 벌벌 떠는 체면이라는 거, 다 때려부수고 팽개쳐 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심각한 탈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이 갈수록 깊어져 가는데도 부모님은 한 번도 미쓰요를 꾸짖거나 혼내지 않았다. 그저 매달리며 빌거나 미쓰요가 보는 앞에서 한심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울기만 할 뿐. 사실 천성이 너무 착해 엇나가면서도 본격적으로는 타락하질 못했던, 그리고 맘껏 비뚤어지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자기혐오를 느끼고 있던 미쓰요는 그런 부모에게 실망했다.

실은 미쓰요도 내심 이런 건 그만두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혼내고 꾸짖어 주기를 바랐으며, 한 번 크게 혼나고 나면 당장 손을 씻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자신이 멈출 계기를 제공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고, 실망감은 분노로 바뀐 미쓰요는 부모에게 폭력까지 휘두르게 되었다.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울기만 하는 주제에 딸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세상 이목에만 신경을 쓰고 체면만 따지는 어머니는 맞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꾸짖지 않는 부모에 대해 "이렇게 지독한 짓을 하는데도 꾸짖지 않다니, 나 같은 건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거냐"고 생각하며 더욱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사실 보다 보면 미쓰요가 부모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는 게 무리도 아니다.[10]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한 부모님과 화해했다지만, 그리고 미쓰요 자신도 그 나쁜 짓들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겠다고 하지만 이미 딸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고 결국 그녀를 이해해주고 갱생시켜 준 것도 결국 부모가 아니라 제3자인 오히라 히로사부로(大平浩三郞) 씨인 것을 생각하면 결국 미쓰요의 부모는 하나뿐인 친딸에게 아무런 도움이 못 되었다. 악인은 아니지만 단지 그뿐이었고, 너무나 용기가 부족하고 나약했다.

사실 미쓰요가 원한 것은 소박한 것이었다. 누군가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해 주고 인간으로 대해 주는 것,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를 이해해 주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다가와 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2.6. 탈선의 길로 빠지게 되다[편집]


결국 가기 괴로워진 학교를 자꾸 빼먹게 되고, 혼자 밤거리를 방황하던 미쓰요는 폭주족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다 학교에 가도 수업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비행과 등교거부를 계속하면서 그로 인해 학업 성적도 고등학교 진학이 불가능할 정도로 처져 버렸으나 사실 반 아이들이 진학 문제로 수다 떠는 것을 듣고는 미쓰요도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그러던 중 미쓰요는 단골 미용실의 친하던[11] 미용사 언니(당시 25세)로부터 미용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언니는 왜 미용사가 되려고 생각했어요?"라는 15세 소녀 미쓰요의 질문에 미용사 언니는 "어려서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을 예쁘게 꾸며 주는 일이 즐거웠고, 무언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든든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미쓰요는 '미용사도 괜찮겠다, 미용사가 되자'고 생각했다. 미쓰요는 열심히 공부해서 미용전문학교에 합격해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한테 합격통지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담임이라는 사람은 격려하고 응원해 주어도 모자랄 판에 합격통지표는 쳐다도 안 보고 미쓰요의 노랗게 염색한 머리만 보고 ''그 양아치 같은 꼬락서니로 네가 뭘 하겠어?"라고 불쾌하다는 듯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나 미쓰요는 사실 이때 선생님이 "힘내라, 열심히 해라" 라는 말만 했어도 머리도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다시 처음부터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전술했듯 어머니의 반응도 비슷했다.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받은 미쓰요는 또다시 의욕을 잃었고, 간신히 합격한 미용학교도 도중에 그만둬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나중에 이 일을 후회했다. 내가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라는데, 그때 의욕을 잃고 다시 나쁜 길로 빠져 버리지 말고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훌륭하게 미용사가 된 모습을 보여주어 할말 없게 만드는 것으로 복수를 한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하고.

그 후로는 다시 폭주족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온갖 비행을 저지르고 살았다. 자전거 절도, 음주 등으로 유치장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게다가 걸핏하면 '왜 나를 낳았어!'라면서 부모마저 폭행했다고. 그러나 이 폭주족 친구들마저도 미쓰요의 할복자살 시도라는 과거를 알고 따돌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같이 어울리던 폭주족 중 고지라는 소년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자 고지의 아파트에 모여 장례를 치렀는데, 이때 고지를 좋아하던 유카리라는 소녀와의 사이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된다.

유카리: (술에 잔뜩 취해 미쓰요를 향해) 원래 네가 죽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미쓰요: 무슨 말이야?

유카리: (미쓰요의 자살시도를 언급하고, 고지의 꿈을 이야기한 후) 그런 애가 왜 죽어야 해? 죽고 싶은 넌 왜 아직도 살아 있냐?

미쓰요: 친구라고 믿었는데 왜 그런 가슴 아픈 소리를 하냐?

유카리: (비웃으며) 친구라고? 여기 있는 누구도 널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아!! (얼마 전 다른 친구들이 각성제 주사를 맞을 때 옆에서 보고 있던 미쓰요를, 그 친구들이 "넌 이런 거 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보냈던 일을 언급하고) 사실은 널 걱정해서가 아니야. '자살시도할 정도로 이상한 앤데, 약까지 먹으면 무슨 짓할지 몰라서' 그랬던 거라고.

미쓰요: 그럼 내가 걔들을 찔렀으면 좋았겠니?

유카리: 그럼!! 나라면 걔네를 찌르지, 네가 만약 그랬다면 진정한 친구로 삼았을 텐데.

그리고 미쓰요는 그 자리를 뛰쳐 나왔다고 한다.[12][13]

결국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마침내 야쿠자 세계까지 손이 닿게 되었고 그 두목과 결혼까지 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16세. 야쿠자들의 세계에 입문하려면 등에 문신을 해야 했는데, 미성년자였던 미쓰요는 부모님의 허가가 필요했다. 허가 도장을 받기 위해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았으나 허락을 해 주지 않자 화가 난 나머지 또 부모님을 때리고 강제로 도장을 찍어 왔다. 문신을 한 후엔 문신을 새길 때의 고통 때문에 위궤양까지 생겼다.

하지만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40~50대가 젊은 층에 속하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16살짜리가 사모님이랍시고 앉아 있다며 무시와 조롱을 받기 일쑤였다고. 그러던 중, 미쓰요를 줄곧 사랑하고 걱정해 주시던 외할머니[14]마저 돌아가시자 엄청난 절망감에 빠져 모든 게 지겨워져서 남편과도 결혼생활 6년 만에 이혼했다.


2.7. 갱생과 그 이후[편집]


그 후 긴자의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다가 23세 때 만난 현재의 양아버지이자 자신을 도와준 오히라 히로사부로 씨와 우연히 재회하였다. 원래 히로사부로는 미쓰요의 아버지와 사업상 지인이었기에 미쓰요도 어렸을 때부터 히로사부로와 안면이 있었다. 히로사부로는 미쓰요의 망가져 버린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필사적인 설득을 여러 차례 했다. 이런 히로사부로의 노력에 처음에는 그의 꾸짖음을 삐딱하게 받아들였지만 "너의 인생이 망가진 것은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지금 너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은 너 스스로의 책임이다." 라고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자 그 때 부터 다시 한 번 삶에 대한 의지를 얻게 된다. 부모조차 제대로 해 주지 못한 일이던 자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혼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감동에 미쓰요는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그 후 한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중학교 1학년 수준의 지적 상태에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공인중개사에 이어 사법서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그리고 히로사부로의 권유로 사법시험에도 도전했다. 당시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이수한 사람에게는 사법고시 1차 시험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미쓰요는 어느 통신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여 학점을 취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미쓰요는 통신대학 입학을 위해서도 중고등학교 과목들을 공부해야 했다. 학교폭력과 방황에 시달리며 중학교 공부에도 제대로 전념하지 못한 미쓰요에게는 너무도 힘든 과정이었지만 히로사부로와 여러 어른들이 격려해 주고 때로는 적절히 꾸짖어 주기도 하면서 미쓰요는 결국 해냈다.

통신대학에 입학했을 때 미쓰요는 학교 관계자에게 "통신교육으로 교양과목을 이수해도 사법고시 1차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나요?"라고 질문했다. 학교 관계자는 "사법고시가 뭔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도쿄대학이나 교토대학 같은 일본 최고 명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우수수 떨어지는 시험인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15] 미쓰요는 무척 기분이 나빴지만, '보란 듯이 합격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때 미쓰요는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일을 떠올렸다. 미용학교 합격에 대해 담임교사와 부모님이 보인 시큰둥한 반응에 좌절하고 절망하여 비행에 빠져 버리고 어렵게 합격한 미용학교도 중도에 포기했던 일이었다. 미쓰요는 그 일을 다시금 후회했다. 그리고 '같은 상황이라도, 나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구나'라고 깨닫고 열심히 공부했다.

마침내 미쓰요는 29살의 나이에 일본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인 사법시험[16]에 합격해 드디어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연을 끊고 지냈던 부모님과도 곧 눈물의 화해를 했다. 미쓰요의 부모 역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고, 특히 친아버지는 "내가 남의 이목만 신경 쓰느라 정작 딸의 고통은 모르고 지냈다"며 히로사부로를 찾아가 "아버지가 될 자격도 없는 나 대신, 미쓰요를 양녀로 받아 달라"고 직접 부탁했을 정도. 이 부탁이 받아들여져 미쓰요는 히로사부로의 양녀가 되었으며 성씨도 '니시무라'에서 '오히라'로 바뀌었다. 얼마 후 미쓰요의 친부는 직장암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자서전인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통해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17] 절망에 빠진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청소년 문제 협의회 특별 의원직을 맡으면서 비행청소년들이나 학부모, 교육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미쓰요가 변호사가 되고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출판한 후 가해자였던 옛 동급생들이 미쓰요의 앞에 나타났다. 이 책으로 인해 자신들의 과거의 죄가 밝혀져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평판이 대단히 나빠져 회사에서 해고당하거나 이혼까지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는 가해자들은 진심으로 사죄하기는커녕 "우리 예전에 친구였지? 그땐 어려서 잘 몰랐어."라는 뻔뻔한 변명을 했다. 그러자 미쓰요는 그 가해자들의 면상에 물을 뿌렸다. 심지어 1학년 때부터 괴롭힌 가해자들에겐 싸대기를 날렸다. 그리고 이때 그녀가 미용학교에 합격했을 때 망언을 내뱉은 담임도 나타나서는 "내가 그 말을 한 덕분에, 네가 더 큰 꿈을 꿀 수가 있었다."라는 망언을 했다. 그러자 미쓰요는 "아 그러세요, 그러면 내 눈앞에서 꺼지세요."라고 경멸 어린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일로 인해 그 교사는 학교에서 해고당했다.[18]

2000년 9월 24일자 MBC 시사매거진 2580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오상우 취재)' 출연해 한국의 비행청소년 계도와 지원에 대한 조언을 했다.

2001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전국의 소년원 원생들과 학부모, 지도위원들 앞에서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한국어를 사용해 가며 강연을 펼치기도 했다. MBC뉴스데스크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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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는 <경림이의 길거리 특강>에 출연하기도 했다. 영상

2003년에는 여성 최초로 오사카시 부시장이 되었다. 미쓰요의 정책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악전고투했지만 그녀는 열심히 일하고 2005년 12월에 사임했다. 미쓰요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외할머니의 손에 자란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었고 부시장을 그만둔 후에는 출가하여 승려가 될 생각이었다. 하지만 출가를 준비하며 불교 공부를 하면서도 문득문득 '무언가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고, 그러던 차에 가와시타 기요시 변호사가 운영하는 법률사무소로부터 "객원 변호사로 와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미쓰요는 그 제안을 수락했고, 3개월 만인 2006년 2월에 기요시와 결혼했다.[19]임신하여 2006년 9월 3일에 딸 하루카(悠, 현재 17세)를 출산했지만 하루카는 다운 증후군인 데다 심장에 이상을 가진 아기였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루카를 기르며 하루카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육아일기 및 자신의 이야기를 <오늘을 산다>란 책으로 펴냈다.[20]

그리고 <오늘을 산다>에 따르면 미쓰요는 어머니와 같이 살았지만 행복은 잠시, 어머니의 말씀이나 행동이 좀 이상하다 싶을 때가 잦았다. 집과 사무실이 가까웠는데, 어머니가 자꾸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얘기는 밤에 같이 하세요."라고 말씀드리고 귀가하시게 했지만, 계속 마음에 걸려 어느 날 집에 가 봤다. 하지만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고 거기다 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 어머니를 찾아 동네를 헤매다가 채소가게에서 발견했지만 어머니는 지갑도 안 가지고 있었다고.

즉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게 했더니 검사 결과 병원에서는 알츠하이머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병의 진행은 조금은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약물치료로 1년간은 딸의 얼굴도 알아볼 수 있고 평상시처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지만, 그 후에는 병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미쓰요는 "겨우 1년이라고는 해도, 어머니의 병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둘만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부탁했다. 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했기에 미쓰요가 지방에서 강연할 때 같이 모시고 가기도 했다. 강연이 끝나면 온천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등 모녀간의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1년 후에는 증상이 악화되어 툭하면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고. 하루 24시간 3교대로 간병인이 왔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 사정을 케어매니저에게 털어놓고 상담했더니 갓 생겨난 그룹홈을 소개해 줬다. 그룹홈이란 지적장애인이나 치매노인 등이 자립적으로 생활하도록 조직된 시설로, 일상생활을 돕는 도우미를 배치하고 환자 5~6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라고 했다. 미쓰요가 그룹홈을 직접 견학해 보니 식사 등은 모두 시설 내에서 만들었고, 모든 직원들이 환자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결국 그곳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처음 그룹홈에 입주하셨을 때 1주일에 1번은 꼭 면회를 갔지만, 미쓰요가 돌아오고 난 후면 어머니가 불안정해지면서 직원들에게 떼를 쓰신다고 했다. (미쓰요가 없으면 밥도 안 먹겠다고 하시고, 집에 가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미쓰요는 다시 집으로 모셔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미 병은 악화되어 가고 전문가의 돌봄을 받으며 지내는 일상, 그 평온한 일상이야말로 기억이 사라져 가는 어머니께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리고 미쓰요는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와 화해하고 그리고 알츠하이머가 발병하기 전 어머니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던 것 덕분에 마음 속의 짐을 많이 덜 수 있었다고.

2015년에는 의사 카마타 미노루(鎌田實)와 <비교하지 않는 삶>이라는 대담집을 펴냈다.

3. 저서[편집]


  •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응원합니다, 당신의 새 출발을
  • 친구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
  • 비교하지 않는 삶(공저)
  • 오늘을 산다
  • 사람됨을 가르쳐라

[1] 2000년도에 출판되었다가 201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2] 미쓰요를 창녀처럼 묘사한 내용의 글이었다.[3] 당시 미쓰요는 "화해의 악수라니 이게 무슨 뜻이야?"라고 어리둥절했다고 한다.[4] 미쓰요는 그 3명을 친구라고 생각해서 비밀까지도 말해준 것이었으나 오히려 확성기에 대고 외친 꼴이 되고 말았다.[5]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 계시지 않았고, 하필 마침 외할머니도 외출 중이었다.[6] 할복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자살 중에서도 굉장히 고통스러운 자살 방법이다![7] 미쓰요의 자살 시도는, 여러 신문에도 크게 보도될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8] 이건 학교 차원에서 병크인데, 왕따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됐던 인간을 '미쓰요를 담당했으니 제일 잘 알 것이다'라며 그대로 3학년 때도 미쓰요의 담임으로 유임시킨 것이다.[9] 자살미수 이후 많은 이웃들이 걱정해 줬지만 일부 사람들은 '부모가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아이가 저런 소동을 피운 거야?!'라며 조롱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고통스러웠어 봤자 당사자인, 그리고 아직 어리며 한창 예민한 나이인 딸만 했을까.[10]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의 감상평을 찾아보면, "미쓰요의 부모에게 너무나 기가 막히고 분노했다"는 독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떻게 부모가 돼가지고 저 정도로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한심하기 짝이 없을 수가 있으며, 자기밖에 모르느냐고.예시1 예시2 예시3[11] 미쓰요의 외할머니와 같은 카가와현 출신이라 미쓰요와 말이 잘 통하고 친근감이 느껴졌다고 한다.[12] <오늘을 산다>에서 미쓰요는 폭주족 애들이 본인한테 각성제 주사를 안 놔 준 걸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기까지 와서도 외톨이라니, 왜 이런 데서까지 따돌림을 당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누구도 믿고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까지 했다고.[13] 일본에서 각성제는 사실상 메스암페타민, 즉 필로폰을 지칭하는 은어인 걸 생각하면 고마워할 만도 하다.[14] 병상에서 사망하던 그 순간까지도 외손녀인 미쓰요의 걱정만 했으며, 입버릇처럼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미쓰요가 여기 오고 내가 거기에 대신 가 있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15] 미쓰요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빴겠지만, 학교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중, 고등학교 교육 과정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미쓰요가 합격할 가능성이 낮았기에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6] 기수로는 수습 49기.[17]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저 정도로 심각한 과거를 커밍아웃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양아버지 히로사부로도 미쓰요에게 몸의 문신을 지우길 권했으나, 미쓰요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감추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놔 뒀다고.[18] 그림으로 그린 듯한 인과응보라서 정말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평판은 대단히 중요하고 평판이 나빠지면 사회생활이 힘들어지는 것은 똑같지만 일본은 특유의 와(和) 문화 때문에 그게 유달리 심하다. 무엇보다 그 가해자라는 놈들이 평소에도 평판이 좋았을 리 만무했고 전부터 여기저기서 단단히 찍혀 있었던 참에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출판한 뒤 자신들의 과거의 죄가 밝혀지자 너 잘걸렸다 하는 식으로 본보기를 삼았을 것이 뻔하다.[19] 양쪽 다 재혼이었는데 당시 자식은 없었다.[20] 당시 미쓰요의 책을 번역했던 역자 김인경이 직접 일본에 방문해서 미쓰요와 하루카를 만나고 온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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