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덴부르크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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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덴부르크 대공국
Großherzogtum Oldenburg

파일:올덴부르크 대공국 국기.svg
파일:올덴부르크 대공국 국장.png
국기
국장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German_Empire_-_Oldenburg_%281871%29.svg.png
1815 ~ 1918
역사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올덴부르크 공국
바이마르 공화국
지리
위치
독일 니더작센
수도
올덴부르크
인문환경
언어
독일어
종교
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민족
독일인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원수
대공
1. 개요
2. 약사
3. 왕사(王史)
3.1. 대공위 요구자



1. 개요[편집]


파일:Flagge_Herzogtum_Oldenburg.png
▲ 올덴부르크 대공국 국기.

파일:올덴부르크 대공국 국기.svg
▲ 또다른 버전의 국기. 1871년 이전과, 1차대전 이후 자유주 시절에 쓰였다.

북독일 연방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대공국이었으며 수도는 올덴부르크였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6,427 km², 인구 54만 5천 가량.


올덴부르크 국가(國歌) "Heil dir, O Oldenburg". 아우구스트 대공의 비(妃)인 스웨덴의 세실리아[1]가 작곡했고 테오도르 폰 코베(Theodor von Kobbe)가 작사했다.


2. 약사[편집]


이 대공국은 오늘날 니더작센에 위치한다. 올덴부르크 가문은 1101년 창건되었고, 시조는 엘리마르 1세 백작이다. 계속 백작으로 지내오다가 1448년 디트리히 백작의 장남 크리스티안덴마크 국왕으로 선출되면서 본가는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군주로 가서 통치했고, 올덴부르크 백국은 분가한 방계에서 다스리다 1667년 대가 끊겨 프레데리크 3세부터 1773년 크리스티안 7세까지 올덴부르크 가문 본가인 덴마크 국왕의 동군연합하에 있었다. 이후 1774년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이자 러시아 제국 황제가 된 표트르 3세 (엄밀히 말하면 그와 예카테리나 2세의 아들인 파벨 1세 (당시 황태자))에게 넘어가면서(정확히는 예카테리나 2세 주도하에 덴마크와 영지 맞교환) 공국으로 승격되었고 표트르 3세의 당숙이자 스웨덴 국왕 아돌프 프레드리크의 동생으로 뤼베크 주교였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Friedrich August von Schleswig-Holstein-Gottorf 1711~1785)가 새로운 공작으로 선출되면서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분가로 넘어가게 되었다. 1815년 대공국으로 승격되었다. 때문에 올덴부르크 대공가는 본가는 올덴부르크 왕조지만 대공국을 통치한 왕조 이름은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다.

1848년 혁명의 여파로 1849년에는 자유주의적 흠정헌법을 채택했으며, 1852년의 개정으로 독일 연방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으로 일컬어졌다. 한편 1853년 야데(Jade) 조약으로 프로이센 왕국에 야데 만 연안지역 3.13 km² 를 할양하였다. 프로이센은 이 월경지에 1869년, 해군 기지인 '빌헬름스하펜' 항구를 세웠다.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본토 이외에도 다른 월경지를 두 군데 거느리고 있었다. 이 중 가장 동쪽에 있는 부분은 뤼베크 공령으로 불렸다.

북독일 연방을 거쳐 1871년 독일 제국에 가맹했다.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한 주(Freistaat Oldenburg)로 바뀌었고, 1946년까지 지속되었다.

니더작센의 일부가 된 올덴부르크에서는 독자적인 주가 되고자 하는 주민들의 요구가 계속되었다. 1956년과 1975년 두차례 주민 투표로 니더작센에서 독립하자는 결의문이 채택되었지만 1976년 독일 정부가 올덴부르크의 독립을 막는 법을 통과시키며 흐지부지 되었다.

3. 왕사(王史)[편집]




대공국 승격 이후
  • 빌헬름 (1785 / 1815 ~ 1823)[2]
  • 페터 1세 (1823 ~ 1829)[3]
  • 아우구스트 (1829 ~ 1853)
  • 페터 2세 (1853 ~ 1900)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1900 ~ 1918)


3.1. 대공위 요구자[편집]


대공가의 수장이 사용하는 직함은 올덴부르크 공작(Herzog von Oldenburg)이다. 수장을 제외한 대공가의 남계 구성원은 올덴부르크의 공작(Herzog (이름) von Oldenburg로 표기해 구분)을 칭한다.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1918 ~ 1931). 슬하 2남 5녀.[4] 그 중 장녀인 조피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차남 아이텔 프리드리히 왕자와 결혼했고, 막내딸 알트부르크는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와 결혼했다.
  • 니콜라우스 폰 올덴부르크 (1931 ~ 1970). 1897 ~ 1970. 첫번째 부인이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의 여동생 발데크피르몬트의 헬레네[5]다. 막내여동생 알트부르크는 처남 요시아스와 결혼하면서 남매가 겹사돈을 맺었다.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다. 그 중 4남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의 장남 파울 블라디미르는 가톨릭 신자에 정치적으로는 우파고, 5남(8번째 자녀) 휴노의 두 딸 중 장녀가 독일을 위한 대안(AfD)당의 현 부대표[6] 중 한 명인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흐(Beatrix von Storch)이다. 즉, 베아트릭스는 올덴부르크 대공가의 현 수장인 크리스티안과 사촌지간. 베아트릭스는 2014년부터 2017년에 유럽의회 의원, 2017년부터는 연방하원의원으로 재직 중이다.[7] 2016년 초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향해 사실상 망명하라는 막말을 한(...) 전적도 있다. 5남(막내) 요한 프리드리히의 셋째 자녀 에일리카[8]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차남(2남 5녀 중 막내) 게오르크 폰 합스부르크와 결혼했다.
  • 안톤 귄터 (1970 ~ 2014). 1923 ~ 2014
  • 크리스티안 (2014 ~ ). 1955 ~
    • 3남 1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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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스타브 4세 아돌프바덴의 프리데리케의 막내딸이며, 바덴 대공비 조피의 막내 여동생이다.[2] 1774년 새로 선출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공의 아들.[3] 1785년부터 1823년까지 빌헬름의 섭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공의 동생 게오르크의 아들. 이후 통치자들은 모두 페터 1세의 후손이다.[4] 그 중 차녀와 차남은 요절해서 실질적으로는 1남 3녀다.[5] 참고로 빌헬미나 여왕(넷째 고모 발데크피르몬트의 에마의 딸, 니콜라우스의 외숙모이기도 하다), 카를 에두아르트올버니의 앨리스 공녀(다섯째 고모 발데크피르몬트의 헬레네의 자녀)와 사촌이다.[6] 한국 언론에서는 부당수라고도 표현한다.[7] 폰 슈토르흐는 결혼 후 성씨다. 결혼 전 이름은 Beatrix Amelie Ehrengard Eilika.[8] 에일리카 역시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흐, 현 올덴부르크의 수장 크리스티안과 사촌 지간이다.[9] 참고로 현존하는 남계후손은 17명이다. 니콜라우스가 대공세자로 있었을 때 계승자는 니콜라우스 한 명 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