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군나르 솔샤르 (r2019031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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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군나르 솔샤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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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
파일:맨유OGS.jpg
이름
올레 군나르 솔샤르
Ole Gunnar Solskjær

본명
올레 군나르 솔셰르[1]
Ole Gunnar Solskjær
출생
1973년 2월 26일 (46세)
노르웨이 뫼레오그롬스달주 노르뫼레구 크리스티안순시
국적
노르웨이 파일:노르웨이 국기.png
신체
179cm|체중 80kg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2]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클라우센겐 FK(1989~1994)
몰데 FK(1994~199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996~2007)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8~2011 / 리저브)
몰데 FK(2011~2014)
카디프 시티 FC(2014)
클라우센겐 FK(2014~2015 / 유스)
몰데 FK(2015~2019)[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18~2019)
국가대표
67경기 23골(노르웨이 / 1995~2007)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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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동안의 암살자[39]


1. 개요
2. 클럽 경력
2.1. 맨유 시절 이전과 입단하기까지의 과정
2.2.1. 슈퍼 서브 솔샤르
2.2.2. 영광의 선수 생활
2.2.3. 은퇴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4.1. 공격수인가? 공격형 미드필더인가?
5. 감독 경력
6. 기타
7. 경력
7.1. 선수 경력
7.1.1. 대회 우승
7.2. 리그 기록
7.3. 감독 경력
7.3.1. 대회 우승




1. 개요



노르웨이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5년부터 몰데 FK 감독을 맡고 있으며, 2018년부터 시즌 종료시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임시 감독을 맡고 있다.[4]
별명은 '동안의 암살자'[5]. 슈퍼 서브라는 별명을 가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등 번호인 20번에 이름인 'Ole'를 붙여서 '20LEGEND'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노르웨이인이란 소리도 들을 정도로 명성을 날린 축구선수이다. 굉장히 동안이라서 1996년 맨유에 입단했을 때, 라이언 긱스[6]는 그가 선수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어린 팬이 연습장 구경을 허가받았거나 연습생인 줄로 생각했다고 한다. 심지어 축구계의 대표 노안 아르연 로번보다 11살 연상인데 아무리 봐도 로번이 연상으로 보인다.[7]
실력도 뛰어났지만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선수로 동료와 팬들 사이에서 정평이 났으며 팀에 대한 헌신도 매우 뛰어나서 현역일 때는 물론이고 은퇴한 지금도 팬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구단에서 팬클럽에게 올드 트래포드에 공식적으로 걸 수 있는 현수막 수량을 2개로 지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솔샤르의 응원 현수막일 정도다.[8] 인상적인 골을 여럿 넣었지만 특히 트레블을 달성한 1999년 UEFA 챔피언스 리그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서 추가 시간에 기록한 극적인 역전골과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시합에서 교체 출전 11분 만에 4골을 넣은 것이 유명하다.

2. 클럽 경력



2.1. 맨유 시절 이전과 입단하기까지의 과정


아버지는 노르웨이 국가 대표까지 지낸 레슬링 선수로 솔샤르 본인도 꽤 오랫동안 레슬링을 하다가 상당히 늦은 나이에 축구로 전향했다. 포지션은 축구 시작할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오로지 미드필더공격수였다. 어릴 때는 체격 문제도 있고 해서 축구를 계속할지를 고민한 적도 있다고. 17세 되던 1989년에 노르웨이의 클라우센겐 FK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오타 컵 경기에서 단 6경기만에 17골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으며 1995년 몰데 FK로 이적해서 첫 해에 20골을 기록하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몰데에서는 총 38경기 31골을 기록했으며 이런 활약에 힘입어 독일과 이탈리아 팀이 관심을 보였다. 96년도 여름 이적시장 당시 몰데의 감독은 팀의 에이스인 솔샤르를 맨체스터 시티 FC에버튼 FC에 1.2m에 팔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9]
한편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당시 프리미어 리그 톱 공격수였던 앨런 시어러를 영입하려고 노력했지만 막판에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 하이재킹당해서 실패한 후, 평소 눈여겨 보았던 솔샤르에 1.5m의 영입제의를 했다. 이 금액은 당시로서는 노르웨이 리그 레코드에 상당하는 금액이었고 노르웨이 리그의 낮은 인지도, 솔샤르가 노르웨이 밖에서는 듣보잡(...)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몰데의 감독은 퍼거슨의 팩스를 받았을 때 솔샤르의 에이전트가 몸값을 올리려고 꼼수를 쓰는 줄 알고 팩스를 버렸을 정도. 혹시 몰라 맨유 측에 확인전화를 해봤는데 그 팩스가 진짜라고 인증을 받자 팀이 발칵 뒤집어졌다. 맨유의 이러한 파격적인 제의가 알려지고 나서 노르웨이가 술렁였으며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솔샤르는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 그러나 쟁쟁한 선수들(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등)과 함께 뛸 수 있다는 감독의 설득으로 솔샤르는 이적 결심을 했고 1996년 여름 올드 트래포드에 도착했다.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No.7768444 ] 이미지 등록됨
2OLEGEND, 트레블의 주역

2.2.1. 슈퍼 서브 솔샤르


당시 솔샤르의 영입은 완전히 뜻밖의 영입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노르웨이 리그는 1부 리그라 해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데다 솔샤르의 활약도 노르웨이 내에서나 유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맨유에는 에릭 칸토나, 앤디 콜이라는 탁월한 공격수가 버티고 있었기에 주변에서는 그가 그 둘의 백업자원으로 첫 시즌을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10]
그러나 예상외로 기회가 일찍 찾아왔고 블랙번 로버스와의 시합에서 교체로 출전해서 6분만에 데뷔골을 넣었으며 첫 시즌 19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1998/99 시즌, 드와이트 요크가 이적해 옴에 따라 벤치 멤버로 밀려났고 맨유 구단에서도 그를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팀으로부터 팩스를 받은 솔샤르가 퍼거슨 감독을 찾아갔을 때, 그의 이적허가는 감독의 뜻과는 무관하며 그가 여전히 팀 구성에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벤치로라도 팀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남겠다고 하여 그대로 남게 된다.[11] 이후로 선발보다는 교체로 주로 출전했는데 이것은 솔샤르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기적을 일궈내는 해결사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 노팅엄 포레스트전에서 경기 종료 11분을 남겨두고 교체 출전하여 무려 4골을 터트리는 결정력을 보여주었으며, 이 이후 '슈퍼 서브'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는다. 이 별명이 보여주듯 교체로 출전하면서 결정적인 골을 많이 넣었기 때문에 그가 벤치에 앉아있기만 해도 상대팀이 압박을 느낀다고 할 정도였다. 또한 아스날 FC아르센 벵거 감독은 그를 평하기를 "98-99 맨유 트레블 역사, 그 중심에는 셰링엄과 솔샤르가 있었다."라고 하며, 그가 은퇴할 때 '그는 아주 효율적인 선수였다.'라는 요지의 인터뷰도 했다. 다만 솔샤르 본인은 슈퍼서브라는 별명을 싫어했던 듯. 그리고 의외로(?) 선발로도 자주 출전했다. 드와이트 요크, 앤디 콜과 선발 경쟁을 해서 한때 그 둘을 벤치로 보낸 시기도 있으며 특히 베컴이 부상으로 장기 결장했을 때나 이적 때는 오른쪽 윙으로도 자주 출장했다. 뭐야 미드필더 맞네

2.2.2. 영광의 선수 생활


꾸준히 성적을 쌓아가던 솔샤르는 1998년 리그 종반에 뉴캐슬과의 시합에 출전하게 된다. 당시 맨유는 아스날과 리그 우승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중이었고 뉴캐슬과의 시합에서 최소한 무승부는 기록해야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시합에서 1:1로 팽팽하게 경기가 진행중이던 찰나, 뉴캐슬의 로버트 리 선수가 결정적인 역습 기회를 잡아 텅 비어있던 맨유쪽 골문으로 쇄도했다. 10명의 선수가 모두 뉴캐슬쪽에 몰려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맨유로서는 치명적인 위기였다. 이 때 솔샤르는 전속력으로 로버트 리 쪽으로 내달려서 따라잡아 백태클을 날려서 맨유의 실점 위기를 저지하고 퇴장당했으며 다음 시합에 출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맨유 서포터들은 팀에 대한 그의 헌신적인 태도에 깊이 감명받았고 퇴장당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일은 이후 그가 서포터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와 인기를 누리는 계기가 되었다.[12]
그리고 다음 시즌 1998/1999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맨유의 트레블은 절망적으로 보였다. 맨유는 로이 킨폴 스콜스가 경고누적으로 출장하지 못했고, 철의 수문장 올리버 칸이 버티고 있던 FC 바이에른 뮌헨의 골문은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경기 내내 끌려다니다 0:1로 지고 있던 상황. 챔피언스리그 트로피 '빅 이어'에 뮌헨의 리본이 감기고 있던 순간.[13]
파일:external/goal.ge/MU.jpg
그러나 91분, 교체투입된 테디 셰링엄이 로스타임에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데 이어 93분에 터진 솔샤르의 역전골로 트레블 달성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맨유 역사상 가장 빛난 시즌인 1999년의 트레블은 바로 솔샤르의 발끝에서 나온 것이다. 퍼거슨 감독이 2011년 11월에 감독 재임 25주년 기념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을 골랐을 때, 첫 손가락에 꼽은 것이 바로 이 골이다.
2002/03 시즌에는 맨유 입단 후 100골을 달성하였고 리그 우승도 경험한다. 2003/04 시즌에는 데이비드 베컴의 이적으로 인해 오른쪽 윙으로 뛰게 되지만, 시즌 초반 부상으로 그의 커리어 내내 발목을 잡으며 따라다니게 되는 기나긴 무릎 부상에 시달리게 되었고, 부상 회복 후 다시 부상이 재발되는 불운으로 결국 2004/05 시즌에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팬들은 계속해서 그를 기다렸고 그가 없는 경기에도 그의 응원가를 불렀다. 구단 측에서도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장기 부상으로 인한 결장하는 와중에서도 계속해서 솔샤르와 재계약을 맺었다. 2005/06 시즌 기나긴 부상에서 회복했으나 실전 감각 회복을 위해 리저브 경기에서만 뛰게 되었다. 2006/07 시즌이 되면서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솔샤르는 예전 명성을 되찾으며 뛰어난 결정력을 보여준다. 리그에서 19경기 출장[14]하여 7골[15]을 기록하여 '2OLEGEND'의 명성을 되찾게 해 주었다.

2.2.3. 은퇴


하지만 커리어 내내 따라다니던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결국 2007/08 시즌 개막 직전 현역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16] 얼마 후 선덜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한때 팀 동료였던 로이 킨 당시 선덜랜드 감독과 올드 트래포드 관중들의 기립 박수 속에 은퇴식을 치렀다. 1년 후인 2008/09 시즌 개막 직전 RCD 에스파뇰과의 친선 경기를 솔샤르의 은퇴 경기로 가졌다. 맨유는 이 경기에서 프레이저 캠벨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솔샤르는 은퇴 기자화견에서 '감독님, 코치 그리고 매디컬 스탭 뿐만 아니라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팬들은 언제나 나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내가 상처를 입었을 때, 묵묵히 격려를 보내준 것에 감사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1년 동안 뛸 수 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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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26일에 자메이카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였고, 이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 유럽예선에서는 2골, 유로 2000 지역예선에서 4골, 2002 한일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2골을 넣었다. 유로 2004 지역예선에서도 2골을 넣었다. 다만 솔샤르는 끝내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는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17]
한편, 솔샤르는 2003-04 시즌부터 이어진 길고 긴 부상을 이유로 국대 발탁이 적어졌고, 2005년에는 끝내 한 차례도 나서지 못했다. 그러다 2006년 하반기부터 솔샤르는 맨유에서 다시 부활했고, 이 해에 다시 국대에 발탁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해 9월, 유로 2008 지역예선 헝가리전에서 2골을 넣으면서 팀의 4-1 승리를 이끄는 동시에 무려 3년만에 A매치 득점을 기록했다.
이후 2007년 2월 7일 크로아티아와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솔샤르는 노르웨이 국가대표 소속으로 총 67경기 23골을 기록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골결정력이 정말로 좋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그는 출장수와 출장시간을 감안했을때 정말로 적은 기회가 주어진 셈인데 그걸 용하게 100번을 넘게 성공시켰다. 그가 기록한 골 중에서 쉬운것은 정말로 손꼽힐 정도로, 다른 월클 공격수들이 놓친다고 해도 전혀 욕먹지 않을 찬스들이다. 왼발 오른발 자유자재로 강하고 정확하게 깔아차는것에 능했다.
매우 특이하게 허리를 피는 슈팅폼을 갖고 있었는데, 공이 뜨지를 않았다(!). 이런 자세에서 나오는 슛은 보통 매우 뜨는게 똥볼 정상이고 간신히 낮게 찬다고 해도 힘과 정확도 둘 다 떨어지는데, 솔샤르의 슛들은 그가 의도하는 곳에 쏜살같이 빨려 들어간다. 신기에 가까울 정도. 분명히 폼은 숏패스인데 위력은 강슛이니, 예상치 못한 궤적에 당황하는 골키퍼의 표정이 일품.
다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장시간 플레이를 소화할 수 없어 후반에 교체 투입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러고도 넙죽넙죽 골을 잘만 넣었다(...). 만약 솔샤르가 유리몸이 아니었더라면 대체 얼만큼 골을 넣었을까 하는 것은 호사가들의 화젯거리. 11분에 4골이니 인저리 타임 포함해서 한경기 95분이라 한다면 8.53 * 4 * 38이므로 시즌의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다면 1296골을 넣을 수 있다! 기적의 골 결정력!
크로스도 준수한 편이었어서 최전방 공격수가 아니라 측면 미드필더로 뛴 적도 몇번 있다. 예를 들어 2003년 챔피언스 리그 레알 마드리드와의 2차전에서는 베컴 대신에 우측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혹자는 마이클 오언의 전성기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솔샤르와 흡사한 스타일의 선수라고. 다만 최전방 공격수뿐 아니라 측면 미드필더로서도 뛰어난 플레이를 보였으며 기본기가 좀 약한 에르난데스와는 달리 기본기도 잘 갖춰진 선수다.

4.1. 공격수인가? 공격형 미드필더인가?


대다수의 축구팬들은 솔샤르의 포지션에 대해서 그간 별다른 이견 없이 공격수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이자 MBC 축구 해설위원인 안정환이 2016년 2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MLT-19에 출연하여 "솔샤르는 공격수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발언해서 때아닌 포지션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심지어 이 발언을 했던 안정환은 시청중인 네티즌들에게 '축알못' 취급을 받았다. 이에 빡친 안정환은 '자신은 축구만 35년을 했다.'고 강변하며 '자신도 스트라이커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왜 솔샤르가 공격형 미드필더인지'에 대한 근거까지 조목조목 따지자, 상당수 네티즌들은 이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이때 안정환은 미드필드 서드존에 있는 선수를 전원 미드필더라고 부르고, 어태킹 서드존에 있는 걸 공격수라고 말했다. 솔샤르는 미드필드 서드존에서 어태킹 서드존으로 올라가는 선수이기 때문에 미드필더라고. 또 포틴 지역에서 뭔가를 보여주는 선수가 솔샤르라고 말했다.[18]팟수: 그럼 공격수네? 안느: 미드필드에서 공격으로 간다고! 안정환의 정의를 보면 어느 존에 배치되어 플레이를 시작하느냐에 따라 스트라이커, 미드필더, 수비수가 나뉘진다고 할 수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수비수의 자리까지 내려가 수비를 봤다고 해도 수비수가 되는 건 아니고, 김병지가 드리블을 치고 올라가 공격한다고 공격수는 아니라고.흥분해서 말이 이상하게 나왔지만
여기서 안정환은 공격형 미드필더가 미드필드 서드존에서 어태킹 서드존으로 올라가는 플레이를 한다고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얘기를 한 다음에 예전에는 공격형 미드필드는 공격만 한다고 딱 정해놨는데, 요즘은 그렇게 구분하진 않죠. 미드필더가 공격과 수비를 모두 소화할 수 있어야 하죠.라고 말했다. 솔샤르가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가 아닌 것은 사실이니, 섀도우 포지션에서 느닷없이 치고 들어가는 스타일의 솔샤르를 안정환이 굳이 어태킹 미드필더라고 보고 싶다면야 그건 개인의 자유다. 물론 반대로 공격수잖아?라고 하는 것도 자유다 어쩌면 솔샤르가 워낙 동적이고 다재다능한 선수이기 때문에 나오는 논란일 수도. 안정환의 말을 전적으로 수긍한다면, 공격 지역에 솔샤르가 투입되는 순간, 맨유는 일종의 제로톱 상황에서 플레이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19]
SBS Sports장지현 해설위원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명칭은 감독 편의에 달린 것"이며, "공격수인가 공격형 미드필더인가에 대한 논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며 안정환 해설위원의 의견에 대해 수긍하는 태도를 비췄다.# 반면 KBS N 스포츠한준희 해설위원은 안정환 해설위원이 솔샤르를 '패스마스터'로 칭하는 것으로 보아서 폴 스콜스와 착각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20], 솔샤르는 공격수라고 답했다.# 한편 안정환은 해당 방송 중에서 솔샤르와 스콜스를 헷갈린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21] 스콜스 항목에도 있지만, 폴 스콜스는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부르기에 좀 애매한 선수이니 헷갈렸을 가능성은 낮다. 스콜스는 어느 자리에서도 제 역할을 잘 하는 축잘알 선수이지만 기본적으론 중앙 미드필더이고 오히려 이보다 좀 더 후방으로 내려가서 플레이 하는 경우도 잦았다. 하지만 스콜스는 본래 공격수 포지션에서 뛰다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도 하에 포지션을 변경한 뒤에 포텐이 터진 케이스라도 명백히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되어 좋은 활약을 펼친 시즌도 있고 결정적으로 패스마스터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스콜스랑 혼동하고 민망함에 헷갈린게 아니라고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22]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솔샤르와 동료 사이였던 박지성까지 나서게 되었는데, 그는 "솔샤르는 공격수죠"라고 디스답했고,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브라이언 롭슨도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 질문을 받고 솔샤르는 명백한 공격수라고 답했다.
솔샤르가 어떤 의견을 내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 그가 대답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이 논쟁은 미궁 속에 빠지게 되었으며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그냥 '안정환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이런거 논쟁할 시간에 그냥 안정환을 축알못이라 하는게 편하다' 선에서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게 재밌잖아 박지성조차 '정환이 형을 디스하는 셈이지만'라는 표현을 하며 별로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을 정도이다. 즉 진지하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이라는 것. 위 서술과 같이 포지션 분류는 어디까지나 감독이나 언론이 편의상 매기는 것이지, 골키퍼 이외에는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간의 이미지와는 별개로 안정환은 스타플레이어일 뿐만 아니라 엄연히 AFC A급 지도자 자격을 보유하고 있고 그에 걸맞은 이론 교육을 거친 인물이다. 다소 자의적인 설을 읊을 수는 있지만 축알못 취급을 받을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5. 감독 경력


파일:ogs_one-on-one_3.jpg
선수로 맨유와 맺은 마지막 계약 때 코치로 전환하는 조항이 들어있었으며 이에 따라 2007년 은퇴 후 맨유의 리저브 팀 감독으로 있다가[24] 리저브 리그에서 우승하고 2010년 친정인 노르웨이 클럽인 몰데 FK의 감독이 되었다. 원래 선수 시절에도 경기 진행 사항을 체크하면서 상대팀의 약점이나 빈공간을 분석하는데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25] 노르웨이 국가대표팀 감독직도 제의받았는데 아직 너무 이르다면서 거절했다. 2010년 11월 맨유를 떠나면서 한 말이 '25년 뒤에 맨유의 감독으로 돌아오겠다.' 였는데, 노르웨이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점점 기대치가 올라가고 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듯 블랙번의 감독설이 뜨는 등, EPL 복귀설이 나돌다가 2011년 10월 22일에 포츠머스 FC 감독설이 떴다.
구단주가 직접 노르웨이로 가서 비드를 넣었다는 둥의 소문이 무성하다. 한편, 노르웨이 리그에서는 계속 순항하다가 2011년 10월 몰데 클럽 역사상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올려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26] 그와 동시에 일거에 포츠머스 감독 1순위로 신문을 도배했으나 결국 몰데 감독으로 남기로 한 듯하다.[27] 그리고 2011년 11월, 포츠머스의 구단주가 부정혐의로 체포되어 구단주를 사임하고 선수들의 주급이 정지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솔샤르의 팬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었다. 하여간 솔샤르가 선수로서만이 아닌 감독으로서도 재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맨유팬들은 향후 성적에 따라 그가 정말 퍼거슨의 후임이나 그 다음 후임으로 올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중인데 2012년 초에 한 인터뷰에 따르면 잉글랜드 클럽 몇 군데에서 감독직 제의가 있었으나 본인은 아직 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몰데 FK는 2011년 노르웨이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2차 예선부터 참가 가능하다. 그리고 2012년 노르웨이 리그 개막 전에 치른 프리시즌 시합에서 노르웨이러시아의 팀들과 겨뤄서 4승 1무를 기록하며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감독이 된 후 FM을 즐기는 모양이다. 실전에도 많이 참고한다고.
2014년 1월, 위기에 빠진 카디프 시티가 말키 맥케이 감독을 해임하고 솔샤르를 끈질긴 설득 끝에 데려온다. 본인이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환상적인 도전이 될 것이다"라고 인터뷰한 것을 보면 EPL로의 복귀에 흥미가 갔던 듯. 김보경의 소속팀인 만큼, 국내 언론의 시선 역시 모이고 있다. 그리고 카디프 감독으로서의 데뷔전이라고 할 수 있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FA컵 64강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리그에서 줄곧 강등권에 빠진 끝에 결국 가장 먼저 강등이 확정되고 말았다. 즉 EPL 감독 첫 경력을 리그 강등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구단주의 횡포에 솔샤르의 경험 부족이 겹치면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다음 시즌에도 감독을 계속 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 2014년 9월 18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그 후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클라우센겐의 유소년 팀 감독을 맡기도 하다가 2015년 10월, 몰데 FK에 감독으로 다시 돌아왔다. 2017, 2018 시즌에는 리그 2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몰데를 유로파리그 16강에 보내는등 안정적으로 몰데의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5.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 대행


2018년 12월 18일, 맨유는 주제 무리뉴 감독을 경질하고 마이클 캐릭과 다른 코치들에 잠시 아침 훈련을 맡겼으며, 솔샤르는 로랑 블랑과 함께 18-19 시즌 후반기를 책임질 감독 대행의 후보군에 올랐다. 그리고 현지 시각 새벽에 맨유 공식 홈페이지에 솔샤르가 남은 시즌 임시 감독을 맡게 되었다는 발표가 떴다가 삭제 되었다.
다음 날 맨유는 2018-19 시즌 종료까지 솔샤르를 맨유의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음을 발표했으며, 원 소속팀 몰데 FK에서도 공식 발표를 했다.# 몰데 FK의 발표에서도 빌려준다라고 서술하였고감독직에서도 교체 출전 하시는 솔샤르 그는 도덕책... 원 소속팀은 수석코치가 감독대행 직을 맡게 되었다. 솔샤르가 감독 지휘봉을 잡으면서 예전 알렉스 퍼거슨을 보좌했던 마이크 펠런을 맨유로 다시 부른다.
파일:manchesterunited_MUFC.jpg
왼쪽 부터 에밀리오 알바레즈, 마이클 캐릭, 솔샤르, 마이크 펠런, 키어런 맥케나
그런데 만약 솔샤르가 맨유를 이끌고 리그 챔스에서 선전하면 몰데 입장에서는 최악인데 솔샤르 역시 사람인지라 야망이 큰 인물이고 게다가 맨유의 레전드다 보니 맨유 감독을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솔샤르 감독이 맨유에서 이상적인 시즌을 보냈을 경우에 한하지만 현재 맨유 감독직에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경쟁자는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3연속 우승이라는 전설을 세운 지네딘 지단, 유벤투스에서 리그 3연패를 이룬 안토니오 콘테, 제대로 된 지원 없이도 토트넘을 챔스권에 안착시키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같은 확실한 감독 커리어가 있는 감독들이다. 영국 미러의 보도에 의하면 맨유는 몰데에 6개월의 보상금으로 180만 파운드를 지불하며, 만약 시즌 후 솔샤르를 정식 감독으로 영입할 경우 추가로 800만 파운드를 지불하도록 되어 있다.기사 링크

5.1.1. 2018-19 시즌


파일:20190310_203335.jpg
솔샤르 매직, 맨유의 부활을 이끌다
2018년 12월 22일 첫 경기인 18R 카디프 원정에서 5-1 대승을 거두어 분위기 반전의 기대를 주고 있다. 맨유가 리그에서 5득점을 기록한 것은 퍼거슨의 마지막 경기인 2013년 5월 19일 웨스트 브롬위치 원정 5-5 무승부 이래 처음이다.[28] 비록 강등권 팀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지만 무리뉴 시절의 스타일에서 탈피해 전진 패스를 적극적으로 하는 스타일의 변화가 보인 데서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1월 14일의 토트넘전에서도 준수한 경기가 가능하다면 그때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 듯.
2018년 12월 26일 솔샤르의 첫 올드 트래포드 홈 경기인 19R 허더스필드전에서는 3-1 완승을 거두었다. 퍼거슨 시절 수석 코치였던 마이클 펠런 코치도 데려와서 그런지[29] 확실히 공을 전개할 때, 골대 앞에서 침착하게 패스 플레이로 골을 마무리 하는 장면이 많아졌다. 이번 경기에서도 클린 시트를 기록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두 경기만에 8득점에 성공했고 선수진들의 폼이 상당히 올라왔다. 그리고 본머스전도 4-1로 완파하면서 3연승과 함께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고 전반기를 마쳤다. 특히 포그바는 3경기에서 4골 3도움으로 물오른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문제는 수비로 리그내에서 강팀이라고 볼 수 없는 3팀을 상대로 클린 시트가 한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약팀을 상대로는 화력으로 찍어누르는 형태의 경기를 하고 있지만 후반기에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전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단점으로 후반기에 이를 어떻게 보강할 지 주목되는 부분.
2019년 1월 3일 펼쳐진 21R 뉴캐슬 원정에서는 2-0 승리를 거두면서 맷 버스비 감독 이후 맨유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4연승을 기록한 감독이 되었다. 이날 경기에서도 수비쪽에 잔실수가 몇번 있고 공격도 잘 풀리지 않았었지만 로멜루 루카쿠와 부상에서 복귀한 알렉시스 산체스를 투입하면서 경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루카쿠는 교체로 들어온지 1분도 안되서 선제골을 기록했고, 산체스도 래시포드에게 기가 막힌 어시스트를 하며 정말 오랜만에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로써 4연승을 기록한 맨유는 4위 첼시를 6점차 5위 아스날을 3점차로 바짝 따라붙으며, 챔스권에 청신호가 켜졌다. 최근에 행보가 마음에 드는지 맨유 선수들도 그의 정식 감독 취임에 긍정적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2019년 1월 14일 펼쳐진 22R 토트넘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맨유 역사상 최초로 부임 이후 6연승을 기록한 감독이 되었다!
거의 무너져가던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매우 공격적인 전술을 사용하면서도 토트넘과 같은 강팀에게는 주로 역습의 형태로 가는 변화를 주는 등 전술적 역량도 빛나고 있다. 지휘봉을 잡고 치른 리그 5경기에서 승점 15점을 쓸어담으며 불가능해 보였던 4위권 진입을 가시권에 두게 되었다. 단 한 달만에 승점이 무려 11점 차이가 났던 5위 아스날과 승점차를 없애는데 성공했고 4위 첼시와의 승점차도 6점으로 좁히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무리뉴의 수비 전술로 공격 본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포그바를 살린 것이 가장 주효했다.
토트넘과 만나기 전까지는 약팀만 만나 승리했기 때문에 아직 솔샤르 체제의 성공을 예단하기 이르다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로 5연승 기간동안 만난 팀 중 가장 순위가 높은 팀이 12위 본머스였고 FA컵 상대였던 레딩은 심지어 챔피언십에서도 강등권이었다. 따라서 토트넘전이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였는데 보란듯이 승리를 거뒀다. 데 헤아의 신들린 선방쇼가 있긴 했으나 순도 높은 공격과 역습을 통한 원샷원킬로 득점하며 강팀을 상대로도 솔샤르 전술이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30]
이렇게 기대를 크게 웃도는 모습을 보여주자 팬들 사이에서는 후임 감독에게 갈 예정이었던 이적 자금을 솔샤르에 안겨주고 여름에 정식 감독으로 선임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구단 수뇌부도 흔들리던 팀의 기강을 바로잡고 좋은 성적까지 이끌어내는 것에 큰 신임을 보내고 있다. 지도자로서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솔샤르 입장에서는 큰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고 별 부담없이 선뜻 내어준 몰데 입장에서는 자칫 감독을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거기다가 선수단들 또한 솔샤르의 정식 감독 부임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그리고 아스날과의 FA컵 32강마저 승리를 거두면서 부임후 8연승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퍼거슨의 세이브 파일을 훔쳐간 장본인이라 카더라
이후 24R 번리전 0-2로 패배할 위기를 후반 막판 2골로 무승부로 가져가고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고전 끝에 0-1 승리를 가져가는 등 위태위태한 모습도 있었으나 결국 풀럼 전에 3-0으로 완승하는 등 꾸준히 승점을 쌓은 끝에 리그에서 올 시즌 무리뉴 체제보다 많은 승수를 가져갔다. 무리뉴가 무려 17경기를 치뤘고 솔샤르는 아직 9경기를 치룬 걸 감안했을 때 놀라운 부분. 또한 아스날과 첼시가 맨시티 원정에서 패배하며 승점을 떨구는 사이에 4위 자리를 탈환하며 무리뉴가 달성한다면 기적일 것이라고 공언한 탑4를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2019년 2월 8일에는 EPL 1월 감독상까지 받는 영광을 얻었다. 하지만 그 후 챔스 16강 1차전 홈에서 네이마르카바니가 빠진 PSG에 0-2으로 패하면서 11경기 무패 행진은 끝이 났다. 포그바가 1차전 퇴장으로 2차전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8강 진출에 먹구름이 끼었다. 이후 첼시와의 FA컵 16강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분위기 반등에 성공했다. 솔샤르 부임 후 13경기에서 11승을 거뒀는데 이는 무리뉴가 이번 시즌 경질 전까지 거둔 승리보다 더 많은 수치다. 24경기 동안 10승을 거둔 무리뉴보다 두 배 가까이 빠른 페이스로 11승을 거두었다.
27R 리버풀전에서는 전반전에만 무려 세 명이 부상으로 아웃되는 대참사를 겪었다. 안데르 에레라후안 마타가 차례로 아웃되고, 그 때문에 부상 복귀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제시 린가드가 들어왔다가 부상이 재발하며 다시 아웃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31] 이 때문에 마커스 래시포드 역시 초반에 입은 부상이 있었음에도 반강제로 풀타임을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굉장히 뼈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 우선 리버풀의 공격력은 예상 외로 저조했다. 리버풀 역시 전반전에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긴 했으나 리그 우승 후보답지 않게 매우 미진한 공격력으로 나왔기 때문에 만약 맨유의 줄부상이 아니었다면 나름 해볼만할 수도 있었다. 또한 주전과 후보의 격차가 제법 두드러지는 상황에서(특히 미드필더) 핵심 자원인 에레라와 네마냐 마티치가 부상이라는 점은 향후 있을 경기들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다행히도 교체로 들어온 안드레아스 페레이라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외의 선수들도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뛰어주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한편 이 경기를 비기며 맨유는 소튼을 잡은 아스날에게 4위 자리를 내주며 5위로 내려앉고 말았다.[32] 그리고 솔샤르 감독은 리그 10경기 동안 승점 26점을 기록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33]
라이벌 매치에서 전반에만 주전 세 명이 부상으로 교체되는 참사에도 불구하고 리그 선두팀인 리버풀을 상대로 선방했다는 평을 들으며 지속적으로 솔샤르 연임에 대한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주중에 치뤄진 28R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에서는 무난히 3-1로 승리하면서 승점 55점 5위5..5..오졌다..에 랭크되며 지속적으로 아스날, 첼시와 다음시즌 챔스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여담으로 해당 경기에는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인하여 제임스 가너, 타히트 총 등 유스 멤버들이 소집되었으며 그중에 가너는 1군 공식 데뷔전을 치르기도 하였다.
29R 사우스햄튼전에서는 페레이라의 감아차기 득점과 루카쿠의 멀티골로 극적인 3-2 승리를 거두면서 아스날을 제치고 다시 4위로 올라섰다.
챔스 16강 2차전 파리 생제르맹 FC 원정에서 로멜루 루카쿠의 멀티골과 마커스 래시포드의 후반 추가시간 PK골로 극적인 3-1 승리를 거두며, 1차전 홈 0-2 패배를 딛고 합계스코어 3-3,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챔스 역사상 토너먼트 1차전 홈 0-2 패배를 뒤집었던 팀은 역대 매치 106회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파리가 핵심 선수들인 네이마르에딘손 카바니가 부상으로 인해 결장하거나 벤치에서 시작했지만 맨유는 폴 포그바, 앙토니 마르시알, 제시 린가드, 네마냐 마티치, 안데르 에레라, 알렉시스 산체스, 후안 마타 등 주전들의 공백이 파리보다 더 심각했다. 거기에 홈 1차전도 경기력에서 완패를 당했기에 맨유 팬들조차 진출에 대한 기대를 거의 가지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한편, 노르웨이의 한 축구 팟캐스트에 출연한 솔샤르는 "현재 몰데와의 계약은 만료된 상황이며, 유일한 계약은 맨유와의 단기 계약 뿐이다." 라는 말을 남겨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34] 이미 현지에서는 우드워드 부회장의 최종 컨펌만 남은 상황이라며 정식 임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35] BBC에서는 몰데가 맨유와의 임대계약 발표 2주 전에 공표한 솔샤르와의 3년 연장 계약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내린데에 대해, 이미 맨유가 솔샤르 헤드헌팅에 대한 위약금을 지불해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했기에 가능한 일임을 지적했다.[36]
30R 아스날 원정에서 2-0으로 패배해 마침내 리그 무패 행진이 깨졌고 순위도 아스날에게 역전되어 5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향후 아스날의 일정이 매우 순조로워서 4위 경쟁에서 다소 불리해졌다. 여기에 첼시도 아직 다른 팀들에 비해 한 경기를 덜 치른 상황. 솔샤르의 성적이 부임 당시 기대치를 훨씬 상회하는 건 사실이지만 맨유 팬들은 기왕이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수성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데에 차질을 겪을 수 있기 때문. 물론 맨유 입장에선 토트넘이 최근 최악의 부진을 거듭하고 있고 어려운 일정을 앞두고 있어 토트넘을 밀어내고 4위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6. 기타


  • 원래는 리버풀 FC의 팬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리버풀과 경기하는 것이 껄끄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 아래 동영상은 그가 리버풀을 상대로 득점하는 장면이다. 환희 그자체(...). 유니폼의 앰블럼까지 치켜세우며 환호한다(...). 해설자: "저게 시즌 11호골입니다. 선발 출전은 고작 9번인데 말입니다."

  • 퍼거슨의 취임 25주년 기념 경기인 선덜랜드전에서 직관하는 게 포착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과거 퍼거슨은 박지성의 골 결정력을 높여주기 위해 당시 리저브팀 감독이었던 솔샤르를 붙여주었다. 솔샤르는 Ji. 골대는 움직이지 않아. 네가 어디에 있든 그 쪽으로 차면 되는거야. 슛은 차는 것(Kick)이 아니라 대는 것(Touch)이야. 라며 문전에서의 침착함과 정확한 슈팅을 강조했다고 한다.
  • 2012년 골닷컴에서 자신이 뛰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베스트 11을 뽑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에릭 칸토나, 반니, 베컴, 로이 킨, 스콜스, 긱스, 데니스 어윈, 리오 퍼디난드, 게리 네빌, 야프 스탐, 반 데 사르가 뽑혔다. 깨알같은 루니와 호날두는 벤치. 피터 슈마이켈 벤치가 더 이상한 거 아냐?
  • 이 항목은 첼시와 노르웨이 국가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인 토레 안드레 플로보다 먼저 개설되었다.[37]
  • 이름 발음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파일:솔샤르.png[38]
  • 스칸디나비아 출신들 여럿이 그렇듯 영어 실력이 엄청 좋다. 잉글랜드 원어민하고 거의 차이가 없을 수준.
  • 맨유 취임 전 전북 현대 감독직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북 차기 감독 최종 후보 3인에 있었으나 감독 커리어에 비해 높은 연봉때문에 전북은 모라이스를 선택했다.기사
  • 맨체스터에 저택을 소유하고 있으나 버질 반 다이크가 지금 거기 살고 있어서 다른 집을 구하는 중이라고 한다. 농담으로 집에서 쫓아낼꺼다고 하는 기사도 나왔다. 솔샤르가 리버풀 팬이었고, 반 다이크는 발언 당시 리버풀에서 맹활약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꽤나 재미있는 일.

  • 한때 아들 노아가 굉장한 귀여움으로 국내 팬들에게 인기를 끌었었다. 이 아이는 1999년생으로 현재 성인이 되었다.

7. 경력



7.1. 선수 경력



7.1.1. 대회 우승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6/97 - 2006/07)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6) :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2006/07
    • FA 컵 (2) : 1998/99, 2003/04
    • FA 커뮤니티 실드 (3) : 1996, 1997, 2003
    • UEFA 챔피언스 리그 (1) : 1998/99
    • 인터콘티넨탈 컵 (1) : 1999

7.2. 리그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5
몰데 FK
노르웨이 프리미어 리그
26
20
0
0
-
-
4
2
1996
몰데 FK
노르웨이 프리미어 리그
12
11
0
0
-
-
0
0
1996/9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33
18
3
0
0
0
10
1
1997/9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22
6
2
2
0
0
6
1
1998/9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19
12
8
1
3
3
6
2
1999/0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28
12
0
0
1
0
11
3
2000/0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31
10
2
1
2
2
11
0
2001/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30
17
2
1
0
0
15
7
2002/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37
9
2
1
4
1
14
4
2003/0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13
0
3
0
1
0
2
1
2004/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0
0
0
0
0
0
0
0
2005/0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3
0
0
0
2
0
0
0
2006/0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19
7
6
2
1
1
6
1

7.3. 감독 경력



7.3.1. 대회 우승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저브팀 (2008/09 - 2010/11)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저브 리그 (1) : 2009/10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저브 북부리그 (1) : 2009/10
    • 랭커셔 시니어 컵 (1) : 2008/09
    • 맨체스터 시니어 컵 (1) : 2009
  • 몰데 FK (2011 - 2013, 2015 - )
    • 노르웨이 프리미어 리그 (2) : 2011, 2012
    • 노르웨이 풋볼 컵 (1) : 2013
[1] 노르웨이어 발음: /ˈuːlə ˈɡʉnɑr ˈsuːlˈʂær/. 노르웨이어 표기법에 의거하여, nn은 모음 앞에서 'ㄴㄴ'으로 적으며, 모음 앞 skj는 '시'로, æ는 '에'로 적으므로 skjæ는 '샤'가 아닌 '셰'로 적는다.[2] 스트라이커, 윙어[3] 노르웨이의 한 팟캐스트인 Fotballklubben에 출연해 직접 현재는 몰데와 계약이 해지된 상황이며(정확히는 계약 만료 상황), 유지중인 계약은 맨유와의 단기계약이 유일함을 밝혔다. 기사링크 / 해외기사[4] 주제 무리뉴의 경질 이후 2018년 12월 19일부터 2019년 여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2019년 3월 기준 맨유가 호성적을 거두고 있어서 정식 감독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5] baby faced assassin. 정작 본인은 이 별명을 안 좋아한다. baby faced라는 건 자신이 어려보이고 행복해보인다는 뜻이라서 좋아하지만 암살자라는 표현은 안 좋아한다고. 여담이지만 NBA 최강슈터 스테판 커리의 별명도 이것과 똑같다. 항목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커리 역시 만 30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앳된 얼굴을 갖고 있으며 무서운 승부근성의 소유자다.[6] 긱스가 10개월 정도 동생이다.[7] 물론 2019년 맨유 임시 감독을 맡고 있는 지금은 솔샤르가 확실히 나이가 들어 보이긴 한다. 솔샤르가 늙은 것도 있고, 로번이 젊었을 땐 엄청난 노안이었는데 그 얼굴 그대로 나이를 먹어서 선수생활 황혼기인 지금은 오히려 위화감이 줄어든 탓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나이에 비해 노안이긴 하다[8] 나머지 하나는 뮌헨 참사를 애도하는 현수막이다.[9] 후에 96~97 시즌이 시작하고 얼마 후 솔샤르의 실력이 입증되자 그 두 팀이 그를 놓친 것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10] 후에 솔샤르는 퍼거슨 감독이 그에게 "너는 미래를 보고 영입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11] I will stay라고 대답했다고. 이때 그의 에이전트는 이적을 적극적으로 권유했기 때문에 잔류를 원하는 솔샤르와 의견충돌을 빚었는데 솔샤르가 강력하게 의견주장을 해서 남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에이전트도 당시 솔샤르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인정했다.[12] 그러나 이 퇴장으로 퍼거슨 감독에게 호되게 야단맞았으며 본인도 자신의 실수라 생각하는 듯.[13] 베컴은 이 광경을 보고 속이 울렁거렸다고 회고했다.[14] 거의 교체 출전이었다.[15] 현역 선수로서 커리어의 마지막 득점이 된 일곱번째 골을 어시스트한 선수가 박지성이었다.[16] 이 당시 시즌 개막 직전에 항상 하는 단체 사진까지 찍었는데 이미 클럽 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솔샤르가 은퇴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함구하였고, 며칠 뒤 본인이 직접 은퇴를 발표했다.[17] 솔샤르가 활약하던 당시의 노르웨이는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끝내 솔샤르는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18] 실제로 감독의 편의에 따라 만약 스트라이커보다 미드필더 자원이 좋은 경우엔 스트라이커를 펄스 나인(가짜 9번)으로 연계에 중점을 둔후 결정력이 좋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활용할 수는 있다.[19] 비슷한 포지션을 가진 선수 중 하나가 솔샤르의 바로 뒷세대인 웨인 루니이다. 특히 루니는 경기 상황에 따라 아예 센터백 라인까지 내려오는 일이 흔하다 보니 경기에 따라 미드필더 롤로 분류되는 일이 많았으며, 커리어 후반에는 아예 거의 한 시즌을 미드필더로 치르기도 했다.[20] 박지성의 EPL 진출 전에는 국내 EPL 기사에 폴 스콜스(Paul Scholes)가 폴 숄스로 표기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과거 일본 기사에 ショールズ 표기가 많았던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21] 포팅 지역에서 뭔갈 보여주는 선수가 솔샤르이며, 어디서 갑자기 감독을 하더라, 라고 하는 걸 보면 헷갈린 건 아닌 것 같다.패스 마스터라고 한 건 말이 헛나온 것 같지만[22] 스콜스는 시즌에 따라 섀도 스트라이커에 가깝게 배치되는 해도 있었지만, 적어도 공격수로 인식된 적은 없다.[23] 여담으로, 솔샤르의 현역 생활 마지막 골을 어시스트한 장본인이 바로 박지성이다.[24] 2009년에는 폴 포그바가 리저브 팀 선수였다. 이때가 첫 만남이다[25] 교체로 들어가면 그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플레이해서 득점했다고.[26] 이 때의 몰데 선수 중에는 맨유로 이적하기 전에 솔샤르와 함께 뛰었던 동료 선수도 있었다고 한다. 솔샤르 왈, 그에게 우승컵을 안겨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27] 일설에는 그의 노르웨이 리그 우승을 듣고 퍼거슨 감독이 축하 메세지를 보내면서 EPL 리그 복귀는 신중해야 한다고 한 인터뷰가 신문에 뜬 이후에, 그때까지 도박사들의 포츠머스 감독 배당에서 1위였던 솔샤르의 배당율이 뚝 떨어졌다고.[28] 참고로 이 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맹활약한 선수가 로멜루 루카쿠. 챔스에서는 2013-14 시즌 레버쿠젠 원정의 5-0 승이 마지막. 또 반 할 시절이던 2015-16 유로파에서 미트윌란 상대로 5-1로 승리한 바 있다. 마커스 래시포드의 1군 데뷔전으로 유명한 경기.[29] 경기 내에서 보면 전술적 지시는 펠런 코치가 담당하는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코치를 자른 모예스는~ 하지만 감독으로 부임했던 헐 시티 시절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것을 보면 코치로서의 역량은 뛰어나지만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부족한 듯. 물론 감독에게는 전술적인 철학이 중요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선수단의 화합과 멘탈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펠런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30] 하지만 완벽하다고 볼 수 있는 공격 전술에 비해서 수비 불안을 완전히 해소했다고는 볼 수 없다. 약팀과의 경기에서도 무실점 경기가 없었다는 점과 토트넘전 무실점도 순전히 데 헤아의 신들린 선방 능력에서 비롯됐을 뿐 토트넘 공격진이 사실상 득점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10개의 위협적인 슈팅을 기록한 것을 보면 필드 플레이어들이 수비 전술을 통해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데 헤아의 컨디션이 안 좋기라도 한다면 대량실점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기 때문에 수비 전술의 보강은 필요하다.[31] 이는 솔샤르 감독의 미스였다. 부상에서 이제 막 복귀한 린가드를 내보내기 보다는 처음부터 산체스를 투입하였으면 교체 카드 1장은 쓸 수 있었을 것이다.[32] 여담으로, 데 헤아는 이 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 100번째 클린시트를 달성했다.[33] 종전 기록은 첼시 시절 10경기 25점을 기록한 거스 히딩크.[34] 링크[35] 링크[36] 링크[37] 솔샤르는 국가대표팀에서 토레 안드레 플로 때문에 주로 벤치를 지켰다. 그리고 브라질을 상대로 악몽을 일으킨 장본인도 토레 안드레 플로였다.[38] 영국 현지인들은 호날두와 호나우두를 로날도라고 하지만 앙리는 앙리, 솔샤르는 솔샤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