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로프 팔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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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제26대 총리
스벤 올로프 요아킴 팔메
Sven Olof Joachim Palme


파일:statsminister_olof_palme.jpg

출생
1927년 1월 30일
스웨덴 스톡홀름 외스테르말름
사망
1986년 2월 28일 (향년 59세)
스웨덴 스톡홀름 스베아베겐 거리
묘소
스웨덴 스톡홀름 아돌프 프레드리크 교회
재임기간
제26대 총리 1기
1969년 8월 14일 ~ 1976년 8월 8일
제26대 총리 2기
1982년 8월 8일 ~ 1986년 2월 28일
서명
파일:Olof_Palme_Signature.sv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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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레나 레네로바(이혼)[1]
리스베트 팔메(재혼)[2]
자녀
장남 페르 요아킴 팔메[3]
차남 모르텐 올로프 팔메[4]
삼남 마티아스 예르비스 팔메[5]
학력
캐니언 칼리지 (철학 / 학사)
스톡홀름 대학교 (법학 / 석사)
병역
스웨덴 왕립 육군 기병대 전역
신체
174cm
최종 당적


1. 개요
2. 약력
4. 소속 정당
5. 기타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스웨덴의 정치인. 제 26대 총리를 지냈으며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의 당수를 역임했다.

20세기 후반기 두 번에 걸쳐 총리직을 역임하며 현대 복지 국가의 모범으로 꼽히는 스웨덴의 복지 체계를 완성시켰으며, 중립국으로서 독자적 외교노선을 표방해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사실상 오늘날의 스웨덴을 설계한 인물. 그러나 1986년 신원 미상의 범인이 쏜 총에 암살당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2. 약력[편집]


  • 1950.2. 스웨덴 학생회연맹 국제분과위원회 위원장
  • 1952.3. 스웨덴 학생회연맹 의장
  • 1955. 스웨덴 사회민주청년연맹 이사
  • 1957. 상원의원 (옌셰핑 /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
  • 1963. 무임소장관
  • 1965. 교통통신부 장관
  • 1967. 교육부 장관
  • 1969. 5. 제26대 스웨덴 총리


3.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올로프 팔메/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 갑작스런 죽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올로프 팔메 총리 암살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한동안의 야당 시절을 거쳐 1982년 다시 총리로 재직한 팔메였지만, 1986년 2월 28일 저녁, 아내와 단둘이서 스톡홀름 시내의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던 중 길에서 끝내 괴한의 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향년 59세.

본래 팔메 총리는 격식 차리는 것을 안 좋아해서 국왕 다음의 상서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경호원 없이 다니는 걸 즐겼다고 한다. 그 날도 마침 경호원이 없었다. 그 탓에 속절없이 죽음을 당하고 만 것이다. 물론 지하철 타고 돌아다닐 정도면 경호원이 있어도 완벽한 경호는 불가능했겠지만.

더 놀라운 것은 현직 총리가 길에서 암살당한 사건인데도 현재까지도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제 사건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찾을 수 없다.[1] 이외에도 추정 용의자들은 많이 거론되었지만 아직 해결되진 않았다.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1949 - 1986
임기중 사망


5. 기타[편집]


  • 종종 존 F. 케네디로버트 F. 케네디와 비교되곤 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진보 정당에서 활동하며 젊은 나이에 총리에 취임해 평화주의적인 정책을 펼쳤고 비극적으로 암살되었다는 점까지 똑같기 때문이다.

  • 팔메는 국내정치뿐 아니라 국제외교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정치인이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군사 행위를 비난하였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중재하는 등 세계평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소련의 동유럽 국가에 대한 내정간섭 문제나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 등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했다.

  • 덕분에 대한민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겸 민주화 운동가였던 시절 군부 출신 권위주의 정권인 박정희 정부전두환 정부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을 때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함께 여러차례 국제 여론을 움직여 DJ를 구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운동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재능 있는 스포츠맨이기도 했다. 특히 스키를 매우 잘 탔던 터라 여러 국제 대회에서 스웨덴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험도 있다. 또한 열렬한 축구 팬이었고 스톡홀름의 지역 팀에서 뛰기도 했다.

  • 열렬한 여행자이기도 했는데, 방학을 할 때면 유럽과 미주 전역의 여러 나라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를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에 노출시켰고 세상에 대한 그의 관점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 절친이었던 잉바르 칼손과 여러모로 비교되는 모습이 많다. 칼손은 어려서부터 가난한 환경에 학교가 끝나면 집 근처의 공장에서 8시간 이상 중노동을 했었던 반면, 팔메는 스톡홀름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 두 사람 모두 타게 엘란데르의 보좌관으로 발탁되어 정치에 입문했다. 공교롭게도 두사람 모두 총리 재임 시절 에게 정권을 내주었다가 재집권한 적이 있다.

  • 팔메와 칼손 두 사람은 사회적 배경이 달랐는데도 정치를 지적이고 전술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을 공유했다. 칼손은 팔메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특히 1980년 스웨덴 원자력 발전소 국민투표에 관한 투표 직전 당내 논의에서 '특급 해결사'가 되어주었다.

  • 핵확산 방지 노력과 아프리카 민족회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폴리사리오 전선 등의 독립운동은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이렇게 꽃피운 스웨덴의 중재외교가 현재까지도 스웨덴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오만카부스 빈 사이드 국왕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2]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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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P통신에 따르면 스웨덴 검찰은 34년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을 종결한다고 밝혔는데 유력 용의자로 사건 현장에 있었던 당시 52세의 스티그 엥스트룀이 2000년 이미 숨졌다는 이유에서다.[2] 주로 스웨덴은 북한과 관련된 중재를, 오만은 이란과 관련된 중재를 한다는게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