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트시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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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ub

1. 개요
2. 개발
3. 생산
4. 단종
5. 파생 모델
6. 둘러보기


Oltcit Club / Citroën Axel

1. 개요[편집]



체코어 올트시트 클럽 사진 모음
올트시트 클럽 모형 모음

올트시트 클럽1984년에서 1988년 사이에 생산된 B 세그먼트로 프랑스시트로엥루마니아 정부의 합작 회사인 올시트가 협력하여 개발했다.

2. 개발[편집]


시트로엥 비자의 전신인 프로젝트 Y가 비용절감 과정에서 중단된 이후, 1976년루마니아 정부와 프랑스시트로엥에서는 올트시트(Oltcit) 브랜드를 설립했고, 올트시트라는 브랜드명은 루마니아의 서남부 지역인 얼테니아(Oltenia)와 시트로엥(Citroen)을 합쳐 지어진 이름이었다.

챠우셰스쿠 정부는 농업국가였던 루마니아를 산업화 하려는 일횐으로 서구권 업체와 같이 합자회사를 차려 자동차를 생산하려고 했는데, 폭스바겐르노, 시트로엥이 참여해서 르노는 다치아(Dacia) 브랜드로 차를 생산하기로 했고, 시트로엥 역시 루마니아의 자동차 시장에 대해 높은 잠재력을 예상해서 공산권 지원한다는 욕을 감수하고 거래에 동의한 것이다.

차량 개발은 시트로엥에서 프로젝트 Y를 이어받아 개발하기로 했으며, 루마니아 정부가 지분 64%를, 시트로엥이 지분 36%를 나눠 가지고, 루마니아의 크라이오바(Craiova)에 공장을 지어 새 차를 생산하되 생산 대수의 40%를 해외에다 수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본래 올트시트에서는 프로젝트 Y의 결과물인, 피아트-시트로엥이 공동 개발한 5도어 해치백을 현지생산하기로 했지만, 계약이 체결된 1976년에는 피아트와의 거래가 완전히 물 건너간 둑분에 프로젝트 Y의 후속인 TA를 발전시킨 3도어 해치백을 만들기로 했다.

견고함울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문짝 2개를 제거한 것은 물론, 전자 계통 부품도 단순화시켰으며, 대한민국마냥 일교차가 큰 루마니아의 날씨를 고려해 절연 처리에도 상당한 신경울 썼다.

기술적으로는 시트로엥 GS의 4단과 5단 수동변속기, 비저의 2기통 복서엔진과 GS의 4기통 복서엔진 2가지를 사용했으며, 서스펜션 구조는 세로배치 토션바 서스펜션 + 차체에 고정괸 가로배치 탄성 플레이트를 사용해 단순한 구조지만 시트로엥답게 뛰어난 승차감을 보장했다.

3. 생산[편집]


이후 1981년, 올트시트의 이름으로 처음 출신된 차이자, 시트로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마지막 차였던 이 차는 ''올트시트 클럽''이리는 이름으로 공개되었다.

이 차가 출시되었을 당시에는 챠우세스쿠 정부의 막장화가 심각해진 것을 비롯해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따라서 본래 1980년에 생산하려고 했던 게 1982년 말까지 미뤄져 썩 좋지 못한 시작을 보였다.

기본적인 생김새는 전형적인 70년대 시트로엥 스타일이었고, 주관족인 평을 좀 곁들이자면 시트로엥 GS나 CX, 비자를 적당히 곁들인 듯한 모습이었다. 좀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젝트 Y의 프로토타입을 3도어로 개조한 개 딱 이런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테리어도 비자처럼 상당히 시트로엥다운 모습이었고, 비자처럼 PRN 새틀라이트 제어판과 1스포크 스티어링 휠이 장착되는 등, 실험적이고 튀는 성향이 강한 시트로엥의 전형을 여전히 보여주었다.

당시 라인업은 652cc 2기통 OHV 34마력 + 최고시속 121.2km/h이었다. 공인연비 리터당 14.7km/h을 기록한 스페셜과, 1129cc 4기통 SOHC 57.4마력 + 최고시속 149.4km/l이었다. 공인연비 리터당 10.2km/l를 기록한 클럽 11R, 1129cc SOHC 61.5마력 + 최고시속 157km/l이었다. 공인연비 리터당 13.km/l를 기록한 클럽 12TRS와 CS 픽업트럭이 제공되었다.

프로토타입 시절부터 공기저항을 낮추는데 신경울 쓴 시트로엥의 시도가 번영되어 공기저항계수도 당시 평균보가 낮은 0.36~37cd 정도였고, 수출을 의도한 만큼 공장에도 품질 개선을 위해 기계화 공정을 도입했다.

1984년부터는 시트로엥에서 올트시트를 서유럽, 캐나다 시장에서 시트로엥 브랜드로 판매했으며 종종 'Citroen Axel(시트로엥 악셀)' 이라는 배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새트로엥애서는 이미 동급 차량으로 비자를 팔고 있었지만, 얼트시트 클럽은 3도어 전용 라인업에 휠씬 단순한 설계라 비자뢰의 판매 간섭이 적을 거라고 봤었고, 가격 역시 시트로엥 2CV보다도 싸게 잡았다.

라인업은 클럽/ 11R 엔터프라이즈/ 11R/ 12TRS/ 12TRS 엔터프라이즈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1리터 버전은 비자 기본형보다 10% 저렴[1]해 농부들이나 작은 마을 주민들에게 호흥울 얻었다.
하지만 악셀/ 올트시트 클럽의 조립품질 문제가 너무 심각한 나머지, 매년 30만대의 차를 찍어낼 수 있었음에도 1988년에 수출이 중단될 때까지 겨우 60184대만 판매되었다.영국 수출을 언 한개 다행이다...

4. 단종[편집]


시트로엥 악셀의 판매룰 중단한 지 1년이 훌쩍 지나자, 루마니아 사회도 크게 변해 있었다. 챠우세스쿠 서기장은 막장행각으로 자기 호위명들한테 총살당했고, 새 정부도 민주주의로 새 간판을 달았다.

시트로엥 역시 억셀의 품질에 실망한데다가 수출고 중단한 지 2년이나 지났고, 이때룰 기회로 1991년에 울시트와의 제휴를 중단해 버렸다.

이후 올트시트는 기존의 올트시트 클럽을 올테나(Oltcitena) 브랜드로 생산하면서 얼마간 버텼으며, 회사명도 Automobile Craiova S.A.로 변경해 운영하다가 1994년대한민국대우중공업[2]과 49:51 형태의 합자 계약이 이루어지면서 루대[3] 브랜드로 판매가 되었고, 1996년 차량의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 이후 올트시트는 대우차의 생산 기지로 계속 운영하다가 대우그룹 도산 이후 포드가 인수해,[4] 승합차인 포드 트랜짓 커넥트(2008)를 생산하고 나서 포드 B-맥스(2012년) 미니맨의 생산 기지로 운영하고 있다.

한편, 시트로엥과 같이 루마니아에 투자를 했던 르노는 다치아를 인수해서, 염기차 브랜드로 잘 활용하고 있다.


단종된 지도 오래인 현재는 대부분 노후화로 폐차되었으나, 매니아들 사이에서 사랑받아 이렇게 튜닝되기도 한다.

5. 파생 모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올트시트 클럽/ 파생모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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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지어 2CV(!)보다도 저렴했다.[2] 이후 대우자동차 쪽으로 변경.[3] 당연히도 루마니아의 앞 2글자와 대우자동차의 앞3글자에서 따온 것이다.[4] 동시에 사명을 Ford Rimania S.A.(포드 루마니아)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