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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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와세다대학은 일본의 최상위권 명문 사립대학이자 일본 최초의 사학 중 하나이다. 일본 정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오쿠마 시게노부에 의해 1882년 설립되었으며, 일본 국내에서는 최고(最古/最高)의 사립대중 하나로 평가된다.[9] 와세다의 대학 본부는 도쿄도 도심 신주쿠구에 위치해 있다. 도쿄대학 등과 함께 도쿄 6대학 중 하나로 분류된다.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Waseda is a center of true academic excellence and a training ground for many of Japan's most distinguished leaders. I'm proud to be the first American President to visit here.” 일본 외무성[8]
와세다는 일본 정부 문부과학성이 공모한 슈퍼글로벌대학 사업에 구제국대학과 함께 TOP형 학교로 선정되었으며, 일본 사회에서는 통상적으로 와세다대학과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소케이(早慶)[10] 라는 약칭으로 묶어 부르는 경향이 짙다. 또한 와세다는 기시다 후미오, 노다 요시히코, 모리 요시로, 오부치 게이조, 후쿠다 야스오, 가이후 도시키, 다케시타 노보루, 이시바시 단잔 8명의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을 배출한 정재계 명문대이기도 하다.[11] 미국 포브스에 의해 일본에서 1위의 최고 부자로 선정되었고 전세계 부자 순위 39위인 유니클로 회장 야나이 타다시, 일본의 대표적 작가 중 한명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와세다 출신이다. #
대한민국에서는 대기업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 5위 포스코그룹, 6위 롯데그룹, 9위 신세계그룹, 10위 CJ그룹 창업회장이 와세다 출신이기도 한만큼 한국 정재계 근현대사에 와세다 학맥의 영향력 및 존재감이 있다.[12]
본 대학의 약칭은 와세다(
2. 소개[편집]
1882년 창립된 도쿄전문학교를 기원으로, 1904년 전문학교령에 의거한 구제전문학교를 거쳐 1920년 2월 5일 문부성 고시 제36호[15] 에 의거 게이오기주쿠대학(문부성 고시 제35호)[16] 과 함께 일본제국에서 최초의[17] 사립 구제대학으로 인가받았다. 20세기 후반까지는 일본 최고의 사립대학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며 21세기에 이르러 현재는 게이오기주쿠대학과 이를 양분(兩分)하고 있다.
중화권 매체에 의하면, 일본 유학을 논할 때마다 영국 QS 전세계 대학 순위에서 100위 안팎인 와세다대는 반드시 나온다. 그 인지도와 국제적 영향력은 이보다 의미가 크다. 일본에 유학가는 인원 10명 중 9명[18] 이 와세다대학에 지원한다는 말이 많다. 물론 일본 최고의 사립 명문대학인 와세다대는 한국, 중국과 인연이 깊고, 근대 1890년대 와세다대는 유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근현대 혁명가로 잘 알려진 유명 동북아 동문들을 많이 배출했다. 와세다대학의 14억 인구수를 자랑하는 중국 내 인지도는 도쿄대학을 능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밖에 삼성[19] ·도시바·유니클로·카시오・코오롱·소니·롯데[20] ·포스코[21] 등 유명 회사의 창업자와 CEO들이 와세다 출신이고,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신익희, 박찬희(독립운동가)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도 배출했다. 지금까지 30명이 넘는 동문이 일본 최고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상술했듯이 역대 일본 총리 중 8명이 와세다 출신이다. 와세다는 우수 동문들을 많이 배출하여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매우 크다. 동북아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 영향력이 매우 큰 학교로서, 중화권 유학생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2020년대 수치 기준 아시아 유학생은 5,053명으로 중화권이 89.15%를 차지했으며 이 중 한국인 학생이 836명, 중국 본토 학생은 3,362명, 홍콩 학생은 66명, 대만 학생은 362명으로 중화권 유학생이 전체 와세다 유학생 1만여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한국인이 약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 # 매일경제: 日 와세다大 재계인맥 화려한국에서도 와세다(早稲田) 대학은 일본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동양의 명문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東京) 대학을 제외하면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일본의 대학 이름이 와세다일 정도로 한국에서 더 평가되고 있다. 와세다 대학은 식민지 시대 조선의 독립 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공헌하였던 인물들을 다수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일본 유학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의 문물을 도입하였던 일본을 통해 근대화를 모색하려는 수단이였다. 민족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 유학생들은 식민지 지배에 동조하는 관료 양성 기관인 제국대학 대신에 학문의 독립과 동서 문명의 조화를 추구하는 개방적인 학풍의 와세다 대학을 선택하였다. 인용 기사
대학 평가로는 일본 790여개 대학[27] 중 2024년 QS 세계 대학 랭킹 국내 9위, CWUR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2023년 일본 8위, 전세계적으로는 2023-2024년 기준 QS 대학랭킹에서 2만여개 대학 중 199위를 차지했다. # 또한 2023년 THE 세계 대학 랭킹 일본판에서 14위, 2023년 ARWU에서 일본 20-23위를 기록하였다. 2022년 CWTS 레이던 랭킹 P기준에서 일본 15위, 학술 연구 성과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 교육기관 순위에서는 2022년 일본 15위를 기록했다.[28]만약 중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일본 대학은 어디인가"라고 물으면, 도쿄대학이나 교토대학 같은 구 제국의 명문 대학이 아니라, 전원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름, '와세다대학'을 떠올릴 것이다. 1895년 갑오전쟁 이후 청나라 정부는 일본으로 첫 유학생들을 파견했고, 점차 더 많은 중국인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시작했다. 1905년, 와세다 대학은 일본 내에서 독특한 "청나라 유학생 학부"를 설립하여 중국 유학생들을 위한 과정을 마련했고, 이곳에는 학사, 예비 과정 및 보충 과정이 있었다. 5년 동안 2,000명 이상의 학생이 청국 유학생 학부에서 공부했고, 그중 1,186명이 정식으로 졸업했다.[22]
잘 알려진 중국 혁명가인 천두슈(陈独秀), 리다자오(李大钊), 송교인(宋教仁)[23] 등도 와세다대학 출신이다. 통계에 따르면, 근대 중국 혁명가 중 와세다대학 출신이 20명 이상이다.[24] 2차 세계대전 후에도 와세다대학과 중국의 관계는 끊이지 않았으며, 1979년 개혁 개방 초기에 중국에서 파견한 첫 번째 공적 유학생들을 와세다대학이 맞이했다. 그 후 100년 이상 동안 와세다대학은 수많은 중국 유학생을 받아들였으며, 베이징대학과 자매학교여서,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합작 프로그램을 운영[25] 하고 있다. 1998년과 2008년에, 중국의 두 국가 지도자가 와세다대학을 방문해 강연을 했고, 중국 국내 언론들이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26] 그 결과 와세다대학의 명성은 중국 국내에서 독보적으로 높아졌다. 일본 국회의원의 거의 3분의 1, 많은 유명 회사의 창립자와 사장들도 와세다대학 출신이다. 인용 기사
캠퍼스는 분산식 형태로,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은 대신 도쿄 23구를 비롯하여 일본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29] 신주쿠구 와세다 지역에 위치해 메인 캠퍼스로 기능하는 와세다 캠퍼스, 메인 캠퍼스 바로 옆에 동일 신주쿠구 내 이공학부가 있는 니시와세다 캠퍼스, 학생회관과 운동시설 그리고 문학부와 문화구상학부가 있는 도야마 캠퍼스[30] , 스포츠과학부 및 인간과학부가 위치한 도코로자와 캠퍼스, 혼조 캠퍼스, 히가시후시미 캠퍼스, 기쿠이초 캠퍼스[31] , 기타큐슈 캠퍼스 등이 있다. 와세다와 니시와세다, 도야마, 기쿠이초 캠퍼스 근처에는 JR야마노테선・세이부 신주쿠선・도쿄메트로 도자이선 타카다노바바역(高田馬場駅)[32] , 도자이선 와세다역, 도덴아라카와선 와세다역 등이 있어서 이동하기가 용이하다. 와세다 캠퍼스와 니시와세다 캠퍼스는 본래 지명을 따서 니시와세다, 오쿠보 캠퍼스였으나, 현 니시와세다 캠퍼스 쪽에 도쿄메트로 후쿠토신선 니시와세다역이 생기는 바람에 명칭이 바뀌었다.[33]
와세다대학의 대한민국과의 인연 측면에서는, 고려대학교 출신과의 인연이 가장 많다. 고려대의 설립자 인촌 김성수 이사장과 초창기 임직원, 교수진 등 다수가 와세다 출신이라, 깊은 연관이 있다. 상술하였듯 삼성그룹 이병철, 이건희,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등 정재계 유력인사 중 와세다 출신이 전통적으로 많아서 한국인 중 와세다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이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하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중국 초창기 국가 설립 핵심 멤버가 와세다 출신이라 중화권에서 자오다오티엔(早稻田)[34] 의 브랜드력은 상당하다. 와세다는 아시아 사학 중에서 압도적인 탑티어 명문대라는 인식에, 입결 최상위권에 속하며, 적어도 동북아 한중일 3국에서는 인지도가 굉장히 높다.
“돌이켜보면 와세다대학과 한국의 고려대학교는 역사적인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설립자인 김성수를 비롯하여 한국 국내 정계와 재계에서 활약해 온 졸업생들은 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존재이자 본교의 자랑거리입니다.” - 와세다대학 스카 코이치 부총장
와세다대학은 중화권에서 베이징대학 (북경대; 北京大) 측과 가장 교류가 많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엮여있는 고려대와 마찬가지로 학부 학사 및 석사 그리고 박사 복수학위를 얻을 수 있는 베이징대학은 와세다 대학을 하기와 같이 소개했다.와세다대학 측은 1973년 고려대-와세다 협정 체결 이후 끊임없이 발전되어 온 고려대와 와세다대의 교류관계는 더욱 발전했다고 밝혔다. 특히, 한중일 캠퍼스 아시아 프로그램과 한일 밀레니엄 포럼 등으로 양교간의 교류가 이전보다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고 평했다. - 2018년
와세다 대학은 1882년에 설립되었으며, 본부는 일본 도쿄도 신주쿠 구에 있는 일본의 유명한 명문 대학이다. 와세다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대로 정재계, 재계, 문예계 인재를 배출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를 포함해 와세다대 출신이 8명이고, 일본 국회의원 3분의 1 가까이가 와세다대 출신이다. 소니·삼성·혼다·도시바·미쓰비시 등 수많은 유명 회사의 창업자와 사장이 와세다대 출신이다. 1982년 북경대와 와세다대학은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였고, 30여 년 동안 북경대와 와세다대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교류협력관계를 확립하였다. 와세다대학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활발한 우호학교 중 하나다. 북경대 국제합작(협력)부
3. 연혁[편집]
- 1882년
정치경제학과(현 정치경제학부), 법률학과(현 법학부), 이학과(현 이공학부), 영문학과(현 문학부)의 4개학과가 출범.
- 1884년
- 1898년
- 1904년
- 1913년
- 1920년
- 1949년
- 1953년
- 1982년
4. 상징[편집]
4.1. 교표[편집]
대학 상징 알파벳이 W이기 때문에, 학생 인터뷰나 기념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손으로 W자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2. 교가[편집]
4.3. 마스코트[편집]
4.4. 와세다의 이미지[편집]
일본의 대학 중에선 도쿄대학과 더불어 자국의 대중매체에서 많이 오마주되거나 패러디되는 대학 중 한 곳이다.
- 인맥이 두터운 대학
- 졸업생의 92.1%가 본인이 와세다 출신인 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42.1%가 모교에 기부금을 낸 적이 있는 대학[38]
- 와세죠(早稲女)
- 스포츠가 강한 대학
- 내부 진학생이 겸손함
- 9학기는 기본
- 높은 인구 밀집도
- 여학생 비율이 높음
- 다양한 지역 출신이 많음
- 반카라(バンカラ)
5. 협정 관계[편집]
5.1. 게이오기주쿠대학과 소케이 라이벌[편집]
소케이(早慶). 학풍부터가 게이오기주쿠대학과 서로 상반된다. 게이오기주쿠는 "상위 1%가 나머지 99%를 먹여 살린다"는 엘리트주의가 강세인 반면, 와세다는 "평등하게 모두를 가르쳐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대중적, 소탈하고 리버럴한 분위기를 고수한다.[40]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과 조선에서 건너 온 유학생들에게도 교수와 학우들이 차별 없이 친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지금도 와세다대학의 교수진을 보면 지한파(知韓派) 학자들이 상당히 많이 포진해 있다. 경영대학원 운영방식에서도 두 곳은 차이를 보이는데 MBA과정에 있어서 게이오대학은 전일제만 존재하는데 반해 와세다대학은 전일제, 1년제, 야간 파트타임 등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와세다대학의 경영대학원은 박사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데 반해 게이오기주쿠대학의 경영대학원은 박사과정이 존재한다.
5.2. 국내외 와세다 협정 대학 및 기관[편집]
와세다대학은 자유로운 학풍에 기반하여 비교적 권위적인 타 일본대학보다 많은 국제교류 실적을 내고 있다. 특히 북경대, 고려대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으로 학위 연계 등이 많다.[41]
- 런던 대학교
- 노팅엄 대학교
- 킹스 칼리지 런던
-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 캘리포니아 대학교
- 싱가포르 국립대학
- 베이징대학 (북경대; 北京大) - 1982년에 협정을 체결하여 와세다대학과 학사, 석사, 박사 복수학위 프로그램[42] 을 제공하는 동북아 명문대다. #[43]
상술하였듯 북경대는 와세다와 가장 교류가 많은 대학중 하나다. 상기는 북경대-와세다의 워크샵 일례.
베이징대학 당위원회 서기 및 학무위원회 주임 하오핑과 총장 공치황은 각각 와세다 대학의 대표단을 만나 이들에게 베이징대학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하오핑은 대표단에게 친절한 인사를 전하며, 베이징대학과 와세다대학 간의 교류 역사를 되짚어보았다. 그는 이를 통해 두 학교 간의 더욱 밀접한 학술 및 교육 교류를 촉진하길 희망했다. 타나카 아이지는 베이징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것에 대해 감사의 의미를 표시했으며, 두 학교가 교육 연구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일본과 중국 간의 우호 관계를 적극적으로 촉진할 것이라고 믿었다. 공치황은 타나카 아이지 대표단의 방문을 환영하며, 베이징대학의 최근 발전 상황을 소개했다. 그는 수년 동안 두 학교가 유익한 교류를 유지하며 인재 양성, 과학 연구,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오며 풍부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타나카 아이지는 와세다대학이 두 학교 간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기반으로 협력을 더욱 심화시키고, 일본과 중국 간의 문화 교육 교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표현했다. 오전에는 "와세다대학 총장 타나카 아이지 교수 베이징대학 명예 박사 학위 수여식 및 강연회"가 양광홀에서 열렸다. 베이징대학 부총장 및 교무장 왕보가 행사를 주관했다. #
- 칭화대학
- 상하이교통대학
- 난징대학
- 복단대학
- 홍콩대학
- 홍콩중문대학 - 복수학위 제공
- 국립대만대학
- 경희대학교[44]
- 고려대학교[45] - 상술하였듯 고려대학교 창립자 김성수 등 고려대 초창기 멤버 다수가 와세다대학 출신인 관계로 인연이 깊다.
- 단국대학교
- 부산대학교
- 서울대학교
- 성균관대학교
- 숙명여자대학교
- 연세대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 한국과학기술원
- 한국기계연구원
- 한국영화아카데미
- 한국외국어대학교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양대학교
6. 학과 등 조직[편집]

와세다대학의 학과 상세에 관해서는 상기 문서를 참조.
7. 캠퍼스[편집]

8. 생활[편집]

와세다대학의 입학 후 대학 생활에 관해서는 상기 문서를 참조.
9. 와세다 출신 인물[편집]


아키히토 일본 천황의 조카딸인 쓰구코 공주가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 졸업한 내용 등 와세다대학의 총교우회 동문 네트워크 도몬카이 자체에 대한 내용 상세에 관해서는 상기 문서를 참조.
- 상기에서 언급한 내용에 한국 중점 내용으로 첨언하자면 대한민국의 와세다 출신 인물로는 아무래도 삼성그룹 창업회장인 이병철(정치경제학부 중퇴 및 명예박사) 그리고 선대회장인 이건희(경영학 학사 및 명예박사)가 가장 유명하긴 하다.[46] 이병철은 이건희가 서울대 진학에 실패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자, “서울대 안갈 바에 연세대 자퇴하고 일본 명문 와세다에 유학가서 선진국 일본을 배워오라”[47] 고 지시하기도 했다. # 이는 결국 삼성이 소니 등 일본 대기업들을 뛰어넘고 세계 랭킹 5위권의 재벌이 되는 밑거름이 된다. 대학 내 컴퓨터가 레노버인 점을 포함해 캠퍼스 내 삼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으나 이건희가 졸업한 정치경제학부 건물이 새로 지어지면서 이건희기념도서관이 생겼다. 이건희는 생전 막대한 금액을 매년 와세다에 기부했고, 지금의 삼성그룹을 이룩한 경영자라는 점에서 대학 측에서도 특별 동문으로 우대해왔다. 2010년에는 이건희에게 명예 박사를 수여하였는데 이때 홍라희와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등 가족이 모두 참석하여 화제가 되었다 #. 와세다대학은 2020년 이건희가 별세하자 특별 애도 성명을 발표하였다 #. 상술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도 유명하다.[48] 그 외 유명 졸업생으론 기 서술한 고려대학교,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도 만만치 않은데, 그를 포함 당시 한국인 엘리트 절대다수가 와세다대학 한국동창회 활동을 열심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9] 다만 와세다 도몬카이는 명목상으로는 당연히 와세다대학 본부 및 도몬카이 소속이지만, 일본 도몬카이와 다른 1940년대부터의 대한민국 위주의 독자적 역사가 있으므로, 와세다대학 한국동창회와 작금의 와세다대학 한국교우회의 역사는 하기에 중점적으로 서술한다.
9.1. 와세다 한인 동문[편집]
와세다대학 한국교우회[51] 는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와세다 메인 캠퍼스 안에 한국 전통양식의 “한종각(韓鐘閣)” 및 내부에 성덕대왕신종[52] 의 복제인 “한국의 종”을 설치하기도 했다. 1982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김창성 전방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 한국인 동창회원들이 제작해 기증한 것으로 와세다대학 캠퍼스 공원 내 설치돼 있다. # 당시 와세다 한인동문들은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고 소회 2000년대 삼성 이건희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 등이 수십억원의 와세다대학 모교한인장학금 기부를 하기도 했다. 2023년 기준 약 1만여명의 한국인이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파악된다.早稲田大學韓国校友會
WASEDA University Korea Alumni Association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대학 공인 서클인 와세다대학 한국인학생회도 있다. #“와세다대학 교우회의 해외 지부 중 하나로서 자리매김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교우회는 2017년에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와세다대학 총장과 본교 교우회 대표 간사를 비롯한 대학·교우회 본부의 대표가 기념식에 초대되었습니다.” 와세다대학 - 한국교우회 창립 70주년 기념식 개최
"학문적 명성과 전통에 빛나는 와세다대학이 나에게 준 영예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55]
"특히 존경하는 정치선배였던 신익희, 김성수 선생이 공부한 와세다대학에서 명예로운 학위를 받게된 것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한다"[56]
“와세다정신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나가면 거칠 것이 없다」는 나의 좌우명과 일치한다.”[57]
- 1994년 고야마 츄마루(小山宙丸)총장 등 대학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으며
- 강상중 - 도쿄대학 교수
- 강세형 - 동국대학교 교수, 대한민국 국회의원
- 구흥남 - 재선 대한민국 국회의원
- 권오병 -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 법무부 장관
- 권중돈 - 대한민국 5선 의원, 국방부 장관
- 김내성 - 추리소설가
- 김상도 - 대한민국 국회의원
- 김상만 -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동아일보 사장
- 김상홍 - 삼양그룹 회장
- 김성수 - 동아일보 설립자, 제2대 대한민국 부통령. 1932년에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의 전신)를 인수한 고려중앙학원 초대 이사장이기도 하였으며[58] , 위에 나온 김상만 이사장의 부친. 고려대학교의 교명을 고안해 설립한 인물
- 김영조 - 야구인
- 김철수 - 독립운동가
- 김연준 - 한양대학교 총장
- 류석동 - 문학부 영문과. 영문학자이자 무교회주의 신학자로 <성서조선> 창간멤버, 가수 김현식의 외할아버지 #
- 문석주 - 독립운동가
- 문진석 - 대한민국 국회의원. 정치학 석사
- 박갑동 - 남로당 출신 언론인
- 박낙종 - 독립운동가
- 박상연 - 국제교양학, YTN 아나운서
- 박태준 - 대한민국 국무총리, 포스코 회장. 기계공학과 중퇴 후 육군사관학교 입학
- 박유하 - 문학연구과 박사
- 백남훈 - 독립운동가, 국회의원
- 백새은 - 가수
- 손명현 -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고교 교과서‘어떻게 살 것인가’저술 #
- 손진태 - 역사학자
- 송진우(독립운동가)
- 신격호 - 롯데그룹 창업회장. 세계 5대 마천루 숙원 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 설립자
- 신익희 - 정치인, 제1-2대 국회의장
- 안권수 - 야구선수, 롯데 자이언츠 소속
- 안재홍 - 독립운동가, 정치인
- 양주동 - 문학부 영문과. 영문학자, 국문학자, 시인, 수필가
- 오제도 - 법조인, 보도연맹 학살사건의 주범
- 이광수 - 소설가
- 이병철 - 삼성그룹 창업자. 초대 회장. 정치경제학부 중퇴 및 박사[59]
- 이건희 - 삼성그룹 선대회장. 학부 졸. 법학박사[60] #
“와세다 출신 중 시가총액 1위 기업의 경영자는 누구일까요?” 일본 와세다대학 비즈니스스쿨 (경영대) 수업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 교수가 있다. 학생들은 유니클로를 이끄는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이라고 대답했지만, 교수의 대답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1961년에 와세다대 상학부에 입학해 1965년 졸업했다. 2010년엔 와세다대로부터 대학원 명예박사학위도 받았다. 2014년 와세다대는 정치경제학술원연구도서관과 정치경제학술원학생도서관의 간판을 ‘이건희 기념도서관’으로 변경해 개관했다. △“본 대학 동문인 이건희씨가 철학과 인덕을 겸비한 경영자로서 인류사회에 공헌하고, 일본과 한국의 우호 관계 증진을 위해 힘써온 일은 와세다의 큰 긍지이다.” 와세다대 홈페이지엔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 이유가 적힌 결의문과 함께 박사모를 쓴 이건희 회장의 기념사진이 걸려 있다. # #
- 이동찬 - 코오롱그룹 선대회장
- 이병도 -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교수
- 이성권 - 국제관계학 석사. 전 국회의원
- 이회성 - 소설가, 외국인 최초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 장덕수 - 정치인
- 전영 - 가수
- 전유하 - 문화구상학부. 일본어 강의 영상 등을 올리는 한국의 유튜버.
- 장택상 - 1908년 입학. 수도관구경찰청장, 초대 외무부장관, 대한민국 국무총리, 민의원 의원 등 역임. 후에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 입학
- 조광운 - 광운대학교의 설립자
- 조석래 - 효성그룹 선대회장
- 조용원 - 배우
- 전형필 - 법학부. 교육자, 문화재 수집가[61]
- 최영의 - 무술인, 극진공수도 창시자
- 최두선 - 동아일보 사장
- 최창익 - 북한의 연안파 정치인
- 천신일 - 고려대학교 교우회 회장. 세중그룹 대표이사
- 한현우 - 송진우 암살범
- 홍원화 - 공학부 석사, 박사. 경북대학교 총장
- 황순원 - 소설가
- 허미미 - 유도 선수. 독립운동가 허석의 후손
- day지현 - 인플루언서, 방송인
- 문션 - 인플루언서
- 문명자 - 미국의 한국계 미국인 언론인
9.2. 와세다 일본 현지 동문[편집]
- 가네코 야스시 - 정치인, 상학부.
- 가와우치 히로시
- 가이후 도시키 - 제76-77대 총리, 법학부.
- 고레에다 히로카즈 - 문학부 졸업. 세계적인 영화감독. 2014년부터 와세다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 기시다 후미오 - 제100, 101대 총리, 법학부.
- 구로이와 유지 - 정치인
- 구마가이 도시히토 - 정치인
- 나루오카 아키히코 - 101경기연맹 소속 프로 작사
- 나가하마 히로유키 - 정치인
- 나카모토 히메카 - 인간과학부 재학 중. 전 노기자카46 멤버
- 나카무라 쇼고 - 야구선수,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 나카무라 키치에몬 - 유명 가부키 배우. 형인 2대 마츠모토 하쿠오는 연극과 출신이다. #
- 누카가 후쿠시로 - 정치인
- 니시노 아키라 - 전 축구선수. 러시아 월드컵 일본대표팀을 이끌었고, 현재 태국 국가대표팀을 맡고있다.
- 니시카와 다이이치로 - 정치인
- 니시쿠보 미즈호 - 애니메이션 감독
- 나카마타 시오리 - 前 AKB48 멤버,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 졸업.
- 노나카 미키 - 모닝구 무스메의 멤버
- 노다 요시히코 - 제95대 총리, 정경학부 정치학과
- 다나카 마키코 - 정치인
- 다이라 마사아키 - 중의원 의원. 도쿄도 제4구.
-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 - 나루히토 덴노의 6촌 여동생. 국제교양학부 졸업.
- 다카토리 슈이치 - 정치인
- 다케다 료타 - 정치인
- 다케시타 노보루 - 제74대 총리, 상학부.
- 데몬 각하 - 세이키마츠의 보컬. 세이키마츠 자체가 와세다 포크송 동아리가 시발점이다.
- 라울(Snow Man) - 아이돌 Snow Man의 멤버. 인간과학부 (통신교육과정 e스쿨)건강복지과학과에 재학중.
- 마쓰바라 진 - 정치인
- 마츠모토 하쿠오 - 유명 가부키 배우. 연극과 출신이며 중퇴했다.
- 마후네 타다시 - 드라마 감독. 문학부.
- 모리 요시로 - 제85대 총리, 상학부.
- 모리시게 쥬이치 - 록밴드 ZIGGY의 보컬 #
- 모리야 키미에(守谷季美枝) -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의 여동생인 모리야 아야코의 시어머니. NGO 국경없는 아이들 이사 역임, 2015년 NGO 활동차 캄보디아를 방문하다가 풍토병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인하여 태국 병원에서 작고. #
- 모리 타케시 - 애니메이션 감독
- 모치즈키 토모미 - 애니메이션 감독
- 모토다카 카츠키 - 아이돌 7 MEN 사무라이의 멤버. 창조이공학부.
- 무라카미 쥰 - 최고위전일본프로마작협회 소속 프로 작사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부 졸업. 세계적인 소설가.
- 미노와 하루카 - 코미디언. 콤비 '하리센본' 소속. 제2문학부 졸업. #
- 미야케 신고 - 정치경제학부 졸업.
- 미야타 마리노(宮田麻里乃) - 2009 미스 재팬 우승자. 당시 고등학생으로서 미스 재팬에서 1위를 차지해 화제가 되었다. 이후 방송, 영화, 잡지 등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 2010년 4월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 2014년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은행에 입행했다. #
- 미즈노 나나미 - 문학부 졸업.
- 미타조노 사토시 - 교육학부 졸업.
- 박갑동
- 보니 잭스의 모든 멤버 - 일본 3대 중창단 중 하나. 유난히 만주국 출신들이 많아 옛 만주국에서 불리던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62]
- 비야마 - 와캇테TV 유튜브 진행자. #
- 사와노 히로유키 - 기동전사 건담 유니콘과 그 외 애니메이션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
- 사이토 소마 - 성우, 문학부 졸업.
- 사이토 유키 - 야구 선수
- 사토 타츠오 - 애니메이션 감독
- 세리카와 유고 - 애니메이션 감독
- 세코 아유미 - 상학부 졸업.
- 세코 히로시게 - 정치인.
- 세키 히로미 -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 소 노보루(宗昇) - 영문과 졸업. 덕혜옹주의 외동딸인 소 마사에(宗正惠)의 남편. 본래 성씨는 스즈키(鈴木)였으나 결혼 후 장인인 소 다케유키의 요구로 처가의 성씨를 따랐다. 중학교 교사였으며 시인이기도 하다. #
- 소 마사에(宗正惠) - 덕혜옹주와 소 다케유키의 딸. 영문과 졸업. #
- 스가 와사부로 - 정치인. 스가 요시히데의 아버지
- 스가와라 잇슈 - 정치인.
- 스즈키 모사부로 - 정치인.
- 스즈키 슌이치 - 정치인.
- 시마다 미치루 - 각본가
- 시바타 타카히로 - 밴드 와스레란네요의 기타리스트.
- 시모무라 하쿠분 - 정치인. 전 문부과학대신.
- 쓰지모토 기요미 - 정치인.
- 아마즈메 류타 - 만화가, 대표작은 나나와 카오루
- 아베 노리유키 - 애니메이션 감독
- 아오키 노리치카 - 야구선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소속.
- 아오키 미키오 - 정치인, 일본 정부 내각관방장관. 중퇴.
- 아사누마 이네지로 - 정치인
- 아즈미 준 - 정치인
- 아카마츠 히로타카 - 정치인. 중의원 부의장.
- 야나이 타다시 - 정치경제학부 졸업. 유니클로 사장. 일본 1위의 부자.
- 야마모토 나오키 - 만화가
- 야마나카 다케하루 - 정치인. 정치경제학부, 수학과, 대학원 이공학연구과
- 야마우치 히로시 - 닌텐도 3대 사장
- 야부 코타 - 아이돌 Hey! Say! JUMP의 멤버. 인간과학부 (통신교육과정 e스쿨)인간정보과학과 졸업.
- 에도가와 란포
- 에토 세이시로 - 정치인. 정치경제학부
- 오노 유우키 - 성우. 스포츠 과학부.
- 오다 카즈마사 - 대중음악계의 거장이자 국민가수, 이공대학원 석사
- 오보카타 하루코 - 만능세포 연구논문 조작 사건의 당사자다.[63]
- 오부치 게이조 - 제84대 총리, 문학부 영문학과.
- 오시다 가쿠 - 배우
- 오시마 아쓰시 - 정치인
- 오쓰카 고헤이 - 정치인
- 오오타키 에이치 - 음악인, 핫피 엔도 멤버
- 오지마 카즈야 - 야구선수
- 오카다 류타로 - 배우, 법학부
- 오카무라 텐사이 - 애니메이션 감독
- 오코우치 이치로 - 각본가
- 오타니 토모히사 - 야구선수
- 오토다케 히로타다 - <오체불만족>의 저자
- 요시나가 사유리 - 1960, 70년대 일본 연예계를 휩쓴 전설적인 영화 배우
- 와세다 유키 - 정치인
- 와타나베 히로미치 - 정치인
- 와타야 리사 -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64] 의 작가. 교육학부 졸업.
- 와카모토 노리오 - 전직 경찰, 성우, 법학부 졸업
- 와카야마 보쿠스이 - 일본의 국민적 가인(歌人)
- 와키타 준 - BEMANI 시리즈의 작곡가
- 요시노 마사요시 - 정치인
- 요시노 히로유키 - 각본가
- 우에다 신야 - 교육학부 중퇴
- 우치야마 코우키 - 성우. 문학구상학부 졸업.
- 유 사리 - 스포츠과학부 학사
- 유우키 아오이 - 사회과학부 졸업.
- 이게타 히로에 - 배우. 인간과학부 졸업.
- 이나다 도모미 - 정치인
- 이데이 노부유키 - 소니의 전 CEO
- 이마무라 쇼헤이 - 영화감독
- 이마이 하루카 -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 이시이 히로오 - 전 프로야구 선수, 현 정치인.
- 이시바시 단잔 - 제55대 총리, 문학부 철학과.
- 이이다 마사히토 - 최고위전일본프로마작협회 소속이었던 프로 작사
- 이와야 다케시 - 정치인
- 이치리키 료(사회학과) - 프로 바둑기사
- 이치카와 토모히로 - 배우. 사회과학과
- 이타가키 토모노부 - 테크모 산하의 게임 개발 팀인 팀 닌자의 전 리더
- 짓소지 아키오 - 영화 감독, 연출가, 각본가.
- 카나이 손데
- 카메다 세이지 - 음악 프로듀서, 베이시스트, 도쿄지헨의 멤버.
- 카케가와 히로히코
- 칸노 요코 - 작곡가
- 케라 에이코 - 아따맘마와 <적나라한 결혼생활>의 작가로,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데뷔했다. 제2문학부 졸업.
- 코야마 츠요시
- 코야마 타카오 - 각본가
- 키라 요시코
- 키바야시 신
- 키히라 리카 -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인간과학부(통신교육과정 e스쿨) 재학.
- 코미야마 사토루 - 교육학부를 졸업했고 현재는 와세다대학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
- 쿠게 토시야 - 공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청년으로, 유타 대학교 어학 연수 도중 방학을 맞아 여행을 다니다가 9.11 테러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에 휘말려 사망했다.
- 쿠로미 하루카 - 아이돌 노기자카46 멤버.
- 타즈미 리쿠 - 애니컬러 주식회사의 대표이자 니지산지의 총괄 프로듀서
- 타카테라 시게노리 - 특촬물 프로듀서, 특촬 평론가.
- 타쿠미 슈 - 역전재판 시리즈의 메인 디렉터.
- 테라야마 슈지 - 국문학과 중퇴. 만능 예술인.
- 토리타니 다카시 - 야구선수이며 한신 타이거스 소속
- 토야마 나오 - 문화구상학부 졸업.
- 하뉴 유즈루 -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인간과학부(통신교육과정 e스쿨) 졸업.
- 하라다 카츠히로 - 철권 시리즈의 프로듀서. 문학부 심리학과 졸업.
- 하라마키 코지
- 하시모토 도루
- 하야카와 노리츠구 - 일본 지하철의 아버지. 도쿄메트로의 전신인 제도고속교통영단의 설립자이자 초대 사장. #
- 한쯔 엔도 - 푸드 저널리스트. 라멘 분야에서 특히 강하다.
- 호리 나가후미 - 특촬물 감독, 프로듀서
- 호리이 유지 -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 디자이너.
- 후루카와 가이쇼 - 101경기연맹 소속 작사
- 후루카와 슌타로 - 닌텐도 6대 사장
- 후쿠다 야스오 - 제91대 총리, 정경학부 정치학과
- 후쿠타케 소이치로 - 베넷세의 고문. 일본 21위의 부자로, 와세다 출신 중 야나이 다다시 다음의 부자. 도쿄대학기금 인터뷰
- 후쿠로우즈 - 혼성밴드로 멤버 전원이 와세다 대학 음악동아리 선후배 사이다.
- 후쿠하라 요시타다 - 교육학부 졸업.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야오요로즈의 공동 설립자.
- 히로카네 켄시 - 시마 코사쿠 시리즈의 작가.
- DALT - 일본 유튜버. 한국어, 영어, 일본어 3개국어에 능하다.
- KEN THE 390 - 일본의 래퍼.
9.3. 그 외 국가의 동문[편집]
중국 언론에서는 이전부터 와세다대학과 중국의 깊은 연관성에 대해 보도해 왔다. 메이지 시대에 청국에서 정부 장학생 13명을 받아들여 일본어 교육을 제공하였고, 1913년(다이쇼 2년)에 후에 중국 정부 및 집권당의 창립 멤버가 된 리다자오(李大釗)가 입학했다. 같은 창립 멤버이며, 첫 대표로 선출된 천두슈(陳獨秀)도 와세다에서 학습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1998년에는 장쩌민 주석, 2008년에는 후진타오라는 두 명의 국가주석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특별히 와세다를 방문했으며, 중국에서의 인지도가 굉장히 높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일본의 메이지 개혁에 대해 가르치며, 메이지 정부에서 활동한 것은 와세다의 창립자,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였고, 그곳에서 학습한 유학생들이 중국 국가 및 집권당을 창립했던 것이 중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인용 기사
- 쑹자오런 - 중국의 혁명가, 정치가 - 宋教仁 (Sòng Jiàorén) - 대한민국 건국훈장 - 송교인
- 리다자오 - 중국 국가 설립 핵심 멤버 - 李大钊 (Lǐ Dàzhāo) - 이대조
- 천두슈 - 중국 국가 설립 핵심 멤버 - 陈独秀 (Chén Dúxiù) - 진독수
- 랴오중카이 - 중국의 혁명가, 정치가
- 인루겅 - 중화민국의 외교관
- 펑파이
- 저우언라이 (주은래) - 중국의 혁명가, 정치가. 와세다대학에서 수강[65] 하다가 귀국해 현지 명문 난카이대학 졸업
하기는 편의상 한어병음 및 한국 한자 직독을 추가하였다.[66]
- 랴오중카이 (廖仲恺) (Liào Zhòngkǎi): 요중해 - 혁명 지도자,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역임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재정부 장관, 노동부 장관
- 랴오청지 (廖承志) (Liào Chéngzhì): 요승지 - 중국 당원, 외교가
- 진쇼푸 (金硕甫) (Jīn Shuòfǔ): 김석보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양룬바이 (杨沦白) (Yáng Lúnbái): 양륜백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시에츠 (谢持) (Xiè Chí): 사지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자오톄차오 (赵铁桥) (Zhào Tiěqiáo): 조철교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천슈윈 (陈漱云) (Chén Shùyún): 진수운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양자오롱 (杨兆容) (Yáng Zhàoróng): 양조용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리친허 (李琴鹤) (Lǐ Qínhè): 이금학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 진리치우 (金丽秋) (Jīn Lìqiū): 김려추 - 통련회 회원, 혁명가, 중화민국 창립자 중 한 명, 중화민국 초대, 2대 쓰촨성 참의원
- 진메이링 (金美龄) (Jīn Měilíng): 김미령 - 전 중화민국 총통부 국책 자문
- 청종모 (城仲模) (Chéng Zhòngmó): 성중모 - 공법학자, 전 중화민국 사법원 부원장, 대법관
9.4. 작품[편집]
- 후구타 마스오 - 사자에상: 삼수 후 상학부 진학, 졸업.
- 시마 코사쿠 - 법학과 졸업
- 야가미 타이치 -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 후유츠키 아즈사 - GTO(만화): 제1문학부 출신
- 아카츠카 후지오의 만화 천재 바카본에선 바카본 파파가 와세다대학 옆에 위치한 바카다 대학을 졸업했다는 설정이 존재한다.
- 키바야시 신의 만화 도쿄 80's가 이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 이치카와 카나 - 내 마음의 위험한 녀석: 재학 중.
10. 와세다 관련 기록[편집]
매일경제: 일(日)기업들 와세다대 출신 가장선호. '학교우등생이 사회우등생 아니다'입증. 일본기업들은 사회통념과는 달리 동경대 같은 국립 명문대학 보다는 와세다(조도전)대 출신을 더 쓸모있는 인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주간 다이아몬드 최신호는 3백14사 인사부장을 상대로 전국 주요대학 출신자의 「인재유용도」를 조사한 결과 모두 11개 항목중 9개 항목에서 사립 명문 와세다대가 우위를 차지, 기업이 압도적으로 선호하고 있는 대학으로 뽑혔다고 보도했다. 이와함께 일본 양대사립으로 불리는 게이오(경응)대는 2위로 밀려나긴 했지만 기라성 같은 국립대학을 제치고 와세다대와 더불어 나란히 1,2위를 차지해 일본 최고의 사립대다운 면모를 보였다. #
: 제주은행은 1대 김봉학 전 행장에 의해 설립될 때만 해도 재일교포 중심의 조직이었다. 그는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 정경학부를 졸업했고 천마합성수지를 창업했다. 재일교포 사업가로 성공해 그 자금을 밑천으로 제주은행을 설립했고 초대 행장까지 맡았다. 1995년에는 김봉학 전 회장의 아들인 김성인 전 행장이 취임하기도 했다. 김성인 전 행장도 일본에서 자라 아버지의 모교인 와세다대 상학부를 졸업했다. 훗날 외환위기로 경영이 어려워진 제주은행을 신한금융이 인수한 것도 재일교포 자본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 가능했다. (중략) 과거 일본 명문대로 꼽히는 와세다대, 지역을 대표하는 제주대, 국내 최고 대학으로 인정받는 서울대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 행장이 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달라진 분위기다. #
‘톡파원 25시’ 하버드 대학교, MIT 공대, 일본 와세다 대학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까지 ... 하버드→와세다, 명문대 합격 비법 공개 #
일본 도쿄 도심 신주쿠에 위치한 와세다대학 본부 캠퍼스 학생식당 옆에 한국식 정자가 있다. 정자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와세다 대학출신 한국 기업인 등이 기금을 모아 기증해서 만들어졌다. 이건희 회장은 와세다대 동문인 선친 이병철 회장의 영향으로 어릴 적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대학은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가 일본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스포츠도 잘 아는 대표적인 한국 기업 총수의 한 명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회장이 대학 재학 중일 때만 해도 한국 경제는 기술적 차이가 워낙 커 일본 경제의 변방 역할을 하는 수준이었다. 일본의 선진 기술을 도입할 정도도 되지 않았으며 그냥 흉내 내는 데 불과했다. 이 회장은 선친과 함께 일본 경영기법과 노하우를 부지런히 배우고 삼성에 적용했다. #
백기만은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양주동과 세 사람(이장희, 이상화, 양주동)은 금성(金星)동인으로 문단 활동을 함께 했다. #
김우진은 목포 백만장자 김성규의 장남으로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다. # 부잣집 아들에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 코스를 밟은 유부남과 배우 출신의 가수가 동시에 사리진 것은 호사가들의 입맛을 당기는 뉴스였고, 이들이 사라졌다는 사건이 전해지자 언론에서는 ‘정사(情死)’로 단정해 앞다퉈 보도했다. #
“재일동포 출신으로 일단 일본 사회에서 취직이 어려웠어요. 빠징코나 폐품 회수 자영업자 등 선택지가 좁았지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용기를 내서 소니에 지원했는데, 가타부타 연락도 없었어요(웃음). 한마디로 무시를 당한 거예요. 몇 년 전 소니 본사가 있는 시나가와에서 간부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면서 “소니에서 떨어진 강상중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분들이 “강 선생, 행운이십니다" 그래요. 소니는 그때 이후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지금은 삼성을 못 따라간다고요.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대학 시절엔 어두운 얘기였어요.” #
이런 월례행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 대학동창회 사상 그 유례가 없는 고대만의 자랑스런 전통 사업이다. 자매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벤치마킹해 갔다지만 뒷소식이 없고... #
교육사업에 전 재산 바친 청암 이하복 선생. 일본 와세다 대학 출신의 엘리트 이하복 선생은 관리가 되기를 바란 아버지 뜻을 거부하고 교편을 잡습니다. #
롯데는 삼성보다 더 삼성 같은 기업이다. 롯데 직원들도 맞장구 친다.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 등 삼성의 좋은 점은 안 닮았다. 대신, 나쁜 면은 더 진하게 닮았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문화, 총수가 전횡하는 황제경영 등이 그렇다. 닮은 점은 그밖에도 많다. 창업주는 특히 그렇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롯데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은 모두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창업 이후에도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일본식 경영을 배워 적용했고, 일본 기업인들처럼 정치권력을 관리했다. #
와세다대학교가 지난 19일 고려대학교를 찾아 첫 친선경기를 치렀다.와세다대 벤치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양 팀 벤치를 통틀어 있는 유일한 여자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라는 점. 와세다대 벤치에 앉아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정민영(21)씨였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정민영씨는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와세다대에 입학했다. 일본에서도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는 학생들만 갈 수 있는 와세다대이지만 정민영씨는 당당하게 입학했다. 정민영씨는 “야구같은 경우는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는데, 농구는 사실 한국이 한 수 위잖아요.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해요. 이렇게 시설이 좋은 체육관이 있다는 것도 자랑스럽고요”라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
차남 이창희씨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와세다대학에서 만난 일본인인 나카네 히로미(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했다. 하지만 한비사건으로 삼성그룹을 떠나 1973년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1977년 특수세라믹사를 인수해 새한미디어로 재출발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백혈병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1991년 7월 미국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 #
글로벌 경영전략 수립 : 롯데는 지난 1964년 국내 상위권 대학의 이공계 출신 7명의 소수 정예 멤버를 뽑아 도쿄대와 와세다대학에서 교육을 시켰다. 이들이 바로 롯데 1기가 됐다. 이중 4명이 롯데의 최고 수장까지 올랐다. #
이창용에 의하면 전형필이 24살 나이에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유산 상속받은 땅은 무려 800만 평에 달했다. 그의 집은 종로 일대 99칸 기와집이었으며, 창동 노원 일대 수십만 평의 땅이 그의 집안 것이었고, 충청도 서산 공주 농지에서는 매년 수만 석의 추수를 거둬들였다. 이런 전형필이 본격적으로 '문화보국'에 뛰어든 나이는 고작 24살이었다. 당시 아버지의 바람대로 조선인들의 편에서 그들을 구제해주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와세다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전형필은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의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받아 하루 아침에 백만장자가 되자, 그간 마음에만 품고 있던 '일본이 만든 법으로 조선인을 지키는 게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
안철수연구소가 일본 명문 사립대와 공공기관과 제품 공급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일본법인 안랩 재팬(www.ahnlab.co.jp)이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윈도우 서버용 ‘V3 VirusBlock(기업용)을 납품하고 일본 지방 교육위원회와도 향후 5년간 직판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8일 밝혔다. #
신 회장의 5남매는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집안에, 모두 중매로 결혼했다. 큰딸 혜성(24)씨는 일본 세이신여자대학을 나와 와세다대학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어머니가 설립한 그룹 계열사 ‘쓰리에스포유’(시설관리전문)의 등기이사이기도 하다. #
일본 명문 와세다 대학을 방문해 강연할 예정이었던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우파 성향 졸업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곤란을 겪었다. 수십명의 와세다대 졸업생들은 성명을 통해 후 주석을 `티베트인들의 민족자결권과 인권을 탄압하는 지도자'라고 비난하면서 방문 일정의 취소를 요구했다. #
일본 4대 어덜트비디오(AV) 제작 회사가 일본 명문 와세다(早稲田) 대학에서 채용박람회를 개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일본 언론을 인용해 지난달 이들 회사가 와세다대 신주쿠(新宿) 캠퍼스에서 '섹스산업설명회'라는 이름의 박람회를 공동으로 개최했으며 약 200명의 학생이 이 박람회에 참가했다고 전했다. 박람회에 참가한 학생 가운데 약 20%가 여학생으로 알려졌다. AV 회사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와세다대 출신의 한 여직원은 이날 "애초 부모들이 자신이 이런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지만 잘 설득한 결과, 이들의 이해를 구했다"면서 개인적인 경험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
성적 좋아도 도쿄대 꺼리는 日 여고생들 왜? 여학생 비율 18.4%뿐… 와세다의 절반 수준. 재학생 기준 게이오(慶應)대의 여학생 비율은 35%, 와세다(早稻田)대는 36%로 도쿄대의 약 2배에 달했다. #
삼성가 둘째인 이창희(李昌熙)와 효성가 장남 조석래(趙錫來)가 이승만 정부의 최초 합법적 유학으로 와세다 대학에 입학했다. 이맹희 씨는 동생과 조석래 등과 만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노는데 눈이 팔려 공부는 건성건성했고 동생 이창희는 열심히 공부하여 일본의 명문가 규수를 만나 부모님 허락 없이 제국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니혼게이자이, 와세다는 '루이뷔통급'…국립 도쿄(東京)대학을 비롯한 와세다, 게이오 등 일본 명문대학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고교 3년간 열심히 공부했지만, 베이징대학(北京大学)[68]
, 칭화대학(清華大学) 등 중국 내 명문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낙방생들의 '탈중국'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낙방생의 유학 선호지역 중 하나가 일본이다. "도쿄대학 5명, 교토(京都)대학 9명, 와세다대학 60명….". 중국에서는 특히 와세다 대학이 유명해 브랜드 파워가 게이오대나 히토쓰바시(一橋)대학을 앞선다. 양 사장은 "브랜드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와세다는) 가방으로 치면 루이뷔통처럼 사람을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대학은 도쿄대, 와세다대 등이다. 양커 사장은 "우리 학원은 중국에서도 지명도가 높다"면서 "중국인은 체면[69] 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럴듯한 학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해외유학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와세다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중국인은 2천550명으로 5년 전에 비해 40% 늘었다. 이는 전체 유학생의 절반에 해당한다. 한 수험생은 "와세다 대학 수험장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중국인뿐이더라"고 털어놓았다. (중략) 하지만 중국 학생들 사이에서는 와세다대가 특히 인기가 높다. 양씨는 이에 대해 “명품 브랜드 중에도 루이뷔통이 중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 연합뉴스, 조선비즈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제주외국어고등학교가 떠들썩하다. 학교 역사상 최초로 일본 전통 명문 와세다대학교(Waseda University, 早稲田大学) 합격자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사교육에 의존한 것도 아니고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스스로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합격자의 부모는 기쁨 만큼 걱정도 가득하다. 어찌된 일일까? 게다가 국내에서 고3 때 바로 시험을 봐 합격해 일본 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소위 ‘현역’으로 일본 명문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드문데다 서울 강남에서 학원을 꾸준히 다니며 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장학금 제도를 찾아보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국내 정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은 사실상 국내 대학에 진학했을 경우에만 해당되더라구요. 사실 와세다 대학은 현지의 부유층들이 진학하는 학교라고 해요. 만약 영지가 학교에 가서 기가 죽지나 않을까 너무 염려돼요” #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류 원조’ 손일형 IMX 대표. 최정점에서 떨어진 나락에서 한국 드라마 최초 아마존 오리지널 시리즈 들고 귀환. 손일형 대표가 남들보다 일찍 콘텐트와 멀티 플랫폼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은 남다른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했다. #
아시아퍼시픽 국제외국인학교 (Asia Pacific International School, 이하 APIS)는 올해 전체 졸업생의 15%(9명)가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했으며, 75% (42명)가 미국 상위 30개 대학에 진학했다고 10일 밝혔다. 2012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한 APIS의 서울 캠퍼스와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 하와이 캠퍼스 졸업생 전원은 100%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매년 꾸준히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 다트머스 대학교(Dartmouth College),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 등 미국 명문대뿐 아니라 와세다 대학교 (Waseda University), 게이오 대학교 (Keio University), 홍콩 대학교 (University of Hong Kong) 등 세계 유수 대학의 재학생을 배출해왔다.[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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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출신의 평사원이 소니 CEO에 오르기까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이데이 노부유키는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였다. 그의 아버지는 명문 와세다 대학의 교수였으며, 이데이 노부유키 본인 역시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한 수재였다. 그는 1960년, 대학 졸업과 거의 동시에 소니에 입사했으며,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10여년간 유럽 지사에 근무했다. 회사일을 하면서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연구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국제적인 감각을 익히게 된다. #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일본의 명문 국립대학인 도쿄대학교에 여러 차례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하고, 또 다른 명문인 와세다대학교로 진학합니다.[71]
그리고 1982년 와세다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후 일본장기신용은행에 입사했습니다..... #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최고 명문 도쿄(東京)대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아버지를 포함해서 주변에 도쿄대학 졸업생이 많아 자신도 당연히 도쿄대학에 들어갈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3번이나 실패했다. 결국 와세다(早稻田)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다. #
방탄소년단(BTS) 지민에게 수학 공식을 이용해 팬심을 고백해 화제를 모았던 인도네시아 작가 겸 유튜버 (인플루언서) 제롬 폴린 시자밧(Jerome Polin Sijabat)이 'jimin x min = jiplus'라는 글을 게시해 눈길을 모은다. 제롬 폴린 시자밧은 일본 명문 와세다 대학(早稲田大学, Waseda University)에서 수학을 전공한 수재로 2020년 제40회 인도네시아 국제 북페어(Indonesia International Book Fair - IIBF)에서 올해의 신인 7작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
일본의 명문 대학인 와세다대학교 MBA 과정에서는 물건의 판매가 아닌 서비스 판매 중심 사고를 요구한다. ‘운동화 판매’를 예로 들면 운동화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판매하라고 말한다. 운동화 구매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을 판매하여 비즈니스를 풀어가라는 말이 될 것이다. 현대 경영의 흐름은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제품을 사용하면서 사용자가 느끼는 가치를 디자인하는 쪽으로 이미 발전해 왔다. 디자인경영의 하버드씽킹
日 코로나는 대학입시도 피해 가나? 사회적 거리두기 0m. 일본 사학 명문인 와세다(早稲田)대학 교육학부 입시가 실시된 19일 오후 시험을 마친 수천 명의 수험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지하철역까지 장사진을 이뤘다. #
11. 입시[편집]
- 와세다대학과 같은 사립대학은 대학입시에 있어서 국립대학과 상당히 다른 차원의 제도로 운영된다. 이것은 와세다대학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모든 사립대학[72] 전반의 사정에도 해당된다.
- 국립대학은 전기일정, 후기일정 각각 1곳 밖에 지원할 수 없고, 구제국대학은 전국적으로 시험날짜가 통일되어 있다. 국립대학들은 복수지원이 불가하며 대부분 전기일정에서 입학자를 선발하므로 기회가 사실상 1번이다. 반면에 사립대학은 대학마다 시험 일정이 다르며, 같은 대학 내에서도 학부가 다르다면 입시일정이 다른 경우가 많고, 여러 학부에 중복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계획을 잘만 짜면 사립대학 수십 곳에 중복 지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립대학 합격자의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사립대학 입시관계자들은 이를 미리 내다보고, 모집인원을 아득히 넘는 인원을 합격시킨다.[73]
- 와세다대학과 같은 사립대학은 일부 전형을 제외하고는 센터시험 없이 오직 대학 자체의 본고사만으로 선발을 한다.[74] 그 반면에 국립대학의 입시는 한국의 수능과 같은 격인 센터시험을 수험해야 하며, 센터시험 성적으로 1차 전형, 그 다음에 대학 자체의 본고사를 치른다. 국립대학 문과계의 경우, 센터시험에서 7과목[75] 의 모든 영역을 수험보지만, 사립대학 문과의 경우 기본적으로 3과목[76] 시험이다. 게이오기주쿠대학의 경우 2과목 입시도 존재하며, 심지어 1과목 입시에 가까운 게이오대학 SFC도 존재한다. 이렇게, 입시 과목 수에서 국공립대학에 비해 부담이 적어지고, 문과계열 학부는 수학이 선택과목에 불과하므로 수포자도 합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사립대학 입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 사립대와 국립대는 시험과목 대책, 전략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와세다대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경우, 국립대학은 전혀 지원하지 않고 오직 사립대학만을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77] 즉, 모든 대학 레벨을 초월한 극히 일부의 최상위권 학생이 아니라면 애초에 국립, 사립의 어느 한쪽에만 힘을 쏟은 수험생이 대부분이므로, 국립-사립을 비교할 모집단 자체가 애매한 셈이다.
- 재단 내 사립대학의 부속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의 경우, 시험 없이 대학 진학이 가능한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이 존재한다.[78] 따라서 학생의 학력 편차가 도쿄대, 교토대를 아쉽게 떨어진 최상위권 수준 학생부터 초등학교 입학 후 별다른 수험공부 없이 무시험 전형으로 온 금수저까지, 편차가 대단히 크고 다양하다.[79]
- 입학 정원의 약 절반은 일반입시와 같은 대학입시 시험을 치르지 않고 추천 및 AO 입시, 혹은 고등학교 내부진학으로 입학한다. 일본의 수능격인 센터시험입시, AO입시, 글로벌입시, 귀국자녀입시, 사회인입시, 외국인입시[80] , EDESSA입시, 학사편입 등도 있다. 난이도는 전반적으로 어렵다.
- 동 소케이 게이오기주쿠대학의 학부 입시가 주로 고난도의 영어를 요구한다면, 와세다대학은 주로 고난도의 국어능력을 필요로 한다. 다만 외국인 입시에서는 이 경향이 역전되어, 토익이 허용되는 정치경제학부를 제외하고는 와세다에서 고도의 토플 성적을 요구하고 있다.
11.1. 일반 입시 본고사[편집]
와세다의 입시 시험(入試)은 '참으로 와세다다운 출제'라고 평이 많은데, 다른 대학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유형의 출제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국어와 공민에서 교수들이 자신들의 입맛과 학풍에 맞는 학생을 뽑는 느낌이 매우 강하다. 일반 입시로 와세다를 출원하여 수험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의 난관(難關)은 다음과 같다.
- 문제의 제한 시간이 매우 촉박하여 대학 중에서 가장 자비없다.
- 특정 과목의 난이도가 높은 데 비해 평균 합격점은 결코 낮지 않으며, 고난도의 문제로 합격라인 7할(割)의 득점을 받기 위한 벽이 매우 높다.
- 이러한 특징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고 하는 심적 부담, '열심히 준비해도 왠지 (합격으로) 보상받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결과적으로 문제와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으로 요약 가능하다. 이 벽을 넘기 위해서는 와세다 입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학부의 벽을 넘는 상당량의 과거 문제 풀이 및 연구가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면 특징이 있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 특징을 파고 들어서 과거 문제들의 경향을 체득하면 합격률이 오른다는 이야기. 즉, 다른 국립대학이 1지망인 경우, 지망교 공부도 빡센데 방대한 양의 와세다 일반입시의 과거문제 풀이와 유형 분석하며 준비하는 것은 시간상 사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국립대학이 1지망인 지원자들은, 정 사립대학을 보험삼아 수험하고 싶다면 일반입시보다는 센터시험 이용입시를 지원한다.[81] 또한, 학부에 따라서 과목별로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정치경제학부는 영어와 지리가 매우 어렵고, 법학부의 경우에는 국어가 매우 어렵다. 다만 문과계 학부 입시는 국어와 영어, 세계사 또는 수학을 선택하여 총 3과목만 응시하면 된다.
그러나 이들 학부에도 공통점이 있다면 기출문제를 단순히 입시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출제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가 더럽고 치사하고 어려울지라도 이에 열중해서 풀어나가며 깨우쳐 나가는 자기자신을 발견할 줄 아는 학생, 즉 학력에 맞춰서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맞춰서 자신을 끌어올릴 줄 아는 학생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방침이라는 교수의 카더라.
국립대 1지망인 학생들이 보험용으로 많이 치는 학교라서 수많은 상위 합격자들이 다른 학교로 빠진다. 카이세이 고등학교같은 경우 2021년 입시에서 213명이 와세다에 합격했으나 다들 도쿄대학같은 곳으로 빠져서 실 진학자 수는 30명이 안 되었다.
11.2. 내외국인 유학생 입시[편집]
와세다의 일본인 귀국자녀 등 유학파의 입시 입학률 (합격률)은 17%다. 한국 및 중국 포함 외국 국적 유학생은 20% 내외로, 매년 1,000여명대가 지원하면 200명 이하로 합격하는 수준이라 어려운 편이다. 와세다 유학생 학부 학사 및 대학원 석사, 박사 입시의 경우, 일본인 귀국자녀와 함께 각국의 외국인들이 시험을 치른다. 한국인과 중국인 지원자도 많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모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도쿄대와 와세다 이외의 일본 대학 지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경우도 많아서 경쟁률이 치열하다. 중국에서는 왜 도쿄대보다 와세다의 명성이 높은가
특히, MBA 등 와세다대학 석박사의 경우 일본인 진학자가 대부분이라 와세다의 입시는 기본적으로 내외국인 구분없이 엄격하다. 와세다대학 경영(상학)연구과의 경우, 2019년 데이터 기준 지원자 723명에 합격자 80명이었다. 입결 측면에서 와세다 입시 입학 합격률은 11.06%에 불과하고, 10명이 지원하면 1명이 입학하는 수준이다.[82] 일례로 와세다대학 창조이공학부 연구과와 기간이공학부 및 연구과의 입시는 2023년 합격자 평균 SAT 점수가 1448점이라 1500점 가까운 점수를 받아야 안전히 입학 가능한데, 누가봐도 미국 최상위권 대학 입학 가능 점수라 와세다 입학 난이도는 일본인 내외국민 관계없이 한국인 등도 입학이 어렵다는 것에는 사실상 이견이 사라지고 있다. # 토플도 최소 100-110은 취득해야 하며 일본어 EJU 전형도 최소 90-100 정도는 요구하도록 추세가 명문 사학에 걸맞게 급변했다.
외국인입시는 크게 입학후 일본어로 수업하는 코스와 영어로 수업하는 코스로 나누어진다.[83] 와세다대학 홈페이지에서 기출문제를 열람할 수 있다.
참고로 와세다대학은 학부 학사, 대학원 연구과 즉 석사(박사전기과정), 박사, 그리고 일본어교육과정 및 교환학생제도를 포함해서 일본에서 가장 많은 유학생이 재적하고 있는 대학이다.
- 외국학생입시 전형 外国学生のための学部入試(外国学生入試)
본고사의 구체적인 예로서는 법학부, 상학부의 경우 '학술논문의 독해와 장문서술'로 이루어진 '소논문B'를 보며, 여기에 법학부는 면접을, 상학부는 수학 시험을 추가로 친다. 문학부, 문화구상학부는 자체 일본어 시험을 부과한다[85] . 정치경제학부는 학부 내에서 별도의 시험을 출제하는데, 일본인 학생들의 수시전형 문제와 동일한 문제를 풀게되며 통계해석이 포함된 상당히 긴 지문의 글을 빠른 시간에 읽고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기간이공학부, 창조이공학부, 선진이공학부는 하위 학과(학계) 에 따라 본고사 과목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고른 과에 따른 본고사 과목을 잘 준비해야 한다.
당초 '정치경제학부', '스포츠과학부', '인간과학부'의 경우 일본에서 본고사와 면접을 보지않고 일본유학시험 성적과 토플성적, 서류제출만으로 합불을 결정하는 '도일 전 입시제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폐지되었다. 정치경제학부는 2018년도 외국인 입시를 마지막으로 도일 전 입시전형을 폐지했고 2020년도부터는 스포츠과학부와 인간과학부 도일 전 입시마저 폐지하면서, 모든 외국인 학생 전형에서 도일후 본고사와 면접이 필수가 되었다. 한 술 더 떠서 이들 세 학부는 와세다 전체를 통틀어 유학생을 뽑는 기준이 가장 자비없다. 인간과학부와 스포츠과학부는 애초에 유학생 유치에 소극적이라 뽑는 인원이 한 자릿수에, 정말 적을 때는 다섯 명이 채 안 되며, 정치경제학부는 정원은 많으나 간판학부라는 이미지가 있어 경쟁이 심하다.
- 영어 학위취득 프로그램 전형英語による学位取得プログラムへの入学試験
12. 사건 사고[편집]
- 1980년 2월 상학부 입학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3수생 아들을 둔 학부모의 부탁을 받은 고교 교사가 와세다대학 교직원[89] 과 공모하여 문제지를 빼돌려 유출시킨 사건으로, 범인들이 체포된 후 유출된 시험문제를 이용해 합격한 수험생 9명은 모두 불합격 처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 측에서는 과거의 입시부정 사례를 일제 조사, 1981년 5월에 졸업생 44명, 재학생 13명의 입학을 취소하고 학적 말소 처분을 내렸다.
- 2017년 11월 10일에 폭파 예고를 담은 메일이 대학 측에 보내져 1~3교시를 휴강한 적이 있다. 결국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다.
- 2023년 11월 14일에 본 대학 학생이[90] 대마 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총장 명의의 이메일이 발송되었다.
13. 기타[편집]
- 아시아 각국에 와세다 XXX라는 일본어 스쿨 또는 일본유학원이 활개치고 있지만 와세다대학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 일본 국내에도 와세다 이름이 들어간 학원이 꽤 있다.
- eduroam 협력교이기 때문에, 협력대학의 학생인 경우 Wi-Fi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2016년 기준 경희대학교,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포항공과대학교 등 국내 37개 대학이 협력교이다.
- 학부 기준으로 연간 학비는 문과계열 120만엔대, 이과계열 170~180만엔대이다. 인간과학부, 스포츠과학부, 국제교양학부는 160만엔대~170만엔대이다. 대학원은 문과 기준으로 대략 연 150만엔 가량. 이미지와 다르게 게이오기주쿠대학보다도 조금 더 비싸다. 일반 사립대학 중에서는 살짝 비싸며, 국립대학[91] 과 비교하면 꽤 비싼 편이다. 장학금을 노리도록 하자.
- 도쿄대학보다 더 많은 저명인사들이 강연하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노벨상 수상후 다음해인 1922년 일본에 방문했을때 와세다대학에서 강연을 하였다. 1993년에 빌 클린턴 대통령, 1994년에 김영삼 대통령, 1995년에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방문하여 연설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상술한 장쩌민 전 중국국가주석, 2005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 2008년 마찬가지로 상술했던 후진타오 당시 중국국가주석, 2017년에는 트위터 창업주 잭 도시, 2018년에는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등 해외의 저명인들이 일본에 찾을때 강연을 많이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상술하였듯 중국 인사들이 특히 와세다대학을 찾는 이유는 본 대학 명성이 중국 내에서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다수의 일본 미디어에서도 중국 엘리트들의 와세다 선호 현상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
- 와세다대학은 종합대학이지만 의학부, 그리고 예술대학이 없다. 특히 의학부가 없다는 단점 때문에 오래 전부터 대학평가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대학 측에서도 꾸준히 의학부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여러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토코로자와 캠퍼스의 인간과학부는 의학부를 설립하려다가 실패하고 남은 흔적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인근의 '도쿄여자의과대학'과 협력하여 공동 연구시설 'TWIns'를 설립하였고, 이후 아예 도쿄여자의대를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이러한 소문 때문인지 두 대학간 협력 관계는 깨졌고, 현재 TWIns는 와세다대학 단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시설은 신주쿠 도쿄한국학교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다.
-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게이오기주쿠대학이 와세다대학보다 더 세련되고 재정적으로 풍요로웠다. 그러나 게이오 재단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막대한 손실을 입으면서 학교 위상이 흔들렸다. 반면 와세다대학은 적절히 대처하였고, 이후 기금운용 실적도 좋아 게이오기주쿠대학보다 재정적으로 앞서게 되었으며, 그 덕분에 시설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다.
- 학교에 재학생들로 구성된 교향악단이 있다. 홈페이지 물론 와세다 내에 음악대학이 없기 때문에 단원들은 모두 비전공 아마추어들이지만, 1970년대부터 프로 악단들도 버거워하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 같은 난곡들을 무대에 올리고 1978년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음악 재단이 주최한 세계 청소년 관현악단 경연대회에 참가해 우승하는 등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심지어 3년 혹은 4년마다 한 번씩 유럽 순회 공연도 하고 있으며, 1986년과 2009년, 2012년에는 베를린의 필하모니에서 개최한 공연의 실황으로 CD까지 낸 바 있다. 2013년에는 창단 100주년을 맞아 기념 음악회가 개최되었고 CD, DVD, 스티커, 엽서 등의 상품이 발매되었다.
-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업계에 와세다 대학 출신이 꽤 많은데 1976년 우주전함 야마토 붐을 계기로 설립된 애니메이션 동아리가 꾸준한 노하우와 자료 축적으로 유명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그리고 먼저 업계에 들어간 선배들이 와세다 대학 출신을 잘 뽑아주고 밀어주니 빠르게 출세 루트를 탈 수 있다.[92] 그래서 이쪽 업계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와세다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있다. #공식 트위터
- 일본 대중매체에서 본 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흔히 엘리트라고 불린다.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나는 한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에서도 나온다.
학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 29.9명.[6] 상근 782명, 비상근 448명.[7] 연지(えんじ・臙脂)색이라고도 하며, 와세다대학의 아이덴티티로 사용될 때에는 와세다 레드(早稲田レッド)로 불리기도 한다. (참조)[8] 와세다는 학문적으로 탁월한 실력을 갖춘 일본 지도자들을 위한 트레이닝 그라운드입니다. 저는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9] 상세 내용은 후술[10] 와세다와 게이오기주쿠의 머리글자를 음독으로 읽은 것[11] 동일하게 도쿄 6대학 소속 및 도쿄도내에 위치한 일본 최고 명문 도쿄대학 다음으로 역대 배출 총리가 많고, 소케이 라이벌 게이오기주쿠대학은 하시모토 류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누카이 쓰요시 3명이다.[12] 1, 9, 10위 삼성 이병철 회장, 5위 포스코 박태준 회장, 6위 롯데 신격호 회장. 자세한 내용은 후술.[13] 설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의 별채가 있던 구 도쿄부 우시고메구 와세다촌(현 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와세다)의 지명에서 차용해 왔다. 한국어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조도전'이 된다. 근대 한국 사료나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조도전'은 십중팔구 와세다대학을 칭하는 말이다.[14] 와세다의 한자 표기의 첫 글자인 '早(조)'와 대학의 '大(대)'를 따온 것이다. 한국 및 중국에도 복수학위 연계 자매교인 고려대학교의 약칭인 고대, 베이징대학의 약칭 북대(北大; 베이다) 등 비슷한 사례가 있다.[15] 재단법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대학령에 의한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설립하는 건을 다이쇼 9년 2월 5일 인가한다.[16] 다이쇼 9년 문부성 고시 제35호 "재단법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에 대학령에 의한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學)을 설립하는 건을 다이쇼 9년 2월 5일 인가한다."[17] 문부성 고시 제35호로 인가된 게이오기주쿠대학이 고시 번호가 더 빠르긴 하나, 같은 날 동시에 승격되었으로 누가 더 빠른지 논쟁은 무의미하고 공동으로 최초라고 간주하면 된다.[18] 십중팔구[19] 후술할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선대회장 이건희 부자[20] 신격호 초대회장[21]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던 박태준[22] 와세다는 당시에도 학사관리가 엄격하여 졸업률이 절반 정도밖에 안됐다.[23] 1968년 대한민국 대통령 건국훈장 수여. 중문명은 송자오런 정도로 읽으면 된다.[24] 중국 정부 설립 핵심인물 중 상당수가 와세다 출신이라는 것이다.[25] 이좌이다바(一抓一大把)라고 표현.[26] 장쩌민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국가주석.[27] 한국은 400여개[28] 약 790개 중에서 8위부터 15위는 상위 약 1%에서 2% 사이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계산하면, 상위 1%는 7.9개 (790의 1%), 상위 2%는 15.8개 (790의 2%)이므로, 8위부터 15위는 이 두 비율 사이에 위치한다. 와세다는 의과대학이 없어 학술적 순위에서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일본 상위 1-2%에 해당하며, OBOG 동문 측면에서는 일본 전체 2,3위를 다툰다.[29] 일본의 대학은 캠퍼스가 분산된 경우가 매우 흔하다.[30] 와세다 캠퍼스와 도보로 5~10분 정도의 애매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교시와 교시 중간에 이 캠퍼스에서 저 캠퍼스로 서둘러 뛰어가는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31] 나쓰메 소세키의 출생지인 그 기쿠이초다.[32] 약칭 바바역. 테즈카 오사무의 대표작, 그리고 최초의 재패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철완 아톰의 고향이 되는 역이다. 만화 설정상 2003년 타카다노바바에서 태어난 아톰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부터 타카다노바바역 JR야마노테선의 출발 시그널은 아톰 오프닝 테마의 어레인지 버젼.[33] 지명 '니시와세다' 또한 본래는 와세다마치가 아니라 도쓰카마치에 속했던 지역으로 대학 때문에 지명이 붙은 케이스.[34] 와세다의 중국어 발음[35] 일본 메이지 14년 정변에서 실각한 후 재야에서 교육활동에 전념.[36] 1위 도쿄대, 3위 게이오대[37] 1위 게이오대, 3위 도쿄대[38] 프라이드는 소케이에서 와세다가 앞선다. 다만 기부는 라이벌 게이오가 54.6%로 조금 더 많이 한다.[39] 이미지만 그럴 뿐, 사실 간토(수도권) 출신이 75%로 게이오기주쿠대학과 별 차이 없다.[40] 그런데 학비는 소탈하지도 서민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게이오보다 학비가 비싼 경우가 더 많다.[41] 미국 대학 등에서는 이정도로 타국대학과 학생에 영향을 줄만한 직접적 교류가 많은 것은 흔치 않다. 지리적 이점과 한중 양국에서의 와세다의 지명도가 한 몫한 듯 하다.[42] 학석박 모두를 복수학위로 제공하는 협력관계는 흔치 않다.[43] 중화권 명문 국립 북경대 및 북경외대 총서기, 총장을 역임한 하오핑이 2023년 직접 북경대에서 와세다대학 교수진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모습.[44] 비슷한 교표에서 알 수 있듯이,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와세다대학교 정치학부는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와세다대학교에서 석박사 통합생을 모집할 때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통해 홍보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경희대-와세다 간 교환학생 파견도 활발하다.2021년부터는 경희대학교와 와세다 대학교 중앙영어토론동아리가 공동으로 초중고 영어토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45] 고려대학교와는 Campus Asia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부 복수학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소속의 4학기 이상 이수한 재학생인 경우 신청할 수 있고 3학기 동안 와세다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소속학과 학위를 수여받는다. 반대로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 재학생의 경우 고려대에서 1.5년간 수업을 듣고 복수학위를 수여받을 수 있다. 단, 고려대->와세다는 한국/중국 국적 학생만, 와세다->고려대는 일본/중국 국적 등 학생만 프로그램 참여가 가능하다. 고려대학교->와세다대학, 와세다대학->고려대학교 또한, 와세다대학의 해외거점 중 하나를 고려대학교에 두고 있다.[46] 흥미롭게도 아들 이재용은 라이벌 게이오기주쿠대학 출신(경영학 석사)이다.[47] 손자 이재용이 서울대에 진학하자 와세다 출신 삼성 이병철 창업회장은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48] 아들 신동빈은 아오야마가쿠인, 손자 신동열은 라이벌 게이오 졸업이다.[49] 한국교우회로 개칭[50] 와세다 한국교우회가 매입함[51] 한국동창회에서 2003년 명칭 갱신[52] 일명 에밀레종[53] 명예[54] 일본어가 굉장히 능통했다. 2분38초부터 김 전 대통령 인터뷰 참조.[55] 김영삼 대통령은 와세다 학위복과 학위모를 착용하고 총장 안내로 한국 동문들의 종을 구경했다. 1,2층에 있던 약 1천2백여명의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학교직원들은 기립해 뜨거운 박수로 환영했다.[56] 와세다 고야마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金대통령은 취임이후 한국정치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훌륭한 공적을 남겼다"면서 "이같은 업적은 와세다대의 창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 선생이 일본의 막부 말기 격동시대 때 두번이나 수상에 재직하면서 일본의 개혁을 위해 노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김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57]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더욱 가까워 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모두가 편견을 버리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양국국민은 과거의 편견을 씻어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역사의 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역사의 교훈을 용기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58] 당시 직함명은 주무이사였다.[59] 명예[60] 명예[61] 한국 미술사의 허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 높은 유물을 다수 수집하였다. 이 사람의 수집품 중 현재까지 지정문화재만 50점(국보 12점, 보물 32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과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신윤복 필 미인도 등이 유명하다) 가까이 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1938년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을 만들었으며, 1945년 보성고등학교를 인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62] 일본 3대 중창단 중에는 멤버 전원이 게이오기주쿠대학 출신인 다크 덕스도 있었다.[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