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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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覽
(206 ~ 278)

서진의 인물로 자는 현통(玄通).

서주 낭야국 극양현 사람이고 그의 어머니는 주씨로 왕람이 어릴 때 전처 소생이자 이복형인 왕상을 괴롭혔는데, 왕상이 매질을 당하는 것을 보면 울면서 왕상을 끌어안았다. 나이가 약간 든 어린 아이일 때는 주씨에게 간언하면 주씨는 왕상에 대한 학대를 그쳤으며, 주씨가 왕상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면 왕람은 왕상을 도와 그 일을 함께 했다.

주씨의 학대는 왕상의 처에게도 끼쳐서 왕람의 처도 왕상의 처를 도왔으며, 주씨는 이로 인해 학대를 그쳤다. 왕상이 아버지 왕융이 죽은 후에 평판을 얻자 주씨가 이를 질투해 독을 먹이고자 했지만 왕람이 이를 알고 자신이 마시고자 했는데, 왕상이 독이 있음을 알고 주지 않으려 다투었지만 주씨가 이를 빼앗았다.

이후에는 주씨가 왕상에게 밥을 주면 왕람이 먼저 맛보게 되었으며, 주씨는 왕람이 죽을까 두려워 그만뒀다. 왕람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기 간에 우애가 있어 명성은 왕상에 버금갔고 왕상이 출사하자 왕람도 낭야군의 초빙에 응했다가 승진해 사도서조연, 청하태수에 이르렀고 오등작을 실시하자 구자에 봉해져 식읍 600호를 받았으며, 태시[1] 말년에 홍훈소부에 임명되고 홍훈소부가 사라지자 태중대부로 옮겨져 봉록은 경과 같은 수준으로 받았다.

함녕 연간[2] 초에는 어려서부터 행함이 있어 성의를 다했고 인과 의를 갖추어 그 올곧은 성미가 나이 들어서도 변치 않는다는 치하를 들으면서 종정경에 임명되었지만 질병을 이유로 퇴임을 청해 받아들여져 태중대부의 직위를 유지한 채 물러나 쉬었다. 전 이십만, 상장천육을 하사받고 전의가 파견되어 질병을 치료할 약을 받았다.

후에 광록대부가 되어 문 앞에 행마를 설치했으며, 278년에 73세로 세상을 떠나자 시호를 정(貞)이라 했다. 아들로는 왕재, 왕기, 왕회, 왕정, 왕언, 왕침 등이 있다. 이후 가문이 크게 번성하여 왕도, 왕희지, 왕돈, 왕헌지 등이 여기서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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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65 ~ 274년이다.[2] 275 ~ 280년이다.